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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1. 칼럼

살아있는 영혼, 터키의 국부(國父) '아타튀르크'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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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볕이 '뜨겁다'는 것 보다는 '태양이 이글거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여름날이었다. 앙카라의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한 터키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파샤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 5. 19-1938. 11. 10)'의 묘지가 있는 추도원 '아느트카비르(Anıtkabir)'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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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튀르크 추도원의 입구-학자, 농부, 학생을 상징한 동상이 인상적이다.

추도원의 입구 양 편에는 학자·농부·학생을 상징하는 동상과 '아타튀르크'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인들의 하얀 동상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넓고 긴 도로에는 근엄한 표정의 사자(像) 24마리가 편을 갈라 좌정하고 있었고, 화단의 장미꽃들도 열정의 화신처럼 진홍색(crimson)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늘 높이 솟아있는 터키 깃발을 목표로 긴 걸음을 이어가자 좌측 편에 고대의 신전 같은 웅장한 건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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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전같은 아타튀르크 추도원의 외관

건물입구에 조각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는 무표정한 군인들 또한 볼거리였다. 한 짓궂은 터키 청년이 병사 옆에 서서 인증 샷을 찰칵! 그러나 그 병사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추도원 입구 벽에는 아타튀르크가 명연설가였던 까닭인지, 그의 연설문이 크게 새겨져 있었다.
 
"터키인들이여! 꿈을 가지라!"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그의 영묘가 있었다. 묘지 앞에는 꽃으로 장식된 터키 국기가 있었다. 날마다 바뀌는 생화(生花)란다.
 
군인이자 혁명가였고, 정치가였던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파샤 아타튀르크'-그가 사망한지 올해로 77년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터키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 쉼 쉬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현실주의적 통치자이자 계몽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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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의 묘지
필자는 그의 묘지 앞에서 준비해간 책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영국인이면서 이스탄불 출생인 관계로 운명적으로 터키 전문가가 된 영국의 방송사(BBC) 출신 작가 '앤드류 망고(Andrew Mango)'가 쓴 '아타튀르크의 전기'(곽영완 譯)다. 전기에는 1918년 3월 18일 오스만 제국의 군인으로서 마지막 전쟁을 벌이던 '아타튀르크'가 '루센 에슈레프' 기자에게 자신의 사진과 함께 건네준 글이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지금은 어두운 밤이지만, 나는 우리가 빛을 향해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내 확신은 내 나라와 국민들에 대한 나의 무한한 애정뿐 아니라, 내 눈앞에 있는 젊은 병사들- 즉, 나라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지금과 같은 어둠과 패악과 협잡이 판을 치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려고 노력하는 젊은이들로 인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짧은 문장이지만, 글 속에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새로운 '희망의 빛'을 찾아가려는 젊은 혁명가의 불타는 의지가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앤드류 망고'는 또한 "아타튀르크는 뛰어난 지휘관이었고, 예리한 정치인이었으며, 현실주의적 통치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몽주의자였다. 계몽주의는 성인(聖人)이 아닌 사람(人)만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개혁가이자 청렴한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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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튀르크 군인시절의 모습(그림)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1923년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초대 대통령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한 기간은 15년.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15년이 너무 짧았다. 일부 반대파들은 그를 독재자라고도 했다. 암살의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아타튀르크'는 비판자들과의 투쟁을 '빛과 어둠의 싸움'으로 생각했고, 과감하게 자신의 개혁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에 의해서 터키는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던 것이다.
 
그는 부패의 온상이었던 황실을 폐지했고 일부다처제를 없앴으며,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법과 질서를 위해 행정·입법·교육 시스템을 개조했고, 헌법 개정을 통해 이슬람의 최고 통치자 제도인 칼리프(Caliph)를 폐지했으며,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새로운 체계를 세웠다. 또한, 오스만 튀르크의 터키어를 로마자로 만들어 문맹률을 낮췄다.
 
그러한 그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과도한 음주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아타튀르크'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고서 유서를 작성했다. 1938년 9월 5일에 작성한 유서는 의외로 간단했다.
 
"모든 재산은 인민당에 기증할 것이며,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여동생 '막볼레'와 다섯 명의 딸(양녀)들에게 적당한 생활비를 기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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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에서 일하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밀랍 인형

참으로 욕심이 없는 청렴한 유서다. 그는 유서를 남긴 두 달 후인 1938년 11월 8일. 아타튀르크는 "모두에게 평화를..."이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고, 11월 10일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5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시각은 오전 9시 5분.
 
멈춰버린 시간 오전 9시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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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망한 오전 9시 5분에 멈춰있는 시계-
'돌마바흐체' 궁전이나 추도원에는 오전 9시 5분에 멈춰선 시계가 있다.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그가 없는 이 후의 시간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존재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아타튀르크는 세속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상호 존중을 통해 동서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또 민족주의와 평화는 양립할 수 있으며, 인간의 이성만이 인생을 가치 있게 해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앤드류 망고'의 전기에 들어 있는 이 한 부분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이성이 곧 인생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의 유해는 11월 20일 앙카라에 도착했고, 다음 날 터키 최초의 국장(國葬)이 치러졌다. 그리고, 국민적 합의에 의해서 '아타튀르크'- '투르크인의 아버지'라는 명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그 당시 일부에서 주장하는 강대국들의 신탁통치를 물리치고 자력으로 '독립적인 국가건설'이라는 대명제를 수행했던 그에게 터키 국민들은 '건국의 아버지'라는 명예를 선사했던 것이다.
 
터키 국민 75%가 아직도 그를 지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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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날인데도 '아타튀르크의 추도원'을 찾는 터키인들-그의 사망일에는 100만 명이 넘는 추모객이 모이기도 한다.

'아타튀르크'의 동상과 사진은 터키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만큼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아직도 '터키 국민 75%가 그를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고, 그의 영혼에 대한 지지도(支持度)이다. 얼마나 값지고 의미 있는 지지인가.
 
터키의 제2대 대통령으로 '아타튀르크'의 친구이자 협력자였던 '이스메트 이뇌뉘(1884-1973)'가 선출됐다. 그에게도 '국민의 지도자'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그의 묘지는 '아타튀르크' 묘지의 반대편에 있으나, 성대하게 조성된 기념관이 아니라 외부에 노출돼 있다. 누군가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누구의 묘인지도 알 수가 없을 정도다.
 
"무스타파 케말 파샤 아타튀르크- 우리의 세종대왕과 김구 선생,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합한 인물이라고 하면 지나친 칭송일까요?"
 
10년 째 터키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행자 이진관(54)씨의 말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 때문이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태양의 에너지가 강해졌으나 무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계속).

입력 : 201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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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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