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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사이다’ 찾는 사회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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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의 불안한 심리 반영… ‘이재명 현상’에서 보듯 각 분야에서 ‘사이다’ 찾아
⊙ TV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흥행에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정서 깔려 있어
⊙ “인생의 갈등이나 굴곡 따윈 아예 없고 오직 승리와 성공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식의 전개 원해
⊙ ‘인생 리셋’식 전개는 ‘사이다’… 현실적 전개는 ‘고구마’
⊙ 美 영화, 경제 어려워진 1980년대 이후 유쾌·상쾌·통쾌 영화가, 최근에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흥행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TV 인기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재벌집 막내아들〉 열기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JTBC에서 지난해 11월 18일부터 12월 25일까지 방영한 16부작 드라마 얘기다. 종영(終映)으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관련 보도들이 끊이지 않으며 상시적인 이슈거리로써 반복 소비되고 있다.
 
  예컨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1235억원의 예산 투입 내용을 담은 ‘제6차 방송영상산업 진흥 중장기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캐치프레이즈는 “제2의 〈재벌집 막내아들〉을 만들자”였다. 그런가 하면 1월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등의 증권사 리포트에도 〈재벌집 막내아들〉은 등장한다. 각각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컴투스의 종목 리포트 제목을 〈재벌집 막내사업〉 〈재벌집보단 게임이 중요〉 등으로 발간한 것이다. 채권 분야를 담당하는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채권 시장은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밖에도 무수히 많다. 어느 분야건 빠지지 않고 곁들여 언급되며, 콘텐츠 자체에 대한 분석도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일단 상업적 차원에서 보기 드문 대(大)성공작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회에서 최고 시청률 26.9%를 기록해 역대 비(非)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재벌집 막내아들〉은 비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1위인 2020년 드라마 〈부부의 세계〉보다 더 주목할 점이 많았다. TV드라마 주(主)시청층이 중장년 여성층으로 수십 년째 고정돼 있는 상황에서 〈부부의 세계〉는 주시청층 구미에 꼭 맞는 남녀 간 불륜 소재로 보장된 성공을 누린 반면, 〈재벌집 막내아들〉은 TV드라마 자체에 딱히 열광하지 않는 남성층에서 현상적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 TV드라마의 시청 성비(性比)가 3대 7, 심지어는 1대 9로 적지 않은 여성 편중(偏重)이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시청률 조사회사 TNMS의 50대 이상 기준으로 5대 5에 근접했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TNMS 조사 결과 1~8회까지 JTBC 본방(本放)을 시청한 이들은 50대(30.4%), 40대(22.9%), 60대 이상(15.6%) 순으로 드러났다. 10~30대 젊은 층은 주로 OTT를 통해 시청했는데, 한 회분이 OTT에 업로드되고 나면 10~30대 남성층이 주로 이용하는 디시인사이드 등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는 온통 〈재벌집 막내아들〉 시청 소감으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문화적 신드롬이라고까지 볼 만했다.
 
 
  원작과 다른 마지막 회에 ‘국민적 분노’
 
  그런데 막상 〈재벌집 막내아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가는 높지 않다. 전적으로 마지막 회 탓이다. 원작인 웹소설의 결말을 드라마에선 송두리째 뒤집어버린 통에 종영 즉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선 비난이 폭주(暴走)해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에 이르렀다. 단순히 원작에서 벗어난 것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그전까지 진행돼 오던 드라마의 성격 자체가 바뀌어버린 격이었기에 원작을 읽지 않은 이들조차 결말에 분노했다. 언뜻 대중문화와는 별 관련이 없을 법한 홍준표 대구시장마저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벌집 막내아들〉 종결편을 보고 분노하는 시청자들이 많다”며 “신나게 바이킹 타다가 정상에서 추락한 기분”이라고 불만을 적어놓았을 정도다.
 
  그런데 〈재벌집 막내아들〉은 어쩌면 이 마지막 회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가장 흥미로운 지점일 수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과 같은 콘텐츠의 본질과 그 유행 원인에 대해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콘텐츠가 유행하는 지금이야말로 전반적 대중문화 흐름에서 상당히 예외적인 시점이라는 점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더욱 관찰의 필요성이 대두(擡頭)된다. 일단 〈재벌집 막내아들〉이 어떤 콘텐츠인지부터 차근히 돌아보기로 하자.
 
  〈재벌집 막내아들〉은 동명(同名)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드라마다. 재벌기업 순양그룹에서 오너리스크를 담당하던 직원 윤현우가 그룹 회장의 비자금 문제로 토사구팽(兎死拘烹)당해 살해된 뒤 순양그룹 창업주의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나 자신을 살해한 가문에 복수하려 한다는 설정이다. 그 과정에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정치·경제사가 실제와 유사하게 진행된다.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진도준(윤현우)은 많은 이득을 취하기도 하고, 이를 기반 삼아 재벌그룹 승계(承繼) 전쟁에도 나서게 된다.
 

  허무맹랑(虛無孟浪)한 얘기다. 그런데 TV드라마에 줄곧 반응하지 않던 남성층이, 특히 게임 등에만 열중하던 10~30대 젊은 남성층까지 〈재벌집 막내아들〉에 열광하게 된 이유가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2월 12일 자 기사 “‘인생 리셋’ 욕구 파고든 ‘재벌집 막내아들’… 시청률 급증 이유 있네”를 보자.
 
  〈장르를 따지자면 판타지 회귀물로, 죽었다가 되살아난 주인공이 앞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을 재설계하는 서사가 특징이다. 고단한 삶을 살던 주인공이 인생 역전에 성공하는 판타지는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이란 점에서 인기가 높은 소재다. 최근 웹툰과 웹소설 분야에서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이라고 불리며 주류 장르로 자리 잡았고, 인기작들이 영상화되면서 방송가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인생 ‘리셋’에 열광하는 이유에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정서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좌절감에 젖어 있는 청춘들은 인생을 다시 시작해 승승장구하는 판타지 회귀물을 통해 욕망을 투영시킨다. (중략)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계층 간 불평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널리 퍼져 있다”면서 “대중은 주인공이 손쉽게 신분 상승을 이루고 승승장구하는 문화 콘텐츠를 보며 대리만족을 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그렇다. 일단 현재 10~ 30대 젊은 층 문화소비 환경에서 웹툰과 웹소설은 너무나도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세(大勢) 미디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2022년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웹툰산업 매출액은 1조5660억원 규모로 불어나 있다. 불과 5년 새 4배나 성장한 셈이다. 웹소설 시장 규모 역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발표에 따르면 2021년 6000억원 규모로 8년 만에 무려 60배로 성장했다. 웹소설 플랫폼의 연(年)평균 성장률은 최대 40%에 달해 불과 몇 년 뒤면 현재 7132억원 규모의 일반 단행본 시장을 제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이 중 많은 웹툰의 기반이 되기도 하는 웹소설 분야에서 남성 소비자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소위 남성향(男性向) 콘텐츠는 위 기사에서 언급하는 인생 ‘리셋’류가 절대적 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히트작 거의 대부분이 이와 같은 종류다. 허무맹랑한 판타지 설정으로나마 현실의 좌절감과 패배감을 잠시 잊고 성공과 성취의 쾌감을 만끽하며 대리만족하려는 콘텐츠로 가득하다.
 
 
  ‘사이다’와 ‘고구마’
 
  그러면서 소위 ‘사이다 광풍(狂風)’이라는 새로운 문화 현상도 탄생시켰다. 답답한 현실 상황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시원하고 통쾌하게 해결됐을 때 쓰는 이 유행어는 이제 정치권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해 중장년층에도 익숙하다. 대표적으로 2016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시절 문재인 당시 경선 주자가 라이벌이었던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사이다’인데 자신은 ‘고구마’라는 얘기가 있다는 평가를 놓고 “(내가 상대적으로) 그만큼 책임이 더 무겁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사이다는 금방 또 목이 마르지 않느냐. 탄산음료는 밥이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런데 이 ‘사이다’는 애초 웹툰과 웹소설 등 대중문화 콘텐츠 전개 방식을 가리키던 표현이었다. 딱 위와 같은 인생 ‘리셋’ 콘텐츠를 놓고 ‘사이다’라는 평가들이 많았고,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려 전개해나가면 ‘고구마’란 혹평이 뒤따르며 흥행에 줄줄이 실패했다. 이렇게 모든 웹 기반 콘텐츠가 ‘무조건 사이다’를 외치며 전개해나가니 당연히 비판이 잇따랐다. 개연성(蓋然性)까지 파괴될 정도의 콘텐츠 질적(質的) 저하를 비판하는 입장이 거셌다. 그래도 이 ‘사이다’ 콘텐츠 인기는 식지 않고 오히려 점점 뜨거워져 갔다. 상황을 담은 《월간중앙》 2020년 12월호 기사 “[이슈분석] 3대 키워드로 읽는 웹소설의 세계”를 보자.
 
  〈성공을 쟁취하는 과정에는 ‘사이다’ 전개가 유독 두드러진다. (중략) 하지만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전개만을 요구하는 독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한편으로는 작가에게 부담이다. 이야기 흐름에 반드시 필요한 배경·인물 설명조차도 견뎌내질 못하는 조급한 독자를 이르는 ‘사이다패스(사이다+사이코패스)’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작가 지망생 B(24)씨는 “사건이 한 회 분량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답답하다고 아우성치는 독자가 꽤 많다”며 “바쁜 시간을 쪼개서 즐거움을 추구하다 보니 글이 길어지면 독자가 조바심을 느끼는 것 같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사이다패스는 웹소설의 전체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환생무신〉을 연재하고 있는 김신 작가는 “예전에는 환생을 해도 이전에 가지고 있던 능력으로 최고가 되었는데, 요즘은 추가적인 설정이 덧붙는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 삶의 육체나 사회적 지위가 전생보다 훨씬 좋아진다는 것이다. 뛰어난 머리를 가졌지만 흙수저라는 한계 때문에 최고가 되지 못했던 주인공이 전생의 경험을 간직한 채 재벌집 자녀로 환생하는 식이다.〉
 
 
  ‘현생의 나를 잊고 싶다’
 
  그런데 이제 점점 더 상황이 심화(深化)된다. 웹소설 작가 전건우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감정이 섞이거나 갈등이 들어갈 요소가 없는 ‘단순함’과 ‘대리만족’이 웹소설의 인기 요소”라며 “소설과 영화 시나리오에선 굴곡 있는 서사가 바탕이죠. 주인공은 위기를 겪고 이를 돌파하죠. 웹소설은 다릅니다. 시련을 주면 독자들이 ‘고구마’라고 답답해합니다. 계속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주인공이 이를 능숙하게 해결해내는 모습들이 인기를 끕니다”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웹소설 독자는 과거 회상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짚는다.
 
  결국 내가 실제 현생(現生)에서 어떤 사람인지는 완전히 잊고 싶고, 새롭게 맞이할 운명에선 인생의 갈등이나 굴곡(屈曲) 따윈 아예 없고 오직 승리와 성공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식의 전개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이다 광풍’의 본질이다. 기존의 서사(敍事) 작법(作法)과 완전히 동떨어진 형태다.
 
  그런데 10~30대 젊은 독자들이 이런 콘텐츠만을 원해 이에 맞춰 흘러가는 산업이 이제 곧 단행본 시장 규모도 앞지르고 텍스트 미디어의 상업적 정점(頂點)에 서게 될 전망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재벌집 막내아들〉의 예처럼, TV드라마 등 다른 대중문화 미디어의 원작이 돼 전방위적 대중문화 트렌드로 옮아갈 태세다.
 
  이렇게 놓고 보면 〈재벌집 막내아들〉 마지막 회에 쏟아진 시청자들의 분노도 좀 더 분명히 읽힌다. 〈재벌집 막내아들〉 자체가 ‘사이다 콘텐츠’인데, 주인공이 계속 승승장구하며 결국 재벌그룹 회장 자리에까지 오르는 원작 결말을 무시하고, 이 모든 것이 혼수상태에 빠졌던 주인공이 꾼 꿈이었다는 식으로 ‘고구마’를 안겨버린 데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전개상 작은 갈등이나 굴곡조차 보기 싫어하는 젊은 시청자들에게 정반대 ‘현실’을 보여주니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마비될 정도로 분노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난 연말 대한민국을 뒤흔들다시피 한 문화 현상의 본질이다.
 
 
 
모두가 ‘배드 엔딩’

 
1980년대 인기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당시에는 소설, 드라마, 영화는 물론 만화에도 갈등과 좌절이 녹아 있었다.
  이 같은 현상에 중·노년층은 당연히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대중문화 콘텐츠를 왕성하게 소비하던 1960~90년대 분위기는 이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상업적으로 성공한 콘텐츠는 수많은 갈등과 굴곡들이 설정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파국(破局)으로 끝나거나 최소한 씁쓸한 결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그 당시에는 대표적인 흥행 코드이다시피 했다.
 
  선풍적 인기를 누리며 당대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 자리에 올랐던 1968년의 〈미워도 다시 한 번〉 시절부터 1970년대의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등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에도 〈깊고 푸른 밤〉 〈어우동〉 〈서울무지개〉 등등 같은 유행이 계속됐다. 주인공은 결국 죽거나, 패배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찾더라도 그게 부귀영화(富貴榮華)와는 별 관련이 없었다. 서울에서의 야심을 버리고 낙향(落鄕)해 살아가는 결말이 많았다. 이런 흐름이 1990년대까지도 간다. 그렇게 〈서편제〉 〈걸어서 하늘까지〉 〈게임의 법칙〉 〈비트〉 〈초록물고기〉 등의 히트작들이 이어졌다.
 
  다른 대중문화 분야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족드라마 정도를 제외하고 보면 대부분의 TV드라마 성공작들도 비극이거나 씁쓸한 결말로 끝났다. 당장 1980년대의 최고 히트 드라마로 꼽히는 MBC 〈사랑과 야망〉, 1990년대의 SBS 〈모래시계〉부터가 그랬다.
 
  만화도 시대를 풍미(風靡)한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지옥의 링〉 등이 그랬고, 몇몇 개그만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기 만화가 갖은 굴곡과 비극을 담은 내용이었다. 소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강석경의 〈숲속의 방〉 등등 끝도 없다. “김홍신의 〈인간시장〉을 제외하면 모두가 배드엔딩”이라는 말까지 나오던 시절이다.
 
  이 같은 비극적 결말이 어찌나 고정된 흥행 코드였던지, 영화감독 김성수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1999년 영화 〈태양은 없다〉에 대해 “흥행을 위해서라면 주인공 중 한 명이 죽는 설정을 택했겠지만 나는 관객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 그러지 않았다”고 밝힐 정도였다. 그리고 실제로 당시만 해도 대중문화 소비층 분위기가 그랬다. 필자 역시 〈태양은 없다〉를 영화관에서 관람하고 나오며 같이 관람한 다른 관객들로부터 “주인공 안 죽으니 이상하다” “현실성 없고 만화 같다”는 등의 반응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러던 흐름이 2000년대 들어 조금씩 바뀌다가 마침내 2010년대 중반 무렵부터 ‘사이다 광풍’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1980년대 스필버그와 루카스의 시대가 열린 이유
 
1980년대 미국에서 〈인디애나 존스〉 같은 유쾌·상쾌 ·통쾌한 영화들이 득세한 것은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막을 내린 것과 관련이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사실 한국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세계 대중문화 메카로 불리는 미국도 비슷한 흐름을 겪었다. 돌아보면 1960~70년대 할리우드 영화 히트작들 중에는 비극이거나 그에 준하는 씁쓸한 결말이 많았다. 〈닥터 지바고〉 〈내일을 향해 쏴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미드나이트 카우보이〉 〈아라비아의 로렌스〉 등부터 시작해 〈러브스토리〉 〈대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등등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흥행 코드가 미국에도 존재했다.
 
  그러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죠스〉와 〈스타워즈〉의 대성공을 기점으로 소위 ‘유쾌(愉快)·상쾌(爽快)·통쾌(痛快)’한 엔터테인먼트 시대로 넘어간다. 그렇게 1980년대에 이르러선 〈E.T.〉 〈인디애나 존스〉 〈백 투 더 퓨쳐〉 등으로 대변되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의 전성기가 도래한다. 이 외에도 〈탑건〉 〈비벌리 힐스 캅〉 〈람보 2〉 〈코만도〉 등 히트 영화들은 절대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관객에게 승리와 성취의 보상을 안겨주는 형식이 흥행 코드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이처럼 극적인 대중의 취향 변화에 대해 많은 연구자는 1950년부터 1973년까지 한 번도 경기 불황을 겪지 않았다는 미국 사회 ‘자본주의 황금기’를 그 이유로 꼽는다. 그렇게 넉넉하고 풍요로운 시절이 사반세기 동안 지속되다 보니 당시 대중에겐 어둡고 비관적(悲觀的)인 콘텐츠, 숱한 갈등과 패배를 보여주는 콘텐츠도 부담 없이 소비할 심리적 여력(餘力)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현실의 안온(安穩)함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대중문화 콘텐츠는 오히려 비극적인 내용을 선호해 그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즐기려 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게 1973년부터 1975년까지의 경기 불황으로 막을 내리고, 이어진 지미 카터 행정부는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하면서 대중은 이제 갑갑한 현실에 대한 보상을 대중문화를 통해 얻어내려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폭발과 함께 주인공이 승리를 거두는 엔터테인먼트의 유행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닥터 지바고〉가 나올 수 없는 세상
 
〈닥터 지바고〉와 같은 영화는 이제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나오기 어렵게 되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의 대중문화 유행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1960~90년대 고도 성장기엔 한국 대중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확신과 심리적 여유가 있었기에 비극적 콘텐츠도 너끈히 소화할 수 있었지만, 그 모든 게 1997년 IMF 외환위기와 함께 무너졌다는 논리다. 이후로는 한국도 점차 ‘주인공이 죽지 않고 패배하지도 않는’ 콘텐츠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영화뿐 아니라 만화나 TV드라마 등도 같은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다 결국 ‘사이다 광풍’에까지 이르게 됐다는 흐름이다.
 
  이렇게 유리 지바고가 거리에서 십수 년 만에 라라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를 쫓아가다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콘텐츠는 더 이상 히트작이 될 수 없게 됐다. 한국 웹소설의 논리로 바꿔보면, 애초에 지바고와 라라의 운명을 실어 나른 러시아혁명도 벌어져선 안 되고, 지바고는 상류층 의사로서 계속 잘나가며 돈과 명예, 사랑을 간단히 얻어내면서 승승장구하다가 결국 대통령이라도 돼야 한다. 그리고 이런 ‘웹소설식 전개’ 또는 ‘사이다 전개’는 이제 대중문화계 구석구석으로 번지고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 마지막 회가 그리도 거센 비난에 직면했으니 이제 인기 웹소설을 TV드라마나 영화 등으로 옮기며 결말을 바꾸는 반란(?) 시도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지금껏 본 적 없는 기이한 서사의 시대가 대중문화계 전 방위적으로 열릴 전망이다.
 

  이처럼 기이한 대중문화 흐름에 쏟아지는 우려는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언론미디어의 지적들도 그렇다. 이융희 문화연구자가 쓴 《경향신문》 2020년 1월 29일 자 칼럼 “‘사이다’라는 진통제”도 그중 하나다.
 
  〈사이다 서사는 콘텐츠 소비자들을 아주 단순한 이분법 속에 위치시킨다. 서사의 주인공을 방해하는 수많은 안건은 납작하게 분노해야 할 것이 되고 특정 집단이나 사상을 재생산시킨다. 빈부격차나 남녀, 세대의 갈등이 서로 합의를 이루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이해 불가능한 악의로 다가오고, 그것은 사적인 복수로 해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유튜브 속 ‘사이다’ 영상의 댓글은 쉽게 전쟁터가 된다. 오히려 더 심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성토부터, 이런 상황을 사이다로 소비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얘기가 맞붙는다. 물론 그 두 집단은 그저 자기가 받은 만족감·불쾌감을 표출할 뿐이라 어떤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이다’ 찾는 사회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지자들의 페이스북은 ‘사이다 이재명’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캡처
  그리고 그렇게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익숙해진 ‘사이다 서사’를 이제 대중은 정치·경제·사회 등 다른 분야에서도 요구하고 있다. 앞선 ‘문재인 대(對) 이재명’ 구도에서 ‘사이다’의 대표 격으로 여겨지던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결국 제20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올라서고 지난해엔 77.77%의 압도적 득표율을 보이며 제6대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당선됐다. 다른 분야들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세상만사를 무조건 이분법으로 나눠 선(善)과 악(惡)의 구도를 만든 뒤 밑도 끝도 없는 ‘사이다’를 요구한다. 물론 이전에도 이런 경향이 있었지만, 그 정도가 점차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 돼 간다.
 
  끝으로, 이 같은 우려들 속에서도 엄밀히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의외로 미진(未盡)한 편이라는 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 물론 원인 자체는 숱하게 언급된다. 경제도 안 좋고 취업도 어려우니 청년들 입장에서 도무지 미래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경제 불황기의 대중문화 흐름도 이 같은 주장을 일부 입증해주긴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과 청년 취업 등의 문제가 이렇듯 대중문화 콘텐츠 서사를 말이 안 되는 수준까지 뒤바꿀 정도로 극단적인 상태라 보기는 어렵다. 또 한국과는 상황이 다른 미국 등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 아예 인간으로서 한계를 벗어난 슈퍼히어로 콘텐츠 유행이 십수 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존재한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어찌 됐건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이 느끼는 불안과 절망’
 
  왜 그럴까. 결국 현실 자체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원인, 즉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과 절망이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라 보는 게 맞다. 그리고 미국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세계적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이 같은 청년 세대의 공통된 문제에 대해 2010년대 소셜미디어(SNS)의 등장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그는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1995년 이후 출생한 미국인들은 불안, 우울증, 자학, 자살률, 연약함의 정도가 매우 높다”며 그 원인으로 “소셜미디어와 피해의식을 강조하는 문화의 결합”을 지적했다. 미국의 여러 조사에서 10대 여성들의 우울증 비율은 2013년부터 갑자기 늘어 2015년이 되면 전염병 수준으로 번져버렸는데, 딱 이 시기 즈음에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열풍이 10~30대 젊은 층에서 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서로를 “비교하고 절망하게” 만들어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는 주장이다.
 
  왜 청년들은 그토록 현실에 절망하는지, 그 절망감이 얼마나 극단적이기에 자아(自我)에 대한 애착까지 버리고 ‘회귀·빙의·환생’을 통해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길 원하며 굴곡 없는 승리의 서사를 광적으로 소비하게 됐는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세상 모든 것이 ‘사이다’가 되길 갈망하게 됐는지, 그 원인을 소셜미디어의 “비교하고 절망하게” 만드는 메커니즘 중심으로 새롭게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 해결책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일단 현상의 원인부터 정밀하게 파헤쳐보는 게 먼저다. 지난해 연말부터 지금껏 끊이지 않는 〈재벌집 막내아들〉 열풍이 던져주는 무거운 사회적 화두(話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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