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당 규약의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이라는 표현은 “공산주의 사회는 주체사상의 요구에 맞게 사람과 사회가 개조됨으로써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되는 사회”라고 한 ≪철학사전≫의 규정과 일치
⊙ 선군정치 강조가 주체사상 포기 아니다
⊙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강조, 총비서 선출은 ‘선거’에서 ‘선출’로 변경
⊙ 선군정치 강조가 주체사상 포기 아니다
⊙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강조, 총비서 선출은 ‘선거’에서 ‘선출’로 변경
- 작년 9월 열린 노동당 당 대표자회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은 2010년 9월 28일 개최된 제3차 당 대표자회에서 30년 만에 노동당 규약을 전면 개정했다. 그러나 북한은 개정된 노동당 규약의 서문(序文)만 공개했을 뿐 아직까지 규약 전체 조문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이번에 ≪월간조선≫이 입수한 북한 조선노동당 개정규약 전체 조문을 바탕으로 개정내용과 의미를 분석해 본다.
먼저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규약(이하 당 규약)이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보자. 자유민주주의 국가와는 달리 북한에서는 헌법 위에 존재하는 규범이 바로 노동당 규약과 수령(首領)의 교시(김정일시대에는 장군님의 방침, 말씀이라고 표현)이다. 즉 북한에서 법규범은 ▶수령의 교시(방침) ▶당 규약 ▶사회주의 헌법 ▶개별 법 순서이다. 서슬 퍼런 북한 형법도 당 규약이나 수령의 교시 앞에서는 휴지조각인 것이다. 헌법도 당 규약 앞에서는 힘을 쓸 수가 없으며, 당 규약도 수령의 교시 앞에서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법체계를 운영하며 헌법이나 개별법을 매번 개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외적(對外的)으로 법에 의해 통치되는 정상국가(대한민국 헌법체계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반국가 불법단체임)임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적화통일 포기했다?
북한은 1946년 8월 30일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현재의 조선노동당은 남로당과 북로당이 합당한 1949년 6월 30일 창립) 시 당 규약을 제정한 후 2차 당 대회(1948년)부터 매번 당 대회 때마다 당 규약을 개정해 왔다. 이번 개정은 1980년 제6차 당 대회 시 당 규약을 개정한 이후 30년 만에 개정한 것이다. 개정된 당 규약은 서문, 제10장, 총 60조로 구성되어 전체 조문 수는 개정 전과 동일하다. 하지만 내용으로 보면 전면(全面) 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서문이 전면 개편됐고, 구(舊) 당 규약의 제8장(정치기관)과 10장(당의 재정)을 삭제한 대신, 제8장(당과 인민정권), 제10장(당 마크, 당기)을 신설했다. 각 조항별 내용도 상당부분 수정됐다.
이번에 북한이 당 규약을 전면 개정한 이유는 이른바 혁명전통의 계승을 내세워 김일성(金日成)-김정일(金正日)-김정은(金正恩)으로 이어지는 수령절대주의 세습권력을 향후에도 영구화·정당화하기 위해 나름 일종의 절차적 합리성을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첫째, 규약 서문과 조문에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전면 삭제했다. 당이 지향해야 할 최종목적에서 ‘공산주의 실현’ 부분을 삭제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함을 명시했다. 이는 북한이 2009년 4월에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하면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를 놓고 일부 북한전문가들과 언론은 “북한이 공산주의 실현과 적화(赤化)통일을 포기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과연 그럴까?
대남적화노선 변함없어
아래의 북한 ≪철학사전≫(1985년판)과 ≪주체사상 총서5권≫(1985년판)의 공산주의에 대한 정의를 보면, 당 규약에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이 위장 사기술임을 알 수 있다.
“공산주의 사회는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할 때 성과적으로 이루어진다. 공산주의 사회는 주체사상의 요구에 맞게 사람과 사회가 개조됨으로써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되는 사회이다.”(북한 ≪철학사전≫, 사회과학출판사, 1985년, 62면)
“공산주의 사회는 근로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되는 사회, 인류사회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루는 사회이다.”(북한, ≪위대한 주체사상총서 5≫: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리론, 사회과학출판사, 1985년, 3면)
개정된 당 규약에 의하면 당의 최종목적이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이 곧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것임은 ≪철학사전≫과 ≪주체사상 총서5권≫의 인용문을 보면 분명해진다. 당 규약 개정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적화통일 노선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북한은 당 규약 서문에서 당의 당면목적으로 여전히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과업을 수행”함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도 북한의 대남(對南)전략에는 변함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의 대남전략 노선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NLPDR) 전략은 먼저 민족해방과 자주권 확립이란 미명하에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군사적 공백을 만들고 연이어 한국정부를 타도한 다음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도정부인 ‘인민정권’을 수립하는 이른바 전(全)조선혁명의 1단계 목표인 것이다. 다음, 2단계로 남북합작에 의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여 궁극적으로 전 한반도를 주체사상화하고 공산주의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조선노동당 규약의 적화통일 조항과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의 폐기 없이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의 변화란 요원한 것이다.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강조
둘째, 당 규약 서문 첫머리에서 노동당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1998년 9월 5일 사회주의 헌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북한 사회주의 헌법을 ‘김일성헌법’이라 명명한 것과 궤(軌)를 같이한다. 북한이 말로는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인민과 정권과 당이 김일성 일가의 사유물(私有物)임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당 규약 서문에 김정일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이는 1980년 당 규약 개정 이후, 1994년에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 통치시대가 열린 것을 반영한 것으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북한은 김씨일가의 혁명전통이 지배하는 사회인 바, 수령인 김일성의 혁명전통의 유일 계승자인 김정일을 ‘위대한 영도자’라고 호칭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향후 김정은 통치시대에 당 규약 개정이 이루어지면 혁명전통의 계승자로 당연히 김정은의 이름이 당 규약 서문에 등장할 것이다.
넷째, 당 규약 전 분야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외에 ‘유일적 영도(領導)체계’의 확립을 추가하고 이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서문뿐만 아니라 제2조 당원의 자격, 제4조 당원의 의무, 제7조 당원의 책벌, 제23조 당 중앙위의 사업, 제48조 조선인민군 당사업 등에서 누차 강조되고 있다. 또한 28조에서 당 중앙검열위원회의 임무를 신설하여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에 어긋나는 행동을 검열하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외 28조, 33조, 38조, 48조, 53조, 57조)
여기서 말하는 ‘당의 유일사상체계’란 1974년 4월 북한이 김일성-김정일의 수령절대주의 유일독재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발표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원칙’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일적 영도체계’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유일후계체제의 구축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이는 김일성 일가의 3대 세습 및 영구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한 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아래의 당 유일사상확립 10대원칙을 보면, 북한에서 수령의 지위는 신(神)보다도 더 전능한 존재로 현재는 김일성을 김정일로 바꾸어 해석하면 될 것이다.
‘선군사상 강조=주체사상 포기’ 아니다
다섯째, 당의 지도사상으로 주체사상을 고수하고, 당의 기본 정치방식으로 선군(先軍)정치노선을 새로이 명시하는 한편, 김정일정권의 통치목표인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2009년 4월 사회주의 헌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헌법 제3조에 주체사상 외에 선군사상을 새롭게 지도지침으로 명기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혁명사상’이며 ‘선군사상’은 ‘김정일의 혁명사상’으로 ‘주체사상+총대중시사상(무력통치사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일부 북한전문가들이 “북한이 주체사상을 폐기하고 선군사상을 새로운 지도사상으로 정립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선군사상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은 선군사상을 ‘제2의 조선혁명노선’, ‘21세기의 주체사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향후 김정은은 후계이양과정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해설권을 장악하기 위해 〈선군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그의 지도적 위치를 굳힐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제11조에서 당의 조직원칙으로 ‘민주주의중앙집권제 원칙’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민주집중제’라고도 하는 이 원칙은 레닌이 창안한 공산당조직의 운영원리이다. 북한뿐 아니라 한총련 등 국내 좌파단체들도 이 원칙을 조직운영원리로 채택하고 있다. 이 원칙은 “당론(黨論)이나 정책을 결정할 때는 당원 간에 충분히 민주적으로 토론하되, 당론이 결정된 이후에는 당의 방침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민주적 토론’은 간데없고 오직 수령과 당의 방침에 절대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이 원칙은 당원은 당조직에, 소수(少數)는 다수(多數)에, 하급당은 상급당에, 당조직은 당중앙위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수령절대주의 독재권력 유지의 근간이 되는 조직운영원칙이다. 이 조항의 폐지 없이 북한체제의 개혁은 요원한 것이다.
일곱째, 제21조에서 종전에 5년에 한 번씩 개최하기로 한 당 대회 소집조항을 삭제하고 당 대회 소집날짜를 6개월 전에 발표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북한은 1980년 제6차 당 대회 이후 30년 동안 당 대회를 개최하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 당 대회소집조항을 삭제하여 당 대회 시 행해야 할 당 사업 총화(당 사업 실적 평가)의 부담을 없애 버린 것이다. 북한은 경제난을 해결 못한 상태에서 강성대국의 진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의 해소 없이는 제7차 당 대회가 언제 개최될지 의문이다.
총비서, 선거에서 추대로
특히 제30조에서 당 대회와 당 대회 사이에 소집되는 ‘당 대표자회’의 사업으로 ‘당 최고지도기관 선거와 당 규약 수정, 보충’을 새로이 삽입했다. 이로써 북한은 당 대회를 소집하지 않는 부담을 줄이고 언제든지 당 대표자회에서 당의 중요 현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24조에서 당 전원회의 소집을 종전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 이상 소집하기로 수정한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이 역시 수령의 교시로 그동안 당 규약을 무시하고 소집하지 않았던 당 대회 소집조항을 아예 삭제하여 마음 놓고 필요시 당 대회나 당 대표자회를 소집, 이른바 혁명전통의 영구적 계승을 위한 절차적 정당성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아홉째, 21조에 당 대회의 사업으로 4항에 당 총비서 추대조항을 신설했다. 이는 구 당 규약 24조에서는 총비서를 당 중앙전원회의에서 선거하도록 되어 있는 조항을 삭제하고 대체한 것이다. 수령절대주의 속성상 수령이 차지하는 총비서를 감히 선거한다는 것은 수령에 대한 불충(不忠)인 바, 추대로 개정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헌법상 국방위원장도 선거를 하게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추대를 하고 있다.
軍에 대한 黨의 지도 강화
22조에서 당 총비서가 중앙군사위원장을 겸하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이는 당권(黨權)과 군권(軍權)의 일체화를 상징하는 조항으로 북한이 ‘혁명의 보검’으로 내세우는 선군혁명노선에 부합하는 것이다. 향후 김정은(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당 총비서로 추대되면 자동적으로 군권도 장악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항인 것이다.
열째, 27조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사업 중 종래의 “우리나라의 군대를 지휘한다”라는 조항을 삭제하고, “군사분야에서 나서는 모든 사업을 당적(黨的)으로 조직 지도한다”, “국방사업 전반을 당적으로 지도한다”고 명시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그동안 중첩됐던 국방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역할을 분명히 구별한 것이다. 즉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군사분야와 국방사업 전반을 당적으로 조직, 지도하고, 북한군에 대한 지휘권(군령권 등)은 국방위원회에 맡기는 구도이다.
북한은 2009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방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했다. 이는 먼저 헌법 100조에서 국방위원장을 ‘공화국의 최고영도자’라고 규정하고, 102조에서 국방위원장이 “공화국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으로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한다”고 명시한 데서 확인된다.
열한째, 제46조에서 조선인민군을 ‘수령의 군대’라고 새로이 규정하고, 군(軍)은 모든 활동을 당의 영도 밑에 진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48조에서는 군이 ‘당과 수령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되어야 한다는 표현을 넣었다. 이는 북한군이 수령 개인의 군대임을 분명히 한 것이며, 군에 대한 당적인 지도를 명확히 한 것이다.
종래 북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당과 군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당이 군보다 위에 있다”, “선군노선하에서는 군이 당보다 우위에 있다”라는 논쟁이 있어 왔다. 이는 수령절대주의체제하의 북한에서는 의미가 없는 논쟁이다.
먼저 46조에서 명시했듯이 북한군은 당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 명백하다. 실제 당 조직지도부 군사부문(제1부부장 김경옥 대장)에서 군을 당적으로 지도 감독하고 있다.
당의 총비서와 당 중앙군사위원장, 국방위원장 겸 군 최고사령관의 지위에 있는, 수령인 김정일이 특정사안에 대해 국방위의 손을 들어주면 군이 센 것이고, 당의 손을 들어주면 당이 센 것이다.
軍총정치국의 지위 강화
분명한 것은 선군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김정일 통치시대에 이르러 군의 역할과 권한이 사회 전 분야에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국가 주요기관의 현지지도에서 “지금 믿을 것은 군밖에 없다. 군이 바로 당이고 국가고 인민이다”라고 강조하며, 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권의 특성상 군에 대한 당적 지도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점을 이번 당 규약 개정에 반영한 것이다.
열두째, 49조에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이 당 중앙위원회 부서와 같은 권능을 가지고 사업하도록 새롭게 명시하고 있다. 이는 선군시대에 군 총정치국의 지위를 대폭 강화한 것이다.
끝으로, 제8장에 ‘당과 인민정권’이라는 항목을 신설하고, 제10장에서는 당마크와 당기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고 있다. 당 규약에 정권문제를 규정한 것은 북한에서 권력 순위가 ‘수령-당-인민정권(입법=최고인민회의, 행정=내각, 사법=중앙재판소)’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인민정권을 당과 인민대중의 인전대(引傳帶)로 규정하고 인민정권이 당의 영도 밑에서 활동하도록 명시한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장의 당마크와 당기에 대한 설명은 이번에 신설된 것으로 수령영도체제의 당의 상징을 제도화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9월 28일 개최된 당 대표자회에서 먼저 당 규약을 수정보충하고 난 다음, 개정된 규약에 입각하여 당 최고지도기관을 선거한 것은 북한이 나름 수령절대주의체제의 정당성과 절차적 합리성을 확보하여 대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북한이 당 규약과 헌법 개정을 통해 표면상 절차적 합리성을 구축했다 할지라도 이른바 김씨일가의 혁명전통 계승과 주체사상, 선군혁명 노선을 고집하는 한, 북한 수령절대주의 폭압독재체제의 개혁과 개방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
먼저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규약(이하 당 규약)이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보자. 자유민주주의 국가와는 달리 북한에서는 헌법 위에 존재하는 규범이 바로 노동당 규약과 수령(首領)의 교시(김정일시대에는 장군님의 방침, 말씀이라고 표현)이다. 즉 북한에서 법규범은 ▶수령의 교시(방침) ▶당 규약 ▶사회주의 헌법 ▶개별 법 순서이다. 서슬 퍼런 북한 형법도 당 규약이나 수령의 교시 앞에서는 휴지조각인 것이다. 헌법도 당 규약 앞에서는 힘을 쓸 수가 없으며, 당 규약도 수령의 교시 앞에서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법체계를 운영하며 헌법이나 개별법을 매번 개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외적(對外的)으로 법에 의해 통치되는 정상국가(대한민국 헌법체계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반국가 불법단체임)임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적화통일 포기했다?
북한은 1946년 8월 30일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현재의 조선노동당은 남로당과 북로당이 합당한 1949년 6월 30일 창립) 시 당 규약을 제정한 후 2차 당 대회(1948년)부터 매번 당 대회 때마다 당 규약을 개정해 왔다. 이번 개정은 1980년 제6차 당 대회 시 당 규약을 개정한 이후 30년 만에 개정한 것이다. 개정된 당 규약은 서문, 제10장, 총 60조로 구성되어 전체 조문 수는 개정 전과 동일하다. 하지만 내용으로 보면 전면(全面) 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서문이 전면 개편됐고, 구(舊) 당 규약의 제8장(정치기관)과 10장(당의 재정)을 삭제한 대신, 제8장(당과 인민정권), 제10장(당 마크, 당기)을 신설했다. 각 조항별 내용도 상당부분 수정됐다.
이번에 북한이 당 규약을 전면 개정한 이유는 이른바 혁명전통의 계승을 내세워 김일성(金日成)-김정일(金正日)-김정은(金正恩)으로 이어지는 수령절대주의 세습권력을 향후에도 영구화·정당화하기 위해 나름 일종의 절차적 합리성을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첫째, 규약 서문과 조문에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전면 삭제했다. 당이 지향해야 할 최종목적에서 ‘공산주의 실현’ 부분을 삭제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함을 명시했다. 이는 북한이 2009년 4월에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하면서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를 놓고 일부 북한전문가들과 언론은 “북한이 공산주의 실현과 적화(赤化)통일을 포기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과연 그럴까?
대남적화노선 변함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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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 대표자회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역에 도착한 당 대표자들. 당 규약의 개정으로 당 대표자회의 역할이 더욱 강화됐다. |
“공산주의 사회는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할 때 성과적으로 이루어진다. 공산주의 사회는 주체사상의 요구에 맞게 사람과 사회가 개조됨으로써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되는 사회이다.”(북한 ≪철학사전≫, 사회과학출판사, 1985년, 62면)
“공산주의 사회는 근로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되는 사회, 인류사회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루는 사회이다.”(북한, ≪위대한 주체사상총서 5≫: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리론, 사회과학출판사, 1985년, 3면)
개정된 당 규약에 의하면 당의 최종목적이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이 곧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것임은 ≪철학사전≫과 ≪주체사상 총서5권≫의 인용문을 보면 분명해진다. 당 규약 개정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적화통일 노선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북한은 당 규약 서문에서 당의 당면목적으로 여전히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과업을 수행”함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도 북한의 대남(對南)전략에는 변함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의 대남전략 노선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NLPDR) 전략은 먼저 민족해방과 자주권 확립이란 미명하에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군사적 공백을 만들고 연이어 한국정부를 타도한 다음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도정부인 ‘인민정권’을 수립하는 이른바 전(全)조선혁명의 1단계 목표인 것이다. 다음, 2단계로 남북합작에 의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여 궁극적으로 전 한반도를 주체사상화하고 공산주의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조선노동당 규약의 적화통일 조항과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의 폐기 없이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의 변화란 요원한 것이다.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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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 대표자회 직후 평양시민들이 김정일이 당 총비서로 다시 추대된 것을 축하하는 춤을 추고 있다. |
셋째, 당 규약 서문에 김정일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이는 1980년 당 규약 개정 이후, 1994년에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 통치시대가 열린 것을 반영한 것으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북한은 김씨일가의 혁명전통이 지배하는 사회인 바, 수령인 김일성의 혁명전통의 유일 계승자인 김정일을 ‘위대한 영도자’라고 호칭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향후 김정은 통치시대에 당 규약 개정이 이루어지면 혁명전통의 계승자로 당연히 김정은의 이름이 당 규약 서문에 등장할 것이다.
넷째, 당 규약 전 분야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외에 ‘유일적 영도(領導)체계’의 확립을 추가하고 이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서문뿐만 아니라 제2조 당원의 자격, 제4조 당원의 의무, 제7조 당원의 책벌, 제23조 당 중앙위의 사업, 제48조 조선인민군 당사업 등에서 누차 강조되고 있다. 또한 28조에서 당 중앙검열위원회의 임무를 신설하여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적 영도체계에 어긋나는 행동을 검열하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외 28조, 33조, 38조, 48조, 53조, 57조)
여기서 말하는 ‘당의 유일사상체계’란 1974년 4월 북한이 김일성-김정일의 수령절대주의 유일독재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발표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원칙’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일적 영도체계’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유일후계체제의 구축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이는 김일성 일가의 3대 세습 및 영구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한 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아래의 당 유일사상확립 10대원칙을 보면, 북한에서 수령의 지위는 신(神)보다도 더 전능한 존재로 현재는 김일성을 김정일로 바꾸어 해석하면 될 것이다.
‘선군사상 강조=주체사상 포기’ 아니다
다섯째, 당의 지도사상으로 주체사상을 고수하고, 당의 기본 정치방식으로 선군(先軍)정치노선을 새로이 명시하는 한편, 김정일정권의 통치목표인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2009년 4월 사회주의 헌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헌법 제3조에 주체사상 외에 선군사상을 새롭게 지도지침으로 명기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혁명사상’이며 ‘선군사상’은 ‘김정일의 혁명사상’으로 ‘주체사상+총대중시사상(무력통치사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일부 북한전문가들이 “북한이 주체사상을 폐기하고 선군사상을 새로운 지도사상으로 정립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선군사상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은 선군사상을 ‘제2의 조선혁명노선’, ‘21세기의 주체사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향후 김정은은 후계이양과정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해설권을 장악하기 위해 〈선군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그의 지도적 위치를 굳힐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제11조에서 당의 조직원칙으로 ‘민주주의중앙집권제 원칙’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민주집중제’라고도 하는 이 원칙은 레닌이 창안한 공산당조직의 운영원리이다. 북한뿐 아니라 한총련 등 국내 좌파단체들도 이 원칙을 조직운영원리로 채택하고 있다. 이 원칙은 “당론(黨論)이나 정책을 결정할 때는 당원 간에 충분히 민주적으로 토론하되, 당론이 결정된 이후에는 당의 방침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민주적 토론’은 간데없고 오직 수령과 당의 방침에 절대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이 원칙은 당원은 당조직에, 소수(少數)는 다수(多數)에, 하급당은 상급당에, 당조직은 당중앙위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수령절대주의 독재권력 유지의 근간이 되는 조직운영원칙이다. 이 조항의 폐지 없이 북한체제의 개혁은 요원한 것이다.
일곱째, 제21조에서 종전에 5년에 한 번씩 개최하기로 한 당 대회 소집조항을 삭제하고 당 대회 소집날짜를 6개월 전에 발표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북한은 1980년 제6차 당 대회 이후 30년 동안 당 대회를 개최하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 당 대회소집조항을 삭제하여 당 대회 시 행해야 할 당 사업 총화(당 사업 실적 평가)의 부담을 없애 버린 것이다. 북한은 경제난을 해결 못한 상태에서 강성대국의 진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의 해소 없이는 제7차 당 대회가 언제 개최될지 의문이다.
총비서, 선거에서 추대로
특히 제30조에서 당 대회와 당 대회 사이에 소집되는 ‘당 대표자회’의 사업으로 ‘당 최고지도기관 선거와 당 규약 수정, 보충’을 새로이 삽입했다. 이로써 북한은 당 대회를 소집하지 않는 부담을 줄이고 언제든지 당 대표자회에서 당의 중요 현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24조에서 당 전원회의 소집을 종전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 이상 소집하기로 수정한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이 역시 수령의 교시로 그동안 당 규약을 무시하고 소집하지 않았던 당 대회 소집조항을 아예 삭제하여 마음 놓고 필요시 당 대회나 당 대표자회를 소집, 이른바 혁명전통의 영구적 계승을 위한 절차적 정당성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아홉째, 21조에 당 대회의 사업으로 4항에 당 총비서 추대조항을 신설했다. 이는 구 당 규약 24조에서는 총비서를 당 중앙전원회의에서 선거하도록 되어 있는 조항을 삭제하고 대체한 것이다. 수령절대주의 속성상 수령이 차지하는 총비서를 감히 선거한다는 것은 수령에 대한 불충(不忠)인 바, 추대로 개정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헌법상 국방위원장도 선거를 하게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추대를 하고 있다.
軍에 대한 黨의 지도 강화
22조에서 당 총비서가 중앙군사위원장을 겸하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이는 당권(黨權)과 군권(軍權)의 일체화를 상징하는 조항으로 북한이 ‘혁명의 보검’으로 내세우는 선군혁명노선에 부합하는 것이다. 향후 김정은(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당 총비서로 추대되면 자동적으로 군권도 장악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항인 것이다.
열째, 27조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사업 중 종래의 “우리나라의 군대를 지휘한다”라는 조항을 삭제하고, “군사분야에서 나서는 모든 사업을 당적(黨的)으로 조직 지도한다”, “국방사업 전반을 당적으로 지도한다”고 명시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그동안 중첩됐던 국방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역할을 분명히 구별한 것이다. 즉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군사분야와 국방사업 전반을 당적으로 조직, 지도하고, 북한군에 대한 지휘권(군령권 등)은 국방위원회에 맡기는 구도이다.
북한은 2009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방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했다. 이는 먼저 헌법 100조에서 국방위원장을 ‘공화국의 최고영도자’라고 규정하고, 102조에서 국방위원장이 “공화국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으로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통솔한다”고 명시한 데서 확인된다.
열한째, 제46조에서 조선인민군을 ‘수령의 군대’라고 새로이 규정하고, 군(軍)은 모든 활동을 당의 영도 밑에 진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48조에서는 군이 ‘당과 수령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되어야 한다는 표현을 넣었다. 이는 북한군이 수령 개인의 군대임을 분명히 한 것이며, 군에 대한 당적인 지도를 명확히 한 것이다.
종래 북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당과 군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당이 군보다 위에 있다”, “선군노선하에서는 군이 당보다 우위에 있다”라는 논쟁이 있어 왔다. 이는 수령절대주의체제하의 북한에서는 의미가 없는 논쟁이다.
먼저 46조에서 명시했듯이 북한군은 당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 명백하다. 실제 당 조직지도부 군사부문(제1부부장 김경옥 대장)에서 군을 당적으로 지도 감독하고 있다.
당의 총비서와 당 중앙군사위원장, 국방위원장 겸 군 최고사령관의 지위에 있는, 수령인 김정일이 특정사안에 대해 국방위의 손을 들어주면 군이 센 것이고, 당의 손을 들어주면 당이 센 것이다.
軍총정치국의 지위 강화
분명한 것은 선군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김정일 통치시대에 이르러 군의 역할과 권한이 사회 전 분야에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국가 주요기관의 현지지도에서 “지금 믿을 것은 군밖에 없다. 군이 바로 당이고 국가고 인민이다”라고 강조하며, 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권의 특성상 군에 대한 당적 지도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점을 이번 당 규약 개정에 반영한 것이다.
열두째, 49조에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이 당 중앙위원회 부서와 같은 권능을 가지고 사업하도록 새롭게 명시하고 있다. 이는 선군시대에 군 총정치국의 지위를 대폭 강화한 것이다.
끝으로, 제8장에 ‘당과 인민정권’이라는 항목을 신설하고, 제10장에서는 당마크와 당기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고 있다. 당 규약에 정권문제를 규정한 것은 북한에서 권력 순위가 ‘수령-당-인민정권(입법=최고인민회의, 행정=내각, 사법=중앙재판소)’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인민정권을 당과 인민대중의 인전대(引傳帶)로 규정하고 인민정권이 당의 영도 밑에서 활동하도록 명시한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장의 당마크와 당기에 대한 설명은 이번에 신설된 것으로 수령영도체제의 당의 상징을 제도화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9월 28일 개최된 당 대표자회에서 먼저 당 규약을 수정보충하고 난 다음, 개정된 규약에 입각하여 당 최고지도기관을 선거한 것은 북한이 나름 수령절대주의체제의 정당성과 절차적 합리성을 확보하여 대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북한이 당 규약과 헌법 개정을 통해 표면상 절차적 합리성을 구축했다 할지라도 이른바 김씨일가의 혁명전통 계승과 주체사상, 선군혁명 노선을 고집하는 한, 북한 수령절대주의 폭압독재체제의 개혁과 개방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