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혼미의 아프가니스탄 : 월간조선

한반도 면적의 3배 크기에 약 2800만명의 인구. 이슬람 문화권으로 약 85%의 수니와 15%에 이르는 시아무슬림이 사는 곳. 평균수명 44.6세. 여성 한 명당 아이 여섯을 낳고, 14세 이하 어린이들이 국민의 44%를 차지하는 나라. 도시 거주민은 전 국민의 24%. 실업률이 40%에 달하고, 절대 빈곤층이 전 국민의 반을 넘는 나라. 이것이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의 현주소다.

9·11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7일 조지 부시 前(전) 美(미) 대통령은 알 카에다와 탈레반을 응징하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우리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반드시 이루어내고야 말 것입니다. 작전명은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자유뿐 아니라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살면서 자녀를 키울 수 있는 자유를 지켜낼 것입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오늘도 ‘항구적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미국의 작전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 홀로 혈투를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총 43개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전쟁을 지원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아프간은 NATO 산하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평화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우리 정부는 아프간 정부의 요청에 따라 “아프간의 안정화와 재건을 위한 노력에 보다 적극 동참하기 위해 아프간 지방재건팀(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 PRT)을 확대 설치키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03년 2월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평화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동의·다산 부대를 보냈다가 2007년 12월 철수한 이래 2년 만에 다시 파병하는 것이다.

8년 전 9·11테러 직후 분노한 미국의 아프간 침공은 효과적이었고 신속했다. 禍根(화근)을 제거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정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한 채 이라크 사담 후세인 문제에 골몰하느라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아프간은 뜻하지 않게 긴 戰場(전장)이 되고 말았다. 오사마 빈 라덴은 여전히 생포하지 못하고 있다. 勢(세)가 꺾인 줄 알았던 탈레반이 되살아나 기승을 부리고 있다.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은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세력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4만명의 추가병력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오바마 행정부는 병력을 곧 증파할 예정이다.

진정한 승리 위해서는 미군 10년 이상 주둔해야

미국이 그동안 아프간에 쏟아 부은 戰費(전비)는 무려 2230억 달러다. 그동안 약 900명 이상의 미군이 戰死(전사)했고, 수천 명이 부상을 당했다.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는 승리를 위해서는 10년 이상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아프간에서 국제안보지원군이 테러의 거점인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소탕하고 민주국가의 기틀을 다질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이곳의 특징, 즉 험난한 지형, 外勢(외세)에 대한 끈질긴 저항, 다양한 민족이라는 세 가지 핵심어를 숙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의외로 좋은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지형·저항·민족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아프간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보자.

“알라는 세계를 만들고 난 다음, 쓸모없는 쓰레기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곳에도 쓸 수가 없는 조각들이었습니다. 알라는 그것을 한데 주워 모아서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게 바로 아프간입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그레이트 게임>과 <탈레반>을 쓴 파키스탄 기자 아메드 라시드에게 어느 아프간 학자가 말해 준 알라의 아프간 創造談(창조담)이다.

우리나라 면적의 세 배인 아프간은 그의 말처럼 척박한 산악지형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프간 사람들이 ‘쿠헤 바바(Kuh-e Baba)’, 즉 ‘아버지의 산’이라고 부르는 힌두쿠시는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과 이어진다. 해발 5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대부분 지역은 해발고도가 1000m를 넘는다.

경작지는 전 국토의 10% 정도다. 산악지대에 밭을 개간하고 농작물을 생산하려면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하기에 유목업이 발달했다. 험준한 산악지형은 외부와 고립되어 살아가는 독립심 강하고 용맹한 사람들을 키워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남북을 잇는 血脈(혈맥) 역할을 하는 요충지이다. 때문에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몽골의 칭기즈칸과 그의 후예 티무르, 무굴제국의 바부르, 영국, 러시아, 그리고 오늘날 미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복자와 열강의 발길이 아프간으로 이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1965년 역사가 아널드 플레처가 아프간에 대한 책을 쓰면서 제목으로 삼은 <征服(정복)의 大路(대로)(Highway of Conquest)>는 곱씹어 볼수록 탁월한 말이다.

사통팔달의 요충지

지도를 보면 아프간이 지닌 전략적 가치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아프간은 6개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동쪽으로 파키스탄(국경선 길이 2430km), 북쪽으로 투르크메니스탄(744km), 우즈베키스탄(137km), 타지키스탄(1206km), 북동쪽으로는 중국(76km), 남서쪽으로는 이란(936km)과 맞닿아 있다. 인도와는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쟁 중인 잠무·카슈미르(Jammu·Kashmir) 지역과 연해 있기 때문에 인도도 아프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렇게 인도까지 포함하면 모두 일곱 나라에 완전 포위된 형상이지만, 달리 보면 아프간이 이 일곱 나라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 비록 땅 생김새가 험난하긴 하나, 말 그대로 요충지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그렇기에 영국은 지난 19세기 이곳을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러시아와의 직접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설정했다.

미국의 일부 아프간 전문가들은 “테러리스트는 정식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미국이 탈레반 거점이라는 곳을 찾아 파괴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면서 “어차피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는 것을 주변 4강, 즉 중국·인도·러시아·이란 모두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끌어들여 아프간 정국을 안정화시킨 후 미국은 빠져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뒤집어보면 아프간이 주변국들에 얼마나 중요한 곳인가를 보여주는 말이다. 아프간은 페르시아만 油田(유전)지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原油(원유)매장량의 4배에 이르는 엄청난 원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카스피海(해) 지역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이다. 오바마가 아프간에서 ‘부시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토 회원국들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아프간은 외세에 대한 원주민의 강력한 저항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프간에서 미군의 완전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역사상 그 누구도 아프간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아프간인들의 저항에 막혀 물러났다”는 점을 지적한다.

부족 간 역학관계가 통치의 핵심

제1차 영국-아프간 전쟁 당시, 카불에서 철수하던 영국군 4500명과 민간인 1만2000명이 파슈툰족에게 학살당했다.

아프간은 유사 이래 ‘정복자들의 무덤’이었다. 古代(고대) 페르시아 제국은 다리우스 대왕이 아프간을 식민지로 만들어 기원전 522년부터 486년까지 경영했지만 결국 손을 뗐다. 기원전 330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4년 동안 공을 들여 아프간을 차지했지만 그의 死後(사후) 무너졌다.

칭기즈칸, 티무르, 무굴제국의 바부르, 이란 사파비 제국의 나디르 샤도 아프간을 차지하려 했지만, 모두 한때의 소나기에 그칠 정도로 아프간인들의 외세에 대한 저항력은 天賦的(천부적)이다.

1798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하자 영국은 프랑스가 러시아와 손잡고 인도를 위협할 것으로 보고 아프간을 완충지대로 삼아 러시아의 南進(남진)을 막으려 했다. 영국은 아프간을 손에 넣기 위해 세 번(1839~42, 1878~80, 1919)에 걸쳐 영국-아프간 전쟁을 벌였다. 아프간을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의 각축을 역사에서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라고 한다.

제1차 영-아프간 전쟁 당시, 영국군은 소기의 목적을 거두지 못한 채 1842년 1월 6일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카불에서 퇴각했다. 영국군은 카불에서 퇴각하면서 아프간 측으로부터 카불에서 150㎞ 떨어진 잘랄라바드로 가는 길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파슈툰의 일파인 길자이 파슈툰은 이를 어기고 3일째 되는 날 계곡에서 영국군 4500명과 이들을 따르던 1만2000명의 민간인을 습격, 도륙했다. 그로부터 7일째 되는 날, 당시 인도주둔 영국군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오후 1시경, 브라이든 군의관이 (1야드도 못 움직이는 말을 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타박상을 입은 채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도착했다.”

군의관 윌리엄 브라이든 박사는 이 처참한 학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영국인으로 기록돼 있다. 그가 살아돌아 올 수 있었던 것도 영국군을 습격한 파슈툰족이 ‘아프간을 침공한 자의 최후가 어떻게 되는지’를 영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일부러 살려보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소련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1년 동안 아프간전쟁을 벌였지만 2만5000명의 전사자와 그만한 수의 부상자를 내고 물러났다. 아프간전쟁은 소련 붕괴의 한 원인이 됐다.

42%의 파슈툰족이 주도권 장악

아프간 철군론자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인 알렉산더도 물러났는데 오바마인들 별 수 있겠느냐고 비웃는다.

그러나 오바마는 알렉산더보다 더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알렉산더는 잘 몰랐을, 아프간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부족 간의 力學(역학)관계다. 거친 지형, 끈질긴 反(반)외세 저항과 더불어 아프간을 이해하는 세 번째 키워드는 바로 ‘多(다)민족’이다.

아프간은 ‘아프간’과 땅을 뜻하는 페르시아어 접미사 ‘스탄’이 붙어서 된 말로 ‘아프간의 땅’이라는 뜻이다. 아프간이라는 말의 뜻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페르시아어로 아프간은 서쪽에 있는 부족들을, 인도어로 파탄(Pathan)은 동쪽 부족들을 지칭했던 것 같다. 고유의 파슈토(Pashto)語(어)를 쓰는 이들은 스스로를 파슈툰(Pashtun)이라 불렀다.

통계마다 차이는 있지만 美(미) CIA에 따르면 파슈툰족은 오늘날 아프간 인구의 42%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크게 두르라니족과 길자이족으로 나뉜다. 최근 부정시비 논란 끝에 再選(재선)된 카르자이(1957~) 대통령은 두르라니 파슈툰, 미국의 신경을 계속 건드리고 있는 탈레반의 주축은 길자이 파슈툰이다.

파슈툰족은 지르가라는 부족장 연합체에서 주요 현안을 협의한다. 이들은 ‘파슈툰왈리’라고 하는 고유의 관습규범을 가지고 있다. 그 骨子(골자)는 명예·환대·連帶(연대)의식·상호공조·수치·보복 등 부족의 명예와 생존을 지키기 위해 부족 구성원이 행해야 할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파슈툰이 주축인 탈레반은 파슈툰왈리 대신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내세우면서 자신들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이를 따르지 않는 부족의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있다.

파슈툰을 제외한 나머지 약 58%의 인구는 페르시아어 방언인 다리어를 쓰는 타지크족(27%), 몽골과 페르시아어의 混合語(혼합어) 하자라기를 쓰는 몽골의 후예이자 시아파 무슬림인 하자라족(9%), 튀르크계 우즈베크어를 쓰는 우즈베크족(9%)을 비롯, 아이막족(4%), 튀르크멘족(3%), 발로치족(2%) 및 기타 소수민족(4%)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프간을 남북으로 가르는 힌두쿠시 산맥을 중심으로, 산맥지대에는 타지크족과 하자라족, 남쪽은 파슈툰족, 북쪽은 튀르크계 민족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언어도 다양하여 공식 언어인 다리어와 파슈토어 외에도 30여 개의 언어가 사용되는 곳이 아프간이다. 말 그대로 다민족, 다언어 사회다.

영국이 그은 듀란드 라인

탈레반 지도자 몰라 오마르(왼쪽)는 길자이 파슈툰,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은 두르라니 파슈툰족 출신이다.

민족과 언어 구성이 이처럼 다채로울 경우 국민을 통합하여 근대국가를 이루는 것이 쉽지 않다. 더욱이 아프간처럼 부족을 중심으로 한 사회는 통합된 정치권력을 좋아하지 않기에 더더욱 그렇다. 부족의 독립성을 포기하고 외부의 권위를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正體性(정체성)도, 최종적인 정치적 권위도 모두 부족이 대변한다. 부족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부족 중심 사회는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나는 형제들에 맞서고, 나와 형제들은 사촌들에 맞서고, 나와 형제들과 사촌들은 세계에 맞선다.”

여러 종족이 모여 살던 아프간에 가장 큰 민족그룹인 파슈툰이 지배적 정치체제를 구축한 것은 1747년이다. 이것이 현대 아프간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아프간을 지배하던 이란 사파비조의 나디르 샤가 죽자, 그의 수하 장군이었던 압달리 파슈툰족의 아마드 샤가 아프간 최초의 파슈툰 왕조를 열었다.

아마드 샤는 뛰어난 성품으로 인해 ‘두르레 두르란’, 즉 ‘眞珠(진주) 중의 진주’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에 따라 그가 속한 압달리 부족의 이름도 ‘진주’라는 의미의 두르라니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마드 샤 두르라니는 ‘아프간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엄밀히 말해 그의 왕정은 두르라니 파슈툰 부족을 중심으로 한 파슈툰 부족연합체에 불과했다. 파슈툰 왕정은 부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非(비)파슈툰족을 압박하거나 정복했다. 두르라니 파슈툰족은 1747년부터 1978년 4월 공산쿠데타로 무너질 때까지 아프간을 지배했다.

파슈툰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부족연맹체라고 할 수 있다. 인구 수로 따지자면 아프간과 파키스탄에 걸쳐 모두 약 4000만명에 달한다. 파슈툰족은 가장 영향력 있고 세력이 큰 두르라니, 길자이 두 부족을 비롯해서 카를란리, 사르바니, 구르구슈트 등 5개의 주요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슈툰이 아프간과 파키스탄 두 나라에 걸쳐 존재하는 것은 1893년 영국의 인도정부(영국은 영국 국왕을 황제로 하는 ‘인도제국’을 세우고 그 밑에 인도정부를 두어 인도를 식민지배했음) 외무장관 헨리 모티머 듀란드 경이 파슈툰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아프간과 인도(당시 파키스탄은 인도의 일부였음)의 국경을 그어버렸기 때문이다.

아프간은 지금도 이 국경선을 ‘듀란드 라인’이 아니라 ‘제로 라인(Zero Line)’이라고 부르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영국이 남긴 유산을 그대로 받아 지키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 내 파슈툰 거주지역은 변경의 산악지대라서 중앙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파슈툰 민족주의가 심상치 않은 곳이다. 이 지역은 파키스탄 탈레반의 거점이기도 하다.

투쟁은 길자이가 하고, 과실은 두르라니가 챙겨

아프간 쪽 파슈툰은 두르라니와 길자이가 오랫동안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며 대립해 왔다. 두르라니는 칸다하르를 거점으로 아프간 남동쪽, 즉 이웃나라 파키스탄의 발로치스탄과 접경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길자이는 파키스탄 北西邊境州(북서변경주, North West Frontier Province)와 맞닿은 아프간 동쪽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외세나 부당한 정권에 대항해서 용맹하게 투쟁하는 세력은 늘 길자이인데, 최후의 果實(과실)은 항상 두르라니가 가져간다는 것이다. 1842년 제1차 영국-아프간 전쟁에서 퇴각하는 영국군에게 치명타를 준 것도, 1878년 제2차 영국-아프간 전쟁을 시작한 것도, 1929년 아마눌라 왕을 몰아낸 것도 모두 길자이가 主軸(주축)이 됐다. 하지만 그때마다 정권은 두르라니가 잡았다.

두르라니의 거점 도시인 칸다하르를 점령한 탈레반 지도자 몰라 오마르(1959~)는 길자이고, 탈레반을 몰아낸 미국이 세운 지도자 하미드 카르자이는 다시 두르라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일까?

미 보스턴대 인류학과 토머스 바필드 교수는 이를 생활환경의 차이에서 나오는 행동양식으로 본다. 그에 따르면 잉여생산물 없는 유목 중심의 어려운 경제 환경 아래 살아가는 길자이에게 혼란한 시기는 개인의 용맹함과 독립심을 강하게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들은 주로 고립된 곳에서 살기에 외부의 보복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마음껏 용맹함을 떨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경쟁심, 독립심이 강해서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지도자로 받들기 힘들어 한다.

그렇다면 탈레반은 독립심이 강한 길자이들을 어떻게 포섭하여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中世(중세) 무슬림 碩學(석학) 이븐 칼둔은 “종교가 경쟁 관계에 있는 부족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종교 앞에서 부족의 자부심이나 상대 부족에 대한 경쟁심이 녹아내리고 종교를 통해 새로운 사회조직을 이룬다는 것이다.

탈레반은 이슬람을 내세운 종교조직으로, 이슬람을 신앙으로 독립심 강한 부족을 결속시킨 것이다. 7세기 이슬람의 예언자 무하마드가 부족 중심의 아랍 혈연사회를 신념 중심의 이슬람 사회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고 부족사회의 특질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는다. 파슈툰 탈레반이 그렇다. 이슬람은 두꺼운 외피를 제공하고, 삶은 여전히 부족적인 틀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길자이와 달리 두르라니는 정착농경생활이라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富(부)를 축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들 사이에서 지도자를 옹립하고 그 권위에 따른다. 그리고 그 지도자들은 길자이보다 교육수준이 높고 세련되어 외교에 능하다는 것이 바필드 교수의 분석이다.

타지크족 등이 주축이 된 북부동맹군 전차가 2001년 11월 카불에 입성하고 있다. 이후 타지크족은 아프간의 군과 공안기관을 장악했다.

軍과 공안기관은 타지크족이 장악

현재 아프간 정부 요직을 보면 카르자이 대통령은 두르라니 파슈툰족이지만, 정권의 군사 엘리트는 타지크족이 장악하고 있다. 2001년 미국이 탈레반을 쫓아낼 때 타지크족이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 지금까지 그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부통령 러닝메이트 무함마드 파힘 장군은 타지크족이다. 역시 타지크족인 비스밀라 칸 軍(군)참모총장은 휘하 군사령관의 70%를 자신의 동족으로 채웠다. 정보부·경찰 고위간부 역시 모두 타지크족이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탈레반을 비롯한 파슈툰족, 특히 길자이들은, 현 정부에서 카르자이는 ‘얼굴 마담’일 뿐 사실상 타지크족 정부라고 비난하며 인정하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서 카르자이와 겨루다가 결선투표를 앞두고 부정선거 대책이 없다면서 포기한 압둘라 압둘라를 보면 아프간 내 부족 간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쉽게 볼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파슈툰족이고 어머니는 타지크족이다. 그는 선거기간 내내 어머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파슈툰 표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헬만드, 칸다하르 지역은 선거참여율이 5% 이하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탈레반의 무력 위협을 무시한 채 목숨 걸고 투표를 할 정도로 동족 카르자이에게 충실한 파슈툰이 없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파슈툰은 카르자이가 아니라 탈레반과 함께한다”는 메시지가 전해진 셈이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재선은 부정선거였다는 시비와 함께 그의 남동생 아마드 왈리가 마약 밀거래상이며 미 CIA의 자금을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로 인해 親美(친미) 카르자이 정권의 인기는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부패한 카르자이를 명분으로 삼아 오바마 행정부가 아프간에서 손을 털고 나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오바마가 아프팍(Af-Pak) 정책의 기조를 바꿀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대중적 지지기반이 약화된 카르자이 2기 정권이 국민통합과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방책은 탈레반과 파슈툰을 분리시키는 일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프간을 안정시키려면 먼저 종교적으로 온건하고 탈레반에 동조하지 않는 길자이 파슈툰족을 회유하여 정권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경제재건 활동을 통해 가난에 찌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우리 정부가 보내려고 하는 지방재건팀이 바로 그러한 일의 적임자다. 이른바 民事作戰(민사작전)이다.

“軍을 증강할수록 저항은 더 거세질 것”

민간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절망적인 가난에 빠진 곳일수록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인기가 높은 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주민이 필요한 것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민심을 얻는 이유가 이것이다.

탈레반은 주민들의 마약재배를 보호하고 지원하여 인심을 얻고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챙기는, 말 그대로 一石二鳥(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이슬람은 사람을 醉(취)하게 하는 것을 금지한다. 따라서 술도 마약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탈레반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의 이슬람 해석은 恣意的(자의적)이다. 아편을 재배해도 그 아편을 소비하는 것은 非(비)무슬림이기 때문에 아편재배는 괜찮다는 것이다. 마약 생산을 이슬람의 이름으로 合法化(합법화)하는 것이다.

탈레반은 마약뿐 아니라 아프간 인구의 15%에 이르는 시아파를 무슬림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에 대한 박해를 당연하게 여긴다. 원래 아프간 이슬람은 온건한 축에 속하는 하나피 法學派(법학파)가 주류였다. 그런데 對蘇(대소)항전 과정에서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원리주의적 이슬람이 들어오면서 탈레반의 이슬람 해석이 경직되고 독선적이 됐다.

하워드 하트 前(전) CIA 파키스탄 지국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이 파슈툰 지역에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군을 증강할수록 저항은 더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파슈툰은 싸울 때만 평화롭다”는 속담처럼 파슈툰은 끊임없이 싸울 태세다. 만일 자의적 이슬람 해석을 바탕으로 전 세계 이슬람원리주의 세력과 마약 재배로 배를 채우는 탈레반이 파슈툰 민족주의와 만나 듀란드 국경선에 파슈툰의 나라 ‘파슈투니스탄(Pashtunistan)’을 건국한다면, 이는 아프간뿐 아니라 파키스탄에도 재앙이다.

따라서 미국은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탈레반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파키스탄 군부가 이슬람을 가지고 장난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할 필요가 있다. 파키스탄이 인도에 대한 적개심으로 상황을 오판할 경우, 파키스탄은 펀자브 주도의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州(주)들의 분리로 인해 펀자브주만 홀로 남는 나라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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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혼미의 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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