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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26〉 헤밍웨이의 〈미치괭이 크리스티안〉

“삶의 갖가지 비밀을 알던 미치괭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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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현재의 행복을 음미하며 주눅들지 않는다’(이시쿠로 유키코)
⊙ 보들레르의 1857년 作 〈고양이〉, 이장희의 1924년 作 〈봄은 고양이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고양이. 생전 그는 많은 고양이를 길렀고 사랑했다.
  미치괭이 크리스티안
 
  미치괭이 크리스티안이라는 고양이가 있었네.
  짝짓기할 만큼 명이 길진 못했는데
  명랑한 마음씨에 젊고 아름다웠고
  삶의 갖가지 비밀을 알고 있었지.
  아침을 먹으러 제때제때 나타났고
  우리 발등을 우다다 밟고 공을 쫓았어.
  폴로 조랑말보다 더 빠르고
  한순간도 근심을 몰랐다네.
  녀석과 함께 종종거리던 그 털구름 꼬리.
  밤처럼 까맣고 빛처럼 빨랐던 녀석.
  그래서 가을에 나쁜 고양이들이 녀석을 죽였다네.
 
  (1946년경 아바나에 위치한 자택 ‘쿠바. 킹카비히아’)
 
  There was a cat named Crazy Christian
  Who never lived long enough to screw
  He was gay hearted, young and handsome
  And all the secrets of life he knew
  He would always arrive on time for breakfast
  Scamper on your feet and chase the ball
  He was faster than any polo pony
  He never worried a minute at all
  His tail was a plume that scampered with him
  He was black as night and as fast as light.
  So the bad cats killed him in the fall.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크리스티안.
  쿠바산 검은 새끼 고양이 ‘크리스티안’은 헤밍웨이(Ernest Hemingway·1899~1961)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생전 헤밍웨이의 회고에 따르면 이 고양이는 빛처럼 빨랐고, 꼬리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마치 삶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듯 헤밍웨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헤밍웨이는 ‘행복에 대해서라면 어쩌면 고양이가 한 수 위’라는 이야기를 변주(變奏)로 한 다양한 글을 썼다.
 
  정말 고양이는, 헤밍웨이의 표현대로, 삶의 비밀을 간파한 신비로운 동물일까. 최근 출판된 《오늘은 고양이처럼 살아봅시다》(조선앤북 간행)를 읽어 보았다. 저자인 이시쿠로 유키코(石黑由紀子)는 고양이와 개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한 책을 여러 권 펴낸 반려동물 전문 작가다.
 
  이시쿠로의 오랜 관찰에 따르면, 고양이는 기뻤던 일만 기억하며 좋아하는 마음을 억누르지 않는다. 기쁨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기회(멋잇감)를 놓치지 않는다. 현재의 행복을 음미하며 주눅들지 않고 끝까지 도전한다. 때론 타이밍을 기다리고 때론 진심을 다해 싸운다. 발버둥 치지 않으며 나름 살아가는 힘을 갖고 있다. 이런 고양이의 갖가지 미덕을 헤밍웨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헤밍웨이닷컴에 소개된 고양이. 헤밍웨이가 즐겨쓴 타자기 옆에 선 고양이.
  20세기 위대한 작가인 헤밍웨이는 평생 몸으로 부딪쳐 가며 진실을 찾고자 했던 작가였다. 그의 인생은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것들로 넘쳐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를 두고 ‘관념의’ 작가가 아닌 ‘행동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가 보다. 생전 그의 관심사는 다양했다. “전쟁, 사냥, 투우, 낚시, 모험, 여자, 섹스, 술, 고양이, 죽음…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진실하게 사는 것, 그리고 그렇게 쌓아 올린 진실의 토대 위에 진실한 문학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어니스트의 산문 스타일은 마치 시 쓰기와 같이 ‘생략’과 ‘절제’로 압축할 수 있다. 최근 헤밍웨이의 시집 《거물들의 춤》(민음사 刊)을 번역, 출간한 황소연씨는 그 이유를 “기자 시절부터 몸에 밴 글쓰기 습관이 일부분 작용했겠지만, 그가 말보다 행동을 선호하는 남자들의 본성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거물들의 춤》에 실린 시 〈시대는 요구했다〉를 보자.
 
헤밍웨이의 국내 번역 시집 《거물들의 춤》.
  시대는 우리에게 노래하라고 요구하고는
  우리의 혀를 잘라 버렸다.
  시대는 우리에게 거침없으라고 요구하고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시대는 우리에게 춤추라고 요구하고는
  우리를 강철 바지에 욱여 넣었다.
  그렇게 시대는 기어이 뜻대로
  요구한 개짓거리를 손에 넣었다.
 
  - 헤밍웨이의 〈시대는 요구했다〉 전문
  (1922년경, 파리)

 
  이 시는 20세기 초 자유를 억압하던 유럽의 전체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헤밍웨이는 〈시대는 요구했다〉에서처럼 형용사와 부사 대신 보통명사와 서술동사로 표현된 건조하고 깔끔한 문장을 좋아했다. 제한된 어휘들이 어우러져 탄생한 정제된 표현,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내포하는 암시성은 많은 평론가들이 그의 문체를 시 자체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봄과 여인으로 변신한 고양이 名作들
 
보들레르와 그의 연인 잔 뒤발.
  ‘고양이’ 하면 떠오르는 시는 보들레르의 〈고양이〉다. 관능적이고 퇴폐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시집 《악의 꽃》(1857년 刊)에 실린 대부분의 시들은 고통스럽고 처절한데 이 시만은 예외적이다.
 
  이리 오너라, 내 귀여운 나비야,
  사랑하는 이 내 가슴에 발톱일랑 감추고
  ‌금속과 마노(보석의 한 종류-편집자)가 뒤섞인 아름다운 네 눈 속에
  나를 푹 파묻게 해 다오.
 
  너의 머리와 부드러운 등을 내 손가락으로
  한가로이 어루만질 때에
  전율하는 너의 몸을 만지는 즐거움에
  내 손이 도취할 때에
 
  나는 내 마음속의 아내를 그려 보네.
  그녀의 눈매는 사랑스런 짐승
  너의 눈처럼 아늑하고 차가워
  투창처럼 자르고 뚫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미묘한 숨소리, 변덕스런 향기
  그 갈색 육체를 감도는구나.
 
  - 보들레르의 〈고양이〉 전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1821~1867)도 ‘뒤발’이라 부르는 암고양이를 키웠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 잔 뒤발(Jeanne Duval) 말이다. 흑백 혼혈아인 육감적이고 야성적인 뒤발은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팜므파탈’이었다. 늘 허무와 죽음의 공포로 허우적대던 보들레르는 이 암괭이에게 삶의 위안을 찾았다. 보들레르는 그녀에게 일생의 전부를 걸었다. 그러나 뒤발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환희와 고통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보들레르가 뒤발이란 ‘여인’을 고양이와 결부시켰다면 한국의 시인 고월(古月) 이장희(李章熙·1900~1929)는 고양이를 ‘봄’과 연결시켜 1920년대 근대문학에 눈 뜨던 식민지 한국시단을 놀라게 했다.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였던 시인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이장희 시 〈봄은 고양이로다〉 전문

 
  1924년 《금성》 5월호에 실린 이 시는 꽃이나 나비, 봄나물 같은 자연사물로 표현되던 봄의 모습을, 치밀한 관찰과 분석으로 고양이를 통해 새로운 감각으로 표현한다. 고양이의 특징적 부분인 털, 눈, 입술, 수염에 각각 봄의 특징적 이미지를 대입시킨다. 또한 각 연에 ‘~도다’, ‘~아라’ 등의 반복적인 영탄조 어미를 사용해 음악적 효과를 살린다. 이 시는 고교 문학교과서(천재, 지학사)에 실려 있다.
 
 
  개를 추억하는 시 〈꼬리를 추억하며〉
 
성숙옥 시인의 첫 시집 《달빛을 기억하다》.
  최근 시문학에서 펴낸 성숙옥 시인의 첫 시집 《달빛을 기억하다》의 〈꼬리를 추억하며〉는 고양이와 함께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개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시인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개가 어느 날 사라졌다. 시인은 빈집에 남아 있던 몇 올의 털을 손으로 만진다. ‘반가움을 빛내며 흔들던 꼬리’를 떠올려 본다.
 
  시어나 전체적인 느낌으로 볼 때 자연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고양이의 평균수명은 15~20년, 개는 12~15년이다. 시인은 ‘꽃잎이 지듯/ 사랑하는 것들은 언제나 떠나고 만다’고 슬퍼한다.
 
  함께하던 시간이 사라졌다
  늘 먹을 것에 집착하던
  그 탐욕도 같이 떠났다
 
  빈집에 남아 있는 몇 올의 털을 만져 본다
  개의 눈은 늘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오곤 했다
 
  반가움을 빛내며 흔들던 꼬리
 
  이젠
  기억의 집 속에만 살게 되리라
  발자국의 향방을 물으며 짖던 음성이
  슬픔으로 고인다
  그리움이 있다는 것은
  살가운 부대낌과 눈빛의 포옹을
  오래 함께했다는 것이다
 
  - 성숙옥의 〈꼬리를 추억하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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