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金九)는 9월14일부터 10월4일까지 삼남(三南)지방을 순방했다. 과도입법의원(過渡立法議院) 선거를 앞두고 한독당(韓獨黨)의 조직강화를 위한 지방유세였으나 김구에게는 49년 전에 탈옥수(脫獄囚)의 몸으로 방랑길에 방문했던 연고지를 찾는 ‘센티멘털 저니’(sentimental journey)의 성격이 없지 않았다.
미군정부는 10월12일에 법령 제118호로 「조선과도입법의원의 창설」을 공포했다. 중간파들을 주축으로 입법자문기구를 구성하라는 국무부의 훈령이 있은 지 4개월 만에 실현을 보게 된 것이었다.
입법의원 선거는 민선(民選)의원 45명, 관선(官選)의원 45명을 뽑을 예정이었다. 민선의원 선거는 10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행정단위별로 4단계에 걸친 간접선거로 실시되었다.
이승만(李承晩) 추종자들이 많이 당선되자 김규식(金奎植)의 요청으로 서울시(市)와 강원도에서 선거무효가 선포되었다.
관선의원은 합작위원회(合作委員會) 멤버들을 중심으로 선정되었으나 여운형(呂運亨) 등 좌익(左翼)인사들과 한독당원 등 7명이 의원직을 거부했다. 입법의원은 12월12일에 개원했다.
1. 金九의 三南地方여행
김구는 1946년 9월14일부터 10월4일까지 3주일 동안 경상남도와 전라도 일대를 순방했다. 여행의 주된 목적은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이 과도입법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구와 안재홍(安在鴻)에게 지방유세를 하도록 한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안재홍은 강원도 강릉(江陵) 지방을 순방했다.1) 그러나 김구에게 그 여행은 48년 전 탈옥수의 몸으로 옥중 동료들을 찾아 방랑하던 연고지를 찾아가는 센티멘털 저니(sentimental journey·감성여행)이기도 했다. 《백범일지》에는 그러한 이야기만 대충대충 적어 놓았다. 또 하필이면 이때에 인쇄노조의 총파업으로 신문들도 여러 날 발행이 중지되고 있었으므로 아쉽게도 여행의 전모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釜山 戰災民수용소에 1만원 희사
김구는 9월14일에 엄항섭(嚴恒燮), 안우생(安偶生), 선우진(鮮于鎭)과 소설가 김광주(金光洲)를 대동하고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김구는 전재민수용소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귀환동포 등 수용자들의 참상을 돌아보고 현금 1만원을 희사했다.2)
부산에서는 자동차 편으로 김해(金海)를 거쳐 9월15일 오후 2시에 진해(鎭海)에 도착했다. 독립촉성국민회 지부, 애국부인회 지부 등의 간부들과 지방관공서장들을 포함한 많은 군중의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김구의 지방순회를 주관한 것은 주로 독촉국민회와 애국부인회 지부를 중심으로 한 지방 유지들이었다.
이튿날 김구는 해안경비대 총사령관 손원일(孫元一)의 안내로 해안경비대 열병식을 마치고 경비선을 타고 통영(統營)으로 가서 임진왜란 때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적지인 한산도(閑山島)의 제승당(制勝堂)을 방문했다. 충무공의 영정에 참배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제승당’이라는 현판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안내자는 일본점령기에 뗀 것을 아직 달지 못했다고 했다. 김구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여 당장 달게 하고 진해로 돌아왔다. 진해에서 공작창 등을 돌아보고 오후 1시에 마산(馬山)으로 향했다. 안우생과 김광주는 진해에서 서울로 올라갔고 김구와 함께 강연을 할 엄항섭과 수행비서인 선우진만 함께 움직였다. 마산에 도착한 김구는 마산부청에서 일반 유지들을 접견한 다음 독촉국민회 마산지부 사무실로 옮겨 관내 사정을 청취했다.3)
다음 도착지는 진주(晉州)였다. 진주에서는 함(咸) 판사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함 판사 부인이 황해도 출신으로서 경교장에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진주에서는 강연도 했고 촉석루(矗石樓)도 구경했으며 또 극빈자들을 위해서 9천원을 희사했다고 하나,4) 자세한 기록이 없다. 김구는 사천(泗川)에 가서 강연을 하고 진주에서 다시 일박한 뒤에 통영으로 나와서 여객선 편으로 전라남도 여수(麗水)로 갔다. 여수와 순천(順天)에서도 환영강연회가 열렸다. 순천에서 강연회를 마치고는 송광사(松廣寺)를 둘러보았다.5)
김구는 전라남도 순회여행 때의 일 가운데에서 9월22일에 보성군 득량면(得粮面) 쇠실마을〔송곡:松谷〕을 찾은 일을 가장 자세히 적어놓았다. 그것은 김구의 센티멘털 저니의 대표적인 기술이었다. 일찍이 방랑생활을 할 때에 김구는 안동 김씨 집성촌인 이 마을의 김광언(金廣彦)의 집에서 40여일이나 머물렀다.
40여일 머물렀던 安東金氏 集姓村 찾아
“보성군 득량면 득량리는 48년 전 망명할 때에 수삼 개월이나 머물렀던 곳이다. 그곳은 나의 동족〔同宗〕들이 일군 부락인데, 동족들은 물론이고 인근 지방 동포들의 환영 역시 성황을 이루었다. 입구의 도로를 수리하고 솔문을 세웠으며, 환영 나온 남녀 동포들이 도열하여 나를 맞이하는지라 차를 멈추고 걸어서 동네로 들어갔다.
내가 48년 전 유숙하며 글을 보던 고 김광언씨의 가옥은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환영하니, 불귀의 객이 된 김광언씨에 대한 감회를 금할 수 없었다. 그 옛날 내가 식사하던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음식을 대접하고자 한다 하여, 마루 위에 병풍을 두르고 정결한 자리에 편히 앉으니, 눈앞에 보이는 산천은 예전 그대로이나 옛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모인 동포들을 향하여
‘혹시 나를 아는 이가 있으시오?’
하고 물으니, 동네 여자 노인 한 분이 대답하였다.
‘제가 일곱살 때에 선생님 글공부하시던 좌석에서 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밖에 동족 중 한 사람인 김판남(金判男)씨가 나와서, 48년 전 나의 필적이 완연한 책 한 권을 내보이며 옛일이 어제 같다고 말하였다. 전에 나와 알던 이는 이 두 사람뿐이었다.
그중에 또 잊지 못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다름 아닌 48년 전 동갑 되는 선(宣)씨 한 사람이 있어서 나와 격의 없이 지내다가 내가 그 동네를 떠날 때에 그 부인의 손으로 만든 필낭 하나를 작별 기념으로 내게 주었던 일이 눈에 선하다. 그 선씨에 대해서 물으니,
‘선씨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부인과 가족은 보성읍(寶城邑) 부근에 거주합니다. 그 노부인 역시 옛일을 잊지 않고 선생님이 지금 가시는 보성읍으로 마중 나온다 합니다’
하고 소식을 전하였다.
그날 그 동네를 떠나 보성읍에 도달하니, 과연 그 부인이 전 가족을 거느리고 마중 나온 광경은 참으로 감격에 넘치었다. 만나는 자리에서 나이를 물으니 나와 역시 동갑이라, 과거사를 잠깐 토론하며 만나고 헤어지는 예를 마치었다.”6)
김판남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온 책이란 김구가 김광언의 집에 머물면서 애독하고 헤어질 때에 정표로 선물했던 《동국사략(東國史略)》이었을 것이다(《月刊朝鮮》 2002년 8월호 <방랑 끝에 찾아간 麻谷寺에서 중이 되다> 참조).
光州 戰災民村에 ‘百和’라고 이름지어 줘
보성의 환영강연을 마친 김구는 강진(康津)을 거쳐 목포(木浦)로 이동했다. 목포는 인천감옥에서 같이 탈옥한 양봉구(梁鳳九)를 찾아 지게를 지고 노동자로 변장하고 와서 그를 만났던 곳이다. 목포에 도착하자마자 김구는 양봉구의 유가족과 그 밖의 소식을 알아보았으나 아무런 단서를 얻지 못했다. 목포에서는 무안(務安)을 다녀오는 등으로 이틀 밤을 묵었다.
“가는 곳마다 환영 열기는 이루 언급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역로마다 수많은 동포들이 대기하다 환영하니, 어떤 날은 3, 4차를 경유한 적도 있었다”고 김구는 썼다.7)
목포를 떠나 광주(光州)로 향하는 길에 함평(咸平)군을 지날 때였다. 수많은 군중이 길을 막고 잠시라도 함평읍에 들러달라고 간청했다. 할 수 없이 들러 학교운동장에서 환영강연을 마치고 날이 저물 무렵에 나주(羅州)읍에 도착했다. 김구는 먼저 방랑시기에 주인의 호의로 보름이나 머물렀던 육모정〔六角亭〕이 있는 이 진사 집 소식을 물었다. 그러자 이 진사 집은 함평읍이고 아까 강연회에서 만세를 선창한 사람이 바로 이 진사의 둘째아들이라고 했다. 오랜 세월에 김구는 나주와 함평을 섞바꾸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8) 나주에서는 독촉국민회 나주지부에 ‘만민일심(萬民一心)’이라는 휘호를 써주기도 했다.9)
김구가 광주에 도착한 것은 9월24일이었다.10) 광주천변에 천막을 치고 열악한 생활을 하는 전재민들과 극빈자들의 참상을 살펴본 김구는 광주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그동안 여행하면서 받은 주단, 포목, 해산물, 금품 등의 선물들을 서민호(徐珉濠) 광주 부윤에게 주면서 전재민들을 돕는 데 보태라고 했다. 서 부윤은 이 돈으로 판잣집 100채를 지어 난민들에게 제공했는데, 김구는 “100가구가 가난하지만 화목하게 살자”는 뜻으로 ‘백화(百和)’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11) 서민호는 10월16일에 전남지사로 발령이 났다.12)
광주강연회는 다른 어느 곳보다 성황을 이루었을 것인데도, 《백범일지》나 선우진의 회고록에도 언급이 없고 짐작할 만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김구가 다녀오고 난 뒤 광주에는 10월12일에 한독당 전남지부가 결성되었는데, 이때의 지부 결성식에는 중앙당에서 안재홍, 명제세(明濟世), 박용희(朴容羲) 등이 참석했다.13)
全州에서 金亨鎭의 친족들 만나
다음 방문지는 전라북도 전주(全州)였다. 전주는 김구가 젊어서 동학농민봉기의 패장으로 숨어 지낸 청계동(淸溪洞)에서 만나 같이 청국 여행을 한 김형진(金亨鎭)과의 사연이 얽힌 고장이었다. 전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을 김구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전주에 도착하니 무수한 남녀동포들이 출영하여 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김맹문(金孟文)씨와 그 사촌동생 김맹열(金孟悅), 고종사촌형 최경열(崔景烈) 세 사람은 특히 역사적 관계가 두터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21세 때에 신천(信川) 청계동 안중근(安重根) 의사 부친 안 진사 태훈(泰勳)씨 댁에서 상봉한 김형진씨의 아들, 조카, 생질이었다. 전주 동포들의 성대한 환영이 끝난 뒤에 김맹문 외 세 사람의 전 가족을 상대로 한 특별 환영기념사진까지 촬영하니 피차간에 고 김형진씨에 대한 감회를 금할 수 없었다.”14)
김형진의 친족들은 뒷날 따로 경교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9월28일 아침에 전주를 출발한 김구는 김제(金堤)에 도착하여 중앙국민학교 교정에서 성황리에 강연회를 거행하고, 오후에는 이리(裡理)로 이동했다. 이리에서는 4만 시민의 환호 속에 이리고녀 교정에서 독촉국민회 주최의 강연회가 열렸다.15) 이어 군산(群山)으로 간 김구는 9월29일 오전에 군산을 시찰하고, 자주독립전취를 고취하는 강연회를 가졌다. 강연회가 끝난 뒤에 김구는 전재동포들을 위하여 현금 1만5천원을 희사했다.16)
군산을 떠나서 대전(大田)으로 가는 길에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江景)에 들렀다. 강경은 김구가 인천감옥 시절에 가까이 지낸 공종렬(孔鍾烈)의 고향으로서 탈옥한 뒤에 찾아갔다가 씁쓸한 경험을 하고 우울하게 떠나온 곳이었다(《月刊朝鮮》 2002년 8월호 <방랑 끝에 찾아간 麻谷寺에서 중이 되다> 참조). 공종렬의 소식을 탐문해 보니 젊어서 자살하였고 자손도 없었다. 김구가 공종렬의 집에 머물 때에 있었던 괴변은 그 친척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했다.17)
대전에 도착한 김구는 그곳에서 경교장 운전사 정태훈이 모는 차를 타고 10월4일에 서울로 돌아왔다.18)
“國父는 李博士 한 분이면 돼”
그런데 이때 김구의 삼남지방 순방의 실상은 같은 시기에 강릉을 방문한 안재홍의 동향에 관한 미군첩보대(CIC)의 보고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안재홍은 9월20일에 강릉에 도착하여 한국독립당의 목적을 설명하고 한독당 지부를 조직하기 위한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회에는 1천여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강연이 끝난 뒤에는 강릉중앙국민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연설을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한독당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호텔의 자기 방으로 초청하여 간담회를 가졌다.19)
김구는 귀경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다시 경상남도를 여행했다. 김해에서 열린 수로왕릉 추향제(秋享祭)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김구는 《백범일지》에 “그때에 나주를 떠나 김해에 도착하니 때마침 수로왕릉의 추향이었다”라고 썼으나 이는 착오이다. 수로왕릉의 추향일은 음력 9월15일로서 1946년에는 10월9일이었다. 이때에는 엄항섭은 같이 가지 않고 선우진만 수행했다.20)
김해에 도착하자 김(金)씨와 허(許)씨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참배준비로 김구에게 사모각대(紗帽角帶)를 갖추어주었다. 평생 처음으로 사모각대를 갖추고 수로왕릉에 참배하는 김구는 무척 감개무량해 했다.
추향제를 마치고 그 길로 진전(鎭田)을 향해 출발했다. 진전은 상해임시정부의 경상도 책임자로 국내에 파견되어 활동하다가 옥사한 이교재(李敎載) 지사의 고향이었다. 이교재 지사의 묘를 참배하고 유가족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동래에서 1박했다.21)
지방순회를 하면서 어느 도시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도시 입구에 들어서자 “국부(國父) 김구 선생 환영”이라고 쓴 플래카드가 길을 가로질러 걸려 있었다. 플래카드를 본 김구는 “우리나라에 국부는 이 박사 한 분이면 돼”라면서 수행하는 선우진에게 플래카드를 치우게 하라고 말했다. 김구는 평소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초대 대통령은 이 박사가 되어야 한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22) 김구의 이승만에 대한 의식이 이때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2. “나의 人民은 나와 함께 있소”
좌우합작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운영되기를 기대하면서 설립이 추진되어 온 입법기관 설치 문제는 좌우합작 작업이 지지부진함에 따라 지연을 거듭한 끝에 10월7일에 ‘좌우합작 7원칙’이 발표되자마자 10월12일에 군정법령 제118호로 「조선과도입법의원의 창설」이 공포되었다. 모스크바 협정에 따른 임시한국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개혁의 기초로 사용될 법령 초안을 작성하여” 미군사령관에게 제시하는 임무를 지닌 입법자문기구를 설치하라는 국무부의 「대한정책」이 시달된 지 4개월이나 지나서야 실현을 보게 된 것이다. 신문들은 일제히 법령 제118호의 전문을 자세히 보도하면서 큰 관심을 보였다. 10월14일에는 군정청 사법부 차장 전규홍(全圭弘)을 입법의원 사무총장으로 임명하고,23) 10월18일에는 러치(Arecher L. Lerch) 군정장관이 선거계획서를 좌우합작위원회에 전달했다.24)
美軍政長官이 거부권 가져
법령 제118호는 먼저 이 법령의 목적은 과도입법기관을 설립하여 정부에 민주적 요소의 참여를 증대시킴으로써 모스크바 협정에 규정한 전 조선의 임시민주정부를 조속히 수립하여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국가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제1조). 법령은 이어 조선과도입법의원은 정부의 한 기관으로 설치되고(제3조), 입법의원에서 제정한 법령은 군정장관이 동의하여 합법적으로 서명 날인하고 관보에 공포하는 때에 효력이 있다고 하여(제5조), 입법의원에서 제정하는 법령에 대해 군정장관이 부인권[거부권]을 갖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법령은 또 군정청의 권한은 경감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입법의원의 모든 직무와 권한은 임시조선민주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조선군정청의 권한하에서 행사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제11조). 그리고 군정장관은 입법의원의 해산권도 갖는다고 못박았다. 조선공산당과 민족전선 등 좌익 정파들은 이러한 점을 들어 입법의원이 일본점령기의 중추원(中樞院)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비판했다.25)
입법의원의 성격과 관련하여 물의가 분분하자 김규식(金奎植)은 10월16일에 번역에 착오가 있었다는 등 구차한 담화를 발표했으나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그는 입법의원은 미군정을 연장시키거나 미군정의 자문기관으로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하고, 하지 사령관, 미소공위 미국 수석대표 브라운(Albert E. Brown) 소장, 버치(Leonard M. Berstch) 중위, 여운형(呂運亨) 그리고 자신이 회합했던 이야기까지 소개했다. 이 회합에서 하지는 “입법의원이 미군정청의 공구(工具)가 되지 않기를 원한다”고 했고, 이에 자기도 “우리도 역시 행여나 명의로든지 실지로든지 공구나 자문기관의 색채를 갖지 않게 해야만이 합작위원회에서 협조도 할 수 있고 노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26) 그러나 그것은 논란에 대한 해명이나 반론은 될 수 없었다.
군정장관의 부인권에 대한 물의에 대해서는 러치 장관이 10월18일에 입법의원의 법령제정권을 존중하겠고, 부인권은 (1)하지 장군과 그의 막료를 조선으로부터 축출시키는 모든 법률, (2)미곡수집의 책임은 미국인에게 부담시키고 배급사무만 조선인에게 부담시키는 모든 법률 (3)조선의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법률에 대해서만 행사하겠다고 발표했다.27)
韓獨黨은 法令修正 요구하고
법령 제118호가 발표되자 가장 진지한 반응을 보인 것은 한독당이었다. 한독당은 10월15, 16일 이틀 동안 임시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입법의원 설치법령에 대하여 신중히 검토한 다음 (1)과도입법의원이 민의의 대표기관임을 표시할 것, (2)입법의원이 법률을 제정할 직무와 권한이 있음은 물론 예산 결산을 심의할 권한이 있음을 규정할 것, (3)군정장관의 입법의원 해산조항을 삭제할 것, (4)입법의원에서 제정한 법령에 대하여 군정장관이 부동의[不同意: 거부권]로 재의(再議)를 요구할 때에는 입법의원의 법정 출석의원수 4분의 3의 결의로 실시케 할 것이라는 4개 조항의 수정을 요구했다.28) 이러한 수정요구는 입법의원이 독립공화국의 의회의 권능을 갖도록 수정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을 운영해 온 경험에 따른 것이었으나, 한독당이 입법의원의 설치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한독당은 또 15, 16일 이틀 동안 상임위원회를 열어 18일에 개최될 전국지부당 위원장회의를 준비했다.29) 그리고 18일 오전 10시부터 운니동(雲泥洞) 당사 회의실에서 열린 전국지부당 위원장회의에는 김구, 조소앙(趙素昻) 정부위원장 및 중앙간부들과 전국 67개 지부당 위원장들이 참석하여, 중앙당에서 결정한 방침을 준수하여 좌우합작은 원칙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입법기관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관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결의하고 오후 6시쯤에 폐회했다.30)
選擧參與는 個人資格으로
한편 독촉국민회는 “입법기관이 전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는 기관이라면 환영할 바이지만 현재 그렇지 못한 경우임에는 자못 미흡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군정청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직접 요리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면서 “당면 생활문제의 개선을 위해서 유능한 의원을 선거하여 국민생활의 도탄의 고통을 면하게 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라고 의원 선거에 관심을 보였다.31)
그러나 민주의원을 한국국민의 대표기관으로 주장하면서 좌우합작운동에도 처음부터 회의적인 입장에서 침묵을 지켜온 이승만은 입법의원 선거와 관련하여 10월18일에 담화를 발표하여, “민족통일총본부와 독촉국민회는 이번 입법기구 설립이 아무 층절 없이 순조로 속히 완성하여 국권회복에 빨리 성공되기만 바란다”고 말하고, 그러나 민통총본부나 독촉국민회는 단체로서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다음과 같이 잘라 말했다.
“민통총본부와 독촉국민회는 원래 정권을 잡거나 지위를 도모하려는 생각이 없고, 전 민족의 통일로 정부수립과 국권보호에 보좌가 되고자 하는 것뿐이니, 우리는 대표 선거권이나 대표 피선거권은 요구치 않으며 우리 간부 임원이나 회원은 이에 대하여 각각 개인 자격으로 시민의 직책을 행하되 단체 명의로는 참가하는 것을 필요치 않은 줄로 아나니, 각각 자의로 행할 것이며,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지위를 다투거나 허영을 위하야 입법기관 성립에 지장이 되게 하는 등의 폐단이 없기를 바란다.”32)
이튿날 오전 10시부터 천도교 강당에서 열린 독촉국민회 한성시지부 대의원대회에는 1천여명의 대의원들이 참가하여 시지부 정부위원장과 감찰위원, 중앙위원의 선거에 이어 민생문제와 시국문제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 이승만은 이 자리에 참석하여 축사를 했다. 시지부 위원장에는 신익희(申翼熙)가 선출되었다.33)
選出議員 45名, 指名議員 45名으로
그러나 일반국민들의 관심은 어떤 사람들이 입법의원이 될 것이냐 하는 문제에 집중되었다. 법령 제118호는 입법의원은 90명의 의원으로 구성하는데, 그 가운데 45명을 국민들의 선거로 뽑는다고 했다(제3조). 나머지 45명은 “조선의 경제적, 정치적 및 지적 생활의 주요한 민주적 요소를 공평정대하게 대표하도록” 선정하여(제3조) 군정장관이 임명하기로 했다. 그것은 실제로는 좌우합작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군정장관이 임명하는 것이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하는 이 선거는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보는 보통선거는 아니었다. “한국인들은 높은 문맹률과 전국 규모의 선거에 관한 어떠한 정치훈련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보통선거는 불가능하다”는 미군정부의 판단에 따라,34) 4단계에 걸친 간접선거를 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이(里)와 동(洞)에서 대표 2명씩을 선거하고, 그 이와 동 대표들이 소속 면(面)과 읍(邑)과 구(區) 대표 2명씩을 선거하며, 면과 읍과 구 대표들이 소속 군(郡)과 부(府) 대표 2명씩을 선거하고, 군과 부 대표들이 소속 도의 인구 할당(인구 55만명당 1명 및 서울시와 각 도의 전체 대표 1명씩)에 따른 도 대표(입법의원)를 뽑는 선거였다. 투표는 무기명 비밀투표였다(제8조). 이렇게 하여 결정된 서울시와 각 도의 민선의원(선출직의원) 정원수는 서울특별시 3명, 경기도 6명, 강원도 3명, 충청북도 3명, 충청남도 5명, 전라북도 4명, 전라남도 6명, 경상북도 7명, 경상남도 6명, 제주도 2명이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의원후보자들의 자격문제였다. 부일협력자가 배제되어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런데 8월24일에 작성된 법령 초안에는 (1)일제하에 중추원 참의(參議), 도회의원(道會議員) 또는 부회의원(府會議員)의 지위에 있던 자나 칙임관(勅任官)급 및 그 이상의 지위에 있던 자와 (2)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일인에게 협력, 조선인민에게 손해를 끼친 자는 의원의 자격이 없다고 규정했다. 그랬던 것이 확정된 법령에서는 일제하에서 도회의원 또는 국장급 이상의 지위에 있던 자로 완화되었다(제7조).
친일파 자격 규제 조항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자 미군정부는 10월14일에 각 도에 “자기의 이익을 위하야 일본에 협력함으로써 조선동포에게 해독을 끼친 자는 선거될 자격이 없음”이라는 공문을 보내고, 그 사실을 러치의 성명서와 입법의원 사무총장 전규홍의 담화로 발표했다.35)
“左翼조직 파괴되고 選擧에 무관심한 때에…”
미군정부는 의원선거를 서둘렀다. 최하급단위 선거구의 선거인 선거는 도에 따라 10월17일에서 22일 사이에 시작하고 입법의원 의원선거는 10월 말까지 끝내기로 하여 그대로 시행되었다.36) 군정부가 선거를 서둔 것은 좌우합작 작업의 정체로 말미암아 계획이 크게 지연되었을 뿐만 아니라 11월3일로 예정된 북한의 도, 시, 군 인민위원회 선거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북조선노동당을 창립하고 나서 2개월 동안 이 선거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공작을 벌여왔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통일전선이 추천한 공동입후보자에 대한 찬반만을 투표하는 것이었다. 이 선거는 남한 신문에도 보도되고 있었다.37)
이때에 실시된 북한의 도, 시, 군 인민위원회 선거를 북한주둔소련군 당국이 얼마나 중요시했는가는 11월1일에 있을 ‘평양시 민주선거 경축대회’에서 김일성(金日成)이 낭독할 연설문 초안을 평양에 있던 슈티코프(Terentii F. Shtykov) 중장이 연해주 군관구 사령부까지 가지고 가서 직접 수정해 보낸 사실로도 짐작할 수 있다.38)
도시폭동과 농민반란의 여파로 공산당 등 좌익세력의 지방조직 붕괴와 선거 보이콧 때문에 선거 결과는 우익인사들이 많이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선거를 서두른 요인이었던 것은 하지의 정치고문 랭던(William R. Langdon)의 다음과 같은 보고로도 짐작할 수 있다.
“좌익은 초창기부터 군정부에 적대적이었고 사실상 거부해 왔기 때문에 군정부의 행정관리들은 대체로 우익이다. 그리하여 선거를 위한 행정적 준비는 대부분 그들의 손에 의존해 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당파적 성향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지방 좌익의 조직파괴와 선거에 대한 의도적인 무관심 때문에, 압도적인 다수의 우익 의원들이 당선되리라는 것은 예견되는 결론이다.”39)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10월26일 시점에서 버치 중위도 비슷한 전망을 했다. 그는 《시카고 선(the Chicago Sun)》지의 게인(Mark Gayn) 기자에게 “선거의 성질 그 자체로 보아서 선출되는 45명은 늙고 반동적인 인물들일 것이다. 지명을 하게 될 45명이 해결책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40)
좌우합작위원회가 미군정부의 허가를 얻어 각 도에 1명씩 파견하는 선거감시원들은 10월24일 아침에 김포비행장에서 각각 출발했다. 선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투표율은 매우 저조했다. 전국에 걸친 정확한 집계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전라북도의 경우 투표율이 3할이었는데, 그나마 여운형, 이승만, 김구 등의 이름을 기입한 무효표가 1할이었으며,41) 전라남도의 투표율은 그보다 더 낮아서 2할에 지나지 않았고 무효표가 1할이었다고 한다.42) 모스크바 방송은 입법의원 선거의 투표율이 3할가량이었다고 보도했다.43) 미군정부에 따르면 최종집계 결과는 제주도에서 당선된 2명의 좌익인사와 12명의 무소속 인사를 제외하면 당선된 후보들은 모두 우익 진영 인사들이었는데, 개중에 몇몇은 과거의 부일협력자로 지목되는 사람들이었다.44) 당선자들의 명단은 위와 같았다.
위의 당선자들을 정파별로 보면 이승만의 독촉국민회 소속이 17명으로서 가장 많고 한민당 소속이 14명, 한국독립당 3명, 무소속이 9명, 인민위원회가 2명이었다.45) 이승만은 민통총본부나 독촉국민회는 단체로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간부들이나 회원들이 참여하는 경우에는 개인자격으로 참여하라고 했는데도 대승을 거둔 것이었다.
선거 직후에 선거 결과를 토의하기 위하여 열린 10개도의 미군지사회의에서 러치 장관은 “우리는 워싱턴으로부터 중간파 그룹의 노선에 따라 행동하라는 지령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우익의 압도적 승리로 끝난 이번 선거 결과는 워싱턴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기뻐했다고 한다.46)
韓美共同委員會가 合作委권위 제고시켜
입법의원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좌우합작위원회는 남한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요사태의 진상을 조사하고 그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하여 합작위원회와 미군정부의 공동대책회의를 개최할 것을 하지 중장에게 제의했는데, 하지는 이에 즉각 동의하여, 10월23일부터 한미공동위원회(Joint American Korean Conference)가 덕수궁에서 열렸다. 한국 쪽에서는 합작위원회 대표 김규식, 원세훈(元世勳), 최동오(崔東旿), 김붕준(金朋濬), 안재홍 5명과 중간파에서 사회민주당의 장권(張權), 좌익에서 여운형의 대리로 이임수(李林洙), 박건웅(朴建雄)과 합작위원회 비서 등이 출석했고, 미국 쪽에서는 미소공위 수석대표 브라운 소장, 러치 군정장관, 하지의 경제고문 번스(Arthur C. Bunce) 등이 참석했다.47)
한미공동위원회는 연일 회의를 거듭한 끝에 10월26일에 앞으로 심의할 주제들을 정리했는데, 그것은 (1)경찰 및 군정부 안의 부일협력자들과 ‘통역들’의 존재, 한국인 관리들의 부패, 그리고 남한의 복리에 반하는 선동자들에 대한 반감, (2)미곡수집과 배급계획, 인플레이션과 물가고, 전재민 문제, 경제 회복의 부진, (3)임시정부 수립의 지연, 과거 일본재산의 관리에 대한 불만, 정당의 영향 및 정부를 개선하는 방안이었다.48) 그러고는 하지의 대리 브라운과 김규식, 여운형 세 사람 명의로 국민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동족상잔은 언제나 죄악이다. 이는 다만 민족의 역량을 소모하고 조국의 재건을 더디게 할 뿐이다. 더구나 도에 넘치는 잔인한 행위는 국제적으로 조선민족의 위신을 떨어뜨리어 독립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 지금부터 여러분은 정치상 경제상 어떠한 불평불만이 있든지, 또는 좌거나 우거나 어떠한 악질의 선동이 있든지 그 선동에는 속지 말고 각각 고생스러운 생활을 참고 지켜나가면서 동포끼리 서로 싸우는 참극은 즉시 그치라! … 여러분은 다만 좌우합작에 의한 고심참담한 건설을 함께 신뢰하고 지지하면서 총역량을 집중하여 이 중대한 시국을 수습키로 하자! …”49)
좌익은 한미위원회가 미군정부의 실책을 합리화시켜 주는 기관이라고 비난하면서 해체를 주장했으나 회의는 계속 열렸다. 그리하여 일반국민들에게는 한미위원회가 좌우합작위원회의 권위를 크게 제고시키고 있었다. 11월5일의 회의는 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趙炳玉), 수도경찰청장 장택상(張澤相), 수사국장 최능진(崔能鎭), 경무부 고문 매글린(William Maglain) 대령 등을 출석시켜 경무부의 운영과 조직에 관하여 논의했다.50) 회의에 앞서 조병옥은 러치 군정장관으로부터 “이번 회담의 결과에 따라 당신의 진퇴문제가 결정될 것이니 출석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듣고, 태평양 전쟁 때의 여운형과 안재홍의 부일협력 사실을 입증하는 사진과 담화, 성명, 논설 등을 영역하여 등사해 가지고 회담장에 내놓고 영어와 한국어로 두 사람을 공박하는 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여운형은 병원에 간다면서 중간에 나가고 안재홍은 체머리만 흔들며 앉아 있었다고 조병옥은 술회했다.51)
이렇게 하여 한미위원회는 출범 때의 위세와는 달리 회담만 몇 차례 개최했을 뿐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입법의원이 개원되자 곧 해체되고 말았다.
“再選擧를 하거나 90명 전원을 任命해야”
입법의원의 선거 결과는 김규식을 크게 낭패시켰다. 격분한 그는 11월1일에 성명을 발표하여 자신이 한미공동위원회에서 브라운 소장에게 11월4일로 예정된 입법의원 개원일을 12월1일로 연기하고, 좌익진영도 공평하게 참여하도록 하여 선거를 다시 하든지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90명 전원을 좌우합작위원회에서 추천하게 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고, 이에 대해 브라운은 대부분 지역의 선거 결과를 보고 결정하자고 답했다고 한다.52) 그러나 브라운은 10월3일에 한민당의 김성수와 장덕수에게는 “피선자가 좌익이 적고 친일파가 많다 하여 무효로 해달라고 하나 선거된 인물은 조선인이 투표하여 피선된 만큼 이것을 무효로 하기는 곤란하며, 또 파업문제 때문에 애국자가 나오지 못하였다 하여 이를 석방해 달라고 하지만 참다운 애국자라도 법적으로 범죄하였다면 선거 때문에 석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53)
그러나 김규식은 10월4일에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하지 장군에게 선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무효로 하고 재선거하든지 다른 방법으로 하든지 할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전체적으로 유능한 애국자가 못 나왔고 더구나 좌익진영은 전면적 검거로 말미암아 피선될 기회가 거의 없었으므로 유감이며, 더구나 피선된 자가 극도로 편향적인데다가 친일파라고 지목되는 자가 다수인 것은 입법기관에 대하여 전 민중의 실망을 주었고 충분한 민의를 반영시키지 못한 반민주적 선거라는 것을 국민대중에게 인식케 하여 진정한 입법기구가 아니라는 인상을 주게 되었다.”54)
李承晩은 美國역사 예를 들며 改良發展 주장
한편 기대이상의 압승을 거둔 선거 결과에 흐뭇해진 이승만은 같은 날 입법의원 선거의 의의를 강조하면서 김규식의 주장을 반박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 입법기구가 우리민국 성립에 효시이니만치 다소 약점이 있을지라도 점차로 개량 발전시킬지니, 이는 미국정부의 역사를 보아도 가히 증명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투표 방침이 잘되고 못된 것과 피선인원이 누구임을 불계하고 다만 정권회복으로만 목적하야 호상 제휴함으로써 정당한 기관을 이루어서 외국이 참견할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기구가 성립되는 대로 일반동포는 성심으로 지지하여 피선 제씨는 각각 사심 편견을 버리고 정권 수립에 전력하리니, 완전정부가 조속히 조직되기만 노력하기를 믿는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못해서 각각 자기의견이나 고집하야 한 쟁론기관으로 타락되면 한인은 자치할 준비가 되었다고 러치 장관이 선언한 말이 무효로 돌아가고 신탁통치를 주장하는 외인들의 언론이 크게 되리니, 그 영향이 장차 어디까지 미칠 것을 잊지 말아야 될 것이다.”55)
이승만은 이튿날 《시카고 선》지의 마크 게인과 도쿄에서부터 그와 같이 온 《뉴스위크(the Newsweek)》지의 여기자 샬럿(Charlotte Ebener)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두 사람이 돈암장에 도착하자 먼저 온 세 사람의 손님이 있었다. 하지 중장의 부관인 미군장교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김성수였다. 하지의 부관은 이승만과 친근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것을 본 게인은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하지 장군으로부터 접촉을 피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승만을 하지 장군의 부관이 이렇게 방문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나는 의심했다”고 썼다.
게인이 두 도에서 그의 휘하 사람들이 당선되는 것을 보고 왔다고 말하자 이승만은 봉건군주가 자기 왕국 이야기나 하는 것처럼
“나의 인민은 나와 함께 있소”
하고 말하더라고 게인은 적어놓았다.56)
3. 呂運亨과 韓獨黨員들의 議員職 거부
11월6일 오후에 게인과 샬럿 두 기자는 삼청동의 김규식 집을 방문했다. 김규식의 목소리에는 힘과 분노가 들어 있었다. 그는 방금 하지 장군에게 선거 결과를 전부 또는 일부를 무효로 하거나 아니면 좌우합작위원회가 입법의원의 45명이 아니라 90명 전원을 선정하도록 제안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는 사기였다고 말하고, 좌익지도자들이 모두 감옥에 있는 한 공정한 선거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 합작위원회 공동위원장 여운형의 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또한 두 달 전에 러치 장관에게 특별경위대를 조직하라고 권고했으나 무시되었다고도 했다.
45석 가운데 40석을 이승만파가 차지했고 김구는 3석을 얻었다고 김규식은 설명했다. 독촉국민회와 한민당과 무소속을 모두 이승만파로 계산한 것이다. 공동위원장 여운형은 제주도에서 두 자리를 건졌는데, “그곳 지사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좌익이 당선될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자기 파는 한 사람도 당선되지 못했다고 했다.
김규식은 부정선거의 사례를 두 외국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했다. 많은 도에서 누가 투표자격이 있는가를 결정하는 권한은 그곳 이장에게 맡겨졌다. 수백의 마을에서 선거는 이장과 선정된 세대주들 사이의 우호적인 간담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장이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를 뽑아주시겠습니까?” 하는 식이었다는 것이었다. 이장이나 면장이 지지해 줄 만한 사람에게 사환을 보내어 도장을 빌려오게 해서 관리들이 이름을 써놓은 투표용지에 찍는 사례도 허다했다. 선거에 대한 적절한 주의도 없었고, 많은 경우에 투표일은 지방 관리의 재량으로 결정되었다. 선거의 유효성에 대하여 질문한 사람들이 소란죄로 투옥되는 사례도 수십 건에 이르렀다. 군정부는 분명히 비밀선거를 요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문맹의 투표자들은 투표용지를 이장들에게 맡겨 기입해 받았다. 그러한 이장들의 이름이 당선자들 이름 가운데 많이 들어 있었다. 군정부는 18세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투표권이 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세대주만 투표할 수 있었다.
김규식은 강원도와 서울의 경우를 강조해서 설명했다.
“강원도에서는 모든 선거는 정부당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승만의 정당〔독촉국민회〕 지부에 의하여 진행되었다. 당연히 이승만을 추종하는 세 사람이 당선되었다. 이들은 모두 악명 높은 부일협력자들이다.”
“서울에서는 선거 당일 아침에 시청 입구가 이승만 정당의 포스터로 메워졌다. 당선된 세 사람은 그 정당〔한민당〕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두 사람은 부일협력자로 알려져 있다.”57)
이런 이유로 김규식은 “이승만의 추종자들”이 당선한 서울과 강원도의 재선거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온 것이었다.
金九는 정치문제에 대답 회피해
게인 기자와 샬럿 기자는 이튿날 경교장으로 김구를 방문했다. 게인은 김구를 방문했던 일을 아주 간략하게 적어 놓았다. 게인은 경교장 응접실에서 외출한 김구를 기다리면서 이러한 생각을 했다고 기술했다.
“나는 김구가 이제 타협을 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한국의 한 ‘광산왕’이 그에게 제공해 준 이 저택도 아마 그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구와 이승만은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다르다. 이승만이 부일협력자와 지주, 극우의 ‘가진 자’를 대변하는 데 비하여 김구는 일본인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몇십 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다가 귀국해 보니까 아직도 부일협력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사실을 깨달은 우익의 ‘못 가진 자’를 대변한다. 때때로 협력하여 일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두 진영 사이에 애정은 없다. 이승만 진영에서는 김구를 중국의 앞잡이라고 조소하고 김구 진영에서는 이승만과 협력하는 부일협력자들의 전력을 들먹이며 쾌재를 부른다.”
이윽고 김구가 돌아왔다. 거구에 검은 머리인 김구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으나 두 손은 떨렸다. 그는 악수를 깜짝 놀랄 만큼 약하게 했다.
김구는 정치적 이슈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을 주면 대답하겠다면서 제쳐놓았다. 그 대신에 자신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에 가난하여 서당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일부터 시작하여 이야기가 1940년에 임시정부의 국무위원회 주석이 되었을 때까지 이르렀을 때에 창 밖에서 군대의 행진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창 밖을 내다보자 민간인 복장에 흰 완장을 두른 스무나무 사람쯤 되는 청년들이 군대식으로 행진하고 있었다. 게인 기자가 김구에게 청년들이 무엇 하는 사람들이냐고 묻자 김구는 ‘청년대’라고 대답했다. 더 캐묻자 김구는 자기는 모른다고 대답했다.58)
게인 기자는 여운형도 만나보고 싶어 했으나 군정부 연락국은 여운형과의 면담 주선을 거절했다고 한다.59)
혁명적 애국자들을 많이 등장시켜야
좌우합작위원회는 11월8일에 각 지방에 파견했던 선거감시원 9명의 선거상황보고회를 열었다. 회의는 신문기자들에게도 공개되었다. 감시원들은 선거가 일률적으로 활기가 없고 정치적 훈련이 없는데다가 문맹 등으로 4할가량이 기권이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유치하고 부자연하나마 서울시와 강원도를 제외하고는 불법선거는 없었다고 했다. 보고회가 지적한 서울시와 강원도의 불법선거 사례는 김규식이 게인 기자에게 설명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서울의 경우 첫째로 20세 이상의 남녀는 모두 선거권이 있다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대주만 투표권을 행사했고, 둘째로 어떤 반에서는 반장이 반원더러 도장을 가져오라고 하여 자의로 대표를 선출했으며, 셋째로 선거 포스터에 명의를 개인이나 소속 정당 명의로 하지 않고 ‘선거유권자일동’이라는 모호한 명의를 썼다는 것이었다. 또 강원도에서는 선거 관리를 지방관리가 아니라 독촉국민회 지부장이 ‘입법의원 선거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관리하는 불법행동을 했다는 것이었다.60) 그러나 김규식이나 선거감시원들이 지적한 세대주 선거방식은 미군정부가 각 도에 지시한 사항으로서 불법이 아니었다.61)
김규식의 재선거 요구에 대한 정파들의 반응은 분분했다. 서울특별시의 의석을 석권한 한민당은 김규식의 11월1일자 성명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좌우합작위원회는 그 구성상으로 보아 선거의 결과를 심판할 단체가 되지 못한다”는 긴 성명을 발표했다.62) 또 거주기간이 1년 이상이라야 한다는 피선거권 자격 규정 때문에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중진들이 입후보할 수 없었던 한독당의 선전부장 엄우룡(嚴雨龍)은 11월9일에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했다.
“과도입법의원에 대하여는 한독당 중앙집행위원회 결의의 정신에 준하여 합법적 투쟁의 방법으로 임할 것이다. 그리고 금번 위법 선거된 부분에 관하여는 김규식 박사의 재선거 요구를 우리 당은 엄정 지지한다. 무엇보다 혁명적 애국자들을 많이 등장시키는 동시에 입법의원선거 규정을 공정히 실현해야 할 것이다.”63)
“附日協力者는 將功贖罪 할 수도…”
이승만도 다시 담화를 발표하고 선거가 정당하게 실시되었으며, 관선의원 선정은 좌우합작위원회와는 관계없다고 김규식 등의 재선거 주장을 거듭 반박했다.
“입법의원 선거는 정식으로 되었으니 우리 민족이 다 축하할 것이다. 관선입법의원은 불일내로 군정에서 발표가 있을 것인데, 합작위원회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요 군정당국이 한국인 직원들과 협의하여 정한다니, 또한 공정히 선택되기를 바랄 것이다. 애국남녀는 설령 불충분한 점이 있어도 그대로 세워가지고 점차로 교정하여 국권회복만을 도모할 것이다.”
그는 또 자격시비가 되고 있는 부일협력자 논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이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주장보다 한결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어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 문제는 우리 환경이 해결할 수 없으니, 미리 제출되는 것은 민심만 혼란케 하며 통일에 방해를 끼치는 것이다. 국권을 회복한 후에 조처하는 것이 순서적이다. 극렬 친일 분자라도 기회를 주어 민족에게 복리될 공효(功效)를 세우게 되면 혹 일후에 장공속죄〔將功贖罪:공을 세워 그 값으로 죄를 면함〕할 희망이 있을는지도 모를 것이니, 40년을 참아온 처지에 얼마 더 참기가 그다지 어려울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국권회복을 통일적으로 진행할 따름이다.”64)
한편 그 자신도 선거결과를 우려하면서 김규식의 요청을 숙고하던 하지 장군은 11월12일에 “비록 한두 지방은 재선거를 명(命)함이 가(可)할 곳이 발견되더라도 개원은 11월20일부터 12월1일로 되기 바란다”라는 답신을 김규식에게 보내어 일부 지역의 재선거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서,65) 11월13일부터 15일까지 도쿄(東京)로 가서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을 만나고 왔다.66)
서울市와 江原道의 選擧무효 선언
마침내 하지는 11월25일에 이철원(李哲源) 공보부장의 특별발표를 통하여 서울특별시와 강원도의 입법의원 선거는 무효이며 이 두 지구의 선거는 다시 실시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두 지구의 선거가 왜 무효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무효선언의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이철원은 “좌우합작위원회에서 양 지구 선출 의원은 부정당하다고 건의했기 때문”이라고만 대답했다.67)
이튿날 아침에 서울에서 당선된 김성수, 장덕수, 김도연 세 사람이 방문했을 때에도 하지는 선거 무효선언의 이유를 “피선된 대의원(입법의원)의 자격문제라든지 불법선거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단 선거기구에서 취한 선거수속에 불비한 점이 있었다”고만 막연하게 대답했다. 긴급히 소집된 한민당의 중앙집행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하지의 선거 무효선언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재고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것은 (1)말단 선거기구에서 취한 선거수속에 설혹 불비한 점이 있다 할지라도 극소수의 경우를 이유로 하여 선거 전체를 무효로 하는 것은 선거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고, (2)선거수속상 불비한 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원래 이번 선거에 일정한 선거법이 없고 각 지방의 실정에 따라 선거를 행하기 때문에 그 방법도 구구했는데, 그것을 불비라고 하여 무효를 선언하는 것은 사회 실정을 무시한 것이요 하등 법적 근거가 없으며, (3)입법기구는 행정부와 대립되는 기관이므로 의원선거의 무효여하는 사법기관에서 결정할 것이요 결코 행정기관에서 결정할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군사령관이 무효로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4)좌우합작위원회와 같은 소수 인사의 진정에 의하여 민선의 결과를 파기하는 것은 선거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악례를 만들어 앞으로 혼란을 일으킬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68)
洞會聯合會는 재선거 거부하기로
또한 독촉국민회 강원도지부도 12월3일에 선거 무효선언에 대한 반박성명을 내고 (1)이번 선거는 일정한 규칙 없이 선거관리인의 지시에 따라 실시된 것으로서 선거비합법 운운은 부당하며, (2)선거 전체의 관리인인 도지사가 이번 선거를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한 뒤 당선고시를 공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등의 이유없이 중앙행정부에서 이를 무효라고 선언함은 선거인을 무시한 비민주적 조처이고, (3)강원도 선거를 감시하러 파견된 소위 합작위원회 감시원은 최후선거 완료 직전에야 비로소 춘천(春川)에 도착하여 자기당파끼리만 일반적인 시야로 선거에 간섭하여 공정치 못했다고 반박했다.69)
반발이 드세자 하지는 당선자들의 자격에 결격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선거관리 책임자들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지극히 애매모호한 성명을 발표했다. 곧 (1)두 지구의 선거 무효 이유는 법령 제118호를 잘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거에 기술적으로 착오가 있었고, (2)무효를 선언했다고 해서 선거관리책임자들에게 절대로 잘못이 없고 만일 그렇게 해석한다면 그것은 오해이며, (3)일부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의원들의 자격문제가 이 선거를 무효로 하게 된 이유는 아니며, 군정부당국으로서는 이번에 당선되었던 사람들이 재선되는 때에는 일반의 의사를 대표하느니만큼 합법적이라고 인정할 것이라고 했다.70) 이러한 해명은 미군정부의 임기응변이 얼마나 무원칙하고 자의적인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하지의 타협적인 방침 표명에도 불구하고 반발기세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12월5일에는 서울특별시 동회총연합회가 서울시청 회의실에서 임원회의를 열고 재선거를 거부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71) 서울시는 12월11일에 재선거 협조를 요청하기 위하여 서울시내 동회장회의를 소집했으나 동회장들도 임원회의의 결의와 같은 결의를 했다.72) 이러한 물의는 강원도에서도 이어졌다.
美軍政府는 예정대로 開院 강행해
11월4일로 예정했던 입법의원의 개원일은 두어 차례 연기되어 12월12일로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서울과 강원도의 재선거가 발표되자 합작위원회는 관선의원[임명직 의원] 추천자 명단을 작성하여 11월30일에 미군정부에 제출했다.73) 그리하여 군정부는 12월7일에 서울시와 강원도를 제외한 각 도의 민선의원 39명과 관선의원 4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관선의원 명단은 위와 같았다.
관선의원에는 민중동맹 7명, 사회로동당 6명, 한국독립당 5명 등 좌우합작세력이 대거 포함되었다. 이에 비하여 한민당은 2명, 독촉국민회는 1명뿐이었다. 민중동맹은 원세훈, 김약수, 이순탁 등 한민당 탈당파들이 김규식을 영도자로 추대하여 12월22일에 창당한 단체인데, 관선의원 선정 시점에는 10월29일에 민중동맹결성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다.74)
呂運亨, 趙琬九 등 7명이 의원직 거부해
그러나 좌익대표인 사회로동당 위원장 여운형과 같은 당의 장건상, 한국독립당의 조완구와 엄항섭, 문학가동맹의 홍명희, 그리고 제주도의 두 민선의원 문도배와 김시탁은 의원직을 거부했다. 입법의원으로 선출되었거나 임명된 인사들이 의원직을 거부하는 것은 미군정부의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여운형의 의원직 거부는 미군정부가 추진해 온 좌우합작 작업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었다.
여운형은 이에 앞서 11월23일에 사로당 선전부를 통하여 입법의원에 대하여 반대하는 담화를 발표했었다. 그는 “정부가 서지 못한 때에 입법기관을 운운하는 것은 3권분립의 구식 민주주의 원칙에서 보더라도 하나의 탈선”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남조선의 질식상태를 감안하여 민족반역자 등의 숙청, 경찰제도의 근본적 개선 등 몇 가지를 선행조건으로 요구했는데, 오늘까지의 경과로 보아 나의 그 요구가 무용한 것이 증명되었고”, “입법기관은 오늘 남조선의 반대파의 모든 죄악을 호도하기 위한 것임은 입법기관의 선거방법 및 그 선출된 민간의원의 면면으로 보아서 전 인민이 모두 인식할 줄 안다”면서 입법기관을 절대로 반대한다고 천명한 것이다.75)
여운형의 이러한 성명에도 불구하고 미군정부가 그를 관선의원에 포함시킨 것은 여러 가지 추측을 낳게 한다. 그의 우유부단한 성품을 미루어 거부까지는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회담, 성명, 담화의 태반은 나도 알지 못해”
여운형은 이어 12월3일에는 “좌우합작과 합당공작을 단념하면서”라는 처연한 자기비판문을 발표했다. 그동안 그는 10월28일, 11월10일, 11월16일, 11월30일 네 차례나 연거푸 북한의 김일성(金日成)과 김두봉(金枓奉) 앞으로 편지를 보내고 있었는데,76) 이날의 자기비판문은 이 편지에 대한 북한의 반응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여운형은 먼저 “해방 이후 1년 이상 노력했으나 지식과 준비가 부족하여 본의 아닌 과오를 많이 범하였다”고 고백하고, “좌우합작운동을 통하여 무슨 건설적 효과가 있기를 기대했으나 아직까지 소기의 목적에 달할 만한 물질적 조건이 모이지 않으므로 좌익 진영에서는 이를 반대 규탄하여 나의 행동은 제재되었다”고 했다. 좌익3당 합당문제에 대해서는 “지도층의 경험부족과 기술빈궁으로 일어난 오해와 충돌 때문에 좌익진영에 큰 분열을 초래했다”고 말하고, “이러한 난국에 처하여 역량 없고 과오 많은 내가 이 중책을 지려다가 일보도 전진 못하고 넘어져서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민중 앞에 사죄하며 이 중책에서 물러감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미군정부당국자들에 대해서는 “미국의 친우 중에서는 나의 태도를 소극적이라 하여 불만을 가질는지도 모르나 무능한 나로서는 이 이상 더 할 수 없음을 이해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여운형은 끝으로 “이것은 내가 혁명전선에서 이탈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자리에서 내려서는 것이요 나의 여생을 민주진영의 한 병졸로서 건국사업에 바칠 것을 맹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끝으로 근자에 자기명의로 발표되는 회담, 성명, 담화의 태반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어서 그의 철저하지 못한 성품의 실상을 짐작하게 한다.77)
미군정부는 입법의원 개원을 서둘렀다. 12월11일에는 제1차 예비회의를 열고 의장을 선출하도록 했다. 의장에는 김규식이 내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민당은 “서울시와 강원도 의원이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원함은 120만 수도시민과 100만 강원도민 전체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 당은 이와 같은 비민주주의적 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두 지구의 의원이 결정될 때까지 입법의원의 개원을 연기하기를 주장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는 한편 소속의원들의 등원을 거부했다.78) 의원직을 거부한 7명의 궐석과 한민당 소속의원 21명의 불참으로 성원이 미달되어 회의를 열 수 없게 되자 군정부 당국은 그 자리에서 법령 제129호로 법령118호의 성원 규정(전 의원의 4분의 3)을 과반수로 개정하여 회의를 진행시켰다. 이처럼 우격다짐으로 진행된 회의에서 김규식이 의장으로 선출되었다.79)
서울시 재선거에서 趙素昻, 申翼熙가 당선돼
입법의원 개원식은 57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군정청 안에 마련된 입법의원 회의실에서 거행되었다. 김규식 의장은 개회사를 통하여 입법의원의 사명은 빠른 시일 안에 남북이 통일한 총선거로 확대된 입법의원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입법의원이 “미주둔군사령관이나 미군정의 자문기관으로 행사할 것은 아니며 또 미군정을 연장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 장군은 “이 의원의 개원으로 조선민중은 처음으로 입법기관을 갖게 되었다”고 입법의원 설립의 의의를 강조했고, 이어 번스 미국무장관과 맥아더 장군의 축사가 낭독되었다. 마지막으로 빠른 곡조의 아악 송구여지곡(頌九如之曲)을 연주하여 한결 분위기를 돋우었다.80)
개원식에 이어 오후 2시반부터 열린 제2차 준비회의에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 일동에게 “앞으로 우리는 전 민족이 단결하여 목전의 제민주과업과 동시에 미소공위 재개 촉진과 남북통일임시정부의 조속 수립을 위하여 공동분투하자”는 전보를 쳤다.81)
서울시와 강원도의 입법의원 선거가 끝날 때까지 입법의원 개원 연기를 주장해 오던 한민당은 12월17일 오후에 김성수와 장덕수가 하지를 방문한 데 이어 19일에는 의원회의를 열어 20일에 개최되는 입법의원 본회의에 참석하고 재선거에도 참여하기로 결정했다.82)
서울시 재선거는 12월19일에 남대문국민학교에서 동대표들에 의하여 의원후보자 10명이 선출되고, 12월23일에 같은 장소에서 시행된 최종 선거에서는 전 서울 대표에 한독당의 조소앙이, 갑구 대표에는 신익희가, 그리고 을구 대표에는 김도연이 다시 당선되었다.83) 강원도에서 실시된 재선거에서는 서상준과 조진구가 다시 당선되고 정위교(鄭胃敎)가 새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12월20일에 후보지명을 거부했는데도84) 전 서울시 대표로 당선된 조소앙은 25일에 다시 당선을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반탁운동에 큰 성과를 보지 못한 죄책이 있고, 남북통일과 좌우합작의 완성을 위해 원외에서 자유로운 입장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85)
朴憲永은 議席 50% 준다면 들어갈 수도 있다고
과도입법의원 출범과 관련하여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에 있는 박헌영(朴憲永)의 동향이다. 그는 12월25일에 소련군 민정사령관 로마넨코(Andrei A. Romanenko) 소장을 만나 김규식에 대하여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물었다. 박헌영은 이승만과 김구의 정체를 대중 앞에 폭로했던 것처럼 김규식의 정체도 폭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月刊朝鮮》 2011년 6월호 <美蘇共委 파동 속에 지방순회> 참조). 이에 대해 로마넨코는 흥분하지 말고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고 지시했다. 구체적인 자료를 통하여 그의 옳지 못한 결정들을 근거로 폭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헌영은 이틀 뒤에 다시 로마넨코를 만났다. 박헌영은 로마넨코에게 미국인들에게 어떤 양보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만일 미국인들이 도지사를 임명하지 않고 선거하는 데 동의한다면 ‘인민위원회’라는 명칭은 양보해도 좋은지 물었다. 또 만일 50%의 의석을 준다면 입법의원에 들어가도 좋은지도 물었다. 이에 대해 로마넨코는 “지방권력기관의 선거 후에 인민의원대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했는데, 뜻은 분명하지 않다. 로마넨코는 박헌영과의 이러한 회담 사실을 그때그때 슈티코프에게 전화로 보고했다.86) 이승만이 독촉중앙협의회의 중앙위원을 선정할 때에도 50%를 요구했던 박헌영이 입법의원에도 50%의 의석을 준다면 들어갈 수 있지 않느냐고 한 사실은 공산당의 배제를 전제로 한 좌우합작이라는 미군정부의 기본방침을 너무나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 G-2 Weekly Summary No.56(1946.9.18~10.6), p.11. ; 安在鴻, <民政長官을 辭任하고>, 安在鴻選集刊行委員會編,《民世安在鴻選集(2)》, 知識産業社, 1983, p.272. 2) 《自由新聞》1946년 10월12일자, <金九氏와 美談>.
3) 《朝鮮日報》1946년 9월19일자, <金九氏鎭海視察> ; 도진순 주해,《백범김구자서전 백범일지》, 돌베개, 1997, p.414 ;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백범선생과 함께한 나날들》, 푸른역사, 2009, p.199. 4) 《自由新聞》1946년 10월12일자, <金九氏와 美談> ;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앞의 책, pp.199~200. 5) 《백범일지》, p.415 ;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앞의 책, p.200.
6) 《백범일지》, pp.415~416. 7) 《백범일지》, p.416. 8) 《백범일지》, pp.416~417. 9) 《백범일지》, p.417, 주) 6. 10) G-2 Weekly Summary No.56(1946.9.29~10.6), p.11. 11) 《自由新聞》1946년 10월12일자, <金九氏와 美談> ;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앞의 책, p.201. 12) 《獨立新報》1946년 10월17일자, <全南知事更迭>. 13) 《朝鮮日報》1946년 10월13일자, <韓獨支部結成式>. 14) 《백범일지》, p.418.
15) 《東亞日報》1946년 10월15일자, <金九總理裡理서 講演>, <金堤에서도>. 16) 《東亞日報》1946년 10월15일자, <戰災同胞에 金一封, 金九總理群山災民에게> ;《自由新聞》(1946년 10월12일자)은 희사금이 1만2천원이었다고 했다. 17) 《백범일지》, pp.418~419. 18) G-2 Weekly Summary No.56(1946.9.29~10.6), p.11 ;《自由新聞》1946년 10월12일자, <金九氏와 美談> ;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앞의 책, p.201. 19) G-2 Weekly Summary No.56(1946.9.29~10.6), p.11. 20)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앞의 책, p.202. 21) 《백범일지》, p.417 ;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위의 책, p.202. 22) 鮮于鎭 證言 ; 선우진, <김구 환국과 남북협상>,《朝鮮日報》2005년 8월12일자. 23) 《朝鮮日報》1946년 10월15일자, <立法議院事務總長全圭弘任命>. 24) Langdon to Byrnes, Nov. 3, 1946,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이하 FRUS) 1946, vol. Ⅷ,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71, p.762.
25) 《朝鮮日報》1946년 10월15일자, <立法機關法令과 政界見解> ;《獨立新報》1946년 10월18일자 <立法機關에 對한 朝共談話>. 26) 《朝鮮日報》1946년 10월17일자, <立法議院은 軍政과 別個> ;《東亞日報》1946년 10월19일자, <敵과 合作한 者는 一切除外>. 27) 《東亞日報》1946년 10월19일자, <立法院의 否認權限定>. 28) 《朝鮮日報》1946년 10월17일자, <立議法令修正을 要求>. 29) 《朝鮮日報》1946년 10월17일자, <韓獨黨常任委員會>. 30) 《京鄕新聞》1946년 10월20일자, <韓國獨立黨全國支黨委員會議>. 31) 《朝鮮日報》1946년 10월16일자, <有能한 議員選出 企望>.
32) 《朝鮮日報》1946년 10월19일자, <立法議員選擧에 對한 民統과 國民會立場>. 33) 《朝鮮日報》1946년 10월18일자, <獨促國民會漢城市代議會> ;《大東新聞》1946년 10월22일자, <獨促서울支部, 委員長에 申翼熙氏>. 34) Langdon to Byrnes, Aug. 24, 1946, FRUS 1946, vol. Ⅷ, p.731. 35) 《東亞日報》1946년 10월16일자, <日帝에 協力·私慾 채운 者 選擧에 除外를 指令> ;《朝鮮日報》1946년 10월17일자, <親日派·反逆者·謀利輩는 除外>. 36) Langdon to Byrnes, Nov. 3, 1946, FRUS 1946, vol. Ⅷ, p.762. 37) 《獨立新報》1946년 10월13일자, <金日成將軍도 立候補>. 38) 전현수 편역,《쉬띄꼬프일기 1946~1948》, (1946.10.28, 30, 31), 국사편찬위원회, 2004. ; 김일성, <력사적인 민주선거를 앞두고>,《김일성전집(4)》, 조선로동당출판사, pp.375~386.
39) Langdon to Byrnes, Nov. 3, 1946, FRUS 1946, vol. Ⅷ, p.763. 40) Mark Gayn, Japan Diary, William Sloane Associates, Inc., 1948, p.392. 41) 《朝鮮日報》1946년 10월26일자, <無效投票가 一割>. 42) 《自由新聞》1946년 11월2일자, <七割이 棄權>. 43) 《서울신문》1947년 1월8일자, <「立議」와 莫府放送>. 44) Langdon to Byrnes, Nov. 3, 1946, FRUS 1946, vol. Ⅷ, p.767. 45) 《서울신문》1946년 11월3일자, <各道代議員決定>. 46) Mark Gayn, op. cit, p.424.
47) 《朝鮮日報》1946년10월24일자, <朝美聯合委員會, 昨日德壽宮에서 第一回會合>. 48) Langdon to Byrnes, Nov. 14, 1946, FRUS 1946, vol. Ⅷ, p.767. 49) 《朝鮮日報》1946년 10월27일자, <韓美共同委員會에서 聲明>. 50) 《朝鮮日報》1946년 11월8일자, <朝美會談週間經過>. 51) 趙炳玉,《나의 回顧錄》, 民敎社, 1959, pp.172~175. 52) 《朝鮮日報》1946년 11월3일자, <金奎植博士聲明發表>. 53) 《東亞日報》1946년 11월8일자, <“議員” 再選 않겟다>. 54) 《朝鮮日報》1946년 11월6일자, <無效其他方法을 要請>.
55) 《東亞日報》1946년 11월5일자, <政權樹立의 第一步>. 56) Mark Gayn, op. cit, p.424. 57) idid., pp.425~426.
58) Mark Gayn, op. cit, pp.433~435. 59) ibid., p.422. 60) 《朝鮮日報》1946년 11월9일자, <政治訓練不足으로 四割이 棄權>. 61) 金榮美, <미군정기 南朝鮮過渡立法議院의 성립과 활동>,《韓國史論》(32), 서울대국사학과, 1994, p.266. 62) 《東亞日報》1946년 11월9,10일자, <立議에 干涉은 排擊>. 63) 《朝鮮日報》1946년 11월10일자, <韓獨黨宣傳部長談>.
64) 《서울신문》1946년 11월12일자, <親日派再選擧, 李博士談話發表>. 65) 《朝鮮日報》1946년 11월15일자, <한두地方再選될지라도 開院은 豫定대로>. 66) 《서울신문》1946년 11월16일자, <하지將軍 昨日空路歸任>. 67)《朝鮮日報》1946년 11월26일자, <서울市와 江原道, 卽時再選을 實施>. 68) 《東亞日報》1946년 11월28일자, <民意民選의 破棄는 選擧權威의 失墜>. 69) 《東亞日報》1946년 12월4일자, <獨促江原支部에서 聲明書發表>. 70) 《東亞日報》1946년 12월4일자, <無效理由는 技術的錯誤>.
71) 《朝鮮日報》1946년 12월6일자, <洞會總聯合會, 再選을 拒否>. 72) 《東亞日報》1946년 12월13일자, <再選의 理由를 究明안콘 選擧의 協力을 拒否>. 73) 金榮美, 앞의 글, pp.274~ 275. 74) 宋南憲,《解放三十年史(一) 建國前夜》, 成文閣, 1976, pp.357~359. 75) 《朝鮮日報》1946년 11월24일자, <呂氏立議反對表明>.
76) 方善柱, <美國第24軍G-2軍史室資料解題>,《아시아문화》제3호, 翰林大學아시아文化硏究所, 1987, p.16, pp.40~43 참조. 77) 《朝鮮日報》1946년 12월5일자, <左右合作과 合黨工作, 呂運亨氏斷念表明>. 78) 《東亞日報》1946년 12월12일자, <서울·江原人民의 意思無視>. 79) 《朝鮮日報》1946년 12월12일자, <立議豫備會談>. 80) 《朝鮮日報》1946년 12월13일자, <過渡立法議院開院式>. 81) 《朝鮮日報》1946년 12월14일자, <立議豫備會議를 續開>. 82) 《東亞日報》1946년 12월20일자, <不得已登院을 決定>. 83) 《朝鮮日報》1946년 12월24일자, <獨促優勢로 終結>. 84) 《東亞日報》1946년 12월21일자, <趙素昻氏立議候補를 拒否>.
85) 《東亞日報》1946년 12월26일자, <趙素昻氏代議員拒否>. 86) 《쉬띄꼬프일기 1946~1948》, (1946.12.25, 27).
미군정부는 10월12일에 법령 제118호로 「조선과도입법의원의 창설」을 공포했다. 중간파들을 주축으로 입법자문기구를 구성하라는 국무부의 훈령이 있은 지 4개월 만에 실현을 보게 된 것이었다.
입법의원 선거는 민선(民選)의원 45명, 관선(官選)의원 45명을 뽑을 예정이었다. 민선의원 선거는 10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행정단위별로 4단계에 걸친 간접선거로 실시되었다.
이승만(李承晩) 추종자들이 많이 당선되자 김규식(金奎植)의 요청으로 서울시(市)와 강원도에서 선거무효가 선포되었다.
관선의원은 합작위원회(合作委員會) 멤버들을 중심으로 선정되었으나 여운형(呂運亨) 등 좌익(左翼)인사들과 한독당원 등 7명이 의원직을 거부했다. 입법의원은 12월12일에 개원했다.
1. 金九의 三南地方여행
김구는 1946년 9월14일부터 10월4일까지 3주일 동안 경상남도와 전라도 일대를 순방했다. 여행의 주된 목적은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이 과도입법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구와 안재홍(安在鴻)에게 지방유세를 하도록 한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안재홍은 강원도 강릉(江陵) 지방을 순방했다.1) 그러나 김구에게 그 여행은 48년 전 탈옥수의 몸으로 옥중 동료들을 찾아 방랑하던 연고지를 찾아가는 센티멘털 저니(sentimental journey·감성여행)이기도 했다. 《백범일지》에는 그러한 이야기만 대충대충 적어 놓았다. 또 하필이면 이때에 인쇄노조의 총파업으로 신문들도 여러 날 발행이 중지되고 있었으므로 아쉽게도 여행의 전모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釜山 戰災民수용소에 1만원 희사
김구는 9월14일에 엄항섭(嚴恒燮), 안우생(安偶生), 선우진(鮮于鎭)과 소설가 김광주(金光洲)를 대동하고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김구는 전재민수용소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귀환동포 등 수용자들의 참상을 돌아보고 현금 1만원을 희사했다.2)부산에서는 자동차 편으로 김해(金海)를 거쳐 9월15일 오후 2시에 진해(鎭海)에 도착했다. 독립촉성국민회 지부, 애국부인회 지부 등의 간부들과 지방관공서장들을 포함한 많은 군중의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김구의 지방순회를 주관한 것은 주로 독촉국민회와 애국부인회 지부를 중심으로 한 지방 유지들이었다.
이튿날 김구는 해안경비대 총사령관 손원일(孫元一)의 안내로 해안경비대 열병식을 마치고 경비선을 타고 통영(統營)으로 가서 임진왜란 때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적지인 한산도(閑山島)의 제승당(制勝堂)을 방문했다. 충무공의 영정에 참배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제승당’이라는 현판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안내자는 일본점령기에 뗀 것을 아직 달지 못했다고 했다. 김구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여 당장 달게 하고 진해로 돌아왔다. 진해에서 공작창 등을 돌아보고 오후 1시에 마산(馬山)으로 향했다. 안우생과 김광주는 진해에서 서울로 올라갔고 김구와 함께 강연을 할 엄항섭과 수행비서인 선우진만 함께 움직였다. 마산에 도착한 김구는 마산부청에서 일반 유지들을 접견한 다음 독촉국민회 마산지부 사무실로 옮겨 관내 사정을 청취했다.3)
다음 도착지는 진주(晉州)였다. 진주에서는 함(咸) 판사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함 판사 부인이 황해도 출신으로서 경교장에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진주에서는 강연도 했고 촉석루(矗石樓)도 구경했으며 또 극빈자들을 위해서 9천원을 희사했다고 하나,4) 자세한 기록이 없다. 김구는 사천(泗川)에 가서 강연을 하고 진주에서 다시 일박한 뒤에 통영으로 나와서 여객선 편으로 전라남도 여수(麗水)로 갔다. 여수와 순천(順天)에서도 환영강연회가 열렸다. 순천에서 강연회를 마치고는 송광사(松廣寺)를 둘러보았다.5)
김구는 전라남도 순회여행 때의 일 가운데에서 9월22일에 보성군 득량면(得粮面) 쇠실마을〔송곡:松谷〕을 찾은 일을 가장 자세히 적어놓았다. 그것은 김구의 센티멘털 저니의 대표적인 기술이었다. 일찍이 방랑생활을 할 때에 김구는 안동 김씨 집성촌인 이 마을의 김광언(金廣彦)의 집에서 40여일이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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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떼어져 있는 ‘제승당(制勝堂)’ 현판 앞에서 기념촬영한 김구. |
40여일 머물렀던 安東金氏 集姓村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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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년 전 방랑시절에 머물렀던 보성군(寶城郡) 쇠솔마을의 고 김광언(故 金廣彦) 집을 방문한 김구. |
내가 48년 전 유숙하며 글을 보던 고 김광언씨의 가옥은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환영하니, 불귀의 객이 된 김광언씨에 대한 감회를 금할 수 없었다. 그 옛날 내가 식사하던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음식을 대접하고자 한다 하여, 마루 위에 병풍을 두르고 정결한 자리에 편히 앉으니, 눈앞에 보이는 산천은 예전 그대로이나 옛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모인 동포들을 향하여
‘혹시 나를 아는 이가 있으시오?’
하고 물으니, 동네 여자 노인 한 분이 대답하였다.
‘제가 일곱살 때에 선생님 글공부하시던 좌석에서 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밖에 동족 중 한 사람인 김판남(金判男)씨가 나와서, 48년 전 나의 필적이 완연한 책 한 권을 내보이며 옛일이 어제 같다고 말하였다. 전에 나와 알던 이는 이 두 사람뿐이었다.
그중에 또 잊지 못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다름 아닌 48년 전 동갑 되는 선(宣)씨 한 사람이 있어서 나와 격의 없이 지내다가 내가 그 동네를 떠날 때에 그 부인의 손으로 만든 필낭 하나를 작별 기념으로 내게 주었던 일이 눈에 선하다. 그 선씨에 대해서 물으니,
‘선씨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부인과 가족은 보성읍(寶城邑) 부근에 거주합니다. 그 노부인 역시 옛일을 잊지 않고 선생님이 지금 가시는 보성읍으로 마중 나온다 합니다’
하고 소식을 전하였다.
그날 그 동네를 떠나 보성읍에 도달하니, 과연 그 부인이 전 가족을 거느리고 마중 나온 광경은 참으로 감격에 넘치었다. 만나는 자리에서 나이를 물으니 나와 역시 동갑이라, 과거사를 잠깐 토론하며 만나고 헤어지는 예를 마치었다.”6)
김판남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온 책이란 김구가 김광언의 집에 머물면서 애독하고 헤어질 때에 정표로 선물했던 《동국사략(東國史略)》이었을 것이다(《月刊朝鮮》 2002년 8월호 <방랑 끝에 찾아간 麻谷寺에서 중이 되다> 참조).
光州 戰災民村에 ‘百和’라고 이름지어 줘
보성의 환영강연을 마친 김구는 강진(康津)을 거쳐 목포(木浦)로 이동했다. 목포는 인천감옥에서 같이 탈옥한 양봉구(梁鳳九)를 찾아 지게를 지고 노동자로 변장하고 와서 그를 만났던 곳이다. 목포에 도착하자마자 김구는 양봉구의 유가족과 그 밖의 소식을 알아보았으나 아무런 단서를 얻지 못했다. 목포에서는 무안(務安)을 다녀오는 등으로 이틀 밤을 묵었다.
“가는 곳마다 환영 열기는 이루 언급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역로마다 수많은 동포들이 대기하다 환영하니, 어떤 날은 3, 4차를 경유한 적도 있었다”고 김구는 썼다.7)
목포를 떠나 광주(光州)로 향하는 길에 함평(咸平)군을 지날 때였다. 수많은 군중이 길을 막고 잠시라도 함평읍에 들러달라고 간청했다. 할 수 없이 들러 학교운동장에서 환영강연을 마치고 날이 저물 무렵에 나주(羅州)읍에 도착했다. 김구는 먼저 방랑시기에 주인의 호의로 보름이나 머물렀던 육모정〔六角亭〕이 있는 이 진사 집 소식을 물었다. 그러자 이 진사 집은 함평읍이고 아까 강연회에서 만세를 선창한 사람이 바로 이 진사의 둘째아들이라고 했다. 오랜 세월에 김구는 나주와 함평을 섞바꾸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8) 나주에서는 독촉국민회 나주지부에 ‘만민일심(萬民一心)’이라는 휘호를 써주기도 했다.9)
김구가 광주에 도착한 것은 9월24일이었다.10) 광주천변에 천막을 치고 열악한 생활을 하는 전재민들과 극빈자들의 참상을 살펴본 김구는 광주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그동안 여행하면서 받은 주단, 포목, 해산물, 금품 등의 선물들을 서민호(徐珉濠) 광주 부윤에게 주면서 전재민들을 돕는 데 보태라고 했다. 서 부윤은 이 돈으로 판잣집 100채를 지어 난민들에게 제공했는데, 김구는 “100가구가 가난하지만 화목하게 살자”는 뜻으로 ‘백화(百和)’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11) 서민호는 10월16일에 전남지사로 발령이 났다.12)
광주강연회는 다른 어느 곳보다 성황을 이루었을 것인데도, 《백범일지》나 선우진의 회고록에도 언급이 없고 짐작할 만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김구가 다녀오고 난 뒤 광주에는 10월12일에 한독당 전남지부가 결성되었는데, 이때의 지부 결성식에는 중앙당에서 안재홍, 명제세(明濟世), 박용희(朴容羲) 등이 참석했다.13)
全州에서 金亨鎭의 친족들 만나
다음 방문지는 전라북도 전주(全州)였다. 전주는 김구가 젊어서 동학농민봉기의 패장으로 숨어 지낸 청계동(淸溪洞)에서 만나 같이 청국 여행을 한 김형진(金亨鎭)과의 사연이 얽힌 고장이었다. 전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을 김구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전주에 도착하니 무수한 남녀동포들이 출영하여 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김맹문(金孟文)씨와 그 사촌동생 김맹열(金孟悅), 고종사촌형 최경열(崔景烈) 세 사람은 특히 역사적 관계가 두터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21세 때에 신천(信川) 청계동 안중근(安重根) 의사 부친 안 진사 태훈(泰勳)씨 댁에서 상봉한 김형진씨의 아들, 조카, 생질이었다. 전주 동포들의 성대한 환영이 끝난 뒤에 김맹문 외 세 사람의 전 가족을 상대로 한 특별 환영기념사진까지 촬영하니 피차간에 고 김형진씨에 대한 감회를 금할 수 없었다.”14)
김형진의 친족들은 뒷날 따로 경교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9월28일 아침에 전주를 출발한 김구는 김제(金堤)에 도착하여 중앙국민학교 교정에서 성황리에 강연회를 거행하고, 오후에는 이리(裡理)로 이동했다. 이리에서는 4만 시민의 환호 속에 이리고녀 교정에서 독촉국민회 주최의 강연회가 열렸다.15) 이어 군산(群山)으로 간 김구는 9월29일 오전에 군산을 시찰하고, 자주독립전취를 고취하는 강연회를 가졌다. 강연회가 끝난 뒤에 김구는 전재동포들을 위하여 현금 1만5천원을 희사했다.16)
군산을 떠나서 대전(大田)으로 가는 길에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江景)에 들렀다. 강경은 김구가 인천감옥 시절에 가까이 지낸 공종렬(孔鍾烈)의 고향으로서 탈옥한 뒤에 찾아갔다가 씁쓸한 경험을 하고 우울하게 떠나온 곳이었다(《月刊朝鮮》 2002년 8월호 <방랑 끝에 찾아간 麻谷寺에서 중이 되다> 참조). 공종렬의 소식을 탐문해 보니 젊어서 자살하였고 자손도 없었다. 김구가 공종렬의 집에 머물 때에 있었던 괴변은 그 친척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했다.17)
대전에 도착한 김구는 그곳에서 경교장 운전사 정태훈이 모는 차를 타고 10월4일에 서울로 돌아왔다.18)
“國父는 李博士 한 분이면 돼”
그런데 이때 김구의 삼남지방 순방의 실상은 같은 시기에 강릉을 방문한 안재홍의 동향에 관한 미군첩보대(CIC)의 보고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안재홍은 9월20일에 강릉에 도착하여 한국독립당의 목적을 설명하고 한독당 지부를 조직하기 위한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회에는 1천여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강연이 끝난 뒤에는 강릉중앙국민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연설을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한독당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호텔의 자기 방으로 초청하여 간담회를 가졌다.19)
김구는 귀경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다시 경상남도를 여행했다. 김해에서 열린 수로왕릉 추향제(秋享祭)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김구는 《백범일지》에 “그때에 나주를 떠나 김해에 도착하니 때마침 수로왕릉의 추향이었다”라고 썼으나 이는 착오이다. 수로왕릉의 추향일은 음력 9월15일로서 1946년에는 10월9일이었다. 이때에는 엄항섭은 같이 가지 않고 선우진만 수행했다.20)
김해에 도착하자 김(金)씨와 허(許)씨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참배준비로 김구에게 사모각대(紗帽角帶)를 갖추어주었다. 평생 처음으로 사모각대를 갖추고 수로왕릉에 참배하는 김구는 무척 감개무량해 했다.
추향제를 마치고 그 길로 진전(鎭田)을 향해 출발했다. 진전은 상해임시정부의 경상도 책임자로 국내에 파견되어 활동하다가 옥사한 이교재(李敎載) 지사의 고향이었다. 이교재 지사의 묘를 참배하고 유가족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동래에서 1박했다.21)
지방순회를 하면서 어느 도시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도시 입구에 들어서자 “국부(國父) 김구 선생 환영”이라고 쓴 플래카드가 길을 가로질러 걸려 있었다. 플래카드를 본 김구는 “우리나라에 국부는 이 박사 한 분이면 돼”라면서 수행하는 선우진에게 플래카드를 치우게 하라고 말했다. 김구는 평소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초대 대통령은 이 박사가 되어야 한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22) 김구의 이승만에 대한 의식이 이때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2. “나의 人民은 나와 함께 있소”
좌우합작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운영되기를 기대하면서 설립이 추진되어 온 입법기관 설치 문제는 좌우합작 작업이 지지부진함에 따라 지연을 거듭한 끝에 10월7일에 ‘좌우합작 7원칙’이 발표되자마자 10월12일에 군정법령 제118호로 「조선과도입법의원의 창설」이 공포되었다. 모스크바 협정에 따른 임시한국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개혁의 기초로 사용될 법령 초안을 작성하여” 미군사령관에게 제시하는 임무를 지닌 입법자문기구를 설치하라는 국무부의 「대한정책」이 시달된 지 4개월이나 지나서야 실현을 보게 된 것이다. 신문들은 일제히 법령 제118호의 전문을 자세히 보도하면서 큰 관심을 보였다. 10월14일에는 군정청 사법부 차장 전규홍(全圭弘)을 입법의원 사무총장으로 임명하고,23) 10월18일에는 러치(Arecher L. Lerch) 군정장관이 선거계획서를 좌우합작위원회에 전달했다.24)
美軍政長官이 거부권 가져
법령 제118호는 먼저 이 법령의 목적은 과도입법기관을 설립하여 정부에 민주적 요소의 참여를 증대시킴으로써 모스크바 협정에 규정한 전 조선의 임시민주정부를 조속히 수립하여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국가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제1조). 법령은 이어 조선과도입법의원은 정부의 한 기관으로 설치되고(제3조), 입법의원에서 제정한 법령은 군정장관이 동의하여 합법적으로 서명 날인하고 관보에 공포하는 때에 효력이 있다고 하여(제5조), 입법의원에서 제정하는 법령에 대해 군정장관이 부인권[거부권]을 갖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법령은 또 군정청의 권한은 경감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입법의원의 모든 직무와 권한은 임시조선민주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조선군정청의 권한하에서 행사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제11조). 그리고 군정장관은 입법의원의 해산권도 갖는다고 못박았다. 조선공산당과 민족전선 등 좌익 정파들은 이러한 점을 들어 입법의원이 일본점령기의 중추원(中樞院)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비판했다.25)
입법의원의 성격과 관련하여 물의가 분분하자 김규식(金奎植)은 10월16일에 번역에 착오가 있었다는 등 구차한 담화를 발표했으나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그는 입법의원은 미군정을 연장시키거나 미군정의 자문기관으로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하고, 하지 사령관, 미소공위 미국 수석대표 브라운(Albert E. Brown) 소장, 버치(Leonard M. Berstch) 중위, 여운형(呂運亨) 그리고 자신이 회합했던 이야기까지 소개했다. 이 회합에서 하지는 “입법의원이 미군정청의 공구(工具)가 되지 않기를 원한다”고 했고, 이에 자기도 “우리도 역시 행여나 명의로든지 실지로든지 공구나 자문기관의 색채를 갖지 않게 해야만이 합작위원회에서 협조도 할 수 있고 노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26) 그러나 그것은 논란에 대한 해명이나 반론은 될 수 없었다.
군정장관의 부인권에 대한 물의에 대해서는 러치 장관이 10월18일에 입법의원의 법령제정권을 존중하겠고, 부인권은 (1)하지 장군과 그의 막료를 조선으로부터 축출시키는 모든 법률, (2)미곡수집의 책임은 미국인에게 부담시키고 배급사무만 조선인에게 부담시키는 모든 법률 (3)조선의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법률에 대해서만 행사하겠다고 발표했다.27)
韓獨黨은 法令修正 요구하고
법령 제118호가 발표되자 가장 진지한 반응을 보인 것은 한독당이었다. 한독당은 10월15, 16일 이틀 동안 임시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입법의원 설치법령에 대하여 신중히 검토한 다음 (1)과도입법의원이 민의의 대표기관임을 표시할 것, (2)입법의원이 법률을 제정할 직무와 권한이 있음은 물론 예산 결산을 심의할 권한이 있음을 규정할 것, (3)군정장관의 입법의원 해산조항을 삭제할 것, (4)입법의원에서 제정한 법령에 대하여 군정장관이 부동의[不同意: 거부권]로 재의(再議)를 요구할 때에는 입법의원의 법정 출석의원수 4분의 3의 결의로 실시케 할 것이라는 4개 조항의 수정을 요구했다.28) 이러한 수정요구는 입법의원이 독립공화국의 의회의 권능을 갖도록 수정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을 운영해 온 경험에 따른 것이었으나, 한독당이 입법의원의 설치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한독당은 또 15, 16일 이틀 동안 상임위원회를 열어 18일에 개최될 전국지부당 위원장회의를 준비했다.29) 그리고 18일 오전 10시부터 운니동(雲泥洞) 당사 회의실에서 열린 전국지부당 위원장회의에는 김구, 조소앙(趙素昻) 정부위원장 및 중앙간부들과 전국 67개 지부당 위원장들이 참석하여, 중앙당에서 결정한 방침을 준수하여 좌우합작은 원칙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입법기관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관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결의하고 오후 6시쯤에 폐회했다.30)
選擧參與는 個人資格으로
한편 독촉국민회는 “입법기관이 전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는 기관이라면 환영할 바이지만 현재 그렇지 못한 경우임에는 자못 미흡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군정청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직접 요리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면서 “당면 생활문제의 개선을 위해서 유능한 의원을 선거하여 국민생활의 도탄의 고통을 면하게 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라고 의원 선거에 관심을 보였다.31)
그러나 민주의원을 한국국민의 대표기관으로 주장하면서 좌우합작운동에도 처음부터 회의적인 입장에서 침묵을 지켜온 이승만은 입법의원 선거와 관련하여 10월18일에 담화를 발표하여, “민족통일총본부와 독촉국민회는 이번 입법기구 설립이 아무 층절 없이 순조로 속히 완성하여 국권회복에 빨리 성공되기만 바란다”고 말하고, 그러나 민통총본부나 독촉국민회는 단체로서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다음과 같이 잘라 말했다.
“민통총본부와 독촉국민회는 원래 정권을 잡거나 지위를 도모하려는 생각이 없고, 전 민족의 통일로 정부수립과 국권보호에 보좌가 되고자 하는 것뿐이니, 우리는 대표 선거권이나 대표 피선거권은 요구치 않으며 우리 간부 임원이나 회원은 이에 대하여 각각 개인 자격으로 시민의 직책을 행하되 단체 명의로는 참가하는 것을 필요치 않은 줄로 아나니, 각각 자의로 행할 것이며,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지위를 다투거나 허영을 위하야 입법기관 성립에 지장이 되게 하는 등의 폐단이 없기를 바란다.”32)
이튿날 오전 10시부터 천도교 강당에서 열린 독촉국민회 한성시지부 대의원대회에는 1천여명의 대의원들이 참가하여 시지부 정부위원장과 감찰위원, 중앙위원의 선거에 이어 민생문제와 시국문제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 이승만은 이 자리에 참석하여 축사를 했다. 시지부 위원장에는 신익희(申翼熙)가 선출되었다.33)
選出議員 45名, 指名議員 45名으로
그러나 일반국민들의 관심은 어떤 사람들이 입법의원이 될 것이냐 하는 문제에 집중되었다. 법령 제118호는 입법의원은 90명의 의원으로 구성하는데, 그 가운데 45명을 국민들의 선거로 뽑는다고 했다(제3조). 나머지 45명은 “조선의 경제적, 정치적 및 지적 생활의 주요한 민주적 요소를 공평정대하게 대표하도록” 선정하여(제3조) 군정장관이 임명하기로 했다. 그것은 실제로는 좌우합작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군정장관이 임명하는 것이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하는 이 선거는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보는 보통선거는 아니었다. “한국인들은 높은 문맹률과 전국 규모의 선거에 관한 어떠한 정치훈련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보통선거는 불가능하다”는 미군정부의 판단에 따라,34) 4단계에 걸친 간접선거를 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이(里)와 동(洞)에서 대표 2명씩을 선거하고, 그 이와 동 대표들이 소속 면(面)과 읍(邑)과 구(區) 대표 2명씩을 선거하며, 면과 읍과 구 대표들이 소속 군(郡)과 부(府) 대표 2명씩을 선거하고, 군과 부 대표들이 소속 도의 인구 할당(인구 55만명당 1명 및 서울시와 각 도의 전체 대표 1명씩)에 따른 도 대표(입법의원)를 뽑는 선거였다. 투표는 무기명 비밀투표였다(제8조). 이렇게 하여 결정된 서울시와 각 도의 민선의원(선출직의원) 정원수는 서울특별시 3명, 경기도 6명, 강원도 3명, 충청북도 3명, 충청남도 5명, 전라북도 4명, 전라남도 6명, 경상북도 7명, 경상남도 6명, 제주도 2명이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의원후보자들의 자격문제였다. 부일협력자가 배제되어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런데 8월24일에 작성된 법령 초안에는 (1)일제하에 중추원 참의(參議), 도회의원(道會議員) 또는 부회의원(府會議員)의 지위에 있던 자나 칙임관(勅任官)급 및 그 이상의 지위에 있던 자와 (2)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일인에게 협력, 조선인민에게 손해를 끼친 자는 의원의 자격이 없다고 규정했다. 그랬던 것이 확정된 법령에서는 일제하에서 도회의원 또는 국장급 이상의 지위에 있던 자로 완화되었다(제7조).
친일파 자격 규제 조항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자 미군정부는 10월14일에 각 도에 “자기의 이익을 위하야 일본에 협력함으로써 조선동포에게 해독을 끼친 자는 선거될 자격이 없음”이라는 공문을 보내고, 그 사실을 러치의 성명서와 입법의원 사무총장 전규홍의 담화로 발표했다.35)
“左翼조직 파괴되고 選擧에 무관심한 때에…”
미군정부는 의원선거를 서둘렀다. 최하급단위 선거구의 선거인 선거는 도에 따라 10월17일에서 22일 사이에 시작하고 입법의원 의원선거는 10월 말까지 끝내기로 하여 그대로 시행되었다.36) 군정부가 선거를 서둔 것은 좌우합작 작업의 정체로 말미암아 계획이 크게 지연되었을 뿐만 아니라 11월3일로 예정된 북한의 도, 시, 군 인민위원회 선거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북조선노동당을 창립하고 나서 2개월 동안 이 선거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공작을 벌여왔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통일전선이 추천한 공동입후보자에 대한 찬반만을 투표하는 것이었다. 이 선거는 남한 신문에도 보도되고 있었다.37)
이때에 실시된 북한의 도, 시, 군 인민위원회 선거를 북한주둔소련군 당국이 얼마나 중요시했는가는 11월1일에 있을 ‘평양시 민주선거 경축대회’에서 김일성(金日成)이 낭독할 연설문 초안을 평양에 있던 슈티코프(Terentii F. Shtykov) 중장이 연해주 군관구 사령부까지 가지고 가서 직접 수정해 보낸 사실로도 짐작할 수 있다.38)
도시폭동과 농민반란의 여파로 공산당 등 좌익세력의 지방조직 붕괴와 선거 보이콧 때문에 선거 결과는 우익인사들이 많이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선거를 서두른 요인이었던 것은 하지의 정치고문 랭던(William R. Langdon)의 다음과 같은 보고로도 짐작할 수 있다.
“좌익은 초창기부터 군정부에 적대적이었고 사실상 거부해 왔기 때문에 군정부의 행정관리들은 대체로 우익이다. 그리하여 선거를 위한 행정적 준비는 대부분 그들의 손에 의존해 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당파적 성향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지방 좌익의 조직파괴와 선거에 대한 의도적인 무관심 때문에, 압도적인 다수의 우익 의원들이 당선되리라는 것은 예견되는 결론이다.”39)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10월26일 시점에서 버치 중위도 비슷한 전망을 했다. 그는 《시카고 선(the Chicago Sun)》지의 게인(Mark Gayn) 기자에게 “선거의 성질 그 자체로 보아서 선출되는 45명은 늙고 반동적인 인물들일 것이다. 지명을 하게 될 45명이 해결책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40)
좌우합작위원회가 미군정부의 허가를 얻어 각 도에 1명씩 파견하는 선거감시원들은 10월24일 아침에 김포비행장에서 각각 출발했다. 선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투표율은 매우 저조했다. 전국에 걸친 정확한 집계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전라북도의 경우 투표율이 3할이었는데, 그나마 여운형, 이승만, 김구 등의 이름을 기입한 무효표가 1할이었으며,41) 전라남도의 투표율은 그보다 더 낮아서 2할에 지나지 않았고 무효표가 1할이었다고 한다.42) 모스크바 방송은 입법의원 선거의 투표율이 3할가량이었다고 보도했다.43) 미군정부에 따르면 최종집계 결과는 제주도에서 당선된 2명의 좌익인사와 12명의 무소속 인사를 제외하면 당선된 후보들은 모두 우익 진영 인사들이었는데, 개중에 몇몇은 과거의 부일협력자로 지목되는 사람들이었다.44) 당선자들의 명단은 위와 같았다.
위의 당선자들을 정파별로 보면 이승만의 독촉국민회 소속이 17명으로서 가장 많고 한민당 소속이 14명, 한국독립당 3명, 무소속이 9명, 인민위원회가 2명이었다.45) 이승만은 민통총본부나 독촉국민회는 단체로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간부들이나 회원들이 참여하는 경우에는 개인자격으로 참여하라고 했는데도 대승을 거둔 것이었다.
선거 직후에 선거 결과를 토의하기 위하여 열린 10개도의 미군지사회의에서 러치 장관은 “우리는 워싱턴으로부터 중간파 그룹의 노선에 따라 행동하라는 지령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우익의 압도적 승리로 끝난 이번 선거 결과는 워싱턴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기뻐했다고 한다.46)
韓美共同委員會가 合作委권위 제고시켜
입법의원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좌우합작위원회는 남한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요사태의 진상을 조사하고 그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하여 합작위원회와 미군정부의 공동대책회의를 개최할 것을 하지 중장에게 제의했는데, 하지는 이에 즉각 동의하여, 10월23일부터 한미공동위원회(Joint American Korean Conference)가 덕수궁에서 열렸다. 한국 쪽에서는 합작위원회 대표 김규식, 원세훈(元世勳), 최동오(崔東旿), 김붕준(金朋濬), 안재홍 5명과 중간파에서 사회민주당의 장권(張權), 좌익에서 여운형의 대리로 이임수(李林洙), 박건웅(朴建雄)과 합작위원회 비서 등이 출석했고, 미국 쪽에서는 미소공위 수석대표 브라운 소장, 러치 군정장관, 하지의 경제고문 번스(Arthur C. Bunce) 등이 참석했다.47)
한미공동위원회는 연일 회의를 거듭한 끝에 10월26일에 앞으로 심의할 주제들을 정리했는데, 그것은 (1)경찰 및 군정부 안의 부일협력자들과 ‘통역들’의 존재, 한국인 관리들의 부패, 그리고 남한의 복리에 반하는 선동자들에 대한 반감, (2)미곡수집과 배급계획, 인플레이션과 물가고, 전재민 문제, 경제 회복의 부진, (3)임시정부 수립의 지연, 과거 일본재산의 관리에 대한 불만, 정당의 영향 및 정부를 개선하는 방안이었다.48) 그러고는 하지의 대리 브라운과 김규식, 여운형 세 사람 명의로 국민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동족상잔은 언제나 죄악이다. 이는 다만 민족의 역량을 소모하고 조국의 재건을 더디게 할 뿐이다. 더구나 도에 넘치는 잔인한 행위는 국제적으로 조선민족의 위신을 떨어뜨리어 독립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 지금부터 여러분은 정치상 경제상 어떠한 불평불만이 있든지, 또는 좌거나 우거나 어떠한 악질의 선동이 있든지 그 선동에는 속지 말고 각각 고생스러운 생활을 참고 지켜나가면서 동포끼리 서로 싸우는 참극은 즉시 그치라! … 여러분은 다만 좌우합작에 의한 고심참담한 건설을 함께 신뢰하고 지지하면서 총역량을 집중하여 이 중대한 시국을 수습키로 하자! …”49)
좌익은 한미위원회가 미군정부의 실책을 합리화시켜 주는 기관이라고 비난하면서 해체를 주장했으나 회의는 계속 열렸다. 그리하여 일반국민들에게는 한미위원회가 좌우합작위원회의 권위를 크게 제고시키고 있었다. 11월5일의 회의는 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趙炳玉), 수도경찰청장 장택상(張澤相), 수사국장 최능진(崔能鎭), 경무부 고문 매글린(William Maglain) 대령 등을 출석시켜 경무부의 운영과 조직에 관하여 논의했다.50) 회의에 앞서 조병옥은 러치 군정장관으로부터 “이번 회담의 결과에 따라 당신의 진퇴문제가 결정될 것이니 출석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듣고, 태평양 전쟁 때의 여운형과 안재홍의 부일협력 사실을 입증하는 사진과 담화, 성명, 논설 등을 영역하여 등사해 가지고 회담장에 내놓고 영어와 한국어로 두 사람을 공박하는 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여운형은 병원에 간다면서 중간에 나가고 안재홍은 체머리만 흔들며 앉아 있었다고 조병옥은 술회했다.51)
이렇게 하여 한미위원회는 출범 때의 위세와는 달리 회담만 몇 차례 개최했을 뿐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입법의원이 개원되자 곧 해체되고 말았다.
“再選擧를 하거나 90명 전원을 任命해야”
입법의원의 선거 결과는 김규식을 크게 낭패시켰다. 격분한 그는 11월1일에 성명을 발표하여 자신이 한미공동위원회에서 브라운 소장에게 11월4일로 예정된 입법의원 개원일을 12월1일로 연기하고, 좌익진영도 공평하게 참여하도록 하여 선거를 다시 하든지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90명 전원을 좌우합작위원회에서 추천하게 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고, 이에 대해 브라운은 대부분 지역의 선거 결과를 보고 결정하자고 답했다고 한다.52) 그러나 브라운은 10월3일에 한민당의 김성수와 장덕수에게는 “피선자가 좌익이 적고 친일파가 많다 하여 무효로 해달라고 하나 선거된 인물은 조선인이 투표하여 피선된 만큼 이것을 무효로 하기는 곤란하며, 또 파업문제 때문에 애국자가 나오지 못하였다 하여 이를 석방해 달라고 하지만 참다운 애국자라도 법적으로 범죄하였다면 선거 때문에 석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53)
그러나 김규식은 10월4일에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하지 장군에게 선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무효로 하고 재선거하든지 다른 방법으로 하든지 할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전체적으로 유능한 애국자가 못 나왔고 더구나 좌익진영은 전면적 검거로 말미암아 피선될 기회가 거의 없었으므로 유감이며, 더구나 피선된 자가 극도로 편향적인데다가 친일파라고 지목되는 자가 다수인 것은 입법기관에 대하여 전 민중의 실망을 주었고 충분한 민의를 반영시키지 못한 반민주적 선거라는 것을 국민대중에게 인식케 하여 진정한 입법기구가 아니라는 인상을 주게 되었다.”54)
李承晩은 美國역사 예를 들며 改良發展 주장
한편 기대이상의 압승을 거둔 선거 결과에 흐뭇해진 이승만은 같은 날 입법의원 선거의 의의를 강조하면서 김규식의 주장을 반박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 입법기구가 우리민국 성립에 효시이니만치 다소 약점이 있을지라도 점차로 개량 발전시킬지니, 이는 미국정부의 역사를 보아도 가히 증명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투표 방침이 잘되고 못된 것과 피선인원이 누구임을 불계하고 다만 정권회복으로만 목적하야 호상 제휴함으로써 정당한 기관을 이루어서 외국이 참견할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기구가 성립되는 대로 일반동포는 성심으로 지지하여 피선 제씨는 각각 사심 편견을 버리고 정권 수립에 전력하리니, 완전정부가 조속히 조직되기만 노력하기를 믿는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못해서 각각 자기의견이나 고집하야 한 쟁론기관으로 타락되면 한인은 자치할 준비가 되었다고 러치 장관이 선언한 말이 무효로 돌아가고 신탁통치를 주장하는 외인들의 언론이 크게 되리니, 그 영향이 장차 어디까지 미칠 것을 잊지 말아야 될 것이다.”55)
이승만은 이튿날 《시카고 선》지의 마크 게인과 도쿄에서부터 그와 같이 온 《뉴스위크(the Newsweek)》지의 여기자 샬럿(Charlotte Ebener)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두 사람이 돈암장에 도착하자 먼저 온 세 사람의 손님이 있었다. 하지 중장의 부관인 미군장교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김성수였다. 하지의 부관은 이승만과 친근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것을 본 게인은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하지 장군으로부터 접촉을 피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승만을 하지 장군의 부관이 이렇게 방문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나는 의심했다”고 썼다.
게인이 두 도에서 그의 휘하 사람들이 당선되는 것을 보고 왔다고 말하자 이승만은 봉건군주가 자기 왕국 이야기나 하는 것처럼
“나의 인민은 나와 함께 있소”
하고 말하더라고 게인은 적어놓았다.56)
3. 呂運亨과 韓獨黨員들의 議員職 거부
11월6일 오후에 게인과 샬럿 두 기자는 삼청동의 김규식 집을 방문했다. 김규식의 목소리에는 힘과 분노가 들어 있었다. 그는 방금 하지 장군에게 선거 결과를 전부 또는 일부를 무효로 하거나 아니면 좌우합작위원회가 입법의원의 45명이 아니라 90명 전원을 선정하도록 제안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는 사기였다고 말하고, 좌익지도자들이 모두 감옥에 있는 한 공정한 선거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 합작위원회 공동위원장 여운형의 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또한 두 달 전에 러치 장관에게 특별경위대를 조직하라고 권고했으나 무시되었다고도 했다.
45석 가운데 40석을 이승만파가 차지했고 김구는 3석을 얻었다고 김규식은 설명했다. 독촉국민회와 한민당과 무소속을 모두 이승만파로 계산한 것이다. 공동위원장 여운형은 제주도에서 두 자리를 건졌는데, “그곳 지사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좌익이 당선될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자기 파는 한 사람도 당선되지 못했다고 했다.
김규식은 부정선거의 사례를 두 외국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했다. 많은 도에서 누가 투표자격이 있는가를 결정하는 권한은 그곳 이장에게 맡겨졌다. 수백의 마을에서 선거는 이장과 선정된 세대주들 사이의 우호적인 간담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장이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를 뽑아주시겠습니까?” 하는 식이었다는 것이었다. 이장이나 면장이 지지해 줄 만한 사람에게 사환을 보내어 도장을 빌려오게 해서 관리들이 이름을 써놓은 투표용지에 찍는 사례도 허다했다. 선거에 대한 적절한 주의도 없었고, 많은 경우에 투표일은 지방 관리의 재량으로 결정되었다. 선거의 유효성에 대하여 질문한 사람들이 소란죄로 투옥되는 사례도 수십 건에 이르렀다. 군정부는 분명히 비밀선거를 요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문맹의 투표자들은 투표용지를 이장들에게 맡겨 기입해 받았다. 그러한 이장들의 이름이 당선자들 이름 가운데 많이 들어 있었다. 군정부는 18세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투표권이 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세대주만 투표할 수 있었다.
김규식은 강원도와 서울의 경우를 강조해서 설명했다.
“강원도에서는 모든 선거는 정부당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승만의 정당〔독촉국민회〕 지부에 의하여 진행되었다. 당연히 이승만을 추종하는 세 사람이 당선되었다. 이들은 모두 악명 높은 부일협력자들이다.”
“서울에서는 선거 당일 아침에 시청 입구가 이승만 정당의 포스터로 메워졌다. 당선된 세 사람은 그 정당〔한민당〕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두 사람은 부일협력자로 알려져 있다.”57)
이런 이유로 김규식은 “이승만의 추종자들”이 당선한 서울과 강원도의 재선거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온 것이었다.
金九는 정치문제에 대답 회피해
게인 기자와 샬럿 기자는 이튿날 경교장으로 김구를 방문했다. 게인은 김구를 방문했던 일을 아주 간략하게 적어 놓았다. 게인은 경교장 응접실에서 외출한 김구를 기다리면서 이러한 생각을 했다고 기술했다.
“나는 김구가 이제 타협을 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한국의 한 ‘광산왕’이 그에게 제공해 준 이 저택도 아마 그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구와 이승만은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다르다. 이승만이 부일협력자와 지주, 극우의 ‘가진 자’를 대변하는 데 비하여 김구는 일본인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몇십 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다가 귀국해 보니까 아직도 부일협력자들이 지배하고 있는 사실을 깨달은 우익의 ‘못 가진 자’를 대변한다. 때때로 협력하여 일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두 진영 사이에 애정은 없다. 이승만 진영에서는 김구를 중국의 앞잡이라고 조소하고 김구 진영에서는 이승만과 협력하는 부일협력자들의 전력을 들먹이며 쾌재를 부른다.”
이윽고 김구가 돌아왔다. 거구에 검은 머리인 김구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으나 두 손은 떨렸다. 그는 악수를 깜짝 놀랄 만큼 약하게 했다.
김구는 정치적 이슈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을 주면 대답하겠다면서 제쳐놓았다. 그 대신에 자신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에 가난하여 서당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일부터 시작하여 이야기가 1940년에 임시정부의 국무위원회 주석이 되었을 때까지 이르렀을 때에 창 밖에서 군대의 행진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창 밖을 내다보자 민간인 복장에 흰 완장을 두른 스무나무 사람쯤 되는 청년들이 군대식으로 행진하고 있었다. 게인 기자가 김구에게 청년들이 무엇 하는 사람들이냐고 묻자 김구는 ‘청년대’라고 대답했다. 더 캐묻자 김구는 자기는 모른다고 대답했다.58)
게인 기자는 여운형도 만나보고 싶어 했으나 군정부 연락국은 여운형과의 면담 주선을 거절했다고 한다.59)
혁명적 애국자들을 많이 등장시켜야
좌우합작위원회는 11월8일에 각 지방에 파견했던 선거감시원 9명의 선거상황보고회를 열었다. 회의는 신문기자들에게도 공개되었다. 감시원들은 선거가 일률적으로 활기가 없고 정치적 훈련이 없는데다가 문맹 등으로 4할가량이 기권이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유치하고 부자연하나마 서울시와 강원도를 제외하고는 불법선거는 없었다고 했다. 보고회가 지적한 서울시와 강원도의 불법선거 사례는 김규식이 게인 기자에게 설명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서울의 경우 첫째로 20세 이상의 남녀는 모두 선거권이 있다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대주만 투표권을 행사했고, 둘째로 어떤 반에서는 반장이 반원더러 도장을 가져오라고 하여 자의로 대표를 선출했으며, 셋째로 선거 포스터에 명의를 개인이나 소속 정당 명의로 하지 않고 ‘선거유권자일동’이라는 모호한 명의를 썼다는 것이었다. 또 강원도에서는 선거 관리를 지방관리가 아니라 독촉국민회 지부장이 ‘입법의원 선거대책위원회’를 조직하여 관리하는 불법행동을 했다는 것이었다.60) 그러나 김규식이나 선거감시원들이 지적한 세대주 선거방식은 미군정부가 각 도에 지시한 사항으로서 불법이 아니었다.61)
김규식의 재선거 요구에 대한 정파들의 반응은 분분했다. 서울특별시의 의석을 석권한 한민당은 김규식의 11월1일자 성명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좌우합작위원회는 그 구성상으로 보아 선거의 결과를 심판할 단체가 되지 못한다”는 긴 성명을 발표했다.62) 또 거주기간이 1년 이상이라야 한다는 피선거권 자격 규정 때문에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중진들이 입후보할 수 없었던 한독당의 선전부장 엄우룡(嚴雨龍)은 11월9일에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했다.
“과도입법의원에 대하여는 한독당 중앙집행위원회 결의의 정신에 준하여 합법적 투쟁의 방법으로 임할 것이다. 그리고 금번 위법 선거된 부분에 관하여는 김규식 박사의 재선거 요구를 우리 당은 엄정 지지한다. 무엇보다 혁명적 애국자들을 많이 등장시키는 동시에 입법의원선거 규정을 공정히 실현해야 할 것이다.”63)
“附日協力者는 將功贖罪 할 수도…”
이승만도 다시 담화를 발표하고 선거가 정당하게 실시되었으며, 관선의원 선정은 좌우합작위원회와는 관계없다고 김규식 등의 재선거 주장을 거듭 반박했다.
“입법의원 선거는 정식으로 되었으니 우리 민족이 다 축하할 것이다. 관선입법의원은 불일내로 군정에서 발표가 있을 것인데, 합작위원회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요 군정당국이 한국인 직원들과 협의하여 정한다니, 또한 공정히 선택되기를 바랄 것이다. 애국남녀는 설령 불충분한 점이 있어도 그대로 세워가지고 점차로 교정하여 국권회복만을 도모할 것이다.”
그는 또 자격시비가 되고 있는 부일협력자 논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이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주장보다 한결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어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 문제는 우리 환경이 해결할 수 없으니, 미리 제출되는 것은 민심만 혼란케 하며 통일에 방해를 끼치는 것이다. 국권을 회복한 후에 조처하는 것이 순서적이다. 극렬 친일 분자라도 기회를 주어 민족에게 복리될 공효(功效)를 세우게 되면 혹 일후에 장공속죄〔將功贖罪:공을 세워 그 값으로 죄를 면함〕할 희망이 있을는지도 모를 것이니, 40년을 참아온 처지에 얼마 더 참기가 그다지 어려울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국권회복을 통일적으로 진행할 따름이다.”64)
한편 그 자신도 선거결과를 우려하면서 김규식의 요청을 숙고하던 하지 장군은 11월12일에 “비록 한두 지방은 재선거를 명(命)함이 가(可)할 곳이 발견되더라도 개원은 11월20일부터 12월1일로 되기 바란다”라는 답신을 김규식에게 보내어 일부 지역의 재선거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서,65) 11월13일부터 15일까지 도쿄(東京)로 가서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을 만나고 왔다.66)
서울市와 江原道의 選擧무효 선언
마침내 하지는 11월25일에 이철원(李哲源) 공보부장의 특별발표를 통하여 서울특별시와 강원도의 입법의원 선거는 무효이며 이 두 지구의 선거는 다시 실시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두 지구의 선거가 왜 무효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무효선언의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이철원은 “좌우합작위원회에서 양 지구 선출 의원은 부정당하다고 건의했기 때문”이라고만 대답했다.67)
이튿날 아침에 서울에서 당선된 김성수, 장덕수, 김도연 세 사람이 방문했을 때에도 하지는 선거 무효선언의 이유를 “피선된 대의원(입법의원)의 자격문제라든지 불법선거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단 선거기구에서 취한 선거수속에 불비한 점이 있었다”고만 막연하게 대답했다. 긴급히 소집된 한민당의 중앙집행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하지의 선거 무효선언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재고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것은 (1)말단 선거기구에서 취한 선거수속에 설혹 불비한 점이 있다 할지라도 극소수의 경우를 이유로 하여 선거 전체를 무효로 하는 것은 선거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고, (2)선거수속상 불비한 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원래 이번 선거에 일정한 선거법이 없고 각 지방의 실정에 따라 선거를 행하기 때문에 그 방법도 구구했는데, 그것을 불비라고 하여 무효를 선언하는 것은 사회 실정을 무시한 것이요 하등 법적 근거가 없으며, (3)입법기구는 행정부와 대립되는 기관이므로 의원선거의 무효여하는 사법기관에서 결정할 것이요 결코 행정기관에서 결정할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군사령관이 무효로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4)좌우합작위원회와 같은 소수 인사의 진정에 의하여 민선의 결과를 파기하는 것은 선거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악례를 만들어 앞으로 혼란을 일으킬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68)
洞會聯合會는 재선거 거부하기로
또한 독촉국민회 강원도지부도 12월3일에 선거 무효선언에 대한 반박성명을 내고 (1)이번 선거는 일정한 규칙 없이 선거관리인의 지시에 따라 실시된 것으로서 선거비합법 운운은 부당하며, (2)선거 전체의 관리인인 도지사가 이번 선거를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한 뒤 당선고시를 공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등의 이유없이 중앙행정부에서 이를 무효라고 선언함은 선거인을 무시한 비민주적 조처이고, (3)강원도 선거를 감시하러 파견된 소위 합작위원회 감시원은 최후선거 완료 직전에야 비로소 춘천(春川)에 도착하여 자기당파끼리만 일반적인 시야로 선거에 간섭하여 공정치 못했다고 반박했다.69)
반발이 드세자 하지는 당선자들의 자격에 결격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선거관리 책임자들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지극히 애매모호한 성명을 발표했다. 곧 (1)두 지구의 선거 무효 이유는 법령 제118호를 잘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거에 기술적으로 착오가 있었고, (2)무효를 선언했다고 해서 선거관리책임자들에게 절대로 잘못이 없고 만일 그렇게 해석한다면 그것은 오해이며, (3)일부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의원들의 자격문제가 이 선거를 무효로 하게 된 이유는 아니며, 군정부당국으로서는 이번에 당선되었던 사람들이 재선되는 때에는 일반의 의사를 대표하느니만큼 합법적이라고 인정할 것이라고 했다.70) 이러한 해명은 미군정부의 임기응변이 얼마나 무원칙하고 자의적인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하지의 타협적인 방침 표명에도 불구하고 반발기세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12월5일에는 서울특별시 동회총연합회가 서울시청 회의실에서 임원회의를 열고 재선거를 거부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71) 서울시는 12월11일에 재선거 협조를 요청하기 위하여 서울시내 동회장회의를 소집했으나 동회장들도 임원회의의 결의와 같은 결의를 했다.72) 이러한 물의는 강원도에서도 이어졌다.
美軍政府는 예정대로 開院 강행해
11월4일로 예정했던 입법의원의 개원일은 두어 차례 연기되어 12월12일로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서울과 강원도의 재선거가 발표되자 합작위원회는 관선의원[임명직 의원] 추천자 명단을 작성하여 11월30일에 미군정부에 제출했다.73) 그리하여 군정부는 12월7일에 서울시와 강원도를 제외한 각 도의 민선의원 39명과 관선의원 4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관선의원 명단은 위와 같았다.
관선의원에는 민중동맹 7명, 사회로동당 6명, 한국독립당 5명 등 좌우합작세력이 대거 포함되었다. 이에 비하여 한민당은 2명, 독촉국민회는 1명뿐이었다. 민중동맹은 원세훈, 김약수, 이순탁 등 한민당 탈당파들이 김규식을 영도자로 추대하여 12월22일에 창당한 단체인데, 관선의원 선정 시점에는 10월29일에 민중동맹결성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다.74)
呂運亨, 趙琬九 등 7명이 의원직 거부해
그러나 좌익대표인 사회로동당 위원장 여운형과 같은 당의 장건상, 한국독립당의 조완구와 엄항섭, 문학가동맹의 홍명희, 그리고 제주도의 두 민선의원 문도배와 김시탁은 의원직을 거부했다. 입법의원으로 선출되었거나 임명된 인사들이 의원직을 거부하는 것은 미군정부의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여운형의 의원직 거부는 미군정부가 추진해 온 좌우합작 작업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었다.
여운형은 이에 앞서 11월23일에 사로당 선전부를 통하여 입법의원에 대하여 반대하는 담화를 발표했었다. 그는 “정부가 서지 못한 때에 입법기관을 운운하는 것은 3권분립의 구식 민주주의 원칙에서 보더라도 하나의 탈선”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남조선의 질식상태를 감안하여 민족반역자 등의 숙청, 경찰제도의 근본적 개선 등 몇 가지를 선행조건으로 요구했는데, 오늘까지의 경과로 보아 나의 그 요구가 무용한 것이 증명되었고”, “입법기관은 오늘 남조선의 반대파의 모든 죄악을 호도하기 위한 것임은 입법기관의 선거방법 및 그 선출된 민간의원의 면면으로 보아서 전 인민이 모두 인식할 줄 안다”면서 입법기관을 절대로 반대한다고 천명한 것이다.75)
여운형의 이러한 성명에도 불구하고 미군정부가 그를 관선의원에 포함시킨 것은 여러 가지 추측을 낳게 한다. 그의 우유부단한 성품을 미루어 거부까지는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회담, 성명, 담화의 태반은 나도 알지 못해”
여운형은 이어 12월3일에는 “좌우합작과 합당공작을 단념하면서”라는 처연한 자기비판문을 발표했다. 그동안 그는 10월28일, 11월10일, 11월16일, 11월30일 네 차례나 연거푸 북한의 김일성(金日成)과 김두봉(金枓奉) 앞으로 편지를 보내고 있었는데,76) 이날의 자기비판문은 이 편지에 대한 북한의 반응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여운형은 먼저 “해방 이후 1년 이상 노력했으나 지식과 준비가 부족하여 본의 아닌 과오를 많이 범하였다”고 고백하고, “좌우합작운동을 통하여 무슨 건설적 효과가 있기를 기대했으나 아직까지 소기의 목적에 달할 만한 물질적 조건이 모이지 않으므로 좌익 진영에서는 이를 반대 규탄하여 나의 행동은 제재되었다”고 했다. 좌익3당 합당문제에 대해서는 “지도층의 경험부족과 기술빈궁으로 일어난 오해와 충돌 때문에 좌익진영에 큰 분열을 초래했다”고 말하고, “이러한 난국에 처하여 역량 없고 과오 많은 내가 이 중책을 지려다가 일보도 전진 못하고 넘어져서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민중 앞에 사죄하며 이 중책에서 물러감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미군정부당국자들에 대해서는 “미국의 친우 중에서는 나의 태도를 소극적이라 하여 불만을 가질는지도 모르나 무능한 나로서는 이 이상 더 할 수 없음을 이해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여운형은 끝으로 “이것은 내가 혁명전선에서 이탈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자리에서 내려서는 것이요 나의 여생을 민주진영의 한 병졸로서 건국사업에 바칠 것을 맹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끝으로 근자에 자기명의로 발표되는 회담, 성명, 담화의 태반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어서 그의 철저하지 못한 성품의 실상을 짐작하게 한다.77)
미군정부는 입법의원 개원을 서둘렀다. 12월11일에는 제1차 예비회의를 열고 의장을 선출하도록 했다. 의장에는 김규식이 내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민당은 “서울시와 강원도 의원이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원함은 120만 수도시민과 100만 강원도민 전체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 당은 이와 같은 비민주주의적 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두 지구의 의원이 결정될 때까지 입법의원의 개원을 연기하기를 주장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는 한편 소속의원들의 등원을 거부했다.78) 의원직을 거부한 7명의 궐석과 한민당 소속의원 21명의 불참으로 성원이 미달되어 회의를 열 수 없게 되자 군정부 당국은 그 자리에서 법령 제129호로 법령118호의 성원 규정(전 의원의 4분의 3)을 과반수로 개정하여 회의를 진행시켰다. 이처럼 우격다짐으로 진행된 회의에서 김규식이 의장으로 선출되었다.79)
서울시 재선거에서 趙素昻, 申翼熙가 당선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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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입법의원의 개원식에서 연설하는 김규식. |
개원식에 이어 오후 2시반부터 열린 제2차 준비회의에서는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 일동에게 “앞으로 우리는 전 민족이 단결하여 목전의 제민주과업과 동시에 미소공위 재개 촉진과 남북통일임시정부의 조속 수립을 위하여 공동분투하자”는 전보를 쳤다.81)
서울시와 강원도의 입법의원 선거가 끝날 때까지 입법의원 개원 연기를 주장해 오던 한민당은 12월17일 오후에 김성수와 장덕수가 하지를 방문한 데 이어 19일에는 의원회의를 열어 20일에 개최되는 입법의원 본회의에 참석하고 재선거에도 참여하기로 결정했다.82)
서울시 재선거는 12월19일에 남대문국민학교에서 동대표들에 의하여 의원후보자 10명이 선출되고, 12월23일에 같은 장소에서 시행된 최종 선거에서는 전 서울 대표에 한독당의 조소앙이, 갑구 대표에는 신익희가, 그리고 을구 대표에는 김도연이 다시 당선되었다.83) 강원도에서 실시된 재선거에서는 서상준과 조진구가 다시 당선되고 정위교(鄭胃敎)가 새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12월20일에 후보지명을 거부했는데도84) 전 서울시 대표로 당선된 조소앙은 25일에 다시 당선을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반탁운동에 큰 성과를 보지 못한 죄책이 있고, 남북통일과 좌우합작의 완성을 위해 원외에서 자유로운 입장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85)
朴憲永은 議席 50% 준다면 들어갈 수도 있다고
과도입법의원 출범과 관련하여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에 있는 박헌영(朴憲永)의 동향이다. 그는 12월25일에 소련군 민정사령관 로마넨코(Andrei A. Romanenko) 소장을 만나 김규식에 대하여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물었다. 박헌영은 이승만과 김구의 정체를 대중 앞에 폭로했던 것처럼 김규식의 정체도 폭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月刊朝鮮》 2011년 6월호 <美蘇共委 파동 속에 지방순회> 참조). 이에 대해 로마넨코는 흥분하지 말고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고 지시했다. 구체적인 자료를 통하여 그의 옳지 못한 결정들을 근거로 폭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헌영은 이틀 뒤에 다시 로마넨코를 만났다. 박헌영은 로마넨코에게 미국인들에게 어떤 양보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만일 미국인들이 도지사를 임명하지 않고 선거하는 데 동의한다면 ‘인민위원회’라는 명칭은 양보해도 좋은지 물었다. 또 만일 50%의 의석을 준다면 입법의원에 들어가도 좋은지도 물었다. 이에 대해 로마넨코는 “지방권력기관의 선거 후에 인민의원대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했는데, 뜻은 분명하지 않다. 로마넨코는 박헌영과의 이러한 회담 사실을 그때그때 슈티코프에게 전화로 보고했다.86) 이승만이 독촉중앙협의회의 중앙위원을 선정할 때에도 50%를 요구했던 박헌영이 입법의원에도 50%의 의석을 준다면 들어갈 수 있지 않느냐고 한 사실은 공산당의 배제를 전제로 한 좌우합작이라는 미군정부의 기본방침을 너무나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 G-2 Weekly Summary No.56(1946.9.18~10.6), p.11. ; 安在鴻, <民政長官을 辭任하고>, 安在鴻選集刊行委員會編,《民世安在鴻選集(2)》, 知識産業社, 1983, p.272. 2) 《自由新聞》1946년 10월12일자, <金九氏와 美談>.
3) 《朝鮮日報》1946년 9월19일자, <金九氏鎭海視察> ; 도진순 주해,《백범김구자서전 백범일지》, 돌베개, 1997, p.414 ;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백범선생과 함께한 나날들》, 푸른역사, 2009, p.199. 4) 《自由新聞》1946년 10월12일자, <金九氏와 美談> ;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앞의 책, pp.199~200. 5) 《백범일지》, p.415 ;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앞의 책, p.200.
6) 《백범일지》, pp.415~416. 7) 《백범일지》, p.416. 8) 《백범일지》, pp.416~417. 9) 《백범일지》, p.417, 주) 6. 10) G-2 Weekly Summary No.56(1946.9.29~10.6), p.11. 11) 《自由新聞》1946년 10월12일자, <金九氏와 美談> ;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앞의 책, p.201. 12) 《獨立新報》1946년 10월17일자, <全南知事更迭>. 13) 《朝鮮日報》1946년 10월13일자, <韓獨支部結成式>. 14) 《백범일지》, p.418.
15) 《東亞日報》1946년 10월15일자, <金九總理裡理서 講演>, <金堤에서도>. 16) 《東亞日報》1946년 10월15일자, <戰災同胞에 金一封, 金九總理群山災民에게> ;《自由新聞》(1946년 10월12일자)은 희사금이 1만2천원이었다고 했다. 17) 《백범일지》, pp.418~419. 18) G-2 Weekly Summary No.56(1946.9.29~10.6), p.11 ;《自由新聞》1946년 10월12일자, <金九氏와 美談> ;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앞의 책, p.201. 19) G-2 Weekly Summary No.56(1946.9.29~10.6), p.11. 20)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앞의 책, p.202. 21) 《백범일지》, p.417 ;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위의 책, p.202. 22) 鮮于鎭 證言 ; 선우진, <김구 환국과 남북협상>,《朝鮮日報》2005년 8월12일자. 23) 《朝鮮日報》1946년 10월15일자, <立法議院事務總長全圭弘任命>. 24) Langdon to Byrnes, Nov. 3, 1946,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이하 FRUS) 1946, vol. Ⅷ,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71, p.762.
25) 《朝鮮日報》1946년 10월15일자, <立法機關法令과 政界見解> ;《獨立新報》1946년 10월18일자 <立法機關에 對한 朝共談話>. 26) 《朝鮮日報》1946년 10월17일자, <立法議院은 軍政과 別個> ;《東亞日報》1946년 10월19일자, <敵과 合作한 者는 一切除外>. 27) 《東亞日報》1946년 10월19일자, <立法院의 否認權限定>. 28) 《朝鮮日報》1946년 10월17일자, <立議法令修正을 要求>. 29) 《朝鮮日報》1946년 10월17일자, <韓獨黨常任委員會>. 30) 《京鄕新聞》1946년 10월20일자, <韓國獨立黨全國支黨委員會議>. 31) 《朝鮮日報》1946년 10월16일자, <有能한 議員選出 企望>.
32) 《朝鮮日報》1946년 10월19일자, <立法議員選擧에 對한 民統과 國民會立場>. 33) 《朝鮮日報》1946년 10월18일자, <獨促國民會漢城市代議會> ;《大東新聞》1946년 10월22일자, <獨促서울支部, 委員長에 申翼熙氏>. 34) Langdon to Byrnes, Aug. 24, 1946, FRUS 1946, vol. Ⅷ, p.731. 35) 《東亞日報》1946년 10월16일자, <日帝에 協力·私慾 채운 者 選擧에 除外를 指令> ;《朝鮮日報》1946년 10월17일자, <親日派·反逆者·謀利輩는 除外>. 36) Langdon to Byrnes, Nov. 3, 1946, FRUS 1946, vol. Ⅷ, p.762. 37) 《獨立新報》1946년 10월13일자, <金日成將軍도 立候補>. 38) 전현수 편역,《쉬띄꼬프일기 1946~1948》, (1946.10.28, 30, 31), 국사편찬위원회, 2004. ; 김일성, <력사적인 민주선거를 앞두고>,《김일성전집(4)》, 조선로동당출판사, pp.375~386.
39) Langdon to Byrnes, Nov. 3, 1946, FRUS 1946, vol. Ⅷ, p.763. 40) Mark Gayn, Japan Diary, William Sloane Associates, Inc., 1948, p.392. 41) 《朝鮮日報》1946년 10월26일자, <無效投票가 一割>. 42) 《自由新聞》1946년 11월2일자, <七割이 棄權>. 43) 《서울신문》1947년 1월8일자, <「立議」와 莫府放送>. 44) Langdon to Byrnes, Nov. 3, 1946, FRUS 1946, vol. Ⅷ, p.767. 45) 《서울신문》1946년 11월3일자, <各道代議員決定>. 46) Mark Gayn, op. cit, p.424.
47) 《朝鮮日報》1946년10월24일자, <朝美聯合委員會, 昨日德壽宮에서 第一回會合>. 48) Langdon to Byrnes, Nov. 14, 1946, FRUS 1946, vol. Ⅷ, p.767. 49) 《朝鮮日報》1946년 10월27일자, <韓美共同委員會에서 聲明>. 50) 《朝鮮日報》1946년 11월8일자, <朝美會談週間經過>. 51) 趙炳玉,《나의 回顧錄》, 民敎社, 1959, pp.172~175. 52) 《朝鮮日報》1946년 11월3일자, <金奎植博士聲明發表>. 53) 《東亞日報》1946년 11월8일자, <“議員” 再選 않겟다>. 54) 《朝鮮日報》1946년 11월6일자, <無效其他方法을 要請>.
55) 《東亞日報》1946년 11월5일자, <政權樹立의 第一步>. 56) Mark Gayn, op. cit, p.424. 57) idid., pp.425~426.
58) Mark Gayn, op. cit, pp.433~435. 59) ibid., p.422. 60) 《朝鮮日報》1946년 11월9일자, <政治訓練不足으로 四割이 棄權>. 61) 金榮美, <미군정기 南朝鮮過渡立法議院의 성립과 활동>,《韓國史論》(32), 서울대국사학과, 1994, p.266. 62) 《東亞日報》1946년 11월9,10일자, <立議에 干涉은 排擊>. 63) 《朝鮮日報》1946년 11월10일자, <韓獨黨宣傳部長談>.
64) 《서울신문》1946년 11월12일자, <親日派再選擧, 李博士談話發表>. 65) 《朝鮮日報》1946년 11월15일자, <한두地方再選될지라도 開院은 豫定대로>. 66) 《서울신문》1946년 11월16일자, <하지將軍 昨日空路歸任>. 67)《朝鮮日報》1946년 11월26일자, <서울市와 江原道, 卽時再選을 實施>. 68) 《東亞日報》1946년 11월28일자, <民意民選의 破棄는 選擧權威의 失墜>. 69) 《東亞日報》1946년 12월4일자, <獨促江原支部에서 聲明書發表>. 70) 《東亞日報》1946년 12월4일자, <無效理由는 技術的錯誤>.
71) 《朝鮮日報》1946년 12월6일자, <洞會總聯合會, 再選을 拒否>. 72) 《東亞日報》1946년 12월13일자, <再選의 理由를 究明안콘 選擧의 協力을 拒否>. 73) 金榮美, 앞의 글, pp.274~ 275. 74) 宋南憲,《解放三十年史(一) 建國前夜》, 成文閣, 1976, pp.357~359. 75) 《朝鮮日報》1946년 11월24일자, <呂氏立議反對表明>.
76) 方善柱, <美國第24軍G-2軍史室資料解題>,《아시아문화》제3호, 翰林大學아시아文化硏究所, 1987, p.16, pp.40~43 참조. 77) 《朝鮮日報》1946년 12월5일자, <左右合作과 合黨工作, 呂運亨氏斷念表明>. 78) 《東亞日報》1946년 12월12일자, <서울·江原人民의 意思無視>. 79) 《朝鮮日報》1946년 12월12일자, <立議豫備會談>. 80) 《朝鮮日報》1946년 12월13일자, <過渡立法議院開院式>. 81) 《朝鮮日報》1946년 12월14일자, <立議豫備會議를 續開>. 82) 《東亞日報》1946년 12월20일자, <不得已登院을 決定>. 83) 《朝鮮日報》1946년 12월24일자, <獨促優勢로 終結>. 84) 《東亞日報》1946년 12월21일자, <趙素昻氏立議候補를 拒否>.
85) 《東亞日報》1946년 12월26일자, <趙素昻氏代議員拒否>. 86) 《쉬띄꼬프일기 1946~1948》, (1946.12.25,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