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 편집
만일 한국의 신문·방송의 보도태도대로라면 한국의 21세기는 2002 韓日 월드컵 경기라는 축구놀이로 시작되고 있다.
지난 6월 국영·공영 TV 방송은 主 뉴스시간을 한 시간으로 늘리고 50분을 축구뉴스로 커버하는 세계적 진기록을 매일같이 쏟아냈다. 그것도 한 달 가까운 기간을 매일같이 「특집」에 「특집」으로 채웠다. 미국의 9·11 테러도, 정권변동의 정치뉴스도, IMF 구제금융 경제위기 때의 뉴스도 이렇게 집중되지는 않았다. 어떤 신문의 하루는 외신과 TV프로그램 소개 페이지를 빼고는 全지면을 월드컵 소식으로 채웠다. 가히 세기적 편집이다. 앞으로 21세기 어느 날 또 이런 광기와 엽기적 편집의 사건이 일어날까.
통일의 그날일까. 북한이 무너지는 날일까.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날일까. 미군이 철수하는 날일까. 독도가 일본에 점령되는 날일까. 또다시 1997년 같은 경제위기의 재발일까. 쿠데타가 일어나는 날일까. 1979년처럼 대통령이 피살되는 날일까. 한국의 과학자들이 한꺼번에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의 노벨상을 타는 날일까. 한국의 기업이 소니를, IBM을, 벤츠를 흡수합병하는 날일까. 한국의 연구소가 나노테크놀로지와 수소에 의한 新에너지 개발이라는 세계적 발명을 하는 날일까.
온 국민은 이번 월드컵으로 축구경기의 재미, 한국축구의 4강 신화창조, 「붉은 악마」의 스타디움·거리·광장의 붉은색 독점과 「히딩크 신드롬」 등으로 복합된 2002 韓日 월드컵 아닌 「한국 월드컵 신드롬」을 만끽했다. 확실히 이변, 경이, 기대 이상의 승리, 쏠림, 비정상이 지배한 신드롬이었다.
월드컵 신드롬은 지난 200년간 한국 근대화 변화과정의 특징 「돌출성」을 반영
한국 근대화라는 19세기 중반 이후의 역사적·문명사적 큰 변화에의 적응과정은, 일관되게 준비하고 순리로 계획하고 차근차근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이른바 정상적인 변화를 거치는 것이 아니고 돌출적이고 폭발적이고 한쪽으로 쏠리고 갑작스러운 도약과 추락이 겹치는 모습을 띤다. 그래서 늘 非정상적, 異常的, 전투적이다.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 갑작스러운 미국과 소련에 의한 분단, 4·19 이후 계속되는 국가수반의 비극적 말로, 朴正熙 「장군」의 등장과 「한강의 기적」, 「88서울올림픽」의 4강기록 달성, 1997년의 돌출, 즉 대통령 金泳三과 DJ, JP, 대통령 후보자들의 21세기 초 5大강국 달성 공약과 「6·25 이후 최대 국난」의 경제위기 초래.
이제 2002 한국 월드컵을 보자.
첫째, 이렇게도 열광하는 축구 월드컵을 우리는 정말 바랐던가. 분명 아니었다. 1993년 5월15일 일본 J리그 개막식 리셉션에서 鄭夢準 축구협회장이 월드컵 한국 유치 의사를 밝혔을 때 우리는 대부분 失笑(실소)하거나 반대했다.
지금 와서 「국민이여, 열광하라」, 「이제는 축제의 시간」, 「역사가 바뀌었다」고 북을 치는 지성인들. 그때 어떤 입장이었는가. 당시의 체육단체와 대표적 체육인들은 반대했다.
당시의 정부가 이번 열광의 100분의 1이라도 월드컵 유치 열의가 있었는가. 바로 한 달 前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도 과연 한국은 축구 열기가 있는 나라였는가.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대회 이후 1998년 프랑스 월드컵대회까지 한 번도 이기지 못해 「월드컵 기네스」의 부끄러운 기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6월 한국 땅에서는 단숨에 16강, 8강에 이어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4강까지 도약했다. 그래서 4강신화 달성의 돌출적·극적 전개가 700만 응원의 「붉은 악마」와 히딩크 신드롬을 만들었다.
축구는 원래 어느 스포츠보다 열정적인 게임이다. 프랑스의 스포츠 사회학자 P.미뇽은 『축구는 개인의 감동과 충동을 관리 규제하는 것. 규칙화된 폭력행사』로 정의하고 있다.
그만큼 어느 스포츠보다 폭력성이 높다. 그런데 같은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권투와 달리 많은 선수가 등장하는 집단적 폭력으로 인하여 더욱 많은 관중 동원력이 있다는 데서 다른 스포츠보다 「감동의 공동체」를 일구는 마력이 있다. 특히 게임규칙의 단순성, 공이라는 기구 하나면 어느 공간에서도 게임을 할 수 있는 행위와 접근성의 용이가 특별히 축구라는 놀이의 세계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4강까지 간 2002 월드컵의 가장 큰 효과는 한국에서 축구의 대중화가 점화되었다는 것이다. 축구 도입의 역사, 도시화, 소득수준, 근로시간의 단축 등을 고려하면 한국은 그간 「축구지체국」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4강이 되고서야 축구 대중화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金正日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둘째, 「붉은 악마」의 등장 역시 아주 극적인 것이다. 무엇이 「붉은 악마」를 사회현상으로 만들었는가. 현상적으로는 정보통신기술이 제공한 인터넷에 의한 네트워크 동원력과 대형 전광판이라는 가시적 초점의 존재 그리고 전자오락으로 훈련된 20代의 등장, 거리와 광장이라는 도시공간의 중심이 어우러진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 열기가 없던 나라에서 어떻게 다섯 게임 만에 700만 인파를 거리와 광장으로 몰아갔는가는 설명하기 어렵다.
축구狂의 나라에서도 이러한가. 군중 수는 잘 모르겠지만 축구광의 나라 브라질이 결승에서 이겼을 때는 능히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은 단번의 4강신화에서 「붉은 악마」 신드롬을 창조해 냈다. 축구장마다 「붉은 악마」의 단일 색깔로 독점한 유일한 세계기록을 세웠다.
오후 3시 이탈리아와의 게임을 응원하기 위하여 새벽 6시에 일어나 얼굴에 태극문양을 칠하고 오전 7시에 서울시청 앞에 도착하여 11시간을 아스팔트 위 땡볕에서 응원하는 자발적 「붉은 악마」들이 일거에 대한민국 색깔을 붉은색으로 바꿔 SK주유소의 튀던 빨강색마저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도 질기던 「레드 콤플렉스」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金正日이 자신의 눈을 의심했으리라.
그들은 축구를 즐긴 것이 아니다. 전광판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의 노래를 즐기고 자유를 즐기고 「붉은 악마」와 한패거리 된 것을 즐기고 승리를 즐길 뿐이었다.
애국주의, 외국에 대한 콤플렉스, 오락주의, 집단주의, 자유분방, 장사꾼의 유혹 그러면서 동조주의(conformism)가 혼합하여 거리와 광장의 문화를 확 바꾸었다.
지금까지 韓末의 독립협회에 의한 만민공동회의 이래 3·1, 4·19, 6·3, 5·18, 6·10으로 이어지는 저항과 투쟁의 거리와 광장을 놀이와 환희의 것으로 만들었다.
히딩크 신드롬의 핵심은 기본과 원리에 충실하는 것
누가 한 달 前 아니 20일 前에 예측할 수 있었던 일인가. 그 누가 그렇게 돌출적으로 도시공간을 「붉은 악마」화할 것을 예측할 수 있었는가. 이것은 광기인가.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현대적 소외를 정상적 사회 시스템인 교회·학교·가정이 그리고 정치(사회복지 체제)와 기업이 소화하고 담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공동체 지향의 갈망이 월드컵 응원을 통해 분출한 일회성 집단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교와 독재자들(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毛澤東, 金日成)이 얼마나 많은 군중을 모으는지를 알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매년 수백만의 회교 순례자들이 모인다.
그리고 현대는 스포츠 스타디움이 사원과 성당을 대신하여 군중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도 어느덧 월드컵 신드롬의 하나로 수십만원짜리 표를 구하기 위해 며칠씩 줄을 서고 붉은색으로 스타디움을 덮는 「스포츠」라는 종교의 신도가 생겼다. 「오락」이라는 새 종교의 신도들이 도시의 광장을 메웠다.
우리는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냉소와 도덕적 허무주의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붉은 악마」 신드롬이나 히딩크 신드롬에서 확실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있다. 만일 金九나 胡志明(호치민) 같은 도덕적 정체성이 높은 지도자가 나온다면 「붉은 악마」가 만든 도시거리와 광장의 시민군중은 진정한 국가적·민족적 축제를 즐길 것이라는 것이다.
셋째, 히딩크 신드롬이다. 히딩크 감독의 영입, 실망, 비난, 4강신화 창조라는 1년 반의 극적과정과 그가 외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기업의 히딩크 경영론, 지도자 수입론이 나오고 있다.
지도자·경영자의 개방화라는 아주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히딩크가 축구의 원리에 충실하여 기초체력 다지기와 능력에 의한 우수 선수 선발원칙을 일관되게 실천하여 짧은 사이에 경기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그는 확실히 총명하고 여유 있고 자상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임을 알 수 있다.
확실한 것은 히딩크 신드롬의 핵심은 기본과 원리에 충실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냉정하게 따지면 그가 한국말을 몰랐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축구원리를 추진할 수 있었고, 여유 있는 자금지원과 신분보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기업경영과 정치에서도 기본과 원리에 충실하면 성공할 수 있다.
문제는 왜 우리끼리는 안 되느냐는 데 있다. 이제부터는 어느 노동자, 어느 경영인, 어느 정치인도 모두 기본과 원리에 충실히 전념하도록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 히딩크를 대통령으로, 李光耀(이광요) 싱가포르 前 수상을 수입하자고까지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暴論(폭론)이다. 목표가 가시적이거나 규격화된 사업, 동원할 자원이 명시되어 있는 전문 프로페셔널한 프로젝트 즉 기업의 경영, 스포츠나 예술단 감독, 전문 연구소 관리 같은 것은 능력 위주로 국적을 불문해도 좋고 어떤 것은 불문할수록 좋은 것도 있다.
그러나 非규격화된 것, 종합적인 것, 목표가 가시적이지 않은 국가행위(행정행위만이 아니라)를 수입한 지도자에 맡기자는 것은 기초와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히딩크 신드롬 역시 돌출성, 의외성의 한국적 현상의 일부이다. 외국 콤플렉스를 완전히 벗지 못한 현상이다.
월드컵 신드롬을 극복하자_자기와의 경쟁이 진정한 경쟁이다
축구 수준이 근대화 수준이라는 학자도 있다. 지금 축구 강국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거의 40년간 만성적인 정치·경제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88서울올림픽에서 4강을 한 우리나라는 시민의 피와 땀으로 얻은 민주화가 민주화운동 지도자들에 의해서 훼손되고, 희화화되어 가고 있고, 1997년엔 경제위기로 추락했었다.
월드컵으로 우리나라가 「처음」 국제 본무대에 서는 계기가 된 듯이 분석하는 「석학」들이 많다. 우리는 이미 메모리 반도체, 造船(조선), 차세대 LCD·PDP 분야에서 당당히 세계에서 일등 하고 있다. 자동차는 5등 하는 나라이다. 조수미와 백남준이라는 세계 최고의 예술가를 배출했다.
오히려 국제무대에서 너무 돌출적으로 1등 하는 것이 많은 게 문제이다. 인구비례 박사학위 소지자 1등, 信者수 세계 1, 2, 3등 하는 교회도 한국에 있다.
그런데도 UNICEF(국제연합아동기금) 조사에 의하면 세계에서 어른과 선생님이 가장 존경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요, 월드컵 이전 조사로는 「가장 외국 이민 가고 싶어하는 나라」,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나라」에서 1등 한 것이 한국이었다.
1인당 술 소비량 1등, 1인당 CO2 배출량 1등, 절대량 석유 수입에서 미국, 일본에 이어 3등하는 나라이다.
우리는 아직 본질적 경쟁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바로 자신과의 경쟁이라는 사실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 기록들을 예나 지금이나 꽤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공동체 전체, 우리나라 전체는 세계적 수준을 앞서가지 못하거나 1회적 기록으로만 남긴다.
월드컵 신드롬에서 우리는 열정, 애국심, 단결, 개방성을 발전시켜야 한다. 월드컵 신드롬에서는 경계할 것도 있다. 구분이 어려운 자만심과 콤플렉스, 혼재된 공동체의식과 동조주의, 정리되지 않은 자유와 모방, 의식하지 못하는 오락주의, 낭비적 소비주의와 전형적인 他人意識(타인의식). 그것이 각각 파시즘, 페론이즘, 약자 콤플렉스, 쇼비니즘, 포퓰리즘, 전시와 과시의 노예, 주제가 없는 즉흥적 향락, 책임 없는 집단행위로 질주할 수 있다.
더 이상 가시적·계량적·표피적 국제경쟁에 매달리지 말자. 수량적 목표, 계획된 시간표가 주어지고 남(특히 선진국, UN, IMF, 올림픽, 월드컵…)이 우리를 보고 있다고만 의식하면 반드시 성공하는 「기록」을 남기는 능력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기록을 위하여 돌출, 쏠림, 단절의 非정상적 변화과정이 특징화되었다.
이제 남이 안 보아도 우리 스스로 마음과 양심과 혼으로 국가적·민족적·공익적 과제를 차근차근 풀어가자. 타율적·가시적·표피적 목표의 설정과 성공에 자만하는 그런 신드롬을 넘어서자.●
만일 한국의 신문·방송의 보도태도대로라면 한국의 21세기는 2002 韓日 월드컵 경기라는 축구놀이로 시작되고 있다.
지난 6월 국영·공영 TV 방송은 主 뉴스시간을 한 시간으로 늘리고 50분을 축구뉴스로 커버하는 세계적 진기록을 매일같이 쏟아냈다. 그것도 한 달 가까운 기간을 매일같이 「특집」에 「특집」으로 채웠다. 미국의 9·11 테러도, 정권변동의 정치뉴스도, IMF 구제금융 경제위기 때의 뉴스도 이렇게 집중되지는 않았다. 어떤 신문의 하루는 외신과 TV프로그램 소개 페이지를 빼고는 全지면을 월드컵 소식으로 채웠다. 가히 세기적 편집이다. 앞으로 21세기 어느 날 또 이런 광기와 엽기적 편집의 사건이 일어날까.
통일의 그날일까. 북한이 무너지는 날일까.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날일까. 미군이 철수하는 날일까. 독도가 일본에 점령되는 날일까. 또다시 1997년 같은 경제위기의 재발일까. 쿠데타가 일어나는 날일까. 1979년처럼 대통령이 피살되는 날일까. 한국의 과학자들이 한꺼번에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의 노벨상을 타는 날일까. 한국의 기업이 소니를, IBM을, 벤츠를 흡수합병하는 날일까. 한국의 연구소가 나노테크놀로지와 수소에 의한 新에너지 개발이라는 세계적 발명을 하는 날일까.
온 국민은 이번 월드컵으로 축구경기의 재미, 한국축구의 4강 신화창조, 「붉은 악마」의 스타디움·거리·광장의 붉은색 독점과 「히딩크 신드롬」 등으로 복합된 2002 韓日 월드컵 아닌 「한국 월드컵 신드롬」을 만끽했다. 확실히 이변, 경이, 기대 이상의 승리, 쏠림, 비정상이 지배한 신드롬이었다.
월드컵 신드롬은 지난 200년간 한국 근대화 변화과정의 특징 「돌출성」을 반영
한국 근대화라는 19세기 중반 이후의 역사적·문명사적 큰 변화에의 적응과정은, 일관되게 준비하고 순리로 계획하고 차근차근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이른바 정상적인 변화를 거치는 것이 아니고 돌출적이고 폭발적이고 한쪽으로 쏠리고 갑작스러운 도약과 추락이 겹치는 모습을 띤다. 그래서 늘 非정상적, 異常的, 전투적이다.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 갑작스러운 미국과 소련에 의한 분단, 4·19 이후 계속되는 국가수반의 비극적 말로, 朴正熙 「장군」의 등장과 「한강의 기적」, 「88서울올림픽」의 4강기록 달성, 1997년의 돌출, 즉 대통령 金泳三과 DJ, JP, 대통령 후보자들의 21세기 초 5大강국 달성 공약과 「6·25 이후 최대 국난」의 경제위기 초래.
이제 2002 한국 월드컵을 보자.
첫째, 이렇게도 열광하는 축구 월드컵을 우리는 정말 바랐던가. 분명 아니었다. 1993년 5월15일 일본 J리그 개막식 리셉션에서 鄭夢準 축구협회장이 월드컵 한국 유치 의사를 밝혔을 때 우리는 대부분 失笑(실소)하거나 반대했다.
지금 와서 「국민이여, 열광하라」, 「이제는 축제의 시간」, 「역사가 바뀌었다」고 북을 치는 지성인들. 그때 어떤 입장이었는가. 당시의 체육단체와 대표적 체육인들은 반대했다.
당시의 정부가 이번 열광의 100분의 1이라도 월드컵 유치 열의가 있었는가. 바로 한 달 前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도 과연 한국은 축구 열기가 있는 나라였는가.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대회 이후 1998년 프랑스 월드컵대회까지 한 번도 이기지 못해 「월드컵 기네스」의 부끄러운 기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6월 한국 땅에서는 단숨에 16강, 8강에 이어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4강까지 도약했다. 그래서 4강신화 달성의 돌출적·극적 전개가 700만 응원의 「붉은 악마」와 히딩크 신드롬을 만들었다.
축구는 원래 어느 스포츠보다 열정적인 게임이다. 프랑스의 스포츠 사회학자 P.미뇽은 『축구는 개인의 감동과 충동을 관리 규제하는 것. 규칙화된 폭력행사』로 정의하고 있다.
그만큼 어느 스포츠보다 폭력성이 높다. 그런데 같은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권투와 달리 많은 선수가 등장하는 집단적 폭력으로 인하여 더욱 많은 관중 동원력이 있다는 데서 다른 스포츠보다 「감동의 공동체」를 일구는 마력이 있다. 특히 게임규칙의 단순성, 공이라는 기구 하나면 어느 공간에서도 게임을 할 수 있는 행위와 접근성의 용이가 특별히 축구라는 놀이의 세계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4강까지 간 2002 월드컵의 가장 큰 효과는 한국에서 축구의 대중화가 점화되었다는 것이다. 축구 도입의 역사, 도시화, 소득수준, 근로시간의 단축 등을 고려하면 한국은 그간 「축구지체국」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4강이 되고서야 축구 대중화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金正日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둘째, 「붉은 악마」의 등장 역시 아주 극적인 것이다. 무엇이 「붉은 악마」를 사회현상으로 만들었는가. 현상적으로는 정보통신기술이 제공한 인터넷에 의한 네트워크 동원력과 대형 전광판이라는 가시적 초점의 존재 그리고 전자오락으로 훈련된 20代의 등장, 거리와 광장이라는 도시공간의 중심이 어우러진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 열기가 없던 나라에서 어떻게 다섯 게임 만에 700만 인파를 거리와 광장으로 몰아갔는가는 설명하기 어렵다.
축구狂의 나라에서도 이러한가. 군중 수는 잘 모르겠지만 축구광의 나라 브라질이 결승에서 이겼을 때는 능히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은 단번의 4강신화에서 「붉은 악마」 신드롬을 창조해 냈다. 축구장마다 「붉은 악마」의 단일 색깔로 독점한 유일한 세계기록을 세웠다.
오후 3시 이탈리아와의 게임을 응원하기 위하여 새벽 6시에 일어나 얼굴에 태극문양을 칠하고 오전 7시에 서울시청 앞에 도착하여 11시간을 아스팔트 위 땡볕에서 응원하는 자발적 「붉은 악마」들이 일거에 대한민국 색깔을 붉은색으로 바꿔 SK주유소의 튀던 빨강색마저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도 질기던 「레드 콤플렉스」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金正日이 자신의 눈을 의심했으리라.
그들은 축구를 즐긴 것이 아니다. 전광판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의 노래를 즐기고 자유를 즐기고 「붉은 악마」와 한패거리 된 것을 즐기고 승리를 즐길 뿐이었다.
애국주의, 외국에 대한 콤플렉스, 오락주의, 집단주의, 자유분방, 장사꾼의 유혹 그러면서 동조주의(conformism)가 혼합하여 거리와 광장의 문화를 확 바꾸었다.
지금까지 韓末의 독립협회에 의한 만민공동회의 이래 3·1, 4·19, 6·3, 5·18, 6·10으로 이어지는 저항과 투쟁의 거리와 광장을 놀이와 환희의 것으로 만들었다.
히딩크 신드롬의 핵심은 기본과 원리에 충실하는 것
누가 한 달 前 아니 20일 前에 예측할 수 있었던 일인가. 그 누가 그렇게 돌출적으로 도시공간을 「붉은 악마」화할 것을 예측할 수 있었는가. 이것은 광기인가.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현대적 소외를 정상적 사회 시스템인 교회·학교·가정이 그리고 정치(사회복지 체제)와 기업이 소화하고 담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공동체 지향의 갈망이 월드컵 응원을 통해 분출한 일회성 집단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교와 독재자들(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毛澤東, 金日成)이 얼마나 많은 군중을 모으는지를 알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매년 수백만의 회교 순례자들이 모인다.
그리고 현대는 스포츠 스타디움이 사원과 성당을 대신하여 군중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도 어느덧 월드컵 신드롬의 하나로 수십만원짜리 표를 구하기 위해 며칠씩 줄을 서고 붉은색으로 스타디움을 덮는 「스포츠」라는 종교의 신도가 생겼다. 「오락」이라는 새 종교의 신도들이 도시의 광장을 메웠다.
우리는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냉소와 도덕적 허무주의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붉은 악마」 신드롬이나 히딩크 신드롬에서 확실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있다. 만일 金九나 胡志明(호치민) 같은 도덕적 정체성이 높은 지도자가 나온다면 「붉은 악마」가 만든 도시거리와 광장의 시민군중은 진정한 국가적·민족적 축제를 즐길 것이라는 것이다.
셋째, 히딩크 신드롬이다. 히딩크 감독의 영입, 실망, 비난, 4강신화 창조라는 1년 반의 극적과정과 그가 외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기업의 히딩크 경영론, 지도자 수입론이 나오고 있다.
지도자·경영자의 개방화라는 아주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히딩크가 축구의 원리에 충실하여 기초체력 다지기와 능력에 의한 우수 선수 선발원칙을 일관되게 실천하여 짧은 사이에 경기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그는 확실히 총명하고 여유 있고 자상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임을 알 수 있다.
확실한 것은 히딩크 신드롬의 핵심은 기본과 원리에 충실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냉정하게 따지면 그가 한국말을 몰랐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축구원리를 추진할 수 있었고, 여유 있는 자금지원과 신분보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기업경영과 정치에서도 기본과 원리에 충실하면 성공할 수 있다.
문제는 왜 우리끼리는 안 되느냐는 데 있다. 이제부터는 어느 노동자, 어느 경영인, 어느 정치인도 모두 기본과 원리에 충실히 전념하도록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 히딩크를 대통령으로, 李光耀(이광요) 싱가포르 前 수상을 수입하자고까지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暴論(폭론)이다. 목표가 가시적이거나 규격화된 사업, 동원할 자원이 명시되어 있는 전문 프로페셔널한 프로젝트 즉 기업의 경영, 스포츠나 예술단 감독, 전문 연구소 관리 같은 것은 능력 위주로 국적을 불문해도 좋고 어떤 것은 불문할수록 좋은 것도 있다.
그러나 非규격화된 것, 종합적인 것, 목표가 가시적이지 않은 국가행위(행정행위만이 아니라)를 수입한 지도자에 맡기자는 것은 기초와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히딩크 신드롬 역시 돌출성, 의외성의 한국적 현상의 일부이다. 외국 콤플렉스를 완전히 벗지 못한 현상이다.
월드컵 신드롬을 극복하자_자기와의 경쟁이 진정한 경쟁이다
축구 수준이 근대화 수준이라는 학자도 있다. 지금 축구 강국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거의 40년간 만성적인 정치·경제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88서울올림픽에서 4강을 한 우리나라는 시민의 피와 땀으로 얻은 민주화가 민주화운동 지도자들에 의해서 훼손되고, 희화화되어 가고 있고, 1997년엔 경제위기로 추락했었다.
월드컵으로 우리나라가 「처음」 국제 본무대에 서는 계기가 된 듯이 분석하는 「석학」들이 많다. 우리는 이미 메모리 반도체, 造船(조선), 차세대 LCD·PDP 분야에서 당당히 세계에서 일등 하고 있다. 자동차는 5등 하는 나라이다. 조수미와 백남준이라는 세계 최고의 예술가를 배출했다.
오히려 국제무대에서 너무 돌출적으로 1등 하는 것이 많은 게 문제이다. 인구비례 박사학위 소지자 1등, 信者수 세계 1, 2, 3등 하는 교회도 한국에 있다.
그런데도 UNICEF(국제연합아동기금) 조사에 의하면 세계에서 어른과 선생님이 가장 존경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요, 월드컵 이전 조사로는 「가장 외국 이민 가고 싶어하는 나라」,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 나라」에서 1등 한 것이 한국이었다.
1인당 술 소비량 1등, 1인당 CO2 배출량 1등, 절대량 석유 수입에서 미국, 일본에 이어 3등하는 나라이다.
우리는 아직 본질적 경쟁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바로 자신과의 경쟁이라는 사실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 기록들을 예나 지금이나 꽤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공동체 전체, 우리나라 전체는 세계적 수준을 앞서가지 못하거나 1회적 기록으로만 남긴다.
월드컵 신드롬에서 우리는 열정, 애국심, 단결, 개방성을 발전시켜야 한다. 월드컵 신드롬에서는 경계할 것도 있다. 구분이 어려운 자만심과 콤플렉스, 혼재된 공동체의식과 동조주의, 정리되지 않은 자유와 모방, 의식하지 못하는 오락주의, 낭비적 소비주의와 전형적인 他人意識(타인의식). 그것이 각각 파시즘, 페론이즘, 약자 콤플렉스, 쇼비니즘, 포퓰리즘, 전시와 과시의 노예, 주제가 없는 즉흥적 향락, 책임 없는 집단행위로 질주할 수 있다.
더 이상 가시적·계량적·표피적 국제경쟁에 매달리지 말자. 수량적 목표, 계획된 시간표가 주어지고 남(특히 선진국, UN, IMF, 올림픽, 월드컵…)이 우리를 보고 있다고만 의식하면 반드시 성공하는 「기록」을 남기는 능력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기록을 위하여 돌출, 쏠림, 단절의 非정상적 변화과정이 특징화되었다.
이제 남이 안 보아도 우리 스스로 마음과 양심과 혼으로 국가적·민족적·공익적 과제를 차근차근 풀어가자. 타율적·가시적·표피적 목표의 설정과 성공에 자만하는 그런 신드롬을 넘어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