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생운동의 大변혁 예고

全南·全北·광주지역 대학총학생회의 북한 人權 운동 선언!

  •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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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의 책임을 남한정권에게 책임 추궁하던 한총련은 북한 식량난의 책임을 왜 金正日 정권에게 묻지 않는가. 북한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이고 영도자를 바꾸어야 해결된다』

북한정권을 추종하는 親金正日 학생운동의 한복판에서 철저한 반성과 각성을 경험한 湖南 지역 주요 대학의 총학생회 거의 전부가 한총련 노선을 비판하면서 북한 동포 구출 운동을 다짐하고 나섰다. 두 지역 학생운동 지도자들과 나눈 對話에서 한국 학생운동의 물줄기가 巨大한 전환을 예고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金 美 英 자유기고가

1970년 경남 남해 출생, 서울대 국문과. 同대학원 졸업(석사), 月刊朝鮮 6월호에 「한국 知性史의 일대 사건-金永煥 등 80年代 주사파 활동가들의 대전환」 기고.
온존하는 韓總聯 세력
 
  한 경찰기관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 12월15일 현재 1999년도 총학생회장 선거를 끝낸 1백65개 대학 중 65개 대학이 운동권이었다. 서울대, 고려대를 비롯한 종합대학의 총학생회 대부분이 여기에 속했다. 1980년대 후반의 서대협(서울지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 전대협(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을 이어 93년 출범한 한총련(한국 대학 총학생회 연합)의 NL노선을 포함하여, 좌파 정치운동에 주력하는 학생운동세력이 아직도 1999년의 한국 대학 학생회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 65개 대학 총학생회를 다시 분류해 보면 NL이 46개大, PD가 13개大,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 6개大를 차지했다. 운동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NL은 다시 경찰측 용어로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류된다. 여기서 북한과 관련하여 가장 문제적인 세력은 27개 대학 총학생회를 장악하고 있는 NL강경파로, 한총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간부진의 대거 수배 및 투옥 사태와 利敵性(이적성) 논의로 점차 약화 일로에 있지만, 한총련은 여전히 한국 대학생의 최대 정파조직을 이루고 있다.
 
  NL 강경파는 80년대 이후 변함없이 한국 사회를 미국의 식민지로 보고, 사회경제적 수준을 半자본주의로 규정하며, 한국 사회의 민주화 정도를 과소평가한다. 「反美(반미)」구호에 대한 집착도 변함이 없다. 다른 학생운동 노선이 처음부터 「북한도 남한보다 나을 것이 없다」 는 정도로 「온건하게」 파악해 왔다면 NL 강경파들은 북한에 민족적·역사적 正統性(정통성)이 있는 것으로 상정, 북한을 이상화하는 친북·극좌 성향을 띠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다른 노선이 계급성을 강조하여 노동자를 변혁의 중심세력으로 특정하면서 대중과 괴리되는 경향을 보이는 동안 광범위한 대중을 변혁의 연대세력으로 포괄하는 현실성을 보여 왔다. 1987년 6월 당시의 「직선제 쟁취」 구호나 대통령 선거 기간 야당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은 NL이 다른 정파로부터 기회주의라는 지탄을 받으면서도 대중적 기반을 확보하는 배경이 되었다. NL노선은 북한에서 3백만 명(우리 민족 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의 탈북자 면접 조사방법에 의하면 3백50만명으로 추정)이 굶어죽고(또는 金正日 정권이 굶겨죽이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위세를 떨치고 있다.
 
 
  불가사의한 침묵의 행진
 
  지난 4월22일 미국 방위포럼재단(DFF)의 수잔 숄트 회장은 美 상원에서 개최된 北韓 政治囚(정치수) 수용소 문제 청문회에서 「북한 政治囚 수용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야말로 역사상 일어난 인권 침해 중 最惡(최악)의 사태」로 「囚人은 더 이상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고 꼬리없는 짐승으로 다루어진다」 고 말한 바 있다.
 
  政治囚는 물론이고 보통의 인민이 생존의 최소한의 조건도 확보하기 힘든 이 체제에 대해 한 북한전문가는 「현재 북한의 상황은 수령절대주의가 부른 대규모 재난이며, 북한은 人權(인권)의 거대한 감옥」이라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신빙성있는 증언과 자료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학생들은, 북한 체제에 충성을 다하는, 일종의 미필적 고의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대학생 사회에서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혹한 인권 침해 현실에 대해 대다수의 지식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침묵하고 있다.
 
  「북한동포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시민연합」은 시민운동단체 또는 인권단체들이 북한 인권에 대해 거의 침묵한 지난 3년 동안 열심히 북한 인권 관련 운동을 해 왔다. 그러나 이 단체는 한 달에 1만원의 회비를 내는 회원을 1백30명 정도 밖에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곳에서 일하는 단 세 사람의 상근 직원중 한 사람인 金英子(45) 사무국장은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너 나중에 국회의원 출마하려고 그런 일을 하는 거니?』
 
 
  全北 20개 대학 중 17개가 한총련 이탈, 全北 총협 가입
 
  그런데 최근 대학생 사회에서 변화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대협과 한총련의 NL강경 노선에서 출발하여, 가장 「모범적」으로 활동했던 호남지역 학생회가 이들 한총련 질서에 정면 대결을 선포하고 나섰다. 「북한은 추종의 대상이 아니라 民主化(민주화)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전북지역 총학생회와 전남대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특히 전북지역 대학 총학생회 협의회(이하 全北총협) 간부진들은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으로 「북한 민주화」 의제를 내놓고 다른 지역 총학생회와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全北지역 대학 총학생회 연합(전북총련:한총련에 소속되어 있을 때의 명칭)의 별명은 「청소부대」였다고 한다. 1992년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이 지역 환경 미화원들과 함께 전주 시내 곳곳을 청소하는 것을 학생회칙의 의무조항으로 두고 있었다. 폭력 시위에는 맨 후위에 있다가 집회나 시위가 끝나면 청소를 전담하고, 다른 대학의 시설을 숙소로 빌려 쓰고 나면 반드시 청소를 한 후 대자보를 붙여 감사의 인사를 남기는 관례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 청소 잘하는 전통 때문인지 全北大 총학생회실은 일반 회사의 사무실처럼 깨끗했다. 총학생회장 楊埈化(양준화·26·농화학과)씨와 인사를 나누면서 『총학생회실이 내 방보다 좀 더 깨끗하군요』 라고 농담을 던지는 사이 한총련 탈퇴 이후 새로 구성된 全北총협의 간부진들이 한 둘씩 학생회실로 모여 들었다. 그리하여 전북대 총학생회장 겸 全北총협 의장 楊埈化씨, 작년에 全北총련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낸 姜信三(강신삼·29·전북대 경제학부)씨, 북한동포돕기운동위원장 李泰連(이태연·26·전북대 경영학)씨, 작년 원광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현재 전북총협 사무국장으로 있는 韓정수(28·원광대 경영학)씨, 그리고 崔玹榮(최현영·27·원광대 신문방송학)씨가 참석하여 좌담회를 열었다(이하 문답에서 말한 이는 일일이 밝히지 않기로 한다).
 
  全北에는 전문대를 포함하여 20개 대학이 있다. 그 중 한개 전문대학의 학생회만이 한총련 계열이고 두 개 대학은 非운동권, 나머지 전북대를 비롯한 17개 대학이 과거의 NL노선에서 1백80도 선회한 全北총협에 편입되어 있다.
 
  『우리는 92년부터 화염병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하고 한총련에 비폭력을 적극적으로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제기는 번번이 묵살당했죠. 그렇다고 한총련에서 탈퇴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학생회비에서 내는 한총련 분담금을 제 날짜에 정확하게 내고, 한총련에서 필요로 하는 人力(인력)을 정확하게 올려 보낸 곳은 全北총련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金泳三(김영삼) 집권 초기부터 정권 타도 구호를 내놓고, 폭력 자제 건의를 번번이 묵살하는 한총련을 점점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통일운동을 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분열책동을 거듭하는 한총련의 근원을 따라가 보니 북한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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