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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히타이트인들은 '천(千)의 신'을 모신 민족이었다?

-신을 모시려면 '청결과 순결'이 전제 조건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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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햇볕은 더욱 강해졌고 온 몸은 땀으로 젖었다. 하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기원전 1700-1200년의 히타이트(Hittite)문명과의 '황홀한 만남'을 위해 달려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야질리카야(YAZILIKAYA)-히타이트의 수도였던 하투샤(Hattusha)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글씨가 쓰인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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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 터키인들-

모든 지명에는 이유가 있는 법. 야질리카야(YAZILIKAYA)의 어원은 터키말로 '글씨가 쓰인 바위'라는 뜻이란다. '글씨가 쓰인 바위'의 유적지에는 폭염 탓인지 관광객이 거의 없는 상황. 마침 터키인 가족 세 명이 숨을 몰아쉬며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관광객이 반가운지, 기념품을 팔려는 현지인의 호객행위가 태양처럼 강렬했다.
 
돌계단을 따라 오르자 나지막한 바위산이 나왔다. 바위산 입구에 서있는 소나무 사촌 같은 키 큰 나무 두 그루가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었다. 척박한 돌산에서도 하늘을 찌르며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기개가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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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질라카야 신전의 입구

역사학자들은 이곳을 신전으로 통했던 길로서 매년 신년 축제와 봄맞이 축제를 벌이려고 모였던 '풍우신의 집'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유적지도 1834년 프랑스의 '샤를르 텍시'가 발견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하늘이 보인 두 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는 '풍우신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작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바위에 새겨진 희미한 부조물과 상형문자들이 나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바윗돌로 보였으나 히타이트인(人)들의 숨결이 서린듯했다.

'풍우신'과 '태양의 여신'의 만남
 
중앙의 1번 석실에는 이 신전에서 가장 중요하고 지위가 높은 신들의 부조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외국어대 발칸어학과 교수 겸 학장인 유재원 박사의 저서<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을 통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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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최고의 신과 아내, 가족들의 부조

<맨 왼편에 허리에 칼을 차고 두 산봉우리에 발을 딛고 있는 신은 히타이트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숭배했던 폭풍우의 신 쿠마르비(Kumarbi)로 추정된다. 그 앞에 두 명의 산신을 밟고 서 있는 신은 히타이트 최고의 신 '풍우의 신' 테슙(Teshup)이다. 그는 모든 기후현상을 지배하는 무서운 신이다.>
 
고대인들도 자연 앞에서는 쩔쩔맸던 모양이다. 히타이트인들은 기후현상을 지배하는 풍우의 신 '테슙'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부부의 만남-'
 
<풍우의 신을 마주보는 신은 테슙의 부인인 '태양의 여신' 헤바트(Hebat)다. 블라우스에 주름치마를 입고 있는 이 여신은 표범의 등을 밟고 서 있는데, 그 표범은 다시 네 개의 산봉우리를 밟고 있다...헤바트 여신 뒤에서 표범을 밟고 있는 남자 신은 그들의 아들 '샤롬마(Sharrumma)'이고, 샤롬마의 여동생 알란주(Alanzu)와 딸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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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2m의 바위에 새겨진 중앙 신들의 행열

신의 아들과 딸 그리고, 손녀딸인 셈이다. 이 외에도 많은 부조물이 있었으나. 수 천 년 동안 풍우에 시달린 탓에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었다. 자료에 의하면 신들의 행렬은 지하수의 신, 달의 신, 태양신, 전쟁의 신 등으로 나와 있다. 높이 2m의 바위에 새겨진 신들도 많은 사연을 안고 있었다.
 
상태가 양호한 12 지하 신(神)들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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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의 12신 행렬

오른 쪽 작은 방에는 비교적 또렷하게 보이는 부조물이 있었다. 하게의 12신이다. 이 부조물의 상태가 양호한 것은 큰 방의 신들과 달리 오랜 세월 땅 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이란다. 12신들은 어깨에 반달형 칼을 메고, 머리에는 신(神)을 상징하는 원추형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어서, 수호신 사루마의 품에 안긴 '투르할리아 4세(B. C 1236-1215)'와 방을 지키는 '칼의 신'은 그나마 형체를 알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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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할리아 4세(좌), 방을 지키는 칼의 신(우)

독일의 '비르기트 브란다우·하르트무트 쉬케르트(장혜경 역)'는 저서 <히타이트>에서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오, 풍우신 자팔란다여! 많이 드셔서 배고픔을 달래시고 많이 마셔서 만족을 얻으십시오!"
 
<이런 일상적인 욕구 해결 외에도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마다 히타이트인들은 신에게 술과 음식물을 바쳤다. 특히, 해마다 처음 추수한 곡식과 처음 태어난 짐승은 신의 것이었다. 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 나라에서 나온 모든 것을 신에게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의 건강을 위해 포도주·맥주·빵·치즈 같은 고급 음식들을 바쳤고, 값비싼 옷과 보석을 바쳤다.>
 
신을 모시려면 청결과 순결이 우선
 
히타이트인들은 신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이나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 우선시 되는 것을 '청결과 순결'을 중요시했다. '불결한 것과 접촉한 사람은 몸을 깨끗이 씻어야 했고, 성관계를 가진 사람은 정해진 청결의식을 거치지 않고서는 신의 앞에 설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원전 1700-1200년 전에도 인간의 생활 중에서 '청결과 순결'이 중시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아무튼, 히타이트인(人)들은 신(神)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도시를 정복하고 나면 그곳에 있는 신상(神像)을 송두리째 싸들고 돌아가서 자신들의 신전에 차곡차곡 모셨다'고 한다.
 
다시 '비르기트 브란다우·하르트무트 쉬케르트(장혜경 역)'는 저서 <히타이트>에 들어가 본다.
 
<히타이트인(人)들은 중세 기독교인들과 달리 몇 개의 뼛조각이나 루르드(피레네 산맥 북쪽에 있는 성지)에서 떠온 성수 한 병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일단 도시를 정복하고 나면 그곳에 있는 신상을 몽땅 싸들고 돌아가서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 자신들의 신전에 차곡차곡 모셔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천의 신을 모시는 민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고, 실제로 그들이 모셨던 신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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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질리카야 신전 입구의 나무-
터키 전문가인 유재원 박사는 저서<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에서 "히티이트인들이 야질리카야 같은 성역을 만든 것도 종교적 혼란을 줄이고, 자신들이 집중적으로 모시는 신들을 한데 모아 보다 진지하게 예배하려는 시도였는지 모른다"고 했다. 소위 신들의 집중관리를 위해서 성역화한 셈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약(懦弱)한 인간은 신(神)에 의존하면서 살고 있다. 물론, 인간의 힘으로 커버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의 전지전능함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행(善行)을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필자는 고대 히타이트인들이 신과의 만남에서 원칙으로 내세웠던 '청결과 순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직과 원칙을 지키면서 성실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키 큰 나무와 '글씨가 쓰인 바위'들에게 작별을 고(告)했다.
 
'기회가 된다면 보다 더 공부해서 다시 한 번 방문하리라!'
 
✪참고 문헌:유재원 박사의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비르기트 브란다우·하르트무트 쉬케르트(장혜경 역)'의 <히타이트>/이희철의 <히타이트, 점토판 속으로 사라졌던 인류의 역사>

입력 : 201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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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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