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대공 수사권 폐지 검토 … 국내 보안정보 수집권 폐지도
⊙ 검찰 개혁위, 특수·공안부 업무 축소 만지작
⊙ 경찰, 대공 수사와 관련 정보수집 독점 가능성 … 정보기관 내 견제장치 필요
⊙ 기무사, 이적행위하는 군인 간첩이나 군 사찰기능 폐지 논의
⊙ 검찰 개혁위, 특수·공안부 업무 축소 만지작
⊙ 경찰, 대공 수사와 관련 정보수집 독점 가능성 … 정보기관 내 견제장치 필요
⊙ 기무사, 이적행위하는 군인 간첩이나 군 사찰기능 폐지 논의
- 지난 9월 8일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해 소환된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전부터 국정원과 검찰을 꼭 찍어 메스를 들겠다고 공언했었다. 정권이 바뀌고 국정원은 적폐청산을 한답시고 스스로 수술대에 올랐다.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의 수장으로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발탁됐다. 정해구 교수는 대표적인 친노·좌파 인사로 광주 5·18, 제주 4·3과 같은 과거사 재조명에 아이콘 같은 인물이다.
국정원 개혁위는 국정원 명칭을 바꾸는 논의에서 정보수집 범위 재조정, 수사권 이관까지 여러 곳을 차례로 손볼 태세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실·국장급 1급과 전국 지부 산하 시도지부장을 전원 교체해 국정원 내부가 요동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적폐 대상’으로 지목된 물갈이 인사들은 2012년 SNS 대선개입 의혹, 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문화계 블랙리스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 박원순 서울시장 관련 문건, 추모 전 국정원 국장 청와대 비선 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등과 관련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인사권을 남용, 전 정권에서 열심히 일한 공직자를 정치적으로 찍어내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이미 구성한 상태다.
국회 정보위원회 이철우 위원장은 “적폐청산을 하려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적폐도 함께 해야지 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있었던 일들만 문제 삼느냐. 이것은 정치행위고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공(對共) 수사권 반납 및 해체와 관련된 얘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온다.
한마디로 간첩 잡는 일을 경찰이나 검찰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신건 국정원장(2001~2003년 재임)이 이런 말을 했다. “간첩, 안 잡는 게 아니고 없어서 못 잡는다.”
없으니 대공 업무를 줄이거나 없애자는 것이다.
수사권 분리가 국정원의 ‘탈(脫)권력화’?
국정원과 관련한 수사권은 대체로 대공 업무와 관련이 깊다. 형법 중 내란, 외환죄와 군형법 중 반란, 암호부정사용죄 등이 해당된다.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정된 죄나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범죄에 대한 수사권(국정원법 제3조 제1항 3호), 이와 별도로 국가정보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수사권을 갖고 있다.
역대 정부를 더듬어 보면, 김영삼(YS) 정부 시절인 1993년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법 개정으로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불고지죄 등의 대공 수사권 일부를 폐지한 적이 있다. 대신 정치관여 금지, 직권남용 금지 등의 조문이 신설됐었다. 그러나 “안기부를 손보겠다”고 큰소리치던 YS는 3년 후인 1996년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수사권을 환원시키고 말았다. “간첩 잡는 데 꼭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공 수사권 조정문제는 20여년 만에 국정원 개혁의 테이블에 다시 올려졌다. YS 시절의 당시 상황이 지금과 내용·형식 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국정원개혁위는 국정원을 본업인 순수 정보기관으로 만들되 안보수사의 전문성은 검경의 수사기관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국정원의 권한 중 대공 수사권을 없앤다는 의미는, ‘국정원이 정보만 수집해 전달하면 됐지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 3월 국정원 개혁 국회토론회에서 장유식 변호사(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는 “밀행성을 속성으로 하는 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보유하고 있는 것은 권력의 비대화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수사권 분리가 국정원의 ‘탈(脫)권력화’의 전제조건이라는 주장을 폈다.
여권에서는 국정원 개혁 방안의 하나로 국내 보안정보 수집권(혹은 수사권)을 폐지하되 해외·대북 정보와 관련된 정보 업무만을 제한적으로 다루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즉, 수사권 행사를 병행한 국내 보안정보의 탐색·수집·보고가 국정원의 국내 정치개입 불행의 씨앗이었다는 점에서 국내 보안정보 수집권을 차제에 없애자는 것이다. 대신 ①기존의 국내 정보는 전적으로 경찰에 맡기는 방안과 ②해외·북한 관련 정보만 수집하거나 ③별도의 국내정보 부문 정보기관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여권과 민주당에서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영국의 해외정보국(MI-6), 독일의 연방정보국(BND), 이스라엘의 모사드 같은 국가 정보기관조차 요원들에게 수사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운다. 여권 관계자는 “수사권을 포기하더라도 검찰과 경찰, 군수사기관이 포괄적으로 수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정원이 이들 기관에 정보를 제공해 수사하게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문제와 국내정보 업무는 사실상 구별 어려워
그러나 이들 국가는 한국처럼 분단국가도 아니며 인접국이 핵실험을 하거나 탄도미사일을 쏘며, 주적(主敵)이 존재하는 국가가 아니다. 또 국정원이 지금까지 대공 수사로 잡은 간첩을 떠올리면 수사권 폐지를 단순히 ‘탈권력화’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원이 밝힌 자료(《과거의 대화》)에 따르면 1951년부터 59년까지 생포·사살·자수한 검거 간첩은 모두 1674명이었다. 1960년대(60~69년)는 1686명, 1970년대(70~79년)는 681명, 1980년대(80~89년)는 340명, 1990년대(90~96년)는 114명이다.
이를 합산하면 1951년부터 1996년 사이에 검거·사살·자수 등의 형태로 당국에 파악된 북측 공작원 숫자는 4495명에 이른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부터 간첩 검거 실적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9대 국회 때 민주당 임수경 의원은 일방적으로 “1970년대 들어 북한의 간첩 남파가 사실상 중단됐다”고 주장, 군과 공안 당국을 깜짝 놀라게 만든 일이 있다. 임 의원은 작년 3월 1일 국회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과정에서 이같이 말하며 “북한이 간첩 남파를 중단한 이유는 돈이 많이 드는 고비용 저효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꾸준히 간첩을 침투시켜 온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2013년 10월 법무부가 밝힌 ‘2003년 이후 간첩사건 구속자 현황자료’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시절 14명, 이명박 정부 시절 31명, 박근혜 정부 들어 4명 등 모두 49명의 간첩이 검거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장간첩 김동식 검거다. 김동식은 1990년 5월 제주도 서귀포 해안을 통해 국내에 침투해 1980년부터 서울에서 활동하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이선실과 접선, 대동(帶同) 복귀시켰던 무장간첩이다. 그는 1995년 2차 침투해 고첩 ‘봉화 1호’를 북으로 호송하려다 체포됐다.
또 다른 사례는 1997년 남파 무장간첩에 의한 성혜림 조카 이한영의 암살사건이다. 북한은 1982년 10월 남한으로 망명한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이한영에게 여러차례 암살위협을 가했고 결국 실행에 옮겼다.
국정원에서 수사권을 박탈하면 대공 사건에 대한 효율적 접근이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대북문제와 국내정보 업무는 사실상 구별 짓기 어렵고, 북한문제를 해외정보 업무로 봐야 할지도 의문스럽다”며 “수사권 존폐 여부와 상관없이 문제는 북한의 도발과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몇 해 전 국정원 개혁토론회에서 “9·11 사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에서는 해외 정보와 국내 보안, 방첩 기능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는 9·11 사태가 미국의 해외정보부서(CIA)와 국내보안부서(FBI) 간의 협력 및 조정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현실 인식의 결과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또 “특히 중요한 것은 국정원의 정체성 확립”이라며 “진보정권하에서는 간첩 검거, 보수정권하에서는 대북 유화 분위기 유도 등 보수·진보 정부의 구별 없이 안보와 국익에 입각한 일관된 대북 방향성을 견지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의 공안부 축소와 대공 수사 힘빼기 우려
만약 국정원이 대공 수사권을 검찰이나 경찰로 이관할 경우 검찰의 공안부 존폐문제, 국가보안법 존폐논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그리고 검경의 수사권 조정 등이 또 다른 후속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
먼저 문재인 정부 내에서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특수·공안 업무의 축소를 타진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 정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안부가 표적이 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 최근의 검찰인사에서 공안 수사 경험이 거의 없는 권익환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을 대검 공안부장에 임명한 것을 두고 이례적인 인사라는 지적과 함께 “공안부의 향후 위상이 낮아질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앞서 지난 6월 9일 청와대의 ‘찍어내기’ 인사로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이 물러난 바 있다. 그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이 나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정 전 부장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서울대 법대 동기로 대표적인 ‘우병우 라인’의 한 축이었다. 그는 이임식에서 “송두율 교수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검찰의 공안부는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는 역할을 해 왔다. 공안(公安)이란 ‘공공의 안녕과 질서’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통치논리에 따라 정권유지의 도구로 공권력을 남용했다는 비난도 존재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공안의 힘을 빼려고 애썼고 이를 위해 검찰 공안부의 조직과 인력을 대폭 줄인 사례도 있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공안시대를 맞았다. 지난 10년간 공안통 검사가 요직에 대거 발탁됐는데 대표적인 인사가 황교안 전 국무총리다. 황 전 총리는 통합진보당 해산과 이석기 의원 구속, 이정희 의원을 비롯한 4명의 국회의원직을 박탈한 공안통이었다. 그는 지난 2011년 부산의 한 교회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공안검사라는 이유로 검사장 인사에서 억울하게 탈락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었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훈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공안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검찰권이 과잉으로 행사된 면이 있다”며 “일반 형사사건과 똑같이 취급해도 문제가 없다. 공안부를 대폭 축소하거나 형사부로 편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의 청와대는 검찰 내 공안부 기능을 축소 내지 폐지하는 대신 그 역할을 일반 형사부에 맡기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
검찰 공안부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선거, 집회와 시위, 대공 업무 등 공안만이 가진 특수한 영역이 있다. 대공 업무는 아주 섬세하고 치밀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일반 형사 업무에 배당하는 것은 간첩을 잡지 말자는 의미와 같다”고 비난했다.
국정원에서 수사권을 분리하거나, 검찰의 공안부가 폐지 혹은 축소될 경우 경찰조직 내에 종전의 보안국과 합병해 속칭 ‘대공수사국’(혹은 안보수사국)이 설치될 가능성이 있다.
대공수사국은 국정원과 검찰의 대공 업무를 전담하는 역할을 떠안을 것으로 보인다. 약 15만명(2016년 기준 전·의경 포함)에 이르는 거대한 경찰 조직과 인력을 십분 활용하자는 취지다.
전직 대공담당 경찰관은 “그동안 간첩을 잡고 싶어도 단서나 정보가 없었다. 대공 분야 종사자들의 사기가 저하된 면도 있지만 기술적으로 못하는 측면이 많았다”며 “대공수사국이 생기면 경찰의 대공 업무 위상도 제고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경찰의 대공(보안) 부서 위상 제고될까
그러나 과거 경찰 ‘대공과’가 ‘보안과’로 바뀌는 등 현재 경찰서 내 보안과의 역할과 위상이 높지 않다. 현재 보안과 관련된 주요 업무는 북한이탈주민 관리다. 이와 관련, 경찰이 올해 말까지 일선 경찰서에 보안과 50여 개를 증설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시대 추세에 맞지 않다”는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현 수준을 유지키로 했다.
여권 관계자는 “경찰이 대공 수사와 관련 정보 업무를 독점할 경우 별도의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정원과 경찰, 검찰이 서로 견제하고 건강하게 긴장하는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이 청와대 근처까지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방첩부대원으로 사칭해 검문검색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방첩부대는 그해 9월 육군보안사령부로 명칭을 바꾸고 기구도 개편했다. 그리고 1977년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로 개칭, 육·해·공 3군의 정보활동을 총괄했다.
1990년 민간인 사찰이 폭로된 후 보안사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이름을 다시 고쳤다. 그러나 2012년 대선 당시 정치댓글 작성 등 기무사와 국군정보사령부, 사이버사령부 등 군 정보기관이 정치에 개입한 것이 드러난 상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무사의 역할 재조정 및 개혁은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말 이석구 기무사령관 직무대리의 취임 직후 자체 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상태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장관 후보자 시절 “군의 정보기관 개혁은 국정원 개혁과 발을 맞추어 혁신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무사의 군인사찰 및 동향보고 기능을 폐지하고 본연의 임무인 대북정보와 방첩기능에 집중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여권에 따르면, 군 인사 정보와 동향 파악을 주로 했던 부서를 없애고 기존 방산과 보안, 방첩, 대북 정보를 담당하는 부서로 집중케 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몇 해 전 ‘미인간첩’이 군 간부에게 접근해 성관계를 맺고 군사정보를 캐내려다 적발된 사례처럼 기무사의 대공수사가 벽에 부딪힐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직 기무사 관계자는 “이적행위를 하는 군 간첩이나 군 간부의 동향보고, 지휘관들의 전횡, 장교들의 국가관 등은 군 인사의 중요한 검증자료였다”며 “이를 보지 않겠다는 것은 앞으로 군을 어떻게 지휘하겠다는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정원 개혁위는 국정원 명칭을 바꾸는 논의에서 정보수집 범위 재조정, 수사권 이관까지 여러 곳을 차례로 손볼 태세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실·국장급 1급과 전국 지부 산하 시도지부장을 전원 교체해 국정원 내부가 요동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적폐 대상’으로 지목된 물갈이 인사들은 2012년 SNS 대선개입 의혹, 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문화계 블랙리스트,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 박원순 서울시장 관련 문건, 추모 전 국정원 국장 청와대 비선 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등과 관련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인사권을 남용, 전 정권에서 열심히 일한 공직자를 정치적으로 찍어내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이미 구성한 상태다.
국회 정보위원회 이철우 위원장은 “적폐청산을 하려면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적폐도 함께 해야지 왜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있었던 일들만 문제 삼느냐. 이것은 정치행위고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공(對共) 수사권 반납 및 해체와 관련된 얘기가 벌써부터 흘러나온다.
한마디로 간첩 잡는 일을 경찰이나 검찰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신건 국정원장(2001~2003년 재임)이 이런 말을 했다. “간첩, 안 잡는 게 아니고 없어서 못 잡는다.”
없으니 대공 업무를 줄이거나 없애자는 것이다.
수사권 분리가 국정원의 ‘탈(脫)권력화’?
국정원과 관련한 수사권은 대체로 대공 업무와 관련이 깊다. 형법 중 내란, 외환죄와 군형법 중 반란, 암호부정사용죄 등이 해당된다.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정된 죄나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범죄에 대한 수사권(국정원법 제3조 제1항 3호), 이와 별도로 국가정보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수사권을 갖고 있다.
역대 정부를 더듬어 보면, 김영삼(YS) 정부 시절인 1993년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법 개정으로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불고지죄 등의 대공 수사권 일부를 폐지한 적이 있다. 대신 정치관여 금지, 직권남용 금지 등의 조문이 신설됐었다. 그러나 “안기부를 손보겠다”고 큰소리치던 YS는 3년 후인 1996년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수사권을 환원시키고 말았다. “간첩 잡는 데 꼭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공 수사권 조정문제는 20여년 만에 국정원 개혁의 테이블에 다시 올려졌다. YS 시절의 당시 상황이 지금과 내용·형식 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국정원개혁위는 국정원을 본업인 순수 정보기관으로 만들되 안보수사의 전문성은 검경의 수사기관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국정원의 권한 중 대공 수사권을 없앤다는 의미는, ‘국정원이 정보만 수집해 전달하면 됐지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 3월 국정원 개혁 국회토론회에서 장유식 변호사(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는 “밀행성을 속성으로 하는 정보기관이 수사권까지 보유하고 있는 것은 권력의 비대화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수사권 분리가 국정원의 ‘탈(脫)권력화’의 전제조건이라는 주장을 폈다.
여권에서는 국정원 개혁 방안의 하나로 국내 보안정보 수집권(혹은 수사권)을 폐지하되 해외·대북 정보와 관련된 정보 업무만을 제한적으로 다루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즉, 수사권 행사를 병행한 국내 보안정보의 탐색·수집·보고가 국정원의 국내 정치개입 불행의 씨앗이었다는 점에서 국내 보안정보 수집권을 차제에 없애자는 것이다. 대신 ①기존의 국내 정보는 전적으로 경찰에 맡기는 방안과 ②해외·북한 관련 정보만 수집하거나 ③별도의 국내정보 부문 정보기관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여권과 민주당에서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영국의 해외정보국(MI-6), 독일의 연방정보국(BND), 이스라엘의 모사드 같은 국가 정보기관조차 요원들에게 수사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운다. 여권 관계자는 “수사권을 포기하더라도 검찰과 경찰, 군수사기관이 포괄적으로 수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정원이 이들 기관에 정보를 제공해 수사하게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문제와 국내정보 업무는 사실상 구별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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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1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서훈 국정원장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를 비롯한 최근 북한의 안보 동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국정원이 밝힌 자료(《과거의 대화》)에 따르면 1951년부터 59년까지 생포·사살·자수한 검거 간첩은 모두 1674명이었다. 1960년대(60~69년)는 1686명, 1970년대(70~79년)는 681명, 1980년대(80~89년)는 340명, 1990년대(90~96년)는 114명이다.
이를 합산하면 1951년부터 1996년 사이에 검거·사살·자수 등의 형태로 당국에 파악된 북측 공작원 숫자는 4495명에 이른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부터 간첩 검거 실적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9대 국회 때 민주당 임수경 의원은 일방적으로 “1970년대 들어 북한의 간첩 남파가 사실상 중단됐다”고 주장, 군과 공안 당국을 깜짝 놀라게 만든 일이 있다. 임 의원은 작년 3월 1일 국회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과정에서 이같이 말하며 “북한이 간첩 남파를 중단한 이유는 돈이 많이 드는 고비용 저효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꾸준히 간첩을 침투시켜 온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2013년 10월 법무부가 밝힌 ‘2003년 이후 간첩사건 구속자 현황자료’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시절 14명, 이명박 정부 시절 31명, 박근혜 정부 들어 4명 등 모두 49명의 간첩이 검거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장간첩 김동식 검거다. 김동식은 1990년 5월 제주도 서귀포 해안을 통해 국내에 침투해 1980년부터 서울에서 활동하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이선실과 접선, 대동(帶同) 복귀시켰던 무장간첩이다. 그는 1995년 2차 침투해 고첩 ‘봉화 1호’를 북으로 호송하려다 체포됐다.
또 다른 사례는 1997년 남파 무장간첩에 의한 성혜림 조카 이한영의 암살사건이다. 북한은 1982년 10월 남한으로 망명한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이한영에게 여러차례 암살위협을 가했고 결국 실행에 옮겼다.
국정원에서 수사권을 박탈하면 대공 사건에 대한 효율적 접근이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대북문제와 국내정보 업무는 사실상 구별 짓기 어렵고, 북한문제를 해외정보 업무로 봐야 할지도 의문스럽다”며 “수사권 존폐 여부와 상관없이 문제는 북한의 도발과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몇 해 전 국정원 개혁토론회에서 “9·11 사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에서는 해외 정보와 국내 보안, 방첩 기능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는 9·11 사태가 미국의 해외정보부서(CIA)와 국내보안부서(FBI) 간의 협력 및 조정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현실 인식의 결과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또 “특히 중요한 것은 국정원의 정체성 확립”이라며 “진보정권하에서는 간첩 검거, 보수정권하에서는 대북 유화 분위기 유도 등 보수·진보 정부의 구별 없이 안보와 국익에 입각한 일관된 대북 방향성을 견지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의 공안부 축소와 대공 수사 힘빼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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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곡동 국정원 전경. 국정원 내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먼저 문재인 정부 내에서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특수·공안 업무의 축소를 타진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 정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안부가 표적이 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 최근의 검찰인사에서 공안 수사 경험이 거의 없는 권익환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을 대검 공안부장에 임명한 것을 두고 이례적인 인사라는 지적과 함께 “공안부의 향후 위상이 낮아질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앞서 지난 6월 9일 청와대의 ‘찍어내기’ 인사로 정점식 대검 공안부장이 물러난 바 있다. 그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이 나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정 전 부장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서울대 법대 동기로 대표적인 ‘우병우 라인’의 한 축이었다. 그는 이임식에서 “송두율 교수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검찰의 공안부는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는 역할을 해 왔다. 공안(公安)이란 ‘공공의 안녕과 질서’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지만 통치논리에 따라 정권유지의 도구로 공권력을 남용했다는 비난도 존재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공안의 힘을 빼려고 애썼고 이를 위해 검찰 공안부의 조직과 인력을 대폭 줄인 사례도 있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공안시대를 맞았다. 지난 10년간 공안통 검사가 요직에 대거 발탁됐는데 대표적인 인사가 황교안 전 국무총리다. 황 전 총리는 통합진보당 해산과 이석기 의원 구속, 이정희 의원을 비롯한 4명의 국회의원직을 박탈한 공안통이었다. 그는 지난 2011년 부산의 한 교회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공안검사라는 이유로 검사장 인사에서 억울하게 탈락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었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훈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공안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검찰권이 과잉으로 행사된 면이 있다”며 “일반 형사사건과 똑같이 취급해도 문제가 없다. 공안부를 대폭 축소하거나 형사부로 편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의 청와대는 검찰 내 공안부 기능을 축소 내지 폐지하는 대신 그 역할을 일반 형사부에 맡기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
검찰 공안부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선거, 집회와 시위, 대공 업무 등 공안만이 가진 특수한 영역이 있다. 대공 업무는 아주 섬세하고 치밀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일반 형사 업무에 배당하는 것은 간첩을 잡지 말자는 의미와 같다”고 비난했다.
국정원에서 수사권을 분리하거나, 검찰의 공안부가 폐지 혹은 축소될 경우 경찰조직 내에 종전의 보안국과 합병해 속칭 ‘대공수사국’(혹은 안보수사국)이 설치될 가능성이 있다.
대공수사국은 국정원과 검찰의 대공 업무를 전담하는 역할을 떠안을 것으로 보인다. 약 15만명(2016년 기준 전·의경 포함)에 이르는 거대한 경찰 조직과 인력을 십분 활용하자는 취지다.
전직 대공담당 경찰관은 “그동안 간첩을 잡고 싶어도 단서나 정보가 없었다. 대공 분야 종사자들의 사기가 저하된 면도 있지만 기술적으로 못하는 측면이 많았다”며 “대공수사국이 생기면 경찰의 대공 업무 위상도 제고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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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발족식 모습.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한인섭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위원장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여권 관계자는 “경찰이 대공 수사와 관련 정보 업무를 독점할 경우 별도의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정원과 경찰, 검찰이 서로 견제하고 건강하게 긴장하는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이 청와대 근처까지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방첩부대원으로 사칭해 검문검색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방첩부대는 그해 9월 육군보안사령부로 명칭을 바꾸고 기구도 개편했다. 그리고 1977년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로 개칭, 육·해·공 3군의 정보활동을 총괄했다.
1990년 민간인 사찰이 폭로된 후 보안사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이름을 다시 고쳤다. 그러나 2012년 대선 당시 정치댓글 작성 등 기무사와 국군정보사령부, 사이버사령부 등 군 정보기관이 정치에 개입한 것이 드러난 상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무사의 역할 재조정 및 개혁은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말 이석구 기무사령관 직무대리의 취임 직후 자체 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상태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장관 후보자 시절 “군의 정보기관 개혁은 국정원 개혁과 발을 맞추어 혁신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무사의 군인사찰 및 동향보고 기능을 폐지하고 본연의 임무인 대북정보와 방첩기능에 집중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여권에 따르면, 군 인사 정보와 동향 파악을 주로 했던 부서를 없애고 기존 방산과 보안, 방첩, 대북 정보를 담당하는 부서로 집중케 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몇 해 전 ‘미인간첩’이 군 간부에게 접근해 성관계를 맺고 군사정보를 캐내려다 적발된 사례처럼 기무사의 대공수사가 벽에 부딪힐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직 기무사 관계자는 “이적행위를 하는 군 간첩이나 군 간부의 동향보고, 지휘관들의 전횡, 장교들의 국가관 등은 군 인사의 중요한 검증자료였다”며 “이를 보지 않겠다는 것은 앞으로 군을 어떻게 지휘하겠다는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