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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취재 最前線 〈1〉 친박 오래포럼회장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

“박근혜 대통령 주변엔 칭찬만 받으려는 장관 천지”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gs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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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대통령이 새벽에 전화 걸어와 국민회의 입당
⊙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주력했으나 검찰 문제로 결별 후 탄핵 앞장서
⊙ MB 때 비례대표 공천 못 받고 있을 때 김기춘 의원이 박 대통령과 연결
⊙ 박 대통령의 “도와주시면 안돼요?”에 마음 열고 편지로 자주 조언
⊙ “반기문 총장에게선 정치공학밖에 안 보인다”
  함승희(咸承熙·65) 강원랜드 사장과의 인터뷰는 9월 23일 보도된 짤막한 기사 때문에 기획됐다. 그날 함 사장은 서울 청담동 프리마호텔에서 사단법인 오래포럼 창립 8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오래’는 오늘과 내일이라는 뜻이다. ‘오래포럼’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원하는 친박(親朴) 모임으로 정가에 알려져 있다.
 
  창립 8주년 기념식에선 《세상을 바꿔라》라는 책도 선보였다. 같은 제목으로 네 번째 나온 책에는 친박뿐 아니라 친노(親盧) 인사들의 글도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실장을 맡았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전문가 13명의 글을 모아놓은 이 책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주문(注文)’의 성격이 짙어 보였다.
 
  역시 함 사장 스스로 책 서문 ‘개혁의 죄인, 개혁의 원수, 개혁의 병신’이란 제목의 발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봇,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국가 순위에서 한국이 139개국 가운데 25위에 그쳤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제언을 국정개혁에 참고했으면 좋겠다.”
 
 
  드라마 〈모래시계〉와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실제 모델
 
  인터뷰에 앞서 이력을 짚어보니 재미있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그가 몇 년 후배인 홍준표(洪準杓) 경상남도 지사와 함께 거악(巨惡)에 맞선 대표적인 강골(强骨) 검사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졌다. 그가 드라마 〈모래시계〉,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사실도 제법 보도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는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시절 1년간 조직폭력배 280명을 구속한 적도 있었다. 그는 새마을사건 비리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를 구속하면서 ‘세상에 죄가 있다면 못 잡아넣을 사람이 없다’는 신뢰를 줬다.
 
  이상한 점은 두 가지였다. 왜 그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에게 스카우트돼 정계에 진출했는데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을 후원하게 된 것일까 하는 점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검사 출신인 그가 왜 ‘검은돈’을 연상시키는 카지노 업체의 사장 자리에 앉아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걸 물으러 간 날 강원랜드는 총파업 결의를 했다.
 
  — 걱정이 많겠습니다.
 
  “직원들에게 말했어요. 너희가 명분도 없는 파업을 하면 나도 놀겠다고. 엉망인 회사 살려서 성과급 두둑이 줬더니 파업을 해요? 그럼 올해 경영평가에서 낮은 점수 받고 또 성과급 못 받는 거죠.”
 
  — 강원랜드를 살렸습니까?
 
  “살렸지요. D등급을 B등급으로 올렸으니.”
 
  — 취임 초기 특수부 검사 출신이 노름회사 CEO를 한다고 말이 많았습니다.
 
  “대신 강원랜드를 깨끗하게 만들었습니다.”
 
  — 카지노가 왜 파업을 한답니까?
 
  “우리 노조 상급단체가 성과연봉제에 반대한다고 파업을 한다는 거예요.”
 
  — 베팅하러 온 분들 화나겠네요, 카지노가 문을 닫으면.
 
  “당연하죠. 돈 잃은 분들이 돈 따보겠다고 왔는데 카지노 문이 닫혀 있으면. 전 노조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영업을 안 하겠다는 것은 불량제품 팔아놓고 환불받으러 온 손님 앞에 셔터를 내려놓은 것과 같은 것’이라고.”
 
  — 카지노가 불량제품 파는 곳입니까?
 
  “흐흐. 그렇다는 얘기지요. 2025년이면 카지노 독점이 사라져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를 궁리해야 할 판에 파업을 한다니 한심해서 그럽니다. 그나저나 제가 《월간조선》과 인연이 많아요.”
 
  — 무슨 인연입니까?
 
  “조갑제 선생께서 《월간조선》 편집장 할 때 저한테 전화를 걸어왔어요. 전 그때 검사 관두고 변호사 개업했을 때입니다. 그분이 이러시더군요. ‘왜 당신 같은 검찰총장감들은 다 중도에 관두냐’고. 그러면서 대검 특수부와 일본동경지검 특수부를 비교하시더군요. 전 우리 검사들의 수준이 일본 검사들보다 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구조가 문제일 뿐이지요.”
 
 
  검찰은 임명상의 구조적인 문제 풀어야
 
함승희 사장이 한 행사장에서 강원랜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구조가 왜 문제입니까?
 
  “내가 대검 중수부 검사면 나를 임명하는 게 대검 중수부장이잖아요. 중수부장은 검찰총장이 임명하고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렇게 돼 있으니 위의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지요.”
 
  — 한창 동화은행 사건으로 이름을 날릴 때인데 검사를 관둬서 아쉬웠습니까?
 
  “뭐라고 표현할까, 낚시에 비유하자면 월척이 걸렸는데 낚싯대가 부러질 거 같아서 낚싯대를 놔버렸다고 할까?”
 
  — 그 월척이 누굽니까?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였지요.”
 
  — 당시에는 왜 JP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까?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어떻게 이름을 밝혀요. 기자들에게 내 입으론 말 못 하니 짐작해 보라고만 했습니다. 당시 JP는 YS(김영삼 전 대통령) 당의 당대표였습니다.”
 
  — 그분은 얼마를 드셨는데요.
 
  “허허. 그걸 지금 와서.”
 
  — 원래 동화은행 사건의 출발점이 당시 월계수회의 핵심이었던 박철언(朴哲彦) 전 의원이었다면서요.
 
  “1993년 동화은행장 비자금 수사를 시작했을 때 박 전 의원은 ‘돈줄’이었어요.”
 
 
  홍준표가 먼저 박철언 구속시켜 맥이 풀렸다
 
  — 박 전 의원을 먼저 구속시킨 건 홍준표 당시 검사였습니다.
 
  “그때 맥이 탁 풀렸지. 홍 검사가 슬롯머신 사건으로 박 전 의원을 구속해 버린 겁니다. 내가 한발 늦었어요.”
 
  —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왕 시작한 거니까 끝을 보자는 각오로 동화은행장 비자금 사건 수사를 계속했는데, 하다 보니 그게 재벌기업 비자금으로 연결되고, 또 5공 금융황제라는 이원조 의원이 관련된 정황이 나오는 겁니다. 이 의원의 계좌를 추적하면서 정치자금이라는 것을 밝혀냈지요.”
 
  — 지금까지 한 얘기가 《월간조선》과 어떻게 연결이 됩니까?
 
  “아, 조갑제 선생이 그걸 글로 써보자는 거예요. 난 그분이 직접 오는 줄 알았는데 다른 기자가 왔어요. 실명(實名)은 밝히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난리가 났어요. 우리 동네 문방구 앞을 지나는데 유리창에 내 얼굴이 실린 《월간조선》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거야. 제목도 죽여줬어요. ‘함승희 전(前) 검사 드디어 입을 열다’. 변호사 개업한 지 6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 반향이 컸습니까?
 
  “김태정(金泰政) 검찰총장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야 이 새끼야, 너 뭐라고 했어’라며 막 화를 내더군요. 제목만 봐도 경기(驚氣)를 일으키지 않겠어요? 당시 변호사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전관예우가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월간조선》에 내 기사가 나간 후 의뢰가 딱 끊겼어요. 검찰과 각을 세우는 변호사에게 누가 사건을 맡기겠어요. 그 뒤로 사건 의뢰는 안 오고 기자들만 찾아왔어요.”
 
  — 그 2년 뒤 다시 ‘일’을 벌이셨지요?
 
  “모르는 여자가 찾아와서는 ‘힘드시죠’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커피 좋아하시죠’라고 하더군요. 내가 원두커피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검사 시절에도 직접 내려먹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원두커피하고 ‘미스터 커피’를 사온 겁니다. 그러면서 자기 남편도 기자인데 한번 언론에 나오면 본의 아니게 여러 일에 휘둘리게 된다면서 ‘본인 글로 직접 써보세요’라고 권유하는 겁니다. 거절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끈덕지게 찾아왔어요. 남산 외인아파트에 글 쓸 방까지 얻어주겠다면서. 결국 제가 졌지요.”
 
  — 책을 직접 썼습니까?
 
  “다섯 번 정도 만나서 수사한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파일을 참조해 가면서. 제가 건 조건은 하나였습니다. ‘최근의 사건 이야기는 안 쓴다’고. 제가 뭐 돈 벌 생각도 없었고 자식들에게 훗날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수사했던 사건 스무 개 정도를 200자 원고지 스무 장씩 썼을 겁니다.”
 
  — 그 책이 《성역은 없다》지요?
 
  “원래 내가 달았던 제목은 ‘검사란 무엇인가’였어요. 그 제목은 출판사에서 단 겁니다. 그 책이 금요일에 나왔는데, 따끈따끈한 책에서 잉크 냄새가 나는데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유준상 의원, 내 책 읽지도 않고 재수사 거론

 
  — 그런데 또 난리가 났지요?
 
  “김태정 총장이 또 전화를 걸어왔어요. ‘야 승희야. 요새 장사 잘되지. 좀 있어 봐’라면서 누군가를 바꿔주는 거예요. 영감님이었는데 호남 사람이더군요. 이름도 모르는 그분이 제게 이러는 거예요. ‘존경하는 함 검사님. 함 검사님 같은 분이 총장이 돼야 하는데 유감입니다’라고. 문제는 그 다음주 월요일날 일어났어요.”
 
  — 어떻게요?
 
  “낮 12시 조금 지나서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TV 보았느냐, 네 얼굴 대문짝만 하게 나왔다’면서. 방송을 보니 제가 금요일날 통화했던 사람이 유준상 의원이었습니다. 유 의원이 대정부 질문에서 내 책을 흔들면서 홍재형 당시 부총리에게 ‘홍 부총리, 이 책 읽어봤소? 이 책 쓴 사람이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부 검사인데 여기에 보면 권력 실세들 돈 먹은 얘기가 다 나와요. 재수사할 용의가 있습니까?’라고 하는 겁니다.”
 
  — 책 광고를 해준 셈이네요.
 
  “그렇지. 방송에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초판 2000권이 다 팔렸고 바로 5000권을 찍었는데 그것도 다 없어졌어요. 어느 서울시경 출입기자는 자기 돈으로 내 책 100권을 사서 후배들에게 돌렸을 정도입니다. 두 달 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어요.”
 
  — 그런데 그 책엔 권력 실세 이름들 안 나오잖아요.
 
  “그렇지. 앞서 내가 말했듯 최근 사건은 뺐으니까. 동화은행의 ‘동’자도 안 나온다니까요. 한마디로 내 책 읽어보지도 않고 대정부 질문한 거예요. 하하하.”
 
  — 그 책이 나온 이후 그나마 있던 사건 의뢰마저 없어졌겠네요.
 
  “당연하죠. 같이 일하던 동료 5명이 ‘외국이나 다녀오라’고 권유하더군요. ‘버는 건 고사하고 있는 거마저 다 날리게 생겼다’면서. 마침 출판사에서 인세로 5000만원을 받았어요. 공돈 5000만원이 생겼으니 내 돈 5000만원만 있으면 미국에서 1년쯤 보내겠다 싶어 스탠퍼드대학으로 떠났지요. 그러다 망했지만.”
 
  — 왜요?
 
  “하필 미국에 갔을 때 IMF 외환위기가 터졌어요. 갈 때는 100만원으로 1100달러쯤 받았는데 그게 480달러로 떨어지니 버틸 수가 없었어요. 1999년 12월에 귀국했습니다.”
 
 
  김민석부터 줄줄이 국민회의행(行) 권유
 
강원랜드는 1960~70년대 산업전사인 광부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곳에 세워졌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광부상을 건립했다.
  — 그게 정계에 데뷔한 계기가 됐지요?
 
  “당시 김민석 의원이 ‘함 선배, 차 한잔 하시죠’라며 연락을 취해왔어요. 만났더니 국회의원에 나가라는 거예요. 거절했습니다. ‘국회의원 하려면 상가(喪家)에도 다니고 해야 하는데 난 그런 거 못 한다’고. 그 이후 여러 사람이 연락을 해왔습니다. 김원기, 정동영, 정균환 의원 같은 분들이.”
 
  — 뭐라고 설득하던가요.
 
  “선거는 당에서 다 챙기니 사람만 오면 된다고. 상갓집 다니는 것도 다 옛날 시골에서나 있었던 일이라고. 당시 국민회의에서만 제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이회창 총재 측에서도 권유가 왔는데 거긴 국민회의보다 성의가 부족해 보이더라고. 국민회의는 날 잡으려는 의지가 강했는데 이 총재 쪽은 ‘나오면 자리는 주겠다’는 정도였어요.”
 
  — 결국 국민회의를 택했습니다.
 
  “누군가 이러더군요. ‘대통령(김대중)이 연락하면 올 거냐’고. 난 농담이다 싶어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했습니까?
 
  “다음날 새벽 6시쯤에 김 전 대통령이 전화를 해왔습니다. 아내가 받았는데 ‘여보쇼, 나 김대중이요’라고 한다는 거예요. 제가 옆에서 전화기에 귀를 대고 들어보니 정말 김대중 대통령 목소리예요. 그래서 전화를 받았지요.”
 
  — 김 대통령이 뭐라고 하던가요.
 
  “제가 처음엔 고사의 뜻을 비쳤어요. 국회의원이라는 자리에 매력도 느끼지 못하고 대단히 보수적인 공안검사인 데다 제 고향(강원도 양양)이 요즘 말로 하면 ‘보수꼴통’ 동네인데 어떻게 국민회의에 들어가냐고 했습니다.”
 
  — 그랬더니 뭐라던가요.
 
  “대통령은 ‘내가 야당이면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 없겠지만 우리가 여당이 됐으니 다양한 사람이 필요하다’, 뭐 그런 식이었습니다. 제가 대통령과 언쟁을 벌일 수도 없고 ‘알겠습니다’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국민회의 꼴통들이 많이 놀렸어요.”
 
  — 뭐라고 놀리던가요.
 
  “‘형은 정말 어리석다’고. 대통령이 직접 연락했을 정도면 ‘어느 지역구 주쇼’라고 했어야 한다고. 그 말을 안 해서 그런지 노원구에 공천을 받았는데 당시 현역이 3선이었던 백남치 의원이었습니다. 관악구나 금천구에 공천받았으면 놀고도 당선됐을 텐데….”
 
  —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민주당과 절연했는데.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노력했는데 막상 당선되자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잖아요. 다음 선거 걱정한 놈들, 희한한 친구들이 모여 그쪽으로 갔는데 난 자존심이 허락지 않더라고요. 조순형·추미애 의원과 저, 이렇게 셋이 남았습니다.”
 
 
 
노무현 지원한 건 돈 먹을 우려 없었기 때문

 
  —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노력했습니까?
 
  “당시 대통령 경선에서는 이인제 후보가 앞선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달랐어요. 제가 소속된 ‘바른정치모임’에서 저녁마다 후보들을 부른 적이 있어요. 이인제씨는 80% 정도 (대통령 후보가) 된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인 문제도 있었고. 본인이야 당연히 그 전 대통령 선거에서 몇백만 표를 얻었으니 그렇게 믿었겠지만. 김근태씨는 사람은 좋은데 너무 선생님 스타일이었어요. 뭐 한 가지 말하면 30분씩 떠드는 스타일인데 국민들이 지루해 하거든요. 한화갑씨는 다 알다시피 리틀 DJ였으니.”
 
  — 그래서 그 대안이 노무현이었다?
 
  “노무현 같으면 적어도 기업인들에게 돈은 안 받아먹을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했지요. 그게 ‘광주 반란’으로 나타난 겁니다.”
 
  — 얘기를 들어보면 노무현 대통령을 지원한 게 분명해 보입니다.
 
  “문제가 당선자 시절 생겼어요. 노무현 대통령과 독대(獨對)했는데 주제가 ‘검찰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검찰총장이나 법무부 장관부터 제대로 된 사람이 임명돼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은 재야인사 때와 다름이 없더군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강금실씨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거잖아요. 사법시험 기수도 낮고 드센 놈들 중에서도 드센 놈들은 다 모인 검찰을 사회적 경험도 없는 여자한테 맡긴 것 자체가….”
 
  — 그 후 검사와의 대화에서 말썽이 생겼지요?
 
  “(어린 검사에게) 호되게 당했잖아요. 본인은 변호사 시절처럼 침착하게 말하면, 말에는 자신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너무 나이브했어요. 결국 ‘이제 막 가자는 거죠’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 그랬다고 결별합니까?
 
  “결정적인 것은 주한미군 주둔 문제였습니다. 당시 미 의회를 매파들이 장악하고 있었어요.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만났는데 그가 ‘미국은 주한미군을 언제든지 철수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와 나눈 대화가 《조선일보》에 1면 톱으로 보도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는 미군 철수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어요. 대통령이 된 후 반미로 나갔지요. 그러다 탄핵된 거고.”
 
  — 열린우리당행에 대해 조순형 의원과는 상의했습니까?
 
  “조 의원께서는 ‘나는 늙어서 옮길 생각이 없다’면서 ‘함 의원은 신중히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전 ‘선배님 안 가면 저도 안 갑니다’라고 했지요.”
 
  — 두 달 뒤 탄핵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신한국당에서는 홍사덕·김기춘 의원과 민주당에서는 조순형 의원과 제가 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위원이 됐습니다. 그때 김기춘 의원을 뻔질나게 만났어요.”
 
  —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까?
 
  “당시 신한국당에는 법사위원회에 쟁쟁한 인물이 많았어요. 김기춘·홍준표·정인봉 이런 분들. 반면 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에는 검찰·법원을 아는 사람이 저 외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신한국당 법률가 출신들이 DJ를 맹공격했는데 유일하게 맞받아칠 수 있는 사람이 나였어요. 너무 심하게 공격하면 제가 그랬지요. ‘프로 선수끼리 너무하는 거 아니냐?’라고. 그러면 대충 알아들었어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는 오랜 인연
 
  — 훗날 박근혜 대통령 진영으로 오게 된 게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의 인연 때문 아닙니까?
 
  “김기춘 의원과는 인연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서경원 밀입북 사건 때 그분이 총장을 하셨고 제가 수사를 맡았는데 제가 직보(直報)를 했습니다. 두 번째는 아까 말한 탄핵사건 때, 김기춘 의원과 내가 여야당 법사위 간사였는데 법사위 간사는 탄핵심판을 맡는 소추위원장이나 소추위원이 됩니다. 둘이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어요.”
 
  — 국회의원 임기 마치고 별 활동을 안 하고 있을 때 김 전 비서실장이 연락을 해왔다면서요.
 
  “2007년쯤인가? 김기춘 의원께서 ‘점심이나 먹읍시다’하고 전화를 했어요. 그 자리에 나가보니 박 대표(박근혜)가 나와 계시더라고요. 전 박 대표하고 별 인연이 없었는데 그분은 절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 무슨 일로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영구씨를 국정원장에 지명했을 때 내가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였습니다. 전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어요. 첫째, 그는 과거에 간첩죄로 유죄를 받은 김낙중 석방 운동을 한 적이 있는데 우리 정보기관이 유일하게 기대는 게 인적 네트워크에 의한 휴민트다. 다른 위성정보 같은 것은 전부 미국에 의존한다. 이런 전력을 지닌 고영구를 미국 CIA가 신뢰하겠느냐. 만일 그런데도 국정원장 지명을 강행하면 그 공백을 무엇으로 메꾸겠느냐. 둘째, 건축법을 위반했고, 셋째 병역법을 위반했다, 이렇게 조목조목 이유를 댔습니다.”
 
 
  고영구 국정원장 반대하는 모습에 박 대통령이 반해
 
  — 박근혜 대통령이 거기에 반했군요.
 
  “점심식사 자리에서 그러더군요. 박 대표가 당시 ‘우리 당에는 왜 함승희 같은 저런 의원이 없느냐’고 했대요. 박 대표가 그 후 김기춘 의원에게 ‘저 사람 데려옵시다’라고 했다는 말도 들었어요.”
 
  —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설득하는 스타일입니까?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민주당 하던 놈이 어떻게 한나라당 갑니까’라고 하니 ‘(입)당 안 하시더라도 도와주실 수 있잖아요’라고 하더군요. 그게 인연이 됐습니다.”
 
  — 그즈음 오래포럼이 결성됐지요. 김종인(金鍾仁) 전 민주당 대표도 그중 한 분이고. 근데 김 전 대표를 감옥에 보낸 게 함 사장 아닙니까.
 
  “동화은행 사건 때 거물들, 진짜 도둑들은 다 빠져나갔어요. 일본으로 도망간 사람도 있고 게이오(慶應)대학으로 유학 간 사람도 있고. 수표 추적을 하다 보니 김종인씨가 나왔는데 그분은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지요. 구원(舊怨)도 풀 겸해서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순수하게 공부나 해보자는 말이 나와 포럼이 결성된 거고요.”
 
  — 최근 김종인씨와 윤여준씨가 보이는 행동은 노추(老醜) 아닙니까.
 
  “윤여준은 그런데 김종인씨는 조금 달라요. 그분은 자신의 생각을 바꾼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분 생각을 포용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러니까 이 진영 저 진영을 왔다갔다하는 겁니다.”
 
  — 초창기 포럼 멤버가 얼마나 됐습니까.
 
  “한 100여 명 됐지요.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사회봉사도 하고 그게 친박포럼처럼 변했어요.”
 
 
  박 대통령도 오래포럼에 자주 나와
 
   — 박근혜 대통령도 포럼에 나왔습니까?
 
  “‘저녁약속 없으시면 오셔서 들어보라’고 연락을 하면 꼭 왔어요. 한 3년 정도 그렇게.”
 
  — MB(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함 사장에게 손을 내밀지 않던가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 지지할 때와 이유가 비슷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돼야만 저배를 안 받고 밤문화도 없을 거 같았습니다. 당시 새누리당에서는 ‘주이야박(晝李夜朴)’이란 말이 있었어요. 낮에는 이명박 진영인 척하다가 밤에는 박근혜 진영으로 행세한다는.”
 
  — MB정권 때 별로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돈으로 선거 치른 분이니까. 나는 사실 한나라당에 한 번도 입당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2008년에 누가 비례대표 신청하라고 해서 300만원을 낸 적이 있어요. 비례대표에서 떨어졌으면 그 돈을 돌려줬어야 하는데 나한테 말도 하지 않고 특별당비를 50만원씩 6개월간 낸 것으로 처리했더라고요.”
 
  — 비례대표에서 떨어진 게 MB 진영과의 안 좋은 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이재오·이규택 같은 사람들이 나한테 엄청나게 혼났으니까. 비례대표 심사를 하던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공천심사회의를 하고 나와 나한테 그러더라고. ‘왜 그렇게 원수진 사람이 많으냐. 그 새끼가 널 못 잡아먹어서 안달났더라’고.”
 
  — 박근혜 대통령에게 결정적 조언을 했다면서요.
 
  “대통령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이 제일 곤혹스러웠던 게 인혁당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가 난 겁니다. 박 대통령은 ‘사과’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야당은 그걸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박 대통령도 우왕좌왕했고. 제가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헌법적 가치’라는 말로 빠져나오시라고 편지
 
  —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아버지(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애국심은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이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미국인들은 이념 충돌이 일어날 때 국가를 세운 건국지도자들의 정신을 항상 생각한다. 건국의 아버지 제퍼슨의 생각은 무엇이었는가. 박 대통령은 인혁당 문제에 대해 ‘헌법적 가치를 지키겠다’는 말만 하시라고. 그 이상은 절대 더 나가지 말라고. 그런 것은 아랫사람들에게 맡기라고. 그게 주효했지요.”
 
  — 박근혜 대통령이 받아들였습니까?
 
  “그다음부터 헌법적 가치라는 용어를 쓰시더군요. 김용준 헌법재판소장을 국무총리로 지명할 때도 헌법적 가치를 가장 잘 구현할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 편지를 많이 보냈습니까?
 
  “많이 보냈지요. 나중에 책으로 낼 만큼 될 겁니다.”
 
  — 지금은 박 대통령과 소원해졌습니까?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아무래도 청와대에 들어가셨으니까.”
 
  — 혹시 오래포럼에서 내는 책의 내용이 현 정부를 너무 비판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정책 입안에 도움이 되라고 한 소립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어떻게 보십니까.
 
  “장관이라는 자들이 바른 소리 하는 놈이 없어요. 대통령한테 보고서나 예쁘게 만들어서 보이려고 하고. 대통령한테 ‘수고하셨어요’ ‘고생하셨어요’ 소리나 들으려고 급급해 하는 놈들 천지예요.”
 
 
  대통령도 너무 혼자만 다 해결하려고 해
 
  — 박 대통령 퇴임 후가 걱정이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통치라는 것은 결국 어떤 사람을 쓰느냐인데…. 3년 반 정도를 이렇게 왔는데 판을 바꾸기가 쉽지 않지요. 새로운 사람을 써봤자 사방에 온통 적(敵)일 테고. 대통령도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데 너무 혼자만 다 해결하려고 하고.”
 
  — 차기 대권 주자로 반기문(潘基文) 유엔사무총장이 거론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난번에 한국 와서 하는 걸 보니 JP한테 인사하고 그러던데 전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경상도 표를 의식해서 그런지 안동 하회마을에 가서 할아버지들 모시는 걸 봤는데 저 같았으면 다산초당에 가서 정약용 선생 이야기도 하고 무엇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를 말했을 겁니다. 그러다 근처에 있는 손학규씨도 만나는 게 더 좋지 않았겠어요? 고려대나 이화여대 같은 데 가서 청년실업이나 여성문제를 말하는 게 할아버지들 뵙는 거보다는 더 낫지 않았나 싶어요.”
 
  — 반 총장에 대해 부정적인 거 같습니다.
 
  “본인이 그 정도 마인드라면 과거 대권 후보와 다른 게 뭐가 있습니까. 되기도 힘들고. 경상도에 충청도 표 합치면 된다는 정치공학적인 생각만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 검사 출신이시니 요즘의 검찰 이야기를 안 꺼낼 수가 없네요.
 
  “우리가 검사 할 때만 해도 누가 밥 먹자고 하면 가려서 먹었어요. 밥 먹자는 사람이 전과(前科)가 있는지도 알아보고 가려가면서 골라가면서 접촉했습니다. 지금은 검사들이 밥 먹고살기 힘들어졌는지 아무하고나 접촉해요.”
 
  — 저는 최근 일어난 많은 검찰 비리 중 홍만표 검사가 제일 이해가 안 가요. 집이 열 채만 있어도 자식까지 평생 먹고살 텐데 무슨 정신병 걸린 사람처럼 그렇게 집을 백 채 가까이 수집했으니.
 
  “홍만표는 잘 아는 후배인데…, 뭔가 가족 중의 누군가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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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욱    (2020-01-05) 찬성 : 0   반대 : 1
추미애 법무장관은 법무장관으로 임명되기전에 검찰 및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해 검찰인사 보고를 받고 윤석열 검찰사단을 해체하기위해 검칠수뇌부에 검찰출신도 아닌 범죄자(피의자)를 인사발령하여 윤석열 검찰사단을 해체하려는 음모는 내란음모죄, 반역죄, 국가문란죄등에 해당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유투브 :
https://www.youtube.com/watch?v=Ym5urwDwH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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