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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55〉 시골시인들

‘보라 감자꽃이 슬퍼 보인 건 그 때문이었구나’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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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가요, 황인숙, 이성복, 전윤호, 그리고 젊고 예쁜 도성안 시인들이여’(이필)
⊙ ‘열여섯에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어느 작가의 원고와 연필, 지우개. 사진=조선일보DB
  한동안 6인 공동시집 《시골시인-K》(2021, 걷는사람 刊)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시집 타이틀이 1980년대 언론통폐합을 다루었던 이윤택의 희곡 〈시민 K〉를 연상시키고, ‘20세기 걸작’이라는 오손 웰스(1915~1985)의 흑백영화 〈시민 케인〉(1941)도 떠오르게 하지만, 셋 사이 연결하는 통로는 없다. 그저 이니셜 ‘K’만 같을 뿐. 시집 《시골시인-K》의 권두시라고 여겨지는 시 ‘웰컴 시골시인’을 읽다가 픽 웃음이 나왔다.
 
  ‌‌시골시인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잘 가요, 황인숙, 이성복, 전윤호, 그리고 젊고 예쁜 도성안 시인들이여
  오늘은 연탄불고기 식당도 일찍 문 닫는
  이름 불러줄 이라곤 가까운 가족밖에 없는
  그런 시인들 하나둘 모여
  늦은 저녁, 빈대떡에 막걸리로 목 축이는 시간
  창고 지붕 물받이는 세찬 바람에 삐걱거리고
  자퇴서 낸 열일곱 막내도 곯아떨어졌다
  낡은 시 뭉치 찾아 서랍 안을 뒤적이면
  아내가 한쪽으로 돌아눕는다
 
  -이필의 ‘웰컴, 시골시인’ 부분

 

  잘나가는 중앙문단의 시인들, 예컨대 황인숙, 이성복, 전윤호 시인에게 ‘잘 가요’라는 작별인사를 건네며 ‘시골시인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선언한다.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선언부터 하고 본다. 따지고 보면 이성복은 대구에서 활동하다 얼마 전 서울로 이주했고, 전윤호는 서울서 살다가 강원도 춘천에 정착했으나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늦은 저녁 무명의 시인, 이름하여 ‘시골시인’이 모여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서로가 자신의 시들을 읽기 시작한다. 발그레한 두 뺨, 목소리는 점점 달아오른다. 이 시의 끝자락은 이렇다.
 
  ‘마지막 연은 행방불명—/ 어디서 낱장이 떨어져 나갔는지/ 알지 못한 채’
 
  어쩌면 마지막 연은 아직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 시를 읽다 보니 따스한 느낌이 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 꿈틀거린다.
 
  이 《시골시인-K》에 참여한 6인의 면면은 다 이상(?)하다. ‘아이 셋을 억척스레 키우며 낙동강과 섬진강을 넘나드는 이,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돌연 사람을 만나러 다니겠다고 선언한 이, 서울에서 진주로 내려와 논술 교사를 하면서 오지로, 더 오지로 들어가 시를 쓰겠다는 이, 고성에서 연탄불고기 식당을 하며 당근마켓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이,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시골시인으로 스며든 이,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경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이’ 등이다.
 
 
  ‘시골시인’, 이필과 권상진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누군가 두근두근 나를 잘라낸다면…’ 사진=조선일보DB
  《시골시인-K》에 실린 이필 시인의 시 ‘진주’를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한 행 한 행 뜯어보면 말장난 같기도 하고 두루뭉술하며 무얼 말하는지 산만한데 전체적으로 이상하게 따스해진다. 독자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할까. 아마도 시골시인들이 경원시하는 ‘황인숙·이성복·전윤호’ 시인도 이렇게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다 쓰지 못했습니다.
 
  맨드라미는 버스 정류장 차광막 밖에 서 있고 맨드라미의 마음은 맨드라미밖에 모릅니다
 
  이런 게 한철 구름의 소관이라면
  계절을 긋는 빗줄기가 내 귓속에서 산산이 튀어 오릅니다 맨들맨들한 웃음소리에 휘감겨
  당신의 발목을 잘라가는 파도를 조심하세요
 
  사과꽃은 무너졌고 무정한 것들만이 남아 서로 붉어지며 길가에 주차된 눈보라는 한꺼번에 날아올라 매미나방떼의 기억을 뒤덮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누군가 두근두근 나를 잘라낸다면 나는 살해당한 사과들과 나란히 누워
  술에 취하리라는 것과
  뭉텅뭉텅 잘려 물컹물컹해지고 싶다는 말씀을
  전하려고 했는데
 
  여름밤이 훔친 보석은 삶이 좋아 미치겠습니까 마지막 한 결말까지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다가 나왔다면 누구에게 읽히는 위로입니까
 
  -이필의 ‘진주’ 부분

 
  이필은 소백산 기슭, 오지마을에서 태어났다. 안동으로 이사와,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쌓인 간장종지처럼 살았다. 2016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서울서 살고 있단다.
 
  이 6인 공동시집에 실린 권상진의 시편들도 독자의 눈을 끈다. 그는 머리를 숙여야만 내리는 별을 피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산동네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어엿한 경주 시민으로 산다. 2005년 시에 들어 2013년 전태일 문학상을 받았고 2018년 시집 《눈물 이후》를 출간했다.
 
6인 공동시집 《시골시인-K》.
  ‌‌다리가 없는 그의 겨드랑이에 나무날개를 끼운다
  무너진 자세를 고치며 목발로 나서는 밤길
  설화는 달밤에 시작된다
  외딴집 마당에 새도 사람도 아닌 것이 어른거리던 날
  마을에는 인면조를 보았다는 소문이 돌았고
  소문의 꼬리는 그 집 가까운 골목에서 끝이 났다
 
  -권상진의 ‘나무날개’ 일부
 
 
  자기가 삼킨 눈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안다
  딱 그의 키만큼 울고 갔다
  염장이가 그를 슬픔과 함께 단단히 묶고
  눈물이 새 나가지 않도록 오동나무 관으로 경계를 두르는 동안
  죽음을 빙 둘러선 사람들은
  그에게 흘러든 어떤 구름에 대해 증언하거나
  자신의 몸에 눈금을 그어 보이는 시늉을 했다
 
  -권상진의 ‘당신의 바깥’ 일부
 
 
  다섯 평 원룸에 삼대가 삽니다
  서로 살을 맞대는 일이
  이 방에선 오히려 도덕적입니다
  (중략)
  어쩌다 일요일
  할머니의 낮잠이 가로로 눕습니다
  아이들 숙제는 세로로 엎드리고
  엄마는 하릴없이 동네를 걷습니다
  경계는 언제나 접점입니다
 
  -권상진의 ‘테트리스’ 일부

 
  《시골시인-K》에 실린 석민재, 유승영, 서형국, 권수진 시인의 작품도 손색이 없다. 가만히 보니 ‘시골시인’을 가장한 프로 시인꾼이다. 더 무섭다. 이들의 시가 중앙문단에서 폭죽을 터뜨릴 것이 분명하다. ‘잘 가요, 젊고 예쁜 도성안 시인들이여’라는 예언이 적중할 날을 손꼽아 본다.
 
 
  ‘시골시인’ 하면 떠오르는 白石
 
백석 시선집.
  ‘시골시인’의 범주나 정의가 어떻게 내려질지 모르나 기자에게 ‘시골시인’ 하면 딱 한 시인, 백석(白石·1912~1963)이 떠오른다. 국수 면발을 뽑아내듯 낯선 평안도 토속어(평안북도 정주가 시인의 고향이다)로 시를 썼다. 어느 편을 읽어도 리얼리즘의 승리, 착한 영혼의 겸손함이 느껴진다.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 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모 고모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모 고모의 딸 승녀
  아들 승동이
 
  -백석의 ‘여우난골족’ 부분
 
  (* 솜솜: 얕게 얽은 자국이 듬성듬성 있는 모양/ 포족족하다: 빛깔이 칙칙하고 파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매감탕: 엿을 고거나 메주를 쑨 솥을 씻은 물)

 
  시 ‘여우난골족’에서는 전지적 시점에 가까운 시인의 탁월한 관찰력이 느껴진다. 집요하고 정확하게 정보를 나열해 이끌어가는 솜씨는 마치 대목수가 촘촘히 못을 박는 손길처럼 매끄럽다. 백석은 일본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1924년 귀국해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첫 작품인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백석은 1939년 말 신문사 출판부의 《여성》에 다니다 퇴직하고 만주로 떠났다. 40대 후반에는 북한 당국이 원하는 시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양강도 삼수군 오지로 쫓겨나야 했다.
 

  산(山)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 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려 조을던 무너진 성(城)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이
  한울빛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백석의 ‘정주성(定州城)’ 전문

 
  시인은 정주성을 찾아갔다. 무너진 성터, 헐다 남은 성문을 보며 일제에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을 떠올렸을 것이다. ‘반딧불’ ‘파란 혼’ ‘한울빛’ ‘청배’로 연결된 시어 속에 꿈틀거리는 민족혼이 느껴진다.
 
 
  진짜 ‘시골시인’ 윤이산
 
전북 정읍의 시골에 폭설이 내렸다. 함박눈이 그린 수묵화 같다. 사진=조선일보DB
  기자가 발견한 ‘시골시인’ 중에 윤이산 시인이 있다. 작년 첫 시집 《물소리를 쬐다》(2020, 실천문학)를 펴냈다. 시집 속 시어들이 저마다 소라껍데기 같은 울림을 달고 있다. 이 시어들은 ‘거의 죽을 지경까지 가도록 앓다가 막 회복되어 나온 맑은 얼굴’(시인 김기택) 같다.
 
  윤 시인은 1961년 경주 출신이다. 2009년 ‘인터넷 뉴스제주’의 신춘문예에 시 ‘선물’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완벽하게 ‘시골시인’이다.
 
  늙은 두레상에 일곱 개 밥그릇이
  선물처럼 둘러앉습니다
  밥상도 없는 세간에
  기꺼이 엎드려 밥상이 되셨던 어머닌
  맨 나중 도착한 막내의 빈 그릇에
  뜨거운 미역국을 자꾸자꾸 퍼 담습니다
  어무이, 바빠가 선물도 못 사 왔심니더
  뭐라카노? 인자 내, 귀도 어둡다이
  니는 밥 심이 딸린동 운동회 때마다 꼴찌디라
  쟁여 두었던 묵은 것들을 후벼내시는 어머니
  홀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비바람이 귓속을 막았는지
  추억으로 가는 통로도 좁다래지셨습니다
  몇 년 만에 둥근 상에 모여 앉은 남매는
  뒤늦게 당도한 안부처럼 서로가 민망해도
  어머니 앞에선 따로 국밥이 될 수 없습니다
  예전엔 밥통이 없어가 아랫목 이불 밑에 묻었지예
  어데, 묻어둘 새나 있었나 밥 묵드키 굶겼으이
  칠남매가 과수댁 귀지 같은 이야기를
  손바닥으로 가만가만 쓸어 모으다가
  가난을 밥풀처럼 떼먹었던,
  양배추처럼 서로 꽉 껴안았던 옛날을 베고
  한잠이 푹 들었습니다
 
  문밖에는 흰 눈이 밤새
  여덟 켤레 신발을 고봉으로 수북 덮어 놓았네요
  하얗게 쏟아진 선물을 어떻게 받아얄지 모르는 어머니
  아따, 느그 아부지 댕겨가신 갑따
  푸짐한 거 보이, 올핸 야들 안 굶어도 되것구마이
 
  미역국처럼 뜨끈한 목소리를 싣고
  일곱 남매가 또 먼 길을 떠나는 새벽
 
  -윤이산의 ‘선물’ 전문

 
  굳이 시골 출신이 아니더라도 50대 이상 세대라면 비슷한 경험이 있으리라. 도시에서 자랐거나 요즘의 2030세대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지만 시 속에 공감하는 코드가 있지 않을까? ‘손은 손목을 잡을 수 없고/ 이마는 뒤통수를 지킬 수 없고/ 오른 눈알은 왼 눈알을 보지 못하는’(시 ‘안개지대-일탈’ 中) 시대라지만 서정시에는 시대·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의 힘이 숨어 있다.
 
윤이산의 첫 시집 《물소리를 쬐다》.
  또록또록 야무지게도 영근 것을 삶아놓으니
  해토(解土)처럼 팍신해, 촉감으로 먹습니다
  서로 관련 있는 것끼리 선으로 연결하듯
  내 몸과 맞대어 보고 비교 분석하며 먹습니다
  감자는 배꼽이 여럿이구나, 관찰하며 먹습니다
  그 배꼽이 눈이기도 하구나, 신기해하며 먹습니다
  호미에 쪼일 때마다 눈이 더 많아야겠다고
  땅 속에서 캄캄하게 울었을,
  길을 찾느라 여럿으로 발달한 눈들을 짚어가며 먹습니다
  용불용설도 감자가 낳은 학설일 거라, 억측하며 먹습니다
  나 혼자의 생각이니 다 동의할 필요는 없겠지만
  옹심이 속에 깡다구가 들었다는 건
  반죽해 본 손들은 다 알겠지요
  오직 당신을 따르겠다*는 그 일념만으로
  안데스 산맥에서 이 식탁까지 달려왔을 감자의
  줄기를 당기고 당기고 끝까지 당겨보면
  열세 남매의 골병든 바우 엄마, 내 탯줄을 만날 것도 같아
  보라 감자꽃이 슬퍼 보인 건 그 때문이었구나,
  쓸쓸에 간 맞추느라 타박타박 떨어지는
  눈물을 먹습니다
 
  -윤이산의 ‘감자를 먹습니다’ 전문
 
  (* 오직 당신을 따르겠다: 감자꽃의 꽃말)

 
  시인은 감자를 먹으며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듯 식탁에 올려지기 이전의 감자를 추적하는 시인의 상상력은 어느덧 ‘열세 남매의 골병든 바우 엄마’로 이어지다 ‘내 탯줄’로 연결된다. 그러곤 ‘감자꽃이 슬퍼 보인 건 그 때문이었구나’ 하고 탄식한다. 엄마 생각에 눈물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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