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이 중국의 거의 유일한 실세라는 사실 잘 알아야
⊙ 시진핑은 아버지 때부터 親北이라는 사실 잊어선 안 돼
⊙ 박근혜 새 대통령이 시진핑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해야
朱宰佑
⊙ 46세. 美웨슬리언대 정치학과 졸업. 中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 석사, 同 국제관계학원 박사.
⊙ 現 경희대 외국어대 중국어학과 교수.
⊙ 시진핑은 아버지 때부터 親北이라는 사실 잊어선 안 돼
⊙ 박근혜 새 대통령이 시진핑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해야
朱宰佑
⊙ 46세. 美웨슬리언대 정치학과 졸업. 中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 석사, 同 국제관계학원 박사.
⊙ 現 경희대 외국어대 중국어학과 교수.

- 시진핑은 2008년 6월 18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만났다. 중국에서 차기 지도자로 지명된 사람은 관례적으로 북한을 가장 먼저 방문한다.
중국의 집단지도부는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일컫는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중국 지도부의 권력 랭킹 상위에 오른 중국의 최고 정치권력을 부여받은 이들이다. 과거 20년 동안 상무위원들은 권력랭킹 상위 9명으로 구성되었으나 이번 18차 당대회에서는 그 수를 7명으로 줄였다. 즉 시진핑 체제는 중국 정치권력 랭킹 7위 이내에 속한 이들로 이뤄진 집단지도 체제다.
중국의 공세적 외교
우리가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21세기 들어 중국의 급부상으로 인한 외교적 영향력이 급속히 강화되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의 영향력 증강은 이웃국가인 우리의 국익뿐 아니라 한반도의 운명에도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또 중국의 급증하는 종합국력은 동북아 지역 힘의 재분배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새로운 역학구도가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이는 역내 권력구조가 중국과 미국 중심의 ‘G-2’ 구조로 자리 잡혀 가는 추세에서 방증된다.
동북아 지역 내 역학구도 변화의 징조는 중국이 최근 발생하는 일련의 영토분쟁이나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있어 취한 적극적(assertive)이고 공세적(aggressive)인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나름 논리와 타당성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가 자신의 권익과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 대외적으로 이런 논리와 타당성을 표현함에 있어 그 표현방식이 거칠고 세련되지 못해 오히려 역효과를 보고 있다.
중국의 거친 외교가 나날이 거듭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앞으로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시대적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중국의 새 지도부 임기와 박근혜 새 대통령의 임기가 겹치기 때문이다.
앞으로 5년 동안 한반도의 운명과 우리 국익을 위한 최선의 효과와 결과를 우리의 외교에 기대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것이 하나의 전제다.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가이다. 동맹관계를 지당하게 받아들여 미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신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우리 외교의 상수(常數)로 존속하는 이상 주변국가들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외교의 숙제라는 의미다.
우리와 중국과의 관계가 긴밀하게 발전한다고 해도 한미동맹이 약화되거나 한중관계가 한미동맹 관계의 속성과 본질, 위상을 초월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21세기 우리 외교의 전략적 사고의 기조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외교도 자주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국익 중심의 전략을 개진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시진핑을 총서기로 하는 중국 공산당이 어떠한 식으로 외교를 전개할 것인지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 이런 분석을 위해 지금까지 국내에서 제기된 잘못된 인식과 오해 몇 가지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시진핑 신화 1
시진핑 체제는 집단지도 체제이다
국내에 알려진 시진핑 체제는 집단지도부 체제이다. 이 체제의 특징은 의사결정권이 시진핑 한 개인에 집중된 것이 아니고 당의 핵심조직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국가 정책은 이들 상무위원들 간 논의와 협상을 통해 의사가 수렴되며, 최종 의사는 이들의 투표로 결정한다.
개혁개방정책 도입 이후 집단지도 체제하에서 모든 상무위원이 동등한 투표권을 가지고 정책의사결정권을 균등하게 집행해 왔다. 그러나 시진핑 체제는 개혁개방 30년 이후 처음으로 시진핑 지도자 개인이 거의 모든 정책을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사결정구조를 위한 기반도 지난 18차 당대회에서 마련했다. 시진핑 시대가 과거와 다른 부분은 의사결정권의 기반 조직인 상무위원들의 인사 결과에서 입증되고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시진핑 총서기와 리커창(李克强) 총리 예정자를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이 모두 5년 후에 퇴임한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총서기직과 국가주석은 5년 연임제다. 덩샤오핑(鄧少平) 시대 이후의 사례를 보면, 모든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은 예외 없이 연임했다. 장쩌민이 그러했고, 후진타오 역시 연임하면서 10년 동안 중국을 통치했다. 그러므로 상무위원을 구성할 때 최고지도자의 연임기간을 염두에 두고 상무위원의 인사를 단행했던 것이 통상적이었다.
그러나 시진핑의 집단지도부 체제는 다르다. 18차 당대회에서 선출된 상무위원 7명 중 5명이 첫 임기 후 ‘연령제(선출 당시 만 65세 이하여야 함)’에 걸려 은퇴를 해야 한다. 이들의 은퇴 후 시진핑 2기 집단지도 체제, 즉 상무위원을 리커창을 제외하고 다시 구성해야 한다.
둘째, 시진핑 시대 상무위원 구성의 특징 중 하나가 계파정치의 약화이다. 개혁개방시대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들은 출신지역(상하이, 베이징), 출신 신분(태자당, 공산청년당), 후견인(덩샤오핑, 장쩌민), 학파(칭화대) 등으로 분류된 계파정치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 지도부가 상무위원을 포함한 공산당 지도부의 인사 구성에서 이런 계파 간 균형을 매우 중시해 왔다. 시진핑 시대에는 이런 계파정치가 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상무위원 인사를 보더라도 계파 간 명확한 선을 긋기가 어렵다. 대신 정치명문가 출신들이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계파정치 약화
시진핑 체제가 실질적인 집단지도 체제라면, 5년 뒤, 아니 앞으로 5년 동안 상무위원을 구성함에 있어 계파 간 권력투쟁의 진통을 또 한 번 겪어야 할 것이 자명하다. 상무위원의 선출이 민주주의적인 투표방식이 아닌 내부의사 결정으로 이뤄지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런 권력투쟁의 진통을 5년마다 겪어야 한다는 것은 공산당에 더 많은 사회적 기회비용의 부담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혹자는 미국의 대통령제도 4년마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중국의 경우 뭐가 대수롭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상무위원 선출이 공산당 핵심간부들에 의해 비밀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진행이 조금만 매끄럽지 않아도 권력에 대한 암투가 존재한다고 의심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의심은 중국 사회의 불안요인으로 비화할 수 있다. 사회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독재집권당 공산당이 이런 기회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5년 후에 ‘집단지도 체제’의 7명 중 5명을 모두 교체하겠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 일이다.
이 모든 것은 두 가지를 함의하고 있다. 하나는 시진핑 체제가 과거 집단지도 체제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시진핑 체제는 시진핑 독주(獨走) 체제다. 5년 후 은퇴할 상무위원들은 시진핑의 꼭두각시들이다. 모두 다 시진핑의 명을 잘 받들고 수행할 인사들이라는 의미다. 특히 장더장과 장가오리는 완전히 시진핑의 사람(Xi’s man)으로 정평이 나 있다.
또 한 가지는 계파정치의 종결이 문턱에 와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평가와 달리 이제 상무위원들 간 계파로 분리하여 이들을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 면이 있다. 원로와 전임지도부 간 정권이양에 대한 협상에 있어 계파 인사들의 계파 갈아타기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후진타오의 사람이었기에 차기 당 총서기로 예측한 리커창이 시진핑한테 밀리고 시진핑이 후진타오의 지지를 받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중국 최고지도부의 정치 인사 과정에 계파 변수가 거의 사라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는 시진핑 체제를 필두로 이제 중국에서는 정치명문가에 의한 정치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본다. 그러므로 중국 외교정책 의사결정권도 시진핑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시진핑 신화 2
시진핑은 親韓派·知韓派다
시진핑이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되었을 때 우리 언론의 분위기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과거 중국 최고지도자들과는 달리 그의 한국과의 화려(?)한 인연 때문이다. 시진핑은 저장성 당서기 재임시절인 2005년부터 한국을 방문하기 시작하여 2008년 부주석이 되기 전후 한국 정·재계의 고위층(이상희·김장수 전 국방장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 중국 최고지도자의 경험과 비교해도 한국과 그의 인연은 이례적으로 일찍이 시작되었고, 그 빈도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은 왜 2010년 10월 25일 중국인민지원군 한국전쟁 참전 60주년 행사에서 ‘한국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등의 북한을 옹호하는 강경한 발언을 했는가? 과연 시진핑은 대북한관, 북중(동맹)관계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기에 북한에 편향하는 발언과 입장을 계속 밝히고 있나?
시중쉰, 김일성과 친분 두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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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화대 재학 시절의 시진핑(오른쪽)과 시중쉰. 시진핑은 김일성과 친분이 깊었던 시중쉰으로부터 친북성향을 물려받았다. |
시중쉰은 간단하게 말해서 혁명 1세대로 문화혁명 때 실권(失權)하기 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공헌자이며 추앙받는 혁명가였다. 이런 배경으로 그는 마오쩌둥(毛澤東)으로부터도 두터운 신뢰를 받았고, 한국전쟁 때 마오쩌둥이 중국의 개입 문제로 고민할 때 이를 긴밀히 상의했던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문화혁명 때 실권을 하게 되었고 문화혁명이 끝나면서 복권됐다. 1978년 복권 이후 1980년대 공산당 서기처의 서기로 재임하면서 김일성의 방중 때 베이징역에서 김일성을 직접 영접하고 배웅한 몇 안 되는 중국 지도자 중의 한 명이었다. 시중쉰 역시 북한을 세 차례 방문한 바 있다.
시중쉰과 김일성 간의 친분 관계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1978년 복권 이후 시중쉰은 중국 공산당 우호방문단의 대표로 1980년 평양을 방문했다. 1962년 이후 18년 만의 김일성과의 조우였다. 문화혁명 당시 시중쉰이 겪은 모욕과 치욕, 고생과 고난에 대해 김일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시중쉰과의 친분 정도를 확인하고 싶어 그로부터 직접 들으려 했다. 김일성은 시중쉰을 만난 자리에서 당시 이야기를 해줄 것을 세 번이나 청했다. 세 번의 부탁 끝에 시중쉰은 자신이 겪었던 고충과 모욕을 풀어놓았다. 두 사람은 이를 서로의 우의는 물론 양국, 양당, 양국의 인민 간의 우의와 감정을 공고히 하는 계기로 삼았다.
이후 시중쉰은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베이징역에 그를 영접하고 배웅하러 나갔다. 시중쉰은 또한 1983년 김정일의 첫 비공식 중국 방문 때에도 그를 영접한 바 있으며 당시 그와 회견을 가졌을 정도로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 나갔다.
시진핑 신화 3
北中동맹 관계의 連帶性 약화
우리는 세대가 지날수록 북·중 지도자 간의 북중혈맹 관계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약화될 것이라고 알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현 세대 지도자들이 공산혁명 세대도 아니고 한국전쟁 이후의 세대이기 때문에 많은 분석가들은 이들이 북중동맹의 가치를 정서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전후 세대들 간의 교류가 감소한 상황에서 중국은 강국으로 부상하고 북한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서로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는 것은 물론 역사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있어 상당한 괴리감이 증폭되고 있다.
중국의 전후 세대 지도자들은 개혁개방의 수혜자들로 이미 이들 사이에서는 이데올로기가 통치수단이나 방식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지 오래이다. 그리고 이들은 북중관계가 동맹의 관념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올무로부터 벗어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여전히 전통적 공산주의의 통치방식을 고집하면서 북중동맹 관계를 이념적으로 속박하려고 한다.
중국의 원로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전후 세대 지도자 간 북중동맹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괴리를 우려한 듯 일찍이 대응해 왔다. 이런 대응은 덩샤오핑 생존 시 취해진 것으로 후계자가 지정되면 그를 북한으로 먼저 보내 북중동맹의 가치와 중요성을 몸소 체험하며 답습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관행은 장쩌민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장쩌민의 경우 1989년 천안문 사태로 인해 갑작스럽게 총서기로 등용되어 사전 북한실습을 하지 못했다. 등용된 후 첫 공식방문 국가는 물론 북한이었다.
후진타오 역시 장쩌민 후계자로 지명되고 중앙정치무대에 진출한 1993년 처음으로 해외방문한 국가가 북한이었다. 시진핑도 중앙정치무대에 진출한 후 2003년 같은 길을 밟았다. 또한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지명된 2008년에 시진핑은 북한을 또다시 방문하는 명을 받았다.
이들의 북중동맹 관계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적 고찰은 이런 방문을 통해 이뤄졌다. 이들의 학습결과는 결국 방북 기간 동안 만수대 방문에서 드러난 그들의 북중동맹 관계에 대한 찬양과 신념의 발표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2010년 9월 중국인민지원군의 한국전쟁 참전 60주년 행사에서 시진핑이 한국전쟁(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 즉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지원하는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칭한 것도 이런 학습효과의 결과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中, ‘눈 가리고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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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2월 17일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이 국회를 방문, 김형오 국회의장과 함께 국회 현관을 들어서고 있다. |
일례로, 2005년 9월 북한의 돈세탁 행위를 제재하기 위한 서구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에 대한 제재가 이뤄지는 가운데 중국은 2006년 4월 북한의 외화가 중국은행을 통해 유통과 결제되는 것을 허용하고 합법화하는 조례를 발표한다. 북한이 제3국을 통해 해외결제를 하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UN 제재안이 유효한 가운데 중국은 2010년부터 압록강대교로 진·출입하는 모든 화물차량에 덮개를 씌우도록 의무화했다. 그럼으로써 북한을 출입하는 화물 내용을 외부에서 육안으로 알아볼 수 없게 하였다.
최근 북한 핵실험을 앞두고 중국 단둥에서 북한으로 유입되는 물품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런 통제가 실질적으로 얼마만큼 효과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찌보면 국제사회를 인식한 중국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성의 표시일지도 모른다.
‘동맹이론’의 맹점
북중동맹 관계가 더욱 견고하게만 느껴지는 요인 중 또 하나는 서구의 동맹이론의 맹점 때문이다. 서구의 동맹이론 중 이른바 ‘동맹 딜레마’ 이론은 중국은 북한이 동맹관계를 포기하는 카드로 중국을 위협해서 자신이 추구하는 이익을 확보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북한을 상실할 수 없는 입장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이론이 북한의 경우와 합당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중국과의 동맹을 포기하고 다른 국가와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은 그러나 갈 곳이 없는 국가다. 미국이나 한국 또는 일본과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서 중국과의 동맹을 포기하고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이 북한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북한의 도발행위를 묵인하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중국의 대북정책을 동북아의 역학구조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동북아의 세력균형(힘의 균형)이 한미동맹, 미일동맹과 북중동맹이라는 삼각편대에 의존하여 유지되는 한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못한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중국 측 책임 물어야
북한은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에 대한 우리의 중국전략과 북한 핸들링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이는 중국의 북한 인식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서만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이해 속에서 중국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을 설득할 수 있는 우리의 전략 논리의 대명제는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이 개혁개방정책을 도입하여 ‘정상적인 국가’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이런 대명제에서 보면 우리가 중국을 설득할 수 있는 틈새가 보인다.
첫째, 북한이 핵실험이나 도발행위를 할 경우 북한에 책임추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직접 하는 것이다. 북한 도발의 수준과 영역, 그리고 범위상 매우 심각하게 확대되는 상황에서 중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추궁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중국도 북한의 도발이 점점 더 과감해지는 데에 이제는 일정 정도의 책임이 있다는 국제사회의 인식과 공감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매번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유관국가의 인내와 냉정을 요구하면서 북한 처벌 수위 조절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또한 나름 대북제재결의안에는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동참하면서도 협조는 안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재도발하거나 핵실험을 감행하면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중국에 적극적으로 이의 제기를 하고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을 해야 한다. 즉 북한의 도발에 대한 중국책임론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둘째, 북한이 도발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도발할 때마다 그들만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
가장 최근의 예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이다. 북한은 자기들의 지속적인 한미연합훈련 반대에도 불구하고 훈련이 진행되어 위협을 느꼈고 실질적으로 우리의 실탄사격이 그들의 도발을 유발했다고 주장한다. 중국도 이런 논리에 동참했다.
포격 당시 동영상이 북한의 도발이라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명백히 입증하고 있으나 중국은 북한의 주장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중국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도발사태에 대해 우리가 사전 논리 구축 강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 주장의 허구성을 입증할 수 있는 대응 논리 정립에 더욱 노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
韓中 頂上 간 소통 필요
마지막으로 시진핑을 설득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최고지도자만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다. 다행히도 우리의 새 대통령과 시진핑 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개인적 성장 배경과 정치적 가치관이 없지 않다. 두 지도자들 모두 정치엘리트 출신의 부친을 통해 정치를 배웠고 정치적 시련을 겪으면서 가치관을 형성했다. 이런 공통된 배경 때문에 두 지도자 간의 소통이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두 지도자는 이미 구면이고 친분이 있기 때문에 두 지도자의 관계가 북한문제를 직접 논의할 수 있는 관계로 승화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한중 양국 간에 산적한 문제가 많지만 이제는 두 지도자 간의 주요의제를 북한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은 이 점에서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은 그 어느 대통령도 중국의 최고지도자와 북한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지 못한 사실에 근거한다. 그리고 한중 양국 지도자 간에 이런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중국을 설득시킬 수 있는 정치전략적 논리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안보는 외교다.
21세기에 물리적 충돌이나 대결을 통해서는 안보가 보장되지 않는다. 외교를 통해서만 보장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빨리 중국과 북한문제를 진솔하게 논의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는 전략적 논리의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