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회견이라도 하고 가야 (北 가서) 살 수 있다”고 말해
⊙ 추적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 버리고 떠나
⊙ 김씨 고용했던 리모델링 업체 대표 잠적
⊙ 北 보위부 선전에 넘어가 월북했을 가능성
⊙ 문재인 정부 탈북민 방치… 청와대 눈치 보기 바쁜 경찰
⊙ 코로나19 상황에 北으로 돌아간 김씨 무사할 수 있을까
⊙ 추적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 버리고 떠나
⊙ 김씨 고용했던 리모델링 업체 대표 잠적
⊙ 北 보위부 선전에 넘어가 월북했을 가능성
⊙ 문재인 정부 탈북민 방치… 청와대 눈치 보기 바쁜 경찰
⊙ 코로나19 상황에 北으로 돌아간 김씨 무사할 수 있을까
- 2022년 1월 5일 국방부가 공개한 민간인출입통제선 인근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찍힌 김모씨의 마지막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지난 1월 1일 강원도 동부전선 군사분계선(MDL) 철책을 통해 민간인이 월북(越北)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92년생 탈북민 김모(30)씨다. 김씨는 2020년 11월 초 같은 곳을 통해 한국으로 넘어온 인물이다. 김씨는 귀순 당시 3m 높이의 철책을 점프로 넘어 일명 ‘점프 귀순’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 김씨가 11개월 만에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탈북민이 사실상 남북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귀순 이후 그는 합동신문센터(합신) 조사에서 ‘기계체조’ 경력이 있다고 진술했으며, 당시 당국은 김씨의 진술을 검증하기 위해 우리 측 요원을 동원해 두 차례 시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체중 50여 kg에 신장이 작은 편으로, 왜소한 체구여서 높이 3m가량인 철책을 비교적 수월하게 넘을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여러 전문가는 이번 사건을 보며 영화 〈풍산개〉를 연상케 한다고 입을 모았다. 〈풍산개〉는 김씨처럼 무장한 남북 군인들이 지키는 비무장지대를 혈혈단신으로 오가는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경찰, 김씨가 버리고 간 휴대전화 수색… 월북 동기 나올까?
김씨의 월북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 사회 부적응, 고향에 대한 향수병, 간첩 활동 달성 등이 주를 이루는데, 이 중 한국 사회 부적응 때문이라는 가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유는 김씨와 알고 지낸 사람들의 여러 증언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가 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는지 명확히 밝혀진 사실은 없다. 경찰이 김씨의 월북 동기를 조사하고 있지만 현재 수사에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주거지 인근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김씨는 월북 전 자신이 쓰던 물건을 모두 버리고 갔다고 한다. 특히 김씨는 자신이 사용하던 휴대전화도 어딘가에 버리고 길을 나섰다.
경찰은 김씨의 휴대전화를 추적 중이지만 기사를 쓰는 현재(1월 10일)까지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 A씨는 “김씨의 월북 경위에 대해 추적 중이다. 하지만 김씨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되는 터라 어려움이 많다”면서 “김씨가 휴대전화를 버리고 간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경로를 통해 김씨의 휴대전화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월북 전 통화 여부, 타인과 주고받은 메시지 등, 휴대전화 기록으로 김씨의 월북 동기를 파악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지금까지 월북한 탈북민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제3국을 통해 돌아갔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모두 소지하고 있었다”며 “이번 경우 철책을 넘어 간 거라 굳이 휴대전화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 일하던 업체 대표 전화번호·집 주소 바꾸고 사라져
김씨는 2021년 3월 말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를 퇴소했다. 이후 김씨는 2개월 정도 일자리를 찾아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김씨는 지인의 소개로 고양시에 있는 한 인테리어 업체에 취직했다.
국방부는 김씨가 청소용역업체 청소부로 일했다고 발표했지만 취재를 종합해 보면 김씨는 리모델링 업체에서 건물 내부 철거 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곳에서 6개월 정도 일을 했다.
김씨와 평소 알고 지내던 이모씨는 “김씨가 하나원을 나오면서 친구 소개로 만나게 됐다. 처음 봤을 때 날카롭게 생겨서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면서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다. 지난해 9월쯤 연락을 했었다. 그때 모 리모델링 업체에서 일한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실제 해당 업체 대표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청소용역업체가 아니라 리모델링 업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김씨가 리모델링 업체에서 일한 것은 맞다. 그는 주로 건물 내부 철거 일을 했다”며 “그러다 보니 국방부에서 청소라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과도 소통이 거의 없었고, 국가에서 배정한 노원구 집에서도 살지 않았다. 김씨는 주로 해당 업체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다. 해당 업체 대표에 따르면 김씨는 쉬는 날에도 숙소를 잘 나가지 않고 누워서 TV만 시청했었다.
특히 김씨는 그동안 해당 업체에서 일하고 받은 월급을 그대로 두고 갔다. 경찰은 김씨의 월북 동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금융정보를 확인한 결과 김씨 이름으로 된 통장에 2000만원가량의 돈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김씨가 본격적으로 일을 한 시간은 6개월 정도이다. 그동안 2000만원이라는 돈을 모았다는 것은 월급을 받아 거의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리모델링 업체 대표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기자는 해당 업체 대표를 만나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취재 결과 해당 업체 대표는 휴대전화 번호와 집 주소도 바꾸고 현재 잠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 업체 대표는 자신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다 아는 김씨가 북한에 개인정보를 넘길 경우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일을 피하기 위해 잠적했다고 한다.
‘철책 월북’ 김씨 그는 누구인가?

김씨는 2020년 11월 초 육군 22사단 경계 지역의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철책을 맨몸으로 뛰어넘어 귀순했다. 철책을 뛰어넘은 뒤 바로 귀순하지 않고 민통선 내에 숨어 있다 14시간30분 만에 발견되고 나서 귀순했다.
그는 관계 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같은 달 하나원에 입소했다. 김씨는 다른 탈북민 3명과 함께 하나원에 입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탈북민 국내 입국 숫자가 줄어들어 매우 적은 수의 탈북민이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당시 3명의 탈북민과 김씨까지 모두 4명이 교육을 받았다.
김씨가 관계 기관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면 2020년 10월 말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택시를 타고 강원도 고성까지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고성군에 도착한 김씨는 비무장지대(DMZ)까지 걸어가 철책을 넘어 귀순했다고 진술했다.
또 김씨는 당시 귀순 동기에 대해 “계부의 상습적인 폭행 탓에 크게 싸우고 우발적으로 귀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김씨는 북한에서 기계체조 선수였다. 김씨는 운동 중 머리를 심하게 다쳐 기계체조를 그만뒀다고도 말했다.
최근 《월간조선》은 김씨의 사진을 단독으로 입수해 인터넷 일간 매체인 〈월간조선 뉴스룸〉을 통해 보도한 바 있다. 사진에서 김씨는 키는 작아 보였지만 다부진 체격이었다.
김씨와 하나원에 함께 있었던 B씨는 이렇게 말했다.
“운동을 하다 머리를 다쳐서 그런지 종종 이상한 행동과 말을 했다. 그리고 우리하고도 잘 어울리지 못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할지 걱정이었다. 하나원에서도 자꾸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말을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힘들게 와서 왜 다시 돌아가느냐고 말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한편 김씨가 관계 기관에서 한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탈북민도 있다.
사리원 출신의 한 탈북민은 “택시를 타고 강원도까지 갈 수는 있지만, 택시비는 기사가 부르는 게 값이다”며 “못해도 최소 300달러는 될 것이다. 그 돈으로 쌀을 사면 400kg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계부와 싸우고 갑자기 집을 나온 김씨에게 그렇게 큰돈이 어디서 생겼는지 의문이다”며 “300달러는 북한에서 아주 큰돈이다”고 덧붙였다.
경찰 탈북민 신변관리 구멍… 김씨 관련 보고 올라갔지만, 경찰청 무시
김씨는 월북 전 다양한 이상행동을 보였다. 먼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탈북에 대한 후회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고향이 그립다”거나 “괜히 탈북을 했다”는 등의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으로 돌아가기 전 기자회견이라도 해야 가서 살 수 있다”는 말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김씨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국회 사무처에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무산되자 김씨는 국회 정문에서 ‘북한으로 보내달라’며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김씨는 국회 사무처에 기자회견 관련 문의를 하기 전 통일부 산하 북부하나센터 직원에게 이와 관련해 여러 질문을 하기도 했다. 김씨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하나센터 직원은 곧바로 김씨의 신변보호관에게 연락했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평소에 연락이 없던 김씨가 하나센터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과 어떻게 하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는지 등을 물었다”며 “하나센터 직원은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지만, 이후 이상한 질문들이 이어지자 곧바로 신변보호관에게 연락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씨의 신변보호를 담당하는 서울 노원경찰서는 이런 정황에 대해 서울경찰청을 통해 경찰청에 지난해 6월 두 차례 보고했지만, 경찰청은 이를 무시했다. 앞서 2020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지만, 경찰청은 당시에도 해당 보고를 무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입국한 뒤 2020년 7월 인천 강화군 북동쪽 해안가 인근 배수로를 통해 월북한 또 다른 김모씨 경우와 비슷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경찰 관계자 B씨는 “당시에도 신변보호 담당 형사가 본청에 몇 차례 관련 징후에 대해 보고를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탈북민들이 월북 등을 감행할 때는 사전 징후들이 있는데 현장 보고에 대해 ‘예의주시’ ‘추가보고’ 등 경찰청의 추가 지시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한국을 떠나려는 탈북민에게는 임대주택 보증금을 찾고 은행 대출을 받거나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현금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공통 징후들이 있다. 그러나 김씨의 경우 이런 정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청와대 눈치만 봐”
경찰이 탈북민 관리를 소홀히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정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찰은 북한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거의 중단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경찰은 그동안 해오던 보안수사에 대해 거의 손을 놓고 있다. 탈북민 신변보호를 담당하는 경찰이 월북 징후가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은 것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탈북민에 대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9년 7월 서울 관악구에서 탈북 여성 한모씨와 그의 아들 김모 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한씨의 통장 잔고는 0원이었고, 집에 있던 음식은 고춧가루 몇 그램이 전부였다. 사망한 지 몇 달 지나 발견돼 국립과학수사원은 ‘사인(死因) 미상(未詳)’이라 했지만, 모든 정황은 ‘아사(餓死)’로 추정됐다. 논란이 커지자 통일부는 국내 탈북민 생활을 전수조사해 취약계층 지원에 나서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도 시스템을 보완해 복지사각지대를 줄이겠다고 했다.
같은 해 11월 2일 동해상에서 나포되어 귀순 의사를 밝힌 어부 2명을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당시 정부는 이들이 동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오징어잡이 배에서 16명의 동료 선원을 살해하고 도주한 것으로 파악돼 북한이탈주민법상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정부의 강제 북송이 범죄인 인도 절차에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법률과 국제조약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지금, ‘사인 미상’으로 숨진 탈북민은 오히려 늘어났다. 2020년부터 2021년 7월까지 국내에서 사망한 탈북민 154명 중 사인 미상 처리된 경우는 90명(58%)이다. 2019년엔 10명이었다. 탈북을 시도했다가 강제 송환되는 사례마저 있었다.
이번 월북 사건도 마찬가지다. 만약 노원경찰서에서 올린 보고를 경찰청이 무시하지 않았다면 김씨의 월북은 무산됐을 것이다. 물론 가고자 하면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가 월북할 것이라는 징후가 포착됐음에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 A씨는 “문재인 정부 들어 보안수사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보안 관련 수상한 정황이 포착돼 수사 계획서를 경찰청에 올려도 검토를 구실로 들어 시작조차 못 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탈북민 보호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경찰청)에서는 오직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을 했던 한 탈북민은 “당시에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탈북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줄 알고 지지했다”면서 “지금 나의 손목을 자르고 싶은 심정”이라고 후회했다.
北으로 돌아간 김씨 어떻게 될까?
코로나19가 민감한 시기 월북한 김씨는 어떻게 될까.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밤 10시40분 김씨가 군사분계선을 넘은 뒤 북쪽에서 김씨를 포함한 인원 4명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측 인원 3명) 접근 성격이나 분위기에 대해선 열점(熱點)으로 포착된 것이라 구체적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김씨가 ‘간첩 활동’을 하고 돌아갔고, 안내원 성격의 북한군 3명이 나와 그를 맞이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만약 김씨가 ‘간첩 활동’을 하고 월북했을 경우 그는 무사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처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앞서 코로나19로 인해 월북한 이들을 무참히 처형한 사례들이 있다. 2020년 7월 강화도 교동도 지역으로 월북한 20대 탈북민 김씨의 경우다. 당시 김씨는 강화도를 통해 북한 개성으로 넘어갔다. 북한은 이 탈북민이 코로나19에 걸린 것으로 의심된다며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전환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월북한 김씨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구실로 비밀리에 처형됐다고 한다.
같은 해 9월 서해 공무원 사건도 있다. 물론 해당 공무원은 월북인지에 대해선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북한은 코로나19에 따른 ‘국가비상방역’을 이유로 즉각 사살·소각했다. 북한은 그때 코로나19 확산 방지 명목으로 국경 무단 접근 시 ‘무조건 사살’ 명령을 발효하고 있었다.
이런 사례를 놓고 봤을 때 지난 1월 월북한 김씨도 어느 때가 되면 비밀리에 처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여러 탈북민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은 무조건 김씨를 처형할 것이다. 평시에도 탈북민 월북자들을 이용하다 비밀리에 처형한다”면서 “지금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기에 넘어갔으니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귀순 이후 그는 합동신문센터(합신) 조사에서 ‘기계체조’ 경력이 있다고 진술했으며, 당시 당국은 김씨의 진술을 검증하기 위해 우리 측 요원을 동원해 두 차례 시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체중 50여 kg에 신장이 작은 편으로, 왜소한 체구여서 높이 3m가량인 철책을 비교적 수월하게 넘을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여러 전문가는 이번 사건을 보며 영화 〈풍산개〉를 연상케 한다고 입을 모았다. 〈풍산개〉는 김씨처럼 무장한 남북 군인들이 지키는 비무장지대를 혈혈단신으로 오가는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경찰, 김씨가 버리고 간 휴대전화 수색… 월북 동기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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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월북 당시 이동 경로다. 사진=조선DB |
하지만 김씨가 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는지 명확히 밝혀진 사실은 없다. 경찰이 김씨의 월북 동기를 조사하고 있지만 현재 수사에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주거지 인근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김씨는 월북 전 자신이 쓰던 물건을 모두 버리고 갔다고 한다. 특히 김씨는 자신이 사용하던 휴대전화도 어딘가에 버리고 길을 나섰다.
경찰은 김씨의 휴대전화를 추적 중이지만 기사를 쓰는 현재(1월 10일)까지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 A씨는 “김씨의 월북 경위에 대해 추적 중이다. 하지만 김씨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가 진행되는 터라 어려움이 많다”면서 “김씨가 휴대전화를 버리고 간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경로를 통해 김씨의 휴대전화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월북 전 통화 여부, 타인과 주고받은 메시지 등, 휴대전화 기록으로 김씨의 월북 동기를 파악하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지금까지 월북한 탈북민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제3국을 통해 돌아갔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모두 소지하고 있었다”며 “이번 경우 철책을 넘어 간 거라 굳이 휴대전화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 일하던 업체 대표 전화번호·집 주소 바꾸고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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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진 합참 작전본부장(육군 중장)이 2022년 1월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지난 1일 발생한 탈북민 월북 사건 초동조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국방부는 김씨가 청소용역업체 청소부로 일했다고 발표했지만 취재를 종합해 보면 김씨는 리모델링 업체에서 건물 내부 철거 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곳에서 6개월 정도 일을 했다.
김씨와 평소 알고 지내던 이모씨는 “김씨가 하나원을 나오면서 친구 소개로 만나게 됐다. 처음 봤을 때 날카롭게 생겨서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면서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다. 지난해 9월쯤 연락을 했었다. 그때 모 리모델링 업체에서 일한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실제 해당 업체 대표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청소용역업체가 아니라 리모델링 업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김씨가 리모델링 업체에서 일한 것은 맞다. 그는 주로 건물 내부 철거 일을 했다”며 “그러다 보니 국방부에서 청소라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과도 소통이 거의 없었고, 국가에서 배정한 노원구 집에서도 살지 않았다. 김씨는 주로 해당 업체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다. 해당 업체 대표에 따르면 김씨는 쉬는 날에도 숙소를 잘 나가지 않고 누워서 TV만 시청했었다.
특히 김씨는 그동안 해당 업체에서 일하고 받은 월급을 그대로 두고 갔다. 경찰은 김씨의 월북 동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금융정보를 확인한 결과 김씨 이름으로 된 통장에 2000만원가량의 돈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김씨가 본격적으로 일을 한 시간은 6개월 정도이다. 그동안 2000만원이라는 돈을 모았다는 것은 월급을 받아 거의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리모델링 업체 대표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기자는 해당 업체 대표를 만나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취재 결과 해당 업체 대표는 휴대전화 번호와 집 주소도 바꾸고 현재 잠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 업체 대표는 자신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다 아는 김씨가 북한에 개인정보를 넘길 경우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일을 피하기 위해 잠적했다고 한다.
‘철책 월북’ 김씨 그는 누구인가?

김씨는 2020년 11월 초 육군 22사단 경계 지역의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철책을 맨몸으로 뛰어넘어 귀순했다. 철책을 뛰어넘은 뒤 바로 귀순하지 않고 민통선 내에 숨어 있다 14시간30분 만에 발견되고 나서 귀순했다.
그는 관계 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같은 달 하나원에 입소했다. 김씨는 다른 탈북민 3명과 함께 하나원에 입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탈북민 국내 입국 숫자가 줄어들어 매우 적은 수의 탈북민이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당시 3명의 탈북민과 김씨까지 모두 4명이 교육을 받았다.
김씨가 관계 기관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면 2020년 10월 말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택시를 타고 강원도 고성까지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고성군에 도착한 김씨는 비무장지대(DMZ)까지 걸어가 철책을 넘어 귀순했다고 진술했다.
또 김씨는 당시 귀순 동기에 대해 “계부의 상습적인 폭행 탓에 크게 싸우고 우발적으로 귀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김씨는 북한에서 기계체조 선수였다. 김씨는 운동 중 머리를 심하게 다쳐 기계체조를 그만뒀다고도 말했다.
최근 《월간조선》은 김씨의 사진을 단독으로 입수해 인터넷 일간 매체인 〈월간조선 뉴스룸〉을 통해 보도한 바 있다. 사진에서 김씨는 키는 작아 보였지만 다부진 체격이었다.
김씨와 하나원에 함께 있었던 B씨는 이렇게 말했다.
“운동을 하다 머리를 다쳐서 그런지 종종 이상한 행동과 말을 했다. 그리고 우리하고도 잘 어울리지 못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할지 걱정이었다. 하나원에서도 자꾸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말을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힘들게 와서 왜 다시 돌아가느냐고 말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한편 김씨가 관계 기관에서 한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탈북민도 있다.
사리원 출신의 한 탈북민은 “택시를 타고 강원도까지 갈 수는 있지만, 택시비는 기사가 부르는 게 값이다”며 “못해도 최소 300달러는 될 것이다. 그 돈으로 쌀을 사면 400kg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계부와 싸우고 갑자기 집을 나온 김씨에게 그렇게 큰돈이 어디서 생겼는지 의문이다”며 “300달러는 북한에서 아주 큰돈이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월북 전 다양한 이상행동을 보였다. 먼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탈북에 대한 후회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고향이 그립다”거나 “괜히 탈북을 했다”는 등의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으로 돌아가기 전 기자회견이라도 해야 가서 살 수 있다”는 말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김씨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국회 사무처에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무산되자 김씨는 국회 정문에서 ‘북한으로 보내달라’며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김씨는 국회 사무처에 기자회견 관련 문의를 하기 전 통일부 산하 북부하나센터 직원에게 이와 관련해 여러 질문을 하기도 했다. 김씨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하나센터 직원은 곧바로 김씨의 신변보호관에게 연락했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평소에 연락이 없던 김씨가 하나센터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과 어떻게 하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는지 등을 물었다”며 “하나센터 직원은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지만, 이후 이상한 질문들이 이어지자 곧바로 신변보호관에게 연락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씨의 신변보호를 담당하는 서울 노원경찰서는 이런 정황에 대해 서울경찰청을 통해 경찰청에 지난해 6월 두 차례 보고했지만, 경찰청은 이를 무시했다. 앞서 2020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지만, 경찰청은 당시에도 해당 보고를 무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입국한 뒤 2020년 7월 인천 강화군 북동쪽 해안가 인근 배수로를 통해 월북한 또 다른 김모씨 경우와 비슷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경찰 관계자 B씨는 “당시에도 신변보호 담당 형사가 본청에 몇 차례 관련 징후에 대해 보고를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탈북민들이 월북 등을 감행할 때는 사전 징후들이 있는데 현장 보고에 대해 ‘예의주시’ ‘추가보고’ 등 경찰청의 추가 지시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한국을 떠나려는 탈북민에게는 임대주택 보증금을 찾고 은행 대출을 받거나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현금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공통 징후들이 있다. 그러나 김씨의 경우 이런 정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청와대 눈치만 봐”
경찰이 탈북민 관리를 소홀히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정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찰은 북한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거의 중단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경찰은 그동안 해오던 보안수사에 대해 거의 손을 놓고 있다. 탈북민 신변보호를 담당하는 경찰이 월북 징후가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은 것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탈북민에 대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9년 7월 서울 관악구에서 탈북 여성 한모씨와 그의 아들 김모 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한씨의 통장 잔고는 0원이었고, 집에 있던 음식은 고춧가루 몇 그램이 전부였다. 사망한 지 몇 달 지나 발견돼 국립과학수사원은 ‘사인(死因) 미상(未詳)’이라 했지만, 모든 정황은 ‘아사(餓死)’로 추정됐다. 논란이 커지자 통일부는 국내 탈북민 생활을 전수조사해 취약계층 지원에 나서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도 시스템을 보완해 복지사각지대를 줄이겠다고 했다.
같은 해 11월 2일 동해상에서 나포되어 귀순 의사를 밝힌 어부 2명을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당시 정부는 이들이 동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오징어잡이 배에서 16명의 동료 선원을 살해하고 도주한 것으로 파악돼 북한이탈주민법상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정부의 강제 북송이 범죄인 인도 절차에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법률과 국제조약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지금, ‘사인 미상’으로 숨진 탈북민은 오히려 늘어났다. 2020년부터 2021년 7월까지 국내에서 사망한 탈북민 154명 중 사인 미상 처리된 경우는 90명(58%)이다. 2019년엔 10명이었다. 탈북을 시도했다가 강제 송환되는 사례마저 있었다.
이번 월북 사건도 마찬가지다. 만약 노원경찰서에서 올린 보고를 경찰청이 무시하지 않았다면 김씨의 월북은 무산됐을 것이다. 물론 가고자 하면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가 월북할 것이라는 징후가 포착됐음에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 A씨는 “문재인 정부 들어 보안수사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보안 관련 수상한 정황이 포착돼 수사 계획서를 경찰청에 올려도 검토를 구실로 들어 시작조차 못 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탈북민 보호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경찰청)에서는 오직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을 했던 한 탈북민은 “당시에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탈북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줄 알고 지지했다”면서 “지금 나의 손목을 자르고 싶은 심정”이라고 후회했다.
北으로 돌아간 김씨 어떻게 될까?
코로나19가 민감한 시기 월북한 김씨는 어떻게 될까.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밤 10시40분 김씨가 군사분계선을 넘은 뒤 북쪽에서 김씨를 포함한 인원 4명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측 인원 3명) 접근 성격이나 분위기에 대해선 열점(熱點)으로 포착된 것이라 구체적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김씨가 ‘간첩 활동’을 하고 돌아갔고, 안내원 성격의 북한군 3명이 나와 그를 맞이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만약 김씨가 ‘간첩 활동’을 하고 월북했을 경우 그는 무사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처형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앞서 코로나19로 인해 월북한 이들을 무참히 처형한 사례들이 있다. 2020년 7월 강화도 교동도 지역으로 월북한 20대 탈북민 김씨의 경우다. 당시 김씨는 강화도를 통해 북한 개성으로 넘어갔다. 북한은 이 탈북민이 코로나19에 걸린 것으로 의심된다며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전환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월북한 김씨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구실로 비밀리에 처형됐다고 한다.
같은 해 9월 서해 공무원 사건도 있다. 물론 해당 공무원은 월북인지에 대해선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북한은 코로나19에 따른 ‘국가비상방역’을 이유로 즉각 사살·소각했다. 북한은 그때 코로나19 확산 방지 명목으로 국경 무단 접근 시 ‘무조건 사살’ 명령을 발효하고 있었다.
이런 사례를 놓고 봤을 때 지난 1월 월북한 김씨도 어느 때가 되면 비밀리에 처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여러 탈북민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은 무조건 김씨를 처형할 것이다. 평시에도 탈북민 월북자들을 이용하다 비밀리에 처형한다”면서 “지금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시기에 넘어갔으니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