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배신(지지하는 정당 비판)은 반드시 해야 한다”
⊙ “저를 좋아해주던 사람들 뒤통수를 딱 치려면 사실 마음이 아파요”
⊙ “저도 가끔 투덜거리죠. ‘왜 나는 만날 개 잡는 일에만 불러?’”
⊙ 진중권은 뼛속까지 좌파. 보수 가치를 깨 뭉갰던 사람
⊙ 1999년 전대협·한총련에 군부 파쇼 세력을 닮아간다고 비난
⊙ “저를 좋아해주던 사람들 뒤통수를 딱 치려면 사실 마음이 아파요”
⊙ “저도 가끔 투덜거리죠. ‘왜 나는 만날 개 잡는 일에만 불러?’”
⊙ 진중권은 뼛속까지 좌파. 보수 가치를 깨 뭉갰던 사람
⊙ 1999년 전대협·한총련에 군부 파쇼 세력을 닮아간다고 비난
-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陳重權·57) 전 동양대 교수(이하 직함 생략)가 쓴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2017)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진정으로 집사가 되려면 그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고양이가 되어야 한다.”(p.322)
요즘 한국 사회에서 진중권은 가장 뜨거운 인물이다. 좌우를 넘나들며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모두까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똘똘한 좌파 집사(?)였던 그의 최근 공격성은, 진보 진영의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진보의 진보비판’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진중권은 뼛속 깊이 ‘빨간’ 고양이였던 만큼 누구보다 진영 논리에 익숙한 ‘내로남불’과 위선, 거짓, 패악질을 잘 알고 있다.
살다 살다 우파 진영에서 진중권에게 열광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은 “진중권이야말로 양심 좌파이자 진짜 진보”라고 치켜세웠다. “무기력한 야당 국회의원 100명보다 더 낫다”는 말이 나온다.
그가 ‘까면’ 보수언론이 모두 그대로 받아쓴다. 이곳저곳 안 끼는 데가 없이 막 깐다. 댓글이 수백 개 달린다. 사방에서 논란을 일으킨다.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진중권이 말려든 것일까.
싫든 좋든 한국 사회가 진중권의 글과 말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진중권이 쓰는 모두까기 언어가 시원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싸가지(국어사전은 ‘사람에 대한 예의나 배려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설명한다)가 없다. 그런데 “싸가지 결핍증에는 약도 없다”고 한다.
진중권에게는 스스로 잘난 척하는 (도덕적) 우월감도 드러난다. “우월감이야말로 싸가지 없는 진보의 동력”이라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진보 논객’ 이 아닐 수 없다. 통쾌함을 느끼는 우파 지지자 진영에서조차 “실명 지식인답게 좀 더 정중했으면…” 하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싸가지 있는 진중권은 상상하기 어렵다. 진중권이야말로 싸가지가 없어야 한다. 왜? 평생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진중권의 모두까기 정체를 알아보자. 그의 과거 발언을 중심으로. 그는 예상과 달리 나름 일관된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가치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① “왜 나는 만날 개 잡는 일에만 불러?”
동양대 교수직을 그만둔 진중권은 요즘 실업자다. 그러나 강연, 원고청탁, 방송 및 유튜브 출연 등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얼마 전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왜 국회의원 나부랭이를 해야 돼요? 나는 국회의원만으로 생활이 안 돼요. 돈을 더 많이 벌어야 돼요.”
그가 국회의원보다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자랑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신문사, 잡지사, 방송사, 정당 등지에서 인터뷰·출연·강연 요청이 쇄도하는 모양이다. 최근에 자기 진영 쪽에서 미운털이 박혀서 그렇지 김제동·유시민과 비교해 출연료가 저렴할 것 같지는 않다. 다음은 진중권의 말이다.
“지식인이 먹물 아니겠어요? 먹물은 노동자들이 만들어주는 옷을 입고 농민들이 해주는 밥을 먹는데, 그 값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건이 끝난 다음에야 나타나서 정리한답시고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고 아무리 토론한들 이미 지나가 버린 사태잖아요.
어떤 사건이 터지면 그때그때 자기 역할을 해내는 게 지식인의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 투덜거리죠. ‘왜 나는 만날 개 잡는 일에만 불러?’”(2008년 4월 1일 강연에서)
진중권은 지식인의 역할이 ‘개 잡는 일’이라 생각하는 걸까. 개를 잡기 위해선 몽둥이를 들어야 한다. 몽둥이를 들면 반드시 피를 봐야 한다. 몽둥이가 크고 묵직할수록 개 잡기가 쉽다. 또 피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피는 개 잡기의 숙명이다.
진중권의 모두까기에 반응하는 이들은 반드시 두 부류다. ‘웃는 사람’과 ‘약 올라 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은 없다. “전체를 다 웃길 수 있는” 재능이 그에게 없다. 만약에 그런 재능이 있었다면 유시민을 능가하는 정치인이 되지 않았을까.
② “(악플에) 절대 주눅이 들면 안 됩니다”
친여 성향 사람들이나 ‘문빠’ ‘대깨문’들에게 진중권은 몹시 얄미운 존재다. “내 편일 땐 든든하고 적일 땐 짜증 나는” 사람이다. 그의 한마디에 칭찬·비난 댓글이 쏟아진다.
진중권은 얼마 전 시사저널TV에 출연해 독일의 시인·극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의 말을 인용했다.
“지식인은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중이 들어야 할 이야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대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은 먹물이 아닙니다. 연예인이지.
저는 욕을 먹든 안 먹든 간에, 대중의 오해는 허용합니다. ‘나를 몰라보면 니(너) 손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오해는 풀린다.’ 그런 게 우리(먹물・지식인)가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진중권은 이명박 정권 때 이 대통령을 엄청나게 공격했다. 그의 주장처럼 결국 “MB의 미움을 사 한예종과 중앙대 (겸임)교수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대중이 환호했음은 물론이다. 당시도 지금처럼 언론의 헤드라인에 자주 등장했다. 댓글 몇천 개가 순식간에 붙었다. 그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그렇게 똑똑한가?’ ‘내가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야?’ 그런데 그런 것에 속으면 안 되거든요. 또 어떤 때는 대중이 악플을 달잖아요. 그것에 절대 주눅이 들면 안 됩니다.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고 대중이 하는 말을 다 믿어서는 안 돼요.”
지금 진중권은, 이명박 때처럼, 대중(이른바 ‘문빠’)에게 아첨할 마음이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 편에 서서, 편을 들어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게 ‘먹물’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당파성을 요구한다. 중립지대란 없다. 다수 대중이 지지하는 권력 편에 설 것을 강요한다. 대중(친여 지지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 먹물의 임무라고 진중권은 생각한다.
③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낀다. 내 인생은 실패”
진중권의 모두까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진보를 까고,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는 보수를, 지금은 진보를 자처하는 ‘문빠’ 팬덤을 까고 있다.
‘악성 투사’로서의 ‘개 잡기’가 진보 세력을 얼마나 아프게 했던지 2002년 7월 진보학자 강준만 교수는 〈진중권의 ‘소아병적 정의감’에 대해〉라는 글에서 이런 주장을 폈다.
〈… 너무도 진지하고 근엄한 이 세상에서 진중권과 같은 악동도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악동이 ‘좌파’니 ‘진보’니 하는 외투를 걸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고 있고, 그 결과 범개혁 진영 내부의 전혀 불필요한 갈등과 반목을 양산해내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진보 진영 내부의 소모적인 ‘팀킬’ 이야기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홍보수석을 지낸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와의 설전도 기억에 남는다. 진보 논객 간의 공개 다툼으로 그들 진영 내에서 화제가 됐을 정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013년 3월 29일 오전 경기도 여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되자, 조기숙은 “곽노현 사건은 사법사의 부끄러운 여론 재판으로 기록될 것이다. 진보 논객의 마녀사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판결이었다. 해당 진보 논객의 반성이 없다면 역사는 반복된다”고 비난했다. 진중권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진보 논객의 마녀사냥” 對 “가증스런 이중잣대”
진중권이 발끈했다. “당신 같은 사이비들이 진보의 생명인 ‘에토스’ 자체를 무너뜨렸다. 나는 보수 진영에서 그 짓을 했어도 당신들이 그렇게 열렬히 옹호했을까 회의한다. 더 절망적인 것은 그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당신들의 그 가증스러운 이중잣대”라고 비난했다.
적어도 모두까기 관점에서 진중권에게 이중잣대는 없어 보인다.
당시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강기석씨는 〈진실을 질식시키는 나쁜 언론의 메커니즘〉이란 글을 통해 진중권식(式) 진보 논객의 진보 비판을 이렇게 해석했다.
〈… 현재의 주류 근처에서 놀고 싶어 하는 적당히 진보적인 인사들은 수구언론보다 더 곽노현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도덕적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한편 진보 세력의 수호자임을 내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진중권 공격력은 혼자일 때 더욱 빛난다. 그 결과, 한 진영에 있던 동지들이 모두 떠나갔다. 원래 총칼의 끝이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할 때 더욱 섬뜩하고 아픈 법이다.
그렇다고 우파 진영의 시선이 그에게 고울 리 없다. 우파 논객인 황태순은 진중권을 이렇게 평가한다.
“진중권은 100명의 야당 의원보다 더 문재인(정부)을 조롱하지만 그는 뼛속까지 좌파입니다. 우파에서 진중권이 우리 편이라 알고 있지만, 아닙니다. 진중권은 지난해까지 정의당 당원이었어요. 스펙트럼상 가장 왼쪽에 있는 좌파 정당이죠. 얼마 전까지 ‘노유진(노회찬·유시민·진중권)의 정치카페’라는 팝 캐스트를 하면서 보수, 즉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철저하게 조롱하고 보수 가치를 깨 뭉갰던 사람입니다.”
진중권의 말과 글에 환호하는 이가 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외로움을 느끼는 듯하다. 최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철이 없었어요. 나는 피터 팬이 되어서 저들 후크 선장, 수구 세력인 미래통합당과 싸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팅커벨(조국 전 장관을 지칭)이 강남에서 사모펀드 하고 있었던 겁니다. 나만 바보가 된 것이죠.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낍니다. 나 혼자 남았어요.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봅니다.”
이런 외로움은 진중권에게 익숙한 감정이다. 앞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외로움을 토로한 일이 있다.
“1990년대 초에는 좋은 논객들이 참 많았어요. ‘안티조선’ 운운하면서 함께 놀고 퍼포먼스하고,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들도 굉장히 진지한 아주 좋은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많은 분들에게 ‘우리 계속 논객 생활 하자, 계속 같이 놀자’ 이랬는데, 많이들 정권을 따라가버렸어요. 특정 정권과 자신을 동일시해버리고 거기에 자기를 맞추다 보니 그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게 된 거죠. 김대중 정권이 끝나니까 논객의 별이 몇 개 져요, 또 노무현 정권이 몰락하니까 수많은 논객의 별이 져버린 거예요.”
권력의 불나비가 되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떠나갔다는 말이다. 그러나 외로움을 느낄망정 정치 담론의 시장에서 진중권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지고 ‘남는 장사’가 되어가고 있다.
④ 진중권은 원래 배신의 아이콘?
진중권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오래전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왔다. 배신의 아이콘이었다.
《당대비평》 1999년 봄호에 기고한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를 통해 전대협·한총련으로 표현되는 민족해방계열(NL)을 공격했다. 당시 운동권 세력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전대협(1987~1992), 한총련(1992~2007)은 거의 20년간 전국대학 학생회 조직과 학생운동을 신속하고 완벽하게 장악한 정치 세력이었다. 이들이 지금 주류가 되어 대한민국 정치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여(與)든 야(野)든 간에.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에서 진중권은 《불패의 신화 : 전대협 이야기 6년사》(저자 전대협 동우회)의 텍스트를 분석해 “전대협과 한총련의 언어를 파시스트의 언어와 유사한 가부장적, 폭력적, 전체주의적 언어”라고 비판했다.
또 “전대협과 한총련, 이 두 단체가 지도하는 동안 학생운동은 내포적 강함(도덕, 논리, 미학)에서 외연적 강함(힘, 무력, 조직 논리)으로 자기도 모르는 새에 지배자를 닮아가는 과정에서 정당성의 위기에 빠져버렸다”고 했다. 다시 말해 군부 파쇼 세력과 저항하던 학생운동 세력들이 그들이 증오하던 파쇼 세력을 닮아간다는 것이었다.
큰 충격을 주었던 전대협·한총련 비판
진중권은 텍스트 분석을 통해 《불패의 신화》에 ‘우익의 어휘’가 가득하다고 꼬집었다. 예컨대 국가주의자들이나 쓸 법한 단어인, ‘조국의 가슴’ ‘조국의 활력’ ‘조국의 새로운 방향’ ‘조국의 심장’ ‘조국의 새날’ ‘대원들의 조국애’ ‘조국애와 헌신성’ ‘조국의 미래’ ‘애국의 열정 하나로’ ‘두 눈은 애국의 열정으로’ ‘애국의 그 한 길’ ‘구국의 강철대오’ 등을 예로 들었다. 진중권은 “조국, 애국, 구국 같은 역겨운 우익의 어휘들이 전대협의 텍스트 속에서 또 하나의 파시스트 어휘와 결합된다”고 비난했다.
〈… “조국” “애국” “구국” “운명” “사명” “희생”. 이건 우익 국가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어휘다. 이 낱말들이 합쳐지면 집단을 위해 희생하라는 전체주의적 요구가 된다. 우익들이 국가를 실체화하여 리바이어던으로 만든다면, 전대협 역시 자기를 조그만 당으로 실체화하여 “죽음으로 사수”해야 할 어떤 것으로 만든다.
(중략) NL의 언어는 가부장적이다. “삼종지도” “임종석씨의 사진을 가지기 위한 여학생들의 경쟁”, 그리고 “의장님”의 재림 드라마. 스스로 생각할 힘이 없는 봉건 대중은 카리스마를 필요로 한다. (중략) ‘지도자’ ‘영도자’ ‘수령’ ‘총통’ ‘원수’, 스케일이 작으면 “깍듯이 의장님!”…〉
(《당대비평》 1999년 봄호 p.198, p.206, 진중권의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 중에서)
위의 인용문에서 “의장님”은 전대협 의장 임종석을 말한다. 진중권은 심지어 “NL언어의 지시론과 화용론은 북조선에 있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왜?”(p.206)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전대협, 한총련 파시즘’ 비판에 당시 주사파 세력들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배신’에 독이 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중권을 비난하는 몇 편의 논문이 《말》지 등에 실렸지만 솔직히 한 수 아래였다.
그때부터 그에게 배신의 아이콘이 덧씌워졌다. ‘진중권=배신자’는 틀린 말이 아닌 셈이다. 진중권은 2008년 4월 강연회에서 자신의 배신을 언급했다.
“제가 이번에 진보신당에 들어갔거든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저놈은 또 진보신당 욕하면서 나갈 거야.’ 그래서 ‘어떻게 알았지?’ 싶었어요. (청중 웃음)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라 하더라도 이상한 쪽으로 가면 당연히 비판하면서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2004년에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면서, 소위 주사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절대 받으면 안 된다고 말했거든요. 그때는 아무도 안 듣더라고요. 그저 저를 조용히 시키려고 하기에 제가 나온 거예요. 이번엔 자기들이 나오더라고요. 지지하던 정당을 비판하면 ‘배신’으로 보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런 배신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배신(지지하는 정당 비판)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말에 눈길이 간다. 그는 이런 주장도 했다.
“서울대에 강의를 하러 갔습니다. 학생들이 활발하게 질문하더라고요. 이러쿵저러쿵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다가 제가 말했어요.
‘여러분이 제 후배지만, 저는 여러분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하거나 친근한 느낌조차 들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수십 년 후에는 국가의 부르주아 계층에서 지배 세력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가벼운 계급적 긴장감까지 느껴집니다.’
그랬더니 막 웃더라고요. ‘여러분이 지금 내게 환호하지만 절대 믿지 마세요. 나는 수가 틀리면 곧바로 여러분의 뒤통수를 때릴 거니까. 그러니까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부담스러워요’라고 말해줬어요. 저도 저를 좋아해 주던 사람들 뒤통수를 딱 치려면 사실 마음이 아파요.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들고. ‘꼭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⑤ ‘빨간 바이러스’의 변신과 적색 경고등
진중권은 1998년 “죽은 박정희교의 노예가 되어버린 일그러진 우익들의 초상”이라는 타이틀을 단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출간한 적이 있다.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비튼 책이었다. 이 책에서 진중권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 1963년 세포분열로 태어난 빨간 바이러스 진중권은 86년 서울대 미학과를 마치고 군 적화 사업의 일환으로 입대해 병영에서 노태우 후보 낙선을 위한 선동 사업을 벌이다 귀환한 뒤, 92년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고, (중략) 청소년을 위한 대중교양서 《미학 오디세이》(새길)를 집필, 전교조 세포 활동을 측면 지원하고, 《춤추는 죽음》(세종서적)으로 “죽음의 굿판”을 일으키는 등 좌익문화단체(노문연)의 간부로 이 사회에 “문화사회주의자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다가, 무너진 동구사회주의를 재건하라는 지하당의 명으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 유학 온 이후, 베를린 한국영사관 앞에서 열린 97년 노동자 총파업 지지시위에 참가하고, 혁명기지 강화를 위해 공화국 북반부에 군량미를 보내고, 교회 주일학교에 침투, 유아들 사이에서 적색 소조 활동을 펴는 등, 일생을 세계 적화의 외길로 걸어왔다. 왜, 꼬와?…〉
우월과 도취, ‘골목대장 멘탈리티’가 느껴지는 자기소개 글을 통해 진중권은 스스로를 ‘빨간 바이러스’라고 주장했다. 선종한 박홍 신부가 생전 “학생운동에 레드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며 개탄한 일이 떠오른다. 그러나 2008년 4월 강연에서 진중권은 이런 고백을 했다.
“하지만 제가 한 번 생각이 크게 변한 적이 있는데요, 사회주의가 몰락했을 때였죠. 한동안 믿었던 체제였으나 눈앞에서 몰락하는 것을 보니, 현실적으로 검증된 것을 더 이상 우길 필요가 없게 된 거예요. 그러면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 생각한 건가 짚어봤어요. ‘마르크스의 책들은 그저 고전일 뿐인데 우리가 성경처럼 여겼던 것이 아닌가, 과학을 종교로 만들어버렸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믿음 때문에 팩트를 저버리고 현실에 눈이 멀어버린 게 아닌가 싶어서 ‘이제부터는 텍스트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겠다’ 마음먹었죠.”
진중권은 2013년 8월 《네 무덤에…》의 개정판을 내면서 ‘빨간 바이러스 진중권은…’으로 시작되는 초판의 자기소개 글을 지워버렸다.
〈… 저자 진중권은 1963년생. 198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언어철학 전공. 귀국 후 안티조선운동의 최전선에서 종횡무진하였으며, 2002년 군가산점 논란에서 100만 예비역 대군을 격파해 무장해제시켰고, 2005년 황우석 사태 때는 광신적인 황우석의 신도들에 둘러싸여 단기필마로 맞섰으며, 2007년 〈디워〉가 개봉했을 때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모든 사태를 정리하고, 2007년 촛불시위에서 컬러TV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대중들과 광장을 누비다 MB의 미움을 사 한예종과 중앙대 교수 자리에서 물러난 뒤 잠시 자유로이 필리핀 하늘을 날다 와서, 트위터에서 촌철살인의 트윗들을 날리고 있다.…〉
그런데 진중권은 이념적인 ‘빨강’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그가 하는 글과 말에서 논리를 펴는 방식은 ‘빨강’, 즉 적색 경고등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20년 전이나 10년 전, 지금까지도 싸가지가 없고 독설적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절대 진리, 절대 선임을 강요하기 위해 “집요하게 상대(진영)에게 비난을 가하고 가학적 글쓰기를 통해 모욕”을 퍼붓는다. 또 “(상대를) 악으로 몰아 이전투구로 전체집단이 망한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악과 거짓이 힘을 쓰게 하느니 차라리 망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진중권의 사이다 발언은 어쩌면 정치 혐오에 가깝다. 적대와 증오가 정치의 본질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적대와 증오의 시각에서 세상을 본다는 점은 한국 사회의 문제일지라도 개인이나 사회나 모두 불행한 일이다.
얼마 전 한 진보 유튜버는 진중권의 어투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이 사람이 왜 징징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5년 전만 해도 논리가 짱짱했는데…. 모두까기 인형이랄까? 모두를 비판하는 쾌감에 도취되어 우격다짐과 무논리, 징징댐,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다고 할까요?
지난 3년 동안 여론의 주목을 못 받다가 지금은 상업적 쓰임을 받고 있지만 모든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고, 태도의 따스함도 없습니다. 늘 자신을 유시민과 비교하고,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조국과 비교하는 열등의식을 가졌다고 보고, 아예 반대쪽으로 가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시장에서 필요로 한다고 여기는 식이죠.”
⑥ 영상에 젖은 독자에게 사유의 힘 전달
지난 1월 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가 아들 조모씨의 조지워싱턴대학의 시험 문제를 대신 풀어줬다는 사실이 검찰 공소장을 통해 확인됐다.
그러자 진중권은 조 전 장관을 향해 “당신은 어떤 종류의 사람입니까?”라며 이중인격 소유자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페이스북을 통해 조 전 장관이 아들의 온라인 시험을 대신 풀어준 직후 정유라를 비판한 것을 꼬집었다.
실제로 조 전 장관은 2016년 11월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대 교수, 직접 정유라 수업 과제물 대신 만들어줘’라는 제목의 언론 보도를 공유했다. 2016년 11월 당시는 ‘최순실 국정농단’ 정국으로,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시 비리 정황이 속속 드러나 국민적 공분을 사던 시기였다.
진중권의 ‘글발’은 텍스트 독자들을 외롭게 만들지 않는다. 사건을 엮을 줄 안다. 맥락을 파악해 잘 전달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할까.
현재를 똑 떨어진 시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연속성에서 본다. 자신의 지식을 ‘검색 가능’한 아카이브로 잘 만들어놓았다는 의미다. 진중권은 상대를 공격할 때마다 적절한 사례, 쓸 만한 정보를 잘 끄집어낸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는 저널리즘의 영역을 잘 활용해 상대를 아프게 한다. 그런 면에서 진중권은 문해력(文解力)이 뛰어나다.
영상이 텍스트를 능가하는 시대에 진중권의 힘은 영상에 젖은 독자에게 사유의 힘을 전달한다. 그에게 비난하든 열광하든 텍스트를 읽게 만들고, 행간을 유추하며 분석하도록 만든다. 그런 점에서 진중권은 텍스트주의자다.(참조: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그러고 보니 진중권이 《당대비평》 1999년 봄호에 기고한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의 첫 문장과 둘째 문장은 이렇다.
〈… 텍스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J. 데리다)
그러잖아도 내겐 텍스트밖에 없다.…〉⊙
“진정으로 집사가 되려면 그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고양이가 되어야 한다.”(p.322)
요즘 한국 사회에서 진중권은 가장 뜨거운 인물이다. 좌우를 넘나들며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모두까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똘똘한 좌파 집사(?)였던 그의 최근 공격성은, 진보 진영의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진보의 진보비판’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진중권은 뼛속 깊이 ‘빨간’ 고양이였던 만큼 누구보다 진영 논리에 익숙한 ‘내로남불’과 위선, 거짓, 패악질을 잘 알고 있다.
살다 살다 우파 진영에서 진중권에게 열광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다.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은 “진중권이야말로 양심 좌파이자 진짜 진보”라고 치켜세웠다. “무기력한 야당 국회의원 100명보다 더 낫다”는 말이 나온다.
그가 ‘까면’ 보수언론이 모두 그대로 받아쓴다. 이곳저곳 안 끼는 데가 없이 막 깐다. 댓글이 수백 개 달린다. 사방에서 논란을 일으킨다.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진중권이 말려든 것일까.
싫든 좋든 한국 사회가 진중권의 글과 말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진중권이 쓰는 모두까기 언어가 시원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싸가지(국어사전은 ‘사람에 대한 예의나 배려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설명한다)가 없다. 그런데 “싸가지 결핍증에는 약도 없다”고 한다.
진중권에게는 스스로 잘난 척하는 (도덕적) 우월감도 드러난다. “우월감이야말로 싸가지 없는 진보의 동력”이라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진보 논객’ 이 아닐 수 없다. 통쾌함을 느끼는 우파 지지자 진영에서조차 “실명 지식인답게 좀 더 정중했으면…” 하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싸가지 있는 진중권은 상상하기 어렵다. 진중권이야말로 싸가지가 없어야 한다. 왜? 평생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진중권의 모두까기 정체를 알아보자. 그의 과거 발언을 중심으로. 그는 예상과 달리 나름 일관된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가치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① “왜 나는 만날 개 잡는 일에만 불러?”
동양대 교수직을 그만둔 진중권은 요즘 실업자다. 그러나 강연, 원고청탁, 방송 및 유튜브 출연 등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얼마 전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왜 국회의원 나부랭이를 해야 돼요? 나는 국회의원만으로 생활이 안 돼요. 돈을 더 많이 벌어야 돼요.”
그가 국회의원보다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자랑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신문사, 잡지사, 방송사, 정당 등지에서 인터뷰·출연·강연 요청이 쇄도하는 모양이다. 최근에 자기 진영 쪽에서 미운털이 박혀서 그렇지 김제동·유시민과 비교해 출연료가 저렴할 것 같지는 않다. 다음은 진중권의 말이다.
“지식인이 먹물 아니겠어요? 먹물은 노동자들이 만들어주는 옷을 입고 농민들이 해주는 밥을 먹는데, 그 값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건이 끝난 다음에야 나타나서 정리한답시고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고 아무리 토론한들 이미 지나가 버린 사태잖아요.
어떤 사건이 터지면 그때그때 자기 역할을 해내는 게 지식인의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 투덜거리죠. ‘왜 나는 만날 개 잡는 일에만 불러?’”(2008년 4월 1일 강연에서)
진중권은 지식인의 역할이 ‘개 잡는 일’이라 생각하는 걸까. 개를 잡기 위해선 몽둥이를 들어야 한다. 몽둥이를 들면 반드시 피를 봐야 한다. 몽둥이가 크고 묵직할수록 개 잡기가 쉽다. 또 피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피는 개 잡기의 숙명이다.
진중권의 모두까기에 반응하는 이들은 반드시 두 부류다. ‘웃는 사람’과 ‘약 올라 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은 없다. “전체를 다 웃길 수 있는” 재능이 그에게 없다. 만약에 그런 재능이 있었다면 유시민을 능가하는 정치인이 되지 않았을까.
② “(악플에) 절대 주눅이 들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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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전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생각을 드러내고 논쟁을 한다. 구글을 통해 검색되는 그의 페이스북 텍스트들. |
진중권은 얼마 전 시사저널TV에 출연해 독일의 시인·극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의 말을 인용했다.
“지식인은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중이 들어야 할 이야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대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은 먹물이 아닙니다. 연예인이지.
저는 욕을 먹든 안 먹든 간에, 대중의 오해는 허용합니다. ‘나를 몰라보면 니(너) 손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오해는 풀린다.’ 그런 게 우리(먹물・지식인)가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진중권은 이명박 정권 때 이 대통령을 엄청나게 공격했다. 그의 주장처럼 결국 “MB의 미움을 사 한예종과 중앙대 (겸임)교수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대중이 환호했음은 물론이다. 당시도 지금처럼 언론의 헤드라인에 자주 등장했다. 댓글 몇천 개가 순식간에 붙었다. 그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그렇게 똑똑한가?’ ‘내가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야?’ 그런데 그런 것에 속으면 안 되거든요. 또 어떤 때는 대중이 악플을 달잖아요. 그것에 절대 주눅이 들면 안 됩니다.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고 대중이 하는 말을 다 믿어서는 안 돼요.”
지금 진중권은, 이명박 때처럼, 대중(이른바 ‘문빠’)에게 아첨할 마음이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 편에 서서, 편을 들어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게 ‘먹물’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당파성을 요구한다. 중립지대란 없다. 다수 대중이 지지하는 권력 편에 설 것을 강요한다. 대중(친여 지지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 먹물의 임무라고 진중권은 생각한다.
③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낀다. 내 인생은 실패”
진중권의 모두까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진보를 까고,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는 보수를, 지금은 진보를 자처하는 ‘문빠’ 팬덤을 까고 있다.
‘악성 투사’로서의 ‘개 잡기’가 진보 세력을 얼마나 아프게 했던지 2002년 7월 진보학자 강준만 교수는 〈진중권의 ‘소아병적 정의감’에 대해〉라는 글에서 이런 주장을 폈다.
〈… 너무도 진지하고 근엄한 이 세상에서 진중권과 같은 악동도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악동이 ‘좌파’니 ‘진보’니 하는 외투를 걸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고 있고, 그 결과 범개혁 진영 내부의 전혀 불필요한 갈등과 반목을 양산해내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진보 진영 내부의 소모적인 ‘팀킬’ 이야기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홍보수석을 지낸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와의 설전도 기억에 남는다. 진보 논객 간의 공개 다툼으로 그들 진영 내에서 화제가 됐을 정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013년 3월 29일 오전 경기도 여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되자, 조기숙은 “곽노현 사건은 사법사의 부끄러운 여론 재판으로 기록될 것이다. 진보 논객의 마녀사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판결이었다. 해당 진보 논객의 반성이 없다면 역사는 반복된다”고 비난했다. 진중권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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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진중권(가운데) 전 동양대 교수가 국회에서 열린 ‘길 잃은 보수정치 해법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진 교수는 “사회 주류가 바뀌었는데, 보수는 사양 시장만 붙잡고 있다가 ‘집착하는 보수’가 됐다”고 했다. |
적어도 모두까기 관점에서 진중권에게 이중잣대는 없어 보인다.
당시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강기석씨는 〈진실을 질식시키는 나쁜 언론의 메커니즘〉이란 글을 통해 진중권식(式) 진보 논객의 진보 비판을 이렇게 해석했다.
〈… 현재의 주류 근처에서 놀고 싶어 하는 적당히 진보적인 인사들은 수구언론보다 더 곽노현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도덕적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한편 진보 세력의 수호자임을 내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진중권 공격력은 혼자일 때 더욱 빛난다. 그 결과, 한 진영에 있던 동지들이 모두 떠나갔다. 원래 총칼의 끝이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할 때 더욱 섬뜩하고 아픈 법이다.
그렇다고 우파 진영의 시선이 그에게 고울 리 없다. 우파 논객인 황태순은 진중권을 이렇게 평가한다.
“진중권은 100명의 야당 의원보다 더 문재인(정부)을 조롱하지만 그는 뼛속까지 좌파입니다. 우파에서 진중권이 우리 편이라 알고 있지만, 아닙니다. 진중권은 지난해까지 정의당 당원이었어요. 스펙트럼상 가장 왼쪽에 있는 좌파 정당이죠. 얼마 전까지 ‘노유진(노회찬·유시민·진중권)의 정치카페’라는 팝 캐스트를 하면서 보수, 즉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철저하게 조롱하고 보수 가치를 깨 뭉갰던 사람입니다.”
진중권의 말과 글에 환호하는 이가 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외로움을 느끼는 듯하다. 최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철이 없었어요. 나는 피터 팬이 되어서 저들 후크 선장, 수구 세력인 미래통합당과 싸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팅커벨(조국 전 장관을 지칭)이 강남에서 사모펀드 하고 있었던 겁니다. 나만 바보가 된 것이죠.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낍니다. 나 혼자 남았어요.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봅니다.”
이런 외로움은 진중권에게 익숙한 감정이다. 앞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외로움을 토로한 일이 있다.
“1990년대 초에는 좋은 논객들이 참 많았어요. ‘안티조선’ 운운하면서 함께 놀고 퍼포먼스하고,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들도 굉장히 진지한 아주 좋은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많은 분들에게 ‘우리 계속 논객 생활 하자, 계속 같이 놀자’ 이랬는데, 많이들 정권을 따라가버렸어요. 특정 정권과 자신을 동일시해버리고 거기에 자기를 맞추다 보니 그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게 된 거죠. 김대중 정권이 끝나니까 논객의 별이 몇 개 져요, 또 노무현 정권이 몰락하니까 수많은 논객의 별이 져버린 거예요.”
권력의 불나비가 되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떠나갔다는 말이다. 그러나 외로움을 느낄망정 정치 담론의 시장에서 진중권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지고 ‘남는 장사’가 되어가고 있다.
④ 진중권은 원래 배신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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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교수가 펴낸 책들. 인문학, 미학 서적 등 다양하다. |
《당대비평》 1999년 봄호에 기고한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를 통해 전대협·한총련으로 표현되는 민족해방계열(NL)을 공격했다. 당시 운동권 세력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전대협(1987~1992), 한총련(1992~2007)은 거의 20년간 전국대학 학생회 조직과 학생운동을 신속하고 완벽하게 장악한 정치 세력이었다. 이들이 지금 주류가 되어 대한민국 정치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여(與)든 야(野)든 간에.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에서 진중권은 《불패의 신화 : 전대협 이야기 6년사》(저자 전대협 동우회)의 텍스트를 분석해 “전대협과 한총련의 언어를 파시스트의 언어와 유사한 가부장적, 폭력적, 전체주의적 언어”라고 비판했다.
또 “전대협과 한총련, 이 두 단체가 지도하는 동안 학생운동은 내포적 강함(도덕, 논리, 미학)에서 외연적 강함(힘, 무력, 조직 논리)으로 자기도 모르는 새에 지배자를 닮아가는 과정에서 정당성의 위기에 빠져버렸다”고 했다. 다시 말해 군부 파쇼 세력과 저항하던 학생운동 세력들이 그들이 증오하던 파쇼 세력을 닮아간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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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비평》 1999년 봄호에 기고한 진중권 교수의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의 첫 장. “전대협과 한총련의 언어를 파시스트의 언어와 유사한 가부장적, 폭력적, 전체주의적 언어”라고 비판했다. |
〈… “조국” “애국” “구국” “운명” “사명” “희생”. 이건 우익 국가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어휘다. 이 낱말들이 합쳐지면 집단을 위해 희생하라는 전체주의적 요구가 된다. 우익들이 국가를 실체화하여 리바이어던으로 만든다면, 전대협 역시 자기를 조그만 당으로 실체화하여 “죽음으로 사수”해야 할 어떤 것으로 만든다.
(중략) NL의 언어는 가부장적이다. “삼종지도” “임종석씨의 사진을 가지기 위한 여학생들의 경쟁”, 그리고 “의장님”의 재림 드라마. 스스로 생각할 힘이 없는 봉건 대중은 카리스마를 필요로 한다. (중략) ‘지도자’ ‘영도자’ ‘수령’ ‘총통’ ‘원수’, 스케일이 작으면 “깍듯이 의장님!”…〉
(《당대비평》 1999년 봄호 p.198, p.206, 진중권의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 중에서)
위의 인용문에서 “의장님”은 전대협 의장 임종석을 말한다. 진중권은 심지어 “NL언어의 지시론과 화용론은 북조선에 있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왜?”(p.206)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전대협, 한총련 파시즘’ 비판에 당시 주사파 세력들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배신’에 독이 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진중권을 비난하는 몇 편의 논문이 《말》지 등에 실렸지만 솔직히 한 수 아래였다.
그때부터 그에게 배신의 아이콘이 덧씌워졌다. ‘진중권=배신자’는 틀린 말이 아닌 셈이다. 진중권은 2008년 4월 강연회에서 자신의 배신을 언급했다.
“제가 이번에 진보신당에 들어갔거든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저놈은 또 진보신당 욕하면서 나갈 거야.’ 그래서 ‘어떻게 알았지?’ 싶었어요. (청중 웃음)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라 하더라도 이상한 쪽으로 가면 당연히 비판하면서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2004년에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면서, 소위 주사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절대 받으면 안 된다고 말했거든요. 그때는 아무도 안 듣더라고요. 그저 저를 조용히 시키려고 하기에 제가 나온 거예요. 이번엔 자기들이 나오더라고요. 지지하던 정당을 비판하면 ‘배신’으로 보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런 배신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배신(지지하는 정당 비판)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말에 눈길이 간다. 그는 이런 주장도 했다.
“서울대에 강의를 하러 갔습니다. 학생들이 활발하게 질문하더라고요. 이러쿵저러쿵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다가 제가 말했어요.
‘여러분이 제 후배지만, 저는 여러분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하거나 친근한 느낌조차 들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수십 년 후에는 국가의 부르주아 계층에서 지배 세력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가벼운 계급적 긴장감까지 느껴집니다.’
그랬더니 막 웃더라고요. ‘여러분이 지금 내게 환호하지만 절대 믿지 마세요. 나는 수가 틀리면 곧바로 여러분의 뒤통수를 때릴 거니까. 그러니까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부담스러워요’라고 말해줬어요. 저도 저를 좋아해 주던 사람들 뒤통수를 딱 치려면 사실 마음이 아파요.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들고. ‘꼭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⑤ ‘빨간 바이러스’의 변신과 적색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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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미학 오디세이》 출간 20년 간담회에서 진중권 교수는 “책이 10년 갈까 생각했는데 20년까지 와서 나도 놀랐다. 앞으로 10년을 더 가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휴머니스트 제공 |
〈… 1963년 세포분열로 태어난 빨간 바이러스 진중권은 86년 서울대 미학과를 마치고 군 적화 사업의 일환으로 입대해 병영에서 노태우 후보 낙선을 위한 선동 사업을 벌이다 귀환한 뒤, 92년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고, (중략) 청소년을 위한 대중교양서 《미학 오디세이》(새길)를 집필, 전교조 세포 활동을 측면 지원하고, 《춤추는 죽음》(세종서적)으로 “죽음의 굿판”을 일으키는 등 좌익문화단체(노문연)의 간부로 이 사회에 “문화사회주의자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다가, 무너진 동구사회주의를 재건하라는 지하당의 명으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 유학 온 이후, 베를린 한국영사관 앞에서 열린 97년 노동자 총파업 지지시위에 참가하고, 혁명기지 강화를 위해 공화국 북반부에 군량미를 보내고, 교회 주일학교에 침투, 유아들 사이에서 적색 소조 활동을 펴는 등, 일생을 세계 적화의 외길로 걸어왔다. 왜, 꼬와?…〉
우월과 도취, ‘골목대장 멘탈리티’가 느껴지는 자기소개 글을 통해 진중권은 스스로를 ‘빨간 바이러스’라고 주장했다. 선종한 박홍 신부가 생전 “학생운동에 레드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며 개탄한 일이 떠오른다. 그러나 2008년 4월 강연에서 진중권은 이런 고백을 했다.
“하지만 제가 한 번 생각이 크게 변한 적이 있는데요, 사회주의가 몰락했을 때였죠. 한동안 믿었던 체제였으나 눈앞에서 몰락하는 것을 보니, 현실적으로 검증된 것을 더 이상 우길 필요가 없게 된 거예요. 그러면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 생각한 건가 짚어봤어요. ‘마르크스의 책들은 그저 고전일 뿐인데 우리가 성경처럼 여겼던 것이 아닌가, 과학을 종교로 만들어버렸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믿음 때문에 팩트를 저버리고 현실에 눈이 멀어버린 게 아닌가 싶어서 ‘이제부터는 텍스트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겠다’ 마음먹었죠.”
진중권은 2013년 8월 《네 무덤에…》의 개정판을 내면서 ‘빨간 바이러스 진중권은…’으로 시작되는 초판의 자기소개 글을 지워버렸다.
〈… 저자 진중권은 1963년생. 198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언어철학 전공. 귀국 후 안티조선운동의 최전선에서 종횡무진하였으며, 2002년 군가산점 논란에서 100만 예비역 대군을 격파해 무장해제시켰고, 2005년 황우석 사태 때는 광신적인 황우석의 신도들에 둘러싸여 단기필마로 맞섰으며, 2007년 〈디워〉가 개봉했을 때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모든 사태를 정리하고, 2007년 촛불시위에서 컬러TV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대중들과 광장을 누비다 MB의 미움을 사 한예종과 중앙대 교수 자리에서 물러난 뒤 잠시 자유로이 필리핀 하늘을 날다 와서, 트위터에서 촌철살인의 트윗들을 날리고 있다.…〉
그런데 진중권은 이념적인 ‘빨강’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그가 하는 글과 말에서 논리를 펴는 방식은 ‘빨강’, 즉 적색 경고등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20년 전이나 10년 전, 지금까지도 싸가지가 없고 독설적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이 절대 진리, 절대 선임을 강요하기 위해 “집요하게 상대(진영)에게 비난을 가하고 가학적 글쓰기를 통해 모욕”을 퍼붓는다. 또 “(상대를) 악으로 몰아 이전투구로 전체집단이 망한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악과 거짓이 힘을 쓰게 하느니 차라리 망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진중권의 사이다 발언은 어쩌면 정치 혐오에 가깝다. 적대와 증오가 정치의 본질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적대와 증오의 시각에서 세상을 본다는 점은 한국 사회의 문제일지라도 개인이나 사회나 모두 불행한 일이다.
얼마 전 한 진보 유튜버는 진중권의 어투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이 사람이 왜 징징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5년 전만 해도 논리가 짱짱했는데…. 모두까기 인형이랄까? 모두를 비판하는 쾌감에 도취되어 우격다짐과 무논리, 징징댐,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다고 할까요?
지난 3년 동안 여론의 주목을 못 받다가 지금은 상업적 쓰임을 받고 있지만 모든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고, 태도의 따스함도 없습니다. 늘 자신을 유시민과 비교하고,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조국과 비교하는 열등의식을 가졌다고 보고, 아예 반대쪽으로 가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시장에서 필요로 한다고 여기는 식이죠.”
⑥ 영상에 젖은 독자에게 사유의 힘 전달
지난 1월 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가 아들 조모씨의 조지워싱턴대학의 시험 문제를 대신 풀어줬다는 사실이 검찰 공소장을 통해 확인됐다.
그러자 진중권은 조 전 장관을 향해 “당신은 어떤 종류의 사람입니까?”라며 이중인격 소유자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페이스북을 통해 조 전 장관이 아들의 온라인 시험을 대신 풀어준 직후 정유라를 비판한 것을 꼬집었다.
실제로 조 전 장관은 2016년 11월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대 교수, 직접 정유라 수업 과제물 대신 만들어줘’라는 제목의 언론 보도를 공유했다. 2016년 11월 당시는 ‘최순실 국정농단’ 정국으로,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입시 비리 정황이 속속 드러나 국민적 공분을 사던 시기였다.
진중권의 ‘글발’은 텍스트 독자들을 외롭게 만들지 않는다. 사건을 엮을 줄 안다. 맥락을 파악해 잘 전달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할까.
현재를 똑 떨어진 시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연속성에서 본다. 자신의 지식을 ‘검색 가능’한 아카이브로 잘 만들어놓았다는 의미다. 진중권은 상대를 공격할 때마다 적절한 사례, 쓸 만한 정보를 잘 끄집어낸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는 저널리즘의 영역을 잘 활용해 상대를 아프게 한다. 그런 면에서 진중권은 문해력(文解力)이 뛰어나다.
영상이 텍스트를 능가하는 시대에 진중권의 힘은 영상에 젖은 독자에게 사유의 힘을 전달한다. 그에게 비난하든 열광하든 텍스트를 읽게 만들고, 행간을 유추하며 분석하도록 만든다. 그런 점에서 진중권은 텍스트주의자다.(참조: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그러고 보니 진중권이 《당대비평》 1999년 봄호에 기고한 〈지배의 언어, 탈주의 언어〉의 첫 문장과 둘째 문장은 이렇다.
〈… 텍스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J. 데리다)
그러잖아도 내겐 텍스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