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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제독의 Periscope(잠망경) 〈6〉 해양 세력 재(再)팽창 시대에 다시 보는 군함 도입기

글 : 유영식  전 예비역 해군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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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까지 미국 퇴역 구축함 운용하던 한국, 잠수함 등 수출하는 나라로
⊙ 해군 장병들의 모금으로 구입한 백두산함, 6·25 개전 직후 부산에 상륙하려던 북한 선박 격침시켜
    나라 구해
⊙ 함정(艦艇) 확충에 비해 병력 확보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워
⊙ 북한의 SLBM 확보, 중국 해군력의 급속한 팽창에 대한 대책 시급

유영식
1962년생으로 해군사관학교를 39기로 졸업했다. 35년9개월간의 군 생활 가운데 17년간을 해군본부와 국방부 대변인실 등에서 정훈장교로 일했다. 2009년부터 5년 동안 해군 공보과장으로 재직하며, 최장수 해군공보과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14년 해군 준장으로 해군본부 정훈공보실장(해군 대변인)을 지냈다.
  2011년은 대한민국 조선(造船)산업 역사에 기록을 남긴 해다. 인도네시아에 209급 디젤 잠수함 3척을 총 11억 달러에 수출하는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다.
 
  독일제 209급 잠수함을 도입하고 이를 기술이전 받아서 국내 건조를 시작한 지 불과 20년 만에 이루어낸 성과다. 이 계약으로 대한민국은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잠수함 수출국’이 됐다. 이 잠수함 3척 중 2척은 지난해 성공적으로 진수됐다.
 
  인도네시아로 수출되는 잠수함이 진수된 지 1년이 지난 2017년경 필리핀이 러시아의 디젤 잠수함을 수입하기로 했다. 태국도 같은 시기에 중국에서 디젤 잠수함을 도입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력이 어지간하면 주변국의 군사력 팽창을 그저 볼 수만은 없는 법이다. 지금 중국은 해양 팽창을 지속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군력 건설을 시작했다. 2020년대 중반이 되면 중국은 동아시아 해양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3~4년 후면 항공모함 약 3척이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5월 31일 제22회 바다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한 해양경제력과 해군력을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해양강국으로 입지를 굳건히 하고, 우리가 처한 안보 현실 속에서 국익과 튼튼한 안보를 함께 얻기 위해서는 바다로 과감히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해군 전력(戰力)에 대한 투자, 외국 어선의 불법조업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강조하면서 해양 안보를 위협하는 그 어떤 세력도 우리 바다를 넘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2000년대 초까지 미국 퇴역 구축함 운용
 
2000년 12월 퇴역한 기어링급 구축함 강원함. 미 해군에서 윌리엄 R. 러시함이라는 이름으로 운용될 때의 모습이다.
  한국은 이제 조선업에 있어서는 세계 메이저리그에 속하는 나라다. 2017년 초 대우조선은 4년 전 영국으로부터 수주하여 건조한 첫 번째 군수지원함인 ‘타이드 스프링(Tidespring)’함을 인도했다. 2번함인 ‘타이드 레이스(Tiderace)’함을 비롯한 나머지 3번함과 4번함도 올해 하반기까지 인도한다. 현대중공업은 214급 디젤 잠수함, 이지스함을 건조하는 등 군함 건조에 있어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우리 해군은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업을 바탕으로 원하는 규모의 함정을 원하는 시기에 건조할 수 있는 해양산업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퇴역한 최초의 국산 호위함(FF) 울산함이 건조되어 해군에 인도되던 1985년에만 해도 우리 해군은 미(美)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건조한 기어링급 구축함을 주력 전투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당시 필자도 11전투전대 강원함(DD, 기어링급)에서 소위로 근무했다. 강원함은 1944년 미국에서 건조되어 미국 해군의 DD-714 윌리엄 R. 러시(William R. Rush)함으로 명명(命名)되어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서 활약했다. 1978년 우리 해군이 인수해 2000년 12월까지 주력함으로 운용했다. 퇴역 후에는 진해 해양공원에서 군함전시관으로 활용되다가 노후화로 인해 2016년 해체됐다.
 
  국산 호위함과 초계함이 다량으로 건조되었지만 우리 해군은 2000년대 초까지 강원함 같은 미국에서 도입한 구형 구축함을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1997년 광개토대왕함 도입 이전까지 헬기 갑판을 보유한 전투함은 기어링급 구축함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해군 장병들 모금으로 전투함 구입
 
  전투함 없는 해군은 의미가 없다. 1947년 무렵 우리 해군(당시는 조선해양경비대)은 18척의 YMS(소해정·掃海艇)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중 12척은 미 해군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이고, 6척은 영국이 사용하던 것을 미국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전투함은 단 1척도 없었다.
 
  우리 해군에서 만든 최초의 함정은 충무공정이다. 이 배는 1947년 경비정으로 건조됐다. 이마저도 일본 해군이 항공기 구조정으로 만들다 중단한 것을 초창기 해군이 완성해 경비정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조선해안경비대의 기함이 바로 이 충무공정이었다.
 
  당시 우리 해군에게는 전투함이 절실했다. 해군 창설자인 초대(初代) 해군참모총장 손원일(孫元一) 제독은 미국에 여러 차례 전투함 제공을 요구했다. 1948년 미국에서 작성한 〈한국 긴급 함정소요 목록〉을 보면 당시 한국은 순양함 2척, 구축함 11척, 소해함 5척, 유조함·상륙함·보급선·예인선 등 20여 척을 요청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당시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무척 낮게 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정책은 ‘전투함을 외국에 양도하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흘렀다.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은 미국으로부터 전투함을 원조받을 수 없다면 사오기로 결심했다.
 
  손 총장은 1949년 6월 해군에 ‘함정건조기금갹출위원회’를 조직했다. 장교는 10%, 병조장은 7%, 하사관 수병은 5%를 매달 봉급에서 떼어서 모았다. 해군 부인들도 이에 동참하여 삯바느질과 자수공예품 판매, 세탁소를 운영하며 모금을 도왔다. 이렇게 해서 4개월간 모은 돈 1만5000달러를 가지고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을 찾아갔다. 이에 감동한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 보조금 4만5000달러를 내주면서 전투함을 사오라고 했다.
 
 
  이성호 제독
 
  손 총장은 직접 인수단을 이끌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 당시 인수한 배를 몰고 태평양을 건너와야 했기 때문에 인수단은 항해 지식과 경험을 갖춘 장교와 간부로 구성했다.
 
  인수단에는 진해 해원양성소에서 공부한 이성호 중령(제5대 해군참모총장 역임)도 포함됐다. 이성호 중령은 6·25전쟁 중에는 인천상륙작전, 통영상륙작전, 은율철수작전, 연합군 군수물자 수송작전 등 수많은 작전을 수행한 PC-703 삼각산함 함장으로 활약했다. 이성호 중령은 이때 함정 인수에 참여했던 경험에서 해군에게 대양(大洋) 항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그는 1957년 해군 전투함 4척을 모두 동원하여 대만과 필리핀을 돌아오는 해군사관생도 순항(巡航)훈련을 최초로 주도했다.
 
  인천상륙작전 전에 있었던 X-RAY 작전의 주역인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은 2016년 해군사관학교에서 있었던 제독들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성호, 그는 앞으로 해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해군을 이끄는가를 알고 있었다.”
 
 
  백두산함
 
해군 장병들의 모금으로 구입한 백두산함. 6·25 개전 직후 대한해협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1949년 손 제독이 구입한 첫 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PC-823이라는 함정이었다. 이 무렵에는 군에서 퇴역해 뉴욕주 롱 아일랜드에 있는 해양대학에서 실습선으로 쓰이고 있었다. 우리 해군 인수단은 뉴저지주 호보켄항에 정박해 있던 이 배를 보러 갔다. 배의 이름은 ‘엔슨 화이트 헤드(Ensign White Head)’였다. 해양대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화이트 헤드 소위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이성호 전 총장은 이렇게 술회했다.
 
  “인수단은 묘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최초의 전투함이라는 차원에서 해군은 구매할 함정의 이름을 백두산함이라고 정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 배가 우리 해군 최초의 전투함 PC-701 백두산함이었다. 우리 해군이 함께 구매한 함정은 PC-702 금강산, PC-703 삼각산, PC-704 지리산이었다. 이 함정들은 모두 현지에서 우리 해군 인수단이 수리와 정비를 했다. 이 4척의 함정은 동·서·남해 전 해역을 누비며 6·25전쟁에서 큰 활약을 했다.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은 전투함 구입 초기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수단은 함정에 달린 항해 레이더를 처음 보고 이를 공부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했다. 전투함으로서의 생명이 다해 제거됐던 함정의 포는 다시 붙이고, 탄약은 또 따로 구매하고 해서 들여왔다. 참으로 어떻게 그 일을 했는지…. 초기 해군의 군함에 대한 간절함이 만들어 낸 결과다.”
 
  백두산함은 1950년 4월, 나머지 3척은 1950년 6월 1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으로 출발했다. 금강산함 외 3척은 1950년 6월 24일 하와이에 도착한 다음날 한국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귀국을 서둘렀다. 그중 한 척은 기관 고장으로 수리에 수리를 거쳐 한국에 도착하는 곡절을 겪었다. 백두산함은 개전(開戰) 다음날인 1950년 6월 26일 새벽 부산에 상륙하기 위한 특수부대원들을 태운 북한 선박을 발견, 격렬한 전투 끝에 격침시켰다. 이것이 ‘대한해협해전’이다. 이때 이 선박을 격침시키지 못하고 북한군이 부산에 상륙했으면 낙동강 방어전도, 유엔군의 투입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새싹계획’
 
  6·25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은 한국 해군에 더 많은 함정 이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전쟁 중 미국이 이양한 함정은 호위함 5척, 구잠함(驅潛艦) 2척, 구잠정(驅潛艇) 4척, 어뢰정 4척, 상륙함 4척, 경비정 1척, 상륙정 4척, 유조함 1척, 수송함 4척, 예인함 1척 등 30척이나 됐다.
 
  PF-66 임진강함으로 명명된 호위함은 1952년 10월부터 1953년 3월까지 요코스카와 사세보항에서 전개된 전쟁물자 수송선단을 호송하는 임무를 집중 수행했다. 우리 해군이 구형 함정인 임진강함을 잘 정비해서 100% 운용하는 것을 지켜본 미국 해군은 우리 해군을 높게 평가했다. 임진강함은 우리나라 해안을 누비며 2만 마일에 달하는 수송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해군은 1957년 ‘새싹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군함 도입사업을 시작했다. 경제력과 조선업이 전무한 국내 환경에서 군함을 건조할 형편은 못 됐다. 미국의 퇴역군함을 싼값에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해군이 도입하려 한 함정은 구축함(DD) 4척, 호위구축함(DE) 4척, 상륙함(LST) 4척, 중형상륙함(LSM), 상륙로켓함(LSMR), 잠수함 등이었다.
 
  미국 해군은 한국 해군이 구축함과 잠수함을 도입하려 하는 데 대해 난색을 표명하였다. 미국 해군 관계자들은 “구축함을 대여(貸與) 방식으로 한국에 제공하는 것은 미국 국내법상 가능하지만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터빈 엔진 정비 능력 유무도 지적했다. 한국에 군함을 대여하더라도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함정대여법상 군사원조 예산이 통과되어야 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 계획은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우리 해군이 끈질기게 요청한 결과 우선 미국 구축함 2척을 도입할 수 있었다. 해군은 1958년 3월 해본특명(海本特命) 53호를 내려 함정 인수요원을 차출해 진해에서 훈련시키면서 구축함 인수 준비를 시작했다. 이 무렵 미국 해군은 한국군이 인수하기로 한 것과 같은 급의 구축함을 한국이 구매할 수 있다는 정보를 해군무관을 통해서 알려왔다.
 
  ‘새싹계획’의 결과 우리 해군은 1958년 총 79척의 함정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는 해군을 질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기틀이 되었다.
 
 
  해군의 인력난
 
2016년 9월 5일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2016년 해군 수항훈련전단 환송식. 해사생도 130여 명 등 장병 600여 명이 107일간 일본, 러시아, 미국(괌, 하와이) 등 12개국 13개 항을 순방했다.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은 해군력 증강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2017년 현재 지상전력, 공중전력, 해상전력 중에 국산화율이 가장 높고 국내 산업과의 연계가 가장 밀접한 것은 바로 해군일 것이다.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 등이 오늘날 우리나라 함정을 구매하는 것을 보면서 발전한 해양산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우리 해군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 해군이 함정을 확보하는 데 비해 인재를 키우는 일은 상대적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인력 증원 계획은 마련했지만 달성하지는 못했다.
 
  1960년대 초반 해군 병력은 총 2만2000명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 규모는 함정의 규모와 연동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해군 병력이 점진적으로 늘어났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약 4500여 명의 병력이 증강된 선에서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해군에 큰 제약요소가 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해군은 신기술에 바탕을 둔 전투함 건조를 계획해도 그 전투함을 운용할 병력 문제에 늘 봉착하고 있다. 때문에 “병력도 없는데 함정은 왜 만드는가?”라는 거부논리가 형성되기도 한다.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을 비롯해 구축함, 호위함, 잠수함, 초계함, 해상 초계기 등 입체전력을 운영하는 해군은 지금 극한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NLL에서 벌어진 몇 차례의 해상전투, 소말리아 파병, 해외파병 작전 등을 이야기하면서 현재의 해군 병력으로는 이런 작전들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아무리 호소해도 잘 먹혀들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마른 수건도 다시 짜낸다는 심정으로 해군 육상부대의 병력을 차출하여 함정으로 편성해 왔지만 이것도 이제 한계치에 도달했다고 한다.
 
 
  북한과 중국의 위협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호 (편대)전단이 서태평양에서 훈련 중인 모습.
중국은 2030년이면 4개의 항모전단을 갖게 된다.
  북한은 여전히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를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위협에 맞서 우리는 KAMD 등 다중(多重) 대응체계를 구성해 가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이 잠수함에 핵탄두 미사일을 장착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해군 선진국들은 모두 잠수함에 핵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 가장 방어가 어려운 것이 바로 SLBM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도 심상치 않다. 2020년경이면 젠(殲)-16급 이상의 함재기(艦載機)를 탑재한 중국 항공모함이 서해에 나타날 것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24일 시진핑 주석은 해군 부대를 방문, “현대화된 해군이 세계 일류 군대의 중요한 지표이며, 해양강국의 전략적 지지 기반인 동시에 중화민족 부흥을 위한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또한 “해군의 디지털화에서 원양작전 능력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전투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중국 해군이 전력 강화를 위해 지난 10년간 100척의 첨단 군함과 잠수함, 다수의 전투기를 추가로 배치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 홍콩 매체인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중국이 향후 해군육전대(해병대)를 6개 여단 10만명까지 확대하고, 현재 23만5000여 명인 해군 병력도 30만명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국내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이 2027~2028년까지 4개의 항모전단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해군 강국들의 각축전
 
  대륙을 통해서 한반도로 진격했던 역사 속의 중국은 이제 바다로 다가오고 있다. 서해를 지나는 동경(東經) 124도 해상에서 벌어지는 한·중 해군 간의 신경전은 어느 외교전보다 심각하다. 중국 해군 함정은 하루도 빠짐없이 남북으로 이 선을 따라 항해하고 있다. 일본의 순시선은 365일 독도 영해 12마일 외곽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돌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이런 행동은 후일 해당 영유권(領有權) 분쟁이 벌어졌을 때에 해당 해역이 자신들의 영해이며, 그 영유권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왔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이를 국제법상 ‘응고(凝固)의 원칙’이라고 한다. 우리 해군이 NLL을 70년간 목숨을 바쳐가며 지켜온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한반도 중심으로 반경 500km 이내에 강력한 함대를 가진 중국·일본·러시아가 존재하고 있다. 20세기 세계 바다를 지배했던 미국도 태평양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천안함 폭침(爆沈) 당시 일각에서는 “해군이 대양해군 부르짖다가 앞마당이 뚫렸다”는 비판이 있었다. 우리의 바다 NLL을 철통같이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연해(沿海)만을 바라보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한반도 인근 바다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각축전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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