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문화정책, ‘문화가 나라를 부흥하게 하고, 세계를 움직인다’
⊙ 베이징대 문화산업연구원 샹융(向勇) 부위원장, “각국의 문화 소재는 전 인류의 공동재산”
⊙ 한중 합작 영화 <이별계약>은 한중문화협력의 전범(典範)
金正賢
⊙ 55세. 서울경찰청 경위 퇴직.
⊙ 주요 작품으로 《아버지》 《어머니》 《맏이》 《누이》 등 가족 연작.
⊙ 2002년부터 중국 베이징에 체류하며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 준비 중.
⊙ 베이징대 문화산업연구원 샹융(向勇) 부위원장, “각국의 문화 소재는 전 인류의 공동재산”
⊙ 한중 합작 영화 <이별계약>은 한중문화협력의 전범(典範)
金正賢
⊙ 55세. 서울경찰청 경위 퇴직.
⊙ 주요 작품으로 《아버지》 《어머니》 《맏이》 《누이》 등 가족 연작.
⊙ 2002년부터 중국 베이징에 체류하며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 준비 중.

- 한중 합작영화 <이별계약> 포스터.
역사의 시간이야 우리도 다를 바 없지만 지대박물(地大博物)로 정리되는 드넓은 땅, 다양한 물산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문화적 유산은 이미 관광자원으로는 세계가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와 달리 오랜 세월 잘 보존되어 온 역사유적이나, 넓은 땅 곳곳에서 무시로 발굴되는 갖가지 유물은 문화산업의 잠재적 자원으로 그 미래가치는 섣불리 셈하기 어렵다.
문화산업은 이미 세계적 화두가 된 지 오래이다. 당연히 중국도 진작부터 문화산업에 대해 각성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중이다. 또한 중국의 문화산업은 엄청난 양의 자원과 그 다양함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여러 선진국이 내미는 우호와 협력의 손길에 선택을 고민 중이다.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배부른 형국인 것이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시기와 맞물려 한중합작영화 <이별계약>이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터라 중국 문화산업 연구 책임자를 만나 보기로 했다.
문화산업 정책 연구하는 베이징대 문화산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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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대 문화산업연구원 입구. |
문산연은 베이징대 예술대학(藝術學院) 소속이다. 문화와 예술의 상관관계를 고려한 배치이다. 그래서 문산연 원장은 예술학원 원장인 전국정협상무위원(全國政協常務委員) 예랑(葉朗)이 맡고 있다. 실질적 책임자는 2인의 부위원장이다. 그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샹융(向勇) 부위원장을 만났다.
먼저 놀란 건 샹융의 나이다. 1977년생이니 서른다섯 살에 불과한데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의 문화산업발전기지와 연구원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약력을 들여다보니 베이징대에서 철학과 경제학 복수전공으로 학사를 마친 뒤, 예술학과 관리학으로 석·박사를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런던 메트로폴리탄대학에서 방문교수를 지내기도 했으며, 중국 국가 지원 애니메이션 산업발전부 및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 베이징 한국문화원 등 여러 곳에 관련 직함을 가지고 활동 중이니 다소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우리네 상식으로는 여전히 놀랍다.
—국가 차원의 문화산업연구기지가 대학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중국 정부는 이전과 달리 문화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젊은 지식인층의 학술참여는 물론 지식정책까지 결정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있으며 지식인층과 전문인들의 의견을 갈수록 중시하고 있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부는 고등교육기관에 이미 여러 국가급 연구기관을 설치했고 이들은 중앙정부의 정책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지역 실천에서부터 국가전략을 세우는 데까지 이런 지식인층의 노력 없이는 중국의 문화산업 발전도 없습니다. 그래서 문산연은 자긍심을 갖고 국가 지식 창고로서의 역할에 임하고 있습니다. 중국 문화산업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며 문화부흥을 위해 일조하고자 합니다.”
—문산연은 ‘문화가 나라를 부흥하게 하고, 세계를 움직이게 한다(文化可以興國, 文化推動世界)’를 모토로 내세우고 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는 문화입국(文化立國)의 한 개념으로서, ‘중국 국가브랜드전략’과 ‘대문화경제설(大文化經濟說)’의 실천적 강령입니다. 21세기 중국 부흥의 염원과 새로운 사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문산연의 주요업무는 어떤 것인가요.
“첫 번째는 국가 문화산업에 관한 이론을 연구 정립하고 중앙정부의 정책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문화산업의 인재양성인데 학사, 석사, 박사는 물론 실무전문가 양성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지방의 문화산업발전을 촉진할 수 있도록 문화산업을 기획하는 것이며, 네 번째는 여러 창의실험실을 통해 문화상품을 개발하는 등 문화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맥이 끊겨버린 중국 문화
—문화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문산연은 ‘미래 영도문화 창의대회(未來領導文化大賽)’를 개최해서 청소년들이 문화적 창의력을 응용해 창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 그러한 문화 소재를 개발한 사람과 파트너가 될 산업주체를 연결해 상품으로 생산 가능하도록 하는 일도 합니다. 실제로 영화, 오페라, 연극은 물론 도자기 등 창의적 디자인 상품을 공동 개발한 바 있습니다. 다만 시장 배급 부분에 있어서는 기업이 참여토록 주선하고, 우리는 정책 및 기획, 브랜드 관리, 문화 및 디자인 관련 자문에 응해 줍니다. 그러니까 문화가치 및 문화자본을 창출해 내는 역할인 거죠.”
—중국은 지난 5000년 역사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인류문화의 주도적 역할을 했는데, 현재 중국 문화의 위상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총체적으로 중국의 역사 발전은 3단계를 거쳤습니다. 1차는 진한(秦漢) 시기였는데, 그때는 진의 통일에 따라 법치와 더불어 문자, 도량형 등 제도상의 변혁을 이루었고, 한대에 들어서는 군사상의 변혁을 이루었죠. 2차는 성당(盛唐) 시기인데, 타문화를 배척하지 않는 포용정신으로 문화부흥을 이룬 진정한 굴기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상상력 풍부한 중국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중국은 언제라도 그 시절로 되돌아가 문화적 부흥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굴기라고 하는데, 저도 일정부분 동의하는 바입니다. 세 번째는 명(明) 나라 때인데, 동아프리카 지역까지 항로를 개척한 ‘정화(鄭和) 대원정’ 같은 시도도 있었지만 결국은 중앙집권체제로 굳혀지며 군사·경제상의 굴기를 이루는 데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는 청(淸) 나라 강희제(康熙帝) 시대를 끝으로 쇠퇴의 길로 들어섰는데, 이는 중화민족의 쇠퇴이자 농경문명의 쇠퇴이기도 합니다.”
—서양 문명의 일방적인 주도가 시작된 것이었죠.
“그렇습니다. 18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기술 및 생산력의 획기적 발전을 이뤘고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를 추월한 거죠. 그 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빼어난 문화적 유물에는 중국문화, 동양문화의 영향이 스며들어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중국은 특히 아편전쟁 이후 문화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오히려 5000년 문화와 역사에 흠집만 내고 말았습니다.”
—가장 큰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런 낙후의 원인을 과학을 등한시하고 윤리만 강조한 유가(儒家) 등 중국 문화의 보수성과 폐쇄성으로만 돌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기존 문화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 시작됐고, 그것은 20세기에 들어와 5·4운동, 문화대혁명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당시 우리는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통해 그 죄악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으려 했습니다. 후에 중국 낙후의 근본 원인은 제도상, 정부 통치상의 모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런 시간을 거치며 사실상 중국 문화는 맥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현재는 어떤가요.
“중국 문화는 반드시 계승되어야 한다, 문화는 계속 누적되는 것이지 부정하여 재탄생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점에는 대부분 의견이 일치합니다. 다만 무엇을 계승하고 전승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또한 서양 문화의 영향과 충격을 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감을 되찾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은 일부 지식층을 제외하고는 그리 많지 않은 게 솔직한 현실입니다. 또 한 가지, 많은 문화자원들이 지식으로만 답습되어 전수되는 데만 그치고, 생활방식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문화는 지식이 아니라 일종의 생활방식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전통문화를 현대 중국인들에게 어떻게 접목시켜 흡수토록 하느냐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과 비교했을 때 중국의 문화적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문화는 지리·환경·역사 등 다방면의 영향을 받는 것이기에 민족이나 국가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어느 것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우리 중국 문화에는 분명 우수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가에서 말하는 인의(仁義)나 화합, 도가(道家)의 사람과 자연의 관계 등입니다. 또 불교는 인간 심신의 문제를 중시합니다. 이런 ‘천인합일(天人合一)’ ‘도법자연(道法自然)’ ‘중생평등(衆生平等)’의 사상들은 자연을 정복하고 경쟁을 강조하는 서양문화로서는 대신할 수 없는 우수한 문화입니다. 실제로 서양 철학자 하이데거도 서양의 철학적 사고방식을 동양적 사고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중국 문화의 근본정신은 ‘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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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샹융 문산연 부위원장. |
“사견입니다만, 아직까지 완전하고 체계적이며 모두가 신복(信服)할 만한 일련의 문화주장이나 가치이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현재 중국의 정치구조나 집권당 이념의 이론방식이 우리의 순수한 전통문화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계적으로 공산당이 집권한 국가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아마 그 한 이유가 될 겁니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중국 전체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향후 중국이 세계적으로 문화를 선도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드는 것도 문산연의 업무에 포함되나요.
“당연합니다. 우리의 최대 희망이죠. 20세기 베이징대의 주요 사명이 서양에서 과학, 민주 등의 선진 이념을 들여와 중국의 사회·경제 발전을 추진토록 한 것이었다면, 21세기의 사명은 서양에 중국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의 굴기 노선을 세계에 소개해 세계가 공유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문산연은 현재 유네스코(UNESCO)나 유엔무역개발협의회 등 국제조직이나 국제고등교육기관, 과학연구기관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세계적으로 문화적 위상을 가진다면 그 근본정신이 무엇이 될까요.
“‘인(仁)’이라 할 것입니다. ‘인’의 기치하에 ‘예(禮)’ ‘의(義)’ ‘지(智)’ ‘신(信)’과 조화롭게 융합하는 것입니다.”
—성당 시기뿐 아니라 세계 역사 속에 문화가 융성할 때는 그 기본정신이 포용이었습니다. 특히 중국의 문화에는 ‘장독문화’라고 일컬어지는 부분이 있던데요.
“그렇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자신감 있는 문화는 포용문화라고 생각하는데, 장독문화같이 외래문화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신의 문화와 융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가 중국에서 선종(禪宗)으로 발전한 것이 그 가장 좋은 예입니다. 사실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진한 정신도 그것입니다. 이전에는 선진 기술이든 제도든 대외의 것에 대해 맹목적인 숭배 아니면 저항을 했는데 그것은 진정한 포용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1978년 개방의 근본정신은 ‘겸수병축(兼修幷蓄·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하여 이로운 것을 취한다)’이었습니다. 즉 장독문화의 포용정신이었지요. 그 부분에서는 한국이나 일본도 아주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요즘 거리에 ‘애국(愛國)’ ‘후덕(厚德)’ ‘포용(包容)’ ‘창신(創新)’의 ‘베이징정신(北京精神)’이 많이 내걸려 있더군요.
“사실 그 여덟 자가 과연 ‘베이징정신’을 대표하는가 논쟁이 많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크게 인정하지 않는 편입니다. 시민정신이란 시민들의 몸에서 배어 나와 골목골목 묻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이징대 교장을 지낸 저명한 시인 후스(胡適)는 중국 사람이 문자를 숭배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구호를 문자로 써 벽에 걸어 놓는다고 모든 사람이 실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개괄적으로 모종의 의미는 있습니다. 문자로 숭배하는 그 자체가 핵심가치를 인정하는 본보기이기는 하니까요.”
한중 합작 첫걸음 <이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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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촨문화의 뿌리 산싱두이 문명의 상징인 황금마스크. |
‘멍얼둥’은 1994년 베이징대 교수로 임용된 뒤, 병마 속에서도 학문 연구와 학생 교육에만 전념하다가 2006년, 병상에서도 석사연구생 논문을 심사하고 학생의 논문 낭송을 들으며 눈을 감은 이다. 그의 죽음은 베이징대는 물론 중국 사회에 커다란 감동을 주었고, 그의 장례식에는 당시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가 직접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영화 <멍얼둥>은 2009년 국가 영화관리국 지정 추천영화로 등극하기도 했다.
—<뮬란> <쿵푸 판다> 등 중국 문화를 소재로 미국이 제작하여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를 보는 소회는 어떤가요.
“모든 국가는 저마다의 우수한 문화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 그것들은 전 인류 공동의 재산입니다. 한국의 <대장금>을 소재로 중국이 다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는 일인 거죠. 왜냐하면 드라마 <대장금>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의 인물 ‘대장금’을 재해석하는 것이라면 지적재산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그리스나 이집트 이야기로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죠. 그런 측면에서 중국적 소재가 세계에 쓰인다는 것은 오히려 환영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만, 그에는 일정한 형식이 요구되는데 세 가지를 들겠습니다.
중국을 예로 말하자면, 첫 번째는 중국의 형식으로 중국 문화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곤곡(昆曲), 경극(京劇) 등에 어떠한 요소도 가미하지 않고 순수하고 있는 그대로 서양에 전파하는 것이죠. 그러나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중국의 소재라는 것을 알더라도 결국에는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중국의 소재를 다른 나라의 형식으로 전파하는 것입니다. <뮬란> <쿵푸 판다> 같은 것들이죠. 사실 중국에서도 중국대외문화그룹(中國對外文化集團)과 상하이SMG신오락(上海SMG新娛樂)이 한국 CJ E&M과 합작으로 ‘맘마미아’ 같은 뮤지컬을 만들었습니다. 소재는 다른 나라의 것이지만 형식은 중국의 것이니 나름 의미 있는 일이죠. 세 번째는 세계의 형식으로 세계의 소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중국 전통 소재를 발레 작품으로 만들거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중국 형식으로 만드는 것이죠.”
실제 중국 영상산업 관계자들을 만나 보면 한중 간 합작이 가져올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는 수긍하는 바이다. 중국의 경우는 스케일은 크지만 섬세하지 못하고, 일본은 섬세하지만 줄거리가 매끄럽지 못한데, 한국은 우선 스토리를 끌어 가는 힘이 탁월할 뿐 아니라 섬세하기까지 해서 세계시장을 노려볼 만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중 합작으로 파고들 수 있는 중국시장의 크기는 이미 그 자체가 세계시장의 범주에 드니 말이다. 그럼에도 막상 양국의 사업주체가 만나면 먼저 불신의 벽을 내세워 일을 그르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행히 이번 <이별계약>의 큰 성공은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진전의 계기가 되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문화 협력은 평화 공존의 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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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산연에서 디자인한 입체미를 살린 도자기 작품. |
“물론입니다. 당장 한국문화산업진흥원, 한국문화원 등과 빈번하게 교류하고 있습니다. 각종 문화활동은 물론 자문 교류, 기업 간 상호 알선, 정부정책 관련 정보 제공 등 다양한 형태입니다. 그 밖에도 일본, 영국, 오스트리아, 대만 등 여러 나라의 관련 단체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요.”
—한국과도 협력관계가 있나요.
“한국문화산업진흥원과 협력관계로 한국문화산업의 중국시장 개척을 돕는 중국 측 고문을 맡고 있고, 한국아시아문화전당의 프로젝트 기획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기업의 중국과의 교류에 필요한 현지 조사 서비스, 중국기업의 해외교류 협력 업무도 진행 중이고요. 그 밖에 국내외 공동 포럼을 통한 국제문화산업 인재 양성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중의 앞날을 위해서는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 간의 교류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네. 아주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베이징대 연구생으로 있던 2002년, 정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프로젝트 ‘한중미래림(forest future)’ 사업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당시 퇴임하신 주중한국대사님께서 발기하고, 한국기업의 출자를 받아 시행된 그 사업은 한국과 중국에서 각각 50명의 청년을 선발해 네이멍구 사막지역에서 나무를 심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었죠. 그런 일들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앞으로는 환경, 자연생태, 과학 등 인류 공통의 과제를 주제로 미래의 주인인 청년들이 모여 토론하고 실행하는 일들도 문화사업의 주요 과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과의 교류에 있어서 특별히 할 말이 있다면.
“전반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수교 이래로 조화롭고 친밀한 관계를 이어 왔습니다. 국제관계에서 서로 존중해 가며 협력을 이끌어 왔고 고위층, 정부, 기업 및 학술 교류에 있어서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해 왔습니다. 특히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은 한중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물론 한중 간 문화산업 교류도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고 그 채널도 원활합니다. 다만 그 교류가 이제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심도 깊게, 무엇보다 지속적인 장기화가 필요한데 그 부분은 미흡합니다. 예를 들면 문화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고정적이고 정기적인 포럼이나 그 실행에 필요한 자금지원 등이죠. 지난해, 한중 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화가의 전시회를 문산연 주도로 개최한 바 있는데, 미술은 물론 다양한 문화방면에서 양국 간의 교류가 정기화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현재 베이징대에는 석·박사 과정을 포함해 적지 않은 유학생들이 문화산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 모두 우수한 전문 교육을 받고 있고, 열정도 남다릅니다. 이런 인재들을 프로젝트 팀원으로 적극 활용하면 한중 문화교류의 사자(使者)로서 본분을 다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샹융 부원장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각국의 문화 소재는 전 인류의 공동재산’이라는 것이었다. 문화는 초기에는 언뜻 부딪치는 모양새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결국은 융합되고 변화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을 지녔다. 특히 소위 ‘한류’로 불리는 우리의 대중문화는 지금 그 강력한 흡인력으로 엄청난 장독이 되어 가고 있다. 누가 이기고 지는 승부가 아니라 미래의 화합과 평화를 위해 보다 넓은 마음으로 내미는 손을 잡으려면, 장독 안에서 발효되어 새로운 가치의 위대한 무엇인가를 창조하려면, 먼저는 사소한 이익부터 따지는 소아의 마음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지원 : 베이징대 문화산업 박사과정 신영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