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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역사

1·21사태, 애치슨선언, 박종철사건, 루이 16세 처형, 히틀러 집권, ‘사막의 폭풍’ 작전…

“주사위는 던져졌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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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후퇴 당시 가족과 떨어져 울고 있는 아이들.
피란의 와중에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1951년 1월 4일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다시 중공군과 인민군에게 내주었다. 반년 전 적치(赤治)를 경험했던 시민들을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 남으로 향했다.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할리파 건설에는 우리나라의 삼성물산(건설부문)도 참여했다.
  2010년 이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829.8m)가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삼성물산(건설부문)이 시공사 중 하나로 참여했다.
 
  1941년 1월 6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연두(年頭)교서에서 ‘4가지 자유’에 대해 언급했다. 4가지 자유란 ①언론·표현의 자유 ②신앙(종교)의 자유 ③결핍으로부터의 자유 ④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다가오는 전쟁은 이 ‘4가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성전(聖戰)이 될 것이라는 예고였다.
 
  1996년 1월 6일에는 ‘노래하는 철학자’로 불리던 가수 김광석이 자살했다. 32번째 생일을 보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작년 8월 이상호 전 MBC 기자가 김광석과 그의 딸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김광석의 아내 서해순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검찰은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1946년 1월 7일 고려대학생 이철승이 반탁전국학생연맹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반탁학련은 좌익과의 유혈투쟁을 불사하면서 대한민국 건국으로 가는 길을 개척했다.
 
  1989년 이날에는 히로히토 일본 천황이 8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천황으로 즉위한 1926년부터 따지면 63년, 섭정이 됐던 1921년부터 치면 68년의 긴 치세 동안 그는 ‘현인신(現人神)’에서 ‘상징천황’으로 내려왔다.
 
  1918년 1월 8일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의회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비전을 제시하는 〈14개조 평화원칙〉을 발표했다. 윌슨은 피압박 민족들로부터 ‘성인(聖人)’처럼 숭앙받았지만, 이듬해 파리강화회의에서 그의 원칙은 열강의 국익(國益) 앞에 휴지조각이 됐다.
 
갈리폴리 전투 당시의 오스만튀르크군. 호주·뉴질랜드군은 튀르크군은 앝잡아보고 갈리폴리에 상륙했지만 결국 패퇴했다.
  1916년 1월 9일 8개월여를 끌어 온 갈리폴리 전투가 끝났다. 오스만튀르크와 호주·뉴질랜드군(ANZAC) 모두 25만여 명의 전사자를 냈지만, 결국 오스만튀르크군이 승리했다. 당시 오스만튀르크군의 지휘관이었던 무스타파 케말 대령은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군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은 살아남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는 개죽음이 아니다. 오늘 우리들의 죽음이 조국을 지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며 그대들 이름은 남을 것이다. 나 역시 여기에서 무너지면 제군들과 같이 시체로 뒹굴고 있으리라.”
 
  1953년 1월 9일에는 부산~여수간 정기여객선 창경호가 침몰했다. 300여 명이 사망했다. 화물선으로 쓰던 낡은 기관선에 화물(쌀)을 과적했고, 구명조끼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게 문제였다. 이 사회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도 못했다. 61년 후 비슷한 사고가 다시 일어났다.
 
  기원 전 49년 1월 10일, 갈리아 총독이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 본토로 진격했다. 속주 총독이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은 쿠데타를 뜻했다. 카이사르는 지금까지도 회자(膾炙)되는 말을 남겼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1950년 1월 12일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은 전미기자협회 연설에서 “한국과 대만은 미국의 극동방위선 밖에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스탈린과 김일성에게는 ‘남침초대장’이 되었다. 요즘에는 ‘역(逆)애치슨라인’, 즉 한국과 대만은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되고 말 것이라는 불길한 관측이 나돌고 있다.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통해 드레퓌스사건에 대한 진실을 요구했다.
  1898년 1월 13일 프랑스의 작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발표, 독일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5년째 수감 중인 드레퓌스 대위 문제를 제기했다. 이 문제는 곧 프랑스 제3공화국을 흔드는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세력 간의 이념적 내전으로 번졌다. 논란은 8년을 더 끌었다. 1906년 프랑스 대법원은 재심(再審)에서 드레퓌스 대위에게 무죄선고를 내렸다.
 
  1978년 1월 14일 여배우 최은희가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당했다. 최은희의 전 남편 신상옥 감독은 최은희를 찾기 위해 홍콩으로 갔다가 그해 7월 19일 납북됐다. 이들의 납치는 영화에 관심이 많은 김정일이 북한 영화를 진흥(?)하기 위해 지시한 일이었다. 이들은 김정일의 후대를 받으며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지만, 결국 1986년 3월 13일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국대사관을 거쳐 탈출했다.
 
박종철 군이 고문을 받다 사망한 후인 1987년 1월 20일 서울대생들은 그의 영정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1987년 1월 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 연행된 서울대생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 경찰은 “책상을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해명을 내놨다. 성난 민심은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고, 결국 직선제 개헌을 쟁취해 냈다.
 
  1893년 1월 17일 하와이 왕국에 거주하던 미국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을 퇴위시키고 공화국을 선언했다. 선교사의 아들이었던 샌퍼드 돌 판사가 초대(初代) 대통령이 됐다. 하와이는 1900년 미국에 병합됐다. 미국계 거류민을 동원해 공화국을 세웠다가 결국 합중국에 편입시키는 것은 미국이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서도 써먹었던 수법이었다. 샌퍼드 돌과 그의 사촌 제임스는 파인애플회사도 세웠는데, 그것이 유명한 돌(Dole)식품회사이다.
 
  1991년 1월 17일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다국적군이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군을 몰아내기 위해 ‘사막의 폭풍’ 작전을 개시했다. 미국은 한 달간 10만 회의 폭격을 실시한 후 그해 2월 24일 지상군을 투입했다. 이라크군은 42개 사단 중 41개 사단이 무력화되고 약 20만명의 사망자를 냈다. 다국적군은 미군 150명을 포함해 378명의 전사자를 내는 데 그쳤다. 2월 28일 이라크군은 항복했다.
 
  1871년 1월 18일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는 베르사유궁전에 있는 거울의 방에서 ‘독일제국’ 수립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했다. 1952년 1월 18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평화선(平和線)을 선포했다.
 
  1983년 1월 19일 애플컴퓨터가 최초의 상업용 PC 애플 리사를 발표했다.
 
루이 16세는 1893년 1월 21일 “짐은 죄없이 죽는다”는 말을 남기고 처형됐다.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선량했지만 무능했던 그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짐은 죄 없이 죽는다. 이 땅에 두 번 다시 무고한 피가 뿌려지지 않도록, 신이여, 돌봐주소서.”
 
1968년 1월 21일 군경에게 체포된 김신조.
  1968년 1월 21일에는 북한 124군 부대원 31명이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다.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는 “박정희 목을 따러 왔수다”라고 말해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틀 후인 1월 23일에는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인근 공해상에서 북한에 나포됐다.
 
  1905년 1월 22일(러시아력 1월 9일) 가폰 신부가 이끄는 노동자들이 니콜라이 2세에게 근로조건의 개선, 정치·사회개혁 등을 요구하는 탄원을 하기 위해 동궁(冬宮)으로 향했다. 군대가 발포, 1000여 명이 죽었다. 이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차르(황제)를 ‘인민의 아버지’라고 여기던 환상이 무너졌다. 제1차 러시아혁명이 일어났다.
 
1990년 1월 22일 3당합당이 발표됐다. 뒷짐을 진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두 손을 모아쥔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대통령(민주정의당),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는 3당 합당을 선언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형성된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는 일거에 허물어졌다. 1955년 자유민주당을 탄생시킨 일본의 보수대통합을 벤치마킹한 이들은 당명도 민주자유당이라고 지었지만, 5년 후 와해됐다.
 
  1933년 1월 30일 힌덴부르크 독일 대통령은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했다. 히틀러는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등을 거치면서 불과 1년 사이에 국회를 무력화(無力化)하고 다른 정당들을 해산시킨 후 독일을 전체주의 국가로 둔갑시켰다.
 
  1972년 1월 30일에는 북아일랜드 주둔 영국군이 시위대에게 발포해 14명이 사망했다. 영국인과 아일랜드인들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고, 아일랜드공화국군(IRA) 게릴라들의 테러가 극렬해졌다.
 
1996년 1월 31일 인기절정에 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했다. 왼쪽부터 양현석, 서태지, 이주노.
  1996년 1월 31일 한국 대중음악사의 신화(神話)였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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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    (2017-12-29)     수정   삭제 찬성 : 2   반대 : 2
그림 설명문과 본문의 년도가 다름====루이 16세는 1893년 1월 21일 짐은 죄없이 죽는다”는 말을 남기고 처형됐다.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선량했지만 무능했던 그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짐은 죄 없이 죽는다. 이 땅에 두 번 다시 무고한 피가 뿌려지지 않도록, 신이여, 돌봐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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