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연재] 世界化, 대안은 없는가 1 : 월간조선

오늘날 우리는 세계화라는 메가트렌드 아래 살고 있다. 누구도 세계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협을 동시에 던져준다. 세계화는 명암이 갈리고 득실이 갈린다. 결국 우리에게 실효를 가져올 수 있도록 대응하고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세계화는 앞선 자를 더욱 살찌게 하지만 뒤선 자가 쫓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그 둘 사이의 간격을 더욱 벌려주고 있다. 무한경쟁, 약육강식, 적자생존, 우승열패(優勝劣敗)라는 냉혹한 논리가 세계화 흐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지구적 불균형(imbalance), 불평등(inequality), 부정의(injustice) 현상이 비단 산업, 금융, 무역뿐만 아니라 계층, 문화, 환경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세계화는 자본주의가 전(全) 지구적으로 재구조화되면서 강화되고, 동시에 해체되는 양면성을 갖는다. 세계화라는 흐름에 거역하는 반(反)세계화 저항이 최근에 거세게 일고 있다. 뉴욕 월가에서 2011년 9월 17일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중에서도 금융세계화로 더욱 악화되고 있는 지구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초국적 사회운동이 촉발된 것이다. 그동안 반세계화 운동이 가장 잠잠하던 미국, 그것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한 뉴욕 월가에서 반세계화 시위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신(新)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한 IMF, WTO, World Bank와 같은 국제금융조직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고 있다. 그동안 각개전투식으로 진행된 반세계화 운동이 ‘지구정의’(global justice)라는 마스터 프레임으로 수렴되면서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대안(代案)세계화’를 지향하는 지구정의운동이 확산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친세계화와 반세계화라는 단순한 이분법(二分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 친세계화는 보수세력의 상징이고 반세계화는 진보세력의 깃발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세계화는 지식과 권력 사이의 헤게모니가 만들어놓은 현실이자 이념이다. 이제는 친(親)세계화와 반세계화를 이중운동(double movements)으로 보고 그것을 뛰어넘는 대안세계화(alt-globalization)를 위하여 진보와 보수가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이미 복합위기 시대의 징후라 할 금융위기, 기후변화, 식량부족, 에너지 고갈 등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세계화의 의미, 작동원리, 역사, 결과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세계화에 대한 대안세계화 운동의 주목할 만한 세 가지-개혁자본주의, 지역·생태주의, 금융개혁주의- 입장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화에 대한 오해와 이해

21세기의 화두는 세계화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화의 매력과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있다. 세계화의 시대가 지나가고 이제 그 대안을 모색하는 시대가 온 느낌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가 최근 유로존이 위태할 정도의 유럽 재정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다행히 유럽연합은 재정통합 협약을 통해 2012년 7월까지 1조1400억 유로를 조성하여 위기에 빠진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을 도울 예정이다. 이런 전 지구적 경제 불안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고삐 풀린 시장의 질주를 막고 금융과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규제정책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국가역할론이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과연 세계화가 앞으로도 존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세계는 인류의 화합과 공존보다는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국제주의(internationalism)에 대한 기대는 쇠퇴하고 제국주의(imperialism)가 다시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을 겪은 우리로서는 세계화에 대한 기대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환상이 ‘약탈로 가득한 지구’(global pillage)로 둔갑한 현실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저개발국가에서 선진국이 무차별적으로 진행한 자원개발과 상품판매 경쟁과정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세계는 문화충돌, 민족갈등, 자원갈등, 인종분쟁의 형태 아래 전쟁, 폭력,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 빈곤, 기아, 압제라는 불행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질서를 보더라도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무너지고 있다. 이제는 무극(無極) 혹은 비극(非極), 즉 G0의 형태로서 세계 무질서의 미래가 논의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이 부상하고 유럽이 쇠퇴하면서 헤게모니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G2의 대열에 중국이 유럽을 대신하여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풍부한 자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아세안 국가와의 경제협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 대규모의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세안 지역에 대한 중국의 돌진적 확장을 견제하고자 미국은 소위 ‘동남아로의 회귀’(Return to Southeast Asia)를 선언하면서 일본, 호주, 필리핀, 베트남 등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추진하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세계화 이해보다 오해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

세계화의 전도사 토머스 프리드먼.

그럼에도 오늘의 세계는 나라들 사이의 상호 의존 정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지고 좁아지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프리드먼(T. L. Friedman)이 묘사한 것처럼 “세계는 평평하다”는 것을 최근 정보통신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대로 더욱 실감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앱 설치(카카오톡, iMessage)로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세계화의 추세는 EU, NAFTA, ASEAN, APEC, MERCOSUR, PU 등과 같은 지역주의 형태의 초(超)국가주의가 대두되었다. 또한 구소련, 구유고, 캐나다, 스페인, 멕시코 등에서 인종, 종교, 언어에 기초한 분리주의 혹은 소(小)민족주의의 등장이라는 통합과 분화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이렇듯이 세계는 한편으로 지역을 중심으로 나라들 사이에서 상호의존이 늘어나면서도 다른 한편 생존경쟁이 심해지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즉 세계는 통합적일 뿐만 아니라 분열적인 이중적 작동원리 속에서 협력, 갈등, 타협과 반목현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후반 냉전체제의 해체와 더불어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자본주의 체제는 5대양 6대주 구석구석으로 확산되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 체제라는 단일 경제체제를 구축하였다. 기존의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가 간 경제활동, 주권행위, 사회교섭 및 문화교류 등의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 단계가 국경선을 수평적으로나 수직적으로 가로지르는 ‘다국화’(multinationalization) 혹은 ‘초국화’(transnationalization) 단계를 거쳐 이제는 기능적으로 완전히 하나의 결정체로 통합되었다는 의미의 ‘세계화’(globalization)의 단계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세계화에 관해 이해보다 오해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흔히 세계화는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우세하였으나 요즘은 나쁜 면도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화는 인류에게 득이 될 수도 있지만 손실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실상 세계화의 의미, 기제, 역사, 결과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세계화를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 무엇이 세계화를 추동하는가? 세계화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언제부터 세계화는 시작되었고,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세계화의 결과는 무엇인가? 등에 대한 논쟁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근거를 갖고 있을 때만이 세계화에 대한 오해를 줄이고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세계화는 흔히 경제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자본, 노동, 상품, 서비스 등이 국경을 넘어 교류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세계화는 자본주의를 모태로 기능 하면서 산업적 축적에서 금융적 축적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결과 국민경제가 사라지고 있으며, 국가의 수호자로서 기업도 국적이 없어진다는 주장처럼 세계화로 인하여 국민국가의 정책적 자유도가 약화된다는 주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세계화를 추동하는 요인은 이윤실현을 확대하려는 자본의 논리와 전 지구적 연결망을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 정보통신, 교통운송의 혁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계가 더욱 좁아지면서 지방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사이의 체계적 상호연결과 소통이 강화되면서 이른바 ‘세계지방화’(glocalization)와 ‘지방세계화’(locabalization) 현상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인류는 내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절대적 위치 및 시간 속에 갇혀 있기보다는 정보통신기기를 통해 ‘시공간적 압축’으로 표현되는 실시간 정보공유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다. 이제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전 지구적 사안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요 행위자들은 서로 연결됨으로써 네트워크로서의 세계화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지구시민으로 국제정책 결정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제도를 통한 정치전술’을, 때로는 연대활동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영향의 정치전술’을 행사하기도 한다.

세계화 부정보다 인간적 세계화로 보완해야

세계화가 모든 사회의 성장과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옹호의 입장이 있는가 하면, 빈곤과 불평등을 가져온다는 반대론도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세계화의 명암을 극복하기 위하여 대안세계화론이 제기된 바 있다. 친세계화론자들은 세계화가 자유로운 교역과 거래를 통해 지구 전체의 부를 늘림으로써 개도국들이 후진의 멍에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은 국가 사이뿐만 아니라 국가 안에서도 개인, 집단, 계층 사이의 불평등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반세계화론자들은 초국적 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화가 ‘20 대 80’ 더 나아가 ‘1 대 99’라는 빈부격차를 가져온다고 파악한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원적인 접근, 즉 제국주의의 전 세계적 확장을 막거나, 지역 수준에서는 주민의 권리를 강화하거나 집합적인 재산권의 확보를 통해 세계화의 흐름을 저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대안세계화론자들은 세계화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니는 모순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적 세계화’(humane globalization)를 위해 풀뿌리 시민의 힘 키우기와 정부의 적절한 개입과 규제 정책을 강조한다.

그동안 세계화는 시장 중심 이데올로기에 방점을 두었다. “국가를 개방하고 시장에 의존하라. 그러면 천 년 왕국이 도래할 것이다.” 자유무역, 시장개방, 조세감면, 기업지원, 외자유치, 규제완화, 복지축소, 민영화 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자본주의 세계시장 메커니즘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될 경우-물론 선진국의 경우는 자국 농업 및 유치산업 보호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일종의 초국적 제도와 정책이 위로부터 강제되기 때문에 각국의 민주주의가 위축될 수 있는 위험이 나타나 왔다. 국가가 왜곡된 자원배분을 시정하는 데 주저한다면 과도한 경쟁원리에 의해 분배가 진행돼 공정성과 형평성의 악화로 이어진다.

한국사회도 메가트렌드로서 세계화를 따르고 있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세계화는 민족주의의 팽창과 국제주의의 형성이라는 역설 현상을 낳고 있다. 최첨단을 상징하는 렉서스와 전통을 중시하는 올리브나무 사이의 갈등 아래 맥도널드와 지하드 사이의 첨예한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세계화의 모순된 상황 속에서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필자들은 세계화를 국가발전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국제무대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번영은커녕 생존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세계사의 조류이다. 1890년대 개항, 1910년 식민지화, 1945년의 광복,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거대한 지구인류적 변환에 대해 선취적이고 전향적인 대처를 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 보완책으로 떠오른 지구정의운동

2003년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내걸고 출범한 세계사회포럼 회의.

인류가 자본주의 이후 포스트모던이라 불리는 정보사회, 지식사회, 녹색사회, 양자사회에 들어섰다고 해도 그 실체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세계화란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재구조화되면서 강화되고 동시에 해체되는 양면성을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전자는 초세계화론자의 입장이며, 후자는 세계화회의론자의 입장이다. 초세계화론자는 세계화를 인류역사의 새로운 기원으로 보고 세계시장의 논리에 의해 국민국가의 권위와 역할이 약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화의 결과에 대해 신자유주의자들은 모든 국가가 세계경제 안에서 한 가지 이상의 비교우위를 지니기 때문에 일부 국가는 손해를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부의 증진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이에 반해 신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국가 간 그리고 국가 내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파악한다. 초국가적 거버넌스가 중요해지면서 국가의 사회복지와 같은 정책적 능력은 줄어들 것이라고 반박한다.

세계화회의론자들은 세계화가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이미 수세기 전부터 이루어져 온 것으로 본다. 세계화의 황금기는 19세기 말에 있었으며, 오히려 현재 지역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화보다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세계화는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며 소수 선진국과 이에 모태를 둔 초국적 기업이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통제하고 있어 개도국들은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글로벌 거버넌스라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숨겨진 전략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친세계화와 반세계화의 와중에서 우리는 이 둘을 극복하려는 대안세계화 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구정의운동(global justice movements)이다. 지구정의운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국가나 국제기구의 정책을 비판하고 이에 저항하는 활동가와 운동단체 간의 초국적 연대활동을 의미한다. 지구정의 마스터 프레임으로 수렴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운동영역의 참여자 스스로 전 지구적 차원의 운동대상, 즉 ‘그들’(otherness)에 대한 인식과 ‘우리’(we-ness)라는 정체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담론개발과 초국적 저항운동에 안정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경, 인권, 노동, 여성, 농민 운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기 위해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즉 지구민주주의를 지향하며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의 출현이다.

세계사회포럼은 초국적 수준에서 다양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다. 민주적인 토론을 핵심 운영원리로 삼고 있다. 모두 14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세계사회포럼 헌장’은 사회포럼이 다양한 운동 전략과 전술을 새롭게 제안할 수 있는 공간이며, 참여자의 다양한 운동 경험을 나누고 배우는 학습공간이며, 그리고 자본주의 세계경제 체제에 반대하는 다양한 운동조직을 수평적이고도 수직적으로 상호 연계할 수 있는 네트워크 공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거대하고 다양한 캠페인, 집담회 및 문화행사가 분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사회포럼에서 시민사회 스스로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효과적인 대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내부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판의 요지는 사회포럼을 하나의 ‘과정’(process)으로서의 행사로 방치하기보다는 보다 투명하고 민주적인 조직운영 원리를 토대로 한 중앙집중적 조직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운동의 효과와 파급력을 높이는 데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사회포럼은 지구정의운동의 영양분을 제공하는 토양이었고, 대안세계화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논의할 수 있는 초국적 공론장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지난 10여 년에 걸친 세계사회포럼 개최를 통해 다양한 운동 부문은 수렴과 연대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예컨대, 환경 부문은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와 기후정의(climate justice)를 주창하며 농민, 노동, 인권 부문과의 연대활동을 전개하였다. 인권 부문은 시민의 정치적 권리에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포함하는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주장하며 다양한 부문과의 연대활동을 전개하였다. 금융세계화 반대운동 역시 외채탕감과 국제금융기구 개혁을 통한 경제정의(economic justice)를 주창하며 농민, 환경 부문과의 연대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말미암아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여성운동은 경제적 불평등 및 다양한 차별 철폐를 통한 젠더정의(gender justice)를 요구하였다. 농민은 거대곡물기업의 지역농업 잠식현상으로 야기되고 있는 식량주권 위기와 식량정의(food justice)를 주장하며, 환경운동과의 연대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회운동 부문들이 ‘정의’라는 마스터 프레임으로 수렴하면서, 환경과 농민, 인권과 여성, 환경과 노동 운동 부문의 만남과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

대안세계화 운동의 주요 입장

2011년 5월 12일 세계 공정무역의 날(14일)을 이틀 앞두고 iCOOP생명 직원들이 ‘We Love Fair Trade’란 패널을 들고 거리를 다니며 공정무역 참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대안세계화 운동은 노동, 환경, 여성, 농민, 금융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개되었고 모든 지역에 두루 걸쳐 진행되고 있다.

첫째, 개혁 자본주의의 입장은 자본주의의 고삐 풀린 행태와 무제한적인 이윤추구 활동을 억제하는 자본주의를 지향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CSR) 강조와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의 육성을 들 수 있다. 전자는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이 환경보호, 노동조건 개선, 혹은 지역사회의 지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 제고에 기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자는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동시에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조직으로 취약계층에 일자리나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한다. 스티글리츠(J. Stiglitz)가 주창한 ‘인간적 얼굴을 한 자본주의 세계화’ 역시 초국적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업지배구조 개선, 글로벌 법률 도입, 부패척결 등과 같은 방법을 동원하여 달성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회적 기업의 대표적 옹호자로 공익을 기업적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보면서, 사회적 기업의 성공요인으로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은 개혁자본주의 노력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윤리적 경영 혹은 사회적 책임 주장이 기업의 생리를 모르는 순진한 사고로서, 이 모든 활동은 기업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기업이미지 제고 전술에 불과한 것이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의 경우 아직 실험적인 단계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단순히 기업 마케팅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념적 비판보다는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후견기업, 지자체, 지역시민사회,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한국 상황에 적합한 사회적 기업의 새로운 모델을 찾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지역·생태주의 입장에 대해서는 많은 시민이 관심을 보이며 구체적인 사업에 대한 참여도 높다. 지역·생태주의의 대안은 바로 ‘협동조합’이다. 국가 혹은 의회주의를 통한 변화나 자본(시장)이 그 대안도 아니기에 결국 시민(민중) 스스로 연대하여 협력적인 살림살이를 모색하는 생협이 대안이라고 본다.

한국의 경우 안전한 먹거리 구매 생협을 목표로 운영 중인 조합이 2008년 조사에 따르면 158개 회원조합, 30만명의 조합원과 357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생협은 친환경 농산물 중심의 사업이기 때문에 시장 규모의 확대 가능성이 제한되어 있고, 일반 농산물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대형 유통업계가 친환경 농산물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에서 생협의 입지는 점차 좁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역·생태주의의 또 다른 대안은 바로 ‘공정무역’이다. 다양한 사례가 있지만 커피의 경우, 전 세계 커피 원두 판매의 1.5%만이 공정무역으로 거래될 정도로 공정무역의 규모는 매우 미미한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아름다운가게, 두레생협, 한국YMCA, (주)페어트레이드코리아, 한국공정무역연합, iCoop 등이 중심이 되어 네팔, 팔레스타인, 동티모르 등지에서 커피나 초콜릿을 공정무역으로 거래한다. 그 규모가 2006년의 4억1000만원에서 2008년 28억5000만원으로 크게 증가하였지만 그 효과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옥스팜의 공정무역의 한계를 비판한 월든 벨로(W. Bello)의 주장처럼 공정무역을 통한 지역과 생태계 보호운동은 단순한 ‘온정주의’적 접근에 불과하며, 제3세계의 근본적인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이 지역·생태주의 주장처럼 현재 전 지구적으로 착근되어 작동하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체제를 부정하며 그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매우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환경파괴를 주도하는 현 자본주의 세계경제 체제를 저지하고 환경친화적인 대안사회를 형성할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괄호 안에 넣고 있다.

셋째, 금융개혁주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현 세계화의 본질을 금융세계화로 등치시키는 입장으로 이는 세계화로 인해 금융적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그 결과 전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주장한다. 금융세계화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주도하고 있는 국제금융조직 3인방-IMF, WTO, World Bank-을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프랑스의 금융세계화 반대 조직인 아탁(ATTAC)의 경우 투기자본에 대한 과세를 통해 금융 통제와 금융 공공성을 높이는 것을 강조하며 그 핵심 도구로 토빈세(Tobin Tax)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세계화 문제가 단순히 금융의 문제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원을 둘러싼 전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동시에 고려하여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개혁주의 입장은 세계경제 위기를 단순히 금융의 문제로만 한정시킨 채, 실물 부문의 위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또한 토빈세 도입 이후 어떤 방식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누가 그것을 관리하며, 그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여, 세계화의 폐해라 할 기아와 빈곤, 자연파괴, 자원고갈 등에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입장에 대한 한국의 정부(중앙과 지방),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의 입장은 무엇일까? 필자들은 앞으로 이슈별로 구체적인 대안 논의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바람직한 한국의 선택을 미래지향적으로 도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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