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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사상 크로스 〈16〉

상앙과 애덤 스미스 3

法治型 인간의 自治 사회 꿈꾼 상앙

글 : 임건순  동양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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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것은 백성들 각자의 집에서 판단하기 때문이며,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군주가 판단하기 때문”이라며 自治 강조
⊙ 法官·法吏 두어 백성에게 法 교육·홍보… 백성이 법을 모르는 것은 공무원들 책임
⊙ “관원과 백성 모두 법령을 숙지… 감히 不法的 수단으로 백성을 대할 수 없다”
⊙ 권리와 자신이 일군 富를 지킬 수 있게 해줘야 백성이 잘살고 국력도 신장될 수 있다

임건순
1981년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조선일보》 ‘밀레니얼 톡’ 칼럼니스트 / 저서 《한비자, 법과 정치의 필연성에 대해서》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등
법관 임용식 장면. 상앙은 법을 백성들에게 숙지시키고, 그렇게 해서 길러진 法治型 인간의 自治를 理想으로 생각했다. 사진=조선DB
  “대도(大道)가 행해지는 세상은 천하를 만인(萬人)이 공유(共有)한다. 현능(賢能)한 사람을 뽑아 관직을 맡겨 신뢰와 화목을 다진다. 사람들은 자기의 부모만을 부모로 섬기지 않고, 자기의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다. 노인들은 편안히 여생을 보낼 곳이 있으며, 장성한 사람들에겐 일자리가 있고, 어린이에겐 모두 잘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부모, 폐인,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모두 보호와 양육을 받는다. 남자는 모두 자기 직분(職分)이 있고 여자는 모두 자기 가정이 있다. 재화(財貨)가 땅에 버려지는 것은 싫어하지만 반드시 자기만 사사로이 독점(獨占)하려 하지 않으며, 힘이 자기로부터 나오지 않음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자기만을 위해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 음모나 도적질과 전쟁 따위가 일어날 염려가 없으므로 바깥문을 잠그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를 대동사회(大同社會)라 한다.” 《예기(禮記)》 예운(禮運)편
 
  전국(戰國) 말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텍스트, 《예기》 예운편에 나온 ‘대동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유가(儒家)가 바라던 궁극적 이상세계(理想世界)의 모습인데 적지 않게 묵가(墨家)의 지분도 들어갔다고 한다. 전국시대 말미, 통일 국가의 수립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유가와 묵가 사상이 결합해 제시한 통일국가의 청사진이 대동사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유가나 묵가가 아닌 법가(法家)가 생각한 이상적 세계는 상앙(商鞅)의 텍스트 《상군서(商君書)》 맨 마지막 편인 ‘정분(定分)’편에 드러나 있다. 정분편에서 묘사한 법가의 이상적 세계를 보면 그들의 자유주의적 세계관이 강하게 드러난다. 유가가 대동사회라면 법가의 이상은 바로 자치(自治)사회라 할 수 있다. 상앙의 생각에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전제는 백성 각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고 움직이는 것이다. 부국강병을 추구한다고 해서 섣불리 국가가 백성의 생활에 여기저기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국가의 간섭을 좋아하지 않았다.
 
 

  각자가 판단의 主體가 되어야
 
  “나라를 다스림에는 몇 가지 형태가 있다. 백성의 집에서 옳고 그름이 판단되는 나라는 천하에서 왕 노릇 하며, 관리에 의해 옳고 그름이 판단되는 나라는 강하게 되고, 군주에 의해 옳고 그름이 판단되는 나라는 약해지고 만다.” 《상군서》 설민(說民)편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것은 백성들 각자의 집에서 판단하기 때문이며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군주가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아래의 백성들이 판단하는 것을 귀히 여겨야 한다. 열 개의 마을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나라는 쇠약해지고 다섯 개의 마을에서 판단하는 나라는 강해진다.” 《상군서》 설민편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각자가 판단의 주체(主體)가 되어야 한다. 계속해서 상앙이 주장한 바이다. 이 일을 할지 말지, 이 사업을 벌일지 말지 일일이 판단을 정부에 맡기고 관료들에게 허가를 받으면 국력(國力)은 성장할 수 없으니 나라가 백성과 경제주체들의 판단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선택과 판단은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그런데 각자 판단의 주체가 그러기 위해선 먼저 무엇이 전제되고 선행(先行)되어야 할까? 상앙은 단순히 각자가 판단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만 고집하지 않았다. 법 자체의 속성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법의 교육에 대해 고민했고, 궁극적으로 법치형(法治型) 인간으로 백성들이 변하기 바랐다. 우선 상앙은 명법(明法)을 말했다. 법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이 절대 어렵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聖人)은 천만 사람의 상황으로 천하를 다스린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자가 된 이후에야 알 수 있는 것을 법령으로 삼을 수 없으니, 백성들이 다 지혜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이 된 이후에나 아는 것을 법령으로 삼을 수 없으니, 백성들이 다 현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은 법령을 제정할 때에 반드시 그 법령을 분명하고도 누구나 알기 쉽도록 하고, 개념을 확정하여, 어리석은 사람이든 지혜로운 사람이든지 간에 두루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상군서》 정분편
 
 
  法 전문 관리
 
  법이 어려워선 안 된다. 눈높이가 백성들에게 맞아야 한다. 상앙은 대부분의 백성에게 수용될 수 있게끔 법을 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법이 이해하기 어렵고 수용이 쉽지 않다면 어떻게 백성이 법을 내면화(內面化)시키고 법을 기준으로 자신의 일을 스스로 다스리는 판단의 주체가 되겠는가. 같은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韓非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법, 수용될 수 있는 법을 역설했다. 그런데 법이 쉬운 것만으로는 안 된다. 교육이 필요하다. 한비자와 달리 상앙은 법의 교육까지 주장했는데, 법에 대해 뭇 백성이 알도록 국가가 가르치자고 한 것이다.
 
  법을 만드는 주체는 군주로 대표되는 국가다. 그런데 군주와 백성 간에는 직접적인 일대일 대응은 불가능한 일이다. 법을 만들 때마다 개정할 때마다 왕이 일일이 백성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설명하고 이해시켜줄 수 없는 일이다. 상앙은 법 전문 공무원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법령을 제정하면 관리를 두어야 합니다. 자질 면에서는 법령이 말하는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람으로, 천하의 법령을 주관할 만한 장관으로 삼을 만한 자이면 천자(天子)에게 올려 보고합니다. 천자가 각기 그들에게 법령을 주관하게 하면, 그들은 모두 궁전 섬돌로 내려와 임명을 받고 출발해서 벼슬을 맡습니다.
 
  각기 법령을 주관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주관하는 법령에서 말하는 바의 조문을 시행할 것을 감히 잊어버리면, 각기 자기가 잊어버린 법령의 조문으로 처벌받게 합니다. 법령을 주관하는 관리가 옮겨가거나 죽으면 즉시 다른 사람에게 법령에서 말하는 바의 내용을 배우고 읽게 하며, 그를 위해 규정을 만들어서 수일 내에 법령에서 말하는 내용을 알게 하도록 합니다. 규정에 맞지 않으면 이에 상응하는 법령을 제정해서 그를 처벌해야 합니다. 감히 법령을 삭제하거나 한 글자 이상 빼거나 더하는 일이 있으면 사형을 내리고 사면해주지 않습니다.” 《상군서》 정분편
 
 

  法官·法吏는 판·검사가 아니라 교육자
 
  법을 만들어냈다, 새로이 개정했다. 그러면 일반 관리들, 일선 관리들이 모두 법의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성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새 법을 이해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관리와 백성들, 특히 백성들이 법을 빠르게 수용할 수 있을까? 교통과 통신, 미디어, 의무교육도 없던 시절에 말이다.
 
  상앙은 교통이 열악하고 매체가 없던 당시 법 전문 관리의 양성과 파견을 대안(代案)으로 밀었다. 법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공무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앙은 법관(法官)과 법리(法吏)로 나누어 설명했다. 법리는 법관보다 낮은 계급으로 이들은 모두 국가에 의해 양성되고 군주가 직접 고용하는 법 전문가들이었다.
 
  상앙은 법관과 법리의 자질에 대해 특별한 자격요건을 따로 설정하지 않았다. ‘법령의 내용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자’이면 족하고 ‘천하의 법령을 주관할 만한 장관으로 삼을 만한 자’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법을 교육하는 사람일 뿐이지 오늘날 판사와 검사같이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며, 재량권(裁量權)을 가지고 운용하는 주체로서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앙이 생각하기에 법관과 법리의 역할은 제한적이어야 한다. 법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궁극적으로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상앙이 생각하는 법 전문 공무원은 선을 넘어서서 해석하고 판단해 백성의 일에 개입하고 간섭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전달자이자 교육자로 한정했다.
 
  “천자는 법관 세 명을 둡니다. 궁전 안에 한 명의 법관을 두고 감찰(監察)을 맡은 어사대(御史臺)에 법관 한 명과 부속관원을 두고 승상부에 법관 한 명을 둡니다. 각 제후국(諸侯國)과 군(郡)과 현(縣)에 모두 법관 한 명과 부속 관원을 둡니다. 이들 모두 조정에 있는 법관의 명을 따릅니다. 각 군과 현, 제후는 일단 조정에서 보낸 법령을 접수하면 그 법령을 학습해야 합니다.” 《상군서》 정분편
 
  법관은 중앙에 3명을 둔다. 제후국과 지방 군·현에도 각각 1명의 법관을 둘 수 있었는데 이 지방 법관과 법리들은 모두 중앙에 있는 군주의 통제를 받았다. 법 전문 관리를 군주가 직접 임명하여 지방으로 보내는데 이들이 백성의 법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면 백성에게 법을 알리고 교육한다. 홍보를 한다. 이들은 관리와 백성들, 특히 백성에게 법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했다. 상앙은 법을 단순히 성문화(成文化)시켜 공포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법 전문 공무원을 만들어내 백성에게 법의 교육을 의무화하고자 한 것이다.
 
 
  백성들이 法을 모르는 건 官吏의 책임
 
상앙
  “법령을 주관하는 관리가 일러주지 않는 상태에서 그들이 죄를 범했을 경우 그것이 법령에서 말한 바의 조문에 있었다면 모두 관리와 백성들이 물었던 법률에서 규정한 죄명으로 각각 법령을 주관하는 관리를 처벌합니다.” 《상군서》 정분편
 
  법관을 전국으로 파견해 법의 교육과 홍보를 담당케 하는데, 홍보와 교육이 미비했을 경우 백성이 해당 법률을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도록 했다. 백성이 아니라 제대로 홍보와 교육을 하지 않는 법 전문 공무원에게 강하게 책임을 물었다. 상앙은 백성들이 법을 몰라서 어기고 범하게 되고, 그래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했다. 법을 어겨서 벌을 받고 불이익을 당하면 개인만이 큰 손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에 국가도 큰 손해를 보는 일인데 그런 낭비가 없도록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법 전문 공무원이 정확히 전달하고 홍보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게 강제했다
 
  “여러 관리와 백성들이 법령을 주관하는 관리에게 법령에서 말하는 내용을 묻는 경우 모두가 각각 그들이 본래 물어보고자 하였던 법령으로 뚜렷하게 일러줍니다. 그리고 각각 1척(尺) 6촌(寸) 되는 부절(符節)을 만들어 연(年), 월(月), 일(日), 시(時)와 물은 법령의 조문을 밝혀 기록하고 질문하였던 관리나 백성들에게 일러줍니다.” 《상군서》 정분편
 
  백성들에게 법을 홍보하고 교육하는데, 백성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교육만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법관과 법리에게 접근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점에 대해 질문하며 언제든 능동적 재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백성이 찾아오면 이 법 전문가들은 법령에 대한 물음에 성실히 답변해야 했다. 그리고 묻고 답한 것을 정확히 기록해두어야 했다.
 
  “질문에 회답할 때에는 부절의 왼쪽 자른 부분을 법령을 물어온 관리나 백성에게 건네주고 법령을 주관하는 관리는 부절의 오른쪽 자른 부분을 나무 상자 속에 신중히 넣어 이를 방 안에 보관하고 법령을 주관하는 장관의 도장을 찍어서 봉해둡니다. 그렇게 하면 그 관리가 죽는 일이 있더라도 문서에 기록된 내용대로 일을 처리합니다.” 《상군서》 정분편
 
  법에 관해 질문을 받으면 언제든 성실히 답을 해야 했고, 그것을 기록해두어서 모아두도록 했다. 판례(判例)의 축적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축적한 것들이 선례(先例)가 되어 새로운 유효한 기준이 되는 것인데 진나라가 이렇게 법률과 관련해서 응답한 것들을 남겨두었고, 실제 〈수호지진묘죽간(睡虎地秦墓竹簡)〉에 ‘법률답문(法律答問)’으로 남아 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백성들
 
  “관원과 백성들 가운데 법령을 알고 싶은 자는 모두 법관에게 문의할 수 있습니다. 천하의 관원과 백성들 가운데 법령을 모르는 자가 없는 이유입니다. 관원과 백성들 모두 법령을 숙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까닭에 감히 불법적(不法的)인 수단으로 백성을 대할 수 없습니다.” 《상군서》 정분편
 
  상앙이 법의 교육을 중시한 이유가 잘 드러나는 듯하다. 그는 백성들이 단순히 몰라서 법을 어겨 처벌받는 일이 없게끔 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법을 명확히 알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도 교육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언제든 백성들이 부담 없이 법 전문 공무원에게 찾아가 질문하는 것을 보장하고 독려한 것이다. 백성이 법을 알아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토호(土豪), 유지(有志), 귀족들이 함부로 자신을 괴롭히거나 자기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기원전(紀元前)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참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로스쿨이 생기고 변호사 수가 크게 늘어난 오늘날에도 보통 사람들에게 법률 서비스의 문턱은 낮지 않다. 문턱은 여전히 높게 느껴지고 법률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을 써야만 한다. 그런데 상앙은 그 아득한 옛날에 이렇게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끔 제도화해놓았다. 누구든 자기 것을 지키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백성들이 법을 알고 있기에 함부로 관리, 토호들이 착취와 수탈을 저지를 수 없다. 백성은 관리의 행위가 국법에 저촉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있고 관련해서 궁금하다면 언제든 법 전문 공무원에게 질문해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상앙은 적법(適法) 여부를 확인하면 관리의 죄를 법 전문 공무원에게 직접 백성이 제소(提訴)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법을 가지고 귀족과 토호, 관리들의 억압과 횡포에서 백성을 지키고자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백성이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돕고자 한 것이다. 백성을 보호해주기보다는 스스로 능동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법가의 법치란 게 얼마나 귀족 세력과 기득권(旣得權) 세력의 이익에 반하는지, 그리고 일반 백성과 경제생활자들의 편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법가가 전제권력의 옹호자? 귀족 계층과 기득권 계층의 옹호자? 그렇지 않다. 법가는 백성 입장에 서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왜 법을 알아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보통 사람이기 때문이다. 강자(强者)는 법이 아니고도 수단이 많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힘이 없기에 법을 더 잘 알아야 한다. 기득권과 거리가 멀수록 법을 알아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법은 강자의 편이라는 인식이 있다. 법이라는 것이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지배층의 의사(意思)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많이 말한다. 그런 말과 인식을 100%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법을 만들 때 아무리 강자들의 의사가 반영된다고 해도 일단 만들어지면 법이 무조건 강자의 편인 것은 아니다. 만들어져 공포된 이상 그 법에는 강자도 구속(拘束)된다. 그리고 약자(弱者)들이 그 법을 가지고 강자에 대항할 수 있다. 약자들이 법을 명확히 알면 부당한 폭력과 억압에 맞서는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 준법투쟁(遵法鬪爭)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상앙은 법의 교육을 통해 백성들을 무장시키고자 한 것이다.
 
 
  私有財産 보호 강조
 
  상앙은 권리와 자신이 일군 부(富)를 지킬 수 있게 해줘야 백성들이 잘살고 국력도 신장될 수 있다고 보았다. 법의 교육에 대한 상앙의 주장이 실린 《상군서》 정분편에는 사유재산(私有財産)의 보호를 강조하는 말들이 있다. 백성이 자기 것을 지킬 수 있게 국가는 도와야 한다. 백성들이 자기 재산을 지키면서 늘려갈 수 있어야 국가 역시 부유해지고 강해지는 것이다.
 
  “토끼 한 마리가 달려가는데 백 사람이 뒤를 쫓는 것은 토끼를 나누어 백 사람의 몫으로 만들 수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의 것이라는 명분(名分)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릇 토끼를 파는 사람들이 시장에 가득 차 있는데도 도적이 감히 그것을 훔치지 못하는 것은 토끼가 누구의 것이라는 명분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명분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면 요(堯)·순(舜)·우(禹)·탕(湯)이라 할지라도 또한 모두 마치 내닫는 말처럼 그것을 뒤쫓을 것이지만, 명분이 이미 정해져 있으면 탐욕스러운 도둑일지라도 그것을 취하지 않는다.” 《상군서》 정분편
 
  여기서 상앙이 말하는 ‘명분’은 유가가 말하는 도덕과 윤리가 아니다. 영역과 경계이다. 내 것, 남의 것, 그 사람의 것,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각자의 영역으로서, 법으로써 영역과 경계를 규정하고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백성들 하나하나가 성실해지고 부지런해지며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준엄한 국법이 있고, 백성은 그 법을 배워서 알고 있으며, 그 법을 통해 완전히 내면화해서 백성이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 상앙은 ‘자치’라고 말했다.
 
 
  백성들에게 법을 알게 하고자 한 진정한 이유
 
  “성인이 법령을 제정하면 반드시 백성에게 분명하게 보이고 알기 쉽게 하며 명분을 정확히 한다. 어리석거나 똑똑한 사람 모두 법규를 이해할 수 있다. 법관을 두고 법을 주관하는 관리를 두어서 그들이 천하 사람들의 스승 역할을 하게 하여 만민이 무지(無知)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따라서 성인이 천하를 맡으면 처벌받아 죽게 되는 경우가 없는데 이것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성인이 법령을 실행할 때 분명하게 하며 알기 쉽게 하고 또 법관과 법리를 두어서 인민의 스승 역할을 하게 하여 법령을 숙지하도록 안내하기 때문이다. 만민은 모두 무엇을 피하고 어떻게 행복을 얻는지 숙지하고 있으므로 하나같이 알아서 독자적으로 처리한다.” 《상군서》 정분편
 
  백성들에게 법을 알게 하고자 한 진정한 이유가 잘 드러나 있다. 법의 교육을 통해 추구하고자 한 진짜 목적이 위에서 보인다. 백성이 법을 알아 자신의 것을 지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처리하는 주체가 되기 희망했던 것이다. 백성이 교육을 통해 법을 완전히 내 안에 넣고 내 안에 수용된 법을 신뢰하고 준법(遵法)의식으로 무장한다. 그러면서 타인(他人)이나 국가 기관의 관리·감독 없이 누구나 스스로 적법한 행위를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처리하는 법치형 인간이자 ‘자율(自律)의 개인’이 된다. 상앙은 거기까지 희망했던 것이다.
 
  “정치가 분명하면 백성들의 옳고 그른 판단이 군주와 같고 정치가 어두우면 군주와 달라진다. 백성들의 판단이 군주와 같으면 정치적 명령이 실행되고 다르면 실행되지 않는다. 정치적 명령이 실행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실행되지 않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상군서》 설민편
 
 
  “모두 힘써 스스로를 다스려…”
 
  정치가 분명하고 법치가 실행되면 왜 백성과 관리, 군주의 판단이 서로 같아질까? 간단하다. 모든 계층의 사람이 똑같이 법을 판단의 도구로 삼기 때문이다. 똑같이 법을 가지고 판단 기준으로 삼기에 행위 기준은 같아질 수밖에 없다. 행위가 같으니 늘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안심한 채 생업에 종사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 미래를 건설해나갈 수 있게 된다. 백성들이 법을 잘 알게 되어 모두가 법을 기준으로 판단해서 살게 되면 누릴 수 있는 삶이 그러하다. 스스로 적법한지 아닌지 행동으로 옮겨도 될지 말아야 할지 잘 알고 있으니 자신의 판단을 믿고 실천할 수 있다. 그러니 왕의 지도와 관리의 감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외부의 통제와 간섭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백성들은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상앙은 법의 교육을 통해 그런 방향으로 궁극적으로 백성들이 바뀌어나가길 기대한 것이다.
 
  단순히 부국강병이 상앙의 이상이 아니다. 백성들이 법치형 인간으로 변하면서 자율적 판단 주체가 되고 그러면서 자치가 이루어지는 천하를 꿈꾼 것이다. 그 천하에서 백성들은 자신을 자신만이 다스려간다.
 
  “천하의 관리와 백성들이 비록 현명하고 선량하며 말 잘하고 총명하다 할지라도 말 한마디를 하여 법을 왜곡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비록 천금(千金)을 가지고 있다 해도 능히 한 푼 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고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들이 모두 일어나서 선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이며, 모두가 힘써 스스로를 다스려 공공의 일을 받들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힘써 스스로를 다스린다고 한다. 나를 남이 다스려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다스릴 뿐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삶을 영위해나가는 것이 바로 법치형 인간들의 자치다. 모두가 법의 기준대로 행동한다. 모두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동하고 자신의 이익을 키워나간다. 함부로 법을 비틀어 타인을 속이고 타인의 것을 뺏을 수 없다. 그 안에서 모두가 자신을 자신이 다스려나간다. 관(官)의 간섭과 개입, 관리감독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반드시 법령을 위해서 법관을 두었고, 관리를 두어 천하의 스승이 되도록 하였으니 이것이 명분을 확정 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명분이 확정되면 큰 사기꾼들도 곧아지고 믿음을 지키며 백성은 누구나 성실해져서 저마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게 됩니다.”
 
  학교의 선생님이, 집안과 동네의 어른들이 스승이 되는 게 아니다. 법이 스승이 된다. 법을 선생님 삼아 스스로를 다스리게 된다고 했는데 이제 상앙의 법치, 법의 교육을 통해 만들고자 한 궁극적인 인간상,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에 대해 완전히 알 수 있을 듯싶다.
 
 
  학교에서부터 생활 관련 법 가르쳐야
 
  자, 상앙의 포부를 제대로 알아보았는데 이제 그를 단순히 부국강병주의자(富國强兵主義者)라고만 한정하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 아닐까? 국력의 극대화(極大化)만을 주장한 국가지상주의자(國家至上主義者)가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를 다스리는 자치를 꿈꾼 사상가, 어쩌면 장자(莊子)나 노자(老子)보다도 자유를 사랑한 자유주의자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상앙이 한비자보다도 자유주의 경제학파 사상가들과 궁합이 맞아 보이는 것은 이렇게 자율적 판단과 행위의 주체로서 개인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자치라는 것이 특히 경제주체들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누구든 법을 알고 법을 내면화시켜 스스로 다스리는 자치사회, 상앙이 말하는 그런 이상사회를 보면 역시나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아쉬운 점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먼저 학생들에게 법에 대한 교육이 부실하다는 게 매우 아쉬운 일로 다가온다. ‘학교에서 노동 관련 법, 금융 관련 법, 주택·부동산 관련 계약법을 교육해 속는 일 없고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고, 당당한 경제주체로서 자립하는 데 돕도록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봤다.
 
  좋은 점수 받아서 좋은 대학에 가도 전월세(傳月貰) 관련 계약서 하나 볼 줄 모르고 경제와 금융 관련한 법에 무지한 채로 졸업한다면 어찌 제대로 홀로 서서 자신을 다스려갈 수 있을까 싶다. 법에 무지하니 치러야 할 비용이 많아서 청년들에게도 사회에도 손해가 아닌가. 중·고등학교 그리고 이제는 사실상 고등교육이 아니라 보편교육이 되어버린 대학에서도 기본 법과 관련한 교육이 많아지고 충실해져야 할 것이다. 모두가 변호사처럼 법을 잘 알 수는 없겠지만 꼭 필요한 법률만큼은 공부해서 당당한 판단의 주체로 자치의 주체로 서야 하지 않을까?
 
 
  近代는 法治型 인간의 自治사회
 
자치형 인간을 꿈꾸었던 상앙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문재인 정부의 구호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본래 근대(近代)는 상앙이 말한 대로 법치형 인간의 자치사회가 아닐까 싶다. 시민이 도덕과 종교가 아니라 법을 스승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회가 근대이고, 법의 테두리에서 자기 책임하에 스스로를 다스려가는 사회가 근대 아닐까?
 
  우리가 법치형 인간으로 거듭나야만 ‘백성’이 아니라 ‘시민’인 것이다. ‘타치(他治)’가 아니라 ‘자치’를 할 수 있어야 백성이 사는 사회가 아닌 시민이 사는 근대사회이다. 상앙이 말하는 자치는, ‘지금 우리가 진정한 근대사회이고, 우리가 백성이 아닌 시민으로 살고 있는지’ 묻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제대로 근대를 달성하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문재인(文在寅) 정부 출범 이후 조선(朝鮮)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런 우리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자치라는 것이 우리의 이상과 목표가 되는 것은 어떨까? 진짜 근대를 달성하고 제대로 된 시민사회를 만들고 사농공상(士農工商) 질서를 부수며, 경제인과 상공인(商工人)들을 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앙이 말한 자치가 우리의 목표가 되어도 좋을 듯싶다.
 
  아직도 떼쓰기와 응석이 통하는 사회, ‘판단도 책임도 내가’라는 성인다움이 없는 사회, 공공부문이 지나치게 비중이 높고 많은 민간부문을 통제하려는 사회, 사유재산이 제대로 보호받는지 의심스러운 사회, 코로나19라는 역병(疫病)을 핑계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된 동의의 절차도 없이 심각하게 제한하는 사회…. 그런 것을 생각하면 자치라는 이상이 우리의 목표가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법을 아는 시민, 법을 신뢰하는 국민, 신뢰할 수 있는 법의 영역과 테두리에서 보호받는 상인과 경제인들, 간섭과 통제에 있어 선을 넘지 않는 국가권력 등. 늘 스스로 주인으로 살면서 나 자신을 내가 다스려가는 삶, 진정한 자치가 우리 사회에서 이룩되어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부(富)와 번영을 일굴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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