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이 서로 싸우면 그중 사악한 자에게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 경복궁 중건 때 만든 광화문 앞 해태상이 으뜸
⊙ 참된 인간의 삶 가르쳐 주는 상서로운 동물, 서당이나 사랑방 벽에 그려 붙여
尹烈秀
⊙ 65세. 원광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동국대 문학박사(미술사학).
⊙ 에밀레박물관 학예관, 삼성출판박물관·가천박물관 부관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민학회 회장 역임. 現 가회민화박물관장.
⊙ 저서: 《민화의 즐거움》 《꿈꾸는 우리민화》 《민화이야기》 《한국 호랑이》 등.
⊙ 경복궁 중건 때 만든 광화문 앞 해태상이 으뜸
⊙ 참된 인간의 삶 가르쳐 주는 상서로운 동물, 서당이나 사랑방 벽에 그려 붙여
尹烈秀
⊙ 65세. 원광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동국대 문학박사(미술사학).
⊙ 에밀레박물관 학예관, 삼성출판박물관·가천박물관 부관장,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민학회 회장 역임. 現 가회민화박물관장.
⊙ 저서: 《민화의 즐거움》 《꿈꾸는 우리민화》 《민화이야기》 《한국 호랑이》 등.
- 대구 건들바우박물관 해태.
해태는 중국 요순(堯舜)시대에 등장했다고 전해지는 상상의 짐승이다. 다른 이름으로 ‘해치’라고도 불린다. 《한국문화 상징사전》에 따르면 해치는 순 우리 옛말로서 ‘해님이 파견한 벼슬아치’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즉 ‘해’는 해님의 ‘해’에서, ‘치’는 벼슬아치의 ‘치’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해치라는 이름이 태양숭배 사상에 연원을 두고 있음을 암시한다. 해는 사람에게 복덕을 주고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이다. 해태의 이름에 담긴 상서로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한(漢)대의 문헌 《이물지(異物誌)》에는 해태가 ‘동북지방 깊은 수풀이나 산 속에 사는 짐승으로 신선이 먹는다’는 먹구슬 나무 열매만 먹기 때문에 그 주위에는 파리 한 마리 얼씬대지 않는 정결하면서도 신비한 짐승으로 묘사되어 있다. 생김새는 우수마면(牛首馬面·소의 머리에 말의 얼굴)에 외뿔이 솟아 있고 둘로 갈라진 발톱을 가지고 있으며 푸른 비늘이 온몸을 덮고 있다고 한다.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돋아 있고 여름에는 늪가에 살며 겨울에는 소나무 숲에 산다고 한다.
해태의 모습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해태가 가진 것과 같은 ‘외뿔’은 서양에서도 신성한 동물의 상징으로 숭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 중세 회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각수(一角獸·Unicorn) 같은 동물이 대표적인 예다. 흰색 털을 가진 말의 몸집에 파란 눈을 하고 이마에 하나의 뿔이 나 있다는 이 전설의 동물은 흔히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그려져 순결과 정결을 상징하는 서수(瑞獸)로 통한다.
해태의 생김새는 원래 사나운 맹수를 단순화시켜 호랑이 혹은 표범처럼 꾸민 것이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멋이 강조되면서 모양도 조금씩 변했다. 조선시대에는 뾰족한 외뿔이었던 것이 지금의 사슴뿔처럼 변했고, 민화 속에서는 사자 갈기처럼 그려지기도 했다.
“邪氣를 물리치는 짐승”
해태의 성품에 대해서는 ‘힘이 세지만, 심성이 정의로워 사람들이 서로 싸우면 그중 사악한 자에게 달려들어 물어뜯는다’고 적고 있다. 해태의 성품을 묘사한 기록은 이외에도 매우 많다. 우리나라 기록으로는 《조선왕조실록》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 내가 임금이 되기 이전에 어떤 대간(臺諫)이 치관(冠·해태 모양을 수놓은 관)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모두 하는 말이 ‘해태는 사기(邪氣)를 물리치는 짐승이므로 그 뜻을 취한 것이다’고 하였다.”-《조선왕조실록》인조 44권
중국의 역사서 《한서(漢書)》에는 ‘해치는 송사에서 사악한 자를 잘 가려내어 재판을 담당한 법관, 어사는 그 상징으로 해치의 머리 모양을 본뜬 해치관(冠)을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해태는 곡직(曲直)을 능히 판단하는 충직한 짐승으로 ‘구덕(九德)까지 갖추고 있다’라는 기록도 보인다.
중국의 《산해람(山海覽)》에는 “동방의 나라 산 속에 해치라는 신비한 동물이 살고 있으며 요(堯)임금 때 이 신수(神獸)가 나타나 사악한 범죄자를 가려냈다”고 하였다. 그 밖에 다른 기록에는 먼 옛날 환인(桓因) 때에, 관리가 정확히 판결하기 힘든 어려움에 처하면 하늘에서 해치를 보내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구별하게 했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기록이 해치가 정의롭고 청렴할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지혜롭게 판단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는 상서로운 동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해치는 정의롭고 청렴하며 지혜로운 동물인 것이다.
이런 성품으로 인해 해태는 흔히 관리의 덕목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청렴함과 강직함이 특히 요구되던 조선시대 대사헌의 관복 흉배에 해치 문양이 그려진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경복궁(景福宮) 광화문 앞의 해치도 궁궐에서 일하는 관리들에게 충성과 청렴의 덕목을 일깨워주기 위한 상징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재상이나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은 광화문 해태상의 꼬리에 손을 얹어 마음을 바로잡는 풍속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는 현대에 와서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석조 해태 한 쌍도 마찬가지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광화문의 해치
궁궐은 왕조의 수준 높은 문화와 아름다움이 가득한 곳이다. 궁궐은 왕과 왕비를 포함한 왕실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궁중 나인들이 거처했던 생활공간이자 왕과 신하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랏일을 논하던 최고의 정치공간이기도 했다. 궁궐이 지니고 있는 이와 같은 복합적인 성격은 궁궐의 장식물과 조형물이 다양한 유형으로 분화되는 근원적인 모티브가 되었다.
두 눈을 부릅뜬 해태는 처음에는 광화문 앞 6조 거리의 사헌부 앞에 있었으나 일제(日帝)에 의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1968년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해태는 요즘에도 많이 세우는데, 요즘 해태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광화문 앞의 해태보다 잘 조각된 것은 없다. 그만큼 광화문 앞의 해태는 우아한 선과 무게감 그리고 균형 감각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걸작이다. 원래 해태의 이마에는 뿔이 하나 있어야 하는데,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석공인 이세욱(李世旭)이 해태상을 조각하면서 뿔을 드러나게 만들어주지 않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를 정하니, 이것이 곧 상위(象魏)이다. 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는 말을 탈 수가 없는데, 이것은 노마(路馬)에 공경을 표하는 뜻에서이다.…”-《조선왕조실록》고종 7권.
《왕조실록》의 이 기록은 해태상의 용도를 말해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즉 해태상은 궁궐 문 앞에 세워져 궁궐의 경계를 정해주는 상징물이자 ‘여기서부터는 임금님이 계신 곳이니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라고 준엄하게 일러주는 하마비(下馬碑)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아울러 성을 드나드는 관리들이 해태처럼 청렴결백하고 백성을 호위하는 마음으로 나랏일을 하라는 의미까지 전달하고자 했을 것이다.
해태상은 궁궐 안에도 있다. 경복궁 근정전의 월대 난간 네 모퉁이와 자경전 굴뚝 십장생 전돌 장식에서도 해태를 볼 수 있다. 경복궁 근정전은 궁궐의 정전으로 최상위의 권위를 갖춘 정치공간이다. 근정전으로 가기 위해 근정문 계단을 오르게 되는 모든 이에게 ‘마음의 모든 거짓을 버리고 청렴한 마음가짐을 해야 할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계하는 뜻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전각 내에서 정사를 돌보는 임금의 공평무사(公平無私)를 비는 뜻도 담겨 있다고 해석된다.
2008년 5월 13일 서울시는 서울시만의 고유한 특징과 이미지를 담은 서울 상징물로 해치를 선정했다. 해태는 화재(火災)를 막는 물의 신수, 재앙을 막는 벽사()의 상징으로 궁중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중국의 사자, 일본의 唐犬
중국에서 유래된 해치는 한국과 일본에서 각기 다른 형태와 의미를 더해가며 발전되어 왔다. 특히 한국의 서울을 중심으로 해치의 분포도가 높게 나타나는데 서울의 중심부인 종로구와 중구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 때 지어진 궁궐을 비롯한 공공시설물, 주거시설, 상업시설, 경계지점 등에서 해태를 만나볼 수 있다. 이는 서울이 오랜 기간 우리나라의 수도 역할을 담당해 오면서 궁궐이 여럿 지어졌고, 그 내·외부에 상징적 요소로 ‘해치’가 많이 장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 분포한 해태상의 종류와 크기는 매우 다양하다. 주로 앉아 있는 전신상과 포복형이 많고 재료로는 화강석이 주로 사용되었다. 해태의 조형적 특징은 유형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머리에 뿔이 달려 있고, 목에 방울을 달고 있으며 몸에는 원형의 돌기, 날개, 소용돌이 문양 등이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치가 유래한 중국에서는 명·청(明·淸)대를 거치며 민간사회를 중심으로 사자(獅子·실제로 존재하는 사자와는 다른 상상의 동물)상이 발달하였다. 현재도 중국에서는 해치 대신 사자가 길상과 벽사의 의미를 지닌 수호신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개와 사자의 중간 형상을 한 당견(唐犬)이라는 이름의 신수가 신사(神社) 등의 입구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사찰 법당의 불단이나 업경대, 북받침, 촛대 등 목조 의식구에 해태가 많이 나타나는데 그 표정이 모두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사찰 조형물에서는 해태와 사자의 구분이 쉽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19~20세기로 시대가 내려올수록 해태와 사자의 구분이 어려워지는데, 이는 문수보살의 상징인 사자가 목각으로 조각되면서 해태 형상과 복합되는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불을 다스리는 물의 신
해태는 재화(災禍)를 막아주는 물의 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구전 설화에 따르면 해태는 물에 사는 수성(水性) 짐승이기 때문에 ‘수제화(水制火)’, 즉 ‘물이 불을 제압한다’는 오행설에 근거해 불을 막아주는 영수(靈獸)로 여겨왔던 것이다.
《동국세기(東國世紀)》에 보면 우리 선조들은 호랑이 그림은 대문에, 개는 광문에, 닭은 중문에, 그리고 해태 그림은 부엌과 같이 불기를 다루는 곳에 붙였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화마를 제압한다는 바람을 나타낸 것이지만, 그 밖에도 온갖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행운과 기쁨을 염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광화문 앞의 해태 역시 관리들의 충성과 청렴을 상징하는 의미 외에 화재를 제어한다는 바람도 함께 담고 있었다. 사실 경복궁 중건의 역사는 화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크고 작은 화재가 잦았다. 풍수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당시에는 관악산의 충만한 화기(火氣)를 그 원인의 하나로 보았다. 따라서 관악산의 화기로부터 정궁을 보호하기 위한 풍수 작업의 하나로 해태상을 설치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설득력이 있다. 남쪽의 관악산이 휴화산(休火山)이어서 그 불기가 경복궁 화재의 빌미가 된다는 지관(地官)의 주장에 따라 광화문 좌우에 해태상을 설치하여 화재를 막고 길운을 빌었다는 것이다. 해태는 조선시대 말, 대원군 집권기 때 경복궁, 창덕궁(昌德宮) 등 궁궐을 재건하면서 화재나 재앙(災殃)을 물리치는 신수 또는 벽사의 의미로 궁궐에 장식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해태는 순 우리 말 고어로는 ‘해치’라고 불리며 이는 ‘해님이 파견한 벼슬아치’라는, 태양숭배 사상의 일단을 담고 있는 이름이다. 태양숭배 사상에서는 해가 뜨면 귀신이 사라지고 악수(惡獸)는 숨으며 병자는 신음에서 깨어나므로 ‘해’는 재앙을 푸는 열쇠로 해석되고 있다. 이와 음이 같은 한자 ‘해(解)’도 “무당이 재앙을 풀어 없앤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편에서도 같은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태양이 그러하듯이, 해태 역시 화마와 악귀를 물리치고 인생사의 온갖 매듭을 풀어주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궁궐에서부터 지체 낮은 서민의 가정에 이르기까지 우리 곁을 지켜왔다.
귀여운 모습의 해태 그림
호랑이처럼 무서운 형상을 한 벽사용 신수로 널리 사랑받았는가 하면 서민들의 심성을 담고 있는 민화에서는 정직한 마음씨를 심어주고 참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서수(瑞獸)로 여겨져 주로 글을 읽는 서당이나 사랑방 벽에 그려 붙였다.
해태는 그 밖에도 다양한 문화재 속에서도 그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방 영빈 이씨의 인(印)을 살펴보면 앙증맞게 해태가 형상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선비들의 대표적 문방용품 가운데 하나인 연적 중에도 해태를 형상화한 청화백자가 더러 있다. 이 외에도 조선 후기의 민화에서도 익살스럽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한 해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민화 속의 해태는 대체로 무서운 존재가 아닌 귀여운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태는 옛것에만 존재하는 흘러간 문화유산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살아 있는 유산이라는 사실이다. 지역 간의 경계 표시에서 상품의 상표, 도시의 심벌에 이르기까지 해태는 그 긴 세월을 이어 우리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해태가 이렇게 오랜 세월 사랑을 받고 있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민족의 심성을 그만큼 잘 반영하고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태에는 우리 민족의 염원과 바람과 이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해태를 들여다보면 우리 민족의 심성과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광화문 앞의 해태를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중국 한(漢)대의 문헌 《이물지(異物誌)》에는 해태가 ‘동북지방 깊은 수풀이나 산 속에 사는 짐승으로 신선이 먹는다’는 먹구슬 나무 열매만 먹기 때문에 그 주위에는 파리 한 마리 얼씬대지 않는 정결하면서도 신비한 짐승으로 묘사되어 있다. 생김새는 우수마면(牛首馬面·소의 머리에 말의 얼굴)에 외뿔이 솟아 있고 둘로 갈라진 발톱을 가지고 있으며 푸른 비늘이 온몸을 덮고 있다고 한다.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돋아 있고 여름에는 늪가에 살며 겨울에는 소나무 숲에 산다고 한다.
해태의 모습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해태가 가진 것과 같은 ‘외뿔’은 서양에서도 신성한 동물의 상징으로 숭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 중세 회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각수(一角獸·Unicorn) 같은 동물이 대표적인 예다. 흰색 털을 가진 말의 몸집에 파란 눈을 하고 이마에 하나의 뿔이 나 있다는 이 전설의 동물은 흔히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그려져 순결과 정결을 상징하는 서수(瑞獸)로 통한다.
해태의 생김새는 원래 사나운 맹수를 단순화시켜 호랑이 혹은 표범처럼 꾸민 것이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멋이 강조되면서 모양도 조금씩 변했다. 조선시대에는 뾰족한 외뿔이었던 것이 지금의 사슴뿔처럼 변했고, 민화 속에서는 사자 갈기처럼 그려지기도 했다.
“邪氣를 물리치는 짐승”
해태의 성품에 대해서는 ‘힘이 세지만, 심성이 정의로워 사람들이 서로 싸우면 그중 사악한 자에게 달려들어 물어뜯는다’고 적고 있다. 해태의 성품을 묘사한 기록은 이외에도 매우 많다. 우리나라 기록으로는 《조선왕조실록》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 내가 임금이 되기 이전에 어떤 대간(臺諫)이 치관(冠·해태 모양을 수놓은 관)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모두 하는 말이 ‘해태는 사기(邪氣)를 물리치는 짐승이므로 그 뜻을 취한 것이다’고 하였다.”-《조선왕조실록》인조 44권
중국의 역사서 《한서(漢書)》에는 ‘해치는 송사에서 사악한 자를 잘 가려내어 재판을 담당한 법관, 어사는 그 상징으로 해치의 머리 모양을 본뜬 해치관(冠)을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해태는 곡직(曲直)을 능히 판단하는 충직한 짐승으로 ‘구덕(九德)까지 갖추고 있다’라는 기록도 보인다.
중국의 《산해람(山海覽)》에는 “동방의 나라 산 속에 해치라는 신비한 동물이 살고 있으며 요(堯)임금 때 이 신수(神獸)가 나타나 사악한 범죄자를 가려냈다”고 하였다. 그 밖에 다른 기록에는 먼 옛날 환인(桓因) 때에, 관리가 정확히 판결하기 힘든 어려움에 처하면 하늘에서 해치를 보내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구별하게 했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기록이 해치가 정의롭고 청렴할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지혜롭게 판단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는 상서로운 동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해치는 정의롭고 청렴하며 지혜로운 동물인 것이다.
이런 성품으로 인해 해태는 흔히 관리의 덕목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청렴함과 강직함이 특히 요구되던 조선시대 대사헌의 관복 흉배에 해치 문양이 그려진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경복궁(景福宮) 광화문 앞의 해치도 궁궐에서 일하는 관리들에게 충성과 청렴의 덕목을 일깨워주기 위한 상징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재상이나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은 광화문 해태상의 꼬리에 손을 얹어 마음을 바로잡는 풍속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는 현대에 와서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석조 해태 한 쌍도 마찬가지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광화문의 해치
궁궐은 왕조의 수준 높은 문화와 아름다움이 가득한 곳이다. 궁궐은 왕과 왕비를 포함한 왕실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궁중 나인들이 거처했던 생활공간이자 왕과 신하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랏일을 논하던 최고의 정치공간이기도 했다. 궁궐이 지니고 있는 이와 같은 복합적인 성격은 궁궐의 장식물과 조형물이 다양한 유형으로 분화되는 근원적인 모티브가 되었다.
두 눈을 부릅뜬 해태는 처음에는 광화문 앞 6조 거리의 사헌부 앞에 있었으나 일제(日帝)에 의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1968년 광화문을 복원하면서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해태는 요즘에도 많이 세우는데, 요즘 해태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광화문 앞의 해태보다 잘 조각된 것은 없다. 그만큼 광화문 앞의 해태는 우아한 선과 무게감 그리고 균형 감각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걸작이다. 원래 해태의 이마에는 뿔이 하나 있어야 하는데,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석공인 이세욱(李世旭)이 해태상을 조각하면서 뿔을 드러나게 만들어주지 않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를 정하니, 이것이 곧 상위(象魏)이다. 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는 말을 탈 수가 없는데, 이것은 노마(路馬)에 공경을 표하는 뜻에서이다.…”-《조선왕조실록》고종 7권.
《왕조실록》의 이 기록은 해태상의 용도를 말해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즉 해태상은 궁궐 문 앞에 세워져 궁궐의 경계를 정해주는 상징물이자 ‘여기서부터는 임금님이 계신 곳이니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라고 준엄하게 일러주는 하마비(下馬碑)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아울러 성을 드나드는 관리들이 해태처럼 청렴결백하고 백성을 호위하는 마음으로 나랏일을 하라는 의미까지 전달하고자 했을 것이다.
해태상은 궁궐 안에도 있다. 경복궁 근정전의 월대 난간 네 모퉁이와 자경전 굴뚝 십장생 전돌 장식에서도 해태를 볼 수 있다. 경복궁 근정전은 궁궐의 정전으로 최상위의 권위를 갖춘 정치공간이다. 근정전으로 가기 위해 근정문 계단을 오르게 되는 모든 이에게 ‘마음의 모든 거짓을 버리고 청렴한 마음가짐을 해야 할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계하는 뜻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전각 내에서 정사를 돌보는 임금의 공평무사(公平無私)를 비는 뜻도 담겨 있다고 해석된다.
2008년 5월 13일 서울시는 서울시만의 고유한 특징과 이미지를 담은 서울 상징물로 해치를 선정했다. 해태는 화재(火災)를 막는 물의 신수, 재앙을 막는 벽사()의 상징으로 궁중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중국의 사자, 일본의 唐犬
중국에서 유래된 해치는 한국과 일본에서 각기 다른 형태와 의미를 더해가며 발전되어 왔다. 특히 한국의 서울을 중심으로 해치의 분포도가 높게 나타나는데 서울의 중심부인 종로구와 중구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 때 지어진 궁궐을 비롯한 공공시설물, 주거시설, 상업시설, 경계지점 등에서 해태를 만나볼 수 있다. 이는 서울이 오랜 기간 우리나라의 수도 역할을 담당해 오면서 궁궐이 여럿 지어졌고, 그 내·외부에 상징적 요소로 ‘해치’가 많이 장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 분포한 해태상의 종류와 크기는 매우 다양하다. 주로 앉아 있는 전신상과 포복형이 많고 재료로는 화강석이 주로 사용되었다. 해태의 조형적 특징은 유형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머리에 뿔이 달려 있고, 목에 방울을 달고 있으며 몸에는 원형의 돌기, 날개, 소용돌이 문양 등이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치가 유래한 중국에서는 명·청(明·淸)대를 거치며 민간사회를 중심으로 사자(獅子·실제로 존재하는 사자와는 다른 상상의 동물)상이 발달하였다. 현재도 중국에서는 해치 대신 사자가 길상과 벽사의 의미를 지닌 수호신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개와 사자의 중간 형상을 한 당견(唐犬)이라는 이름의 신수가 신사(神社) 등의 입구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사찰 법당의 불단이나 업경대, 북받침, 촛대 등 목조 의식구에 해태가 많이 나타나는데 그 표정이 모두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사찰 조형물에서는 해태와 사자의 구분이 쉽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19~20세기로 시대가 내려올수록 해태와 사자의 구분이 어려워지는데, 이는 문수보살의 상징인 사자가 목각으로 조각되면서 해태 형상과 복합되는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불을 다스리는 물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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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초에 붙이는 해태 그림.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
《동국세기(東國世紀)》에 보면 우리 선조들은 호랑이 그림은 대문에, 개는 광문에, 닭은 중문에, 그리고 해태 그림은 부엌과 같이 불기를 다루는 곳에 붙였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화마를 제압한다는 바람을 나타낸 것이지만, 그 밖에도 온갖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행운과 기쁨을 염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광화문 앞의 해태 역시 관리들의 충성과 청렴을 상징하는 의미 외에 화재를 제어한다는 바람도 함께 담고 있었다. 사실 경복궁 중건의 역사는 화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크고 작은 화재가 잦았다. 풍수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당시에는 관악산의 충만한 화기(火氣)를 그 원인의 하나로 보았다. 따라서 관악산의 화기로부터 정궁을 보호하기 위한 풍수 작업의 하나로 해태상을 설치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설득력이 있다. 남쪽의 관악산이 휴화산(休火山)이어서 그 불기가 경복궁 화재의 빌미가 된다는 지관(地官)의 주장에 따라 광화문 좌우에 해태상을 설치하여 화재를 막고 길운을 빌었다는 것이다. 해태는 조선시대 말, 대원군 집권기 때 경복궁, 창덕궁(昌德宮) 등 궁궐을 재건하면서 화재나 재앙(災殃)을 물리치는 신수 또는 벽사의 의미로 궁궐에 장식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해태는 순 우리 말 고어로는 ‘해치’라고 불리며 이는 ‘해님이 파견한 벼슬아치’라는, 태양숭배 사상의 일단을 담고 있는 이름이다. 태양숭배 사상에서는 해가 뜨면 귀신이 사라지고 악수(惡獸)는 숨으며 병자는 신음에서 깨어나므로 ‘해’는 재앙을 푸는 열쇠로 해석되고 있다. 이와 음이 같은 한자 ‘해(解)’도 “무당이 재앙을 풀어 없앤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편에서도 같은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태양이 그러하듯이, 해태 역시 화마와 악귀를 물리치고 인생사의 온갖 매듭을 풀어주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궁궐에서부터 지체 낮은 서민의 가정에 이르기까지 우리 곁을 지켜왔다.
귀여운 모습의 해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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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화 속 해태. 해태는 일반적으로 무서운 것이 특징이지만, 때론 민화 속에서 귀엽고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져 장식되기도 했다. |
해태는 그 밖에도 다양한 문화재 속에서도 그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방 영빈 이씨의 인(印)을 살펴보면 앙증맞게 해태가 형상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선비들의 대표적 문방용품 가운데 하나인 연적 중에도 해태를 형상화한 청화백자가 더러 있다. 이 외에도 조선 후기의 민화에서도 익살스럽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한 해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민화 속의 해태는 대체로 무서운 존재가 아닌 귀여운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태는 옛것에만 존재하는 흘러간 문화유산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살아 있는 유산이라는 사실이다. 지역 간의 경계 표시에서 상품의 상표, 도시의 심벌에 이르기까지 해태는 그 긴 세월을 이어 우리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해태가 이렇게 오랜 세월 사랑을 받고 있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민족의 심성을 그만큼 잘 반영하고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태에는 우리 민족의 염원과 바람과 이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해태를 들여다보면 우리 민족의 심성과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광화문 앞의 해태를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