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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업인 주성영이 본 ‘박정희와 김대중’

“압축 성장의 文明史를 이어달린 동반자”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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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의 1·2차 산업혁명… 전자·중화학공업 완성
⊙ 김대중의 3차 정보화 혁명… 4차 산업혁명의 기반 마련
⊙ 극단의 좌우 진영 통합해 우주문명 시대로 달려가야
주성영 (주)케이풀스 대표.
  재선의 전직 국회의원이자 중소기업지원센터 이사장을 지낸 주성영(朱盛英·64) ㈜케이풀스 대표가 《박정희와 김대중》이라는 책을 펴냈다. 부제는 ‘한국 문명사의 두 거인’.
 
주성영 대표가 쓴 《한국 문명사의 두 거인 박정희와 김대중》.
  주 대표는 2015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 토토)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했다. 2017년 매출액이 2487억, 2019년 3026억여원으로 성장했다. 현재는 토토와 복권 기술을 라오스, 필리핀 등지로 수출하고 있다.
 
  법조인에서 정치인, 기업인으로 자리를 옮긴 그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징인 박정희(朴正熙)와 김대중(金大中)에 대한 책을 썼다는 게 흥미로웠다.
 
  ―거시적 관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어떻게 평가하나요.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중국 문명의 주변국이었죠. 그런데 인류 문명사에 거대한 산맥이던 중국 문명도 1840년대 아편전쟁과 함께, 당시 제1차 산업혁명을 성공시킨 영국과 서구 문명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어요. 제국의 수도 베이징마저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주변국이던 조선이나 일본 역시 혼란에 빠지기는 마찬가지였죠.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단행해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문명사를 써 내려갔으나 한국은 몰락의 뒤안길로 걸어 들어갔어요.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은 문명의 낭떠러지에서 살아남아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 선진 문명국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이 ‘문명사’라는 거대 물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밝히기 위해 《박정희와 김대중》을 썼습니다.”
 
 
  “박정희가 政變을 革命으로 바꾸어”
 
1969년 5월 9일 박정희 대통령이 울산공업단지 조성지를 시찰 중 공단 외곽에 방책을 세우라고 지시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주성영 대표는 “박정희의 제1·2차 산업혁명으로 전자·중화학공업을 발전시켰고 김대중의 제3차 정보화 혁명으로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5·16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며 “5·16의 시작은 군사 정변(政變), 즉 쿠데타였다. 밑으로부터의 인민 봉기와는 다르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예를 들면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과는 구조가 다릅니다. 영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왕을 처형하고 공화제를 실시한 개혁운동, 즉 청교도혁명에만 혁명의 명칭을 붙이는 것이 합당하죠.
 
  같은 차원에서 집권 세력의 교체인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5·16 정변 세력이 처음부터 산업혁명이나 근대화 혁명을 정변의 목표로 설정했다고 해서 정변이 혁명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박정희 군부 세력이 5·16 정변이라는 쿠데타 성공 후 산업화를 시작하면서 농업과 경공업 분야에서 1차 산업혁명에 성공했다. 이를 토대로 전기 생산조립 라인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제2차 산업혁명을 거치게 되면서 이른바 중화학공업, 즉 전자, 철강,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산업을 성공시켰다.
 
  이어서 제3차 산업혁명의 컴퓨터, PC, 인터넷 기반의 컴퓨터 혁명 혹은 디지털 혁명의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정변은 비로소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109쪽)
 
  주 대표는 “박정희가 정변을 혁명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5·16을 5월 혁명 또는 5·16 군사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산업혁명은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2001년 4월 20일 정보 인프라 구축 및 인터넷 연결 기념식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이 수업 중인 경기상고 학생들의 컴퓨터 수업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김대중 대통령(이하 DJ)은 집권 직후인 199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창조적 지식 기반 국가 건설’을 제창했다. 또 “지식·정보 혁명의 시대는 우리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주 대표의 말이다.
 
  “DJ가 이런 말을 했어요.
 
  ‘18세기 말 산업혁명이 영국을 세계의 패자로 만들었고, 19세기 말 중후장대(重厚長大·박정희의 중화학공업을 지칭하는 김대중식 표현) 산업을 위주로 한 제2차 산업혁명은 독일과 미국을 세계시장의 강자로 만들었다. 이제 21세기 지식혁명의 시대에는 새로운 강국이 출현할 것이다.’
 
  DJ가 말한 ‘21세기 지식혁명의 시대’란 바로 클라우스 슈밥이 말한 제4차 산업혁명을 말합니다. 이것이 산업혁명에 대한 DJ의 분명한 인식이었죠.”
 
  DJ 정부는 1999년부터 초고속 정보 통신망 사업에 본격 투자했다. 대통령은 관료들이 무모하다고 여길 정도로 밀어붙였다. 빛과 같은 속도로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DJ는 “19세기 말에는 한국이 근대화의 지체로 산업혁명 대열에서 뒤떨어져 100년 동안 고생했다. 산업혁명은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고 외쳤다.
 
  〈마침내 2000년 12월 정보고속도로를 개통시켰다. 전국 144개 주요 지역을 광케이블 초고속 정보통신망으로 연결했다. 1만9988km로 경부고속도로의 44배에 달하는 길이었다. 2002년 11월 6일에는 정부종합청사에서 초고속 인터넷 1000만 가구 돌파 기념식이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힘을 주어 말했다.
 
  “이제 우리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5000년 역사에 처음 있는 세계 일류국가 도약의 기회입니다. (중략) 우리 모두 자신감을 가집시다.”〉(121쪽)
 
 
  ‘박정희가 한 일은 아무나 따라가진 못한다’(DJ)
 
  DJ 정부 말기인 2002년 3월 독일의 슈뢰더 총리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IT 산업이 성장한 국가이며 독일도 한국을 따라잡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2년 5월 미국의 《비즈니스 위크》는 “2500만 인터넷 이용자와 3000만 이동전화 사용자들은 한국을 새로운 콘텐츠 서비스와 무선 기술들을 실험할 수 있는 독보적인 시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 대표의 말이다.
 
  “DJ는 문명사적으로 산업혁명의 의미와 함께 박정희에 의한 뒤늦은 산업화 추격과 제2차, 3차 산업혁명 수행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심지어 DJ는 JP(김종필)에게 ‘박정희가 한 일은 아무나 따라가진 못한다’고 말했어요.”
 
  주 대표는 “DJ는 박정희와 함께 잃어버린 100년의 세월을 뒤늦게 추월했다. 압축 성장의 문명사를 이어달린 동반자”라고 주장한다.
 
  〈클라우스 슈밥이 정의한 4차 산업혁명을 400m 릴레이 경기에 비유해 보자. 박정희가 출발선에서 스타트하여 제1·2차 산업혁명 200m를 달렸다. 김대중이 이어받아 제3차 정보화 혁명 100m 구간을 달렸다. 한국은 이제 제4차 산업혁명 100m를 향해 달려간다. 누가 이어달릴 3번째 주자가 될 것인가?〉(122쪽)
 
 
  지금 필요한 ‘화해와 통합’의 정치
 
  ― 지금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크게 진보와 보수의 진영으로 갈리어 정치 양극화의 행태를 보이고 있죠. 우려할 만한 수준입니다. 양 진영의 뿌리는 해방 후 좌우익의 대립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어요. 좌익의 본류는 북한으로 가서 한국전쟁으로 남한과 대결했어요. 남한 내의 좌우익은 정치적 고비마다 그 세력과 이념을 상호 교차 내지 교체해가면서, 오늘날 진보와 보수의 틀로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진영 논리를 이용하여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를 부추겨 국민의 편을 갈라 장벽을 쌓는 세력이 있어요. 그 장벽 뒤편에 웅크리고 숨어 30~40%의 지지율을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자랑하죠. 그리고 그 장벽을 더욱더 강화하려 하고 있어요.”
 
  ― 조심스런 질문이지만, 좌우 진영의 통합이 요원해 보입니다.
 
  주 대표는 “DJ 방법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DJ 때도 일본과는 화해하면서도 박정희의 산업화 진영과는 화해하지 못했다. 다만 DJ는 한국 현대사에서 국민 통합을 위해 가장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통합의 방법을 찾으려 한 대통령”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DJ는 박정희가 6·25의 폐허 속에서 이룩한 근대화와 산업화의 성과를 인정했습니다. 산업혁명의 역사적·민족사적 역할을 이해했으며 그 자신 스스로 제3차 산업혁명을 수행한 주인공입니다. 그의 문명관을 받아들여야 해요.
 
  DJ가 가졌던 화해와 통합의 정치를 일깨워야 합니다. 박정희기념관을 지었고 전두환을 용서했잖아요. 이보다 큰 통합의 기준선과 출발점을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김옥균과 안중근, 박정희와 김대중
 
  그는 “김옥균(金玉均·1851~1894년)과 박정희” “안중근(安重根·1879~ 1910년)과 DJ가 오버랩된다”며 이런 주장을 폈다.
 
  “김옥균은 계몽사상의 범주를 훨씬 넘어서 독자적·산업혁명론적 근대산업 체제 건설 구상을 가지고 있었죠. 또 입헌군주제를 골격으로 한 시민 민주주의적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을 시도했으나 ‘3일 천하’로 실패하고 말았어요. 그러나 그의 꿈은 훗날 박정희의 산업혁명에 의해 현실화되었습니다.
 
  안중근은 민주주의 민족국가를 꿈꾸었고 평생 민주주의와 국제 평화주의 신봉자였어요. 그 사상이 《동양평화론》(1910)으로, 3·1운동의 ‘독립선언서’, 상하이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임시 헌장 선포문’으로 연결되죠. 이러한 정신은 1997년 DJ의 민주주의 혁명 완성으로 귀결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주 대표의 말이다.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지금까지와 완전히 결이 다른 새로운 산업 생태계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인류는 4대 문명 이래 5000년을 지구에서 살았습니다. 지구문명 시대였어요. 이제 화성으로 갑니다. 우주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제2 문명을 시작해야 해요. 우주문명의 도전과 산업 생태계의 고도화 앞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진영론과 색안경의 정치 양극화라는 고질적인 국론 분열 앞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는 뒷걸음치고 있다”며 탄식한다.
 
  “미래는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대상입니다. 과거를 사랑하고 진영의 통합을 이뤄내야 해요. 우리 사회에 가득 찬 편견의 사슬과 그물을 잘라내야 합니다.
 
  국민 통합은 이제 우리가 넘어야 할 마지막 장벽입니다. 우리의 문명사를 되돌아보고 우리를 사랑할 때가 되었어요.”
 
  책의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눈에 띈다.
 
  〈이제는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문명사를 되돌아보고 우리를 사랑할 때가 되었다.
  다시 한 번 박정희와 김대중을 생각한다. 김옥균과 안중근이 그렸던 꿈을 기억하면서…〉(268~269쪽)
 
  주 대표는 이 말을 꼭 넣어달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광화문에 박정희의 한글 현판을 걸고, 10만원권 지폐에 김대중의 얼굴을 넣읍시다!”⊙
 
박정희와 DJ의 과오는…
  사법 살인과 불법 대북송금

 
  주성영 대표는 박정희와 DJ의 과오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1964년 인혁당 사건과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박정희 권위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인권 탄압이었다. 군사 정권의 전위 조직인 중앙정보부가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을 적발하여 검거했다고 발표하면서 다수의 혁신계 인사와 언론인, 교수, 학생 등을 검거하고 사법 살인까지 저지른 국가폭력 사건이었다.
 
  민주주의 완성 이후의 2007년과 2008년 사법부의 재심에서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관련자들의 고문 등 가혹행위와 사형 집행은 어떠한 경우에도, 나폴레옹이 말한 ‘불가피한 것의 시도’가 될 수 없다.
 
  DJ의 과오는 우선 YS(김영삼)와의 갈등으로 민주주의 혁명 완성의 기회를 두 번(1980년과 1987년)이나 놓쳤다. 또 1992년 대선 기간 중에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YS는 이에 대해 ‘DJ 스스로 광주 학살의 살인마라고 비난해온 노태우에게 돈을 받은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DJ는 2000년 평양 방문과 관련하여 현대를 통해 절차적 정당성 없이 북한에 총 5억 달러를 주었고 그중 1억 달러는 DJ의 직접 승인으로 불법적으로 건넸다는 사실이 노무현 정부의 특검 수사에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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