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盧泰愚前 대통령이 털어놓은 중국 江澤民과의 대화 : 월간조선

盧泰愚前 대통령은 2002년 11월 중순 중국 정부 초청으로 北京과 上海 등을 둘러보고 귀국했다. 이번 訪中(방중) 과정에서 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중국 고위 지도층 인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月刊朝鮮은 盧前 대통령이 訪中 과정에서 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북한 核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소식을 듣고 盧前 대통령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盧前 대통령이 이를 수락하여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2002년 12월6일 盧前 대통령의 서울 연희동 자택을 찾았다. 月刊朝鮮은 1999년 5월부터 7개월에 걸쳐 盧前 대통령의 「육성 회고록」 연재를 위해 盧前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때와 비교해 보니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 盧前 대통령은 『지난 여름 전립선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했는데, 아직 100% 회복된 단계는 아니다』라면서 이렇게 말했다(盧前 대통령은 2002년 6월 미국 뉴욕에 있는 메모리얼 스론 케터링 인스티튜트에서 전립선 비대증 수술을 받았음-편집자 注).

『전립선을 별 거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미국에 갔는데, 실제 수술을 해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전립선 근방에 혈관이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지 수술 과정에서 피가 많이 흘러 수혈을 해야 했고, 수술 후에도 인체에 다른 질병이 있으면 재발이나 합병증 우려가 있다고 해요. 생각했던 만큼 회복이 빨리 되지 않아 요즘에도 운동을 못하고 있어요. 내 체중이 73kg이 정상인데, 지금은 74~75kg으로 몸이 좀 불었어』

韓-中 수교 10주년 기념으로 중국 정부가 초청

―외국에 나가실 때 인천공항을 통해 입출국을 하셨을 텐데요. 盧前 대통령께서 재임 중 영종도에 신공항 건설을 결정하셨는데, 인천국제공항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인천공항에 활주로가 네 개 다 건설되면 그 효율성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요. 특히 영종도는 공항 건설비가 싸게 먹힌다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東北亞에서 허브(hub·중심)공항 경쟁을 하고 있는 일본 오사카(大阪)의 간사이(關西) 국제공항과 홍콩의 첵랍콕 국제공항 등이 바다를 메워 만들었는데 우리는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수심이 얕은 개펄을 메우면 되기 때문에 건설비가 두 공항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게 들어갔습니다. 그 덕에 화물처리비용이나 계류비용, 공항이용료 등을 낮출 수 있어 東北亞의 허브공항으로서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죠』

―인천市 관계자들 얘기를 들어 보니 盧前 대통령께서 과거에 건강이 좋지 않아 용유도에서 요양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인연 때문에 용유도와 영종도에 걸쳐 있는 영종도 공항 개발계획에 대한 재가를 받기가 쉬웠다고 하던데요.

『내가 영관장교 시절에 맹장수술을 했는데 그만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겨 구멍이 뚫어지는 바람에 석 달 열흘을 고생했어요. 의사들 말이 바닷물에 들어가면 좋다 해서 용유도에서 사흘간 쉬면서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했더니 상처가 아물었어요. 그 때 용유도 지역의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개발의 適地(적지)라는 감은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인연의 덕도 좀 본 셈이지요』

―이번 중국 방문은 누구 초청으로, 어떤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입니까.

『중국 정부가 韓-中 수교 10주년을 맞아 당시 두 나라의 수교를 이끈 대통령이었던 나를 초청한 것입니다. 수교가 8월24일에 맺어졌기 때문에 그 날짜를 전후해서 중국을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날짜를 연기했습니다. 그 후로 중국 국내 사정을 보니 16차 黨 전국대회에서 권력 이양도 있고 해서 2002년 중에는 좀 어렵겠구나 싶었는데, 중국 정부에서 黨 대회가 끝날 무렵에 초청하고 싶다는 요청이 다시 왔습니다. 지난번에 연기를 했는데, 또 연기를 하자니 미안하고 해서 이번에 다녀온 것입니다』

중국 지도부 인사들 두루 만나

―언론 보도에 의하면 江澤民 주석을 비롯해서 중국 고위 지도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셨다고 하던데요. 江澤民 주석과는 몇 번째 만남이었습니까.

『2000년에 두 번째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갑작스런 그쪽 사정 때문에 만나지 못했지요. 따라서 1992년 중국과 수교한 뒤 바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만난 후 이번에 두 번째로 만난 겁니다. 이번 중국 방문에서는 江주석의 배려로 가는 곳마다 정중한 환대를 해 주어 편안하게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江澤民 주석 외에도 중국 지도부의 주요 인사들과 만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주로 어느 분들을 만나셨습니까.

『錢其琛(전기침) 부총리, 戴秉國(대병국) 중국 공산당 對外연락부장, 唐家璇(당가선) 외교부장, 매조영 인민외교학회장 등 당과 정부의 최고위 인사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조선족 동포인 趙南起(조남기) 정치협상회의 부주석과 내가 방문했던 安徽省(안휘성), 蘇州(소주), 上海(상해)의 省長(성장)과 市長들도 환영을 해 주었습니다』

『江주석, 金正日에게 한국 방문 권유』

―2002년 11월20일 江澤民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 주석과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던데요. 주로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인민대회당에서 江澤民 국가주석을 만났는데, 江주석은 10년 전 자신이 黨 총서기로 재직할 무렵 나를 만났던 일을 상기하면서 반가움을 표시하더군요. 내가 江주석에게 제일 역점을 두어 거론한 것은 북한 핵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安危(안위)와 한국 국민의 安寧(안녕), 그리고 東北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 정착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으로서 중국의 국가주석 및 중국 지도자들을 만날 때마다 북한 核 문제에 역점을 두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중국의 주요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북한 核 문제를 거론하면서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江澤民 주석은 북한의 核 개발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놓던가요.

『나는 江주석에게 남북관계의 기본법전이 되어 있는 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한 非核化 공동선언에 합의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북한이 1991~1992년에 남북 간에 합의한 방향으로 계속 나갔다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받았을 텐데, 핵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벌어진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그 동안 중국은 한반도에서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쳐 왔기 때문에 우리 의견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지 않도록 설득해주기 바란다」고 江주석에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江澤民 주석은 「우리는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한반도의 非核化를 원한다는 입장을 주장해 왔다. 지금 핵 문제가 한반도의 안정을 불안하게 하는 사안으로 대두됐는데, 한반도의 안정에 이로운 것은 적극 찬성하고, 한반도의 안정에 이롭지 못한 것은 반대한다」고 강조하더만. 덧붙여서 江주석은 북한이 우라늄 핵개발을 시인했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내가 새겨듣기에 「저 친구들 참 못할 짓을 하는구나」 하는 뜻으로 이해가 됐습니다. 또 江주석은 2001년 북한을 방문해 金正日 위원장을 만났을 때 「金大中 대통령께서 이미 북한을 방문했으니 金위원장도 당연히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盧前 대통령은 江澤民 주석뿐만 아니라 중국 고위 지도층에게도 북한 핵개발을 막아줄 것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戴秉國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북한 지도자 金正日과 친하다는 이야기가 있어 이 분에게도 북한 핵개발을 포기토록 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나는 戴秉國 부장에게 「金正日이 핵무기를 개발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 큰 괴로움과 손해를 주었는데, 金正日을 위해서라도 북한의 핵 개발은 득 될 것이 전혀 없다. 중국도 북한을 봐 주는 데 한계가 있으니 포기하라는 의견을 전하면 金正日도 듣지 않겠습니까」 하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金大中 대통령 메시지 전달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 외에도 생화학무기,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Weapons of Mass Destruction)에 대한 우려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정해진 입장이 있을 것으로 보는데 혹시 이번 訪中 과정에서 중국 지도자들과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대화를 나누신 것은 없습니까.

『북한의 핵무기 문제 외에 구체적으로 생화학무기라든가 미사일을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중국의 지도층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군사력 강화를 지지하지 않으며 韓-中 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희망하는 입장에서 북한이 한반도 안정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 주기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더군요.

나와 만난 중국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유리한 일이라면 무조건 지지하며, 유리하지 않으면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표현 속에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바라보는 중국 지도부의 모든 입장이 망라되어 있다고 봅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우리의 국가안보와 생존에 결정적인 위협요소임에도 불구하고 金大中 정부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 지원과 남북 經協을 계속하면서 핵무기 개발 포기를 소극적으로 요구하는 등 마치 남의 일 보듯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며칠 전에는 金大中 대통령이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해도 대화 이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고 발언한 내용이 보도됐는데, 과연 북한 핵 문제가 대화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북한 핵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할 우리의 국가적 과제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해결과제이기도 합니다. 우선은 대화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적절한 「채찍」도 병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江澤民 국가주석과 나눈 대화를 귀국 후에 金大中 대통령에게도 전달하셨습니까.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청와대에 중국 방문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출발 하루 전에 金대통령께서 「잘 다녀오시라」는 전화가 왔더군요. 내가 이번에 중국에 가면 江주석을 만날 예정인데 전할 말씀이 있으면 해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金대통령께서 북한 핵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우려를 전달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내 입장에서 볼 때 어찌됐든 북한 핵 개발은 1991~1992년에 맺었던 한반도 非核化 공동선언을 북한이 어긴 것이 되거든. 이걸 왜 어겼느냐 하는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북한 핵 문제에 대한 金대통령의 우려를 江澤民 주석에게 전하겠다고 했습니다. 귀국 후 江주석과 나눈 내용들을 청와대에 전달해 주었습니다』

―혹시 중국 쪽에서는 북한의 핵개발 능력을 미국보다 낮춰 보기 때문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런 느낌은 못 받으셨습니까.

『중국은 북한 핵개발을 궁극적으로 반대하지만 미국과 경쟁적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접근방법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봐야죠. 예를 들어 제네바 합의를 북한만이 아니라 미국도 준수해야 한다는 식이지요』

중국도 對北 경제제재 동참 가능성 있다

―앞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개발을 계속할 경우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에 돌입할 가능성도 있는데, 이 경우 중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국제사회를 시끄럽지 않게 할 경우 경제제재에 동참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실리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어요. 과거의 예를 보더라도 우리가 중국과 수교할 때 북한은 절대 반대 입장이었지만 북한이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해서 중국이 實利를 포기하는 쪽으로 가지는 않았습니다.

유엔 가입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남한의 유엔가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변화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핵개발을 하면 남한이 「우리는 당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일 것이고 일본도 핵무장의 길로 나가면 중국에서 볼 때 지극히 불안한 요인이 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방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북한을 달래다 안 되면 경제제재에 동참할 수도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벼랑 끝까지 몰리면 중국 태도가 바뀔 가능성도 있겠군요.

『지금까지 중국의 외교적 행보로 보면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봐요』

―盧前 대통령께서 재임 중인 1991년 11월8일 한반도 非核化선언을 하셨고, 1992년 2월19일에는 남북한이 기본합의서와 함께 한반도 非核化 공동선언을 발효시켰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선언을 철석같이 지켰지만 북한은 핵무기 개발, NPT 탈퇴, 美-北 제네바 합의에 이어 결국 또 다시 우라늄 농축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을 시인하고 나섰습니다. 때문에 사회 일각에서는 盧대통령 당시의 非核化 공동선언이 너무 순진한 발상이 아니었느냐 하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만일 우리가 非核化 선언을 하지 않고 미군에 의한 것이든, 한국군에 의한 것이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북한이 가만 있었겠습니까?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면 전쟁 위험이 급속도로 높아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북한이 핵을 갖지 않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핵을 갖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非核化 공동선언은 당시의 추세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피동적으로 취하기보다 주도권을 쥐고 취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게 문제지만 결국에는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봅니다』

―盧前 대통령께서는 전부터 楊尙昆(양상곤), 江澤民, 李鵬(이붕) 총리 등 중국의 고위 지도자들과 깊은 교분을 나누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 지도부 인사들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선은 모가 나지 않고, 和合을 잘 이루며,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과 능력이 몸에 배어 있고, 국제적인 감각이 풍부한 사람들이 지도자群을 형성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중국 지도자들 가운데 과학기술계 출신이 많아서인지 선진화에 중점을 두고, 이런 사람들을 지도자로 키우는 경향이 뚜렷해 보였습니다. 또 나이가 많고 신중한 성격이라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겠군요. 楊尙昆, 江澤民, 李鵬 같은 분들은 모두 1920년대에 태어났습니다.

최근 제4세대 지도자들의 浮上(부상)이 두드러지는데 그렇다 해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평균 연령이 높은 편입니다.

중국은 수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중국인들은 마음이 비교적 넓고 앞을 내다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江澤民 국가주석은 이번 만남에서 陶淵明(도연명)의 歸去來辭(귀거래사)를 이야기하더군요. 적절한 시기에 후임자에게 물려 준다는 뜻이 담긴 것 같았습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지도 세력 간의 권력 균형이 잘 유지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鄧小平 이후의 지도자들은 국가 이익과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손 아귀 힘이 센 江澤民 주석

―당 총서기직을 胡錦濤에게 물려 준 江澤民 주석을 만났을 때 과거에 비해 의전이라든가 하는 점이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江澤民 주석이 2선으로 물러난 것처럼 잘못 알고 있는데, 당 총서기직만 내놓았고, 주석 직은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분이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겠더군요. 이번에 만나 보니 국가원수로서의 위상이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배석했던 孫柱煥前 장관은 『중국 현지 언론은 江주석의 盧前 대통령과의 만남을, 「16차 당대회 이후에 江주석이 만난 외국의 최고 지도자」라고 평을 했다』고 했다. 인민일보는 『盧前 대통령과 江澤民 주석과의 면담 내용을 1면에 컬러 사진과 함께 주요 국가의 현직 국가원수와 頂上회담을 할 때의 크기로 보도했고, 중국 중앙방송인 CCTV도 톱뉴스로 3분간 방송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江주석과 면담이 끝난 후 北京의 우리 특파원단과 오찬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자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고 韓-中수교 10주년을 기념하여 수교 배경이라든가 이런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해서 설명을 했는데, 기자들이 상당히 감명 깊게 듣고 기사도 써서 송고를 했다더군요. 나중에 보니 우리나라 신문에는 보도된 것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언론이 전직 대통령에게 인색하달까, 국제관계의 균형감각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江澤民 주석은 인상만 봐도 분위기가 유쾌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공개석상에서 마이크 잡고 노래도 하고 그런다는데 실제 만나보시니 어떻습니까.

『이번에 내가 江澤民 주석을 만나서 악수를 하면서 「아직 江주석 손아귀 힘이 세다」고 농담을 하니까 「그래요. 나 아직 힘이 셉니다」 하고 유쾌하게 답하더군요. 1992년에 중국과 수교를 한 뒤 바로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당시 黨 총서기였던 江澤民 주석을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故事成語라든가 속담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더군요.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중국 지도자들의 체질 속에는 수천 년을 이어온 선조들의 우수한 역사와 전통이 배어 있어서 이것을 조직이나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당시 중국 지도자들의 열린 사고방식과 實事求是(실사구시) 정신을 체험하면서 「중국은 사회주의를 한다고 하면서도 그 본질은 사회주의가 아니구나」 하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毛澤東 시대까지는 사회주의가 통했을지 모르지만 그 이후 세대에게 중국 공산주의는 전통적인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아니라 「중국화한」 공산주의로 존재하고 있더군요. 나는 이번 16차 당 대회에서 江澤民 주석의 3개 대표사상이 黨憲(당헌)-중국에서는 黨章(당장)이라고 하는데-에 삽입된 점과 江주석이 제시한 장기 발전 청사진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토니 블레어 수상은 江주석 차남보다 두 살 아래

―江주석이 제창한 3개 대표사상과 장기발전 청사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중국 공산당은 세 가지, 즉 「선진 생산력, 선진 문화, 全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것인데 2002년 11월 중국 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16大)가 이 사상을 黨章에 포함시켰어요. 또 江주석은 GDP(국내총생산)를 향후 10년 내에 프랑스·영국을 제치고 세계 4위로, 2020년에는 2000년의 네 배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국가 목표를 세워 놓고 있더군요. 이런 사상과 장기발전 청사진에 따라 그 동안 「인민을 착취하는 계급」이라고 경원시되던 기업인들이 공산당에 입당할 수 있는 길이 공식적으로 열린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경제인에 대한 사회적 지위의 확보라는 차원, 그리고 합법적인 소득을 인정한다는 차원에서 볼 때 중국 공산주의 역사에서 대단한 변화입니다. 특히 이 사상으로 인해 江주석은 毛澤東, 鄧小平과 함께 중국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 및 思想家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난 10년간의 韓-中 관계 발전을 평가하면서 이번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발전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도록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江주석은 나의 말을 고개를 끄떡이거나 미소를 짓는 등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진지하게 듣더군요』

盧前 대통령은 『江주석은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 치고는 대단히 솔직하고 진지했다』면서 『그의 태도에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감명도 받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江주석은 이런 재미있는 말도 했습니다. 「본인은 나이가 76세이나 남들은 나를 보고 젊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블레어 총리는 매우 젊어서 내 차남보다 두 살이나 아래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나의 장남보다 한 살 아래입니다. 얼마 전 미국에 가서 부시 대통령을 만났는데 부시 대통령은 1946년생(56세)이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출생했을 당시 나는 이미 공산당에 가입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비교해 볼 때 1942년생인 胡錦濤(호금도) 총서기는 젊다고 할 수 없지만 중국의 13억 인구를 놓고 볼 때 상대적으로 젊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해방(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 일하기 시작한 젊은 세대들로서 나는 이 사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말처럼 나이에 연연하지 말고 앞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江주석의 이런 말을 들으면서 江주석이 毛澤東과 鄧小平에 이어 위대한 중국 지도자로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국은 「떠오른 龍」

―盧前 대통령께서 재임 중이던 1992년 8월 韓-中 수교가 이루어졌습니다. 10년 전의 중국과 오늘날의 중국을 비교하신다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최근에 金夏中(김하중) 駐中대사가 「떠오른 龍」(騰飛的龍)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 표현이 아주 적절하다고 할 만큼 중국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上海의 浦東(포동)지역은 북한의 金正日 국방위원장이 「天地開闢」(천지개벽)이란 표현을 썼듯이 놀랍게 변했더구만.

내가 10년 전에 上海를 방문했을 때 지금은 중앙상임위원으로 올라간 黃菊(황국) 당시 上海市長이 직접 나에게 浦東 개발에 대해 브리핑을 했는데, 설명을 들으면서 속으로 「중국 사람들 참으로 꿈도 크구나」 하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번에 가 보니 당시의 꿈이 다 현실로 이루어졌어요. 10년 전에 방문했을 때는 허허벌판이던 곳이 선진국 못지않은 신도시로 변해 있었습니다. 중국과 수교한 뒤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면서 받은 느낌은 「도로는 우리가 중국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가보니 도로도 엄청나게 잘 닦아 놓았더군요』

―그렇지만 중국은 경제적 발전에 따르는 여러 가지 어려움도 동시에 겪을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중국의 앞날이 반드시 낙관적이지는 않다는 의견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에 江澤民 주석을 만났을 때 중국의 발전 양상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자 江주석은 「우리도 어려움이 많다」면서 「정리해고 근로자 문제, 농촌 구매력을 높이는 문제 등을 다음 지도층에 물려 주게 되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하더군요. 얼마 전에 읽은 「중국의 몰락」이란 책을 보면 앞으로 중국에 닥칠 여러 문제점, 취약점들이 다 분석되어 있는데 중국 지도부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다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애. 중국 지도부는 1인당 2000달러 국민소득을 달성하여 小康(소강:여유 있는 생활단계)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발전과정을 겪은 우리 입장에서 볼 때 朴正熙 대통령 시절, 국민소득이 500달러 정도 되던 무렵, 全국민이 하나로 뭉쳐서 의욕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에는 일부 반대층이 있었지만 국민 전체의 생각은 나와 나라의 발전이 일치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국민소득이 2000~3000달러 넘어가니까 한꺼번에 불만이 터져 나오고 갈등이 더 심해지더군요. 내가 집권 초기에 1인당 국민소득이 2700~2800달러였는데 퇴임 전까지 5000달러 시대를 만들겠다 약속했어요. 그런데 퇴임 무렵에는 7600까지 올라갔단 말이야.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 입장에서는 이 시기가 나라를 통치하기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느꼈어요. 중국에서는 이런 어려움을 미리 예상해서 사회주의 제도를 함부로 자유민주화로 바꿀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對중국 무역흑자 10년간 333억 달러

―자료를 보니까 韓-中 수교 무렵 우리와 중국과의 교역량이 30억 달러 정도라고 나와 있더군요. 2002년 무역통계를 보니 중국과의 교역량이 미국을 앞선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나는 한국이 꾸준히 발전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미국·일본과 함께 중국과의 교역이 긴요하다고 판단하여 韓-中 수교를 추진했지만 중국 경제가 이 정도로 약진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이런 수치를 보고 놀랐지만, 중국 지도자들도 그 성과에 무척 만족하는 것 같았습니다. 唐家璇(당가선) 외교부장은 韓-中 관계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더군요.

▲첫째 韓-中 양국 지도자들이 높은 곳에서 멀리 내다보고 수교를 결정했고, 그 이후 양국 관계가 빠르게 발전하여 이제는 전면적인 우호 협력 동반자 관계가 되었다 ▲둘째 韓-中 양국은 東北亞에서 중요한 교역 파트너가 되었다. 중국 측 예측에 따르면 2002년도 양국간 교역액은 4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셋째 정부 차원에서 각 분야별로 우호 협력 교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외에 민간 차원에서도 매우 양호한 추세로 좋은 방향으로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다 ▲넷째 양자간의 외교관계뿐만 아니라 유엔 등 국제무대와 지역협력 등에 있어서도 서로가 많은 분야에서 공통된 인식을 같이 하고 잘 협력해 나가고 있다. 한국의 역대 장관들은 모두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유학생이 2만2000명에 달해 일본 유학생 수를 앞지르고 있다」고 했는데 나도 그 숫자를 듣고 놀랐습니다』

盧前 대통령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중국은 미국 다음가는 수출 교역국』이라면서 『2001년 말 현재 對중국 투자 규모는 누계건수 6054건, 누계금액 51억 달러, 지난 10년간 한국이 중국에서 올린 누적 무역흑자는 총 333억 달러, 항공노선이 매주 220회 운항, 한 해 200만 명이 양국을 오갔고, 조선족 동포 200만 명이 중국에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석했던 孫柱煥前 장관은 韓-中 수교와 관련한 중국 지도부의 반응을 이렇게 설명했다.

『江澤民 국가주석을 비롯해 당과 정부의 고위 책임자들은 한결같이 「韓-中 수교는 대단한 성공작」이었다면서 「韓-中 수교의 최고 유공자는 수교를 결정한 중국의 鄧小平翁(옹)과 한국의 盧泰愚前 대통령」이라고 했습니다. 錢其琛 부총리, 戴秉國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당시 盧대통령의 결단이 韓-中 수교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했고, 趙南起(조남기)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은 「중국은 수교에 큰 공헌을 한 盧前 대통령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며 「이러한 점을 고려해 중국 정부는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고의 예우를 다 해 접대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唐家璇(당가선) 외교부장은 「飮水思源」(음수사원:물을 마실 때는 샘을 판 사람을 생각한다)이라는 故事(고사)까지 인용하면서 「중국 국민들은 韓-中 수교를 위해 盧대통령께서 기여한 공헌과 업적에 대해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盧前 대통령께서는 그런 평에 대해 「松茂栢悅」(송무백열:소나무가 잘 자라면 잣나무도 기뻐한다)이라는 故事로 韓-中 수교 이후 중국이 발전한 데 대해 和答을 했습니다』

『反美감정은 국가安保에 심대한 영향』

―2002년 중국 항공기가 김해공항에서 추락하여 100여 명이 사망했는데, 이것은 중국 조종사 실수로 판명됐습니다. 만약 미국 항공기 조종사가 이런 실수로 추락하여 사람이 죽었다면 우리 사회에 엄청난 反美운동이 일었을 텐테 反中운동은 일어나지 않더군요. 역사적으로 중국과 밀접한 관계였던 상황에서 경제까지 중국과 깊게 연대가 되니 우리가 對中國 자주노선을 견지한다는 게 참으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고통스런 과정을 피해 갈 수는 없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교역량이 미국을 앞서고, 또 남북 頂上회담을 중국이 뒤에서 도왔다는 등 중국과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反美 감정이 촉발되고 있고, 정권 차원에서도 미국과 계속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치질 않고 있습니다. 큰 흐름으로 보면 전통적인 우방이자 해양 동맹세력인 미국과는 거리감이 생기고 대륙세력인 중국과는 밀착해 가는 현상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정책적인 변화가 우리의 국가안보와 통일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현재 국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反美감정은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우려할 만한 사태입니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미국과 소련의 양극화 시대에 공산주의체제로부터 한국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공산권의 몰락으로 양극화 국제 관계가 사라졌다고 해도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韓-美 동맹관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따라서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이 무너졌다 해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부정하려는 것은 국가안보에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북한이라는 위협이 현실로 엄존하고 있고, 통일 후라 해도 東北亞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에게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韓-美 동맹관계는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우리의 국가안보와 통일 문제, 경제적인 측면까지를 포함해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 모두가 중요한 나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盧대통령께서는 취임하던 해인 1988년 7·7선언을 하셨고, 1991년에는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 합의,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등 남북관계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또 徐東權 당시 안기부장을 북한에 보내 남북 頂上회담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남북관계를 추진하는 데 있어 기본 원칙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북한에 대해 설정한 기본 원칙은 「개방=통일」이에요. 원래 공산주의 사회라는 것이 봉쇄가 되어 있을 때 유지되는 것이지 개방되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양파 껍질을 하나씩 벗기듯이 개방시키다 보면 자동적으로 통일에 이르게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힘만으로는 북한을 개방시킬 수 없으므로 북한과 친한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맺어 북한을 「포위하자」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非동맹국에서부터 시작해 동구권, 소련, 중국 등 북한과 친한 나라들이 우리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북한은 지원세력을 잃게 된 것이지요』

후보 단일화는 DJ 작품일 가능성

―盧前 대통령께서 추진한 북방정책은 북한 포위까지는 성공했습니다만, 마지막 단계인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해 통일의 길로 이끌어내는 과제는 아직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美-蘇 관계나 동서독 관계를 보면 공산주의자를 다루는 데 있어서 양보를 통해 목적이 달성된 예는 거의 없어요. 오히려 미국과 독일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킨다는 강한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은 해주되 북한이 도전적인 태도를 취할 때는 그보다 훨씬 더 무섭고 가혹한 힘의 과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제까지 무조건 주면서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예가 없습니다. 따라서 남북한 관계에도 넓은 의미의 상호주의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지원해 준 代價를 돌려 받는 상호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원을 해주는 보람이라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주면 식량을 사서 굶주린 주민들에게 나눠 주어야지 부정적인 용도에 써서야 되겠습니까』

―6·15 남북 頂上회담에서 우리 측 연합제와 북한 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문제가 거론되어 혼란이 야기된 바 있습니다. 바람직한 통일의 원칙은 이미 盧前 대통령 시절 남북기본합의서에 다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합의가 또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북한과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 관계를 정리하는 大法典(대법전), 즉 마그나카르타입니다. 남북한 간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이 합의서대로만 하면 해결되게 돼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한 간에 어떤 협정이 체결되든 이 기본합의서의 내용을 기초로 삼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북한 쪽은 남북기본합의서가 남한쪽 의견이 강하게 반영된, 그래서 자기들에게는 대단히 불리하게 맺어진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를 계속 무시하고 있는 것이고, 여기에 화답하는 것은 북한 측 입장에 말려들어가는 행위라고 봅니다』

화제는 대통령 선거로 옮겨갔다. 盧武鉉 후보와 鄭夢準 후보의 「후보 단일화」 문제에 대해 盧前 대통령은 이런 의견을 내놓았다.

『나는 1987년부터 金大中 대통령과 부딪쳐 왔기 때문에 그 분의 정치적 특성을 잘 압니다. 이번 후보 단일화는 金大中 대통령의 작품이라고 봐요』

―그렇게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金대통령은 1987년 大選에서 패한 이유는 YS와의 단일화 실패 때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1992년 大選에서 金대통령이 YS에게 패하는 과정에서 「호남만으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1997년 大選에서는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JP(金鍾泌)를 끌어들여 성공한 겁니다.

金대통령은 노벨상도 수상했으니 차기 정권은 누가 되든 편안하게 생각할 처지가 아니라 선거 결과에 따라 자신이 처할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金대통령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국민적 이벤트 중에 최고의 흥행가치가 있는 「단일화 이벤트」였다고 봐요. 盧武鉉 후보와 鄭夢準 두 후보가 단일화가 안 되면 공멸인데, 그런 상황에서 권력의 향배가 걸린 단일화를 성공시킬 수 있는 사람이 金대통령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신의주 특구-무모해도 저렇게 무모할 수가…

―최근 들어 북한에서 경제적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장마당에서 물가가 오르고 환율을 현실화한 후에도 두 배 정도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북한 경제개혁의 절대조건은 외부로부터의 돈과 물건이 들어와야 하는 것인데 이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盧前 대통령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내가 2000년에 중국을 방문하기 전에 중국대사관을 통해 몇 가지 자료를 구해서 봤는데, 거기에 金正日이가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이라는 중국 학자들의 글이 실려 있더군요. 그 글 중에 헌법을 개정해 시장경제 체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길을 열었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金正日이가 체제 개방을 위한 길을 잡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외부의 변화를 수용하고자 하는 태세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 하는 징후를 몇 가지 자료로부터 느낀 사실이 있구만.

그런데 이번에 신의주 특구 발표하는 것을 보니까 「무모해도 저렇게 무모할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경제발전도 아니고 중국 사람을 끌어들여 도박판을 만들려고 했으니…』

盧前 대통령은 수술 후유증 때문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좀 고통스러운지 피곤한 표정이었다.

『이번에 중국에 가서 몸도 안 좋은데 겨울에 좀 따뜻한 곳에 가서 쉬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중국의 昆明(곤명)이라는 지역이 겨울에도 기온이 따뜻하고 하니 좀 알아보라」 했더니 「좋다는 곳에는 한국 사람이 다 가 있습니다」 하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솔로몬군도」와의 인연

―요즘 한국 사람들이 은퇴 후 노후생활을 즐기기 위해 우리보다 생활환경이 좀 낮은 南태평양이나 말레이시아 등지로 은퇴 이민을 가는 사례가 많다는 내용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南태평양 이야기가 나오자 盧前 대통령은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

『1991년에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할 때 南태평양의 솔로몬군도라는 신생국이 같은 날 유엔에 가입했습니다. 우리는 뉴욕에서 축하행사를 크게 했는데, 솔로몬군도 대통령이 리셉션에 와서 나와 인사를 나누면서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하더군요. 내가 퇴임한 후 그 분이 한국을 방문했어요. 당시 솔로몬군도는 개발사업을 위해 한국 기업과 상담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분 말씀이 「우리나라에는 섬이 수천 개 있는데 그 중 몇 개를 盧前 대통령에게 기증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얼마 후 그 분이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놀랍게도 자기 후임자에게 나와의 약속을 유언으로 인수인계했다는 거야. 그래서 후임 대통령이 나에게 솔로몬군도를 꼭 한 번 방문해 달라는 연락이 왔더군요』

―우리 사회는 조만간 金大中 대통령이 퇴임하면 어느덧 다섯 분의 전직 대통령이 존재하는 나라가 됩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들의 경험과 경륜이 우리 사회를 위해 소중하게 쓰여지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盧前 대통령께서는 전부터 재임 시절의 국가 주요 정책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회고록이나 전기 등을 조만간 출간할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대통령의 國政 경험은 곧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국정 경험을 정확하게 記述하는 것은 역사를 바로 기록하는 것이고, 역사는 후대의 국가 발전에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역사의 한 시대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그런 기록을 남기는 것은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재임 중에 있었던 국가 경영에 관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공개할 것입니다』

『國運이 왔을 때 온 힘을 다해 움켜 잡아야』

―대통령에 당선되면 초기 6개월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무엇부터 해나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가장 중요한 것이 和合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거를 통해 갈라진 民心을 추스려 화합을 이루게 해야 합니다. 또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 適材適所(적재적소)에 배치해 제 역량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국가의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盧前 대통령께서는 재임 중 「帝王的 대통령」이란 비판은 듣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盧前 대통령 이후 취임한 두 분 대통령은 「민주화의 기수」니 「文民정권」이니 하는 주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帝王的 대통령이란 비판을 면치 못했습니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집권 후에 帝王的 대통령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요.

『권력자가 권력의 개념을 어떻게 잡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흔히 「권력을 누린다」 혹은 「享有(향유)한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대통령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권력을 누린다는 생각을 버리고 권력을 행사할 때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유능한 전문가를 기용하여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盧前 대통령은 金大中 정부의 對北정책에 대해 『채찍을 써야 할 때에도 당근 일변도의 입장을 견지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盧前 대통령은 『나라에도 國運이란 것이 있는데, 그 운이 다가왔을 때 온 힘을 집중하여 움켜 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우리의 國運이 융성하게 해 주길 기대하는 것은 비단 전직 대통령들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