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카터의 일방적 주한미군 철수 주장
② DJ를 정치적으로 도와준 것
③ 영변 북핵시설 폭격계획 미수
④ 의정부 장갑차 사고의 미숙한 처리
⑤ 힐 대표의 착각과 헛발질
金濟理 在美 칼럼니스트
⊙ 1944년 서울 출생.
⊙ 경복고,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同 대학원 경영학 석사.
⊙ 연세대 강사 역임. 美 Temple대 박사과정 수료.
⊙ 現 경영컨설턴트·공인회계사·칼럼니스트.
⊙ 저서: <한국 경제를 만든 12사람들>(近刊) <靑瓦臺는 妙한 곳이다>.
② DJ를 정치적으로 도와준 것
③ 영변 북핵시설 폭격계획 미수
④ 의정부 장갑차 사고의 미숙한 처리
⑤ 힐 대표의 착각과 헛발질
金濟理 在美 칼럼니스트
⊙ 1944년 서울 출생.
⊙ 경복고,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同 대학원 경영학 석사.
⊙ 연세대 강사 역임. 美 Temple대 박사과정 수료.
⊙ 現 경영컨설턴트·공인회계사·칼럼니스트.
⊙ 저서: <한국 경제를 만든 12사람들>(近刊) <靑瓦臺는 妙한 곳이다>.
- 미국은 2002년 의정부 미군장갑차 교통사고 사건을 미숙하게 처리해 그해 대선 판도를 흔들어 놓았다. 반미단체 회원들이 사고를 낸 미군병사들에 대한 무죄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근래에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체제 위기와 후계자 문제 등이 이어지면서,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호경기를 맞고 있다. 핼로런 기자(NYT)처럼 은퇴하여 하와이에서 쉬는 사람까지 나서서 한마디씩 할 정도이니까. 그동안 워싱턴에서 한미관계를 깊이 살펴본 필자는, 미국 내 아시아 정책 전문가들의 상당수가 지금의 북한문제를 되돌아보면서 지난 30여 년간 미국이 한반도에 관해 범했던 과오(過誤)와 실책(失策)들을 손꼽아 탄식하고 아쉬워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오바마 정권이 새로이 대북정책의 기조를 잡아 가며 북한과 협상을 모색하고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 미국이 처한 어려움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5가지의 과오와 실책이 그대로 쌓이고 엉켜 있어서, 앞으로의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
첫 번째 잘못은 카터 대통령의 무모했던 일방적인 주한미군 철수계획이다.
1975년 4월 월남 정부의 패망으로 동북아 정세가 안 좋을 때, 국제 경험이 없는 땅콩 농장주였던 남부 조지아주 지사 출신인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를 선거공약으로 들고 나와 1976년 11월 미국의 3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박동선 사건의 후유증도 있고 하여, 조용히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관망하면서, 현직 대통령인 공화당 포드 후보의 당선을 희망하며 낙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소한 차이지만 카터가 예상을 깨고 당선되자, 한국 정부는 그의 인권외교와 주한미군 철수 공약에 주목하고 긴장하게 되었다. 실로 카터의 당선이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과 충격은 심대한 것이었다.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공약은 국제안보 전략상 동북아시아의 중요성과 일본 대만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과소평가한 안일한 발상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주한미군을 상대방인 북한 중국 소련으로부터 아무런 양보나 대가 없이 그냥 철수한다는 커다란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냉전체제하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공산진영과 북한에 대단히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최상의 협상카드인데 아무런 대가 없이 일방적으로, 그냥 맹탕으로 내던져 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압력과 인권외교로 큰 충격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 노력과 이를 뒷받침할 중화학공업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핵무기 개발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1980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국내외 정책 실패를 거듭한 카터가 공화당 레이건 후보에게 패하여 낙선하고, 미국 국방부와 합참이 <북한 군사력 재평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의 불가함을 밝히면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한국 정부에는 한동안 큰 부담을 주었다.
■ 미국에 부담으로 돌아온 DJ지원
둘째로, 미국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도와준 것은 두고두고 미국에 큰 부담을 안겨 주고 있다.
미국 내에서 DJ에 대한 평가는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했다는 인사들과, 반대로 북한 인권과 핵개발을 외면하고 퍼주기만 하여 이것이 결국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 개발을 도와 미국의 대외정책에 큰 부담을 주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인사들이 있다.
DJ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DJ를 위기에서 구해 준 것은 인권과 도덕을 존중하는 인도적 측면에서는 마땅하지만, 그를 민권과 자유의 투사로 착각하고 과대평가하여 정치적으로 도와준 것은 오판이었다는 시각이다.
그가 집권 후 보인 친북좌파적 행태는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에 큰 짐이 되고 말았다. DJ는 특히 1980년대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미국의 진보진영 인사와 인권단체, 종교계, 언론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하면서 좌파색깔을 숨기고, 인권문제 연구소를 만들어 인권과 민주투사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나 민주화 노력에 대해서는 외면해 온 이중적 정치행태를 보였다. 또 DJ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준 현금 등은 핵개발에 쓰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좌파적 인사들은 지난 대선 때 ‘보수층 후보(이명박이나 이회창)가 되면 전쟁이 날 것’이라고 선동하고, 작년부터는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부’라고 비난하고 있기까지 하다. 다 쓰러져 가는 북한을 일으켜 세워 핵무장까지 시켜 놓고도 모자라 전쟁 운운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나오고 있는 것은 결국 미국이 DJ를 정치적으로 지원한 데서 파생한 결과다.
■ 영변폭격해서 北核 막았어야
셋째로, 영변 북핵시설 폭격계획이 김영삼(YS) 정권의 반대로 실천에 옮겨지지 못한 점도 몹시 아쉬운 대목이다. YS는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감상적인 대북관을 갖고 미국의 대북정책에 엇박자를 놓으며 갈등을 빚었으나, 15년이 지난 2008년 자신의 이 생각이 큰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1993년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그들의 핵 야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자, 미국은 이스라엘의 이라크 핵시설 폭격(1981)이나 시리아 핵시설 폭격(2007)과 같은 방식으로 1994년 봄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폭격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동해에 항공모함을 2척 파견하고, 패트리엇 미사일을 전진배치하고, 주한 외교관과 미군 가족을 성남 공항으로 퇴각 철수시키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이 계획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전되었지만 YS의 극심한 반대와 남한의 군사적 협조 거부로 마지막 단계에서 좌절되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한반도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 때는 항상 중국 소련 일본의 반응을 고려하여 이들과 사전에 교감을 하는데, 영변 핵시설의 폭격계획은 북한의 핵무장을 원치 않는 중국 소련 일본의 이해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중국과 소련은 이 폭격이 북한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미국은 지금처럼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군사력이 발목 잡혀 있지도 않았고, 6·25 때 혼난 김일성과 김정일이 권력을 분점했던 시기이고 하였으니, 그야말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였다. 김일성 생전에 자주 만났던 한 고위 탈북자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김일성이 중국과 소련이 6·25 때처럼 군사적으로 도와주지는 않더라도, 꽹과리라도 쳐주어야 남한을 쳐부수고 점령할 수 있다는 말을 되뇌곤 했다고 한다.
북한의 공갈에 겁먹은 YS정권
즉 북한은 중국과 소련의 지원이나 승인 없이 미국을 상대로 한 군사적 대응은 생각할 수 없으며, 승산 없는 전쟁은 자멸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일찍이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수단”이라고 했다. 북한의 ‘불바다’ 공갈에 겁먹은 탁상의 지상담병(紙上談兵)에 불과했던 YS 정권의 국방·외교·안보적 무능은 포클랜드 전쟁을 이끈 대처 영국 수상이나, 10월 중동전쟁을 치른 골다 메이어 같은 여성 지도자의 모습과 비교된다. 푸에블로호 사건 때 보복공격을 주장하며 미국을 설득하고,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는 일전을 각오하며 병력을 투입하여 미루나무를 절단하는 과단성을 보여준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력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필요할 때 써먹지 못하고,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군사철학도 모르는 답답한 동맹국에 이끌려 다녀야 하는 좌절을 맛보며, 미국은 미군에게 전략적 유연성을 가능하게 해 줄 ‘전시작전권 이양’을 노무현 정권이 ‘자주국방’이란 이름으로 거론하자 미련없이 털어버리고 있다.
■ 의정부 여중생 사망 사건 잘못 처리
네 번째는 의정부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의 미숙한 처리였다.
이 사건은 미국 측의 초기대응이 허술하고 안이했던 것과 서울에 주재하는 미국 정부기관들의 구조적 역학관계도 상황판단과 진행에 악영향을 미쳤다. 외형상으로는 미대사관 울타리 안에 대사(국무부), 미군사령관(국방부), CIA지부장 등 3개 기관이 몰려 있는데, 이들은 각기 독자적인 지휘명령 체계를 갖고, 워싱턴의 국무부, 국방부, CIA로 각각 보고하고 있으며, 이것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종합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되어 있다.
대사나 CIA지부장 등은 보통 부국장급(부차관보) 인물들이 오지만 미군사령관은 4성장군으로 이들보다 2~3직급 높은 편이고, 워싱턴 국방부와 하와이 태평양사령부의 지휘를 받고 있어 대사관과는 별도로 움직이고 있다.
2002년 5월 갓 부임한 러포트 사령관과 참모들은 6월 13일 발생한 의정부 여중생 2명의 사망사고를 위로금 100만원 전달과 사단 참모장의 분향으로 무마시키려고 했다. 안이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월드컵 축구 열기가 전국을 휩쓸고, 정치적으로는 대통령선거전을 향한 여야 당내경선이 복잡하여 모두 정치판의 바람을 좇고 있을 때, 11월 23일 주한미군 군사법정에서 무죄판결이 나오고 피의자들은 유유히 출국했다.
이러니 11월 26일부터 시작된 촛불시위가 갑자기 허리케인으로 커져 대통령선거 판세와 민심을 흔들어 놓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많은 보수층 인사는 미 군사법정 판결이 민감한 시기를 넘겨 한 달만 늦게 이루어졌어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며 미국 측의 정치적 무감각과 허술한 대응을 원망하고 있으며, 미국 측도 이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 힐의 무능과 오판
다섯 번째는 힐 대표의 헛발질과 착각에 대한 한탄이다.
사람 좋은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 국무장관을 신임하여 믿고 맡겼다. 그녀는 교과서적 지식은 풍부했으나 별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무능한 장관으로 기록되고 있다. 여기에는 힐 대표의 실책과 과오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원래 러시아통인 라이스 장관은 사실 아시아를 잘 몰라 힐 차관보(한국의 국장급 직책)에게 북한 핵문제를 맡겼다. 힐 차관보는 과욕을 부려 의회에서 법령으로 정한 대북조정관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히면 그만두겠다고 장관을 겁줬다. 힐 차관보가 겸했던 자리는 국무부 아태차관보,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 대북정책조정관, 북핵·인권특사 등 5개에 이른다. 사실상 대북정책을 총괄한 셈이다.
한평생 미국 문제를 다루어 온 북한의 강석주, 김계관 팀은 초프로급 협상가들이다. 그에 비하면 힐 대표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러니 힐 차관보가 북한의 노련한 외교팀에 완전히 농락당해 마카오 은행자금 동결도 풀어 주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도 해제해 주는 등 북한에 큰 선물을 안겨 주었다. 단지 그들의 말만 믿고서. 나중에 다급해지자, 베이징이 아니고 평양으로 직접 뻔질나게 찾아가서 통사정했지만, 이미 정권교체기에 들어선 워싱턴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북한은 결국 문서화해 주지 않았다. 부시 정부 대북정책의 파탄이고 재앙이었다.
미국도 공무원 사회는 아무리 죽을 쑤어도 배경과 연줄만 있으면 다른 자리(현 이라크 대사로 영전)로 가 버리면 그만이고 탈이 없다는 것을 힐 대표가 보여주고 있어 씁쓸하다.
파월 전 국무장관은 사기(史記)의 춘추필법 같은 논평으로 북한의 탁월한 대미협상 능력을 극찬함으로써, 힐 대표의 무능과 오판, 그리고 부시 정부의 외교적 실패를 지탄하고 있다.
한국에 도움을 줄 우방은 결국 미국
이제 오바마의 민주당 정부는 북핵문제에 3수(修)를 하게 되었지만, 대북정책에 있어 다양한 조정경로를 구성하고 6자회담 주역국가들과 대북압박을 공조하면서 UN안보리 결의의 철저한 이행 등을 바탕으로 정책방향을 착실하게 잡아가고 있다.
잘못된 행동에는 보상이 없다는 원칙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한미 공조가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해진다. 미국은 한국이 동맹국으로서 함께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북한을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갖춘 우방이길 더 원하고 있다.
남한은 그동안 40억 달러 넘는 현금과 물자를 북한에 주었지만 그들에게 어떤 영향력과 신뢰관계를 쌓았는지 반성해 보자.
이제 북핵과 미사일 문제는 “(무엇무엇) 때문에”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바뀌었다. 즉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고, 핵과 미사일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로 그들과 협상해야 하는 처지가 됐으며, 이제 미국은 ‘선(先) 비확산, 후(後) 비핵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원칙이 아니고 돈이나 선심으로 산 평화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갈등과 시련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미국은 우리의 친구이고 희망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도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IMF 외환위기 때 일본은 돈을 빼 가며 골탕먹이고 중국은 외면할 적에 누가 도와주었는가. 또 이번 금융위기 극복 등이 미국의 도움 없이 가능했겠는지를 생각해 보며 다시는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한미 양국이 긴밀히 소통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오바마 정권이 새로이 대북정책의 기조를 잡아 가며 북한과 협상을 모색하고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 미국이 처한 어려움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5가지의 과오와 실책이 그대로 쌓이고 엉켜 있어서, 앞으로의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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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6월 방한한 카터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정책은 박정희 정권과 한국에 큰 부담이 됐다. |
1975년 4월 월남 정부의 패망으로 동북아 정세가 안 좋을 때, 국제 경험이 없는 땅콩 농장주였던 남부 조지아주 지사 출신인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를 선거공약으로 들고 나와 1976년 11월 미국의 3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박동선 사건의 후유증도 있고 하여, 조용히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관망하면서, 현직 대통령인 공화당 포드 후보의 당선을 희망하며 낙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소한 차이지만 카터가 예상을 깨고 당선되자, 한국 정부는 그의 인권외교와 주한미군 철수 공약에 주목하고 긴장하게 되었다. 실로 카터의 당선이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과 충격은 심대한 것이었다.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공약은 국제안보 전략상 동북아시아의 중요성과 일본 대만 한국과의 동맹관계를 과소평가한 안일한 발상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주한미군을 상대방인 북한 중국 소련으로부터 아무런 양보나 대가 없이 그냥 철수한다는 커다란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냉전체제하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공산진영과 북한에 대단히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최상의 협상카드인데 아무런 대가 없이 일방적으로, 그냥 맹탕으로 내던져 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압력과 인권외교로 큰 충격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 노력과 이를 뒷받침할 중화학공업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핵무기 개발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1980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국내외 정책 실패를 거듭한 카터가 공화당 레이건 후보에게 패하여 낙선하고, 미국 국방부와 합참이 <북한 군사력 재평가>라는 보고서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의 불가함을 밝히면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한국 정부에는 한동안 큰 부담을 주었다.
■ 미국에 부담으로 돌아온 DJ지원
둘째로, 미국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도와준 것은 두고두고 미국에 큰 부담을 안겨 주고 있다.
미국 내에서 DJ에 대한 평가는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했다는 인사들과, 반대로 북한 인권과 핵개발을 외면하고 퍼주기만 하여 이것이 결국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 개발을 도와 미국의 대외정책에 큰 부담을 주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인사들이 있다.
DJ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DJ를 위기에서 구해 준 것은 인권과 도덕을 존중하는 인도적 측면에서는 마땅하지만, 그를 민권과 자유의 투사로 착각하고 과대평가하여 정치적으로 도와준 것은 오판이었다는 시각이다.
그가 집권 후 보인 친북좌파적 행태는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에 큰 짐이 되고 말았다. DJ는 특히 1980년대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미국의 진보진영 인사와 인권단체, 종교계, 언론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하면서 좌파색깔을 숨기고, 인권문제 연구소를 만들어 인권과 민주투사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나 민주화 노력에 대해서는 외면해 온 이중적 정치행태를 보였다. 또 DJ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준 현금 등은 핵개발에 쓰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좌파적 인사들은 지난 대선 때 ‘보수층 후보(이명박이나 이회창)가 되면 전쟁이 날 것’이라고 선동하고, 작년부터는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부’라고 비난하고 있기까지 하다. 다 쓰러져 가는 북한을 일으켜 세워 핵무장까지 시켜 놓고도 모자라 전쟁 운운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나오고 있는 것은 결국 미국이 DJ를 정치적으로 지원한 데서 파생한 결과다.
■ 영변폭격해서 北核 막았어야
셋째로, 영변 북핵시설 폭격계획이 김영삼(YS) 정권의 반대로 실천에 옮겨지지 못한 점도 몹시 아쉬운 대목이다. YS는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감상적인 대북관을 갖고 미국의 대북정책에 엇박자를 놓으며 갈등을 빚었으나, 15년이 지난 2008년 자신의 이 생각이 큰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1993년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그들의 핵 야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자, 미국은 이스라엘의 이라크 핵시설 폭격(1981)이나 시리아 핵시설 폭격(2007)과 같은 방식으로 1994년 봄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폭격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동해에 항공모함을 2척 파견하고, 패트리엇 미사일을 전진배치하고, 주한 외교관과 미군 가족을 성남 공항으로 퇴각 철수시키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이 계획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전되었지만 YS의 극심한 반대와 남한의 군사적 협조 거부로 마지막 단계에서 좌절되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한반도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 때는 항상 중국 소련 일본의 반응을 고려하여 이들과 사전에 교감을 하는데, 영변 핵시설의 폭격계획은 북한의 핵무장을 원치 않는 중국 소련 일본의 이해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중국과 소련은 이 폭격이 북한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 미국은 지금처럼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군사력이 발목 잡혀 있지도 않았고, 6·25 때 혼난 김일성과 김정일이 권력을 분점했던 시기이고 하였으니, 그야말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였다. 김일성 생전에 자주 만났던 한 고위 탈북자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김일성이 중국과 소련이 6·25 때처럼 군사적으로 도와주지는 않더라도, 꽹과리라도 쳐주어야 남한을 쳐부수고 점령할 수 있다는 말을 되뇌곤 했다고 한다.
북한의 공갈에 겁먹은 YS정권
즉 북한은 중국과 소련의 지원이나 승인 없이 미국을 상대로 한 군사적 대응은 생각할 수 없으며, 승산 없는 전쟁은 자멸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일찍이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수단”이라고 했다. 북한의 ‘불바다’ 공갈에 겁먹은 탁상의 지상담병(紙上談兵)에 불과했던 YS 정권의 국방·외교·안보적 무능은 포클랜드 전쟁을 이끈 대처 영국 수상이나, 10월 중동전쟁을 치른 골다 메이어 같은 여성 지도자의 모습과 비교된다. 푸에블로호 사건 때 보복공격을 주장하며 미국을 설득하고,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는 일전을 각오하며 병력을 투입하여 미루나무를 절단하는 과단성을 보여준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력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필요할 때 써먹지 못하고,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군사철학도 모르는 답답한 동맹국에 이끌려 다녀야 하는 좌절을 맛보며, 미국은 미군에게 전략적 유연성을 가능하게 해 줄 ‘전시작전권 이양’을 노무현 정권이 ‘자주국방’이란 이름으로 거론하자 미련없이 털어버리고 있다.
■ 의정부 여중생 사망 사건 잘못 처리
네 번째는 의정부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의 미숙한 처리였다.
이 사건은 미국 측의 초기대응이 허술하고 안이했던 것과 서울에 주재하는 미국 정부기관들의 구조적 역학관계도 상황판단과 진행에 악영향을 미쳤다. 외형상으로는 미대사관 울타리 안에 대사(국무부), 미군사령관(국방부), CIA지부장 등 3개 기관이 몰려 있는데, 이들은 각기 독자적인 지휘명령 체계를 갖고, 워싱턴의 국무부, 국방부, CIA로 각각 보고하고 있으며, 이것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종합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되어 있다.
대사나 CIA지부장 등은 보통 부국장급(부차관보) 인물들이 오지만 미군사령관은 4성장군으로 이들보다 2~3직급 높은 편이고, 워싱턴 국방부와 하와이 태평양사령부의 지휘를 받고 있어 대사관과는 별도로 움직이고 있다.
2002년 5월 갓 부임한 러포트 사령관과 참모들은 6월 13일 발생한 의정부 여중생 2명의 사망사고를 위로금 100만원 전달과 사단 참모장의 분향으로 무마시키려고 했다. 안이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월드컵 축구 열기가 전국을 휩쓸고, 정치적으로는 대통령선거전을 향한 여야 당내경선이 복잡하여 모두 정치판의 바람을 좇고 있을 때, 11월 23일 주한미군 군사법정에서 무죄판결이 나오고 피의자들은 유유히 출국했다.
이러니 11월 26일부터 시작된 촛불시위가 갑자기 허리케인으로 커져 대통령선거 판세와 민심을 흔들어 놓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많은 보수층 인사는 미 군사법정 판결이 민감한 시기를 넘겨 한 달만 늦게 이루어졌어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며 미국 측의 정치적 무감각과 허술한 대응을 원망하고 있으며, 미국 측도 이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 힐의 무능과 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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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자회담장에서의 힐 미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 |
사람 좋은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 국무장관을 신임하여 믿고 맡겼다. 그녀는 교과서적 지식은 풍부했으나 별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무능한 장관으로 기록되고 있다. 여기에는 힐 대표의 실책과 과오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원래 러시아통인 라이스 장관은 사실 아시아를 잘 몰라 힐 차관보(한국의 국장급 직책)에게 북한 핵문제를 맡겼다. 힐 차관보는 과욕을 부려 의회에서 법령으로 정한 대북조정관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히면 그만두겠다고 장관을 겁줬다. 힐 차관보가 겸했던 자리는 국무부 아태차관보,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 대북정책조정관, 북핵·인권특사 등 5개에 이른다. 사실상 대북정책을 총괄한 셈이다.
한평생 미국 문제를 다루어 온 북한의 강석주, 김계관 팀은 초프로급 협상가들이다. 그에 비하면 힐 대표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러니 힐 차관보가 북한의 노련한 외교팀에 완전히 농락당해 마카오 은행자금 동결도 풀어 주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도 해제해 주는 등 북한에 큰 선물을 안겨 주었다. 단지 그들의 말만 믿고서. 나중에 다급해지자, 베이징이 아니고 평양으로 직접 뻔질나게 찾아가서 통사정했지만, 이미 정권교체기에 들어선 워싱턴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북한은 결국 문서화해 주지 않았다. 부시 정부 대북정책의 파탄이고 재앙이었다.
미국도 공무원 사회는 아무리 죽을 쑤어도 배경과 연줄만 있으면 다른 자리(현 이라크 대사로 영전)로 가 버리면 그만이고 탈이 없다는 것을 힐 대표가 보여주고 있어 씁쓸하다.
파월 전 국무장관은 사기(史記)의 춘추필법 같은 논평으로 북한의 탁월한 대미협상 능력을 극찬함으로써, 힐 대표의 무능과 오판, 그리고 부시 정부의 외교적 실패를 지탄하고 있다.
한국에 도움을 줄 우방은 결국 미국
이제 오바마의 민주당 정부는 북핵문제에 3수(修)를 하게 되었지만, 대북정책에 있어 다양한 조정경로를 구성하고 6자회담 주역국가들과 대북압박을 공조하면서 UN안보리 결의의 철저한 이행 등을 바탕으로 정책방향을 착실하게 잡아가고 있다.
잘못된 행동에는 보상이 없다는 원칙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한미 공조가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해진다. 미국은 한국이 동맹국으로서 함께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북한을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갖춘 우방이길 더 원하고 있다.
남한은 그동안 40억 달러 넘는 현금과 물자를 북한에 주었지만 그들에게 어떤 영향력과 신뢰관계를 쌓았는지 반성해 보자.
이제 북핵과 미사일 문제는 “(무엇무엇) 때문에”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바뀌었다. 즉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고, 핵과 미사일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로 그들과 협상해야 하는 처지가 됐으며, 이제 미국은 ‘선(先) 비확산, 후(後) 비핵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원칙이 아니고 돈이나 선심으로 산 평화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갈등과 시련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미국은 우리의 친구이고 희망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도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IMF 외환위기 때 일본은 돈을 빼 가며 골탕먹이고 중국은 외면할 적에 누가 도와주었는가. 또 이번 금융위기 극복 등이 미국의 도움 없이 가능했겠는지를 생각해 보며 다시는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한미 양국이 긴밀히 소통을 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