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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의 꽃 〈10〉 박목월의 〈나그네〉와 밀밭

글 :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사진 : 이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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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에 바람이 불자 밀들이 춤을 춘다.
  1939년 일군(一群)의 젊은 시인들이 나타나 일제 말엽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 자연을 노래했다.
 
  《문장(文章)》지를 통해 처음 등단한 박두진의 〈낙엽송〉 〈들국화〉에 이어 조지훈의 〈승무〉 〈봉황수〉가 등장하더니 1940년 박목월이 〈길처럼〉 〈그것이 연륜〉을 읊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시인 박목월의 생가다. 한적한 농촌이었을 생가는 지금 한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다른 한쪽으로는 KTX가 질주하고 있어 섬처럼 고립됐다.
  목월이 어느날 자기 고향 경상북도 경주로 벗 지훈을 초대했다.
 
  지금은 고속철도가 지나가고 고속도로가 뚫려 도로에 섬처럼 갇혀 버린 목월의 생가(生家)지만 당시 지훈은 경주의 풍광과 목월의 인정에 감명받았는지 이런 편지를 보낸다.
 
  〈완화삼(玩花衫)〉
 
  목월에게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恨)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이에 목월이 〈나그네〉로 화답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생가 옆에도 작은 밀밭이 조성돼 있다.
  지훈의 ‘물길 칠백리’가 목월에 와서는 ‘남도 삼백리’가 됐다.
 
  지훈의 ‘술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을 목월은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로 읊었다.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지훈의 〈완화삼〉을 목월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흘러가는 시냇물(行雲流水) 같은 〈나그네〉로 승화시켰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이라는 시구에 맞는 장소를 발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정제된 언어는 한 폭의 동양화를 읽는 이들의 마음속에 떠오르게 한다.
 
  그곳에 지금도 파란 밀밭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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