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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北미사일 도발 정밀분석]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 야욕, 종착역은 어딜까?

북한의 최종 목표는 ‘핵탄두 탑재 ICBM’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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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핵·미사일 도발 배경과 北탄도미사일 개발史
◎北 미사일 도발, 올 들어 13번째 문재인 정부 이후 9번째
◎김정은 정권유지, 미국과의 협상, 국제사회로부터 인정, 미사일의 경제적 가치 등 4가지 이유로 미사일 지속 도발
◎김일성, 6·25전쟁 이후 ‘국방에서의 자위’ 원칙 천명하고 신무기 개발 박차
◎北 탄도미사일 중 가장 위협적인 전략무기는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미국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미니트 맨 3'가 2017년 8월 2일(현지 시각)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발사돼 대기권으로 치솟고 있다. 미 공군은“이번에 발사된 ‘미니트맨 3’는 약 6759㎞를 비행해 태평양 마셜군도의 콰절린 환초에 명중했다”고밝혔다. 미니트맨3의 최대사거리는 1만3000㎞이며, 반덴버그 기지에서 발사되면 30분 만에 평양을 타격할 수 있다. 사진=미공군
북한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 야욕이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압박·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8월 29일 새벽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해 북태평양에 내리꽂았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북한이 오늘 오전 5시 57분쯤 평양시 북쪽 순안 일대에서 탄도미사일 1발을 동쪽 방향 일본상공을 지나 북태평양 해상으로 발사했다”고 밝혔다. 29분간 비행한 탄도미사일은 최대 고도 550㎞, 비행거리 2700㎞에 달했다고 합참은 전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올해 들어 13번째, 문재인 정부 들어 9번째다.
 
이날 발사된 탄도미사일은 고각발사가 아닌 ‘정상각도’로 발사됐다는 점, 비행거리를 기준으로 기존 탄도미사일 중 가장 멀리 날아갔다는 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의 최종 실험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군사적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일본 열도는 이번 탄도미사일이 홋카이도 상공을 통과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번 도발을 ‘폭거’라고 규정하며 강력히 비판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7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소집, 대북 응징 및 대응책을 논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한 대북(對北) 응징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공군은 F-15K 4대를 긴급 발진해 실전 폭탄 투하 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의 이번 도발은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을 겨냥한 ‘다목적용 도발’인 것으로 군사안보전문가들은 내다봤다.
 
한편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2~3번 갱도에서 언제든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상태(핵실험 가능상태 유지)라고 국정원이 28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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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8일 밤 북한 김정은이 참관한 가운데 시험발사된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14형'. 사진=조선중앙통신 캡처

이처럼 북한 김정은이 핵·미사일 도발을 ‘최고 존엄’ 수준으로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첫째, 정권유지를 위해서다. 체제 붕괴 위험을 우려하는 북한 정권으로서는 생존 문제와 직결된 ‘대외 안보 이슈’가 주민 결속을 위한 확실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기 전 김정은에게 ‘핵·미사일만이 정권 유지를 위한 유일한 해답’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미국과의 협상에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간 이란 핵문제에 집중하면서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고수했다. 일각에서는 ‘인내’가 아니라 ‘방기(放棄)’였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선언했고, 일부 강경파들은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및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의 완성이 임박한 상황에서 선제타격의 필요성까지 제기한다.
 
셋째,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다. 북한은 NPT(핵확산방지조약)를 탈퇴하면서 핵무기 개발 의지를 가시화했다. 핵실험을 5차례나 실시하면서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려 한다. 그런데 핵을 운송할 가장 확실한 수단이 바로 미사일이다. 특히 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은 잠수함의 특성상 탐지가 어렵고 방어체계 대응시간이 짧아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공격무기로 꼽힌다.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와 함께 다양한 미사일 기술개발을 통해 핵무기 위협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는 점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넷째, 미사일의 경제적 가치 때문이다. 미사일은 외화 획득이 큰 자산이다. 현재 탄도미사일은 세계 약 39개국 이상이 비대칭 전략의 일환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들 미사일의 상당 부분이 중국, 러시아, 북한을 통해 공급됐다. 북한은 1980년대 중반부터 탄도미사일 확산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87년부터 2009년까지 수출된 1190여기의 탄도미사일 중 40% 이상이 북한산(産)이다.
북한은 이란, 파키스탄, 시리아, 이라크 등 여러 국가에 탄도미사일을 수백 기 이상 판매했거나 이들 나라와 ‘미사일 공동개발’ 형식으로 미사일 기술을 수출해왔다. ‘스커드 미사일’ 계열에 해당하는 ‘북한 화성 6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미사일계의 베스트셀러다. 이처럼 북한은 미사일 수출을 통해 축적한 경제적 이익을 토대로 2009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유엔의 강력한 대북(對北)제재에도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다(《한반도에 사드를 끌어들인 북한 미사일(최현수·최진환·이경행 공동집필)》참고).

 
한미(韓美) 군 당국은 29일 발사된 북한 탄도미사일을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계열 중 하나로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화성-12형’ 탄도미사일 또는 사거리 3000~5000㎞인 ‘무수단 미사일’로 보고 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닷새째였던 5월 14일 신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같은 달 22일에는 사거리 2000㎞로 추정되는 ‘북극성-2(KN-15)’ 탄도미사일을, 같은 달 27일에는 신형 지대공 요격미사일(KN-06추정)을, 같은 달 29일에는 스커드 계열로 추정되는 또 다른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어 6월 8일에는 지대함 순항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수발을 쏘았고, 7월에는 4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ICBM급 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했다.
 
북의 잇따른 도발에 대해 군사 전문가들은 핵·미사일 협상에서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이른바 북한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의 대표 사례이자 한국과의 대결에서 군사적 우위를 부각시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속셈이 깔려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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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5일 미국의 '38노스'가 공개한 북한 평안북도 방현비행장 일대. 아래쪽 동그라미는 지난 7월 4일 ICBM이 발사된 곳이다. 사진=조선DB

그렇다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됐을까.
 
핵(核)과 미사일에 대한 북한의 열망은 6·25전쟁 휴전을 전후로 시작됐다. 북한은 1952년 국방과학 연구기관인 ‘정밀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신무기 개발을 위한 각종 연구소들을 차례로 세웠다. 1955년 핵물리학 연구소를 만들며 핵무기 연구에 들어갔고 이송수단으로서 탄도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다. 1950년대부터 북한이 신무기 개발에 적극 노력한 데는 구(舊) 소련의 엄격한 무기 기술통제가 크게 작용했다. 독자적인 무기개발 필요성을 절감한 김일성은 ‘국방에서의 자위’ 우선 원칙을 천명하고,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1960년대 초 북한은 중국의 107㎜ 다연장 로켓발사대를 처음 생산했다. 1962년 들어 미국의 U-2 정찰기를 격추해 유명해진 ‘SA-2’ 지대공 미사일을 소련에게서 어렵게 도입한 후 1967년 스틱스(Styx) 함대함 미사일과 샘릿(Samlet) 미사일도 들여왔다. 1970년대 초에는 중국이 소련의 스틱스를 도입해 역설계한 실크웜(Silkworm)을 중국으로부터 도입하는 데 성공한다.
 
1975년 김일성은 중국을 직접 방문해 탄도미사일 제작 기술 전수를 요청, 이듬해 중국의 ‘DF(東風)-61’ 미사일 개발에 참여한다. 그런데 문화대혁명 등 중국 내부 문제로 DF-61 개발 계획이 중단되자, 북한은 1978년 중동국가로 눈을 돌렸다. 물론 일부 북한 기술진은 중국에 그대로 남아 미사일 유도장치 기술 등 탄도미사일 기술을 계속 습득했다.
북한은 오랫동안 우호적 관계를 맺어온 이집트로부터 1981년 스커드(Scud)-B형 미사일 2기와 발사대(TEL)를 도입했다. 이어 스커드 미사일의 역설계를 통해 기술력을 습득, 마침내 1984년 스커드-B 복제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화성 5호’ 제작에 성공했다. 이 미사일은 이듬해 초도생산을 시작했고 1987년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갔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1985년 이란과 맺은 ‘탄도미사일 개발협정’이었다. 이란으로부터 엄청난 금전적 지원이 북한으로 들어왔고 북한은 이를 통해 스커드-C형인 ‘화성 6호’ 개발에 성공했다. 스커드-C형은 스커드-B형의 탄두 중량을 985㎏에서 700㎏으로 줄여 사거리를 300㎞에서 500㎞로 늘린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다.
 
북한은 스커드-B형과 C형 미사일 개발에 성공하면서 탄도미사일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마침내 북한은 자체 개발한 스커드-B·C형 미사일을 이란은 물론 시리아, 리비아, 이집트 등에 수출했다. 스커드-B형과 C형의 성공에 고무된 북한은 곧이어 2단 추진 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다. 때마침 구소련의 붕괴는 북한 탄도미사일 기술을 급속도로 진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1991년 북한은 소련 붕괴로 졸지에 실업자가 된 구소련의 탄도미사일 로켓 기술자와 핵 관련 기술자들을 대거 북한으로 데려왔다. 이를 통해 북한은 핵과 탄도미사일에 대한 방대하고도 핵심적인 자료와 기술력을 확보하게 된다. 이들의 도움으로 1단 액체 추진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북한은 1993년 5월 31일 동해상으로 ‘노동 1호’ 1단 추진체 발사시험을 감행했다. 노동 1호는 길이 16m, 직경 1.35m, 탄두중량 1000㎏, 사거리 1300㎞의 준(準)중거리 탄도미사일(MRBM)이다. 이 무렵 북한은 스커드-B형과 C형의 사거리 3배에 이르는 미사일을 갖게 됐다.
 
현재 북한이 보유 중인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은 MRBM(사거리 1000~2500㎞의 노동미사일), IRBM(사거리 2500~5500㎞의 무수단 및 북극성 미사일), ICBM(사거리 5500㎞ 이상의 대포동 미사일)로 나눌 수 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는 1998년 8월 사실상 처음 실시됐다. 당시 북한은 ‘광명성 1호’라는 인공위성을 발사했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는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1호’였다. 전체 길이 25m, 직경 1.8m, 탄두중량 1000㎏로 추정되는 3단 추진 발사체로, 중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기술을 응용해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2009년 4월 들어 대포동 2호(광명성 2호)를 발사했다. 대포동 2호는 액체 추진제(推進劑)를 사용하는 3단형 로켓으로 길이 32m, 직경 2.2m, 탄두중량 700~1000㎏, 사거리 6700㎞ 이상의 ICBM급으로 발전했다. 대포동 2호의 1단 추진제는 노동 1호의 1단 추진제 4개를 묶어 사거리를 증대시킨 ‘클러스터링’ 기술을 최초로 사용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보조엔진도 사용했다.
 
2012년 4월 13일, 북한은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세 번째 대포동급 미사일을 발사했다. 당시 북한은, 자체 개발한 인공위성 ‘광명성 3호’를 발사체 ‘은하 3호’에 실어 우주에 보냈다는 식으로 외부에 알렸다. 그러나 ‘은하 3호’는 발사 후 약 135초 만에 1·2단 추진체가 공중 폭발해 해상 추락했다.
북한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같은 해 12월 12일 같은 장소에서 ‘은하 3호’를 다시 발사해 성공했다. 발사 10여분 만에 목표 궤도에 정상적으로 진입한 것이다. 드디어 ICBM급 미사일 보유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4년 뒤 2016년 2월 7일, 북한은 동창리 발사장에서 ‘광명성 4호’를 쐈다. 2012년 당시의 ‘은하 3호’와 거의 동일한 로켓으로, 동일한 발사방향과 궤도로 날아가 대기권을 벗어났고 이후 목표했던 위성궤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북한은 광명성 4호의 1단 추진체가 분리되면 곧바로 폭발하도록 시한폭탄을 장착했다. 우리 정보당국이 추진체를 통한 정보 수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수십 년 동안 북한은 ICBM뿐 아니라 다양한 미사일 시험발사를 지속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술력과 경험이 축적됐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고각 발사’도 성공했다. 2016년 6월 22일 시험 발사된 무수단 미사일은 정점 고도 약 1000㎞까지 올라갔다가 사거리 400㎞의 동해상에 떨어진, 첫 번째 고각 발사 성공 사례다. 두 달 뒤인 8월 24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1호’ 역시 정점 고도 500㎞, 사거리 500㎞를 기록한 고각 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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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함경남도 신포항 부근 해역에서 시험발사된 북한 SLBM 북극성-1호 발사 장면. 사진=조선중앙통신

 북한의 탄도미사일 중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전략무기는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이다. 북한은 2015년부터 SLBM 개발에 집중해왔다.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SLBM은 탐지와 요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넓은 바다 밑을 오가는 잠수함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의 대함(對艦) 탄도미사일은 우리 해군 이지스함의 탄도미사일 공격과 함대지(艦對地) 미사일 공격을 방해하고, 전쟁 발생 시 증원되는 미국의 항공모함을 파괴하기 위한 전력으로 활용된다. 북한은 소규모 초계정에도 대함(對艦) 탄도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미국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은 용도에 따른, 다양한 사거리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단거리 미사일(SRBM)은 한국을,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은 미국과 일본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17년 들어 13차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9차례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북한의 최종 목표는 ‘핵탄두’ 탑재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핵전략 및 협상에서 ‘엄청난’ 카드를 쥐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끊임없이 가하고 있다.
 
요컨대 북한이 끊임없이 탄도미사일을 개발해온 ‘속셈’은 ‘핵(核) 탑재 ICBM’을 통해 한국과 미국을 협박하면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야욕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글=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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