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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② 젓가락의 始原

인류 최초의 요리사와 戰士의 도구, ‘부지깽이’와 ‘작대기’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사진 : 김용호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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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젓가락 안에 한국인의 문화적 밈(Meme), 민족의 아이덴티티(정체성) 담겨
⊙ 무리서 쫓겨난 나무를 못 타는 원숭이… 맹수에 맞서 작대기 든 인류 최초의 戰士
⊙ 부지깽이 들고 불을 다루는 여자가 인류 최초의 요리사… 火食으로 뇌가 발달
⊙ 불 앞에 모여 허구, 상상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사람, ‘호모 나란스(Homo Narrans)’
⊙ ‘세미오시스(기호상징계)’ 관점에서 부지깽이와 작대기는 꼬부랑 할머니의 지팡이

李御寧
1933년생.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초대 문화부 장관 역임
사진=김용호
  이어령(李御寧) 선생(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의 두 번째 한국인 이야기는 젓가락이다. ‘하찮게’ 여기는 젓가락이지만, 젓가락 안에 “한국인의 문화적 밈(Meme), 우리 민족의 아이덴티티(정체성), 신분증이 들어 있다”는 게 선생의 생각이다.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동양 문화권에서 수천 년을 이어온 젓가락은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사람의 손가락을 완벽하게 대신하는 도구다. 그런데 한 짝으론 아무 구실을 못 한다. 오로지 두 짝이어야 한다.
 
  이유식을 뗀 아이가 밥을 먹으면서 배우는 것이 젓가락질이다. 숟가락과 달리 젓가락은 평균 이상의 악력이 필요하다. 아이는 점차 성장하면서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집거나 깻잎장아찌를 떼는 과업을 차근차근 달성하며 밥상 대열에 안착한다.
 
  때로 메추리알, 방울토마토, 매실절임 같은 난도(難度)가 높은 음식과 성실히 맞서는데, 면(麵)을 돌돌 말거나 쌀밥을 한 톨씩 집는 극강(極强)의 젓가락질은 마치 성장통처럼 청소년기를 거치며 습득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젓가락질이 서툴면 혀 차는 소리를 듣거나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때로 굶을 각오까지 해야 하는 비정한 밥상머리 교육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선생의 말이다.
 
  “요즘 초등학생 가운데 젓가락질을 할 줄 아는 아이가 열 명 가운데 한두 명밖에 안 된대요. 하지만 정말 하찮은 것이라면 백제 무령왕(통치 기간 501~523) 능에서 금관 장식과 함께 청동 수저가 발굴되었겠습니까. 백제인의 피와 몸은 사라졌어도 그 하찮은 젓가락은 그 짝을 잃지 않고 나란히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1500년 전 모든 것은 모두 다 변하고 사라졌는데도 어떻게 그 젓가락만은 지금까지 전해져 끼니마다 변함없이 사용되니 신기하지 않습니까.”
 
  ― 젓가락도 우리 문화의 일부군요.
 
  “그럼요. 젓가락을 떠올려봐요. 자연의 나뭇가지를 손으로 집는 순간, 문화가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그냥 나뭇가지가 아니라 자신의 손가락을 닮은 가지를 꺾고 다듬는 단순하지만 최초의 공정, 도구를 만드는 과정이 문화예요.
 
  손으로 잡기 쉽게, 처음에는 꼬챙이처럼 한 가닥이 있던 것이 두 개로 짝을 만들어 음식을 집는 순간 자연과는 다른 문화의 세계, 그 문이 열리는 것이지요.”
 
 
  中日과 다른 한국의 젓가락 문화 ‘수저’
 
한국인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어령 선생이 빈 종이에 글과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김용호
  선생은 또 “동북아 한중일(韓中日)이 같이 공유하면서도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 유전자를 젓가락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우리는 젓가락만이 아닌 ‘수저’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중국·일본과 달라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합친 수저를 한 쌍으로 사용해요. 중국, 일본에는 그런 개념이 없어요. 연암 박지원이 《혹정필담(鵠汀筆談)》에서 이야기했듯 중국과 우리나라의 젓가락 문화는 수저에서 확연하게 달라요.”
 
  선생에 따르면, 숟가락은 주로 국물을 떠먹는 것으로 음(陰)에 속한다. 양(陽)에 속하는 젓가락은 고체 형태의 음식을 집는 데 용이하다. “젓가락은 양, 숟가락은 음, 건더기는 양, 국물은 음이다. 양으로 양을 집고, 음으로 음을 뜨면서 음양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같은 젓가락 문화권인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한국 문화는 수저를 같이 쓴다는 점에서 일체형의 음양 조화 문화를 가장 철저하게 생활화한다고 할 수 있어요.”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데 보세요. 한중일 3국 중에 유일하게 쇠젓가락을 가진 민족이 우리입니다. 쇠젓가락은 밥상을 두드려도 소리가 나고, 소주병을 잡고 즉석 연주도 가능하죠. 나무젓가락은 밋밋하고 소리가 안 나.”
 
  “쇠젓가락은 가락을 좋아하던 우리 민족에게 훌륭한 악기였다. 젓가락 장단으로 ‘니나노~’ 하잖아”라는 말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선생은 다시 ‘진지’ 모드로 돌아갔다.
 
  “한국인의 정체성이 담긴 젓가락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하면 인류 최초의 전사(戰士), 최초의 요리사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다시 말해 ‘작대기’와 ‘부지깽이’로 연결됩니다.”
 
  기자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자 선생은 혀를 차듯이 덧붙였다.
 
  “김 기자! 시작부터 황당하다는 눈빛인데, 들어봐요.
 
  헤라클레스가 사자를 때려죽일 때 쓴 도구가 뭐예요? 곤봉이거든요. 다시 말해 작대기입니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자기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던 작대기가 여의봉이잖아요. 유럽의 군주들에게 권력을 상징하던 지휘봉이 왕홀(王笏)입니다. SF의 명작으로 꼽히는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를 떠올려 보자고요.”
 
 
  火의 발견과 부지깽이
 
SF의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 원숭이가 뼈다귀를 높이 들어 내려치려 하고 있다.
  젓가락에서 ‘작대기’ ‘부지깽이’로 이야기가 옮겨가던 선생의 사유(思惟)가 갑자기 SF영화로 종횡무진 시공간을 넘나들었다. 기자의 뇌 이쪽저쪽이 동시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영화 속 인류의 진화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장면이 뭐예요? 그렇지. 원숭이 한 마리가 자신이 쥐고 있던 뼈다귀를 하늘 높이 드는 거라고. 이 뼈다귀가 바로 ‘작대기’의 원형이고 꼬부랑 할머니의 ‘지팡이’야. 권력과 파워(힘)의 상징인 거죠.”
 
  영화 속 묵직한 정강이뼈로 다른 무리를 제압하는 원숭이의 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원숭이가 하늘 높이 던진 뼈다귀가 천천히 내려오면서 화면이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잖아요. 넓디넓은 은하계, 우주 비행선이 날아가고 푸른 지구가 나오는 장면입니다. 우리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상징하는 거잖아요.
 
  이 뼈다귀를 쥔, 저 작대기, 곤봉을 쥔 이가 바로 인류 최초의 전사인 거지.”
 
  선생은 영화 속 유인원에 집중했다.
 
  “원래 원숭이는 네 발을 사용해 자유자재로 나무를 타잖아요. 나무를 못 타는 원숭이는 무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진화론 관점에서 그 쫓겨난 원숭이가 인간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결핍의 존재일 수밖에 없어.”
 
  기후의 변화로 열대 우림이 점점 줄어들고 사바나 지형이 형성되었다. 나무를 잘 타지 못하는 원숭이는 나무 열매에만 의존할 수 없어 평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수렵 채집의 시작, 채집문명의 도래다.
 
  “원숭이는 살아남기 위해 고개를 높이 치켜들고 두 발로 서게 됩니다. 두 손은 자연히 자유로워지게 된 거지. 그때 저쪽에서 하이에나가 막 몰려옵니다.
 
  어떻게 하겠어요. 막 도망치다가 발에 차이는 돌을 집어 던지고(호모 훈디토르·Homo Funditor·投石人), 나무 작대기를 찾지 않겠어요?”
 
  젓가락의 시원(始原)을 파고들던 선생은 작대기에서 ‘불의 발견’으로 이야기 방향을 조금 틀었다.
 
  “인류학자인 하버드대 리처드 랭엄 교수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날달걀을 먹으면 영양이 근육으로 가고, 삶은 달걀을 먹으면 뇌로 간다’고 말이죠.
 
  화식(火食)으로 인간의 뇌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어요. 뒤집어 생각하면, 최초의 인간은 작대기를 든 사람이 아니라 불을 이용하는, ‘부지깽이를 든’ 사람이라 말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古代 문헌에 부지깽이가 없는 이유
 
‘전기 없는 마을’인 경북 청송군 주왕산 기슭 내원마을에서 한 할머니가 부뚜막에 불을 지피며 부지깽이를 들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리처드 랭엄 교수는 인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바로 ‘불의 발견’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이룩해낸 가장 중요한 것이 불로 음식을 요리하는 ‘화식’의 발견이며, 이 화식이 인간의 모든 것을 바꿨다는 ‘요리 본능 학설’을 주장한다.
 
  “그런데 잘 보라고. 사냥한 짐승을 익혀 먹을 때 불을 어떻게 다뤘을까요. 손으로 했겠냐고. 부지깽이로 했겠지요.
 
  우리가 캠핑을 가봐도 알 수 있어요. 나뭇가지를 모아 불 피우려면 불쏘시개가 필요하고 부지깽이가 있어야 해요.”
 
  ― 시골에서 자라 부지깽이가 뭔지는 알지만, 고대(古代) 유적에서 부지깽이가 발굴됐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학자는 부지깽이 흔적이 인류사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 같은 학자도 부지깽이의 존재를 모릅니다. 생각해보세요. 왕의 무덤 속에 상아(象牙)나 금, 청동, 옥으로 만든 젓가락은 넣어도 부지깽이를 넣겠어요?
 
  시골 부뚜막에서 불을 피워본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부지깽이 역할을 한 ‘불쏘시개 작대기’는 마지막에 다 태워버리잖아요. 그러니 화석(化石)으로 안 남죠.”
 
  고대 문헌에 부지깽이 사용법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지깽이는 일상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접목되었기 때문이다. 불을 이용하는 데 없어선 안 되는, 그러니까 요리를 하는 여자에게 단순한 도구를 뛰어넘는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역사적 기술(記述)이 대개 남성의 시각에서 정리됐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문화인류학자들은 화석으로 남지 않으면 역사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문자로 인간 생활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시대를 ‘역사 시대’라고 부르고, 문자 이전을 ‘선사(先史) 시대’로 명명하잖아요.”
 
  선생이 목소리를 높이며 성토하기 시작했다.
 
  “김 기자! 생각해보세요. 인간 역사가 문자로 시작한다? 웃기는 놈들이야. 말이 없이 글(문자)이 어떻게 나와? 글보다 말이 먼저잖아. 인간의 ‘인지(認知) 혁명’은 글보다 말에서 먼저 시작되는 거야. 그렇지 않아? 문자 발명은 아무것도 아니야. 말의 발명이 더 위대해.
 
  말이 애비(아비)고 글은 자식인데, 자식에게 역사가 생기고 애비는 역사에서 제외한다? 이게 가능하냐고. 문자를 쓴 1만 년의 세월로 문자 이전의 350만 년을 다 지워버렸어, 이놈들이.”
 
  선생은 두 손을 불끈 쥐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언제 예수님이 글을 쓰셨어? 제자들이 써 신약(新約)이 됐는데, 성경 이전에 기독교가 없었겠네. 정말이지 웃기는 거여.”
 
 
  부지깽이를 든 여자, 인류 최초의 요리사
 
  세계적 고고학 저널리스트인 후베르트 필저가 쓴 《최초의 것(Das Erste Mal)》(지식트리 刊, 2012)을 보니, 인간 손으로 불을 붙인 최초의 실제 증거들이 이스라엘 북부 요르단 계곡의 고갈된 호수 주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79만 년 전에 모닥불이 타올랐다는 증거가 나왔다. 까맣게 탄 낟알, 나무껍질, 나뭇조각, 부싯돌, 그리고 사용되지 않은 목재들이 발견된 것이다.
 
  불을 땔 때 불을 헤치거나 끌어낼 때 쓰는 도구가 부지깽이다. 인류학자들은 불을 길들이던 시점을 약 80만 년 전쯤으로 본다. 선생의 설명이다.
 
  “불을 일상적으로 이용하게 된 인간은 극심한 추위를 이겨냈고 수렵 채집의 한계를 극복했으며 으르렁대는 호랑이, 사자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자연의 열매로는 소화가 어려운 밀, 쌀, 감자가 인간의 주식(主食)으로 등장하게 된 것도 불 덕분이었어요.”
 

  “불에 익히면 음식을 오염시키는 세균과 기생충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심지어 죽은 동물도 구워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흔히 ‘잠자는 사자’라고 하잖아요. 사자는 먹으면 온종일 자. 왜? 소화시키느라 자는 겁니다. 다 소화시킨 뒤 배가 고파야 다시 어슬렁거립니다. 그런데 불로 익혀 먹으면 소화하는 시간이 날것으로 먹는 것에 비해 1/10이면 돼요. 그러니 인간은 짐승보다 활동하는 시간이 더 많게 되고, 화식으로 뇌가 발달한 덕에 정교한 사냥이 가능해진 거야.”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짐승은 참을성이 없거든. 그 자리에서 다 먹어. 인간은 불로 익히고 요리를 해서 먹으려면 참아야 해요. 요리는 기다림이잖아. 또 여럿이서 공식(共食)을 합니다. 그것을 콘비비알러티(conviviality·향연 혹은 연회)라고 합니다. 기독교 성찬식에서 예수님의 성체인 빵과 포도주를 나눠 먹는 것과 다 연결이 됩니다.
 
  인간만이 참고 기다리며 공식합니다. 음식을 나눠 먹는 결속이 마을을 이루고 국가를 형성시킬 수 있었던 거지. 저 거대한 매머드를 혼자서는 잡을 수 없어요. 그러나 집단을 이루면 인간보다 몇 배나 큰 동물도 사냥할 수 있어요.
 
  집단주의는 개인을 죽이는 게 아니야. 개인의 힘을 확장시키는 것이야. 개인(의 능력)이 개인 이상을 발휘하기 위해 집단을 형성하는 거라고. 그러나 오늘날의 집단주의는 개인을, 개인의 개성을 죽이잖아.”
 
 
  인류 최초의 요리사, 꼬부랑 할머니, 미토콘드리아 이브
 
  선생의 말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인류 최초의 요리사’, 꼬부랑 할머니로 이어졌다.
 
  “불을 다루는, 부지깽이를 든 여자가 바로 인류 최초의 요리사입니다. 남자들은 보통 사냥을 나가잖아요. 사냥해온 짐승을 누가 요리해요? 여자는 애 낳고 키우면서 자연히 집에 있게 되잖아요.
 
  헤겔은 ‘최초의 전사(남성)’가 역사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 아니야. 최초의 역사를 만든 이는 싸움꾼이 아니라 ‘이야기꾼’입니다. 그 이야기 속 가장 큰 상징이 부지깽이를 든 여성입니다. 그게 우리나라에 오면 꼬부랑 할머니죠.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아닙니다. 영화 〈쥬라기 공원〉처럼 DNA를 복제해 공룡을 만들듯 ‘인류 유전학’에서 미토콘드리아 DNA 변이를 거슬러 올라갈 때 상정할 수 있는 인류 최초의 모계 공통 조상을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l Eve)’라고 부르잖아요.
 
  그게 바로 다름 아닌 꼬부랑 할머니여.”
 
  ― ‘최초의 역사를 만든 이는 싸움꾼이 아니라 이야기꾼’이라고 했는데 풀어서 설명해주세요.
 
  “개인이든 집단이든 파이어 플레이스(fire place) 곁에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익혀 먹게 됩니다.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상상력의 꽃을 피우는 거야. 바로 그 자리에서 ‘스토리텔러’로서의 인류가 시작하는 겁니다. 그게 호모 나란스(Homo Narrans), 이야기꾼이야.”
 
  라틴어 ‘나란스’는 영어로 내러티브(narrative), 즉 허구 또는 실제 사건들의 연속된 이야기를 말한다.
 
  “지식과 지혜가 있다고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르고,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안다고 해서 ‘호모 파베르’라고 불러요.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 호모 아카데미쿠스(공부하는 인간), 호모 쿨투라(문화적 인간),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적 인간) 등 인간의 학명(學名)이 수백 가지나 됩니다. 다 하위 개념이야. 상위 개념은 딱 하나입니다. 바로 호모 나란스!”
 
  ― 왜 그런가요.
 
  “‘인지 혁명’으로 인간만이 ‘창조적 상상’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만이 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밤하늘을 바라보며 무수한 별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거짓말과 허구, 상상의 세계를 원숭이나 침팬지가 꾸며낼 순 없었어요. 호모 나란스는 ‘호모 작대기’ ‘호모 부지깽이’ ‘호모 젓가락’으로 연결됩니다.”
 
 
 
일꾼보다 이야기꾼!

 
  선생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네발짐승이 두 발로 일어섰을 때를 상상해보세요. 저 멀리 땅끝 지평선이 보였을 것이고 하늘이 보였을 겁니다. 밤하늘, 수많은 별이 눈동자에 추락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거야.
 
  직립보행 하는 인간의 눈에 그제야 대자연의 넓고 큰 땅[大地]이 들어오고 잠재된 상상력이, 신화(神話)의 세계가 분출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선생은 초대 문화부 장관(재임 1989년 12월~91년 12월) 시절을 떠올렸다.
 
  “클래식 발레의 ‘육법전서’라는 소련 볼쇼이 발레단이 방한했어요. 그들 앞에서 이런 환영사를 했습니다.
 
  ‘인간 역사 가운데 가장 가슴 설레고 가장 놀라운 이벤트 두 가지가 무엇이겠느냐. 바로 두 발로 딛고서 땅끝을 처음 보았을 때가 아니었을까. 그제야 하늘의 별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두 발로 선 인간이 높이 솟구쳐 오르려 할 때가 아니었을까. 시몬 베유(Simone Weil)가 말하는, 아래로 떨어지는 중력의 비극(悲劇)에 맞서 끝없이 위로 올라가려 하는 인간의 상승 욕구와 같다. 하늘로 솟구치려는 고양(高揚)! 고양! 날개 없이 횃불처럼 솟구치려는, 높이 뛰는 자가 바로 당신들’이라고 하니 발레단 단장이 흥분해서 나를 5분 동안이나 껴안았어. 하하하.”
 
  선생의 회고를 듣자니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일꾼’을 대단히 여기지만 일꾼보다 이야기꾼이야.”
 
  ― 왜 그런가요.
 
  “사냥꾼보다 사냥한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더 대단해. 왜? 수렵은 짐승도 하니까. 하지만 이야기꾼은 짐승을 잡고서 ‘야, 이놈 뛰어가는데 잡으려다 죽을 뻔했어’라고 허풍을 보태면서 경험담을 늘어놓을 수 있잖아. 그러니 일꾼보다 이야기꾼이 먼저가 아니겠어? 그게 바로 문화고 ‘세미오시스(Semiosis)’라고 부르는 상징이지.”
 
 
  꼬부랑 할머니의 지팡이와 세미오시스
 
  기호학자인 선생은 세미오시스라고 부르는 언어와 기호의 상징체계를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기존의 피시스(Physis·자연계)와 노모스(Nomos·법과 제도)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상징계를 통해 풀이해온 것이다.
 
  “내가 안데르센 동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자주 하잖아요. 차가운 길바닥에서 얼어 죽은 소녀의 얼굴에 왜 ‘미소’가 가득했을까요?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추운 겨울(피시스), 비정한 도시 문명(노모스)의 시각에선 그 ‘미소’를 해석할 수 없어요. 오직 상징(세미오시스)으로만 이해할 수 있어요.
 
  그 상징이 일종의 픽션(fiction)의 세계입니다. 어원인 라틴어 ‘픽티오(fictio)’는 꾸며내거나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현실이라는 뜻인데 바로 꼬부랑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은유와 상징으로서의 작대기, 부지깽이 이야기가 절묘하게도 꼬부랑 할머니 이야기로 연결되었다. 선생의 시각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부지깽이와 작대기가 꼬부랑 할머니 지팡이의 상징인 겁니다.
 
  서양에서는 인류 역사를 대개 이항(二項) 대립으로 보잖아요. 남자 대(對) 여자, 지배 대 피지배자, 주인과 노예라는 식으로 말이죠. 대개 ‘노모스’와 ‘피시스’의 관점에서 대립과 전쟁을 변증법으로 정리한 거야.
 
  그러나 세미오시스의 눈으로 전쟁과 요리의 기원을 더듬다 보면 부지깽이와 작대기로 연결됩니다. 어때요, 기가 막힌 상징 아니에요? 하하하.”
 
  ― 아무도 선생님처럼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작대기는 곤봉을 든 전사들이고 남성 원리가 지배하지. 결과적으로 전쟁과 폭력을 의미합니다.
 
  반면 부지깽이는 요리사들이고 여성 원리를 담지. 전쟁과 평화의 상징입니다. 남자는 생명을 죽이고 여자는 생명을 낳아요. 생명을 기르는 어머니의 젖이 요리입니다. 하늘이 주신 요리여. 아이가 젖을 떼면 그때부터 엄마의 요리를 먹어요.”
 
 
 
부젓가락, 젓가락의 등장

 
2015년 ‘청주 젓가락 페스티벌’ 당시 이승훈 청주시장과 이어령 선생. 선생은 당시 ‘한·중·일 동아시아문화도시’ 국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명예위원장을 맡았었다. 사진=조선일보DB
  잠시 숨을 돌린 선생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최초의 요리사, 최초의 전사가 우리의 여자고 남자가 되는 겁니다. 바로 인류의 조상인 꼬부랑 할머니인 셈이죠. 부지깽이와 작대기는 자연 그대로 꼬부랑 할머니의 지팡이지요.”
 
  ― 불의 이용과 화식, 뇌의 질적 변화, 부지깽이가 다 연결이 돼 있네요.
 
  “불을 이용해 요리하려면 부지깽이가 반드시 필요하죠. 그런데 두 개가 있어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어요. 이렇게 등장한 것이 부젓가락이고 젓가락이 된 것입니다. 젓가락은 하드웨어 개념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념이죠.”
 
  젓가락 기원을 따라가면 처음부터 음식을 먹는 도구로만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의 분석처럼 젓가락은 불씨를 옮기는 부젓가락의 운명을 타고났다가 점점 요리할 때, 또는 식사할 때, 아니면 두 경우 모두에 쓰였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가정에는 요리용 (긴) 젓가락이 있다. 뜨거운 음식을 옮기고 뒤집거나, 혹은 달걀 같은 액체를 저을 때 젓가락이 쓰인다.
 
  선생은 불을 이용하기 위해 부지깽이와 부젓가락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브레이크가 없으면 자동차가 존재할 수 있나요? 멈출 수 있어야 출발할 수 있지. 같은 이유로 불을 끌 수 있어야 불을 이용할 수 있어요. 끌 수 있는 도구가 부지깽이고 부젓가락입니다.
 
  인류의 발명품은 대개 네거티브를 통해 증명할 수 있어야 해요. 불을 켜는 만큼 끄는 역할이 중요하죠. 발화(發火)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욕망을 이해하려면 섹스를 참을 줄 알아야 하죠. 욕망만으로 섹스가 존재할 수 있겠어요? 성적 억압과 금기의 역사도 존재하잖아.
 
  너무 한 방향으로 죄다 보면 독재가 되고, 금욕이 되고,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가 되는 겁니다. 자동차를 발명한 이유는 움직이기 위해 만든 것이지 정지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니까요.
 
  문명의 시작은 항상 리스크(위험)를 각오하고 앞으로 나가는 거잖아요. (자동차의) 브레이크 장치가 약간 서툴지만 한번 가보는 거야. 이런 불안과 긴장이 사회를 만드는 겁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한국에 온다면…
 
  ― 역설이네요.
 
  “역설이죠. 움직이게 하려면 그 반동력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 필요해. 이것이 바로 문명을 만드는 슬기고 지혜인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왜 두려우냐. 제어가 안 되기 때문이지. 불이 귀하지만 끌 줄 몰라봐요. (불을) 옮길 줄 모르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부지깽이가 필요하다고요. 끄고 불붙이고 옮기고… 컨트롤(관리)할 수 있는 도구가 부지깽이인 거지.”
 
  심각했던 얼굴을 푼 선생은 열두 고개를 넘듯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인류 모계 공통 조상인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살아 돌아왔다고 칩시다. 아니면, 진화론적 관점에서 나무 못 타는 원숭이, 사바나 초원의 벌거숭이(원숭이), 그러니까 최초로 불을 쓰기 시작한 인류의 조상이 지금 한국에 왔다고 칩시다.”
 
  그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바로 ‘꼬부랑 할머니’란 사실을 《월간조선》 독자들이라면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조상이 한국의 어디를 가겠어요? 서울의 고층 건물과 수많은 자동차 사이에서 길을 잃을 겁니다. 사람들마다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고 그 쓰임새를 눈치챌 수 있을까요? 짐작조차 못 할 겁니다.
 
  옷 입고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보고서 무슨 이런 세상이 있나 할 테고 물이 채워진 변기를 보고는 신식 대야라 생각하고 세수를 할 수도 있어요. 비데 물줄기라도 경험하게 되면 혼비백산 소스라치지 않을까요.”
 
  선생은 말을 긴장감 있게 몰고 가면서도 기발한 비유로 미소를 끌어낼 줄 안다.
 
  “거의 유일하게 한눈에 용도를 알아보고 당장이라도 익숙하게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부지깽이입니다.
 
  우리의 꼬부랑 할머니는 서울을 벗어나 시골 초가집 부뚜막에 가지 않겠어요? 그 부뚜막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불을 피우곤 부지깽이를 손에 쥐지 않겠어요? 이글이글 타는 불길을 바라보며 350만 년 전처럼 환하게 웃지 않겠어요? 김 기자! 경이롭지 않아요?”
 
 
  생명의 작대기에서 젓가락이 나와
 
지난 1996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전라북도 참가팀이 ‘익산 지게목발놀이’를 공연하고 있다.
  인간이 도구(무기)를 이용해 집단 내 경쟁자나 맹수를 제거한다는 가정은 뇌의 발달을 전제한다. 화식으로 말미암아 뇌가 커지면서 의식적으로 ‘살인 무기’를 사용하려는 저열한 동기(動機)들이 생겨났을 것으로 짐작한다.
 
  “인간이 작대기를 가지면 대개 폭력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어요. 사람(짐승)을 때리거나 싸워서 심지어 죽일 수 있는 무기인 셈이죠. 인류의 조상 때부터 작대기(곤봉, 방망이, 몽둥이)는 동물을 위협하거나 쫓아내기 위해 사용되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대기를 평화롭게 쓴 것이 한국인과 아시아 문화권입니다.”
 
  ―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빨랫방망이를 생각해보세요. 원 없이 두들겨도 그게 누굴 해치거나 무언가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빨래를 더 깨끗하게 만들잖아요. 다듬이는 어떤가요. 구겨진 옷을 말끔히 펴는 데에 쓰이잖아요. 이 작대기로 죽은(더러운) 옷을 다시 살립니다.”
 
  선생은 “작대기는 파괴하고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살리고 돌려놓는 ‘생명’의 도구”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똑같은 작대기로 남들은 죽이고 폭력을 휘두르는데 그것으로 빨래를 빨고 다듬고 작은 것으로 만들어 식사를 해온 겁니다. 젓가락의 발명은 대단한 것이고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죠.
 
  그렇지만 한국인은 이상적 평화주의자는 아니야. 전쟁 위협을 느끼면 남자는 작대기를 들고 용감한 전사로 돌변하지. 부엌에서 음식 하던 여자는 부지깽이를 들고 뛰어나오는 겁니다.”
 
  선생은 작대기의 다른 예로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서 전해져 오는 ‘익산(益山) 목발노래’를 이야기했다. 목발노래란 지게 작대기로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는 노동요(勞動謠). 나무로 된 두 개의 지게 다리를 일컬어 목발이라 부른다.
 
  “‘익산 목발노래’는 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 혹은 나뭇짐 지고 신바람이 날 때 지게 목발을 작대기로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등짐이 무거울 때, 가벼울 때, 빈 지게로 나갈 때 등 상황에 따라 곡조의 장단이 다 달라요.
 
  인생사의 회포를 풀 때는 긴육자배기 가락으로, 신명 나게 부를 때는 엇모리장단, 흥을 돋울 때는 시나위 조의 굿거리장단으로 부릅니다. 심지어 패랭이에다 계화를 꽂고서 매호래기춤을 추며 고된 노동을 잊었어.
 
  작대기로 노래 장단을 맞추는 것이 처음엔 우연히 시작됐을지라도 노동에 생기를 불어넣은 ‘생명’의 악기가 된 겁니다.
 
  시골 부뚜막의 부지깽이에 인류의 원형이 남아 있다면 우리 농촌의 지게 작대기가 그 원형인 것이죠. 이것이 바로 문화고, 한국의 지게 문화인 거지. 무궁무진한 거여.”⊙
 
韓中日 젓가락 비교論
 
  술 먹고 신나면 젓가락 두드리는 나라, 한국
 
충북 청주시가 지역 작가 등을 통해 개발한 분디나무 젓가락. 사진=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다음은 이어령 선생의 한중일 3국의 젓가락 비교론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중일 3국의 젓가락 중 제일 짧은 것이 일본 젓가락이고 제일 긴 것은 중국 젓가락이다. 한국 젓가락은 두 나라의 중간 길이다. 젓가락 끝부분의 굵기도 세 나라의 것이 다 다르다. 일본의 것이 제일 뾰족하고, 중국의 것이 가장 뭉툭하다. 이번에도 한국의 젓가락은 일본과 중국 젓가락의 중간 정도 굵기다. 참 절묘하지 않나? 대륙인 중국과 열도인 일본 사이에 한국 반도가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젓가락 또한 길이와 굵기 모두 중국과 일본의 중간이다.
 
  우리의 젓가락은 적당히 길고 적당히 뾰족하다. 우리는 젓가락만 단독으로 얘기할 수 없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합쳐 ‘수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항상 같이 다닌다. 젓가락과 숟가락은 완전한 한 쌍으로, 밥은 숟가락, 반찬은 젓가락을 이용해서 먹는다. 신라 시대 때 청동의 젓가락과 숟가락을 처음 쓰기 시작한 이후 은, 백동, 놋쇠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현재는 은이나 스테인리스제가 많다.
 
  여성들은 시집을 갈 때 부부용 ‘은수저’ 2벌을 가지고 간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 친가에서 손자의 이름을 새긴 작은 은수저를 보내준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 술 먹고 신가락 나면 젓가락 두드린다. 세계 많은 곳을 돌아다녀 봐도 내 경험상 젓가락 두드리며 장단 맞추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게 신가락에서 나온 거다. 노랫가락이라고도 한다. 눈으로 보는 ‘젓+가락’을 두드리니 귀로 듣는 ‘노래+가락’이 된다. 그리고 귀로 듣는 가락은 다시 마음을 움직이는 ‘신가락’이 된다.
 
  일본의 젓가락은 전나무를 많이 사용한다. 딱딱한 나무는 치아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부드러운 목재를 사용한 게다. 또한 젓가락의 시초는 대나무 가지를, 이쑤시개로는 버드나무 가지를 사용했다는 것이 통설처럼 전해져 오고 있다.
 
  중국 젓가락은 뭉툭하고 길다. 중국 젓가락은 크게 분류하자면 화저(火箸), 채저(菜箸), 식저(食箸) 등 3가지 종류가 있다. 화저는 불을 집는 젓가락이고 요리하는 요리 젓가락은 채저, 먹을 때는 식저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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