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

원재훈 詩人이 쓰는 대한민국 구라열전 ① 李御寧

“세상에는 손으로 만지고 다루기 힘든 것이 셋 있는데, 바다에는 해삼, 산속에는 산삼, 땅위에는 고삼(高三)이 있다”

  • 글 : 원재훈 시인  
  •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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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의 기저귀는 마치 수의와 같은 거지요. 누군가 큰 손이 입혀주는 겁니다. 신생아가 알몸으로 기저귀를 차듯, 죽은 자는 수의를 입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生과 死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지요”

⊙ 신발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신호
⊙ 현대인들의 비극은 혼자 앉아서 견디는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것

李御寧
⊙ 77세. 부여고·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국문학 석사, 단국대 대학원 국문학 박사,
    초대 문화부 장관, 이화여대 석좌 교수.
⊙ 《조선일보》·《중앙일보》 논설위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원재훈
⊙ 50세.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 1988년 《세계의 문학》에 <공룡시대> 外 여러 편의 시로 등단.
시인 신달자 선생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이어령(李御寧)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어령 선생은 ‘2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라고 운을 뗀 뒤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어령 선생이 그러는데, 이 세상에는 손으로 만지고 다루기 힘든 것이 셋 있는데, 바다에는 해삼, 산속에는 산삼, 땅위에는 고삼(高三)이 있다 하더라.”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이어령 선생의 촌철살인은 오늘날 교육현실의 비애와 고통,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해삼과 산삼, 고삼이라, 지금 생각해도 피식 웃음이 나지만 입시를 앞둔 아이들을 생각하면 비감해진다. 이러한 페이소스가 이 시대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오랜 장마 끝에 하늘이 쨍하다.
 
  책상에 앉아 허리를 곧게 펴고 메모한 노트를 펼친다. 이 노트에 듬성듬성 적어놓은 글씨들을 보면서 잠시 눈을 감는다. 내 몸에 나이테가 하나 더 늘어간다. 그 나이테는 선명하고 명증하고 유연하다. 이어령의 말이 새겨놓은 나이테다. 손가락으로 그 나이테를 더듬어 선생에게 들은 이야기를 내 가슴에 넣고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적는다.
 
  “선생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처절하게 사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온몸의 진을 다 빼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지요. 지금도 저녁약속이 끝나면 서재에서 새벽 2시까지 독서와 인터넷 검색 등을 비롯한 공부를 하시니까요. 인터넷에서 자료 검색하시는 모습을 보면 저건 검색이 아니라 사색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요즘은 생명자본주의에 몰두하고 계십니다.”
 
  오랫동안 선생을 모신 ‘한중일 문화연구소’ 사무국장 윤재환씨가 해준 말이다. 《우상의 파괴》 이후 50년, 이어령은 시대마다 그 시대의 화두를 던지고 시대의 거친 파도를 넘으면서 나무나 물처럼 유연한 사고로 우리 세상의 이정표가 되어 우리 문화를 더 높이 올려놓았다.
 
  이어령이라는 이름은 이제 고유명사로 그 누구라도 ‘이어령, 이어령’ 해도 된다. 선생이 없는 자리에서는 그것이 허용된 일이다. 선생은 이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마치 다산이나 매월당처럼 이 세기가 지나면 나오지 못할 그런 인간으로 우리에게 존재한다. 이어령은 하늘에 걸쳐 있는 무지개이다. 이어령의 사고는 단일하지 않고 다양하다. 이러한 저력이 나온 근본 에너지는 뭘까? 윤재환씨가 말했다.
 
  “선생님에게는 내일이 없지요. 항상 오늘 죽는다는 마음으로 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고독한 장군의 걸음걸이
 
  지난 7월 15일 오전 인터뷰를 위해 광화문에 있는 한중일 문화연구소를 찾았다. 약속시각이 되자 이어령 선생이 사무실에 들어온다. 가볍게 인사를 받고 왕의 명령을 받은 고독한 장군의 걸음걸이로 뚜벅뚜벅 당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사람의 걸음걸이를 살피는 버릇이 있는 나는 선생의 그 걸음걸이가 이제 내 가슴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음을 감지한다. 이것은 부처의 일곱 걸음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 누군가가 이어령이라는 것이 고맙다. 이 시대를 사는 나의 행운이기도 하다.
 
  선생을 기다리고 있던 사진기자가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잠시 여기 오기 전의 일을 생각했다. 얼마 전에 집필실에서 키우는 오이와 가지에 부목을 대어주었다. 요놈들이 자라다 보니 자꾸 옆으로 누웠다. 철물점에서 2500원을 들여 부목용 막대기와 가지를 동여맬 끈을 샀다.
 
  시간이 흘러 반듯한 부목에 기댄 요놈들의 몸통엔 어느새 굵은 가지와 고추가 주렁주렁하다. 고추의 가지와 인간의 부목이 만나 열매가 열린다. 이 부목이 바로 문화이고 문명이다. 자연과 문화가 만나 열매가 열린다. 이어령 선생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일방통행길에 위치한 연구소의 주차장을 지나쳐 후진을 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짧은 거리니까 하는 마음에 기회를 기다리는데, 역시나 차들이 계속 올라와서 겨우겨우 주차장에 차를 댔다. 길을 잘못 들면 항상 고생이다. 길이 바로 문화이다. 이 길의 좌표를 알려주는 사람이 바로 선생이고 스승이다.
 
  나는 먼저 이어령 선생에게 선생에 대한 질문을 했다. 이 질문이 어쩌면 오늘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이 될 수가 있다. 선생의 말씀은 막힘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잘 들어두면 내가 던진 질문 이상의 것을 항상 얻는다. 이어령을 인터뷰한 모든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다. 선생은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말씀을 시작했다.
 
  “내가 살았던 시대는 선생을 가질 수 없는 환경이었지요. 그것이 나를 만들었습니다. 겨우 대학에 가서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지요.”
 
 
  이어령 선생에게 선생이란?
 
2009년 11월 27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저술활동 50년을 기념하는 ‘만남 50년’ 행사.
  1934년생인 선생이 학교에 입학할 무렵은 일제강점기였다. 들어가자마자 우리말을 쓰지 못했다. 쓰는 순간 체벌이 가해졌다.
 
  “그 시절의 선생은 내 꿈을 짓밟았지요.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나에게 선생이란 아,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반면교사(反面敎師)였습니다.”
 
  이것은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도산 안창호와 같은 위대한 스승을 만들었던 그 시대는 선생에게 외로운 공간을 제공했다. 이러한 비유는 이후 시대가 바뀌고 만나게 되는 특히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양 길을 걸었던 선생에 대한 갈증을 더 느끼게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선생은 잡곡밥을 잘 못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잡곡밥 검사를 피하기 위해 도시락 밑에 쌀밥을 두고 위에 보리밥을 얇게 덮었다. 보리를 걷어내고 쌀밥을 먹으려고 한 의도인데, 이게 들통이 나서 두 손을 들고 서 있는 체벌을 받았다. 교실에서 딴 책을 읽었다고 체벌을 받는 등 어린 그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 일본의 군국주의 때문에 동요 하나 부르지 못하고 군가만 불렀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좌우 이념의 대립으로 교실은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투쟁의 공간이었다. 좌익성향의 선생이 수업을 하면 우익 아이들은 우우 야유를 보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날은 등교를 하는데 선배들이 교문을 가로막고 서서 너는 민청이냐, 학련이냐며 캐묻는다. 선배들이 인민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고, 아무런 이념도 없는데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얻어맞는다. 결국 동맹휴학과 같은 사회적 분란으로 이어진다.
 
  “이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나에게 저항의식을 가지게 했고, 그것이 《우상의 파괴》라는 책으로 이어진 거지요.”
 
  이러한 트라우마는 그 치유의 방법을 스스로 개발하게 한다. 소년에게 외로운 공간이 생겼고, 공간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달시킨 것이다. 현실에는 없는 스승이 책에서 나와주었고, 그가 인생의 주인공이자 스승이 됐다. 병적일 정도로 독서를 했다. 선생의 독서는 일반적인 독서가 아니다. 책과 대화하고 의문을 품는 것이다.
 
 
  하늘은 파란데 왜 검다고 하나?
 
  예를 들자면, 조금 오래전에 우리나라는 어린 시절 천자문을 배웠다. 어린아이가 천자문은 떼면 동네에서 신동이 났다고 난리가 난다. 먼 시절에 한 시절을 풍미했던 양주동 박사가 자신이 그러했다고 자랑을 하셨다. 그분의 구라 역시 예술이었다.
 
  이어령의 독서는 이것이 아니다. 그는 천자문의 첫 줄에서 탁 걸려버린다. 천지현황이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그런데 공부하다가 바라본 하늘은 파란색이다. 선생님, 하늘은 파란데 왜 검다고 하나요? 같이 푸른 하늘 아래 서 있는 선생에게 물어보면 ‘말이 많다. 그냥 외워’ 더 튀면 튀어나온 못이 되어 망치를 맞는다. 동양철학의 검을 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자의 사상을 비롯한 얼마나 많은 지적 토대가 필요한 것인가. 천자문의 철학적 사상을 아이에게 설명해 주는 훈장은 없었던 것이다. 그냥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이것을 적고 외우고 한다. 이것은 눈을 가리고 길을 가라는 것이다. 가다가 넘어지면 네 팔자라는 것인가?
 
  비교적 논리적이라는 과학 쪽으로 가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은 설명하고 분석한다. 이 세계가 이어령을 만족시켰을까? 아니다. 이어령은 거기에서 다른 것을 또 본다. 호기심에는 한도 끝도 없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그 놀라운 ‘중력’을 발견했다고들 하지만, 사과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런 식의 발상이 이어령이라는 존재의 선생이었다.
 
  이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성과 문화의 세계를 구축했다. 이것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이다. 선생은 성장 시절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들어간 기분이랄까, 맨몸으로 허허벌판에 던져진 그런 시절이었지요. 늑대가 우글거리는 그런 황무지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황무지에도 한 떨기 꽃이 피었다. 바로 선생의 선생이라 기억하는 한 여선생이 있었다. 히라마야비 선생이었다. 이 선생에게서 누님이나 엄마와 같은 품을 느꼈고, 그 감성의 둥지 속에서 날개를 펼 수가 있었다고 한다.
 
 
  신발의 의미
 
  팔순을 바라보는 선생이 지금까지 꾸는 악몽이 있으니, 하나는 신발 잃어버리는 꿈, 하나는 인민군을 피해다니는 꿈이다. 전쟁의 기억은 평생의 상처라 이해가 되지만 신발을 잃어버리는 꿈은 무엇인가. 당시는 생필품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신발 도난사건이 많았다고 한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심부름을 하다 하교가 다른 학생들보다 늦었는데 그때 신발이 없어져 맨발로 집으로 걸어간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간혹 신발 배급이 나오는데, 이날은 학교에 축제와도 같은 날이 된다. 뽑기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한 번도 운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내 인생은 돌이켜 보면 거슬러 올라가는 인생이었고, 재수가 없는 인생이었지요. 뭐 하나 운으로 된 게 없어요. 복권은 물론이고 ‘또뽑기’도 한 번 된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 신발 하나가 나에게 온 것인 줄 알았지요.”
 
  교장 선생님이 조용히 자기를 불러 ‘우치니 모테이케’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집에 가져가라는 뜻인데,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집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 말은 교장 선생님 집에 갖다 놓으라는 뜻이었다. 교장 선생이 몰래 직권을 이용해 자신의 아이들에게 신발 한 켤레를 주려 한 것이었다. 10점 만점에 항상 만점을 맞았던 이어령은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인 그해 7점을 맞았다면서 웃었다. 가져간 것을 다시 가져오라고 할 수도 없고 성적으로 보복을 한 것이다. 그런 시절이었다. 이어령에게 신발이란 무엇인가.
 
  “신발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신호입니다. 맨발의 상태는 인간의 자연이지요. 신발을 신는 순간 문화가 발생하지요. 미당 시에서도 신발을 노래한 것이 있지요. 이런 시입니다.
 
  ‘나보고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내 신발을 먼 바다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다가 그만 떠내려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내 이 신발은 벌써 변산 콧등 밑의 개(강 어귀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안을 벗어나서 이 세상의 온갖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고 돌아다니고 있을 겁니다’라고 말이지요. 신발은 우리 문화와 문학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인간이 문명의 길을 걸어가는 중요한 수단인 겁니다.”
 
  이어령에게 고독은 무엇일까.
 
  “현대인들의 비극은 사람이 혼자 앉아서 견디는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내면에 방이 없는 거지요. 나는 그 시절을 거치면서 내면의 방을 만들었고, 그 방에서 혼자 견디는 훈련을 해 살아남은 거지요.”
 
  세계적 이목을 끈 88서울올림픽의 이벤트, 그 광활한 운동장을 혼자 굴렁쇠를 굴리고 가는 아이는 바로 소년 이어령의 모습이기도 하다. 여섯 살 즈음 수수밭 사이를 혼자 굴렁쇠를 굴리면서 가는데 눈물이 났다. 왜 울었는지는 모르지만 울었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메멘토 모리의 눈물’이라고 선생은 말했다. 중세 수도사들이 항상 외웠다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굴렁쇠를 굴리면서 혼자 수수밭 사이를 뛰어가는 아이의 가슴에 방을 만들어주었다. 그곳에서 고독한 인간과 죽음을 본다. 혼자 있는 것을 견디는 자, 무엇인가 이룬다.
 
  “신생아의 기저귀는 마치 수의와 같은 거지요. 누군가 큰 손이 입혀주는 겁니다. 신생아가 알몸으로 기저귀를 차듯, 죽은 자는 수의를 입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생과 사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지요.”
 
 
  그에겐 죽음도 궁금한 세계일 뿐
 
자신의 이름(이어령)과 부인(강인숙)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온 령인문학관 앞에서 대학 동기동창인 부인과 함께한 이어령 전 장관.
  이어령의 말은 쉼 없이 이어진다.
 
  “기계적인 통계로 인간의 능력을 정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살아있는 자에게는 허망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도식화될 수도 GNP로 결정될 수도 없는 거지요. 호킹 박사가 거대한 우주의 원리는 이해해도, 동네 처녀가 실연을 당해 세상이 무너지는 그 감정은 호킹 박사의 이론보다는 유행가 가사가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겁니다. 문화적인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 정치 경제적으로 평등하다는 이론이 가능할 뿐입니다. 생명과 몸, 자본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의 이러한 발상은 바로 ‘궁금함’에서부터 시작한다. 선생은 자신의 묘비명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평생 이 우물 저 우물, 무수히 많은 우물을 파다가 이제 더 이상 우물을 파지 못하는 자리에 서서, 그 궁금증 때문에 누워 있는 사람, 여기에 있다.” 그에게 죽음은 또 다른 세상일 뿐이다. 미국의 사상가인 스콧 니어링이 죽었을 때 그의 반려자였던 헨리 역시 “그는 다른 세상으로 갔다”는 말을 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마저도 궁금한 한 세계일 뿐이다.
 
  이어령 선생은 말했다.
 
  “누구나 나처럼 될 수 있는데 말이지요. 내가 대단하다는 말이 아니라, 누구나 독창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는데 어느 순간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 작문을 제일 잘하는 학생들은 초등학교 1학년들입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못 쓰는 거지요. 글 쓰는 법을 배우면서 글 쓰기를 못하게 되는 아이러니입니다. 특히 입시 위주 교육의 부작용은 심각하지요. 수능으로 생각을 망치는 거지요. 수능 안에 내 생각을 가두어버리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정상으로 태어나서 비정상이 되는 겁니다. 물고기를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어른은 99.9%가 머리를 왼쪽에 놓고 그립니다. 하지만 유치원생에게 그려보라고 하면 50%만 왼쪽에 머리를 두고 나머지는 오른쪽에 머리를 둡니다. 잘못된 교육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교정하는 겁니다. 이건 무서운 일이고 매달려 있는 사과의 경이로움을 보지 못하게 블라인드를 치는 겁니다.”
 
 
  “나에겐 스승이 없다”
 
  ‘묵비사염(墨悲絲染)’이다. 흰 실에 검은 물이 들면 다시 희지 못함을 슬퍼하는 이어령의 마음이기도 하다. 선생이 유독 아이들의 창의적인 교육에 마음을 쏟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선생의 저서에는 초등학생을 비롯한 학생들의 인성과 독창적인 생각을 위한 책들이 많다. 아이들은 그 책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얼굴을 찾고 그 얼굴의 눈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본다.
 
  ‘이어령’이 우리 사회에 많을수록 우리나라는 풍요로워진다. 선생이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우리 속담에서 착안한 ‘세살마을’을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시인으로서 민족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내 자식들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적어도 세 살까지는 차별 없이 키워야 한다. 거기까지만 잘 가면 그런대로 괜찮다.
 
  이런 면에서 선생은 당신의 스승을 식민지 시절에 태어난 운명과 비교하며 “나에겐 스승이 없다. 자연과 책이 스승이었다”고 다소 거칠게 말했지만, 결국 스승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그 시대와 주입식 교육에 대한 단호한 질책인 것이다. 선생 역시 대학시절을 비롯 학생으로서 많은 스승을 만났고, 그분들의 가르침으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시절, 민주화와 산업화의 양극단에 서서 때론 거칠게, 때론 슬프게 피와 땀을 흘리신 분들을 스승으로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한 시절, 학생들이 국민교육헌장이라는 선언문을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문장이 있는데, 이것은 이미 우리가 어떤 운명으로 결정지어진다는 ‘무서운 생각’이다. 인간은 태어나는데 다 자신의 목적이 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는 이도 있고, 술 마시며 그림을 그리는 장욱진 화백과 같은 인물도 있고, 백남준처럼 엉뚱한 발상을 하는 세계적인 예술가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위대한 인생이고 아름다운 세상이 아닌가.
 
 
  도시락으로 돌아가라
 
  요즘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무상급식 문제도 선생은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도시락.’ 무상급식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급식을 필요로 하는 이는 하고, 엄마의 도시락이 필요한 이는 도시락을 먹는 것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가 갈 길이 아닌가 보는 것이다. 도시락을 통해 엄마와 아이의 사랑이 존재하고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가난한 아이와 부자 아이를 완전히 평등하게 할 방법은 아직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아이의 얼굴이 서로 다르고 집에 걸려 있는 그림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양한 세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이 있으니, 이어령 선생은 그것을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이라고 말했다. 휴머니즘이 없다면 무상급식이나 도시락이나 유상급식이나 이것은 모두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는다.
 
  온 국민을 기쁘게 해주었던 ‘평창동계올림픽’을 바라보면서 이어령 선생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을 떠올렸다.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동별곡>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관동별곡>은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그 지역을 가는 여정에 지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가사이다.
 
 
  토포필리아
 
  이 가사에 관동팔경의 절경을 노래한 시인의 마음과 더불어 백성을 보살피는 관리로서의 마음이 동시에 들어가 있다. 가사를 짓고 정철은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린다. 이 지역에 관찰사로 근무하면서 백성들의 생활을 보니, 낮이 짧고 밤이 길다.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다. 뭘 심어도 잘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이다. 백성들이 배고프고 어렵게 사니, 강원도 지역의 세금을 탕감해 달라고 임금에게 전한다.
 
  “정철의 상소문을 보면 시절의 변화에 감회가 새롭지요. 강원도 지역은 식량부족으로 감자와 옥수수 같은 작물로 백성들이 주린 배를 채운 곳입니다. 수백 년 동안 어려웠던 이 지역에 오늘날 그 어려움을 역이용해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것이지요. 부족한 것을 채운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하계, 동계 올림픽을 모두 유치한 나라가 되었지요. 우리 땅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우리 땅은 남반구도 북반구도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요. 땅에 대한 사랑 토포필리아입니다.”
 
  토포필리아는 희랍어로 장소를 뜻하는 토포(Topo)와 사랑을 의미하는 필리아(Philia)를 조합해서 만든 새로운 단어이다. 땅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시대에 따라 패러다임이 바뀌고 그 사랑을 잃지 않으면 오지에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변화하는 것이다. 토포필리아와 생명애를 뜻하는 바이오필리아와 더불어 이어령 선생은 네오필리아를 강조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네오필리아에 대해서 말했다.
 
  “동물을 봅시다. 사자와 호랑이라는 포유류는 거죽을 벗겨놓으면 구분이 안 됩니다. 호랑이는 호랑이 거죽이 있고, 사자는 사자 거죽이 있지요. 이것이 캐릭터입니다. 사자는 먹으면 그늘에서 잡니다. 호랑이는 포효하면서 달리지요. 울타리 안에 가두어놓은 사자와 호랑이를 보면 사자는 늘어지게 쉬고 있고, 호랑이는 왔다갔다하기를 반복하지요. 인간의 위대한 점은 바로 네오필리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배우고 창조하지요. 잠자리에게서 헬리콥터를, 타조에게서 자동차를…. 이것이 바로 위대한 점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이러한 점, 세 가지의 필리아를 최대한 창의적으로 발전시켜야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할 수 있을 겁니다.”
 
  온 국민이 환호하고 있었던 그 순간, 고독한 서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바라보는 이어령의 시선은 송강 정철의 상소문에서부터 최근의 학자들이 만들어낸 토포, 바이오, 네오 필리아라는 학자들의 조어에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은 이어령의 거미줄이다. 이어령의 시선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 창의성은 대단한 지적인 토대 위에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거기에 머물지 않는 것은 검색과 사색이라는 양날의 칼이 예리하게 벼려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는 검색하고 사색하라, 공부를 하면 비판하고 사랑하라, 종교적으로는 죽었다가 살아나라. 이어령의 생은 이러한 양극단의 면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장자의 붕새와 같은 것이다. 한 번 날개를 펼치면 온 바다가 덮인다는 그 이야기 속의 붕새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한 면이다.
 
 
  그가 지성에서 영성으로 간 까닭
 
서울 덕수궁 정관헌에서 ‘젊음’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이어령 전 장관.
  이어령은 무소유, 비움의 철학을 강조한다.
 
  “스님과 차를 마시는데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라주는 겁니다. 차를 다 마시지도 않았는데 계속 흘러넘치게 부어요. 왜 그러시냐고 하니까, 안 비우니까 넘치게 한다는 겁니다. 버려야 채울 수 있는 거지요. 여기에 중요한 게 있지요. 바로 우주의 질서입니다. 우주의 질서라는 건, 초과하면 안 된다는 거지요. 부족하면 채워줍니다.
 
  지구에서 인간만이 과식을 합니다. 여기에서 온갖 질병이 창궐하지요. 굶으면 살아가는 방편이 생깁니다. 3억 년 이상 지구에서 살아가는 바퀴벌레는 오줌을 싸지 않아요. 오줌을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자연의 지혜를 바퀴벌레는 가지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절약하는 거지요. 절약의 미덕이 필요한 시점 아닙니까. 지구의 환경문제도 인간의 과식과 과소비, 과욕 등 욕망의 결과이지요. 이것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무서운 재앙을 불러올 겁니다. 자연이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어요. 차면 넘치듯이 자연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휴머니즘이 있다. 인간의 한계성을 넘는 위대한 어떤 것, 섬싱 그레이트가 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신에 연결된다. 이어령 선생의 신앙고백은 지성과 감성으로 단련된 이어령의 세계에 영성의 문을 열었다. 그 문을 열기까지 인간으로서는 넘어서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실명 위기의 딸 앞에서 그 아이가 믿는 신에 딸을 낫게 해주면 믿겠다는 맹세를 했어요. 이것은 궁지에 몰린 사람이 던진 탄식과도 같은 거지요. 일종의 거짓맹세였습니다. 그런 절박한 심경으로 신과 마주하니 ‘생명’이라는 화두가 내 앞에서 나를 보고 있어요. 나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잃어버린 그 사랑의 실체를 보여준 것이 바로 딸이었지요. 그 딸이 실명을 할 위기에 처했다는 건, 그 영리하고 나보다 더 좋은 존재였던 그 딸의 고통 앞에서 사랑을 모르고 글 쓰면서 가장으로 살았던 내 마음에 균열이 온 것이고 그 틈으로 스며든 것이 신이라는 존재였지요. 사랑이라는 위대한 신 말입니다. 사랑은 기적입니다. 사랑이 있어 새를 보고, 바람을 느끼고 숲을 보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는 것과도 같지요. 생명의 눈을 뜨고 풍경을 보고 비가 오는 것을 만지고 느끼면서 어떤 존재와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기적이고 부활이지요.”
 
  아직도 선생은 완전한 신자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쉽게 신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고 했다. 예수와 함께 길을 걸었던 제자 중에도 유다가 있었고,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가 있었다. 도마는 예수의 손바닥에 난 못 자국을 만지고서야 부활을 믿었다. 예수의 상처가 도마의 의심을 치유한다. 이후 도마는 예수의 제자 중에서 가장 잔혹한 고문을 받고 순교한다. 신자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처음엔 딸의 고통 앞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일종의 거짓맹세가 언론에 보도되고 그러한 여파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가서 성경을 읽고 생명과 사랑의 위대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 이어령의 마음에 신앙이라는 주머니가 생긴 것이다. 선생은 거기에 신앙심을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냥 내버려두라
 
  이러한 선생에게 호기심처럼 지성인 이어령이 신앙인이 되었다는 관심은 별 의미가 없다. 지성과 신앙이 서로 마주하고 있고, 이 각별하게 각이 있는 생각들은 이어령이라는 주머니에 많은 것을 담고 우리는 그 주머니에게 뭔가를 얻게 된다. 선생은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는 이야기다. 내버려두면 김치가 묵은지가 되고, 밥이 누룽지가 된다. 배추가 시래기가 되고, 조각천이 조각보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버린다는 말을 잘하지요. 버린다는 건 포기를 의미하는데 ‘내버려둔다’는 것은 서로 그냥 두는 것과 버리는 것이 만나 서로 모순이 되지만 창조하는 거지요. 이렇게 우리 말 속에 우리의 얼과 혼에 스며 있는 슬기를 문명론으로 가져가면 우리의 창조적인 문명이 꽃이나 나무처럼 자랄 겁니다.”
 
  21세기에 물건들, 문명의 기기들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식한 생명자본주의라는 선생의 화두는 탄생했다. 지식정보사회의 맹점인 금융자본주의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막스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넘어서서 인간은 사용과 교환의 가치를 넘어선 무엇이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숫자나 통계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생명자본주의
 
  “생일케이크가 잘 팔리는 이유는 뭘까. 생일케이크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본다면, 경제적으로 분석하면 밀가루와 설탕, 인건비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일케이크에 초를 꼽는 순간 생명가치가 탄생한다. 그 사람의 나이는 그 사람의 전 생애이다. 초를 꼽고 박수를 치고 축하를 하면서 생일케이크는 생명가치로 재탄생한다. 이것은 공감이다. 그건 내가 겪은 식민지 시대와 좌우로 나뉜 사상의 대립, 보수나 진보와 같은 세력의 충돌, 이것은 고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바로 산업화로 상징되는 땀이 있고, 민주화로 상징되는 피가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눈물이 필요하다. 공감하는 눈물, 사랑하는 눈물. 인간의 마지막 액체인 눈물이 생명화의 세계를 연다. 이 눈물이 있는 것이 바로 생명이다. 피는 죽은 이도 흘린다.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거대한 강물을 역류해서 상류로 가자.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이 역류의 파워이다. 살기 위해 헤엄쳐야 한다.”
 
  두 시간 정도 선생의 이야기를 묵묵히 적으면서 나는 비가 내리는 들판에 서 있는 감상에 사로잡혔다. 여름 숲 속에서 가열한 기세로 울어대는 매미 소리의 파도에 휩쓸려 내 영혼과 몸은 잠시 그 안에서 평안했다. 무엇인가를 받아 적는다는 것은 나의 오래된 버릇이다. 흰 종이에 검은 글씨를 새기면서 나도 조금 변했을 것이다. 선생과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각별한 경험이다. 선생은 나에게 우상인가, 내가 파괴해야 할 어떤 대상인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다. 이 생명의 달빛 아래서 나는 어둔 밤의 촛불이 되어 있다.
 
  이 글을 다 쓰고 잠시 책상에 앉아 얼마 전에 경험한 잠자리 생각을 했다. 잠자리 한 마리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 들어온다. 어떤 생각처럼 날아온 잠자리는 내 방에서 잠시 머물더니 다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창문이 열 개가 넘는데도 잠자리가 그 문을 찾지 못하고 툭툭 창문에 부딪치고 헤맨다. 아, 그렇구나. 만 개의 눈을 가진 잠자리가 나갈 문 하나를 찾지 못하는구나. 우리에게 만 개의 눈은 필요 없다. 나갈 문을 찾는 하나의 눈이 중요하다. 그것이 이제 생명자본주의라는 이어령의 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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