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존재, 천당과 지옥의 존재를 믿게 되는 이유
●일 中毒症에 걸린 사람의 末路가 애처롭다
●人生이란 무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해낸 뒤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지려는 자세가 死生觀. 현재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무대의 小品일 뿐인데…
●일 中毒症에 걸린 사람의 末路가 애처롭다
●人生이란 무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해낸 뒤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지려는 자세가 死生觀. 현재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무대의 小品일 뿐인데…
臨終 환자들과 고통을 나눈 경험
13년 동안 5백여명이 넘는 末期 환자들을 돌보아 왔던 마흔다섯의 崔華淑(최화숙) 박사는 단정하면서도 빈틈을 남겨두고, 옹골차면서도 넉넉한 인상을 가졌다. 남들보다 좀더 내밀한 경험을 통해 記者같은 凡夫(범부) 따위를 얕잡아 볼 수도 있건만 그녀는 시종일관 유머 넘치는 겸손함으로 일관해 만화영화 주인공인 「호호 아줌마」를 닮았다.
記者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그녀는 10년 묵은 古物 승용차를 당당하게 몰고 나타났다. 주름살처럼 흠집이 새겨진 빨간색 르망은 허연 먼지를 뒤집어쓴 채 천식 앓듯 가래 끓는 엔진 소음을 내고 있었다. 내부를 보니 손때 타서 맨질맨질해진 수동 기어 손잡이 위로 겨울 햇빛이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호스피스 전문가를 주인으로 만난 이 자동차도 필시 長壽(장수)를 누린 나머지 편안한 여생을 마칠 것이란 확신이 섰다.
인간이 修養(수양)을 통해 마음이 열리고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단계에 가면 事物(사물)과의 對話도 가능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은 일회용인 법이 드물다. 유효기간을 비웃듯이 넘기고도 오래오래 윤이 나도록 쓰이곤 한다. 마음이 닫힌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물건을 아끼는 수전노로 보일 테지만 목사 남편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신체와 정신뿐 아니라 영혼까지 건강한 우리 시대의 생활력 강한 아주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찻집에 들어와 마주 앉았지만 상대는 기자가 무얼 질문할지 다 알고 있을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臨終(임종)을 수백 번이나 체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이런 특유의 여유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經典(경전)이나 철학 서적을 통한 理論으로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가는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했던 체험들이 원인이었을 터이다.
말기 암환자의 공통점-「소생을 위한 피나는 노력」
호스피스 대상자 중 90% 이상이 癌환자들이다. 癌은 한국인의 사망원인 중 교통사고 다음가는 질환으로 꼽힌다. 腦卒中(뇌졸중)이나 老患(노환) 등도 주요 死因(사인)이기는 하지만 殘餘壽命(잔여수명) 예측이 어려워 6개월 이내에 사망하게 될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호스피스에 의뢰되는 경우는 末期 예측이 정확한 癌환자들이다. 이들 末期 癌환자와 가족들의 공통점을 묻자 崔華淑 박사는 『蘇生(소생)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시도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식이요법에 관심이 높아집니다. 다니던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복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漢方(한방)과 민간요법으로 몇 가지 처방을 더해보기도 하지요』
민간요법으로는 지렁이를 고아 만든 토룡탕에서부터 백년 묵은 기와지붕 위에 기생하는 풀을 달여 먹는 것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게다가 1990년대부터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자 홍콩과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秘藥(비약)도 많이 찾는다. 가족들은 환자를 호스피스에 의뢰해 놓고도 마지막까지 蘇生術(소생술)을 동원하는 데 보통 1백만∼2백만원 이상을 쓴다고 한다. 그러나 거의가 虛事(허사)라는 것이다.
많은 癌환자들이 호소하는 것은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癌환자의 통증은 신체 내부에서 자라난 종양이 神經(신경)을 누르거나 骨轉移(골전이)되었을 때 나타난다. 모든 癌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받고 죽는 것은 아니다. 10명의 암환자 중 2∼3명은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한 채 죽는다고 한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는 10명 중 3명 정도. 나머지는 그 중간쯤이라는 것이다. 癌환자를 수발해야 하는 가족의 고통도 여간한 일이 아니지만 환자 스스로도 참기 어려워한다.
1976년 고등학교를 다니던 記者의 先親은 마흔아홉의 나이로 癌과 투병중이었다. 오늘날처럼 의료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호스피스의 존재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 무렵, 집에서 6개월여를 앓다 돌아가셨다.
「回復(회복)」이란 看病(간병)경험만 가진 가족으로서는 「臨終(임종)」할 환자를 간호한다는 것만큼 절망적인 일도 없다. 처음 看病할 때엔 기적을 바라며 매일매일 차도가 없는지 살펴보곤 하지만 얼마 안 가 지치기 시작한다. 환자가 부탁을 해도 못들은 척하거나 환자를 무시한 언행이 돌출하기도 한다. 「긴 병에 孝子 없다」는 속담은 오랜 看病생활에 지친 가족들의 죄의식을 감해주는 말일 것이다.
환자의 병세는 간병인의 입장에서는 아주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하고 집안의 분위기는 급격하게 우울한 늪 속으로 침몰해 간다. 개인적으로 즐거워할 일도 집안에서는 금기시된다. 몇 달쯤 지나면 개인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친다. 건강할 때엔 발길이 잦던 친척들도 末期환자라는 사실을 알면 발길이 뜸해지고 그 이유가 경제력과 함수관계에 있음을 알게 되면 가족들은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받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記者의 先親은 아내로부터 좋은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은 것 같다. 매일 두 차례의 목욕, 不撤晝夜(불철주야) 각종 심부름에서부터 정확한 시간에 투약하는 일까지. 그러나 記者의 어머니는 간호학을 전공하지 않은 전업주부였을 따름이다. 환자의 고통이 얼마나 될지는 가족중 누구도 잘 몰랐을 것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와 보니 어머니는 시장에 가시고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 방에 들어가 보니 왼쪽 팔목에 호스와 연결된 링거 바늘이 꽂혀 있는데 정작 링거 병은 보이지 않았다. 호스 속으로 가득찬 붉은 혈액이 조금씩 바닥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놀라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여쭈었더니 아버지는 『너무 아파서 자살하겠다.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는 말씀이었다.
철이 덜 든 장남에게 아버지로서 할 말도 아니란 걸 아셨겠지만 이미 그 상황에서는 아들과 아버지간이라 하여 가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학생이던 記者는 아버지의 팔에서 주사바늘을 뽑아내고 아들이 아닌 한 사내로서 아버지를 향해 무슨 말을 했다고 기억한다. 지금은 그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위로의 말이었건 비난의 말이었건 아버지에게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환자의 고통을 십분의 일도 체감하지 못했던 것만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환자의 통증을 줄여 주어야
호스피스는 末期癌 환자의 신체적 고통을 조절하기 위해 일반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것과 방식을 달리해 적용한다. 일반 병원에서 臨終을 맞이하는 환자들은 호스피스를 통한 緩化(완화)치료를 받는 환자들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설명되는 항목이다. 崔華淑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환자들은 통증을 호소할 때 독특한 패턴이 있어요. 처음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환자는 약을 달라고 하지 않아요. 참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참지 못할 때 비로소 약을 달라고 합니다. 이때 투여되는 진통제는 30분 뒤에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해서 보통 4∼6시간 동안 지속되지요. 이 기간 동안 환자는 언제 다시 통증이 올지 두려워해요.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아파 옵니다. 통증이 강해지면 다시 약을 요구하지요. 통증의 반복과 진통제 투여가 반복되는 동안 틈이 생기는데 이 기간은 주기적이지 않기 때문에 당하는 환자로서는 무척 고통스러워요. 일반 병원의 치료란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진통제를 최소한 사용하려 하지요.
호스피스는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가장 편안하게 生을 마감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환자의 혈액 속에 진통제가 일정한 함량을 유지하도록 주기적으로 투여합니다』
―통증을 줄여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과, 아예 통증을 차단해 주기 위한 安樂死(안락사)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安樂死가 등장하게 된 주된 이유도 末期 환자들의 고통 때문이었지요. 환자가 「아프니까 아예 죽게 해달라」고 하소연하는 것을 「환자의 희망」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의료인의 소명은 환자의 희망을 존중하는 것이란 이유에서지요. 그러나 호스피스는 安樂死를 반대합니다. 호스피스는 환자가 아파서 죽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통증을 줄여줌으로써 그 환자로 하여금 주어진 삶만큼 편안하게 지내다 인간으로서 威嚴(위엄)을 갖고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입니다』
호스피스의 철학은 환자와 가족을 간호의 단위로 삼고 그들의 생활을 質的으로 향상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 남은 생을 가능한 한 편안하고 충만하게 보내도록 도와주며 가족과 더불어 주변의 모든 것을 즐기도록 배려하며 그동안 삶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특히 삶을 연장시키거나 단축시키지 않으며 삶과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여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이런 의미에서 호스피스는 일반 병원의 치료나 安樂死와는 별개의 의료 서비스를 하는 셈이다.
서로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을 共有
『호스피스가 하는 일 중에는 가족이 환자를 잘 돌보게 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그래야 死別(사별)과정에서 서로 편하게 보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最善을 다했다는 마음을 가져야 인간과 인간이 친밀감을 느끼고 서로를 용서하게 되거든요』
한 남자가 암을 앓다가 몇 차례의 수술 끝에 폐와 뇌 및 골전이가 되어 호스피스에 의뢰되었다. 가족들은 집보다 병원이나 외부시설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병실이 준비되지 않아 일단 집에서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崔박사는 이 집안의 내력을 듣던 중 남편과 아내의 갈등이 심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남편의 바람기에 부인은 가슴앓이를 많이 했던 것이다.
崔박사는 그런 환자의 부인에게 남편을 간호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간호를 하다 보니 부인은 남편의 측은한 모습에 분노가 많이 삭은 듯했고 간호를 받던 남편도 부인의 헌신적인 노력에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약 석 달간의 간병을 받은 뒤 남편은 臨終을 맞게 되었다. 崔박사는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권했다. 남편은 혀가 말려 들고 점점 의식이 사라지고 있었다. 崔박사는 부인의 손을 남편의 손 위로 가져다 놓았다. 눈을 감고 있던 환자가 말린 혀를 펴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철·이 없·어 실·수·한 것 용·서·해. 그·동·안 당·신 마·음·아·프·게 한 것 정·말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아주 힘겹게 말하는 것이었다.
『최후의 말이었지요. 사망에 다다른 시점인데 환자의 감은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저도 마음이 찡하더군요. 울고 있던 부인이 용서하겠다는 뜻으로 남편의 손을 꽉 잡았는데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서도 환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거예요. 의학적으로는 그럴 수 없는 상태였는데 말이지요. 저는 그걸 보며 참 놀랐어요. 그날 새벽에 돌아가셨지요』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았던 부인은 지금도 崔박사를 만나면 『그때 남편과 마지막 석 달이 몸은 고달팠지만 신혼보다 더 달콤한 세월이었어요』라며 행복한 기억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한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레프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란 단편소설을 통해 건강하던 재판관이 癌으로 죽음에 직면하게 되고 그로 인한 사회적, 육체적, 심리적 고통과 주위사람들의 심리 변화를 내밀하게 엮어 놓았다.
<직장동료에게 알려진 재판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전근과 승진의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이외에, 가까운 친지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는 이런 경우 으레 그렇듯이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 모두의 마음속에 「죽은 건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야」 하는 안도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저마다 「그래, 그는 죽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하는 생각이나 느낌을 가졌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의 친지들 가운데 좀더 가까웠던 사람들, 이른바 친구들은 예의상 장례식에 참석하여 미망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따위의 귀찮은 의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적 고립」이란 또다른 죽음
「죽은 건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다」는 생각은 공포로부터 도피하려는 방법 중 하나인 합리화에 속한다. 崔華淑 박사는 末期환자를 대상으로 간병하는 가족이나 의료진들도 이와 유사한 심리적 현상이 발견된다고 한다.
『「저 환자는 죽을 것이다」라고 알려지면 어느새 「저 환자는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로써 환자를 무시하려 하는데 이것을 「사회적 죽음(Social Death)」 또는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e)」이라고 하지요』
崔박사는 사회적 고립을 당했던 환자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癌으로 완치불가능 판정을 받은 한 환자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기 위해 입원했다. 이 환자는 호스피스에 의뢰했고 崔박사가 병원을 방문했다. 崔씨가 『어디가 제일 불편하세요?』하고 묻자 환자가 대답을 시작했는데 십여분 동안 계속되더란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곁에서 看病하던 부인이 『그게 아니고-』라며 재차 설명했다. 부인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환자가 『아냐, 그건 내가 설명할게』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들 부부는 崔박사가 했던 하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50여 분 동안 교대로 쉬지 않고 말했던 것이다.
첫 방문이 너무 길어져 崔박사가 내일 다시 오겠노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이들 부부는 崔박사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자는 이런 말을 하더란 것이다.
『제가 3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오늘처럼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주신 분은 처음입니다』
崔박사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자신은 질문 한 번 한 것뿐인데, 설명을 잘 해주어 고맙다니? 며칠 뒤 환자와 신뢰관계가 만들어지면서 이런 의문은 풀렸다고 한다.
『이 환자는 완치 불가 판정을 받은 뒤 입원을 한 경우였어요. 이 환자의 침대 옆에는 치료 가능한 환자가 누워 있었는데, 담당 의사가 회진할 때면 자기 옆 환자에게는 평소에 세 가지 질문을 한답니다. 「잠은 잘 잤습니까」, 「아픈 데는 없습니까」, 「식사는 잘하십니까」였대요. 그런데 자기에게는 단 한 가지 - 「괜찮죠?」가 전부였답니다. 의사가 바쁜 날이면 옆에 누운 환자에게는 한 가지 질문만 하고 자기에게는 질문도 않고 휑하니 가버린답니다. 그 환자는 「주워온 자식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50여 분 동안 그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것만으로도 환자는 자신이 궁금했던 설명까지 다 들은 것으로 만족해버린 겁니다.
末期 판정을 받은 환자에 대한 의료진들의 이같은 행위가 바로 「사회적 고립」, 「사회적 죽음」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면 무의식중에 이런 태도를 취하는데 가정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일이지요. 末期환자로 집에 모셔다 놓으면 가족들은 부지불식간에 환자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고 있다」거나 「잠을 아주 편하게 잔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려 해요』
僞善的인 사람들
이 환자는 그런 병원을 포기하고 崔박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癌이 폐로 전이되어 호흡이 곤란할 지경이어서 침대보다는 소파에 앉아 있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호스피스를 통해 통증이 조절되자 환자는 崔박사에게 『혹시 의사가 암이라고 誤診(오진)한 게 아닐까요?』라며 蘇生의 희망을 가져 보기도 했다고 한다. 환자는 3개월 뒤 편안하게 生을 마쳤다.
개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는 환경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물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더해 준다.
『환자가 눈을 감고 있어도 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 듣고 있어요. 잠을 잔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말을 하면 환자는 심리적으로 고립되었다는 고통까지 겪게 됩니다. 이럴 때에는 「주무세요?」라고 물어 보세요. 십중팔구는 「아니-」 하며 눈을 뜨고 삶에 개입하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우리는 孝를 중시합니다. 하지만 가까운 친지도 평소에는 찾아보지 않다가 정말 중환자가 되어서야 찾아보곤 합니다. 그리고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기보다는 자신의 不孝(불효)를 감추고 孝心(효심)을 과시하기 위하여 특등실을 예약해 주든지 갈비짝을 사 보내든지 하지요. 그러나 末期환자에게는 특등실도, 갈비짝도 소용없습니다. 末期환자에게는 호스피스보다 더 좋은 치료는 없다고 봅니다. 환자가 가장 편안해 하니까요. 그런데 대부분은 환자보다 가족들 자신의 마음에 맞춰져 있을 때가 많지요. 「남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나」, 「그래도 저 집 아들이 효도한다고 알려져야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崔박사는 병동에서 근무할 때 겪은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중환자실에서 臨終을 앞둔 할머니가 산소마스크와 각종 생명유지 장치를 사용해 연명하고 있었다. 환자의 고통은 심했다.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할 경우엔 몇 분 안가 사망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高3인 손자가 학교에서 大入(대입)시험을 보는 날이라고 유가족들은 생명유지 장치를 떼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날 오후에 손자는 시험을 치르고 돌아왔다. 이윽고 臨終시간이 다가왔다. 큰 집안이라 가족도 많았고 사람들마다 종교도 각양각색이었다. 목사의 기도, 스님의 염불, 신부의 미사가 다 끝난 뒤에 생명유지 장치를 떼게 했다는 것이다.
『돌아가실 할머니께 어떤 종교가 효험이 있는지 모르니 할 수 없었겠지마는, 과연 이것이 삶을 하직하는 사람에게 잘 하는 행동인지 곱씹어 보게 해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두 세상을 본다는 것
―환자가 죽음에 임박해지면 양쪽 세계를 본다고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臨終 2∼3일 전이 되면 대화중에도 갑자기 허공 쪽으로 시선을 돌려요. 그리고 그쪽에 관심을 주다가 다시 대화하는 상황으로 돌아와요. 그동안은 제가 했던 말도 듣지 못합니다. 제가 「무얼 하셨어요?」 하고 물으면 「누가 와 있다」거나 「누구를 보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때로는 天使(천사)와 이야기를 했다거나 죽은 분과 얘기를 나누었다고도 하고 「지금 문 밖에 ○○가 와 계시는데, 들어오시라고 해」라고 가족에게 요청하기도 한답니다』
―지식수준과 관계 있습니까.
『학력, 종교, 재산, 계급 불문이에요. 다만 내세를 믿고 있는 분들이 확연하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末期환자들의 특징 중 남녀간의 차이는 없습니까.
『주부들은 아이들 걱정을 해요. 長成하지 않은 아이를 두고 먼저 떠나야 할 경우 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임종 직전이 되어 완전히 쇠약해지면 자녀 걱정도 하지 않지요. 남자들의 경우는 그저 아프지 않고 죽을 수 없을까에 대해서만 걱정합니다』
―환자가 사망했는지는 어떻게 판단합니까.
『길게 내쉰 숨이 끝없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면 화장지를 얇게 잘라 코 밑에 대 봅니다. 아주 작은 숨이라도 붙어 있으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죠. 화장지가 미동도 하지 않으면 손전등으로 눈동자의 동공을 비춰 봅니다. 빛을 쪼이면 視神經(시신경)이 자극을 받아 동공은 줄어들게 되어 있는데 사망한 사람은 동공이 그대로 열려 있게 됩니다. 이 상태를 확인하면 마지막으로 청진기로 심장 박동을 확인하지요』
기자는 정색을 하고 『靈魂(영혼)을 본 경험이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崔박사는 자신이 처음으로 靈魂을 목격했던 상황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학부 시절에 실습을 나갔는데 중환자실이었어요. 어느 날 거기 입원해 있던 한 환자의 생명이 거의 다했다는 조짐이 생명보조장치 등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호기심이 많았던 저는 사람이 죽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었지요. 교대시간도 마다하고 자리를 지켰어요. 환자는 두 번 급하게 숨을 들이쉬다 잠시 멈춘 뒤 후-욱 하고 내쉬는 체인 스톡 브레스(호흡)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후- 하고 마지막 숨을 내쉬는데, 길게 아주 길게…그리고 끝없이… 그래서 꼭 호흡이 아닌 그 무엇이 함께 나간다는 느낌을 확 받았어요. 그 순간 침대 위의 환자 주위로는 아주 희미한 빛이 감싸져 있다가 사라졌어요. 그게 뭐겠어요?』
『靈的 고통엔 플라시보가 안 통한다』
빛을 보았다는 것을 목격자의 착각이라 치부하고 나면, 최후의 호흡량이 문제다. 죽는 순간에는 신체 기능이 완전히 정지하므로 폐 깊숙한 곳의 殘存(잔존)공기가 나오는 것을 목격자가 靈魂으로 誤認(오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이번엔 한국인 末期환자 중 90%가 앓는다는 靈的 고통에 대한 질문을 해 보았다.
―靈的 고통을 받는 환자로 하여금 종교에 귀의토록 하여 來世(내세)를 믿게 함으로써 靈的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하셨지요. 이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생기는 精神生理障碍(정신생리장애)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심리적 불안이 원인이 되어 실제로 생리적인 문제로서 고통을 호소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은 아닐까요?
『아닌 증거가 있지요. 플라시보(Placebo)에 대해 아세요?』
플라시보란 심리적 효과를 위한 僞藥(위약)으로 有效(유효)성분이 없는 약을 의미한다. 밀가루 등 인체에 無益無害(무익무해)한 재료로 실제 약과 똑같이 만들어 환자에게 투약하면 의외의 효과를 본다는 것은 의학계의 常識(상식)이다.
일반적으로 환자 10명 중 3∼4명에게는 효과가 있으며 의사에 따라서는 일반 환자 중 90%가 플라시보를 통해 치료된다고도 할 정도이다. 崔박사는 『만약 말기 환자들에게 플라시보를 쓴다면 환자와의 신뢰관계가 망가져 버릴 겁니다』라고 말했다.
『靈的 고통을 심리적인 고통으로 오해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末期환자들에게는 진통제는 물론 플라시보도 별 효과가 없어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평소에는 신체적 이상이나 정신적인 이상으로 간주해서 진료와 치료를 하면 진통이 완화되지만 말기 환자가 겪는 靈的고통에는 기존의 의학적인 방법으로 진통이 멈추질 않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영혼의 영역도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 간호학에서는 사회적, 신체적, 정신적 간호 이외에 靈的 간호도 교과내용에 포함하고 있어요. 보이는 세계에만 집착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놓칠 수도 있지만, 고통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분명한 현실입니다.
이런 末期환자들에게 플라시보를 쓴다는 것은 삶의 마지막을 엄숙히 맞이하려는 인간을 속이는 결과가 될 뿐 아니라 고통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진통제로 알고 약을 복용한 환자가 진통효과가 전혀 없으니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心理學으로도 증명되지 않는 세계, 즉 플라시보가 통하지 않는 세계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녀는 죽음을 이렇게 정리했다.
『일상적으로 인간은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두부 모 자르듯 분리되지 않은 채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있는 全人的(전인적) 조직체입니다. 이 상태가 분리되는 시점이 바로 죽음인 것이죠』
한국인의 말기 환자 중 90%가 靈的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그중엔 취재중인 기자도 포함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영 개운치가 않다. 이 글을 읽을 독자 중에도 기자와 같은 느낌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독자를 위해(혹은 기자의 편안한 임종을 위해) 좀더 질문해 보았다.
來世觀은 靈的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
―靈的 고통은 來世가 있음을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종교인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겁니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기독교 신자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이란 전제하에 말씀드리는 것인데, 종교에 따라 다르다는 말입니다』
現實에서는 모든 종교가 비슷한 것 같다. 착하게 살아라, 부모를 공경하라, 나쁜 짓을 하지 말라는 등. 하지만 來世觀을 잘 정립해 信徒(신도)들이 죽음에 임할 때를 배려해서 敎理(교리)를 만든 종교가 있는가 하면, 내세를 인정하는 敎理를 만들기는 했지만 정작 信徒가 죽음에 임하게 되었을 때 敎理가 별 역할을 못하는 종교도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종교는 아예 내세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경우도 있다.
『靈的 고통을 심하게 겪어야 하는 사람중에는 내세관을 언급하지 않은 신념체계로 살아왔던 분들이 가장 많았어요. 제 말뜻을 잘 이해하셔야 해요』
그녀는 내세관의 優劣(우열)이 靈的 고통을 해방시키는 열쇠라는 뜻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단지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므로 臨終할 때 내세관을 가져버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편리한 생각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고도 했다.
『靈的 고통은 당해 본 사람만이 그 끔찍함을 압니다. 비록 최후의 몇 달간 겪게 되는 고통이지만 만약 다시 소생한다면 그들은 최후의 몇 달 동안 지속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기존의 신념체계도 바꾸고 살아갈 겁니다. 그러니 「되는 대로 살다가 죽을 때 바꾸면 되겠지」하는 생각은 버려야 할 거예요』
靈的 고통이 없는 사람들은 나름의 신앙을 마음속에 갖고 살면서 이웃을 생각하고 利他的(이타적)인 삶,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살아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내세관이 확실한 종교를 믿어온 사람들에게 靈的 고통은 작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무슨 종교라고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그러나 來世를 믿는 사람도 靈的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고통스럽게 느끼곤 해요. 때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생각도 않는 분도 있어요. 본인이 느끼지 못하면 그만이겠지요. 어쩌면 의료진과 라포(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서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靈的인 문제」,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낫는 것에만 집착하지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이거 안되겠구나」하고 당황해 합니다. 마치 백전 백승한 장군이 단 한번의 패배를 확인하는 모습이라 할까요. 당황하는 모습이 바로 그래요』
崔박사의 「보이지 않는 세계」란 의미는 좁게는 정신적 가치를, 넓게는 내세와 神을 의미한다. 卽物的(즉물적)이고 現世的(현세적)인 사람들일수록 生을 마감하고 떠날 때엔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遭遇(조우)에 앞선 공포와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성직자와의 면담을 통해 비로소 靈的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워커홀릭(일 中毒症)으로 사망하는 사람들
崔박사는 몇 년 전에 사망한 유명한 敎團(교단)의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름만 대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그는 말기 암으로 판정받은 뒤 崔華淑 박사의 호스피스팀에 의해 임종간호를 받았다. 처음 崔박사가 찾아갔을 때 그는 잔디밭에 휠체어를 타고 나와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崔박사에게 『내가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남북통일과 관계된 이 큰 사업을 다 마치고 갈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다른 환자에 비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그는 蘇生을 위한 노력을 다 한 끝에 『할 수 없지 뭐…』하며 삶을 포기해 버렸다고 한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이냐에 대한 답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느냐에서 찾아질 것이다. 崔華淑 박사는 한국인들, 특히 한국 남성들의 臨終을 지켜보면서 한국인의 삶의 태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절감한다고 했다.
『40代의 한국 남자들은 앞도 뒤도 옆도 보지 않고 일만 합니다. 그래서 急死(급사)하는 사람도 많고 癌으로 회복불능 상태가 되어 호스피스를 찾기도 합니다. 이렇게 일 中毒症(중독증)에 걸린 사람을 우리 사회는 성실한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일에 中毒된 사람이 家庭과 家族에 성실할 수 없잖습니까. 친지나 이웃에 대한 배려에도 不誠實할 것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더 하겠지요. 그런데도 이것이 마치 긍정적인 생활태도라고 부추기는 우리 사회는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가정과 이웃에 대한 배려를 무시해도 좋다는 식이지요.
일 中毒症에 걸린 사람이 죽음을 맞이 하게 되면 다른 환자들보다 더 심하게 뒤틀립니다. 자기가 믿고 살아온 세계로부터 배반당한 채 어찌할 줄 몰라 해요. 靈的인 고통도 말할 수 없이 큽니다』
崔박사는 신혼시절에 경험했던 아랫집 주인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는 서울대학교 교수이면서 동시에 회사경영까지 성공한 사람이었다. 일에만 몰두하느라 가족들의 불평이 잦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일에만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가 어느 날 胃癌 말기 판정을 받고 그만 자포자기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훌륭한 능력도 죽음을 선고받은 뒤엔 힘을 잃었지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부추기는 능력이 애당초 없었던 겁니다. 자신을 사랑하기보다는 혹사하는 데에만 익숙한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그 교수는 깊은 밤에 음악을 크게 틀기도 하는 등 심리적 방황을 하다가 어느 날 세들어 사는 崔박사가 간호사였음을 알고 새벽 두 시쯤에 전화를 걸어 왔더란 것이다. 잠결에 전화를 받으니 그 교수는 대뜸 『崔선생,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에게 길을 가르쳐 주시오』라고 울면서 묻더란 것이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다가 肉身(육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 갑자기 공백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정말 안타까운 죽음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런 삶을 살지 않았을 거예요. 갑자기 우리 사회가 많이 병들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로는 「삶의 質」을 외치지만 결국은 돈과 數値(수치)와 物質로 해결하려는 사고에 젖어 있는 겁니다』
死後世界
崔박사는 記者에게 寓話(우화) 한 토막을 들려 주었다.
『나는 50분 일하고 10분 동안 쉬면서 도끼날을 갈았거든』>
－死後世界는 존재한다고 보십니까.
『오늘 李기자님 만나러 나오면서 호스피스 동료 한 사람으로부터 특이한 전화 한 통을 받았어요. 새벽에 사망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거예요. 그가 깨어나서 하는 말이 「나는 좋은 데 갈 것 같다. 아주 밝고 아름다운 세상이더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제가 부탁을 했지요. 다시 그 세상을 보고 오거든 어떻게 생겼는지 잘 좀 전해달라고 말이지요(웃음)』
崔박사는 천국과 지옥은 있다고 믿는다면서 미국의 한 심장 전문의가 조사한 결과를 소개했다. 死後세계를 믿지 않았던 그 의사는 심장병 환자 중에 蘇生術 덕분으로 죽었다가 깨어나는 경우가 많아 2백여명의 蘇生환자를 면접 조사했다고 한다. 이들 환자의 체험담은 개별적으로는 약간씩 다른 내용이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극단적으로 두 가지를 증언하고 있더란 것이다.
우선 죽었다가 깨어난 모든 환자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는 것은 사망 직후 좁고 긴 통로를 따라 무엇에 이끌린 듯 빠져 나갔다는 이야기이다. 그 다음엔 두 개의 그룹으로 경험이 나눠진다. 첫번째 그룹은 꽃향기가 그윽하고 끝없이 초원 같고 아름다운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너는 아직 올 때가 안되었으니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는 얼마 후 의식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다른 한 그룹은 아주 컴컴하고 무시무시한 느낌이 드는 곳에 도착한 사람들이다. 이들도 『때가 안되었다.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깨어나는데, 한결같이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내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고 의사를 붙잡고 하소연한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기억은 하루쯤 지나면 희미해지다가 이틀 뒤엔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정상분만시 좁고 컴컴한 터널 같은 産道(산도)를 따라 나오지요. 그리고 호흡을 하기 시작합니다. 죽을 때는 꼭 이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臨終 직후에는 産道처럼 좁고 컴컴한 터널을 지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來世라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경험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어둡고 검은 세계를 보았다는 사람은 두려워하는 반면 밝고 환한 빛과 향기를 맡았다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안도하지요. 그래서 내세는 뭔지 아직 모르지만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로 나눠져 있고 그것이 천국과 지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런 내세관을 믿고 살 때 보통 사람들의 死生觀(사생관)은 어떤 모습이 될까. 崔華淑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유와 존재 그리고 來世
『人生은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연극이란 생각이 들겠지요. 무대 위에서 各者의 역할도 있고 말이지요.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안다는 뜻입니다.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왜 살았는지, 삶이 무엇이었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무대에서 내려올 때가 되었음을 아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오랫동안 무대 위에서 해온 어떤 역할이 있었음을 깨닫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되돌아보는 것과 같아요. 자기의 역할을 성실하게 끝내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삶을 살려는 자세가 死生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존재론적으로 삶을 보게 된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지요. 소유론적으로 세상을 보면 물질로만 인식하게 되어 보이는 것만을 소중하게 여기는 인생관을 갖게 되지요. 항상 많고 적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물질적 부족함에 한탄하거나 물질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증오하는 데에 익숙해지기 쉬워요. 영민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이용해 마치 가난한 이웃을 위한다는 演技(연기)를 해 보이기도 하지요. 이런 분들은 진정 죽음과 내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분들입니다. 臨終을 맞아 靈的인 고통을 크게 당하지요.
來世를 믿게 되면 비로소 자기가 사는 현실이 무대라는 인식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은 무대 위의 小品(소품)이란 인식도 생겨나지요. 배우가 小品에 욕심내지 않듯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질에 욕심이 없어지겠지요. 대신 이 小品을 어떻게, 어떤 연기를 통해 멋지게 사용하고 무대 위에서 내려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될 겁니다. 남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는 인생이라면 그게 바로 멋진 인생이 아닐까요?』
―죽음을 잘 맞이 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합니까.
『내 묘비명에 무슨 말이 쓰여지기를 바라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볼 필요가 있어요. 인생에서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입니다. 그 후엔 심판이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죽기 직전 자신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되돌아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되돌아볼 때 후회되는 삶이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으니까요. 이 세상의 삶이 全部(전부)가 아니고 죽음 후에 절대자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돈 많은 집을 가 보면 臨終 때 전혀 몰랐던 가족들도 나타나곤 해요. 그리곤 재산싸움이 시작되기도 하지요. 어떤 이는 꽃다발 하나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장례식 때 가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대충 보이지요.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우매한 자의 마음은 悅樂(열락)에 있느니라」 하는 전도서 7장 4절의 구절이 도움이 될 겁니다』
『유언장을 써 보세요』
『오늘날 미국 사회를 보면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나에게 유익한 것은 진리라는 사고방식이 팽배한 것처럼 보여도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청교도 정신에서 비롯된 절대진리를 견지하고 있어요. 내가 추구하고 자녀에게 전해줄 보편적 진리를 견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미국을 받치고 있는 겁니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사람들이 많겠지요. 우리 사회에서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가치관 중 자녀들에게 전해 주어도 자녀가 그 가치관대로 살아도 무방할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즉석에서 기자가 꺼낸 단어들은 정직, 용기, 충성, 명예, 애국, 성실 등이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미 「가치관」이란 名詞와 결합되지 못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崔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직」인가요? 하지만 돌아서면 본인부터 거짓의 가면을 써야만 생존이 가능한 사회라고들 하던데요? 「용기」입니까? 그러나 적당히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요? 「명예를 소중히 하라」고 하지만 소중한 명예를 지킴으로써 행복하게 살았다는 한국인을 보기 힘들 겁니다. 「존경하라」는 말은 「존경할 필요가 있을 때」라는 조건이 생략된 말로 사용되지요. 「애국」도 이상하게 여겨지고…』
가치관이 없는 사회는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가치관이 없는 교육을 통해 사회가 進化(진화)되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지성인들이 가치관을 再정립하지 못하는 한 미래의 한국 사회는 동물적인 弱肉强食(약육강식)의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崔華淑 박사는 빙그레 웃으며 권할 게 있다고 했다. 반드시 기사화해 달라는 의미이다.
『마흔 살이 넘은 분들은 이제라도 유언장을 미리 써 보는 것을 권하고 싶네요. 변호사에게 공증을 받지 않으면 법적인 효력은 없다고 하는데요(웃음). 그래도 한번 써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매년 이걸 갱신해 가는 것이지요. 인간관계도 정리하고 빚을 진 내용도 기입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길 말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시면 가족과 이웃에게 새로운 마음이 보일 겁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記者는 분명 철학자나 성직자를 만나 인터뷰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성직자보다 더한 종교적 감동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崔박사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내내 궁금해 했다.
<너희는 나를 위해 경배하지 말라. 나를 위해 제단을 쌓지 말며, 나를 위해 의식과 예물을 바치느라 너희 귀중한 재물과 노력을 허비하지 말라. 먼저 스스로를 구하라. 너희는 이웃을 사랑하라. 내가 기뻐해서가 아니라 그러함으로써 네 이웃도 너희를 사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지나치게 많이 가짐을 구하지 말라. 많이 가짐이 惡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함으로써 네 이웃이 가난해지는 게 惡이기 때문이다>(李文烈의 「思索」 중에서)●
記者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그녀는 10년 묵은 古物 승용차를 당당하게 몰고 나타났다. 주름살처럼 흠집이 새겨진 빨간색 르망은 허연 먼지를 뒤집어쓴 채 천식 앓듯 가래 끓는 엔진 소음을 내고 있었다. 내부를 보니 손때 타서 맨질맨질해진 수동 기어 손잡이 위로 겨울 햇빛이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호스피스 전문가를 주인으로 만난 이 자동차도 필시 長壽(장수)를 누린 나머지 편안한 여생을 마칠 것이란 확신이 섰다.
인간이 修養(수양)을 통해 마음이 열리고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단계에 가면 事物(사물)과의 對話도 가능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은 일회용인 법이 드물다. 유효기간을 비웃듯이 넘기고도 오래오래 윤이 나도록 쓰이곤 한다. 마음이 닫힌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물건을 아끼는 수전노로 보일 테지만 목사 남편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신체와 정신뿐 아니라 영혼까지 건강한 우리 시대의 생활력 강한 아주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찻집에 들어와 마주 앉았지만 상대는 기자가 무얼 질문할지 다 알고 있을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臨終(임종)을 수백 번이나 체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이런 특유의 여유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經典(경전)이나 철학 서적을 통한 理論으로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가는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했던 체험들이 원인이었을 터이다.
말기 암환자의 공통점-「소생을 위한 피나는 노력」
호스피스 대상자 중 90% 이상이 癌환자들이다. 癌은 한국인의 사망원인 중 교통사고 다음가는 질환으로 꼽힌다. 腦卒中(뇌졸중)이나 老患(노환) 등도 주요 死因(사인)이기는 하지만 殘餘壽命(잔여수명) 예측이 어려워 6개월 이내에 사망하게 될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호스피스에 의뢰되는 경우는 末期 예측이 정확한 癌환자들이다. 이들 末期 癌환자와 가족들의 공통점을 묻자 崔華淑 박사는 『蘇生(소생)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시도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식이요법에 관심이 높아집니다. 다니던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복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漢方(한방)과 민간요법으로 몇 가지 처방을 더해보기도 하지요』
민간요법으로는 지렁이를 고아 만든 토룡탕에서부터 백년 묵은 기와지붕 위에 기생하는 풀을 달여 먹는 것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게다가 1990년대부터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자 홍콩과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秘藥(비약)도 많이 찾는다. 가족들은 환자를 호스피스에 의뢰해 놓고도 마지막까지 蘇生術(소생술)을 동원하는 데 보통 1백만∼2백만원 이상을 쓴다고 한다. 그러나 거의가 虛事(허사)라는 것이다.
많은 癌환자들이 호소하는 것은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癌환자의 통증은 신체 내부에서 자라난 종양이 神經(신경)을 누르거나 骨轉移(골전이)되었을 때 나타난다. 모든 癌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받고 죽는 것은 아니다. 10명의 암환자 중 2∼3명은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한 채 죽는다고 한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는 10명 중 3명 정도. 나머지는 그 중간쯤이라는 것이다. 癌환자를 수발해야 하는 가족의 고통도 여간한 일이 아니지만 환자 스스로도 참기 어려워한다.
1976년 고등학교를 다니던 記者의 先親은 마흔아홉의 나이로 癌과 투병중이었다. 오늘날처럼 의료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호스피스의 존재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 무렵, 집에서 6개월여를 앓다 돌아가셨다.
「回復(회복)」이란 看病(간병)경험만 가진 가족으로서는 「臨終(임종)」할 환자를 간호한다는 것만큼 절망적인 일도 없다. 처음 看病할 때엔 기적을 바라며 매일매일 차도가 없는지 살펴보곤 하지만 얼마 안 가 지치기 시작한다. 환자가 부탁을 해도 못들은 척하거나 환자를 무시한 언행이 돌출하기도 한다. 「긴 병에 孝子 없다」는 속담은 오랜 看病생활에 지친 가족들의 죄의식을 감해주는 말일 것이다.
환자의 병세는 간병인의 입장에서는 아주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하고 집안의 분위기는 급격하게 우울한 늪 속으로 침몰해 간다. 개인적으로 즐거워할 일도 집안에서는 금기시된다. 몇 달쯤 지나면 개인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친다. 건강할 때엔 발길이 잦던 친척들도 末期환자라는 사실을 알면 발길이 뜸해지고 그 이유가 경제력과 함수관계에 있음을 알게 되면 가족들은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받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記者의 先親은 아내로부터 좋은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은 것 같다. 매일 두 차례의 목욕, 不撤晝夜(불철주야) 각종 심부름에서부터 정확한 시간에 투약하는 일까지. 그러나 記者의 어머니는 간호학을 전공하지 않은 전업주부였을 따름이다. 환자의 고통이 얼마나 될지는 가족중 누구도 잘 몰랐을 것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와 보니 어머니는 시장에 가시고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 방에 들어가 보니 왼쪽 팔목에 호스와 연결된 링거 바늘이 꽂혀 있는데 정작 링거 병은 보이지 않았다. 호스 속으로 가득찬 붉은 혈액이 조금씩 바닥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놀라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여쭈었더니 아버지는 『너무 아파서 자살하겠다.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는 말씀이었다.
철이 덜 든 장남에게 아버지로서 할 말도 아니란 걸 아셨겠지만 이미 그 상황에서는 아들과 아버지간이라 하여 가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학생이던 記者는 아버지의 팔에서 주사바늘을 뽑아내고 아들이 아닌 한 사내로서 아버지를 향해 무슨 말을 했다고 기억한다. 지금은 그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위로의 말이었건 비난의 말이었건 아버지에게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환자의 고통을 십분의 일도 체감하지 못했던 것만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환자의 통증을 줄여 주어야
호스피스는 末期癌 환자의 신체적 고통을 조절하기 위해 일반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것과 방식을 달리해 적용한다. 일반 병원에서 臨終을 맞이하는 환자들은 호스피스를 통한 緩化(완화)치료를 받는 환자들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설명되는 항목이다. 崔華淑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환자들은 통증을 호소할 때 독특한 패턴이 있어요. 처음 통증이 오기 시작하면 환자는 약을 달라고 하지 않아요. 참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참지 못할 때 비로소 약을 달라고 합니다. 이때 투여되는 진통제는 30분 뒤에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해서 보통 4∼6시간 동안 지속되지요. 이 기간 동안 환자는 언제 다시 통증이 올지 두려워해요.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아파 옵니다. 통증이 강해지면 다시 약을 요구하지요. 통증의 반복과 진통제 투여가 반복되는 동안 틈이 생기는데 이 기간은 주기적이지 않기 때문에 당하는 환자로서는 무척 고통스러워요. 일반 병원의 치료란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진통제를 최소한 사용하려 하지요.
호스피스는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가장 편안하게 生을 마감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환자의 혈액 속에 진통제가 일정한 함량을 유지하도록 주기적으로 투여합니다』
―통증을 줄여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과, 아예 통증을 차단해 주기 위한 安樂死(안락사)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安樂死가 등장하게 된 주된 이유도 末期 환자들의 고통 때문이었지요. 환자가 「아프니까 아예 죽게 해달라」고 하소연하는 것을 「환자의 희망」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의료인의 소명은 환자의 희망을 존중하는 것이란 이유에서지요. 그러나 호스피스는 安樂死를 반대합니다. 호스피스는 환자가 아파서 죽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통증을 줄여줌으로써 그 환자로 하여금 주어진 삶만큼 편안하게 지내다 인간으로서 威嚴(위엄)을 갖고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입니다』
호스피스의 철학은 환자와 가족을 간호의 단위로 삼고 그들의 생활을 質的으로 향상시키는 데 있다고 한다. 남은 생을 가능한 한 편안하고 충만하게 보내도록 도와주며 가족과 더불어 주변의 모든 것을 즐기도록 배려하며 그동안 삶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특히 삶을 연장시키거나 단축시키지 않으며 삶과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여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이런 의미에서 호스피스는 일반 병원의 치료나 安樂死와는 별개의 의료 서비스를 하는 셈이다.
서로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을 共有
『호스피스가 하는 일 중에는 가족이 환자를 잘 돌보게 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그래야 死別(사별)과정에서 서로 편하게 보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最善을 다했다는 마음을 가져야 인간과 인간이 친밀감을 느끼고 서로를 용서하게 되거든요』
한 남자가 암을 앓다가 몇 차례의 수술 끝에 폐와 뇌 및 골전이가 되어 호스피스에 의뢰되었다. 가족들은 집보다 병원이나 외부시설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병실이 준비되지 않아 일단 집에서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崔박사는 이 집안의 내력을 듣던 중 남편과 아내의 갈등이 심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남편의 바람기에 부인은 가슴앓이를 많이 했던 것이다.
崔박사는 그런 환자의 부인에게 남편을 간호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간호를 하다 보니 부인은 남편의 측은한 모습에 분노가 많이 삭은 듯했고 간호를 받던 남편도 부인의 헌신적인 노력에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약 석 달간의 간병을 받은 뒤 남편은 臨終을 맞게 되었다. 崔박사는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권했다. 남편은 혀가 말려 들고 점점 의식이 사라지고 있었다. 崔박사는 부인의 손을 남편의 손 위로 가져다 놓았다. 눈을 감고 있던 환자가 말린 혀를 펴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철·이 없·어 실·수·한 것 용·서·해. 그·동·안 당·신 마·음·아·프·게 한 것 정·말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아주 힘겹게 말하는 것이었다.
『최후의 말이었지요. 사망에 다다른 시점인데 환자의 감은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저도 마음이 찡하더군요. 울고 있던 부인이 용서하겠다는 뜻으로 남편의 손을 꽉 잡았는데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서도 환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거예요. 의학적으로는 그럴 수 없는 상태였는데 말이지요. 저는 그걸 보며 참 놀랐어요. 그날 새벽에 돌아가셨지요』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았던 부인은 지금도 崔박사를 만나면 『그때 남편과 마지막 석 달이 몸은 고달팠지만 신혼보다 더 달콤한 세월이었어요』라며 행복한 기억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한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레프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란 단편소설을 통해 건강하던 재판관이 癌으로 죽음에 직면하게 되고 그로 인한 사회적, 육체적, 심리적 고통과 주위사람들의 심리 변화를 내밀하게 엮어 놓았다.
<직장동료에게 알려진 재판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전근과 승진의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이외에, 가까운 친지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는 이런 경우 으레 그렇듯이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 모두의 마음속에 「죽은 건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야」 하는 안도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저마다 「그래, 그는 죽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하는 생각이나 느낌을 가졌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의 친지들 가운데 좀더 가까웠던 사람들, 이른바 친구들은 예의상 장례식에 참석하여 미망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따위의 귀찮은 의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적 고립」이란 또다른 죽음
「죽은 건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다」는 생각은 공포로부터 도피하려는 방법 중 하나인 합리화에 속한다. 崔華淑 박사는 末期환자를 대상으로 간병하는 가족이나 의료진들도 이와 유사한 심리적 현상이 발견된다고 한다.
『「저 환자는 죽을 것이다」라고 알려지면 어느새 「저 환자는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로써 환자를 무시하려 하는데 이것을 「사회적 죽음(Social Death)」 또는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e)」이라고 하지요』
崔박사는 사회적 고립을 당했던 환자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癌으로 완치불가능 판정을 받은 한 환자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기 위해 입원했다. 이 환자는 호스피스에 의뢰했고 崔박사가 병원을 방문했다. 崔씨가 『어디가 제일 불편하세요?』하고 묻자 환자가 대답을 시작했는데 십여분 동안 계속되더란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곁에서 看病하던 부인이 『그게 아니고-』라며 재차 설명했다. 부인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환자가 『아냐, 그건 내가 설명할게』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들 부부는 崔박사가 했던 하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50여 분 동안 교대로 쉬지 않고 말했던 것이다.
첫 방문이 너무 길어져 崔박사가 내일 다시 오겠노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이들 부부는 崔박사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자는 이런 말을 하더란 것이다.
『제가 3년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오늘처럼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주신 분은 처음입니다』
崔박사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자신은 질문 한 번 한 것뿐인데, 설명을 잘 해주어 고맙다니? 며칠 뒤 환자와 신뢰관계가 만들어지면서 이런 의문은 풀렸다고 한다.
『이 환자는 완치 불가 판정을 받은 뒤 입원을 한 경우였어요. 이 환자의 침대 옆에는 치료 가능한 환자가 누워 있었는데, 담당 의사가 회진할 때면 자기 옆 환자에게는 평소에 세 가지 질문을 한답니다. 「잠은 잘 잤습니까」, 「아픈 데는 없습니까」, 「식사는 잘하십니까」였대요. 그런데 자기에게는 단 한 가지 - 「괜찮죠?」가 전부였답니다. 의사가 바쁜 날이면 옆에 누운 환자에게는 한 가지 질문만 하고 자기에게는 질문도 않고 휑하니 가버린답니다. 그 환자는 「주워온 자식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50여 분 동안 그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것만으로도 환자는 자신이 궁금했던 설명까지 다 들은 것으로 만족해버린 겁니다.
末期 판정을 받은 환자에 대한 의료진들의 이같은 행위가 바로 「사회적 고립」, 「사회적 죽음」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면 무의식중에 이런 태도를 취하는데 가정에서도 흔히 목격되는 일이지요. 末期환자로 집에 모셔다 놓으면 가족들은 부지불식간에 환자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고 있다」거나 「잠을 아주 편하게 잔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려 해요』
僞善的인 사람들
이 환자는 그런 병원을 포기하고 崔박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癌이 폐로 전이되어 호흡이 곤란할 지경이어서 침대보다는 소파에 앉아 있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호스피스를 통해 통증이 조절되자 환자는 崔박사에게 『혹시 의사가 암이라고 誤診(오진)한 게 아닐까요?』라며 蘇生의 희망을 가져 보기도 했다고 한다. 환자는 3개월 뒤 편안하게 生을 마쳤다.
개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는 환경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물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더해 준다.
『환자가 눈을 감고 있어도 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 듣고 있어요. 잠을 잔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말을 하면 환자는 심리적으로 고립되었다는 고통까지 겪게 됩니다. 이럴 때에는 「주무세요?」라고 물어 보세요. 십중팔구는 「아니-」 하며 눈을 뜨고 삶에 개입하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우리는 孝를 중시합니다. 하지만 가까운 친지도 평소에는 찾아보지 않다가 정말 중환자가 되어서야 찾아보곤 합니다. 그리고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기보다는 자신의 不孝(불효)를 감추고 孝心(효심)을 과시하기 위하여 특등실을 예약해 주든지 갈비짝을 사 보내든지 하지요. 그러나 末期환자에게는 특등실도, 갈비짝도 소용없습니다. 末期환자에게는 호스피스보다 더 좋은 치료는 없다고 봅니다. 환자가 가장 편안해 하니까요. 그런데 대부분은 환자보다 가족들 자신의 마음에 맞춰져 있을 때가 많지요. 「남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나」, 「그래도 저 집 아들이 효도한다고 알려져야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崔박사는 병동에서 근무할 때 겪은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중환자실에서 臨終을 앞둔 할머니가 산소마스크와 각종 생명유지 장치를 사용해 연명하고 있었다. 환자의 고통은 심했다.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할 경우엔 몇 분 안가 사망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高3인 손자가 학교에서 大入(대입)시험을 보는 날이라고 유가족들은 생명유지 장치를 떼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날 오후에 손자는 시험을 치르고 돌아왔다. 이윽고 臨終시간이 다가왔다. 큰 집안이라 가족도 많았고 사람들마다 종교도 각양각색이었다. 목사의 기도, 스님의 염불, 신부의 미사가 다 끝난 뒤에 생명유지 장치를 떼게 했다는 것이다.
『돌아가실 할머니께 어떤 종교가 효험이 있는지 모르니 할 수 없었겠지마는, 과연 이것이 삶을 하직하는 사람에게 잘 하는 행동인지 곱씹어 보게 해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두 세상을 본다는 것
―환자가 죽음에 임박해지면 양쪽 세계를 본다고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臨終 2∼3일 전이 되면 대화중에도 갑자기 허공 쪽으로 시선을 돌려요. 그리고 그쪽에 관심을 주다가 다시 대화하는 상황으로 돌아와요. 그동안은 제가 했던 말도 듣지 못합니다. 제가 「무얼 하셨어요?」 하고 물으면 「누가 와 있다」거나 「누구를 보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때로는 天使(천사)와 이야기를 했다거나 죽은 분과 얘기를 나누었다고도 하고 「지금 문 밖에 ○○가 와 계시는데, 들어오시라고 해」라고 가족에게 요청하기도 한답니다』
―지식수준과 관계 있습니까.
『학력, 종교, 재산, 계급 불문이에요. 다만 내세를 믿고 있는 분들이 확연하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末期환자들의 특징 중 남녀간의 차이는 없습니까.
『주부들은 아이들 걱정을 해요. 長成하지 않은 아이를 두고 먼저 떠나야 할 경우 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임종 직전이 되어 완전히 쇠약해지면 자녀 걱정도 하지 않지요. 남자들의 경우는 그저 아프지 않고 죽을 수 없을까에 대해서만 걱정합니다』
―환자가 사망했는지는 어떻게 판단합니까.
『길게 내쉰 숨이 끝없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면 화장지를 얇게 잘라 코 밑에 대 봅니다. 아주 작은 숨이라도 붙어 있으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죠. 화장지가 미동도 하지 않으면 손전등으로 눈동자의 동공을 비춰 봅니다. 빛을 쪼이면 視神經(시신경)이 자극을 받아 동공은 줄어들게 되어 있는데 사망한 사람은 동공이 그대로 열려 있게 됩니다. 이 상태를 확인하면 마지막으로 청진기로 심장 박동을 확인하지요』
기자는 정색을 하고 『靈魂(영혼)을 본 경험이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崔박사는 자신이 처음으로 靈魂을 목격했던 상황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학부 시절에 실습을 나갔는데 중환자실이었어요. 어느 날 거기 입원해 있던 한 환자의 생명이 거의 다했다는 조짐이 생명보조장치 등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호기심이 많았던 저는 사람이 죽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었지요. 교대시간도 마다하고 자리를 지켰어요. 환자는 두 번 급하게 숨을 들이쉬다 잠시 멈춘 뒤 후-욱 하고 내쉬는 체인 스톡 브레스(호흡)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후- 하고 마지막 숨을 내쉬는데, 길게 아주 길게…그리고 끝없이… 그래서 꼭 호흡이 아닌 그 무엇이 함께 나간다는 느낌을 확 받았어요. 그 순간 침대 위의 환자 주위로는 아주 희미한 빛이 감싸져 있다가 사라졌어요. 그게 뭐겠어요?』
『靈的 고통엔 플라시보가 안 통한다』
빛을 보았다는 것을 목격자의 착각이라 치부하고 나면, 최후의 호흡량이 문제다. 죽는 순간에는 신체 기능이 완전히 정지하므로 폐 깊숙한 곳의 殘存(잔존)공기가 나오는 것을 목격자가 靈魂으로 誤認(오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이번엔 한국인 末期환자 중 90%가 앓는다는 靈的 고통에 대한 질문을 해 보았다.
―靈的 고통을 받는 환자로 하여금 종교에 귀의토록 하여 來世(내세)를 믿게 함으로써 靈的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하셨지요. 이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생기는 精神生理障碍(정신생리장애)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심리적 불안이 원인이 되어 실제로 생리적인 문제로서 고통을 호소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은 아닐까요?
『아닌 증거가 있지요. 플라시보(Placebo)에 대해 아세요?』
플라시보란 심리적 효과를 위한 僞藥(위약)으로 有效(유효)성분이 없는 약을 의미한다. 밀가루 등 인체에 無益無害(무익무해)한 재료로 실제 약과 똑같이 만들어 환자에게 투약하면 의외의 효과를 본다는 것은 의학계의 常識(상식)이다.
일반적으로 환자 10명 중 3∼4명에게는 효과가 있으며 의사에 따라서는 일반 환자 중 90%가 플라시보를 통해 치료된다고도 할 정도이다. 崔박사는 『만약 말기 환자들에게 플라시보를 쓴다면 환자와의 신뢰관계가 망가져 버릴 겁니다』라고 말했다.
『靈的 고통을 심리적인 고통으로 오해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末期환자들에게는 진통제는 물론 플라시보도 별 효과가 없어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평소에는 신체적 이상이나 정신적인 이상으로 간주해서 진료와 치료를 하면 진통이 완화되지만 말기 환자가 겪는 靈的고통에는 기존의 의학적인 방법으로 진통이 멈추질 않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영혼의 영역도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 간호학에서는 사회적, 신체적, 정신적 간호 이외에 靈的 간호도 교과내용에 포함하고 있어요. 보이는 세계에만 집착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놓칠 수도 있지만, 고통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분명한 현실입니다.
이런 末期환자들에게 플라시보를 쓴다는 것은 삶의 마지막을 엄숙히 맞이하려는 인간을 속이는 결과가 될 뿐 아니라 고통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진통제로 알고 약을 복용한 환자가 진통효과가 전혀 없으니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心理學으로도 증명되지 않는 세계, 즉 플라시보가 통하지 않는 세계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녀는 죽음을 이렇게 정리했다.
『일상적으로 인간은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두부 모 자르듯 분리되지 않은 채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있는 全人的(전인적) 조직체입니다. 이 상태가 분리되는 시점이 바로 죽음인 것이죠』
한국인의 말기 환자 중 90%가 靈的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그중엔 취재중인 기자도 포함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영 개운치가 않다. 이 글을 읽을 독자 중에도 기자와 같은 느낌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독자를 위해(혹은 기자의 편안한 임종을 위해) 좀더 질문해 보았다.
來世觀은 靈的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
―靈的 고통은 來世가 있음을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종교인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겁니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기독교 신자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이란 전제하에 말씀드리는 것인데, 종교에 따라 다르다는 말입니다』
現實에서는 모든 종교가 비슷한 것 같다. 착하게 살아라, 부모를 공경하라, 나쁜 짓을 하지 말라는 등. 하지만 來世觀을 잘 정립해 信徒(신도)들이 죽음에 임할 때를 배려해서 敎理(교리)를 만든 종교가 있는가 하면, 내세를 인정하는 敎理를 만들기는 했지만 정작 信徒가 죽음에 임하게 되었을 때 敎理가 별 역할을 못하는 종교도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종교는 아예 내세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경우도 있다.
『靈的 고통을 심하게 겪어야 하는 사람중에는 내세관을 언급하지 않은 신념체계로 살아왔던 분들이 가장 많았어요. 제 말뜻을 잘 이해하셔야 해요』
그녀는 내세관의 優劣(우열)이 靈的 고통을 해방시키는 열쇠라는 뜻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단지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므로 臨終할 때 내세관을 가져버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편리한 생각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고도 했다.
『靈的 고통은 당해 본 사람만이 그 끔찍함을 압니다. 비록 최후의 몇 달간 겪게 되는 고통이지만 만약 다시 소생한다면 그들은 최후의 몇 달 동안 지속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기존의 신념체계도 바꾸고 살아갈 겁니다. 그러니 「되는 대로 살다가 죽을 때 바꾸면 되겠지」하는 생각은 버려야 할 거예요』
靈的 고통이 없는 사람들은 나름의 신앙을 마음속에 갖고 살면서 이웃을 생각하고 利他的(이타적)인 삶,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살아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내세관이 확실한 종교를 믿어온 사람들에게 靈的 고통은 작습니다. 그것을 반드시 무슨 종교라고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그러나 來世를 믿는 사람도 靈的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고통스럽게 느끼곤 해요. 때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생각도 않는 분도 있어요. 본인이 느끼지 못하면 그만이겠지요. 어쩌면 의료진과 라포(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서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靈的인 문제」,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낫는 것에만 집착하지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이거 안되겠구나」하고 당황해 합니다. 마치 백전 백승한 장군이 단 한번의 패배를 확인하는 모습이라 할까요. 당황하는 모습이 바로 그래요』
崔박사의 「보이지 않는 세계」란 의미는 좁게는 정신적 가치를, 넓게는 내세와 神을 의미한다. 卽物的(즉물적)이고 現世的(현세적)인 사람들일수록 生을 마감하고 떠날 때엔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遭遇(조우)에 앞선 공포와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성직자와의 면담을 통해 비로소 靈的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워커홀릭(일 中毒症)으로 사망하는 사람들
崔박사는 몇 년 전에 사망한 유명한 敎團(교단)의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름만 대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그는 말기 암으로 판정받은 뒤 崔華淑 박사의 호스피스팀에 의해 임종간호를 받았다. 처음 崔박사가 찾아갔을 때 그는 잔디밭에 휠체어를 타고 나와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崔박사에게 『내가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남북통일과 관계된 이 큰 사업을 다 마치고 갈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다른 환자에 비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그는 蘇生을 위한 노력을 다 한 끝에 『할 수 없지 뭐…』하며 삶을 포기해 버렸다고 한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이냐에 대한 답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느냐에서 찾아질 것이다. 崔華淑 박사는 한국인들, 특히 한국 남성들의 臨終을 지켜보면서 한국인의 삶의 태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절감한다고 했다.
『40代의 한국 남자들은 앞도 뒤도 옆도 보지 않고 일만 합니다. 그래서 急死(급사)하는 사람도 많고 癌으로 회복불능 상태가 되어 호스피스를 찾기도 합니다. 이렇게 일 中毒症(중독증)에 걸린 사람을 우리 사회는 성실한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일에 中毒된 사람이 家庭과 家族에 성실할 수 없잖습니까. 친지나 이웃에 대한 배려에도 不誠實할 것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더 하겠지요. 그런데도 이것이 마치 긍정적인 생활태도라고 부추기는 우리 사회는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가정과 이웃에 대한 배려를 무시해도 좋다는 식이지요.
일 中毒症에 걸린 사람이 죽음을 맞이 하게 되면 다른 환자들보다 더 심하게 뒤틀립니다. 자기가 믿고 살아온 세계로부터 배반당한 채 어찌할 줄 몰라 해요. 靈的인 고통도 말할 수 없이 큽니다』
崔박사는 신혼시절에 경험했던 아랫집 주인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는 서울대학교 교수이면서 동시에 회사경영까지 성공한 사람이었다. 일에만 몰두하느라 가족들의 불평이 잦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일에만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가 어느 날 胃癌 말기 판정을 받고 그만 자포자기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훌륭한 능력도 죽음을 선고받은 뒤엔 힘을 잃었지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부추기는 능력이 애당초 없었던 겁니다. 자신을 사랑하기보다는 혹사하는 데에만 익숙한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그 교수는 깊은 밤에 음악을 크게 틀기도 하는 등 심리적 방황을 하다가 어느 날 세들어 사는 崔박사가 간호사였음을 알고 새벽 두 시쯤에 전화를 걸어 왔더란 것이다. 잠결에 전화를 받으니 그 교수는 대뜸 『崔선생,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에게 길을 가르쳐 주시오』라고 울면서 묻더란 것이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다가 肉身(육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 갑자기 공백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정말 안타까운 죽음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런 삶을 살지 않았을 거예요. 갑자기 우리 사회가 많이 병들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로는 「삶의 質」을 외치지만 결국은 돈과 數値(수치)와 物質로 해결하려는 사고에 젖어 있는 겁니다』
死後世界
崔박사는 記者에게 寓話(우화) 한 토막을 들려 주었다.
『나는 50분 일하고 10분 동안 쉬면서 도끼날을 갈았거든』>
－死後世界는 존재한다고 보십니까.
『오늘 李기자님 만나러 나오면서 호스피스 동료 한 사람으로부터 특이한 전화 한 통을 받았어요. 새벽에 사망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거예요. 그가 깨어나서 하는 말이 「나는 좋은 데 갈 것 같다. 아주 밝고 아름다운 세상이더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제가 부탁을 했지요. 다시 그 세상을 보고 오거든 어떻게 생겼는지 잘 좀 전해달라고 말이지요(웃음)』
崔박사는 천국과 지옥은 있다고 믿는다면서 미국의 한 심장 전문의가 조사한 결과를 소개했다. 死後세계를 믿지 않았던 그 의사는 심장병 환자 중에 蘇生術 덕분으로 죽었다가 깨어나는 경우가 많아 2백여명의 蘇生환자를 면접 조사했다고 한다. 이들 환자의 체험담은 개별적으로는 약간씩 다른 내용이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극단적으로 두 가지를 증언하고 있더란 것이다.
우선 죽었다가 깨어난 모든 환자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는 것은 사망 직후 좁고 긴 통로를 따라 무엇에 이끌린 듯 빠져 나갔다는 이야기이다. 그 다음엔 두 개의 그룹으로 경험이 나눠진다. 첫번째 그룹은 꽃향기가 그윽하고 끝없이 초원 같고 아름다운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너는 아직 올 때가 안되었으니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는 얼마 후 의식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다른 한 그룹은 아주 컴컴하고 무시무시한 느낌이 드는 곳에 도착한 사람들이다. 이들도 『때가 안되었다.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깨어나는데, 한결같이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내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고 의사를 붙잡고 하소연한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기억은 하루쯤 지나면 희미해지다가 이틀 뒤엔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정상분만시 좁고 컴컴한 터널 같은 産道(산도)를 따라 나오지요. 그리고 호흡을 하기 시작합니다. 죽을 때는 꼭 이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臨終 직후에는 産道처럼 좁고 컴컴한 터널을 지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來世라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경험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어둡고 검은 세계를 보았다는 사람은 두려워하는 반면 밝고 환한 빛과 향기를 맡았다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안도하지요. 그래서 내세는 뭔지 아직 모르지만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로 나눠져 있고 그것이 천국과 지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런 내세관을 믿고 살 때 보통 사람들의 死生觀(사생관)은 어떤 모습이 될까. 崔華淑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유와 존재 그리고 來世
『人生은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연극이란 생각이 들겠지요. 무대 위에서 各者의 역할도 있고 말이지요.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안다는 뜻입니다.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왜 살았는지, 삶이 무엇이었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무대에서 내려올 때가 되었음을 아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오랫동안 무대 위에서 해온 어떤 역할이 있었음을 깨닫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되돌아보는 것과 같아요. 자기의 역할을 성실하게 끝내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삶을 살려는 자세가 死生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존재론적으로 삶을 보게 된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지요. 소유론적으로 세상을 보면 물질로만 인식하게 되어 보이는 것만을 소중하게 여기는 인생관을 갖게 되지요. 항상 많고 적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물질적 부족함에 한탄하거나 물질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증오하는 데에 익숙해지기 쉬워요. 영민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이용해 마치 가난한 이웃을 위한다는 演技(연기)를 해 보이기도 하지요. 이런 분들은 진정 죽음과 내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분들입니다. 臨終을 맞아 靈的인 고통을 크게 당하지요.
來世를 믿게 되면 비로소 자기가 사는 현실이 무대라는 인식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은 무대 위의 小品(소품)이란 인식도 생겨나지요. 배우가 小品에 욕심내지 않듯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질에 욕심이 없어지겠지요. 대신 이 小品을 어떻게, 어떤 연기를 통해 멋지게 사용하고 무대 위에서 내려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될 겁니다. 남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는 인생이라면 그게 바로 멋진 인생이 아닐까요?』
―죽음을 잘 맞이 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합니까.
『내 묘비명에 무슨 말이 쓰여지기를 바라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볼 필요가 있어요. 인생에서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입니다. 그 후엔 심판이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죽기 직전 자신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되돌아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되돌아볼 때 후회되는 삶이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으니까요. 이 세상의 삶이 全部(전부)가 아니고 죽음 후에 절대자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돈 많은 집을 가 보면 臨終 때 전혀 몰랐던 가족들도 나타나곤 해요. 그리곤 재산싸움이 시작되기도 하지요. 어떤 이는 꽃다발 하나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장례식 때 가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대충 보이지요.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우매한 자의 마음은 悅樂(열락)에 있느니라」 하는 전도서 7장 4절의 구절이 도움이 될 겁니다』
『유언장을 써 보세요』
『오늘날 미국 사회를 보면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나에게 유익한 것은 진리라는 사고방식이 팽배한 것처럼 보여도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청교도 정신에서 비롯된 절대진리를 견지하고 있어요. 내가 추구하고 자녀에게 전해줄 보편적 진리를 견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미국을 받치고 있는 겁니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사람들이 많겠지요. 우리 사회에서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가치관 중 자녀들에게 전해 주어도 자녀가 그 가치관대로 살아도 무방할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즉석에서 기자가 꺼낸 단어들은 정직, 용기, 충성, 명예, 애국, 성실 등이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미 「가치관」이란 名詞와 결합되지 못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崔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직」인가요? 하지만 돌아서면 본인부터 거짓의 가면을 써야만 생존이 가능한 사회라고들 하던데요? 「용기」입니까? 그러나 적당히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요? 「명예를 소중히 하라」고 하지만 소중한 명예를 지킴으로써 행복하게 살았다는 한국인을 보기 힘들 겁니다. 「존경하라」는 말은 「존경할 필요가 있을 때」라는 조건이 생략된 말로 사용되지요. 「애국」도 이상하게 여겨지고…』
가치관이 없는 사회는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가치관이 없는 교육을 통해 사회가 進化(진화)되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지성인들이 가치관을 再정립하지 못하는 한 미래의 한국 사회는 동물적인 弱肉强食(약육강식)의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崔華淑 박사는 빙그레 웃으며 권할 게 있다고 했다. 반드시 기사화해 달라는 의미이다.
『마흔 살이 넘은 분들은 이제라도 유언장을 미리 써 보는 것을 권하고 싶네요. 변호사에게 공증을 받지 않으면 법적인 효력은 없다고 하는데요(웃음). 그래도 한번 써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매년 이걸 갱신해 가는 것이지요. 인간관계도 정리하고 빚을 진 내용도 기입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길 말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시면 가족과 이웃에게 새로운 마음이 보일 겁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記者는 분명 철학자나 성직자를 만나 인터뷰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성직자보다 더한 종교적 감동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崔박사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내내 궁금해 했다.
<너희는 나를 위해 경배하지 말라. 나를 위해 제단을 쌓지 말며, 나를 위해 의식과 예물을 바치느라 너희 귀중한 재물과 노력을 허비하지 말라. 먼저 스스로를 구하라. 너희는 이웃을 사랑하라. 내가 기뻐해서가 아니라 그러함으로써 네 이웃도 너희를 사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지나치게 많이 가짐을 구하지 말라. 많이 가짐이 惡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함으로써 네 이웃이 가난해지는 게 惡이기 때문이다>(李文烈의 「思索」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