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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여기 한국에서 헌신한 토이기 용사 묘로부터 옮겨온 흙이 있노라."

-용맹스런 토이기 용사들, 한 줌의 흙이 되다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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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 없이 계속된 3일간의 전투 결과는 경악 그 자체였습니다. 터키 여단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중공군 2개 연대를 일거에 궤멸시키며, '김량장(용인)'과 151고지를 점령했습니다. 터키군은 12명 전사, 30명 부상을 당한 반면 중공군은 1735명이 사살됐습니다. 이 용맹한 전투 장면이 UPI 종군기자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터키군은 '백병전의 왕자' '신의 손(God Hand)'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언론인 김용삼(전 월간조선 편집장)씨의 말이다. 그는 "터키군은 6·25 당시 사상자가 3000여 명에 달할 만큼 아주 용감하게 싸웠으며, 한국과 터키를 '형제의 나라'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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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한국공원에 있는 석가탑 모양의 기념탑
<터키(Turkey)는 1950년 6·25가 발발하자 그해 9월 25일에서 1953년 7월 27일까지 1만 4,936명을 우리나라에 파병했다. 그리고, 그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한국전에서 사망한 전사자는 765명. 행방불명된 군인도 175명에 이르며, 부상자가 2,147명이었다. 이들 중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부산의 유엔묘지에 잠들어 있는 전사자도 462명이나 된다.
 
1973년 터키의 앙카라(Ankara)시에 한국공원이 조성됐고, 1974년 경기도 용인에 터키군 참전비가 건립됐다.> 

필자는 터키 역사 탐방 길에 앙카라 시내에 있는 한국공원(코레 파르크)을 찾았다. 공원의 중앙에 서 있는 높은 석탑이 눈에 들어왔다.
 
 
터키 공화국 제50주년을 기해 한국공원 만들어
 
공원 입구에서부터 한국과 터키의 우호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공원 팬스(fence)에 태극기와 터키국기의 문양이 조화롭게 이웃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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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에 있는 한국 공원의 팬스(fence)

탑의 아래에 한국어(한글)와 터키어로 '터키 한국전쟁 기념탑'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그 기념탑에는 작은 글씨로 한국전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이름, 생년월일, 전사한 날짜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이가 대체로 20세·21세·22세였고 10대 후반의 용사들도 있었다. 순간, 젊은 시절 자주 들었던 군가가 떠올랐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사라져간 전우야 잘자라"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태양 볕이 뜨겁다는 것을 불평할 수도 없었다. 한국군, 터키군 불문하고 그들의 죽음에 비하면 뜨거운 햇볕쯤은 고통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터키의 젊은 청년들이 낯선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던졌다'는 사실이 다시금 감동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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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에서 전사한 터키 용사들의 명단

필자가 정신을 가다듬고 돌계단을 오르자, 석탑 기둥에 '탑의 건립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었다.

<이탑은 토이기(土耳其)군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한국전에 참전,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다. 앙카라 시(市)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서 세워지게 된 탑은, 토이기 공화국 제50주년기념일을 기하여 한국 정부가 토이기 국민에게 헌납하다. 1973.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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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건립 목적을 명시한 글- 터키어(좌), 한글(우)

한국의 묘지에서 옮겨온 흙에 고개 숙이다
 
지금으로부터 42년 전의 일이다. 터키 공화국이 1923년에 세워졌으니 '이 나라 건국 50주년을 기해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탑의 중앙에 이르렀다. 탑 아래 작은 석곽(石槨)에는 가슴 뭉클한 글이 아로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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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묘지에서 가져온 흙이 봉안된 석곽

"여기 한국에서 헌신한 토이기 용사 묘로부터 옮겨온 흙이 있노라."
 
짤막한 문장 하나가 또 한번 필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필자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동안 묵념을 했다. 비록 한줌의 흙이지만, 고인(故人)들의 명복을 빌었다.
 
'흙은 생명의 어머니이며 고향이다'고 했던가.  터키 용사들이 흙이 되어 어머니의 품을 찾은 것이다.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평화를 저해하는 모든 세력들을 배격해야 한다. 그래야 터키 용사들의 죽음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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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한국공원에서 꽃을 피운 무궁화
앙카라 한국 공원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무궁화나무·은행나무 등이 잘 자라고 있었다.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일까. 무궁화나무는 온몸이 익어버릴 것 같은 뙤약볕 아래서도 예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의 꽃말은 '일편단심' '은근' '끈기'다.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잘 내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점에서 우리의 민족성을 닮았다고 한다. 이국만리(異國萬里) 터키 땅에서 무궁화 꽃을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
 
'칸카르데시!'
 
터키인들은 우리를 '칸카르데시(피를 나눈형제)'라고 한다. 우리도 그들에게 상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서울의 여의도에도 앙카라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1971년 8월 23일 서울특별시와 앙카라 시 간에 맺은 자매결연을 기념하기 위해 1977년 5월 1일 문을 열었다. 한국과 터키의 우호증진의 상징이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계속)
 

입력 : 201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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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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