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할머니는 내가 평생 만난 사람 중 가장 부지런한 사람
⊙ 외할머니로부터 씻고 자는 습관, 절대 밥을 남기지 않는 습관 배워
太永浩
1962년생. 평양국제관계대학·베이징외국어대학 졸업 / 북한 외무성 부국장,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역임 / 2016년 귀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역임. 現 국민의힘 21대 국회의원(강남구 갑)
⊙ 외할머니로부터 씻고 자는 습관, 절대 밥을 남기지 않는 습관 배워
太永浩
1962년생. 평양국제관계대학·베이징외국어대학 졸업 / 북한 외무성 부국장,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역임 / 2016년 귀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역임. 現 국민의힘 21대 국회의원(강남구 갑)
내 나이 60. 옛날 같으면 자식들로부터 환갑상을 받고 손주들 손을 잡고 데리고 다닐 나이다. 이제 완전히 남한 사람이 된 나의 아이들은 자식은커녕 아직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몇 년 내로 결혼할 것 같지도 않다. 나의 아버지가 60세일 때 아버지에게는 벌써 손주가 3명이나 있었는데….
나의 외할머니는 이보다 더한 손주 부자였다. 60세 환갑잔치 때 손주가 6명이나 있었다. 명절이 가까워지니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나의 외할머니의 성함은 이월산이다. 외할아버지 김태봉에게 시집와서 딸 3명에 아들 한 명을 낳으셨다.
외할아버지는 집안의 맏아들이었다. 맏며느리로 시집온 외할머니는 줄줄이 딸만 내리 3명을 낳았다. 외할머니는 시어머니의 구박 때문에 10년 동안 집안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네 번째로 낳은 자식이 아들이었다.
“그때부터 집안에서 발언권이 생겼단다.”
외할머니는 나한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나의 외삼촌 김명헌은 나의 외갓집 대를 잇는 장손이라고 어딜 가나 대우를 받았다. 외삼촌이 장가갈 나이가 되자, 외할머니는 며느리가 들어오면 집안의 대를 이를 아들을 낳아야 한다면서 아들을 낳을 며느리를 선봐야 한다고 하셨다.
“어떻게 그런 며느리를 골라서 데려올 수 있겠어요.”
딸들의 야단에도 외할머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들이 많은 집 딸을 데려오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우기셨다. 외할머니는 의사 집안 출신이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의학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의 고집이 하도 세서 결국 외삼촌은 남자 형제만 셋을 둔 여성과 선을 봤다. 다행스럽게도 그분과 외삼촌은 마음이 맞아 결혼까지 성공했다. 그리고 신기하고 다행스럽게도 나에게 외숙모가 된 그분은 시집와서 아들을 연거푸 2명을 낳았다. 1970년대 후반 얘기다. 당시 북한 사회는 너무나도 가부장적이었다.
어느 날 나타난 낯선 여자아이
나의 어머니는 세 딸 중 가장 맏이, 그러니까 집안의 맏딸이었다. 아버지와 결혼한 후부터 어머니의 건강은 차츰 안 좋아졌다. 어머니는 누나를 낳은 지 1년도 안 되어 나를 임신했다. 나와 누나는 연년생으로 자랐다. 어머니가 나를 낳았을 때 외할머니는 혜산에서 평양으로 올라와 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하도록 돌봐주셨다. 한 달쯤 계시다 혜산으로 내려가면서 당시 한 살이던 나의 누나를 업고 내려갔다고 한다. 몸 약한 어머니가 아기를 둘이나 키우면 견디지 못할 거라면서.
이렇게 외갓집으로 갔던 누나는 초등학교에 갈 나이인 9세가 되어서야 평양에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어느 날 유치원에 갔다가 집에 오니 웬 낯 모를 여자애가 집에 와 있었다. 어머니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네 누나란다.”
그제야 나에게 누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나가 집으로 돌아오니 그다음 차례는 나였다. 이번엔 내가 외갓집에 살러 갔다. 그때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거의 1년을 외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그때 외할머니와 정이 든 이유로 나는 방학 때면 외할머니에게 놀러 가곤 했다. 외갓집은 양강도 혜산시 송봉동에 있었다.
외갓집에 가면 외할아버지와 막내 이모가 있었다. 막내 이모는 송봉소학교 교사였다. 막내 삼촌은 당시엔 군대에 가고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아침 식사를 하시고는 직장으로 나가셨고 집에 와서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1960년대 말 북한의 일반 가정엔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압록강 건너편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 한창이었다. 저녁이면 북한 쪽을 향해 확성기 방송을 아주 크게 틀어놓고 마오쩌둥(毛澤東) 사상을 선전했다.
“밥을 자꾸 남기면 엄마가 일찍 죽는다”
외할머니는 체격이 대단히 작았다. 식사 때마다 아주 조금씩만 드셨다. 그렇게 적게 드시고 어떻게 힘을 쓰시는지 알 수 없었다. 매해 가을이 오면 농촌 마을에 내려가 감자를 담은 마대를 머리에 이고 오셨다. 몸보다 더 큰 감자마대를 머리에 이신 외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평생 우리 외할머니만큼 부지런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침마다 제일 먼저 일어나 부뚜막에 불을 지피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다. 외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 두 가지만은 꼭 지키도록 습관을 붙여주셨다.
하나는 씻고 자는 습관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꼭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온몸을 씻고 자게 하셨다. 다른 하나는 밥을 절대로 남기지 않는 습관이다. 어릴 때 밥이 먹기 싫어 남기려고 하자 외할머니는 나를 말 그대로 위협하셨다. “밥을 자꾸 남기면 엄마가 일찍 죽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 말이 진짠 줄 알고 먹기 싫어도 꾹 참고 음식을 끝까지 다 먹었다.
시간이 흘러 나도 대학생이 됐다. 대학 시절에도 방학이 되면 할머니 집에 내려가곤 했다. 하루는 할머니가 물어오셨다.
“사귀는 처녀가 있니?”
없다고 하니 “앞으로 장가가면 절대로 바람을 피우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남자는 어릴 때부터 아무리 늦어도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고 신신 당부하셨다. 아주 진지한 표정이셨다.
그때 그 말씀이 가슴에 깊이 새겨졌는지 나는 평생 아무리 술에 취해도 꼭 잠만은 집에 돌아와서 잤다. 이런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애들이 늦게까지 집에 오지 않으면 무조건 전화를 걸어 집으로 불러들인다.
외할머니를 추억하며 문득 궁금해졌다. 저세상에 계시는 외할머니는 남한으로 내려오기로 한 나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형제들은 다 북한에 두고 혼자 내려왔냐며 꾸지람하실까, 아니면 “영호가 한 선택이니 남한에서 잘 살아보거라” 격려해주실까.
어릴 때부터 늘 내가 한 일은 뭐든 대견하다며 칭찬해주셨던 나의 외할머니 이월산 여사는 나의 탈북도 지지해주셨을 것만 같다.⊙
나의 외할머니는 이보다 더한 손주 부자였다. 60세 환갑잔치 때 손주가 6명이나 있었다. 명절이 가까워지니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나의 외할머니의 성함은 이월산이다. 외할아버지 김태봉에게 시집와서 딸 3명에 아들 한 명을 낳으셨다.
외할아버지는 집안의 맏아들이었다. 맏며느리로 시집온 외할머니는 줄줄이 딸만 내리 3명을 낳았다. 외할머니는 시어머니의 구박 때문에 10년 동안 집안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네 번째로 낳은 자식이 아들이었다.
“그때부터 집안에서 발언권이 생겼단다.”
외할머니는 나한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나의 외삼촌 김명헌은 나의 외갓집 대를 잇는 장손이라고 어딜 가나 대우를 받았다. 외삼촌이 장가갈 나이가 되자, 외할머니는 며느리가 들어오면 집안의 대를 이를 아들을 낳아야 한다면서 아들을 낳을 며느리를 선봐야 한다고 하셨다.
“어떻게 그런 며느리를 골라서 데려올 수 있겠어요.”
딸들의 야단에도 외할머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들이 많은 집 딸을 데려오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우기셨다. 외할머니는 의사 집안 출신이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의학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의 고집이 하도 세서 결국 외삼촌은 남자 형제만 셋을 둔 여성과 선을 봤다. 다행스럽게도 그분과 외삼촌은 마음이 맞아 결혼까지 성공했다. 그리고 신기하고 다행스럽게도 나에게 외숙모가 된 그분은 시집와서 아들을 연거푸 2명을 낳았다. 1970년대 후반 얘기다. 당시 북한 사회는 너무나도 가부장적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세 딸 중 가장 맏이, 그러니까 집안의 맏딸이었다. 아버지와 결혼한 후부터 어머니의 건강은 차츰 안 좋아졌다. 어머니는 누나를 낳은 지 1년도 안 되어 나를 임신했다. 나와 누나는 연년생으로 자랐다. 어머니가 나를 낳았을 때 외할머니는 혜산에서 평양으로 올라와 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하도록 돌봐주셨다. 한 달쯤 계시다 혜산으로 내려가면서 당시 한 살이던 나의 누나를 업고 내려갔다고 한다. 몸 약한 어머니가 아기를 둘이나 키우면 견디지 못할 거라면서.
이렇게 외갓집으로 갔던 누나는 초등학교에 갈 나이인 9세가 되어서야 평양에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어느 날 유치원에 갔다가 집에 오니 웬 낯 모를 여자애가 집에 와 있었다. 어머니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네 누나란다.”
그제야 나에게 누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나가 집으로 돌아오니 그다음 차례는 나였다. 이번엔 내가 외갓집에 살러 갔다. 그때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거의 1년을 외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그때 외할머니와 정이 든 이유로 나는 방학 때면 외할머니에게 놀러 가곤 했다. 외갓집은 양강도 혜산시 송봉동에 있었다.
외갓집에 가면 외할아버지와 막내 이모가 있었다. 막내 이모는 송봉소학교 교사였다. 막내 삼촌은 당시엔 군대에 가고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아침 식사를 하시고는 직장으로 나가셨고 집에 와서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1960년대 말 북한의 일반 가정엔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압록강 건너편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 한창이었다. 저녁이면 북한 쪽을 향해 확성기 방송을 아주 크게 틀어놓고 마오쩌둥(毛澤東) 사상을 선전했다.
외할머니는 체격이 대단히 작았다. 식사 때마다 아주 조금씩만 드셨다. 그렇게 적게 드시고 어떻게 힘을 쓰시는지 알 수 없었다. 매해 가을이 오면 농촌 마을에 내려가 감자를 담은 마대를 머리에 이고 오셨다. 몸보다 더 큰 감자마대를 머리에 이신 외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평생 우리 외할머니만큼 부지런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침마다 제일 먼저 일어나 부뚜막에 불을 지피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다. 외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 두 가지만은 꼭 지키도록 습관을 붙여주셨다.
하나는 씻고 자는 습관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꼭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온몸을 씻고 자게 하셨다. 다른 하나는 밥을 절대로 남기지 않는 습관이다. 어릴 때 밥이 먹기 싫어 남기려고 하자 외할머니는 나를 말 그대로 위협하셨다. “밥을 자꾸 남기면 엄마가 일찍 죽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 말이 진짠 줄 알고 먹기 싫어도 꾹 참고 음식을 끝까지 다 먹었다.
시간이 흘러 나도 대학생이 됐다. 대학 시절에도 방학이 되면 할머니 집에 내려가곤 했다. 하루는 할머니가 물어오셨다.
“사귀는 처녀가 있니?”
없다고 하니 “앞으로 장가가면 절대로 바람을 피우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남자는 어릴 때부터 아무리 늦어도 잠은 집에서 자야 한다고 신신 당부하셨다. 아주 진지한 표정이셨다.
그때 그 말씀이 가슴에 깊이 새겨졌는지 나는 평생 아무리 술에 취해도 꼭 잠만은 집에 돌아와서 잤다. 이런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애들이 늦게까지 집에 오지 않으면 무조건 전화를 걸어 집으로 불러들인다.
외할머니를 추억하며 문득 궁금해졌다. 저세상에 계시는 외할머니는 남한으로 내려오기로 한 나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형제들은 다 북한에 두고 혼자 내려왔냐며 꾸지람하실까, 아니면 “영호가 한 선택이니 남한에서 잘 살아보거라” 격려해주실까.
어릴 때부터 늘 내가 한 일은 뭐든 대견하다며 칭찬해주셨던 나의 외할머니 이월산 여사는 나의 탈북도 지지해주셨을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