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 한국인] 美 부시 정부 백악관 정책차관보 지낸 시각장애인 姜永祐 박사 : 월간조선

姜永祐(강영우) 박사는 65번째 생일을 맞은 지난 1월 16일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이날은 그가 7년 동안 재직한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자리에서 물러나는 날이었다.

동시에 오바마 정권의 입법 특별보좌관에 임명된 차남 眞永(진영·미국명 크리스토퍼 강)씨가 백악관 무대에 등장하는 날이기도 했다. 한국계 父子(부자)가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에서 연속으로 백악관 고위직에 오르는 기념비적인 날이었던 것이다.

강 박사 내외와 두 아들 부부, 손자들까지 3代(대)가 모인 이날 밤의 생일 파티는 워싱턴 주재 외신 특파원들이 몰려와 졸지에 기자회견장으로 변했다. 시각장애인인 강 박사는 당시의 감격을 “내 생애 가장 빛나는 밤이었다”고 회고했다.

강연을 위해 訪韓(방한)한 강영우 박사를 만났다. 강 박사는 가난과 장애의 벽을 딛고 미국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韓人(한인) 1세대다. 1944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었고, 덕수중 1학년 때 축구공에 맞아 두 눈이 실명됐다.

뒤이어 어머니와 생계를 맡았던 누나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소년 家長(가장)이 됐다. 당시 18세이던 강 박사는 서울 맹학교로, 13세이던 남동생은 철물점 직원으로, 9세이던 여동생은 보육원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 맹학교 시절 만난 지금의 부인 石銀玉(석은옥)씨는 암흑천지에 놓인 그를 구원한 등불이요 지팡이였다. 강 박사는 부인 석은옥씨를 서울맹학교 1학년 때 만났다. 당시 숙명여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석씨는 걸스카우트 단원으로 시각장애인인 그를 돕기 위해 서울맹학교를 방문했다가, 그게 인연이 돼 평생 반려자가 됐다.

두 사람은 1972년 결혼했는데, 석씨의 가족들이 정상인인 무남독녀 외동딸이 시각장애인과 결혼하는 것을 심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어렵게 결혼했다고 한다.

그는 부인 석씨의 헌신적인 사랑과 내조로 1972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이해에 국제로터리재단의 장학금을 받고 渡美(도미), 피츠버그대에서 3년8개월 만에 석·박사(교육학 전공·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에 발탁

이후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교수와 인디애나주정부 특수교육국장으로 근무하는 한편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2001년에는 부시 정권 1기 출범과 함께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에 발탁돼 5400만 미국 장애인들의 인권과 복지 향상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 공로로 버지니아주 인권위원회 선정 ‘올해의 인권상’(2006), 미국 루스벨트재단 선정 ‘127인의 공로자’(2006), 자랑스러운 연세인상(2007), 피츠버그대 선정 ‘올해의 자랑스러운 동문상’(2008), 국제로터리재단 선정 ‘올해의 지구촌 인권 박애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인생 이야기는 <빛은 내 가슴에>와 <어둠을 밝히는 한 쌍의 촛불> 등의 저서와 이를 영상으로 옮긴 드라마 <눈 먼 새의 노래>와 영화 <빛은 내 가슴에>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빛은 내 가슴에>는 1987년 영문으로 출간됐는데, 아버지 부시는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0년 이 책을 읽고 이런 내용의 편지를 강 박사에게 보냈다고 한다.

<당신의 감동적인 삶의 스토리에는 문화와 언어를 초월해 존재하는 인간의 고귀한 가치들, 즉 신앙, 결심과 의지, 끈기, 긍휼히 여기는 마음 등이 담겨 있습니다. 인생에 등을 돌려야 할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숭고한 신앙과 불굴의 의지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에게 감동을 주고 귀감이 됩니다.>

아버지 부시는 드라마 <눈 먼 새의 노래> 에필로그 부분에 출연해 강 박사의 삶에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아버지 부시와의 인연은 아들 부시로 이어졌고, 백악관 입성의 토대가 됐다.

강영우 박사는 백악관에서 나온 후 더욱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재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 회장과 유엔 세계장애인위원회 부위원장, 루스벨트재단 고문 등으로 활동하며 세계 각지의 교육기관과 단체로부터 들어오는 초청강연을 소화하고 있다. 또 케네디 가문과 루스벨트 대통령 후손들을 한국에 초청해 장애 관련 국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강 박사에게 두 아들 眞石(진석·미국명 폴 강)씨와 진영씨의 근황을 물으니 한참 동안 두 아들 내외에 대한 자랑이 이어진다.

장남 진석씨는 명문 필립스아카데미(엑서터)와 하버드의대를 졸업한 후 조지타운대 교수 겸 안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진석씨는 하버드의대에서 동기생으로 만난 산부인과 전문의 에이미 씨와 결혼해 세 자녀를 두었다. 강 박사는 “아들은 안과 분야에서, 며느리는 산부인과 분야에서 <워싱터니언>誌(지)가 선정하는 2008년도 ‘톱닥터스’에 선정됐으며 2010년에는 최연소 워싱턴 수도권 안과 학회장으로 봉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연소 백악관 특별보좌관에 임명된 차남

65세 생일을 맞은 지난 1월 16일 온 가족이 모여 생일 파티를 열었다. 차남 강진영씨가 백악관 특별보좌관에 임명된 직후라 생일 파티는 워싱턴 주재 외신기자들의 기자회견장이 됐다.

차남 진영씨는 필립스아카데미(앤도버)와 시카고대 졸업 후 듀크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와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7년 동안 연방 상원 본회의장 수석 법률 보좌관으로 일했고, 3년 연속 미 의회 전용 신문인 <더 힐>의 최우수 보좌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진영씨 역시 시카고 대학 시절 만난 동기생 엘리자베스 씨와 결혼했다.

중국계 미국인인 엘리자베스 씨는 시카고대학을 거쳐 하버드대 로스쿨과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현재는 조지타운대 로스쿨에서 가족 폭력법 전문 교수로 美(미) 전국 항소 법원 판사들을 교육하고 있다. 둘 사이에 아직 자녀는 없다.

강 박사는 차남 진영씨 덕분에 지난 7월 백악관에서 있었던 장애인 민권법 서명 19주년 행사에 초대됐다. 그는 이 행사에서 진영씨의 주선으로 데이비드 패터슨 뉴욕주지사를 만났다. 패터슨 주지사는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흑인으로 미국 역사상 첫 시각장애인 주지사가 된 인물이다.

그는 “아들이 주선한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패터슨 주지사와 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면서 “그동안 미국 정부가 유엔 장애인 인권조약에 서명을 미뤄 아쉬웠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현장에서 조약에 서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백악관 특별보좌관 중 최연소인 진영씨는 백악관과 의회를 오가며 대통령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의중을 의회에 전달하고, 상원의원들의 의견을 모아 대통령에게 브리핑하는 일이 주요 업무다. 강 박사는 “진영이가 백악관 고위직들의 청문회 인준 업무까지 맡고 있어서 高洪株(고홍주) 미 국무부 법률고문도 임명 전 아들을 만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한인 2세대인 그의 두 아들은 미국 주류사회 진입은 물론 미국을 움직이는 젊은 리더로 성장했다. 그는 두 아들의 성공 비결로 “어렸을 때부터 인생의 비전과 목표를 세우도록 했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도록 노력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교육의 3대 요건은 지능, 노력, 원동력입니다. 이 중 비중이 가장 큰 것이 원동력인데, 인생의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바로 원동력이죠. 어렸을 때부터 이 원동력이 배양되면 부모나 교사가 애써 공부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됩니다. 저는 두 아들에게 원동력을 심어 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아이들에게 긍정적 사고 심어줘

백악관 특별보좌관 중 최연소인 차남 진영씨와 함께 미국 의회 의사당 앞에 선 강영우 박사.

그는 “뛰어난 영재도 부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으면 건강한 청년으로 자라기 힘드니 긍정적인 사고를 갖도록 주변에서 도와줘야 한다”며 장남 진석씨의 어린 시절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진석이가 세 돌 반이 되었을 때입니다. 하루는 제게 다가오더니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아빠는 다른 친구 아빠들처럼 야구도 못 하고, 세 발 자전거 타는 법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털어놓더군요. 진석이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강 박사는 어린 아들을 붙들고 “아빠 눈은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지만 의학이 계속 발전하고 있으니까 네가 어른이 되면 고칠 수 있을 거야. 진석이 네가 의사가 되어서 한번 고쳐볼래?”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또 아들의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기 위해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아빠는 앞은 못 보지만 눈뜬 엄마보다 잘하는 게 있어.”

“그게 뭔데?”

“너희 엄마는 밤에 불을 끄고 동화책을 못 읽어 주지만 아빠는 읽어 줄 수 있잖아.”

어린 나이였지만 아빠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안 진석씨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후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강 박사의 이야기다.

“진석이는 고등학교 성적이 일반 학교라면 하버드대에 원서를 낼 수 없는 수준이었어요. 2학년 때 수학에서 C학점을 받았거든요. 전 학년 전 과목에서 A학점을 받고도 숱한 아이들이 낙방하는 곳이 하버드대인 만큼 성적만으로는 합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런데도 필립스아카데미는 아이가 하버드대에 지원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 주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지도교사가 진석이에게 ‘일반적으로 동양아이들은 수학과 과학에서 뛰어나니까 심사 교수가 네 수학 성적은 크게 신경쓰지 않을 거야’라며 힘을 실어 주었다고 하더군요.”

강 박사는 “진석이가 하버드대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에세이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당시 하버드대에서 내놓은 에세이 주제는 ‘내 생애 가장 의미 있었던 사건이나 경험을 찾아서 서술하라’는 것이었다.

진석씨는 어린 시절 동화책을 읽어 주던 아버지 이야기를 썼다. 어둠 속에서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아버지의 남다른 능력 덕분에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고, 평범한 사람들로부터도 인생의 진리를 배울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내용의 이 에세이는 하버드대 교수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두 아들 명문 사립 기숙학교에 보내

강영우 박사는 아들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지 12일째 되는 날 백악관의 첫 손님으로 장애인계 대표들과 함께 초청받았다.

차남 진영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과제로 내준 자서전 집필을 계기로 자신의 비전과 목표를 정했다. 그리고 그 비전과 목표를 달성해 가고 있는 중이다. 강 박사는 “당시 학교에서 내준 과제는 ‘자신이 65세에 은퇴한다는 것을 가정해 인생을 되돌아보는 자서전을 쓰라’는 것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열두 살짜리 아이가 살아 보지도 않은 50여 년의 인생을 담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은퇴할 때 직업이 무엇인지부터 정해야 하는데, 진영이는 연방 대법관을 선택했어요. 그러곤 ‘여기 동양계 최초의 연방 대법관 크리스토퍼 진영 강이 누워 있노라’라고 새겨진 碑文(비문)으로 시작해 대법관이 되기까지 과정을 그렸어요. 이를 위해 진영이는 열심히 도서관을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막연했던 자신의 비전과 목표가 확연해졌고,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그리게 된 것 같아요.”

진영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신이 그린 이 로드맵에 따라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진학 시에는 형 진석씨가 다니던 엑서터의 필립스아카데미 대신 앤도버의 필립스아카데미를 택했다. “로스쿨을 졸업해 법학박사가 되는 것은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할 수 있지만 연방 대법관은 대통령이 인준하는 자리라 폭넓은 인맥 형성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진영씨는 형과 같은 학교로 진학해 인맥을 중복시킬 필요는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미국 최고의 명문 사립 기숙학교 필립스아카데미는 두 개가 있고, 각각 매사추세츠州(주) 앤도버와 뉴햄프셔주 엑서터에 자리 잡고 있다. 같은 재단이지만 두 학교는 라이벌 관계로 성향도 다르다. 필립스 엑서터는 보수 성향이 강하고, 필립스 앤도버는 진보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미국 최초의 사립학교인 필립스 앤도버는 1778년 새뮤얼 필립스가, 필립스 엑서터는 1781년 새뮤얼 필립스의 숙부인 존 필립스가 설립했다.

필립스아카데미의 건학이념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이다. 이에 따라 개인이 가진 재능과 능력을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해 활용하도록 교육한다. 필립스 엑서터는 하버드대 준비 학교로, 필립스 앤도버는 예일대 준비 학교로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부시 父子(부자) 대통령,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 존 F. 케네디 주니어, 래니 데이비스 前(전) 백악관 보좌관, 신문 재벌 제임스 오타웨이 등 미국을 움직이는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이 학교 졸업생이다.

강영우 박사는 “남을 위해 봉사하도록 가르치는데도 미국을 움직이는 정·재계 인사들을 많이 배출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두 아이에게 이 학교를 지망하도록 권유했다”고 말했다. 사립대 수준의 학비는 진영씨가 생후 2개월쯤 되었을 때 비과세인 칼리지펀드를 만들어 해결했다고 한다.

차남 진영씨의 백악관 입성기

차남 진영씨의 백악관 입성의 사다리를 놓아준 리처드 더빈 민주당 상원의원(가운데)과 함께.

두 아들의 필립스아카데미 진학은 강 박사가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인연을 맺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강 박사의 저서 <빛은 내 가슴에>를 읽은 학교장이 부시 대통령에게도 한 권 보낼 것을 권유해 인연이 시작됐기 때문.

진영씨는 필립스아카데미 졸업 후 시카고대에 진학했다. 당시 시카고대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교수가 6명이나 있어서 진영씨는 정치학 외에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다.

학기 중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하면서도 성적은 최상위권이었다. 진영씨는 캠퍼스 내에 대학 지역사회 봉사 센터를 창립, 초대 소장으로 활약하며 미셸 오바마와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진영씨가 창립한 봉사 센터는 시카고대 내에 있는 103개의 봉사 단체와 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자원 봉사원들을 캠퍼스에서 연결시켜 주는 일을 했다. 이 센터의 지도교수가 미셸 오바마였다.

진영씨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센터의 역할을 확장시켰고, 그 업적을 인정받아 클린턴 행정부로부터 차세대 지도자상을 받았다. 졸업 때는 시카고대 동문회에서 주는 하웰 머레이상을 수상했다.

시카고대 졸업 후 듀크대 로스쿨로 진학한 진영씨는 재학 중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사무실에서 펠로십을 했다. 당시 많은 학생이 연봉 3만5000달러를 받고 법률회사에서 일했지만 진영씨는 “나는 돈 버는 것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꿈을 실현하는 데 관심이 있다”며 연간 장학금 2000달러를 주는 상원에서 일했다고 한다.

진영씨는 법학박사 변호사가 된 후 상원에 들어가 본격적인 정치 수업을 받았다. 처음 상원에 들어갈 때는 강영우 박사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강 박사의 말이다.

“진영이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첫 일자리로 리처드 더빈 민주당 상원의원(일리노이 주)의 입법 보좌관 자리를 얻었는데, 이에 결정적 역할을 한 분이 당시 루스벨트재단 이사로 계셨던 조지 미첼(현 중동 특사) 상원 원내대표였습니다. 저와 교류하고 있던 분이라 추천서를 부탁했더니 민주당 상원의원 51명 전원에게 ‘보좌관이 필요하면 크리스토퍼 강을 쓰라’는 내용의 추천서를 보내 주셔서 쉽게 기용이 됐죠.”

2004년 민주당 상원 원내 부대표가 된 리처드 더빈은 진영씨를 민주당 지도부의 고문 변호사로 데리고 갔다. 리처드 더빈은 후에 오바마를 연방 상원으로 이끈 데 이어 대통령 후보로 만든 주인공이니 진영씨가 리처드 더빈 수하에 들어간 것은 결국 백악관으로 가는 사다리를 탄 셈이 됐다.

진영씨가 백악관 특별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공석이 된 민주당 상원의 최고 보좌관 자리는 그가 데리고 있던 고문 변호사가 승계했다. 강영우 박사는 “민주당 상원에도 진영이의 인맥이 남아 있어 진영이로서는 백악관에서 업적을 많이 낼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에게 장학금 기증

장남 진석씨는 아버지의 눈을 고치겠다는 어린 시절의 목표대로 안과 전문의가 됐다.

백악관 입법 특별보좌관으로서 진영씨가 올라갈 곳은 이제 대통령이 인준하는 연방 대법관이나 법무장관 자리다. 자신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린 로드맵의 최종 목적지가 멀지 않은 셈이다.

2008년 진영씨는 이민 100주년을 맞아 뉴욕 재미동포 청소년들 앞에서 연설할 기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홀로 서서도 어둠을 환히 비출 별과 같은 존재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항상 곁에서 저를 지켜 주고 저의 삶을 아름답게 비춰 주는 그들은 저의 가족이자, 제 삶을 바꾼 진정한 저의 영웅들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백악관에 입성한 후 쓴 ‘나의 가족, 나의 영웅’이란 글에서는 어린 시절 즐겨 했다는 ‘거스름 돈 만들기’라는 놀이를 소개하며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교육자였는지 설명하고 있다.

‘거스름 돈 만들기’는 아버지 강 박사가 제안한 놀이로 강 박사가 “87센트의 거스름돈은?”이라고 퀴즈를 내면 아들 진영씨가 “25센트짜리 3개, 10센트짜리 1개, 1센트짜리 2개”라고 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진영씨는 “아버지와 나만의 ‘거스름돈 만들기’ 놀이는 단순한 재미뿐 아니라 논리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한 아버지의 배려였다”고 회고하며 이렇게 적고 있다.

<아버지가 제게 가르쳐 주신 것은, 어떤 문제에도 꼭 한 가지 답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0센트짜리가 없으면 5센트짜리 두 개를 쓰면 되고, 5센트짜리가 없으면 1센트짜리를 쓰면 되는 것처럼, 목적지에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의 길이 막혔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바로 그것이, 아버지가 제게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해 가르쳐 주신 중요한 교훈 중 하나입니다.>

진영씨는 어머니 석은옥씨에 대한 마음도 털어 놓았다. 자신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늘 따뜻한 가슴으로 우리를 안아 주시고, 당신과 당신 가족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아름다운 마음으로 헌신과 열정의 본이 되어 주신 어머니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 공립학교 시각장애인 교사로 28년 동안 근무했던 석씨 역시 퇴임 후 더욱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강영우 박사의 말이다.

“워싱턴에서 아내는 저보다 더 유명한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여인들’이라는 한인 주부들의 모임을 결성해 미국 주류 사회의 양로원과 고아원 등지에서 한인 여성들의 향기를 전하기 위해 열심히 봉사 활동을 하고 있어요. 또 퇴직 연금과 각종 강연 기금을 모아 6명의 시각장애인에게 매년 1만2000달러의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시작했으니까 벌써 6년이 됐네요.”

강 박사 부부와 두 아들 내외는 모두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다. 각자 서로 바빠 한 달에 겨우 한 번씩 가족 모임을 갖고 있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커 늘 함께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강 박사는 “나의 失明(실명)이 집안 식구들에게 긍정적 도구와 자산으로 쓰였으니 하나님께 감사 드릴 일”이라며 웃었다. ⊙

사진 : 서경리

▣ 강진석(미국명 폴 강)의 하버드대 입학시험 에세이(全文)

어둠 속에서 아버지가 읽어 주신 이야기

내 방은 커다란 공사장의 축소판이었다. 레고로 만든 건축물들과, 조그만 자동차들, 그리고 색칠공부 책들 옆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탑들. 분주했던 하루를 마치고, 어질러져 있는 장난감들을 피해 침대에 누워 아버지가 “이제 자야지”라며 불을 꺼 주시면 나의 하루는 마감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다섯 살 고사리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어둠 속의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다. 밤의 침묵이 나를 감싸기 시작하면, 언제나 변함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나를 반기곤 했다. 자리를 잡고,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이불로 나의 작은 몸을 포근히 감싸고 나면,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최면사의 기법을 닮은 아버지의 책 읽는 음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버지의 부드러운 음성은 나를 유치원에서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 갔고, 그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거북이, 토끼와 경주를 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나며 자유로이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그저 간간이 들려오는 아버지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방해가 될 뿐이었다. 상상의 세계에서 여행을 하던 나는 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잠이 들어 버렸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이야기를 끝내겠다는 기대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내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쳐 주던 아버지의 마술책을 열어 보았다. 내 상상의 뿌리인 그 책에는 그림도, 글자도 없이 올록볼록하게 튀어나온 점들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점자 페이지 위에 나의 작은 손을 얹어 놓고 이리저리 더듬어 보며 ‘아버지는 어떻게 이것을 읽으실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어린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나는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때까지 나는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매일 밤, 아버지는 수많은 이야기로 나를 당신의 세계로,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 주셨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나의 상상의 세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어린 시절의 동반자였다.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육안이 없이도 볼 수 있는 세상을 보여주신 맹인 아버지를 가진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깨닫게 된다. 세월이 흘러 나도 자랐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늘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아버지가 잠자리에서 읽어 주신 이야기들이 나에게 미친 영향이다.

아버지의 이야기들로 나는 뛰어난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독창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고, 미래를 향한 비전이 선명해졌다. 또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교훈은, 인간의 가치는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사실과, 지극히 평범한 환경에서,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로부터도 인생의 귀중한 진리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외모로 보면 장애인이다. 그러나 나에게 아버지는 내가 아는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도 뛰어난 능력과 재능을 갖추신 분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장애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고귀한 교훈을 깨우쳐 주셨다.

아버지로 인해 나는 세상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고 도전하게 되었고, 누구나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배움의 자세로 삶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나는 아버지처럼 어둠 속에서 책을 읽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당신의 실명을 통해 나에게 주셨고, 앞으로도 주실 것은 미래를 바라보고 정진할 수 있는 비전과,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는 자유로움과, 인생을 풍족한 기회의 터로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주신 점이다. (자료 제공: 생명의말씀사)

▣ 강진영(미국명 크리스토퍼 강) 美 백악관 특별보좌관의 에세이

어머니의 아름다운 마음

제가 처음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의 교육을 전담하고 계시던 어머니를 도와, 인디애나주 개리市(시)의 시각장애 아동들에게 컴퓨터 사용 방법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저는 봉사활동이라는 것에 그만 푹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즐거워하는 학생들의 모습 때문에 보람을 느끼게 된 것이 한 가지 이유였지만, 그보다 더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학생들 하나하나를 가르치시는 어머니의 열정이었습니다.

아버지만큼이나 평생을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오신 분이 바로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2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시각장애 아동 재활교육에 힘쓰시다가 2004년에 은퇴를 하셨는데, 어머니의 헌신적인 봉사 정신과 이웃 사랑은 집에서만이 아니라 교실에서도 뚜렷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어머니가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본 어머니의 모습은 열정 그 자체였습니다. 어머니의 그 열정을 저도 느끼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 여름방학 이후 저는 어머니를 본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대학 때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방방곡곡의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서 학문을 연구하는 곳, 노벨상의 왕국이라 불리는 시카고대학은 시카고 남쪽의 빈민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풍스런 캠퍼스에서 몇 발자국만 나가면, 구걸을 하는 비렁뱅이들을 볼 수 있는 그런 곳이 시카고대학입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엘리트들과,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밑바닥 인생들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전 어머니를 본받아 가까운 제 주변부터 시작해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 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머니를 닮기 위해, 그리고 사마리아인과 같은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저는 동기들과 함께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책사랑’ 프로그램을 만들어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과 학교의 좀 더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학생회 간부로 2년간 활동하면서, 졸업 앨범을 만들고, 안전한 캠퍼스를 만들기 위해 힘을 쏟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모금 운동도 주도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봉사활동에 힘쓰고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저를 혼내시기보다는 늘 주위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 기회를 꼭 잡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더욱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셨습니다.

아버지 역시 한 가정의 머리로서 저를 인도해 주고 지도해 주셨지만,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자랑스럽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늘 따뜻한 가슴으로 우리를 안아 주시고, 당신과 당신 가족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아름다운 마음으로 헌신과 열정의 본이 되어 주신 어머니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료 제공: 생명의말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