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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에게 고소당한 청년 김정식씨

“모욕죄로 걸 줄이야… 진짜 모욕당한 건 국민입니다”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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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비방 유인물 배포에 시민 직접 고소… 2년 만에 취하하며 “성찰하라”
⊙ 모욕죄로 6개월간 약 10차례 조사… 경찰, ‘누가 시켰느냐’고 추궁
⊙ 휴대폰 압수 후 포렌식까지… “(野)黨 내 배후 있다고 여긴 듯”
⊙ 김씨, “이번 사건, 시민들이 정권보다 훨씬 민주적이라는 사실 일깨워”
⊙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글쎄, 대통령이 되면 정말 바쁘지 않을까?”
⊙ ‘일반 시민’이 아니라는 지적? “정치 참여를 ‘정치 욕심’으로 매도한 것”
사진=박지현
  전례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0대 청년을 모욕죄로 고소했다가 2년 만에 취하했다. 대통령이 시민을 ‘직접’ 고소한 건 사상 최초다. 자신을 비방하는 유인물을 뿌렸다는 이유에서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5월 4일 “문 대통령이 이번 사안에 대한 모욕죄 처벌 의사를 철회할 것을 지시했다”면서 “이번 일이 국격과 국민의 명예, 국가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는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게 고소당했던 김정식(34)씨를 만나봤다. 소(訴) 취하 후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다소 지친 기색이었다.
 
  ― 성찰하고 있나.
 
  “성찰…. 일각에서 이 단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던데, 나쁜 의미로는 안 본다. 인간은 누구나 성찰하며 성숙한다. 최고 권력자 대(對) 일반 시민의 구도가 아니라, 단순히 연장자의 입장에서 젊은이에게 할 수도 있는 말이지 않나.”
 
  ― 소 취하 소식을 접한 심경은.
 
  “대체로 덤덤하다. 문득 ‘아, 이제 끝났구나’ 했다. 아직(5월 7일 기준) 검경에서는 연락이 안 왔지만…. 설마 공개적으로 밝힌 얘기를 번복하진 않겠지?”
 

  청와대의 입장 표명 직후 그는 소셜미디어에 장문의 소회를 밝혔다. 그중 한 구절이다.
 
  “권력자가 타인에게 모욕죄 고소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은 ‘부자이니 세금을 더 내라’ ‘나는 초보운전자이니 당신이 양보하라’ 같은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위축됐다고 해석해도 되나.
 
  “지인도 이 구절을 보고 ‘너 혹시 졸았냐?’고 하던데, 그게 아니다. 권력자에게 무조건적인 양보를 바라는 건 나 스스로 약자임을 인정하는 거다. 청와대 또한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는 시민과 대통령은 동등한 관계라는 뜻이다.”
 
  ― 해탈의 기운이 감지되는데.
 
  “그런가.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특히 이번 송사로 인해 전단을 뿌리면서까지 알리고자 했던 당초 내 메시지가 희석됐다는 거다. 청와대에 말하고 싶다. 왜 일개 국민 하나가 이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정부에 바라는 게 뭐기에 저렇게까지 했을까, 헤아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저 반대 진영의 목소리라 치부하지 말고.”
 
 
  문제의 그 전단, 무슨 내용이기에?
 
김정식씨가 2019년 7월 국회의사당 분수대에 뿌린 전단지 이미지. 사진=김정식 제공
  ― ‘당초 내 메시지’라 함은.
 
  “전단을 뿌렸던 2019년 당시 4·15총선을 앞두고 특히 ‘노재팬’ 운동이 극렬했다. 이웃 나라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해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정부·여당의 반일감정 조장과 국민 갈라치기를 막고자 한 게 목표였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일본과의 외교관계, 국익을 훼손하면서까지 반일 프레임을 내세웠다. 자신들은 독립투사고 애국자이며, 상대 진영은 친일이며 매국 세력이라고 양분했다. 그러면서 야권 선대가 친일 행적을 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런데 과연 여권 인사는 친일과 무관할까.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2년 전으로 돌아가본다. 2019년 7월 17일. 김씨는 전단 한 묶음을 들고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3명의 일행과 함께였다. 분수대 인근에서 이를 던졌다. 널리 흩뿌려지길 기대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둔탁하게 수직 낙하했다고 한다. 비장했던 마음도 함께 둔해졌다. 한 일행이 말했다. ‘이거 이렇게 두면 안 될 것 같은데?’ 다시 주워 담았다. 근처 벤치 위에 전단 뭉치를 모아서 올려두고 발길을 돌렸다. 그는 “이 과정에서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고 방호원의 저지도 없었다”고 했다.
 
  ― 온라인에 ‘그때 그 전단’이라며 도는 이미지가 많다. 그중 진짜는 뭔지.
 
  “타노스(마블 캐릭터 중 하나) 이미지가 많이 돌던데 그건 아니고….”
 
  그가 사진을 보여줬다. ‘북조선의 개 한국대통령 문재인의 새빨간 정체’라는 문구와 함께 일본 잡지의 한 페이지가 실려 있다. 문 대통령이 2016년 9월 26일 트위터에 일본 음란물을 올린 사실을 기사화한 내용이다. 그 아래에는 ‘문재인 대통령님! 트위터에 올린 일본 근친 야동, 일본 잡지에 실렸었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이러니까 대한민국을 만만하게 보지…’라는 글귀가 있다.
 
 
  “모욕죄로 걸릴 줄이야…”
 
  ― 이 내용이 문제가 되리라는 생각은 안 했나.
 
  “일부 진보 매체에서는 마치 악의적인 합성으로 음란한 사진을 연출한 것처럼 보도하던데, 문재인 대통령이 본인 트위터에 올린 사진이고, 이를 기사화한 잡지의 한 페이지를 그대로 쓴 거다. 혹 공연음란법 위반이 될까 싶어 주요 부위는 모두 가렸다. 그런데도 만일 (공연음란죄로) 건다면, 대통령을 맞고소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정작 공연음란 행위는 대통령이 하지 않았나. 반일을 외치며 일본 야동이라니. 한국 주재 일본인 기자가 ‘한국인을 지켜보니 낮에는 반일이지만 밤에는 친일이더라’라고 했다지 않나. 그야말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정작 모욕을 당한 건 국민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모욕죄로 걸 줄이야.”
 
  ― 보도에 따르면 한 청와대 관계자가 이 전단을 두고 ‘극악하다’고 했다는데.
 
  “청와대는 자체적으로 선과 악을 규정지을 수 있는 자리인가? 청와대 대변인은 이를 두고 ‘극우 주간지 표현을 무차별적으로 인용해 국격과 국민의 명예, 남북관계 등 국가의 미래에 해악을 미쳤다’고 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웃 국가의 기업을 ‘극우’라고 규정짓는 것은 과연 온당한 건가. 지양해줬으면 한다.”
 
  ― 전단 디자인과 인쇄는 누가 했으며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
 
  “디자인은 직접 했다. (내가) 사업을 해서 아는 인쇄소가 있다. 비용은 100만원도 안 들었다. 직접 번 돈으로 만든 거다. 경찰에서도 인쇄소가 어딘지 밝히라고 하던데, 말 안 했다. 사업을 해봐서 안다. 알려주면 불안해서 어디 장사를 할 수 있겠나.”
 
  ― 전단을 배포하기 전에 다른 수단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는 해봤는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집회도 나가보고, 1인 피켓 시위도 해봤다. 효과가 없었다. 구독자가 많은 유튜브 채널에도 나가봤는데, 뭐랄까. 반동분자로 취급되고 말더라. ‘메시지’는 수신자가 봐야 의미가 있다. 대자보를 하나 쓰더라도 빨간펜과 형광펜을 써가며 강조를 하지 않나. 어떡하면 볼까. 효과적인 방법을 찾다가 선택한 거다. 다소 극성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는 건 이해한다. 보게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누가 시켰나, 공범이 누구냐”
 
  그 결과는 호됐다. 그로부터 4개월 후, 2019년 11월. 반갑지 않은 전화가 왔다.
 
  ― 경찰에 누군가 신고를 한 건가.
 
  “국회 방호 담당 부서에서 수거한 후 영등포경찰서에 넘겼다고 했다.”
 
  - 그런데 왜 4개월이나 걸렸는지.
 
  “4개월 동안 내사를 했다고 한다. CCTV 동선 추적, 휴대폰 기지국 조회, (내가 출연했던) 유튜브 방송 등을 찾아서 인물을 특정하고 인적 사항 등을 확보해놨더라.”
 
  ― 경찰은 전단을 보고 뭐라던가.
 
  “‘북조선의 개’는 심하다고 했다.”
 

  실제로 경찰은 ‘북조선의 개 한국대통령 문재인의 새빨간 정체’라는 문구가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건 핑계 같고 아무래도 음란물 사진이 역린이었던 것 같다.”
 
  ― 경찰 조사는 어떤 식으로 이뤄졌나.
 
  “그해 11월 첫 출석 후 2020년 5월까지 약 6개월간 10차례 정도 불려갔다. 당시 친동생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이었는데 이 사실을 대며 ‘누가 시켰나’ ‘(전단은) 누가 제작했냐’ ‘공범은 누구냐’고 했다.”
 
  ― 공범?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출석이었는데 자꾸 ‘공범’이라기에 지적했더니 정정하더라. 같이 간 사람들은 ‘다시 줍자’며 말렸기에 잘못이 없고, 진술할 이유도 없다고 모두 내가 한 일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휴대폰을 압수해갔다. 포렌식을 하겠다며.”
 
  이땐 무력감이 들었다고 한다.
 
  “권력자들 사이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일반 국민에게 경찰은 막강한 힘으로 느껴진다. 휴대폰을 압수하고 패턴을 푸는데, 앞서 내가 패턴 그리는 모습을 뒤에서 동영상으로 찍어놨다가 그걸 보고 열더라. 이거 불법 아니냐고 했더니 합법이라더라. 그 상황에서 아무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추가된 ‘쓰레기 버린 죄’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 방송에서 대통령이 되면 자신에 대한 비방을 참겠으며 어떤 고소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모습. 사진=방송화면캡처
  ― 변호사가 없었나.
 
  “여러 변호사분이 연락을 해왔지만, 다 거절했다. 권력자가 찍어 내리면 일개 시민이 어디까지 찍혀 내려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나야 운이 좋아 먼저 도와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정말 아무 힘없는 사람들은 이 난국을 혼자 헤쳐나가야만 했을 거니까.”
 
  ― 모욕죄는 보통 한 차례 출석해 조서를 쓰고, 이후 합의 과정도 있는 걸로 아는데.
 
  “내 생각이지만 배후에 야당의 누군가 있다고 여긴 것 같다. 휴대폰 포렌식 때문에만 네 번을 갔으니. 합의 과정 같은 건 물론 없었다. 고소인이 누군지 알아야 합의를 보든지 사과를 할 텐데,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 모욕죄는 친고죄(범죄의 피해자 또는 기타 법률이 정한 자의 고소·고발이 있어야 공소할 수 있는 범죄)니, 고소 주체를 짐작할 수 있지 않았나.
 
  “‘대통령 측’이라고는 알았다. 그런데 본인인지, 기관인지, 법률대리인인지 몰랐다. 경찰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다, 알면서 왜 묻느냐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경찰도 곤란했을 거다. 이해한다. 고소인이 특별한 신분이랄까 지위에 있는 사람이니 굳이 윗선에서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고 여겼겠지. 악의에서 그런 건 아니라 본다.”
 
  ― ‘쓰레기를 버린 죄’도 갑자기 추가됐다고 들었는데.
 
  “2020년 초에 보니, 어느 순간부터 ‘모욕 외 1건’이라 돼 있더라. 경범죄 처벌법 위반이었다. 이건 뭐냐고 물었더니, 경찰이 ‘원래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고 그러면 안 돼’라고 하더라. 경범죄는 경찰에서 자체적으로 추가한 걸로 안다. 불만은 없다. 경찰은 본연의 임무를 했을 뿐이다. 자칫 화살이 갈까 담당 수사관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있다. 다만 사정기관의 수사 시스템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 대통령이 직접 고소했다는 걸 알고 나서 심경은.
 
  “엥? 딱 이랬다.”
 
 
 
국민이 정권보다 더 민주적이란 것 깨달아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5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이 모욕죄 처벌 의사를 철회하도록 지시했다”며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년간의 경찰 수사 끝. 지난 4월 28일 영등포경찰서는 김씨에게 모욕죄 및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여론은 즉각 반응했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정의당과 참여연대 또한 성명을 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5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대표단 회의에서 “독재국가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 범죄일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라는 위치는 모욕죄가 성립되어선 안 되는 대상”이라며 “배포된 내용이 어떤 것이었든 대통령에 의한 시민 고소는 부적절하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5월 4일 오전 논평에서 “최고 권력자나 고위 공직자 등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모욕죄로 처벌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 그간 밝힌 국정철학과도 맞지 않다”며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 전단 또한 정치적 반대 의견을 가진 국민이 가지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같은 날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으로서 모욕적 표현을 감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라며 소 취하 사실을 알렸다.
 
  ― ‘대통령 모욕죄 사건’이 현시대에 던진 메시지는 뭘까.
 
  “‘진영을 떠나, 현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권보다) 훨씬 자유롭다(깨어 있다)’는 것이다. 당장 주변 지인들 반응은 물론이고 심지어 범진보로 일컬을 수 있는 참여연대와 정의당마저 문 대통령에게 ‘이를 거두라’고 하지 않았나. ‘86’으로 대표되는 집권세력, 자칭 민주화세력들은 ‘2021년 판’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못 따라가고 있다. 이상・이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민주주의를 공허하게 좇으며, 이미 훨씬 다양하고 자유로운 현세의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구태의연한, 구호뿐인 민주주의의 틀에 가두려고만 한다. ‘국민과 기업은 일류지만 정치는 삼류다’ 라는 말이 딱 맞다.”
 
 
  “정치 욕심? 정치 참여였을 뿐”
 
  일각에서는 김씨를 ‘일반 시민’으로 보기엔 무리라고 지적한다. 정치적 이력 때문이다. 그는 현재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터닝포인트’의 대표를 맡고 있다. 앞서 신(新)전대협(전대협을 풍자한 청년단체) 대변인, 여의도연구원 청년 정책 자문위원 활동을 했으며, 4·15총선에서는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신청하기도 했다.
 
  ― 만일 본인이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대응했을 것 같나.
 
  “글쎄, 대통령이 되면 정말 바쁘지 않을까?”
 
  ― 일전에 단국대에 대자보를 붙여 벌금형을 받은 청년은 신원을 노출하지 않았는데,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인터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신전대협 대변인을 하며 얼굴이 알려진 상태였다. (신전대협은) 점조직이라 얼굴을 내놓고 활동하는 단체는 아닌데, 신원을 공개하는 사람이 한명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공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서 다수가 피해를 보니까.”
 
  ― 이 사건 이후 특정 집단의 공격은 없었는지.
 
  “악성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너도 모욕 한번 받아보라면서. 국민들이 정치 권력자들의 대리전(代理戰)을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끼리 싸워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 관련 기사에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간 게 아니라 정식으로 고소당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댓글이 있던데.
 
  “10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왕조사회였고, 식민사회도 겪었다. 민주주의를 경험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나라에 이 체제를 가져온 건 이승만이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가 필요한데, 경제발전은 박정희가 이룩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어떤가. 박정희가 환생해서 집권한다면 과연 똑같이 할까? 왜 일부를 보고 전체를 왜곡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겪은 경찰 수사 하나만으로 이 나라는 공산주의가 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의 맛을 비로소 알아가던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아직도 그때에 머물러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지 자문해봤으면 좋겠다.”
 
  ― “젊은 애가 벌써부터 자기 정치이익을 위해 눈도장을 찍으려고 한다”는 댓글에 대해서는.
 
  “다분히 정치적인 행보였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정치적인 움직임이라고 한다면, 맞다. 그런데 생각해봐라. 진보 진영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를 권장한다. 정치권력을 목표로 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 내 행보는 정치 참여일까, 정치권력에 대한 욕심일까. 이 경계를 교묘히 파고들어서 본말을 전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문빠’였던 친구마저 다 등 돌려

 
지난 2018년 12월 역사왜곡전시 반대 집회에 참석한 김정식씨. 사진=김정식 페이스북
  ― 시민의 정치 참여와 출마는 결이 다른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과 ‘우리 더 이상 숨지 맙시다. 부끄러워하지도 맙시다’라던 홍준표 의원의 대통령 후보 시절 발언에 감명받아 나름의 목소리를 내왔다. 피켓을 들었고, 시위에 나갔고, 전단도 뿌렸다. 그러다 2019년, 쏟아지는 듯한 사정기관의 수사를 통해 ‘거대 권력 앞에서의 나약한 개인’을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게 현실이었다. ‘일개 개인이 목소리를 내기에는 힘이 부족했구나’ 라는 차원에서 봤으면 한다. 정치를 하고자 했다면 진작 당내에서 작은 직책부터 맡아서 활동했을 거다.”
 
  ― 정치적 목소리는 언제부터 내기 시작했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광화문을 한번 나가봤다. 이순신 동상을 사이에 두고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가 열렸다.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며 지켜봤다. 그때 커다란 가방을 메고 태극기를 흔드는 할머니가 앞을 지나갔는데, 촛불 집회 참석자 몇 명이 그 할머니를 발로 차더라. 넘어져 우는 할머니를 두고 낄낄대며 유유히 집회 현장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들을 잡으려고 쫓아갔더니 경찰이 ‘괜한 싸움 일으키지 말라’며 말렸다. ‘정의’를 외치는 자들의 속살을 본 듯했다. 씨앗은 그때 싹튼 것 같다. 이후 광화문에서 ‘위인맞이 환영단’을 결성해 김정은을 찬양하(는 듯 보였)던 ‘대진연(대학생 진보 연합)’의 활동 역시 큰 동기가 됐다. 개인 사업을 했는데 2018년 무렵부터 자영업자들의 경영난이 급격히 심해져감을 몸소 느끼기도 했다. ‘빈 강의실 불 끄기 알바’ ‘산불 감시 알바’들이 생겨난다는 등의 뉴스를 접하며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모두 실현한다면 정말 나라가 망가질 것 같아서 피켓을 들기 시작했다.”
 
  ― 30대 남성이면, 주변에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구도 있겠는데.
 
  “소위 ‘문빠’ 친구도 있었는데 작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싹 다 돌아섰다.”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잃은 게 있다면.
 
  “고소당할 당시 심리상담소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일을 접어야 했다. 경찰이 들락거리니까 같이 일하는 선생님이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 반대로 얻은 게 있다면.
 
  “글쎄 딱히 얻은 게 있을까? 악플?”
 
  ― 만일 문재인 대통령이 눈앞에서 신호대기에 걸려 있다 5초 뒤에 출발한다. 딱 한마디 외친다면.
 
  “‘야동 이미지를 인쇄한 건 미안했습니다. 같은 남자로서 그게 얼마나 수치스러웠을지 짐작이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그렇다. 실수로 올렸고 잊고 싶은 기억일 텐데 자기 자식보다 어린, ‘듣보잡’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걸 인쇄해 뿌리니까 얼마나 화가 났겠나.”
 
  ― 2019년 7월 16일로 돌아간다면, 그 다음 날 다시 전단을 뿌릴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전단은 부족했다. 돌아간다면, 애드벌룬을 띄우겠다. 아니면 현수막을 걸던가. 이 일이 ‘대통령이 국민을 모욕한 사건’으로 끝나버려서 심히 유감이다.”
 
  ― ‘정치 참여’ 차원에서 앞으로의 계획은.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있어야 할 곳에 있겠다.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하겠다. 멈추지는 않겠다.”
 
  ‘멈추지 않겠다’는 건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4일 브리핑에서 박경미 대변인은 ‘앞으로는 (대통령이) 이 같은 모욕적인 표현에 대해 고소하지 않을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사안의 경중에 따라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했다. 이 사건은 이렇게 ‘열린 결말’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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