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0년간 한국이 누려 온 평화는 미국 중심의 覇權的 평화 덕분
⊙ 해상 적대행위 중단 지역 설정한 남북군사협정은 서해에서 美 해군활동 제약…, 문재인 정권의 反美親中 단적으로 보여줘
⊙ 終戰선언은 ‘정치적 선언’ 불과하다는 문재인 주장은 국제정치의 ABC도 모르는 것
⊙ 終戰선언으로 유엔司 해체되면 일본 내 軍지원기지·탄약고 폐쇄… 한반도 군사주도권 北으로 넘어가
김영호
1959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버지니아대학 박사 / 대통령 통일비서관, 외교부 인권대사 역임. 現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저서 《대한민국과 국제정치》 《한국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편저) 《대한민국의 건국혁명 1, 2》
⊙ 해상 적대행위 중단 지역 설정한 남북군사협정은 서해에서 美 해군활동 제약…, 문재인 정권의 反美親中 단적으로 보여줘
⊙ 終戰선언은 ‘정치적 선언’ 불과하다는 문재인 주장은 국제정치의 ABC도 모르는 것
⊙ 終戰선언으로 유엔司 해체되면 일본 내 軍지원기지·탄약고 폐쇄… 한반도 군사주도권 北으로 넘어가
김영호
1959년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버지니아대학 박사 / 대통령 통일비서관, 외교부 인권대사 역임. 現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저서 《대한민국과 국제정치》 《한국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편저) 《대한민국의 건국혁명 1, 2》
-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은 지난 10월 19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했다. 사진=조선DB
문재인(文在寅)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안보담론이 ‘북핵(北核)’에서 ‘평화’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북한이 60개 정도의 핵무기를 갖고 ‘사실상 핵 보유국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보의식은 마비되고 평화무드에 젖어 있다. 여기에는 한반도가 처한 엄중한 안보현실을 무시하고 민족공조론에 입각하여 현실성 없는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한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우리는 모두 ‘평화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 물어보아야겠다. 각자가 갖고 있는 평화의 개념에 따라서 현재 한국 사회의 평화무드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저 사람은 참 생각 없는 행동을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행동이 잘못되었을 수는 있어도 생각 없는 행동은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 행동을 추동(推動)시키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의 근거가 되는 생각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행동의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의 젊은이들과, 공자가 제자들과 대화하면서, 동시대인들의 착각과 오해를 풀어 주고자 했던 방법론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논의되는 평화에 대한 이해도 이런 방법론을 통해서 평가해 볼 수 있다.
이 방법론이 필요한 이유는 미국 국제정치학의 선구자 한스 모겐소가 얘기한 바와 같이 권력을 가진 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진실을 파헤치고 동(同)시대인들에게 얘기하다가 독배(毒杯)를 들고 죽음을 당했다. 지금 한국의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남북한의 정치권력이 야합하여 만들어 낸 ‘허구적 평화’를 비판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지식인의 자기 성찰과 지적(知的) 용기가 지금보다도 더욱 절실한 때는 없었다.
‘평화’가 무엇인가 물어보면 두 가지 반응이 온다. 가장 일반적인 반응은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이다”라는 답이다. 그런데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갈등 없는 상황을 상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하다. 그런 사고는 유토피아적 생각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죽을 때까지 갈등 없는 삶을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천당에 가서 갈등 없이 평안하게 영생(永生)하라고 조의(弔意)를 표한다. 이런 비현실적이고 그릇된 평화관을 갖고서는 현실성 있는 평화 구축 방안이 나올 수 없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평화관은 갈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런 전제에 설 경우 평화를 위한 처방은 앞에서 말한 ‘갈등 없는 평화관’과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와 국제정치는 갈등이 항상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를 애써 무시하고 평화를 백번 얘기해 봐도 실효성 있게 평화를 유지하고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잘못된 평화관에 서서 북한과 합의를 하고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할 경우 그것은 또 다른 ‘전쟁의 초대장’이 될 뿐이다.
패권적 평화
갈등이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평화를 모색하는 입장을 ‘현실주의적 평화관’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우선 중앙정부가 없는 무정부적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국제정치 현실을 보자. 전쟁과 갈등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국제정치에서 프랑스 사상가 레이몽 아롱은 중요한 평화의 형태를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①세력균형에 의한 평화 ②패권(覇權)에 의한 평화 ③제국에 의한 평화가 그것이다.
여러 국가들이 동맹을 맺고 쌍방 간에 힘의 균형을 이룰 때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이 세력균형적 평화이다. 패권을 강조하는 평화는 힘의 균형이 아니라 국가들 사이에 힘의 차이가 크고 패권국가가 존재할 때 오히려 평화가 유지된다고 본다. 세 번째는 ‘팍스 로마나’ 혹은 ‘팍스 브리타니카’에서 보는 것처럼 강력한 제국에 의해서 유지되는 평화이다.
1948년 건국 이후 대한민국은 6·25전쟁 이후 한미(韓美)동맹을 체결하여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하로 편입되었다. 지금까지 한국이 누려 온 평화는 ‘패권적 평화’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東北亞) 지역은 패권국가 미국이 자전거 살대의 ‘허브’ 역할을 하는 양자(兩者) 동맹에 의해서 평화가 유지되어 왔다. 그래서 동북아 지역의 안보 구도를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자전거 바퀴의 중심축인 허브에 미국이 위치하고 거기서 살대가 뻗어 나와서 한미동맹, 미·일(美日)동맹, 미·호주동맹이 형성되어 이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 시스템의 허브인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철수한다고 하면 허브가 없어지고 살대가 무너지면서 자전거 바퀴는 더 이상 굴러갈 수 없다. 흔히 미국의 이런 역할을 ‘지역균형자’라고 부르지만 그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에 초점을 맞추어 패권국가 주도의 ‘패권적 평화’라고 부르는 것이 안보현실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反美親中 노선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패권적 평화에 역행(逆行)하는 방향으로 ‘민족공조론’의 입장에 서서 대북(對北)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심화되는 21세기 미·중 패권경쟁의 와중에서 한국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를 강화시켜 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와 정반대로 문재인 정부는 최근 합의된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에서 보는 것처럼 ‘반미친중(反美親中)’을 노골화시키고 있다.
군사분야 합의서는 군사분계선 지상(地上)뿐만 아니라 공중과 해상에서 남북한이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이 내용들은 한국군의 정상적 군사 작전과 훈련을 제약할 뿐만 아니라 한미연합군과 미국의 군사훈련을 제약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한국군에게도 큰 문제이지만, 미국은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군사분야 합의서는 북방한계선(NLL)을 해상 적대행위 중지 ‘지역’으로 설정하여 교묘하게 무력화(無力化)시키고 있다. 정전(停戰)협정에는 분명히 북방한계선은 북한이 넘어서는 안 되고 우리와 유엔군이 지켜야 할 ‘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선’을 ‘면’과 ‘지역’으로 바꾸어 북방한계선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서해 지역에 그렇게 넓은 해상 적대행위 중지 지역을 설정하면 미국은 서해에 전략무기를 배치하고 서해를 통해서 동중국해와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해군력을 더 이상 견제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빠지고 만다. 이번 군사분야 합의는 남북한 ‘민족공조’라는 미명하에 서해에서 미(美) 해군의 활동과 미국의 군사력을 무력화시키려는 ‘반미친중’ 정책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이런 문재인 정부의 노선이 갖고 있는 의도와 문제점을 미국이 모를 리 없다. 미국은 새로 임명된 로버트 에이브럼스 육군 대장을 내세워 문재인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9월 25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지명된 에이브럼스 대장은 “남북한이 합의한 비무장지대(DMZ) 전방초소(GP) 철거 작업은 유엔군사령부의 중재가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한이 종전(終戰)선언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존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의 발언은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와 관련한 미국 측의 최초의 공식적 입장이다.
그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가 이번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를 북한과 논의하면서 사전(事前)에 유엔사 및 미국과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식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동맹국가인 미국과 군사문제를 협의하지 않고 민족공조론에 서서 북한과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들을 합의한 것 자체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탈미접북’(脫美接北)을 통해서 미국의 패권질서에서 이탈하려는 문재인 정부에 이번 합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물론 그 후과(後果)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북한의 노림수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기 종전선언을 북한과 연대(連帶)하여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이 나서서 중국에까지 힘을 합쳐서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미국에 대항하는 한국·북한·중국 3국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으로 봐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전례(前例)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9월 중순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을 방문하여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종전선언을 설득하려다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뉴욕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이 선언을 한 후 북한이 이를 어길 경우 되돌리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미국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은 국가지도자가 할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과 자유가 직접 관련되어 있는 종전선언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 종전선언을 할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종전선언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 자체가 ‘탈미접북’과 ‘탈미친중(脫美親中)’이라는 노선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정치적 선언이라고 하더라도 종전선언을 하고 나면 과연 북한이 그것을 문재인 대통령 식으로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대할지 의문이다. 선언을 그렇게 안이하게 바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정치의 ABC도 모르는 듯하다. 어떤 선언이더라도 그것은 정치적·군사적 구속력을 갖기 마련이다. 북한의 노림수는 분명하다. 평화협정 체결의 전(前)단계로서 정치적 선언 형태의 종전선언을 하고 나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핵공갈
현재의 상황은 북한이 핵무기를 60개 정도 갖고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북한이 핵이 없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종전선언 이후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북한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북한은 한국과 미국에 대해서 ‘핵공갈’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이 주장하는 종전선언을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이전에는 해 줄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밥 우드워드 기자의 책 《공포》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2017년 말 트럼프는 주한미군 가족을 빼겠다는 트윗을 올리는 방안을 백악관 참모들과 논의했다. 이때 북한은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리수용을 통해서 그렇게 할 경우 그것을 대북 공격 신호로 간주할 것이라는 북한의 ‘경고 메시지’를 백악관에 전달했다. 이 메시지를 받고 트럼프는 철수 트윗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메시지는 핵을 가진 북한이 미국에 한 ‘핵공갈 협박’이었던 것이다. 미국에도 핵을 갖고 이런 협박을 하는 북한인데 핵도 없는 한국에 대해서 그 협박의 정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과거 북한 박영수가 북한 장사정포(長射程砲)에 의한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 북한은 종전선언 이후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으면 ‘서울 핵 불바다’ 발언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상 핵 보유국인 북한이 종전선언 이후 보일 행태가 뻔히 보이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전혀 현실감을 상실한 채 ‘허구적 평화관’과 ‘민족공조론’에 사로잡혀 조기 종전선언을 주장하면서 한국의 안보를 절벽으로 몰고 가고 있다. 문제는 국가지도자가 절벽으로 떨어질 때 체인에 국민들이 같이 묶여서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유엔司 해체
1970년대 초 미국과 중국이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한 극비 회담을 했을 때 중국은 김일성(金日成)의 요구를 수용하여 주한미군 철수·유엔군사령부 해체·유엔한국부흥위원단 해체를 미국에 요구했다. 미국은 두 개 사단 중 2사단을 철수시켰고 유엔은 한국위원단을 해체했다. 그러나 유엔군사령부는 해체하지 않았다. 유엔사는 정전협정을 관리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주체였기 때문이다. 유엔사는 일본 내 7개 기지에 한반도 유사시 사용할 탄약과 군(軍) 장비들을 저장해 두고 있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일본 내 이 기지들도 전부 폐쇄된다.
북한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 유엔사가 해체되고 일본 내 기지들이 폐쇄된다고 하면 한국군은 탄약이 부족하여 장기전(長期戰)을 펼 수 없다. 북한이 지금도 집요하게 중국과 연대하여 유엔사의 해체를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탈미접북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가 남한에 집권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북한은 종전선언을 하고 난 후 그 후속 조치로서 유엔사 해체를 밀어붙이려고 할 것이다. 유엔사 해체는 북한이 60개 정도의 핵을 가진 상황에서 한반도의 군사적 주도권이 완전히 북한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1970년대 초 미·중 비밀협상의 주역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유엔사 해체에 대비하여 한미연합사 창설 방안을 극비리에 마련했다. 그렇게 해서 1978년 만들어진 것이 한미연합사이다. 유엔사 관할하의 모든 미군 병력이 한미연합사로 배속되고 한미연합방위체제가 더욱 굳건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을 마련, 북한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 육군 병력 11만8000명을 감축하고 한미연합사의 전시(戰時)작전권을 ‘환수’하겠다는 비현실적 주장을 하고 있다.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는 한미연합방위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면서 미국의 핵우산을 확보하여 북한을 억지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전술핵을 재반입하거나 한국이 직접 핵개발에 나서는 것도 대안(代案)일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그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전작권을 환수하여 탄탄하게 지어진 한미연합방위체제라는 집을 허물려고 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전작권이 환수되고 나면 현재 GDP 대비 2.4%인 한국의 국방비가 몇 배로 상승해야 할 텐데, 문재인 대통령은 거기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다물고 있다. 전작권 환수를 비현실적이고 정치적 선동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가침협정’은 ‘전쟁의 초대장’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기대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파국을 불러온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그 여건이 마련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지금 한반도는 평화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전쟁의 포성(砲聲)이 잠시 멈추어 있는 ‘정전상태’이다. 이것은 한반도가 여전히 ‘준(準)전시상태’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전협정에 의해서 불안정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핵 보유와 함께 이 불안정한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여건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는데도 평화협정을 추진할 경우 오히려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
이번 판문점선언을 보면 남북한이 1991년 선언한 ‘불가침(不可侵)선언’을 재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수없이 많은 불가침협정들이 체결되었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그 조약 당사국들이 모두 서로 전쟁을 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불가침협정이 전쟁의 초대장으로 여겨져서 어떤 나라도 이런 협정과 선언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불가침을 선언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생각이다. 남북한이 전혀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합의한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적대행위 중지 합의는 더 큰 군사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은 핵이 있고 한국은 핵이 없는 상황에서 새롭게 생겨난 군사적 갈등은 한국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갈등이 없는 것이 평화’라는 ‘관념적 평화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는 ‘현실주의적 평화관’을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21세기 미·중 패권경쟁에 대비해 나가야 한다. 그 현실적 여건은 바로 한국이 건국 이후 미국의 패권질서하에서 정치발전과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다는 사실이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 유지에 힘을 보태면서 한국의 국익(國益)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과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위한 현실적 여건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섣불리 추구하는 것은 한반도에 또 다른 전쟁을 부르고 국가안보를 총체적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갈 위험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모두 ‘평화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 물어보아야겠다. 각자가 갖고 있는 평화의 개념에 따라서 현재 한국 사회의 평화무드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저 사람은 참 생각 없는 행동을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행동이 잘못되었을 수는 있어도 생각 없는 행동은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 행동을 추동(推動)시키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의 근거가 되는 생각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행동의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의 젊은이들과, 공자가 제자들과 대화하면서, 동시대인들의 착각과 오해를 풀어 주고자 했던 방법론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논의되는 평화에 대한 이해도 이런 방법론을 통해서 평가해 볼 수 있다.
이 방법론이 필요한 이유는 미국 국제정치학의 선구자 한스 모겐소가 얘기한 바와 같이 권력을 가진 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진실을 파헤치고 동(同)시대인들에게 얘기하다가 독배(毒杯)를 들고 죽음을 당했다. 지금 한국의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남북한의 정치권력이 야합하여 만들어 낸 ‘허구적 평화’를 비판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지식인의 자기 성찰과 지적(知的) 용기가 지금보다도 더욱 절실한 때는 없었다.
‘평화’가 무엇인가 물어보면 두 가지 반응이 온다. 가장 일반적인 반응은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이다”라는 답이다. 그런데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갈등 없는 상황을 상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하다. 그런 사고는 유토피아적 생각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죽을 때까지 갈등 없는 삶을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천당에 가서 갈등 없이 평안하게 영생(永生)하라고 조의(弔意)를 표한다. 이런 비현실적이고 그릇된 평화관을 갖고서는 현실성 있는 평화 구축 방안이 나올 수 없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평화관은 갈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런 전제에 설 경우 평화를 위한 처방은 앞에서 말한 ‘갈등 없는 평화관’과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와 국제정치는 갈등이 항상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를 애써 무시하고 평화를 백번 얘기해 봐도 실효성 있게 평화를 유지하고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잘못된 평화관에 서서 북한과 합의를 하고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할 경우 그것은 또 다른 ‘전쟁의 초대장’이 될 뿐이다.
패권적 평화
갈등이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평화를 모색하는 입장을 ‘현실주의적 평화관’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우선 중앙정부가 없는 무정부적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국제정치 현실을 보자. 전쟁과 갈등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국제정치에서 프랑스 사상가 레이몽 아롱은 중요한 평화의 형태를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①세력균형에 의한 평화 ②패권(覇權)에 의한 평화 ③제국에 의한 평화가 그것이다.
여러 국가들이 동맹을 맺고 쌍방 간에 힘의 균형을 이룰 때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이 세력균형적 평화이다. 패권을 강조하는 평화는 힘의 균형이 아니라 국가들 사이에 힘의 차이가 크고 패권국가가 존재할 때 오히려 평화가 유지된다고 본다. 세 번째는 ‘팍스 로마나’ 혹은 ‘팍스 브리타니카’에서 보는 것처럼 강력한 제국에 의해서 유지되는 평화이다.
1948년 건국 이후 대한민국은 6·25전쟁 이후 한미(韓美)동맹을 체결하여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하로 편입되었다. 지금까지 한국이 누려 온 평화는 ‘패권적 평화’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東北亞) 지역은 패권국가 미국이 자전거 살대의 ‘허브’ 역할을 하는 양자(兩者) 동맹에 의해서 평화가 유지되어 왔다. 그래서 동북아 지역의 안보 구도를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자전거 바퀴의 중심축인 허브에 미국이 위치하고 거기서 살대가 뻗어 나와서 한미동맹, 미·일(美日)동맹, 미·호주동맹이 형성되어 이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 시스템의 허브인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철수한다고 하면 허브가 없어지고 살대가 무너지면서 자전거 바퀴는 더 이상 굴러갈 수 없다. 흔히 미국의 이런 역할을 ‘지역균형자’라고 부르지만 그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에 초점을 맞추어 패권국가 주도의 ‘패권적 평화’라고 부르는 것이 안보현실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反美親中 노선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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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은 서해상에서 미군의 작전과 훈련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2013년 3월 서해상에서 실시된 한미 해군연합훈련 모습. 사진=해군제공 |
군사분야 합의서는 군사분계선 지상(地上)뿐만 아니라 공중과 해상에서 남북한이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이 내용들은 한국군의 정상적 군사 작전과 훈련을 제약할 뿐만 아니라 한미연합군과 미국의 군사훈련을 제약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한국군에게도 큰 문제이지만, 미국은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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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사령관으로 지명된 로버트 에이브럼스 대장. |
서해 지역에 그렇게 넓은 해상 적대행위 중지 지역을 설정하면 미국은 서해에 전략무기를 배치하고 서해를 통해서 동중국해와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해군력을 더 이상 견제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빠지고 만다. 이번 군사분야 합의는 남북한 ‘민족공조’라는 미명하에 서해에서 미(美) 해군의 활동과 미국의 군사력을 무력화시키려는 ‘반미친중’ 정책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이런 문재인 정부의 노선이 갖고 있는 의도와 문제점을 미국이 모를 리 없다. 미국은 새로 임명된 로버트 에이브럼스 육군 대장을 내세워 문재인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9월 25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지명된 에이브럼스 대장은 “남북한이 합의한 비무장지대(DMZ) 전방초소(GP) 철거 작업은 유엔군사령부의 중재가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한이 종전(終戰)선언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기존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의 발언은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와 관련한 미국 측의 최초의 공식적 입장이다.
그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가 이번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를 북한과 논의하면서 사전(事前)에 유엔사 및 미국과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식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동맹국가인 미국과 군사문제를 협의하지 않고 민족공조론에 서서 북한과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들을 합의한 것 자체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탈미접북’(脫美接北)을 통해서 미국의 패권질서에서 이탈하려는 문재인 정부에 이번 합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물론 그 후과(後果)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북한의 노림수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기 종전선언을 북한과 연대(連帶)하여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이 나서서 중국에까지 힘을 합쳐서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미국에 대항하는 한국·북한·중국 3국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으로 봐서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전례(前例)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9월 중순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을 방문하여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종전선언을 설득하려다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뉴욕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이 선언을 한 후 북한이 이를 어길 경우 되돌리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미국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은 국가지도자가 할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과 자유가 직접 관련되어 있는 종전선언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 종전선언을 할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종전선언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 자체가 ‘탈미접북’과 ‘탈미친중(脫美親中)’이라는 노선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정치적 선언이라고 하더라도 종전선언을 하고 나면 과연 북한이 그것을 문재인 대통령 식으로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대할지 의문이다. 선언을 그렇게 안이하게 바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정치의 ABC도 모르는 듯하다. 어떤 선언이더라도 그것은 정치적·군사적 구속력을 갖기 마련이다. 북한의 노림수는 분명하다. 평화협정 체결의 전(前)단계로서 정치적 선언 형태의 종전선언을 하고 나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 분명하다.
현재의 상황은 북한이 핵무기를 60개 정도 갖고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북한이 핵이 없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종전선언 이후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북한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북한은 한국과 미국에 대해서 ‘핵공갈’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이 주장하는 종전선언을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이전에는 해 줄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밥 우드워드 기자의 책 《공포》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2017년 말 트럼프는 주한미군 가족을 빼겠다는 트윗을 올리는 방안을 백악관 참모들과 논의했다. 이때 북한은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리수용을 통해서 그렇게 할 경우 그것을 대북 공격 신호로 간주할 것이라는 북한의 ‘경고 메시지’를 백악관에 전달했다. 이 메시지를 받고 트럼프는 철수 트윗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메시지는 핵을 가진 북한이 미국에 한 ‘핵공갈 협박’이었던 것이다. 미국에도 핵을 갖고 이런 협박을 하는 북한인데 핵도 없는 한국에 대해서 그 협박의 정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과거 북한 박영수가 북한 장사정포(長射程砲)에 의한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 북한은 종전선언 이후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으면 ‘서울 핵 불바다’ 발언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상 핵 보유국인 북한이 종전선언 이후 보일 행태가 뻔히 보이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전혀 현실감을 상실한 채 ‘허구적 평화관’과 ‘민족공조론’에 사로잡혀 조기 종전선언을 주장하면서 한국의 안보를 절벽으로 몰고 가고 있다. 문제는 국가지도자가 절벽으로 떨어질 때 체인에 국민들이 같이 묶여서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유엔司 해체
1970년대 초 미국과 중국이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한 극비 회담을 했을 때 중국은 김일성(金日成)의 요구를 수용하여 주한미군 철수·유엔군사령부 해체·유엔한국부흥위원단 해체를 미국에 요구했다. 미국은 두 개 사단 중 2사단을 철수시켰고 유엔은 한국위원단을 해체했다. 그러나 유엔군사령부는 해체하지 않았다. 유엔사는 정전협정을 관리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주체였기 때문이다. 유엔사는 일본 내 7개 기지에 한반도 유사시 사용할 탄약과 군(軍) 장비들을 저장해 두고 있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일본 내 이 기지들도 전부 폐쇄된다.
북한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 유엔사가 해체되고 일본 내 기지들이 폐쇄된다고 하면 한국군은 탄약이 부족하여 장기전(長期戰)을 펼 수 없다. 북한이 지금도 집요하게 중국과 연대하여 유엔사의 해체를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탈미접북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가 남한에 집권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북한은 종전선언을 하고 난 후 그 후속 조치로서 유엔사 해체를 밀어붙이려고 할 것이다. 유엔사 해체는 북한이 60개 정도의 핵을 가진 상황에서 한반도의 군사적 주도권이 완전히 북한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1970년대 초 미·중 비밀협상의 주역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유엔사 해체에 대비하여 한미연합사 창설 방안을 극비리에 마련했다. 그렇게 해서 1978년 만들어진 것이 한미연합사이다. 유엔사 관할하의 모든 미군 병력이 한미연합사로 배속되고 한미연합방위체제가 더욱 굳건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을 마련, 북한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 육군 병력 11만8000명을 감축하고 한미연합사의 전시(戰時)작전권을 ‘환수’하겠다는 비현실적 주장을 하고 있다.
북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는 한미연합방위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면서 미국의 핵우산을 확보하여 북한을 억지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전술핵을 재반입하거나 한국이 직접 핵개발에 나서는 것도 대안(代案)일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그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전작권을 환수하여 탄탄하게 지어진 한미연합방위체제라는 집을 허물려고 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전작권이 환수되고 나면 현재 GDP 대비 2.4%인 한국의 국방비가 몇 배로 상승해야 할 텐데, 문재인 대통령은 거기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다물고 있다. 전작권 환수를 비현실적이고 정치적 선동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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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은 유엔사 해체-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2004년 8월 5일 이라크 파병을 위해 경기도 오산기지에서 비행기에 오르는 주한미군 2사단 2여단 장병들. 사진=조선DB |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여건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는데도 평화협정을 추진할 경우 오히려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
이번 판문점선언을 보면 남북한이 1991년 선언한 ‘불가침(不可侵)선언’을 재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수없이 많은 불가침협정들이 체결되었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그 조약 당사국들이 모두 서로 전쟁을 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불가침협정이 전쟁의 초대장으로 여겨져서 어떤 나라도 이런 협정과 선언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불가침을 선언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생각이다. 남북한이 전혀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합의한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적대행위 중지 합의는 더 큰 군사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은 핵이 있고 한국은 핵이 없는 상황에서 새롭게 생겨난 군사적 갈등은 한국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갈등이 없는 것이 평화’라는 ‘관념적 평화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는 ‘현실주의적 평화관’을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21세기 미·중 패권경쟁에 대비해 나가야 한다. 그 현실적 여건은 바로 한국이 건국 이후 미국의 패권질서하에서 정치발전과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다는 사실이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 유지에 힘을 보태면서 한국의 국익(國益)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과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위한 현실적 여건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섣불리 추구하는 것은 한반도에 또 다른 전쟁을 부르고 국가안보를 총체적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갈 위험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