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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NLL 영토선 지켜낸 金章洙 전 국방장관

“청와대 386들에게 ‘참여정부 말아먹는다’는 욕 먹었다”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조준우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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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철 북측 대표, 노골적으로 NLL 무력화 시도… “남측 기자들 집합시켜 달라”
⊙ 장관급회담 출발 전, “NLL 일임해 달라”고 하자, 노 대통령 껄껄 웃어
⊙ 노 대통령 NLL 발언 때 서북지역 해군들 술렁거려… “유니폼은 나서지 마라”고 가라앉혀
⊙ 통일부와 NLL 놓고 극한 대립… “노무현 정부에서 NLL 사수한 게 가장 큰 보람”
⊙ 문재인 후보의 “경직됐다”는 비판 동의 못해… “盧정부 인사들, NLL 지켜준 것 감사해야”

金章洙
⊙ 63세. 육사 27기 졸업. 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 건양대 명예 행정학 박사.
⊙ 육군 6사단장, 육군 7군단장,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 現 새누리당 선대위 국방안보추진단장.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 김정일(金正日)과 나눴다는 비공개 대화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명박(李明博) 정부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낸 정문헌(鄭文憲) 새누리당 의원이 “노 대통령이 ‘영토주권’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지난 10월 8일 국감에서 “노 전 대통령이 10·4선언 하루 전날인 10월 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단독 비밀회담을 갖고 ‘NLL(북방한계선) 때문에 골치 아프다. NLL은 미국이 땅 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10월 10일 이번 파문을 ‘대북 게이트’로 규정하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는 한편, 국정조사를 제안하고 나섰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황당한 날조”라고 맞서고 있어, 12월 대선 정국을 흔들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문헌 의원은 기자들이 녹취록의 신빙성을 묻는 질문을 하자, “정상회담 한 달여 뒤 열린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김장수 국방장관에게 ‘노무현 대통령도 NLL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고 발언한 사실이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란과 관련, 박근혜(朴槿惠) 대선캠프의 안보정책을 총괄하는 김장수(金章洙) 전 국방장관을 만났다. 김 전 장관은 2007년 10·4 남북 정상회담 1개월여 뒤인 11월 열린 남북 국방장관회담 당시 남측 대표였다. 10·4 남북 정상회담 후인 2007년 11월 27일부터 29일까지 평양 송전각 초대소에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렸다. 2000년 9월 제주도에서 열린 1차 회담에 이어 9년 만이었다. 당시 김장수 장관이 남측 대표를 맡았고, 북한 대표는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었다.
 
  수행원은 국방부 정책기획관 정승조 중장, 국방부 북한정책팀장 문성묵 준장, 박찬봉 통일부 상근회담 대표, 조병제 외교통상부 북미국장 등이었다. 북측에선 김영철 중장, 허찬호·리인수 소장, 박림수 대좌 등 5명이 참석했다.
 
 
  “노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 보라”
 
2007년 10월 장성진급 및 보직신고를 마친 뒤 노무현 대통령이 김장수(앞줄 오른쪽) 장관 등 군 수뇌부와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임기 동안 NLL 문제를 둘러싸고 군과 여러 차례 갈등을 빚었다.
  ―10·4 회담에서 노 대통령 발언을 놓고 여야가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의 국기(國紀)를 뒤흔드는 엄청난 일이라고 봅니다.
 
  “정문헌 의원이 주장하는 노 대통령의 NLL 발언이라는 것을 들어 보면 노 대통령의 말투와 상당히 비슷하긴 해요. 당시 정상회담을 수행했던 저로서는 정말 두 사람이 단독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록을 담당한 조명균(趙明均) 안보정책비서관이 녹음기를 갖고 들어가지 못해 기록만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장관급 회담장에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의 ‘워딩’을 들었을 때, 노 대통령의 평소 발언이라고 느꼈나요.
 
  “김일철은 ‘노무현 대통령도 서해 북방한계선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국방장관이 그런 얘기를 하느냐’는 말밖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김일철은 제가 입장을 바꾸지 않자 ‘노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 보라’는 말도 여러 차례 했어요. 저는 전권을 위임받고 왔는데, 대통령에게 왜 전화를 하느냐고 반박했어요. NLL은 (남한에서) 대통령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선이 아니고 국민적 동의하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장수 전 장관은 “김일철은 노 대통령을 언급하면서도, 남북 정상회담 때 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했다는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면서 “김일철의 코멘트가 정상회담 때 노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한 말인지, 정상회담 한 달 뒤 노 대통령이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한 연설을 북한이 한국 언론에서 캐치해 인용한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고 했다.
 
  ―김일철의 발언을 보면 마치 노 대통령의 의중을 남한의 국방장관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뉘앙스군요. 그렇다면 김일철은 장관급 회담에서 NLL 문제가 북측의 의도대로 잘 풀릴 것이라고 예단했겠군요.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김일철은 이미 NLL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숱한 발언들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장관급 회담에서 작심하고 NLL을 무력화하려고 했던 겁니다.”
 
  한편, 지난 10월 12일, 정 의원은 “나는 ‘비밀’ 대화록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으며, 녹취와 우리 쪽 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진 (공식) 대화록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둘만 참여한 비밀회담은 없었으며, 따라서 비밀 대화록도 없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대화록의 핵심 쟁점은 ‘공식 회담록에 정 의원이 주장하는 영토주권을 포기하는 대화 내용이 기록돼 있느냐’다. 대통령 관련 기록물은 최장 15년간 공개할 수 없다. 다만 국회의원 3분의 2가 동의하면 공개가 가능하다.
 
 
  김일철, 기조연설부터 김 장관 비판
 
2007년 11월 29일 평양 송전각에서 열린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남측 김장수 국방장관과 북측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함께 건배하고 있다.
  북측은 예상대로 남북 장관급회담 첫날부터 NLL 문제와 주적개념 삭제 등 민감한 사안을 들고 나와 우리측을 압박했다. 결국 첫날 회담은 정치적 소모성 공방으로 허비하다 정회하고 말았다. 회담장에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우리 대표단이 “저거 내려야지!”라고 말하자, 북측은 “당신은 아버지 어머니도 이거, 저거로 부르나”라고 따지는 등 한 달 전에 열린 정상회담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김일철은 기조연설에서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에 대해 결례를 한 장본인이 국방장관회담 대표로 와 있다”며 우리측 회담대표인 김장수 장관을 비판했다.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었습니까.
 
  “아니죠. 나도 기조연설을 통해서 ‘내가 무슨 결례를 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죠. 그러자 김일철은 ‘남조선 국방장관이 우리 국방위원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항의전화를 많이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도 ‘우리 대통령이 10·4회담 당시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으실 때 영접 나온 북측 인사 중에도 인사를 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고 했죠. ‘그래서 그랬냐’고 묻기에 ‘나 원래 그렇다’고 했죠.”
 
  둘째 날 회담에서 김일철은 전날 초상화 다툼을 거론하며 “이거, 통일하자면 제도·개념 갖고 논의하면 안 된다고 느꼈다. 뼈저리게 들렸다”고 포문을 열었다. 김 장관은 1994년 북한의 ‘서울 불바다’ 위협을 거론하며 틈만 나면 북이 남을 위협해 온 사실을 열거했다.
 
  “하도 화가 나기에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김일철에게 본질적인 문제를 꺼냈어요. 북이 핵과 화학무기를 개발해 민족이 공멸할 위기에 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서해안에 해안포가 몇백 문이 있고, 그 뒤에 방사포가 버티고 있고, 황해도 과일에 비행기지가 있다. 그래 놓고 무슨 평화수역을 만들자고 하느냐.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말하는 선군정치냐’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김일철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군요.”
 
  ―우리측 입장이 강경한 것에 북측이 놀라지 않던가요.
 
  “제가 강한 톤으로 이야기하니 우리 실무진이 속이 시원하다고 했습니다. 회담 규칙상 저와 김일철, 두 대표만 발언할 수 있었습니다. 김일철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거론하기에, ‘여보, 일철 선생. 과거 김일성 주석도 주한미군은 동북아 균형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라고 이해를 했고, 김정일 위원장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요. 지금 당장 물어보시오’라고 했어요.”
 
  ―북측은 NLL 문제와 관련해서 노 대통령에게 물어보라고 하고, 우리는 주한미군 문제를 김정일에게 물어보라고 했으니, 장군멍군인 셈이었네요.
 
  “허, 그렇게 됐네요. 아무튼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은 다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니까 소신껏 하게 되고, 북한측도 끌려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북, 남한 해역에 공동어로수역 만들자 주장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김장수 국방장관과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훈장과 차수 계급장을 달고 나온 김일철은 남한 언론을 “NLL을 두둔하는 수구보수”라고 하면서도, 대화가 안 풀리자 풀(pool) 기자를 모아 달라고 했다면서요.
 
  “‘북방한계선을 놓고 (남한 언론) 수구파가 말씀을 많이 한다’며 ‘이런 것을 극복하지 못해 통일이 주춤해지고 내분이 생겨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기자들에게 NLL의 부당성을 이야기하면 기자들도 이해하고 남조선 사람들도 이해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순진한 건가요, 객기인가요.
 
  “내가 그랬어요. 일철 선생, 남한 언론의 특징을 모르느냐? (남한 언론에는)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다. 다양한 의견이 통일되지 않고 나오는 것이 우리 체제의 특징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언론이) 비판하면 나도 싫다. 하지만 그런 의견도 있구나 하고 넘어간다. 당신들이 기자들 집합시켜 놓고 이야기한다고 씨가 먹히겠느냐고.”
 
  ―김일철이 뭐라 하던가요.
 
  “그래도 ‘언론이라고 다 맞는 게 아니다’면서 기자들을 집합시켜 달라고 막무가내로 그래요. ‘회담 대표가 기자들에게 직접 브리핑하는 건 실무회담 때도 의제에 포함돼 있지 않은 사안이다. 갑자기 그런 얘기 하면 회담 룰이 깨진다’고 막았죠.”
 
  ―우리측은 NLL을 중심으로 남북 양쪽에 같은 거리, 같은 면적으로 공동어로수역을 만들려 했는데, 북측은 NLL 남측에 공동어로수역을 두자고 하면서 회담이 깨졌다면서요.
 
  “국방장관 회담에서 북한은 NLL 재설정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저는 공동어로수역 문제를 들고 갔습니다. 기존의 NLL을 기준으로 양쪽이 같은 거리, 같은 면적으로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자고요. ‘수역 내 수자원부터 우선 조사를 하고, 통제는 군함이 아닌 관공선으로 하자’고 했는데, 3일 동안 한 발짝도 진전이 안됐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NLL 밑으로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자는 것인데, 이건 NLL을 밑으로 내리자는 소리라, 우리측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죠.”
 
 
  北, NLL 재설정 요구하다 만찬 불참 통보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갖기 위해 김장수 국방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회의를 가진 뒤 평양을 향해 출발하고 있다.
  ―NLL 재설정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니까 북측이 어떻게 나왔습니까.
 
  “우리측이 2박3일 일정 가운데 이틀째 만찬을 베풀게 돼 있었습니다. 북측은 ‘아무것도 합의된 것이 없으니 만찬에 참석할 생각이 없다’고 통보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앞으로 30분 여유를 주겠다. 그때까지 안 오면 만찬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 만찬비용도 없다’고 했습니다. 만찬비용을 1인당 100달러씩 하기로 했어요. 북측은 음식을 이미 다 준비했는데 만찬비를 받아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측 40명, 북측 40명이면 8000달러입니다. 딱 25분이 지나니까 북측 대표단이 만찬장에 들어왔습니다.”
 
  만찬 시작 전 김장수 장관은 김일철에게 “우리측 요원 30명에게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 편으로 떠날 수 있도록 짐을 꾸리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갑자기 김일철이 김 장관의 손을 덥석 잡으며 “장수 장관, 그러지 마시오”라고 말렸다. 김 장관이 이렇게 말했다.
 
  “일철 선생도 합의가 안돼 골치 아프겠지만, 나도 골치가 아파 죽겠다. 나는 돌아가면 대통령께도 송구스럽고, 대(對)국민 성명도 발표해야 한다. 국민의 기대와 대통령의 위임을 받고 왔는데 합의를 못하면 국방장관으로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내 후임 장관 하고 잘해 보시라.”
 
  ―북측의 전매특허인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을 우리가 써먹었군요.
 
  “그런 셈이죠. 김일철이 제 손을 또 한 번 잡더니 ‘장수 장관,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께서 내일 중으로 합의를 보도록 지침을 주셨습니다. 내일이면 다 잘될 거요’라고 해요. 제가 ‘말로만 그런 것 아니오?’라고 물으니까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좋수다, 대신 내일은 나하고 당신하고 만나지 맙시다. 실무진에게 죽이 되든 떡이 되든 맡기고 우리는 합의내용에 서명만 합시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그걸 빼 버리고 서명합시다’고 했습니다. 즉시 동의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남북 군부는 회담을 생산적 분위기로 돌렸습니다.”
 
 
  합의서에 NLL 준수조항 삽입 지시
 
2007년 11월 28일 남북 국방장관회담에 참석한 김장수 국방장관이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 위치한 단군릉을 참관해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아래는 김장수 장관의 방명록 서명.
  김장수 전 장관은 기자에게 만찬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만찬장에 식사와 술이 들어왔고, 김 장관의 군사보좌관인 김왕경 준장이 김일철에게 술을 권했다. 김일철은 새파란 친구가 별 하나를 달고 결례를 한다는 눈초리로 쏘아보다 “당신 나이가 몇이오?”라고 물었다. 김 준장이 “올해 50살입니다”라고 하자, 싸늘한 눈빛을 거두고 술잔을 받았다. 심장에 이상이 있어 박동기를 차고 다니는 김일철은 술을 전혀 못하지만, 이날 폭탄주를 넉잔이나 들이켰다고 한다. 김왕경 준장은 테이블마다 경직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북측 참석자들에게 호탕하게 술을 권했다. 이날 만찬이 끝나고 김 준장은 업혀서 나왔다. 서울에 돌아온 그는 일주일간 앓아 누웠다고 한다.
 
  김장수 장관은 사흘째 되는 날, 1호각(귀빈각) 숙소에 10시간 정도 머무르며 실무자들 간의 회담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내 방에 러시아제 피아노가 있었어요. 답답한 마음도 풀 겸 해서 대중가요인 ‘애모’도 쳤다가 찬송가도 쳤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아마도 북한에서 찬송가를 피아노 쳐 가며 마음껏 부른 사람은 제가 처음일 겁니다.”
 
  ―북측 안내원들이 주변에 있었을 텐데요.
 
  “피아노를 칠 때 안내원은 없었어요. 남측 대표단을 위한 숙소는 세 개로 나뉘어 있었고, 숙소 간에는 통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북측의 계산된 ‘분산전략’이었어요. 우리측 수행요원들이 각자의 숙소를 점검하니 도청장치와 CCTV가 모두 다섯 개나 발견됐습니다.”
 
  ―이튿날 합의서 작성은 누구에게 맡겼습니까.
 
  “실무자로 참여한 정승조 국방부 정책기획관(현 합참의장)에게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나와 있는 NLL 관련 문구를 살려 ‘쌍방은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을 철저히 준수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을 꼭 삽입하라. 그래야 우리 군이 NLL을 지켰다는 확실한 증표가 될 것이라고 지시했습니다.”
 
  ―NLL을 무력화하려는 북측에 맞서 NLL을 합의문에 넣은 것은 상당한 성과로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장관급회담 합의서 2조 1항을 보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NLL과 NLL 이남지역을 말하는 겁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보면, 서해지역의 해상경계선은 계속 협의한다고 돼 있어요. 1992년 북한은 NLL을 무시하고 해상경계선(조선서해해상군사분계선)을 발표했고, 서해해상군사분계선 확정에 대한 후속조치로 2000년 6개 항의 서해5도통항질서(서해 5도에 대한 통항질서)를 발표했습니다.”
 
  ―북측 대표단이 ‘불가침 경계선’ 문구를 합의서에 넣을 때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북측 반응은 지금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무튼 정승조 장군이 상대편 실무자인 김영철 현 정찰총국장을 상대로 협상을 상당히 잘했습니다. 회담 첫날부터 회담장에서 김일성 초상화를 놓고 세게 붙었지만, 우리 대표단의 결연한 의지가 통했는지, 북측이 반대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우리 벼랑 끝 전술이 먹혔다고 할까요, 허허.”
 
  ―회담에 다녀온 직후,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니 뭐라고 하던가요.
 
  “보고를 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은 없네요. 하지만 대동강변에서 남북 군부가 심각하게 대립하면서도 2박3일 동안 생산적인 합의를 해 낸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봅니다. 더군다나 우리 군은 ‘NLL 사수’라는 우리의 안보원칙을 지켰던 겁니다.”
 
 
  노 대통령, 김 장관에게 전권 위임
 
  ―평양에 가기 전 청와대와 이견조율 과정은 거쳤습니까.
 
  “출발 4~5일 전 회담전략회의가 열렸는데, 그때 노 대통령께 보고를 드렸어요. 제가 ‘북한이 NLL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남북 공동어로수역과 관련해 검토하겠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노 대통령도 ‘알았다’고 말씀하시며 넘어갔죠.”
 
  ―국방장관회담 때, 청와대의 지침은 어떤 것이었나요.
 
  “제가 회담전략회의에서 ‘대통령님, 저에게 꼭 지시할 사항은 없습니까. 만일 임무를 지시하시면, 저는 그 임무수행을 위해 다른 것을 다 양보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 드렸어요.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해서 ‘NLL에 관한 문제는 모든 것을 일임해 주십시오’라고 했어요. 노 대통령이 파안대소하면서 ‘그럼, 국방장관 소신껏 하고 오세요’라고 했습니다.”
 
  ―2006년 노 대통령은 NLL 문제에 대해, 군이 ‘북한과 논의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그해 6월 16일 충남 계룡대에서 군 수뇌부와 육·해·공군 장성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평화는 신뢰가 중요하고 전략적 유연성이 있어야 하며, 이런 차원에서 NLL을 (북한과) 협상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 금기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노 대통령이 김 장관께 전권을 위임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NLL에 대한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고요, 노 대통령과 저와의 인간적인 신뢰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노 대통령을 모신 사람으로 불충스런 표현이지만, NLL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과 군이 서로 상반된 트랙을 갔으니까요.”
 
  ―대통령이 전권을 위임했다고 했지만, 정말 국방장관회담에 대한 별도 지침이 전혀 없었습니까. NLL 문제로 장관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중간에 빈손으로 돌아와도 좋다”는 청와대의 훈령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절대 그런 것은 없었어요. 내가 전적으로 책임과 권한을 위임받고 갔습니다. 국방장관회담 직전 대통령에게 보고를 단독으로 하고 나오는 길에 백종천(白鍾天)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절대 평양으로 훈령을 보내지 마라. 대통령께서 나에게 전권을 위임하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아, 훈령이 딱 한 가지 있긴 있었습니다. 여수엑스포 유치와 관련된 것이었어요. 북한이 국제해사기구(IMO)에 당일치기로 가입해서 여수엑스포 유치에 찬성표를 던졌거든요. 청와대에서 ‘한국의 여수엑스포 유치를 위해 찬성표를 던진 것에 대해 청와대에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김정일 위원장한테 전달해 주기를 바란다’는 훈령을 보내와 김일철에게 전달한 일이 있습니다.”
 
 
  노 대통령 NLL 발언 때 군부 불만 위험수위
 
2차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하는 공식수행원 간담회가 2007년 9월 21일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열렸다. 회의에 앞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함께 방북하는 김장수 국방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김정일과 회담한 지 1주일쯤 뒤인 10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정당대표 초청 오찬간담회 및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그 선(NLL)이 처음에는 우리 군대의 작전금지선이었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휴전선은 쌍방이 합의한 선인데, 이것(NLL)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고도 했다.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가 처음으로 NLL이 정식 영토선이 아니라고 언급한 것이다.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은 10월 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가 이어지자, “NLL은 해상경계선이고 끝까지 지켜야 할 선”이라고 답변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서해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 문제를 논의할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앞두고 청와대와 통일부·군 간에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 무렵 노 대통령과 이재정(李在禎) 통일부장관이 NLL 재설정이 필요하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계속 했는데, 장관회담 때 그로 인한 정신적 압박은 없었습니까.
 
  “노 대통령이 NLL 관련 발언을 했을 때, 서북쪽에 있는 해군들이 상당히 술렁거렸어요. 아차 싶었어요. 군 통수권자에 대한 엄정함은 살아 있어야 하거든요. 제가 ‘유니폼을 입은 육·해·공 장군들은 절대 대통령님 말에 왈가왈부하지 마라. 대신 너희의 의중을 잘 아는 ‘정무직 민간인’인 국방장관이 다 알아서 하겠다’라고 잠재웠습니다. 국방부가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황이라 압박감은 있었지만, NLL은 꼭 지켜야 했으니까요. 만약 그를 이유로 장관직을 그만둬야 했다면 저는 영광으로 삼았을 겁니다.”
 
  ―평소 대통령께 NLL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말했습니까.
 
  “노 대통령은 만일 NLL이 영토선이라면 휴전선도 영토선이 되어야 하고, 그럴 경우 ‘한반도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조항에도 위배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선 자체가 군사분계선(MDL)처럼 쌍방이 합의한 선이 아니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대통령은 NLL을 헌법적으로 판단하시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영토선이고, 국토를 지키는 경계선이고, 피로써 지킨 선이고, 끝까지 사수해야 하는 선입니다’라고 했어요.”
 
  ―노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로서 군과 대화를 시도했나요.
 
  “NLL 문제를 제외하고는 군 간부 증원이나 예산증액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경청해 주셨어요. 저도 노 대통령께 수시로 보고 드렸고요. 국방개혁을 하는데 예산편성을 위해 기획예산처에 지침을 내려 달라, 간부 인력 1420명이 필요하니 증원에 동의해 달라고 했어요. 특히, ‘잠실 제2롯데월드를 허가하면 도미노처럼 다른 비행장 주변 지역들도 벌떼처럼 달려들 것입니다’라고 하니 ‘그럼, 어떡하노?’라고 물으세요. ‘청와대서 국무조정실장에게 행정협의조정회의에서 국방장관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만일 노무현 정부 때 우리 군이 정치적으로 휘둘려 NLL 문제를 처리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다행히도 우리 군은 정말 NLL에 대한 스탠스를 잘 지켰습니다. 전임 윤광웅(尹光雄) 장관님도 NLL에 대해서만은 대통령께 ‘체계적인 평화접근’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린 걸로 알아요. 실제로 제가 정상회담에서 김정일과 꼿꼿하게 악수하는 바람에 ‘꼿꼿장수’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정말로 자랑스러운 건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NLL을 지킨 겁니다. 전 남북 장관급회담을 비롯한 청와대와 국회에서 일관되게 NLL에 대한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노 대통령, NLL 논쟁 진보측 손 들어줘
 
김장수 장관이 2007년 10월 2일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국방부와 통일부는 2006년부터 NLL 문제를 놓고 격돌했다. NLL 문제는 2006년 5월에 열린 제4차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측이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도에 대한 남측의 주권을 최초로 공식 인정하며 새로운 해상분계선을 제안했다. 2007년 5월 8일부터 11일까지 5차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측은 공동어로수역 설정, 북측 어선의 해주항 직항문제를 의제로 할 것을 주장했다.
 
  이전까지 북한이 선포한 해상경계선은 서해 우도에서 비스듬히 서해 쪽으로 그어져 NLL을 상당히 남하해 덕적군도 위쪽의 해상을 거의 북쪽 수역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이것이 북쪽이 주장한 ‘서해 5개 섬 통항질서’ 등 기존 NLL 무력화 주장이다.
 
  그런데 북한은 기존 주장을 철회하고 경계선을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근방에서는 NLL과 유사하게 설정하되, 소청도에서 연평도에 이르는 수역에서는 NLL 이남 1~2km로 그어야 한다는 제의를 해 왔다. 언뜻 보면 일부 지역에서 NLL 경계선을 약간만 남쪽으로 조정해 주면 NLL을 해상분계선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였다. “북한이 NLL을 인정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통일부는 국방부가 북한의 변화된 입장에 대한 고려 없이 NLL에 대한 논의를 아예 피하려 한다고 인식하고 적잖이 불만스러워했다. 국방부는 국방부대로 “포 사정거리 등 군사적 판단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라며 “그들은 아직도 북방한계선이니 NLL이니 하는 말 자체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맞섰다. 김장수 장관과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이 문제로 정면 충돌했다.
 
  통일부는 2007년 정상회담을 앞두고 NLL이 북한과 타협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2007년 8월 국회에서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니라 군사적 충돌을 막는 안보적 개념에서 설정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장관은 통일부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점을 2007년 8월 18일로 기억한다. 7월 초 김만복(金萬福) 국정원장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에게 접촉을 제안했고, 7월 29일 김 원장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면서 정상회담 분위기가 급진전하는 시점이었다.
 
  8월 18일 토요일, 노 대통령 주재로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청와대 회의에 청와대 안보정책실, 외교·안보 부처 장관, 서주석 국방연구원 연구위원, 고유환 동국대 교수,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박사 등 17명이 참석했다. 김 전 장관은 “나는 결막염으로, 대통령께 전염시킬 우려가 있어 회의 참석을 하지 않고 대신 김관진(金寬鎭) 합참의장(현 국방장관)에게 발표를 맡겼었다”면서 “회의에서 정상회담 의제와 준비상황 등 여러 가지 주제를 논의했는데, 핵심 의제는 NLL 문제였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의 말이다.
 
  “발제를 한 조성렬 박사는 저와 주장이 같았어요. ‘국제법적으로 보자면 NLL은 경계선이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고 논란의 소지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NLL이 경계선으로 작용하는 국제정치적 관점을 주목해야 한다. 법적인 문제로서 NLL은 당분간 덮어 두고 현 경계선을 인정한다는 전제 위에서 평화적 관리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조 발제를 맡은 서주석 박사는 저와 견해가 달랐어요. ‘NLL은 유엔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경계선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므로 우리 내부에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재정 장관도 ‘여론도 있으니 정상회담 문제와 관련 없이 우리 내부에서 계속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정상회담과 국내에서 NLL에 대한 여론수렴은 별도로 가자는 ‘투 트랙(two track)’을 거론한 겁니다. 노 대통령은 이들의 주장을 수용했습니다.”
 
 
  청와대 386들, 노골적 적개심 드러내며 장관교체설 흘려
 
지난 10월 4일 문재인 후보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10·4 공동선언기념 문정인 교수와의 특별대담’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문 후보는 당선 후 대북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청와대와 통일부·군 간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청와대에서 안보 관련 장관회의를 하면, 통일부 이재정 장관과 항상 NLL 때문에 등을 졌습니다. 정상회담을 하기 전인데 이 문제 때문에 통일부에서 제게 결례를 했어요. 통일부 본부장급이 ‘NLL은 국방부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한 일이 있었어요. 내가 청와대 회의에 참석해서 ‘NLL은 군사회담 이슈이고 군사회담 주무부처는 국방부인 만큼, 다른 부처는 섣불리 공개 거론하지 마라’고 하니까, 또 그 회의 참석자들이 ‘김 장관의 발언이 너무 심하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거예요.
 
  그때 회의 멤버가 국정원장, 통일부장관, 외교부장관, 국방부장관, 안보실장, 국무조정실장 6명이에요. ‘안보조정회의가 다수결로 결정할 사항이냐? 이렇게 여러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것은 마녀사냥 아닌가’라고 하고 밖으로 나갔어요. 잠시 후 속개된 회의에서 ‘NLL은 군사이슈이기 때문에 다른 부처가 앞서가는 발언을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청와대 분위기는 김 장관 성토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386 출신 젊은 행정관들은 청와대에 대한 도전으로 판단했다. 그들은 “NLL이 정상회담 의제도 될 수 없고, 대통령도 이 문제를 함부로 거론하지 말라는 뜻 아닌가. 대통령도 안되고 국방장관만 할 수 있는 발언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라며 “얼굴 허연 놈 하나가 육군에서 올라와 장관 자리 꿰차더니 참여정부 다 말아먹으려 한다”며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 일 직후 청와대 인사수석실을 중심으로 후임 장관 물색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언론에 ‘김장수 국방장관 조기퇴진론’이라는 기사가 두세 번 보도가 되더군요. 당시 청와대 386들이 아니면 누가 했겠어요. 그래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찾아갔죠. 가서 ‘김장수가 국방장관을 하는 것이 그렇게 부담스러우냐?’고 하니까, 비서실장이 ‘왜 그러십니까’ 그러는 거예요.
 
  제가 ‘언론에 나온 것 안 봤어요? 조기퇴진론이라고 해서 몇 번 나오데요. 그것도 상당히 크게 나옵디다’ 그랬죠. 그러니까 비서실장이 ‘우리 애들이 모르고 한 것 같습니다’고 해요. 저는 ‘그렇게 내가 부담스러우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했죠.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얼마나 신뢰하시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고 해서, ‘진짜냐? 그러면 다시는 이런 말이 안 나오게 단속 좀 해 달라’고 했죠.”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은 그의 저서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앞의 내용과 같은 취지로 묘사했다.
 
 
  “참여정부 사람들, 내게 감사해야”
 
2011년 12월 29일 임시국회 본회의가 열린 가운데 한나라당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과 김장수 의원이 이야기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2007년 11월 남북 국방장관회담에 대해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이 대단히 경직돼 있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전혀 동의할 수 없어요. 나보고 북측에 NLL을 양보했어야 한다는 얘기 아닌가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제가 참여정부를 크게 도와준 겁니다. 만일 정부 뜻대로 NLL을 북측에 양보했더라면, 지금 그때 그 사람들은 얼굴을 들고 다니지도 못할 겁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고 ….”
 
  ―문재인 후보는 당선되면, 즉각 현재의 NLL을 변경하지 않고 공동어로수역 협상을 하겠다고 합니다만.
 
  “지난 9월 중순 박근혜 후보가 남북 간 해상경계선만 존중된다면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을 논의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북한은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성명으로 ‘서해상 공동어로와 평화수역 설정문제는 철두철미 북방한계선의 불법무법성을 전제로 한 북남합의 조치’라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 대변인은 ‘NLL의 존중을 전제로 10·4선언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박근혜×의 떠벌림이나 괴뢰당국의 주장은 북남 공동합의의 경위와 내용조차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은 NLL을 인정한다는 조건으로는 어떤 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겁니다.”
 
  ―박근혜 후보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고, 서해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도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제안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대화국면으로 바꿔 나가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된다면, 누구든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박 후보는 군사충돌 가능성이 상존한 서해상에서 남북 간 해상경계선만 존중된다면, 10·4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서해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 설정방안 등도 북한과 논의해 볼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저 역시 국방장관회담을 떠날 때, 상대방이 NLL을 인정한다는 조건으로 NLL을 중심으로 등거리와 등 면적을 지켜 준다면 공동어로수역은 한 번 검토해 볼 만하다는 마음을 갖고 갔습니다.”
 
  ―새누리당의 안보정책을 총괄하는 분으로서 박근혜 후보의 안보관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박 후보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신뢰를 구축해 가려면 우선 튼튼한 안보 위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계십니다. 기본적으로 역대 정부가 약속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한 것이며, 인도적 지원이나 상호 호혜적인 사업은 정치환경 변화가 있더라도 그 정신만은 꾸준히 지속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새 정부가 들어서면 NLL 문제는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한다고 봅니까.
 
  “현재의 남북관계를 고려해 볼 때, NLL 문제는 당분간 진전이 어려울 겁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남북 간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쯤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을까 합니다. 평화협정을 맺는다면 이미 상호 신뢰구축도 된 상태이기 때문에 NLL 지역을 자유 왕래하는 문제라든지, 비무장 선박 통행 문제들이 논의될 수 있을 겁니다. 그 시점은 아마도 김정은 체제가 안정되고, 북한의 군사적 도발 위협이 사라지고, 핵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이뤄지는 시점일 겁니다.”
 
  김장수 전 장관은 《국방백서》 부록 편에 나와 있는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 합의서’를 기자에게 내보이며, “‘쌍방은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을 철저히 준수하기로 하였다’는 조항을 볼 때마다 노무현 정부하에서 NLL을 지켜 내기 위해 악다구니를 썼던 일들이 엊그제 같다”면서 “지금 그렇게 하라면 아마 엄두도 못 낼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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