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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21세기 시민혁명과 언론 ⑤ 세르비아

‘불도저 혁명’은 ‘발칸의 도살자’를 무너뜨리는 데에만 성공… 세르비아 정부와 언론은 이 ‘미완의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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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언론 좌지우지하다가 혁명으로 실각
⊙ 밀로셰비치 정권에 부역했던 RTS의 오늘날 보도 양태는?
⊙ ‘불도저 혁명’에 참여했던 부크 예레미치 “현 정권도 밀로셰비치 정권과 다를 바 없어”
⊙ “한국의 촛불혁명은 매우 긍정적… 김정은 정권하에서 北이 나아질지 의문”
⊙ 밀로셰비치 정권에 의해 네 번이나 방송 금지 처분 받은 ‘B92’… 베란 마틱은 어떤 인물?
⊙ 밀로셰비치 시절의 親정부 언론은 밀로셰비치 세력을 ‘자폐증 환자’처럼 만들어
⊙ “현 정부가 EU에만 밀착하는 경향 보인다면 언론의 자유 보장받기 힘들 것”
⊙ 높은 경제성장률 등 ‘잠재력’이 큰 세르비아의 불확실성 두 개는 정부와 언론
2000년 10월 ‘불도저 혁명’의 진원지인 연방의사당
  ‘발칸의 도살자’로 불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 1941~2006) 전(前) 세르비아 대통령은 수많은 인명을 학살해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겨진 독재자였다. 밀로셰비치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비롯해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전쟁 등에 개입, 전쟁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았다. 2006년 수감 중 사망한 밀로셰비치는 2000년 10월 이른바 ‘불도저 혁명’으로 불리는 민중봉기에 의해 실각했다. 혁명의 계기 중 하나는 밀로셰비치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했던 친(親)정부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 때문이었다.
 
 
  “세르비아, 세르비아!” “보요, 보요!”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0년 9월, 세르비아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9월 26일, 세르비아 선거관리위원회는 국영 TV를 통해 대선 1차 투표에서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Vojislav Koštunica) 후보가 48.2%를 얻어 40.2%를 얻는 데 그친 밀로셰비치 대통령에 앞섰지만 “조만간 2차 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르비아의 대통령 선거 방식은 과반수를 득표해야 하는데, 코스투니차의 득표율이 50%을 넘지 못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선관위는 2차 투표는 10월 8일에 치러진다고 공표했다. 코스투니차가 속해 있던 야당인 민주당(Democratic Opposition of Serbia·DOS)은 자체 집계를 토대로 코스투니차 후보가 50%를 넘은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코스투니차 측은 밀로셰비치 대통령에게 10월 5일 15시까지 선거 패배를 인정하고 국영 방송사 사장, 편집장, 정부 및 언론 주요 관계자들이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밀로셰비치에게 보낸 하야(下野) 통첩 시한이 지난 10월 5일 오후 4시(이하 현지시간),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연방의사당이 야당을 지지하는 시위대에 의해 점거됐다. 베오그라드 일대엔 밀로셰비치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로 뒤덮였다. 젊은이들은 의사당에 난입, 밀로셰비치 초상화를 비롯해 집기와 컴퓨터를 부수기도 했다. 시위대가 의사당에 진입한 직후 1층에서는 불길이 치솟았다. 의사당 밖에서는 약 15만명의 시위대가 “세르비아, 세르비아!”와 “보요, 보요!”(코스투니차의 애칭)를 외쳐댔다. 밀로셰비치 정권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군중들은 경찰에 욕설을 퍼부었다. 경찰 수십 명도 시위대에 동참했다.
 
  저녁이 되자 코스투니차는 연기로 검게 그을린 의사당 건물을 배경으로 모인 시위대 앞에 나타나 밀로셰비치의 퇴진을 촉구했다. 시위대는 “코스투니차”를 연호했고 누군가는 그를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 코스투니차는 “존경하는 자유 세르비아인이여! 우리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세르비아는 이제 밀로셰비치라는 한 사람을 제거하려고 일어섰습니다. 그가 떠날 때 세르비아는 다시 움직일 것입니다. 세르비아에 민주주의가 싹틀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성난 군중, 親정부 공영방송사 RTS에 불도저 타고 진입
 
RTS 방송국
  시위대는 국영 TV방송사인 RTS 건물도 점령했다. 당시 외신은 “방송사 건물 내에서 화염이 일었으며 총성이 들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시위대가 불도저를 앞세워 방송사 건물 벽을 무너뜨린 뒤 안으로 진입한 것이다. 건물을 경비하던 경찰 대부분이 도망쳤으며 경찰 일부는 시위대에 합류했다. RTS의 모든 방송은 중단됐다. 이윽고 RTS 보도국장이 나타나 코스투니차를 “대통령”이라고 언급하며 긴급 인터뷰를 가졌다. 사실상 시위대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시위대는 방송사를 장악하고 있는 밀로셰비치 지지파의 퇴진도 요구했다. RTS뿐 아니라 ‘스튜디오 B방송’ ‘폴리티카 방송’도 비슷한 성향의 언론사로 인식돼 시위대의 표적이 됐다. 그 당시 세르비아 언론사 대부분은 밀로셰비치 정권에 사실상 부역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세르비아의 일간지 중 하나인 《폴리티카》와 주간지 《네델르니크》.
  밀로셰비치는 이날 혁명을 인정하고, 13년간 누렸던 권좌에서 물러났다.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베오그라드 연방의사당 앞은 독재를 종식시키고 새 시대로의 진입을 알리는 ‘역사의 장(場)’으로 변모했다. 이날 의사당 근처에 있던 경찰 차량 다섯 대를 포함, 약 일곱 대의 차량이 전소(全燒)했으나 유혈 충돌은 거의 없었다. 소녀 한 명이 목숨을 잃고, 103명이 부상한 것에 그쳤다. 일부 외신은 이를 ‘무혈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단 하루 만에 세르비아 역사가 바뀐 것이다. 세르비아에서는 이를 ‘10월 5일 혁명’이라고 공식적으로 칭하나, 시위대가 국영 방송사인 RTS에 불도저로 쳐들어갔다는 이유로 ‘불도저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불도저 혁명’ 후 18년이 지난 지금…
 
연방의사당 맞은편에 위치한 대통령궁. 18년 전 밀로셰비치는 이곳에서 성난 군중들의 함성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불도저 혁명’을 자세히 취재하기 위해 지난 7월 23일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로 향했다. 면적 3223km², 인구 약 160만명인 베오그라드의 첫인상은 유럽 특유의 고풍스러움이었다. 베오그라드의 베오(Beo)는 ‘하얀’, 그라드(Grad)는 ‘도시’이란 의미다. 하지만 ‘하얀 도시’이란 이미지를 베오그라드에서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실제로 베오그라드 시내의 건물 대부분은 고풍스러운 양식을 띠고 있지만, 오랜 사회주의 체제를 관통해서 그런지 대부분 낡고 빛이 바랬다. 마치 우리나라 1960~70년대를 연상케 했다.
 
연방의사당 우측 카페에서 바라본 분수.
  불도저 혁명의 진원지인 연방의사당(현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18년 전의 상흔(傷痕)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연방의사당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이따금 관광객들만이 의사당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의사당 앞에는 베오그라드 번화가와 신시가지를 잇는 왕복 4차선의 도로가 길게 뻗어 있다. 혁명 당시 보도에 의하면 의사당 앞 도로는 물론 맞은편까지 군중들로 꽉 차 있었다고 한다. 연방의사당 바로 맞은편엔 대통령궁이 위치해 있다. 18년 전 밀로셰비치도 이 대통령궁에서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난 군중들의 함성을 보고 들었을 것이다.
 
  의사당을 왼편에 끼고 50~60m 정도 더 들어가면 RTS 방송국이 나온다. 어용(御用) 방송에 분노를 느낀 군중이 불도저를 앞세워 간 곳이다. 의사당 앞 도로에서 불도저를 타고 RTS로 간다면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매우 가까운 거리다. RTS는 우리의 국영 방송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불도저 혁명’에 참여한 부크 예레미치 “RTS는 현재도 親정부 성향… 나도 출연 못해”
 
부크 예레미치는 “불도저 혁명은 ‘미완의 혁명’”이라면서 현재의 알렉산다르 부치치 정권 역시 밀로셰비치 정권과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제 불도저 혁명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만나볼 차례다. 세르비아 제3야당 인민당 당수이자 세르비아 CIRSD(Center for International Relations and Sustainable Development·국제 관계 및 지속 가능 발전 센터) 대표로 있는 부크 예레미치(Vuk Jeremić·43)가 그중 한 명이다. 예레미치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세르비아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고, 이후 유엔총회 의장(제67차 총회)을 지냈다. 2016년 반기문 총장의 후임으로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도전했지만 고배(苦杯)를 마시기도 했다.
 
  지난 7월 26일 베오그라드 CIRSD 사무실에서 예레미치를 만났다. 예레미치는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하고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그는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대학교(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2001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세르비아어로 ‘부크’는 늑대란 뜻이다. 늑대와 엘리트란 이미지가 겹쳐서일까. 예레미치는 정제돼 있으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을 갖고 있었다. 불도저 혁명이 발발할 때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수학 중이던 그는 본국으로 귀국해 혁명에 참여했다.
 
  예레미치는 밀로셰비치 정권을 “매우 잔인한 독재정권”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밀로셰비치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음에도 권력을 놓지 않고 독재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위대한 민주주의 운동에 합류하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예레미치는 “(흔히 알려진 대로) 불도저가 혁명에 불을 붙인 건 아니다”라면서 “그 당시 거리로 나온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만든 시민혁명”이라고 불도저 혁명을 정의했다. 불도저는 밀로셰비치 실각을 촉발시킨 상징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RTS의 보도 양태가 어떠했길래 불도저로 방송국을 급습한 것이냐’고 묻자 예레미치는 이렇게 말했다.
 
  “RTS는 사실상 밀로셰비치 정권의 선전용 방송사였다. 그 당시 RTS는 사건을 완전히 다르게 보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권 반역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이 창궐하고 있다고 보도한 게 대표적이다. 10월 5일 혁명 때도 마찬가지다. 혁명이 본격화하자 RTS를 비롯한 국영 방송사들은 테러리스트들이 거리에서 시위 중이며, 헌법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테러리스트들이 사람들을 동원하고, 선동하고 자금을 대고 있다고도 했다. 불도저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시위대가 방송국을 점거한 후 이들 방송사들이 혁명의 상황을 제대로 보도하면서부터다.”
 
  실제로 불도저가 RTS를 급습하고, 시민들이 RTS를 점거한 뒤부터 방송들은 논조를 180도 바꿔 반(反) 밀로셰비치 시위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예레미치는 현 정권하에서도 언론이 ‘불도저 혁명’ 이전과 비슷한 양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날에도 RTS는 여당 선전용 방송사이다. 현 정부도 밀로셰비치 정부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예레미치는 “나는 RTS에서 방송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다”며 “단 한 번도 방송사에 가서 무언가를 말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예레미치는 작심한 듯 이야기를 이어 나가며 “놀랄 일은 따로 있다”고 했다.
 
  “혁명 당시 밀로셰비치 정부엔 악명 높고, 매우 잔인한 공보부 장관이 있었다. 그는 RTS를 담당했다. 그가 바로 지금 세르비아의 대통령인 알렉산다르 부치치이다. 부치치 정권은 밀로셰비치 정권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에 밀로셰비치가 있다면 지금은 부치치가 있다”
 
세르비아의 개명군주 중 한 명인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1823~1868)의 이름을 딴 크레즈 미하일로 거리. 베오그라드의 ‘명동’에 해당하는 곳이다.
  여기서 잠깐 세르비아의 현직 대통령 알렉산다르 부치치(Aleksandar Vučić·48)에 대해 알아보자. 지난해 4월 대통령에 당선된 부치치는 1990년대 밀로셰비치 정권에서 공보부 장관을 지냈다. 보스니아 내전 중이던 1993년 세르비아군(軍)을 옹호하는 연설을 해 주목을 받았다. 내전이 끝난 뒤 이전의 극단적 국가주의 성향에서 탈피, 유럽연합(EU) 가입을 추구하는 친(親)서방 개혁주의자로 변신했다. 부치치는 서방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중도우파 성향의 혁신당(SNS)을 창당했고, 2014년 4월부터 세르비아 총리직에 올랐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세르비아는 대통령보다 총리의 실권이 크고, 대통령은 상징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다. 부치치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대통령의 권한이 전보다 훨씬 강화됐다는 게 중론(衆論)이다.
 
  부치치는 세르비아 등 발칸 반도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동시에 서방과의 관계 개선도 추구하는 등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다. 실제로 부치치는 대선 직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전투기, 전투용 전차, 장갑차 지원 약속을 받는 등 러시아의 지지를 받고 있다. 부치치 정부는 현재 세르비아의 숙원인 EU 가입과 친 러시아 노선, 거기다 중국 자본을 통해 경제 발전을 꾀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제각기 모순된 상황이기 때문에 세르비아는 ‘삼중고의 숙제’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예레미치는 “현재 세르비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다시금 독재정권으로 회귀한 것 같다”며 “1990년대에 밀로셰비치가 있었다면, 지금은 알렉산다르 부치치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또 다른 ‘불도저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부치치 정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세르비아의 변화를 위해 불도저 혁명 같은 혁명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나 누구도 모른다. 우리는 세르비아 정상화를 위해 싸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 일(혁명)을 한 번 했고 다시 할 수도 있다.”
 
  예레미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불도저 혁명 직후가 세르비아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시기였다”고 했다. 그 기간 동안 세르비아는 법과 제도가 제 기능을 했고, 의회 역시 제 기능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도 보장되었다고 한다. 즉 시민사회의 자유, 경제의 자유가 세르비아의 ‘핵심 키(key)’로 작동했다는 게 예레미치의 설명이다. 그는 “그런데 지금 이 자유가 다시 제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도저 혁명 때 축출되었던 세력(부치치 세력)이 재집권했기 때문이란 게 그 이유였다.
 
 
  “한국의 ‘촛불혁명’ 긍정적… 北 주민들이 혁명 선택할 가능성 낮아”
 
베오그라드 공화국광장에 위치한 국립박물관 전경.
  예레미치는 세르비아 국민들도 정부와 현재의 언론에 대해 많은 실망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불도저 혁명 이후에도 “불행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가 불어닥쳤을 당시 세르비아도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혁명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세르비아 국민들은 경제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정부에 실망했고, 그러한 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에 대해서도 동일한 감정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도저 혁명은 ‘미완의 혁명’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2016년 우리나라의 이른바 ‘촛불혁명’에 대해 물어봤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극적이며, 매우 긍정적인 발전을 가져왔다고 본다. 물론 나는 외부인의 입장에서만 촛불혁명을 접했지만 촛불혁명은 분명 한국에 새로운 계기가 됐다. 이전 정부의 부패를 국민들에게 보여준 중요한 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 현재 세르비아에 존재한다. 현 정부는 매우 부패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국영방송도, 국영방송과 같은 규모를 가진 민영방송도 거의 모두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며 “미디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현 정부는 미디어를 통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밀로셰비치 정권보다 더 엄혹하고, 더 잔인한 독재체제인 북한에 대한 그의 시각은 어떨까. 예레미치는 “북한이 국가의 통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진정한 통일을 이루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그는 “가까운 시일에 북한 체제가 아닌 대한민국 체제로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길 소망한다”면서도 “아직 (통일까지) 갈 길이 멀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북한에 불도저 혁명과 같은 민중봉기가 일어난다면 지원할 의사가 있는지’ 묻자 그는 “김정은 정권하에서 북한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혁명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B92’의 대표 베란 마틱의 독특한 反밀로셰비치 저항운동
 
라디오 방송국 ‘B92’의 대표 베란 마틱은 독특한 방식으로 反밀로셰비치 저항운동을 펼쳐왔다. 그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 등을 수여 받았다.
  베란 마틱(Veran Matic·56)은 반(反)밀로셰비치 보도를 주로 해 온 ‘B92’라는 라디오 방송사의 대표다. 언론 통제를 해 온 밀로셰비치 정권과 정면으로 맞섰던 마틱은 국제언론자유상(1993년), 세계 언론자유 영웅상(2000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2009년)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B92는 라디오 방송국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고 베란 마틱의 사무실 역시 단출했다. 부크 예레미치가 엘리트 이미지를 풍겼다면 베란 마틱은 격식을 덜 차리는 편이었다.
 
  마틱에게 ‘B92’의 뜻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B는 ‘베오그라드’라는 뜻이고 92는 라디오 주파수(원래 주파수는 92.5)를 의미한다”고 했다. 1989년 개국한 B92는 개국하자마자 밀로셰비치 정권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밀로셰비치 정권의 민족주의 정치에 반대하는 유명 예술가, 정치인들을 초대해 방송했다고 한다. 당시 B92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진보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해 매우 강렬한 로큰롤(Rock & roll) 음악 방송을 했다는 점이다. 이 역시 밀로셰비치 정권에 대항하는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게 베란 마틱의 설명이다. 그의 얘기다.
 
베란 마틱이 수여 받은 ‘레지옹 도뇌르’ 훈장 증서.
  “예를 들어 정의를 상징하는 노래나 반 정부적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래를 방송했다. 그러면 저녁에는 대학생들이 길거리에 나와 자유에 관한, 그리고 B92를 지지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빈곤, 실업, 열악한 교육 환경에 대한 프로그램도 방송했다. 소수 민족, 장애인, 성(性)소수자 등 소수 세력을 보호하는 데에도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유머와 풍자를 곁들였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정부와 정치인들을 조롱했다. 이런 게 독재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베란 마틱은 음악을 통한 저항운동을 한 언론인으로 유명하다. 밀로셰비치에 의해 집회가 금지되자 마틱은 트럭에 록밴드를 싣고 세르비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반정부 공연을 펼쳤다. 그 과정에 재밌는 일화도 있다. 마틱은 1998년 미국의 유명 음악방송 채널인 MTV 시상식에 참석했다. 그때 마틱은 일부러 반 밀로셰비치를 상징하는 티셔츠를 입고 갔는데, 밀로셰비치의 딸이 우연히 그가 출연한 방송을 봤다고 한다. 그러자 MTV 측에 ‘방송을 내보내선 안 된다’는 압력을 넣는 바람에 방송 도중, 화면 송출이 중단되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마틱은 주장했다.
 
 
  밀로셰비치 정권에 의해 네 번이나 방송 금지 처분 받은 ‘B92’
 
친정부 언론으로 알려진 ‘PINK TV’ 본사 전경.
  B92는 개국 후부터 불도저 혁명이 있던 2000년까지 밀로셰비치 정권에 의해 무려 네 차례나 방송 금지 처분을 당했다. 밀로셰비치 정권에 ‘찍힌’ 베란 마틱은 인접 국가인 루마니아와 보스니아에 방송 송신장치를 설치, 세르비아로 방송을 송출했다고 한다. B92의 반 밀로셰비치 방송이 절정에 다다르던 2000년 8월 보스니아에 있던 B92 방송 시설에 누군가 방화(放火)를 자행, 송출이 중단된 적도 있다고 한다. 베란 마틱은 “B92는 밀로셰비치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설명이다.
 
  “2000년 10월 5일, B92를 비롯한 모든 반정부 언론사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경찰의 폭력에 대해서 자세히 보도했다. B92를 필두로 한 반정부 언론 네트워크는 조직적이었고, 그 결과 베오그라드에 약 50만명의 군중이 모이도록 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것은 밀로셰비치 정권에 큰 압박과 부담으로 다가왔다.”
 
세르비아 정교회의 설립자인 성(聖) 사바를 기념하고자 지은 사바 대성당. 발칸 반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정교회 성당이다. 비잔티움 건축 양식을 띤 이 대성당의 수용 인원은 1만800명, 내부 면적은 7371㎡이며 대성당의 전체 높이는 79m에 달한다.
  마틱은 그 당시 언론에 대해 “친 밀로셰비치 언론들은 가짜뉴스를 양산했고, 그것은 시민들을 화나고 짜증나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친 밀로셰비치 성향의 방송사 대표들은 당시 몰래 B92를 청취했다”며 “이는 자신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거짓과 과장으로 점철된 보도는 밀로셰비치와 같은 정치가들을 타락하게 했고, 결국 대중으로부터 유리(遊離)시키는 결과를 초래, 일종의 자폐증 환자처럼 만들었다고 마틱은 말했다. 그렇게 한 언론 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RTS였다.
 
  RTS 외에 또다른 친 밀로셰비치 언론에 대해 묻자 “밀로셰비치의 부인과 가장 가까웠던 민영 방송사 ‘PINK TV’가 있다”고 했다. 마틱의 설명에 의하면 PINK TV는 현재 부치치 정권의 선전용 방송사로 전락했다고 한다. PINK TV는 조란 진지치(Zoran Đinđić·2003년 암살) 총리 시절에도 그 정권을 선전했다고 한다. 마틱은 “정권에 따라 매우 빠르게 색깔을 바꾸는 방송사”라고 혹평했다.
 
  베란 마틱은 “세르비아 언론 대다수가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는 논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판적인 언론은 거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마틱은 “알렉산다르 부치치 정부는 오래 전부터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50% 이상의 지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세르비아 언론사의 수는 1000개가 넘는데 반해 광고시장이 매우 작아, 결국 언론이 정권의 입김에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고 마틱은 주장했다.
 
 
  “親러시아 언론 多數… 親정부 언론 대부분이 중국에 우호적”
 
칼레메그단 요새로 들어가는 입구. 칼레는 터키어로 ‘요새’, 메그단은 ‘전장(戰場)’이란 뜻으로 이 요새는 축구장 50~60개를 합한 넓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 켈트족이 처음 요새를 짓기 시작해 기원후 1세기 로마가 본격적인 건축에 나섰다고 전해질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됐다.
  세르비아는 경제적 이해관계와 지정학적인 이유 때문에 친 EU, 친중(親中), 친 러시아 노선을 두고 고민 중이다. 이러한 노선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언론사가 어디인지 마틱에게 물었다. 그의 답이다.
 
  “주로 친 러시아 성향을 띠는 언론이 많다. 그중 한 언론사는 연초에 구독자에게 푸틴 대통령 포스터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러시아로부터 직접적인 재정을 지원받는 ‘Radio Sputnjik(라디오 스푸트니크)’란 방송사도 있다. 중국은 아직 큰 영향력이 없지만, 현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 매체들 대다수가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EU 가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인지 친 유럽 성향의 언론도 있다.”
 
칼레메그단 요새 안에는 테니스장이 있다. 이 테니스장에서 세르비아의 국보이자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 노박 조코비치가 연습을 했었다고 한다.
  그는 “밀로셰비치 정권 때는 언론이 흑백으로 극명하게 갈렸지만 오늘날엔 언론의 성향도 매우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베란 마틱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부치치 정권은 친 유럽 성향을 띠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와 중국과도 특별히 좋은 관계를 맺길 원하고 있다고 한다. 세르비아는 러시아로부터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세르비아의 석유, 가스 회사 대부분이 러시아 소유). 중국 역시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세르비아에 막대한 장기 대출을 지원해 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부치치 정권은 언론이 이들 국가에 대해 어떤 논조로 보도할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활발하게 발달해 이 SNS만큼은 정부 통제권에서 벗어나 있어 대안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베란 마틱은 “어떤 면에서 SNS가 기성 언론보다 더 낫다”며 “SNS가 적절한 역할을 수행한다면 세르비아 언론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베오그라드 거리 노점상에서 판매하고 있는 상품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가 인상적이다. 세르비아는 러시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베란 마틱이 그리고 있는 세르비아 언론의 미래가 궁금했다. 베란 마틱은 “세르비아 언론을 재정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기금(基金)을 조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세르비아 언론기관이 새로운 트렌드와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할 수 있도록 보조하고 싶다는 취지다. 다만, 그는 “현 정부가 지금처럼 EU에만 밀착하는 경향을 보인다면 언론의 자유는 보장받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헝가리는 난민 정책과 관련해 EU의 노선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바람에 EU로부터 제공되는 경제원조가 큰 폭으로 깎여 나갔다. 결국 헝가리 언론들이 EU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北, 힘으로 무너뜨려선 안돼… 정권 약화시키려는 목표가 독재 강화할 수도”
 
베오그라드 예술가의 거리. 이 거리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즐비해 있어 멋과 낭만이 흐르는 곳이다.
  ‘언론의 자유’가 전무(全無)한 북한에 대한 견해도 들어봤다. 베란 마틱은 “전 세계인이 북한 주민들과 연대해 긍정적인 변화를 도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지는 설명이다.
 
  “북한은 심각한 사회주의 체제이기에 민주주의가 발현되기 매우 어렵다. 따라서 작은 불씨가 확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작은 불씨가 혁명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도주의에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계획을 가지고 북한을 돕는 게 중요하다. 물론 그 과정이 매우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힘(폭력)으로 해선 안 된다. 나는 폭력이 아닌 고상한 방법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목표는 독재정권의 약화인데, 때로는 정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설정한 목표가 오히려 독재를 강화하기도 한다.”
 
예술가의 거리 한 레스토랑에서 연주하고 있는 악사들.
  베란 마틱 역시 불도저 혁명 이후에 들어선 새 정부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마틱은 “밀로셰비치 정권에서도 감시를 받았는데, 부치치 정권 역시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감시를 받는 이유는 자신이 부치치 정권의 부정부패를 고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르비아인들이 말하는 세르비아 언론과 정부, 그리고 미래
 
데얀 오브라도비치와 타냐 오브라도비치 부부. 데얀 오브라도비치는 세르비아 대다수 언론의 수준이 떨어져 인터넷으로나마 형식적으로 기사를 읽는다고 했다.
  불도저 혁명과 세르비아 언론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의 인식도 알아봤다. RTS 방송국 앞을 지나던 베오그라드 시민 두 명과 간단한 인터뷰를 가졌다. 흰색 상하의를 입은 70대 정도의 여성과 40대로 보이는 그녀의 딸이었다. 이 70대 여성은 “국영방송보다는 민영방송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고 한 반면 그의 딸은 “어느 언론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세르비아인들의 보편적인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고령층은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어느 정도 남아 있다. 반면 젊은층은 상대적으로 불신하는 경향이 짙다. 젊은층의 경우 정보를 접하는 경로가 고령층보다 다양하기 때문인 듯했다.
 
  세르비아 현지 통역의 주선으로 만난 데얀 오브라도비치(Dejan Obrado-vic·40)와 타냐 오브라도비치(Tanja Obradovic·36) 부부는 세르비아의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데얀의 경우 은행에서 일했었고, 지금은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데얀은 “불도저 혁명 이후 나아진 건 문화 수준 정도고, 정부와 언론의 보도 행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혁명은 사실상 실패”라고 지적했다. 데얀은 “혁명으로 정권을 내놓았던 세력이 다시금 집권, 무례한 방법으로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야당에 대해 네거티브 공격을 일삼는 게 대표적이라고 했다. 그는 “신문과 방송도 모두 퇴보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 정부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언론에 대한 통제가 심하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언론은 그 성향이 친정부적일 뿐 아니라 수준 역시 떨어진다는 게 데얀의 지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신문이나 방송을 보는 대신 인터넷으로나마 형식적으로 기사를 읽는다고 했다.
 
  데얀 역시 북한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지금의 북한과 과거의 세르비아는 많이 닮아 있다”면서 “북한도 세르비아처럼 혁명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뿐 아니라 한국,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든 정치와 경제가 불안해지면 혁명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세르비아에서 또다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망했다. 현재 세르비아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혁명과 같은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라 경제라는 이유에서였다. 세르비아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더욱 치중할 것으로 본 것이다.
 
  이처럼 세르비아인들의 대(對) 정부관과 대 언론관은 대체적으로 비관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제는 이와 형편이 조금 다르다. ‘CIA 팩트북(factbook)’에 따르면 2017년 세르비아의 GDP(구매력 기준)는 1만5200달러였다. 이는 같은 발칸 반도 국가인 불가리아(2만1600달러)보다는 낮고, 보스니아(1만1400달러)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같은 해 세르비아의 경제성장률은 3%였다. 세르비아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해안을 면하지 않은 내륙 국가임에도, 비옥한 토지와 많은 수량(水量), 그리고 풍부한 일조량을 자랑한다. 부치치 정권은 해외 투자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기자가 만난 현지 주재원들은 하나같이 세르비아를 “기회의 땅”이라고 했다. 실제로 활발한 대외 개방 정책 덕분에 중국은 물론, 한국 기업의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 옛날 유고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중심지로 번성했던 세르비아. 세르비아 국민들은 오늘도 정상 궤도를 벗어난 일부 언론들이 제 자리를 찾길 원한다. 현 정부가 밀로셰비치를 반면교사 삼아 언론을 좌지우지하기 보다는, 지금보다 더 경제성장에 매진하길 요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불도저 혁명’은 예레미치의 말대로 아직 미완(未完)인 셈이다. 세르비아 정부와 언론을 에워싸고 있는 몇 가지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비로소 ‘불도저 혁명’도 종지부를 찍는 것 아닐까.⊙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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