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당구 여제 차유람, 국민의힘 영입.... 차유람은 누구?

남편 이지성이 작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밝힌 부부 이야기

[편집자주] 국민의힘이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외연 확장을 위해 당구 선수 차유람씨를 영입했다. 차씨는 13일 국민의힘에 입당해 6·1 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문화체육특보로 활동하며 향후 지방선거 유세 지원과 홍보에 나선다.

차씨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으며 2011년 세계 9볼 베이징오픈 여자부 우승, 2012년 대만 여자프로 선수권 3차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 작가 이지성 씨와 결혼한 후 육아로 인한 4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뒤 2019년 3쿠션 종목 여자 프로 당구로 전향했다

차씨는 지난 2015년 작가 이지성씨와 결혼 후 육아로 4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뒤 3쿠션 종목 여자 프로 당구로 전향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30대 워킹맘이기도 하다.

<월간조선>은 일찌감치 차씨와 남편 이지성씨를 주목해왔다. 작년 11월호 <월간조선>에 실린 이지성씨 인터뷰를 다시 소개한다.
이지성씨가 지난 2017년 학교 짓기 기부금 전달식에서 부인 차유람 전 당구 국가대표와 함께 한 사진. 사진=이지성 제공

인터뷰

미국 주식투자서 펴낸 출판계의 아웃사이더 이지성 작가

“개미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투자하기에는 미국 주식이 낫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ASML, 구글, 애플 추천… 결국은 반도체”
⊙ 《리딩으로 리드하라》 등 500만 부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 출판계선 左派와 싸워온 ‘아웃사이더’
⊙ “文 정부 들어선 후 ‘내 나라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 들어 목소리 내기 시작”
⊙ “大魚를 낚으려 들지 말자. 물가에서 조개만 주워 팔아도 넉넉하게 살 수 있다”
⊙ “쌍용차 집회 참여 거절했더니, ‘대필 작가 있다더라’는 등 온갖 공격”
 
사진=이지성 제공
  최근 서점에 갔더니 베스트셀러 가판대에 《미래의 부》라는 책이 보였다. 훑어보니 투자 얘기다. 한 줄로 요약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 노후(老後)를 준비하려면 미국 우량주(優良株)에 투자하라’는 내용이다. 저자 이름이 익숙했다. 이지성(47). 한때 ‘인문학 전도사’로 이름 날렸던 그가 왜 주식 책을 냈는지 궁금했다. 생각해보니 더 궁금한 게 있었다. 한동안 ‘새뜻한 지식인’ 이미지였던 스타작가에게 언젠가부터 따라붙은 ‘보수 꼴통’이라는 꼬리표의 내막이다. 지난 10월 7일 그를 만나봤다. 파주 출판단지에서다. ‘돈 버는 방법’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출판계 비화(祕話)에서 나아가 원대한 사명(使命)으로까지 이어졌다.
 
  ― 주식 투자는 언제부터 한 겁니까.
 
  “비상장(非上場) 스타트업 투자는 12년 전부터 했었어요. 그 무렵 창업도 했었는데, 싹 다 말아먹었죠. 역시 부동산이 최고인가 싶어서 2017년쯤 강남에 집을 사려고 보니 너무 올랐더군요. 명색이 베스트셀러 작가고 인세(印稅)만 해도 꽤 벌었는데 말이에요. 제 위치를 찬찬히 따져봤습니다. 출판시장 불황에다 화폐가치도 폭락한 상태. 여기서 만일 내 아이가 나중에 미국 유학이라도 가겠다고 하면 밀어줄 수가 없겠구나. 주식을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워런 버핏 책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지난날 스타트업에 투자했던 방식이 굉장히 위험했다는 걸 알았어요. 미국 우량주가 답이라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그때 투자 철학도 세웠고요.”
 
 
  “마음 빼앗기면 실패한 투자”
 
  ― 투자 철학이 뭡니까.
 
  “아내와 아이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는 투자는 하지 말자. 투자라는 건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요. 그런데 하다 보면 영혼까지 갖다 바치는 경우가 있어요. 마이너스 통장 쓰고 하루 종일 주가 창만 보며 전전긍긍하는 거죠. 이러면 주식으로 100억을 벌든 행복할까요. 마음을 빼앗기면 실패한 투자예요.”
 
  ― 우량주가 안전한 투자처인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자꾸 옆길로 샙니다. 왜 그럴까요.
 
  “착각, 혹은 함정에 빠져서죠. 한방에 수십억을 벌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저도 그랬어요. 뭔가 멋있게 시장에 참여해서 어떤 재주도 부려보고 싶고, 까불어도 보고 싶잖아요. 그런데 주식시장에서 그렇게 떼돈을 버는 건 나와 별개인 세상이더군요. 다른 객체가 주도해나가는 세상인 걸 깨달았어요. 시장 앞에서 나는 정말 무능(無能)하고, 아무것도 못 하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데 한 몇 년 걸렸죠.”
 
 

  ― 그런데 왜 미국 우량주가 답이죠. 한국에도 우량주가 있는데요.
 
  “저도 삼성전자, 네이버 같은 주식도 하긴 합니다만, 80% 정도가 미국 주식입니다. 주변에 3000억~5000억원을 굴리는 슈퍼개미들이 몇몇 있어요. 주식 공부를 기초부터 다시 한다고 했더니, ‘한국 주식은 하지 마라’고 하더군요. 이 시장에서 본인 같은 큰손들을 이길 수 있겠느냐고요. 물론 저도 한국 기업은 인정합니다. 대단한 기업이 많죠. 하지만 주식시장은 회의적(懷疑的)으로 봐요.”
 
  ― 미국 시장에도 세력은 있는데요.
 
  “시장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잖아요. 미국은 세계시장의 40%를 차지하는 반면 한국은 2%죠. 세력이 미치는 영향력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또한 120년의 역사가 우상향(右上向)을 말하고 있잖아요. 국내에는 꾸준히 우상향하는 기업이 거의 없고요. 요컨대 한국 시장은 피란처, 혹은 방공호가 없는 셈이죠.”
 
 
  ‘너 자신을 알라!’
 
이지성 작가의 신간 《미래의 부》. 4차 산업혁명 시대, 노후 준비를 위해서는 미국 우량주 투자가 답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차이정원 제공
  ― 슈퍼개미들은 의외로 한국 주식을 더 많이 하던데요. 미국 주식은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면서요.
 
  “슈퍼개미니까 그런 거예요. 큰돈을 굴리는 전업(專業)투자자고, 하루 종일 주식에만 몰두할 수 있다면 한국 장처럼 먹기 좋은 곳이 없죠. 하지만 본업이 따로 있는 저 같은 일반 개미들이 정기 적금 들듯 편하고 안전하게 투자하기에는 미국 주식이 낫다는 판단입니다.”
 
  ― 우량주라는 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합니까.
 
  “쉽게 생각해서 거울을 보면 돼요. 내 손에 뭐가 있나, 아이폰. 뭘 신었나, 나이키. 어딜 가고 있나, 스타벅스.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명품인 에르메스, 루이비통도 우량주고요. 좀 더 나아가면, 4차 산업혁명 시대잖아요. 이는 다른 말로 반도체 문명이죠. 반도체는 누가 만드나요. 기본적으로 삼성전자와 TSMC죠. 그 위에 반도체 장비 제조기업인 ASML이 있고요. 주식 공부는 초등학생처럼 쉽게 해야지, 어렵게 하는 순간 망하는 것 같아요. 워런 버핏이 콜라 좋아해서 코카콜라 주식 사듯이요.”
 
  ― 사람들은 우량 종목을 잘 알지만 항상 너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제2의 애플’을 찾길 원하죠.
 
  “소크라테스가 말했죠. 너 자신을 알라! 당신은 제2의 애플을 못 찾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1000만원을 받아서 불려줄 자신 있나요. 그런 실력도 없는데 제2의 애플을 어떻게 찾아요. 괜히 위험하게 물속으로 뛰어들어 대어(大魚)를 낚으려 들지 말자고요. 우리는 물가에서 조개만 주워 팔아도 넉넉하게 살 수 있어요. 주식 투자를 해보니 허공에 ‘뫼비우스의 띠’가 있더군요. 제2의 애플을 찾을 수 있다는 착각→손실→손절(損切)→또 다른 종목이 제2의 애플이 될 거라는 착각→손실→손절. 이 끝없는 굴레에서 뛰어내리면 우량주 장기 투자라는 안전한 길이 있습니다. 1930년생인 워런 버핏이 1919년 상장한 코카콜라 주식을 처음 산 게 1980년입니다. 50세가 넘어서 당시 최고점(最高點)인 상태에서 산 거죠. 애플을 처음 산 것도 2016년이었어요. 애플의 경우 1년 전에만 샀어도 저점(低點) 대비 고점 수익률이 약 47%입니다.”
 
 
  “결국은 반도체”
 
  ― 지수가 과거에 그랬듯 앞으로도 우상향할 거라는 근거는요.
 
  “120년 금융 역사상 큰 위기는 항상 있어 왔어요. 역사상 가장 큰 폭락이 1929년 대공황이죠. 차트를 보면 완전 수직 낙하예요. 그런데 회복했습니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을 겪고도 다시 올랐고요. 대공황 다음으로 큰 폭락이 2008년 리먼 사태죠. 리먼 사태 직전 지수가 당시 역사상 최고점이었는데도, 대폭락을 겪고도 전(前) 고점을 6년 만에 회복했어요. 저는 워런 버핏의 ‘주식은 시간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역사가 어떤 위기 속에서도 우상향을 그려왔다는 건 결국 시간의 관점에서 보는 거거든요. 만일 주가의 관점에서 보면 일희일비할 수도 있겠죠.”
 
  ― 앞서 뫼비우스의 띠에서 투자한 ‘잡주(雜株)’에 많이 물린 상태라면, 지금이라도 손절하고 우량주에 넣는 걸 추천합니까.
 
  “판단은 본인이 하는 거지만, 저라면 오늘이라도 처분하고 구글, 애플 같은 데 넣겠습니다. 잡주는 사실 투자라기보다 사이비 종교에 가깝잖아요. 돈 넣은 다음 물 떠 놓고 오르라고 빌잖아요. 그동안 낸 헌금이 얼만데, 하면서 못 빠져나오는 거죠. 당신의 교주(敎主)가 공중부양(空中浮揚)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빨리 인정하세요.”
 
  ― 여러 우량주 중 단 하나만 추천한다면요.
 
  “ASML요. 그리고 구글과 애플.”
 
  ― 찾아보니 작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ASML을 추천했던데요. 지금이야 투자자들에게 잘 알려졌지만 작년에는 생소한 기업이었죠.
 
  “《생각하는 인문학》(2015년, 인공지능과 인문학 이야기)을 쓰며 인공지능을 공부해보니 결국 반도체더라고요. 삼성전자, TSMC 같은 기업 이름이 쭉 나오다, ASML이라는 생소한 기업이 눈에 띄었어요. 주식 투자를 잘 안 하는 삼성전자가 주주(1.5%)로 들어가 있기에 유심히 살펴보니 알수록 놀라웠어요. 반도체 장비 제조기업인데, 삼성전자든, TSMC든 ASML의 장비가 없으면 반도체를 만들 수 없는 구조더군요. 그래서 방송에서 무조건 사라고 했죠. 그 후 지난 1년간 최대 150%까지 올랐어요(52주 가격 변동 폭 357.38~895.93달러). 최근 조정을 받아서 120% 정도고요.”
 
“株價 창 안 본다”

 
  ― 주가 창은 하루에 몇 번 정도 보나요.
 
  “안 봐요. 일주일 동안 안 볼 때도 있어요. 주변에서 ‘폭락이다’ 혹은 ‘호황이다’라는 소식이 들려오면 진짜 그런가 싶어서 한 번씩 열어봅니다. 떨어져 있으면 세일이다 생각하고 추가 매수하기도 하고요.”
 
  ― 그런데 자기계발서 위주로 쓰다가 갑자기 투자 책을 낸 이유는 뭡니까. (주식 얘기가 잘 팔리니) 물 들어올 때 노 저은 건가요.
 
  “문재인(文在寅) 정권 들어서고 경제가 ‘폭망’했죠. 2018년 어느 날 강남의 재력가(財力家)들을 만났더니 부자들이 한국을 다 떠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한 은행 부지점장을 만나서 물어봤어요. 진짜 그렇대요. 다들 달러를 막 사들이고 있다고요. 어떤 할아버지는 56억원을 달러로 환전(換錢)해 갔다 하더군요.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싶어 유튜브 방송에서 말했어요. 지금 달러 사시라고. 당시 환율이 1090원인가 그랬어요. 방송 이후 1300원까지 올랐어요. 원래 경제 얘기는 한 번도 안 했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그 말 듣고 달러 샀다가 수익을 낸 분도 많지만 늦게 매수해 손해를 본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게 마음에 걸려 좋은 주식 정보가 있으면 공유(共有)하자 생각하고 하나씩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죠. 그 내용을 묶어 쓴 게 《미래의 부》인 거고요.”
 
 
  출판계의 아웃사이더
 
현 정권 들어 처음으로 내 나라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그는 특히 김정은 맞이 환영단을 보면서 분개했다고 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11월 열린 ‘김정은 위원장 환영단 발족 기자회견’. 사진=조선DB
  그는 지금까지 40여 권의 책을 냈다. 총 누적 판매 부수는 약 500만 부다. 인터파크가 2001년부터 집계한 바에 따르면 이 작가의 책이 국내 작가 전체를 통틀어 두 번째로 많이 팔렸다(1위는 공지영). 대표작은 《꿈꾸는 다락방》(2007년, 270만 부), 《리딩으로 리드하라》(2011년, 70만 부), 《에이트》(2019년, 30만 부)다. 가장 최근 펴낸 《미래의 부》 또한 온라인 서점 ‘예스24’ 등에서 7월 마지막 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인세만 최소 65억원을 벌었다. 그야말로 ‘스타작가’다.
 
  그런 그에게 최근 일종의 오명(汚名)처럼 붙은 수식어가 있다. ‘보수 꼴통’이다. 자신의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방송을 통해 현 정권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면서다. ‘대깨문’ ‘재앙’과 같은 용어를 쓰는가 하면 ‘운동권은 매국노’라는 글도 썼다.
 
  ― 최근에 정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많이 내더군요. 원래 그러지 않았잖아요.
 
  “한때는 살아남으려 좌파적 발언도 했었어요. 우리나라 출판계는 98% 이상을 좌파가 장악하고 있거든요. 요즘으로 치면 ‘기본소득도 나름 의미가 있죠’라는 수준으로요. 저랑은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용히 거리를 두기로 했죠. 그런데 이 정권 들어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내 나라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당장 적화(赤化)가 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죠. 평화쇼·냉면쇼, 광화문 ‘김정은 맞이 환영단’을 보면서 ‘아, 이건 진짜 아니지 않나’ 싶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 표현이 다소 과격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그렇다고 제가 대한민국 헌법 질서를 벗어나지는 않잖아요. ‘김제동식 헌법’도 있는데요. 좌파들은 시원하게 김일성 찬양도 하잖아요?”
 
  ― 파주 출판도시에서 완전히 ‘공공의 적’이겠군요.
 
  “어마어마한 곳이죠. 파주 출판도시를 만든 사람들이 이해찬(李海瓚) 전 민주당 대표가 만든 출판사인 ‘돌베개’ 출신들이잖아요. ‘돌베개’가 운동권 출판사를 다 길렀고요. 이 사람들이 유시민 작가를 스타로 만들었고, 유 작가를 통해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을 스타로 만들었죠. 문재인 대통령의 《운명》도 30만 부나 팔렸잖아요. 책을 거의 뿌리다시피 해서 ‘노무현의 친구’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준 게 이 업계예요. 여기서 우파 책을 내면 망해요. 최근 보수 정치인들 책 낸 것 보면 1쇄도 안 팔렸어요.
 
  출판계가 무서운 점은, 책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영화, 드라마 작가들도 다 이곳에서 배출돼요. 북한군 미화(美化)가 왜 되겠어요. 일례로 영화 〈강철비〉에서 북한 1호역(役)을 잘생긴 정우성이 맡고 한국 측은 곽도원이 맡았죠. 이런 게 그냥 나온 구도가 아니라고요.”
 
 
  “‘우리는 혁명의 전사’… 이상하고 무서웠다”
 
  ― 출판계에 발 디딘 게 벌써 수년 전 아닙니까. 안 맞는 건 언제부터 느꼈나요.
 
  “처음부터 주류(主流)에는 끼지 못했어요. 대중에게는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이곳에서는 계속 아웃사이더였죠. 주류에 끼려면 충성을 보여야 하는데 그건 못 하겠더라고요.”
 
  ― 충성이라 함은.
 
  “언젠가 한 출판회 뒤풀이에 갔었어요. 작가를 비롯해 출판계 인사들이 술도 마시고 밥도 먹는 자리였죠. 그때 누군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이뤄야 한다’는 얘기를 꺼내더군요. 그때 옆에 있던 한 인사가 술병을 들고 일어나 그 사람 뺨을 때리더니 ‘우린 혁명의 전사(戰士)인데 무슨 소리냐. 그런 말은 개돼지 같은 대중이나 하는 말이다. 당연히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이뤄야 한다’며 ‘내 술 받아’라며 술을 따르더군요. 맞은 사람은 가만히 술을 받았고요. 이상하고 무서웠어요.
 
  그 밖에도 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어요. 공지영 작가가 《의자놀이》(2012년, 쌍용차 파업을 다룬 르포)를 쓸 때쯤이었죠. 누군가 ‘이지성 작가는 왜 그렇게 혼자 외롭게 있느냐’며 접근했는데, 듣고 보니 쌍용차 집회에 같이 나가자는 뜻이었어요. 거절했더니 하루아침에 천하의 몹쓸 인간이 되더군요. 공격도 들어오고요.”

  ― 공격?
 
  “괴롭히는 거죠. 출판도시에만 발행되는 간행물이 있어요. 한동안 거기 3분의 2가 저에 대한 비난으로 채워졌어요. 그땐 출판사 말단 직원까지 항상 저를 감시하는 듯 보였습니다. 코만 풀어도 구설에 올랐거든요. 한 진보 매체에서는 ‘이지성이 갑자기 뜬 데는 배후가 있다’는 의혹을 가지고 취재를 하기도 했죠. 제가 여동생만 있는데 ‘숨겨놓은 형이 있다’ ‘대필 작가가 따로 있다’는 루머도 돌았고요.”
 
  그 무렵. 출판계 ‘밖’에서 그는 섭외 1순위였다. 대기업 등에서 인문학 강의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독서 멘토’ 역할도 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이 작가의 방송 출연 영상을 담은 CD를 당시 막 경영 일선에 나선 정 부회장에게 건네며 ‘경영을 잘 하려면 이 사람을 만나보라’고 했다고 한다. 출판계의 반응만 달랐다. 유시민 작가는 그즈음 《어떻게 살 것인가》(2013년)에 ‘이지성은 지식인 사회에서 평가받지도 인정받지도 못한다’고 썼다.
 
  ― 유시민 작가를 사석(私席)에서 본 적이 있습니까.
 
  “아뇨. 10여 년 전쯤 그가 장관 그만두고 ‘돌베개’에서 책을 쓸 때였어요. 유 작가 측근이 그러더군요. ‘이분이 출판계로 돌아왔는데 대선배니까 가서 인사 한번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왜 그래야 하죠?’라고 잘라 말했어요. 인사하고 싶으면 직접 전화를 걸면 될 텐데요. 군대가 아니잖아요. 그 측근 혼자 추진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이 있고 나온 책에 저런 구절이 있더군요. 그땐 제가 가장 잘나가던 작가였고 지금은 판세가 완전히 바뀌었죠. 본인이 잘나간 뒤로는 저를 전혀 언급하지 않더군요.”
 
  ― 그런데 비판의 목소리를 너무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거 아닐까요.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짜깁기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죠.
 
  “저는 소설가가 아니에요. 창작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기계발서이기 때문에 인용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일일이 주석(註釋)을 단 것도 그래서죠. 다른 작가들은 이렇게까지 출처 표기를 하지 않아요. 제 책이 그렇다면 하버드대 교수들의 논문도 다 짜깁기 아니겠어요. 그게 사실이라면 저작권 소송을 당했겠죠.”
 
 
  15년 無名 생활, 출판사 100군데서 거절당해
 
  ― 트렌드에만 편승하는 작가라는 지적에 대해서는요.
 
  “《시크릿》이 대히트를 친 시기 비슷한 기조의 《꿈꾸는 다락방》이 나와 그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출간시기를 보면 제 책이 먼저 나왔어요. 인문학 열풍을 타고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냈다는 지적도 많이 하는데, 인과(因果)관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 만한 분은 알 겁니다. 최신간 《미래의 부》 또한 주식 열풍이 불어서 낸 책이라기보다, 앞서 언급한 배경이 있는 거고요. 대중은 지극히 지혜롭고 무서워요. 트렌드를 좇는 작가의 작품은 절대 베스트셀러 1위로 만들어주지 않아요.”
 
  ― 비판의 화살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입니까.
 
  “책에 관한 비판은 즐겁게 받아들여요. 무명(無名) 생활을 15년 가까이 했는데,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테러를 당해도 좋으니, 누가 관심을 좀 가져줬으면 좋겠다’고요. 출판사 100군데에서 거절당하고 간신히 책을 냈는데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거든요. 이 처절한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 얘기만 해줘도 기뻐요. ‘내가 살아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돌아보면 늘 아웃사이더였다. 전북 전주에서 초중고와 대학(전주교대 및 전북대 법대)을 다녔다. 강의를 듣는 날보다 도서관에서 책 보는 날이 더 많아 유령 취급을 받았다. 졸업 후엔 어찌어찌 교사가 됐다. 7년간 초등학교 교단에 섰다. 퇴근 후 돌아간 곳은 달동네 옥탑방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엔 수억원의 빚이 있었다. 동료 교사들이 멀리했다. ‘빚더미에 올라 있으니 괜히 말 섞지 말라’고 했다.
 
  책이 안식처였다. 3년간 2000권을 읽었고 150권을 필사했다. 아이들에게도 고전(古典)을 읽혔다. 주(週) 4일간 30분씩. ‘너무 어려운 것 아니냐’ ‘그냥 문제집을 풀게 하라’는 학부모 반발도 있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꼴찌반이 1년 만에 1등반이 됐다.
 
“右派는 문화가 뭔지 몰라”

 
  ―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앞으로 ‘꽃길’만 걸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왜 또 가시밭길을 가려 합니까.
 
  “다들 입을 다물면 결국 나라가 망하는 거 아니에요. 우파(右派)를 이끌어온 작가가 소수(少數)지만 있긴 해요. 그런데 다 윗세대고 다음 세대가 없어요. 2~3명만 있어도 이렇게까지 안 했을 거예요. 기울어진 운동장을 혼자서라도 조금씩 바로잡고 싶어요. 태어나서 고통을 겪은 적도 있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고 잘 먹고 잘살게 됐잖아요. 이 사회에 돌려줘야 할 게 있는 거잖아요. 예전에는 봉사활동으로 갚아야겠다 싶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그는 예전부터 저소득층 아동들을 위한 인문학 봉사활동과 저개발 국가 학교 짓기 프로젝트를 해왔다.
 
  ― 향후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좀 나아지리라 봅니까.
 
  “큰 희망 없어요. 우파는 ‘문화’가 뭔지를 몰라요. 단 한 번도 사상과 이념에 대해 진지했던 적이 없어요. 공부도 너무 안 하고요.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지도 않아요. 자기 출세만 따지죠. 좌파(左派)들은 ‘자기편’이 책을 내면 전국 도서관에 깔고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는 시장도 열어줘요. 여기서 더 충성하면 국회의원, 장관도 할 수 있어요. 지난 30년간 출세 문화를 단단히 구축해놨다고요. 우파는 어떤가요. 이문열·이인화 작가를 누가 지켜줬나요. 이러다가는 공멸(共滅)이잖아요. 왜 다 숨어 있나요.”
 
  ― 40대 남성으로, 문화계 인사로서,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길 바랍니까.
 
  “(보수) 단일 후보가 된다면 급한 상황에 선택하긴 하겠지만, 아무에게도 애정은 없어요. 무엇보다 보수우파 전직 대통령 둘을 4년 동안이나 감옥에서 빼내지도 못하는, 전투력 없는 이들이 이끄는 당(黨)에 회의감이 커요. 전직 대통령 둘도 못 지킨 이들이 국민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표를 던져야 하는 게 마치 싫은 사람과 강제로 결혼하는 기분입니다. 현실정치를 들여다보면 ‘아, 나는 그냥 문화 프로젝트를 해야겠다’ ‘문화로 국가의 본(本)을 세우자’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승만 학습 만화 기획 중
 
  그는 4000여 명의 탈북민을 구출한 ‘슈퍼맨 목사’와 함께 2018년부터 중국·태국·라오스 등지의 탈북민 구출 현장도 다니고 있다.
 
  ― 그 ‘문화 프로젝트’에 탈북민 구출 활동도 포함되는 겁니까.
 
  “출판계는 작가를 스타로 만든 다음, 사상을 구축해나가는 ‘문화 통치’를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지금 주사파(主思派)가 이 나라의 사상 구조를 만들고 있잖아요. 북한의 주체사상 최고 교주가 만들어놓은 미신을 온 국민에게 퍼뜨리고 있는 거죠. 저 또한 이 악(惡)을 문화적으로 몰아낼 생각입니다. 주사파의 아킬레스건은 북한 인권이죠. 탈북민을 통해 북한 인권을 비추고, 이를 중심으로 역사와 사상 이야기까지 끌어낼 계획이에요. 국내뿐만 아니라 지난 3년간 영국, 미국, 이스라엘 등 타국의 인권 단체들과 연대하는 작업도 해오고 있어요. 코로나19로 당분간 활동의 제약이 있긴 하지만,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고요.”
 
  ― 탈북민 구출 활동을 통해 주체사상을 문화적으로 몰아낸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지요.
 
  “북한 인권 책을 쓴 다음 이를 학교 도서관에 넣을 계획입니다. 지난 70년간 관련 서적들은 탈북민 자체에만 초점을 맞췄지만 이번에는 탈북민 구출 현장과 구출자의 이야기를 담는 거예요. 북한 인권 관련 해외 여러 단체와 연대하려면 세계에 들고 나갈 메시지가 있어야 하잖아요. 단순히 ‘탈북민이 불쌍해요, 도와주세요’라는 메시지로는 운동에 한계가 있어요. 책을 낸 뒤에는 해외 인권단체에서 상을 받는다거나 공식적인 인정을 얻는 가시적 성과도 필요해요. 전교조가 장악한 학교에 이런 책을 그냥 넣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세계 인권 단체로부터 인정, 수상’과 같은 명분이 필요한 거죠. 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설령 받는다고 해도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해요. 지금 아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통일과 평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 책을 읽고 강제로 독후감도 내야 하죠. 아이들에게 진실을 가르쳐야죠. 이런 게 진짜 인권 이야기잖아요.”
 
  국내 최초 이승만 학습 만화의 기획·감수도 맡고 있다. 5권짜리인데, 1권은 거의 마무리 단계다. 이 작가는 “우리나라 학교 도서관에는 김일성·마오쩌둥(毛澤東) 책은 있지만 이승만·박정희 책은 없다”면서 “이승만 책 발간 후에도 도서관에 넣기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를 것”이라고 했다.
 
  “중국을 만든 사람과 북한 학살자의 책은 있는데,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과 우리나라를 10대 경제대국 반열에 올린 사람 책은 없는 거죠. 이게 말이 되나요. 이런 게 바로 ‘문화 독재’ 아닙니까.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라면 계속 가라”

그는 지난 2015년 13세 연하의 차유람 전 국가대표 당구선수와 결혼했다. 둘 사이엔 7세 난 딸과 4세 된 아들이 있다. 그는 아내를 호칭할 때 종종 ‘예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 결혼한 지 6년째죠. 아직도 그렇게 예쁩니까.
 
  “네. 아직도 너무너무 진심으로 좋아요.”
 
  ― 차 전 선수는 어떤 아내이자, 엄마입니까.
 
  “아내가 스포츠인이잖아요. 제가 편견(偏見)이 있었어요. 상명하복(上命下服) 체제에 익숙해 아이들도 감독하고 코치하려 하지 않을까. 기우(杞憂)였죠. 전적으로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해요. 자유를 주고 책임이 따른다는 걸 스스로 깨우치게 하더군요. 저는 행여 방종(放縱)하게 자랄까 봐 관여를 한 편인데, 아내 방식이 맞았어요.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 아내가 워낙 그렇게 컸더군요. ‘이걸 하겠다’고 했을 때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대요. 딸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공부했는지 아시는 거죠. ‘반대하려면 그보다 더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하는데, 너만큼은 아니니 네 고민의 시간과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요.”
 
  ― 남편이 공개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건 어떻게 봅니까. ‘자중했으면’ 하지는 않나요.
 
  “제 아내는 확실하고 쿨한 사람입니다. 반대했다면 이러지 못했겠죠. 애초에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요. 저희 부부는 대화량이 상당히 많은데, 앞서 물어봤어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신념에는 반(反)하지만 적당히 맞춰주며 더 많은 돈과 명성을 버는 길. 또 하나는 신념대로 하지만 당신 남편이 보수꼴통, 일베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길. 선택해주면 따르겠다고 했더니,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라면 계속 가라’고 하더군요. 이 길은 이제 제 사명(使命)이 됐고요.”⊙

입력 : 2022.05.13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