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체험

두 달간의 채식 도전기

극단적 채식주의자, 비건으로 살아보니…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일체의 육류와 유제품, 달걀 먹지 않는 극단적 채식주의자, 비건(Vegan)
⊙ 20대 사이에 트렌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채식주의
⊙ 채식주의에서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로
⊙ 채식 세계에서의 논란, ‘굴’은 고통을 느낄까?
서울 곳곳에 다양한 채식 식당이 영업 중이다. 사진은 서울 상수동에 있는 ‘슬런치 팩토리’. 사진=조선DB
  발단은 넷플릭스(Netflix)였다. 매달 내는 요금의 본전을 뽑아보겠다고 ‘뭐 또 볼 거 없나’ 하이에나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참이었다. 눈에 띄는 제목을 만났다.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What the health)’. 음식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제목처럼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참혹하다시피 했다. 크게 세 가지 주장이 담겨 있다.
 
  첫째, 우유나 달걀 같은 유제품(乳製品)을 포함한 육류(肉類)가 얼마나 인간의 건강을 망칠 수 있는가.
 

  킵 앤더슨(Kip Andersen) 감독과 키건 쿤(Keegan Kuhn) 감독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의사와 학자, 암 관련 단체들을 찾아간다. 이들은 특히 가공육을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했다. 하루 50g의 가공육을 매일 섭취하면 대장암 발병률이 18% 증가한다는 연구자료도 제시한다. 당뇨병 원인이 당분이 아니라 육류라는 주장도 나온다. 유제품과 육류를 끊었더니 다시 건강해진 만성질환 환자들도 등장한다.
 
  둘째, 낙농업협회나 육류가공협회는 육류의 해로움을 감추고 있다고 제작진은 주장한다. 이들 단체가 암환우협회나 당뇨환우협회를 후원하는 방식으로 육류 섭취의 해로움을 교묘히 숨긴다는 얘기다.
 
  셋째, 다큐멘터리는 소, 돼지, 닭 등을 키우고 도살하는 과정을 고발한다. 상당히 비위생적이고 비윤리적이란 주장이다. 다큐멘터리는 내부고발자에게서 입수한 화면이라며 도살장 내부를 보여준다. 도축작업 도중 돼지 목 부위에 맺혀 있던 고름이 터지는 장면도 나온다.
 
 
  채식하면 모든 병 낫는다?
 
  다큐멘터리를 본 후 큰 충격에 빠졌다. 육류, 특히 우유의 해악이 그 정도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발표 당시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 비판도 많이 받았다.
 
  사실 식단에 관한 연구 결과는 상당히 다양하다. 해석도 복잡하다. 예를 들면 언제는 커피가 몸에 좋다고 했다가, 언제는 해롭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상반되는 연구 결과가 보도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이 두 다큐멘터리 감독은 의도와 맞아떨어지는 몇몇 연구 결과만 골라 소개했다. 유제품을 끊고 만성질환이 나아졌다는 사례를 소개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병이 나았는지는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 식이라면 채식(菜食) 식단을 엄격히 고수하는 스님들은 모두 성인병(成人病)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공정함을 위해서는 육식(肉食)을 옹호하는 주장도 함께 소개했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선명성은 떨어졌을 터. 다소 신뢰성이 떨어지는 주장들이 담겨 있긴 했지만, 채식을 시작해볼 동기로는 충분했다.
 
 
  닭의 자연 수명은 10년
 
육류 섭취의 해악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2017).
  기자는 흔한 ‘육식주의자’였다. 뭔가 맛있는 걸 먹는다고 하면 당연히 육류 메뉴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한편으로 내면엔 이런 식으론 힘들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와닿은 대목은 비위생적이고, 비윤리적인 생육환경이었다. 이전부터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닭이 그렇다. 닭의 자연 수명은 10년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치킨’으로 먹는 닭의 경우 보통 부화(孵化)한 지 한두 달 된 육계(肉鷄)다. 달걀을 낳는 산란계(産卵鷄)는 좀 더 오래 살 수 있지만 상당히 갑갑한 ‘업무 환경’이 기다린다. 부화한 지 넉 달 후부터 알을 낳기 시작한다. 양계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선반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깜박깜박거리는 전구 아래에서 꼼짝도 못 하고 알만 낳는 게 보통이다. 전구를 이용해 하루에 밤낮이 두 번씩 바뀌게 하는 경우도 있다. 알을 두 번 낳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2년여를 살다가 죽는다.
 
  치킨을 베어 물면서 ‘인간이 닭이라는 종(種) 자체를 퇴화시킨 게 아닐까’ 생각했다. 평소 ‘동물권(動物權)’을 강하게 주장하는 편은 아니었다. 한번 생육환경에 신경 쓰이니 또 계속 생각이 났다. ‘동물복지’라는 수식어가 붙은 달걀을 사는 걸로 죄책감이랄까 불편한 감정을 달래왔다. ‘이렇게 된 거 이번 기회에 당장 채식을 시작해보자.’ 그 다음 날인 2020년 9월 5일, 전격적으로 채식을 시작했다.
 
  채식을 시작하고 가장 놀란 것은, 거리에 육식 메뉴를 파는 식당이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삼겹살, 치킨, 곱창, 순대 등 거리는 고기를 못 먹어 한(恨)이 맺힌 사람들이 사는 곳 같았다. 채식을 하기로 했지만 밖에서는 사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에서 요리해 먹기로 하고 짜장가루를 샀다. 야채 짜장을 만들어 먹겠노라 야심차게 가스불을 켰다. 짜장이 완성된 후 맛을 보다 놀랐다. 왜 고기 맛이 나지? 알고 보니 짜장가루에 ‘우지(牛脂)’, 즉 소의 지방이 들어 있었다. 이때부터 가공식품 살 때는 성분표를 유심히 보게 됐다.
 
  채식 식당이 어디 있는지 조사했다. 패스트푸드 중엔 서브웨이 ‘얼터밋 썹’과 롯데리아 ‘미라클버거’에 콩으로 만든 ‘콩고기’를 넣었다. 특히 얼터밋 썹은 맛도 나쁘지 않아 꽤 여러 번 먹었다. 서브웨이는 채식 전용 빵도 여러 가지 갖추고 있다. 우유와 버터를 넣지 않은 빵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채식주의자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일체의 육류와 생선, 유제품을 먹지 않는 이들은 비건(Vegan)이다. 비건은 가죽 옷, 오리털 점퍼 등 동물성 용품을 새로 들이는 것도 되도록 자제한다.
 
  오보(Ovo)는 채식에 달걀까진 허용한다. 락토(Lacto)는 우유 등 유제품은 먹는다. 락토오보(Lacto Ovo)는 채소, 달걀, 유제품은 먹는 채식주의자다.
 
  페스코(Pesco)는 유제품, 달걀, 어류까지 섭취하는 채식주의자다. 폴로(Pollo)는 여기에 닭고기, 오리고기 등 조류까지 먹는 이들이다.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은 평소에는 비건인데, 상황에 따라 고기도 먹는 이들이다. 기자가 시도한 것은 가장 엄격한 단계인 비건이었다.
 
 
  채식 성지, 인사동과 신촌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한과채’에선 다양한 채식 요리를 뷔페식으로 먹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채소류를 먹으려 했지만 문제는 외부에서 식사할 때였다. 취재원과 식사 약속을 잡을 때 가장 고심이 됐다. 그러다 ‘채식한끼’라는 휴대전화 앱을 알게 됐다. 꽤 유용했다. 각지의 채식 식당을 알려준다. 덕분에 괜찮은 채식 식당을 알게 됐다.
 
  서울이라면 채식 성지(聖地)는 인사동과 신촌 일대다. 인사동에는 조계사가 있기 때문이다. 사찰 음식이 곧 엄격한 채식 아닌가. 인사동의 채식 뷔페 ‘한과채’는 오래된 채식 성지다. 조계사 맞은편에는 서울중앙교회가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소속 교회다. 채식이 교리인 교단이다. 교회 지하에 채식 뷔페 ‘만채우’가 있다. 점심식사로 좋은 선택지다.
 

  신촌 일대에는 꽤 여러 군데 채식 식당이 있다. 특히 이화여대 앞에 많다. 채식 식당 주인들의 추정에 의하면 비건 중에 여성 비중이 높은 것 같다고. 이대 앞의 ‘위샐러듀’는 지중해식 가정식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비건과 논비건 메뉴가 모두 갖춰져 있어 채식주의자가 아닌 지인과 가기 좋다. 손님 중에는 비건 비중이 꽤 높다고 한다. ‘베가니끄’는 채식 베이커리다. 우유와 버터를 넣지 않은 맛있는 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
 
  채식 식당에 가보면 손님 중 대부분이 20대라는 점에 놀란다. 일체의 동물성을 배제하는 비건이 20대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젊은 채식주의자들의 소셜네트워크(SNS) 모임에선 하루 종일 대화가 오간다. 정보 교류부터 울(Wool) 소재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까지,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이들 특징은 대부분 건강에 대한 염려가 아닌 동물과 환경을 생각하는 동기에서 채식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채식을 넘어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확장된다. 제로웨이스트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불필요한 포장을 줄여 쓰레기 없는 삶을 추구하는 친환경적 삶 방식을 말한다.
 
  서울 남산 인근에 있는 카페 모리나리(Molinali)에선 채식 피자와 채식 파스타를 만날 수 있다. 메뉴를 개발한 한상훈 셰프의 말이다.
 
  “채식 손님의 비중이 이제는 30~40% 수준으로 올라갔어요. 비건인지 아닌지 손님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알 수 있습니다. 채식하는 분들은 꼭 보관 용기를 들고 와요. 음식이 남으면 깨끗이 포장해가시더군요.”
 
 
  살이 빠졌다!
 
  놀라운 점은 생각보다 고기가 그립지 않다는 점이다. 채식한 지 두 달 된 시점까지도 고기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동안 몸 안에 고기가 너무 많이 쌓여 있었나 보다 농담할 정도였다. 주변에 채식 식당이 많아진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예전엔 채식 식당이 그다지 없어서 한국에서 채식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제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꽤 많은 채식 식당이 생겨났다. 종류도 다양하다. 중화요리, 파스타 등 왠만한 음식은 거의 다 채식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다.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 어울리는 채식 식당도 있다. 인사동의 ‘발우공양’, 서초동의 ‘천년식향’이다. 멋진 코스의 파인다이닝을 채식으로 만날 수 있다.
 
  채식을 해보니 좋은 점은 명확했다. 일단 속이 편했다. 희한한 게 채식 식단은 조금 과식을 해도 속이 부대끼지 않았다. 저녁 늦게 먹어도 자면서 속이 불편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가장 궁금해한 것인데, 살도 분명히 빠졌다. 이건 채식 효과라기보다 디저트를 좀처럼 먹지 못한 탓인 듯하다. 대개의 카페에서 파는 음료수와 빵 종류엔 우유나 버터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과자나 라면,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다. 성분을 자세히 보면 동물성 성분이 어떤 식으로든 들어 있다. 이런 식품만 자제했을 뿐인데 살이 자연스럽게 빠졌다.
 
  시간이 절약되기도 했다. 먹는 것에 대한 흥미가 없어졌다고 할까. ‘오늘은 뭘 먹어볼까’ 맛집을 검색하고 음식에 몰두하는 시간이 절약됐다. 정보 확보차 채식 식당을 찾아다니긴 했다. 마트에서 파는 음식의 경우 애초에 먹지 못하는 것 투성이니 그만큼 먹는 즐거움이 인생에서 빠진 것이기도 하다.
 
 
  “채식주의자는 대통령은 못 될 것 같아”
 
  어려움은 역시 주변 반응이었다. 이런 식이다. 지인(知人) 집에 초대받아 가보니 고기를 듬뿍 넣은 짜장면이 주메뉴였다. 분명히 채식하고 있다고 말했는데도 말이다. 설마 진짜 채식하리라곤 생각지 못한 것 같다. 정중히 주메뉴를 거절하고 다른 음식을 먹고 있으니 초대한 지인은 무척 섭섭해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채식주의자는 대통령은 못 될 것 같아.”
 
  태어나서 지금까지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건만, 채식하는 ‘죄’로 이렇다 할 반박을 하지 못했다.
 
  채식하는 것을 ‘좋은 시도’라 평하면서, 평생 엄격하게 채식을 지켰는데 최근 암 말기 진단을 받은 지인의 얘기를 들려준 선배도 있었다. 격려하는 건지, 경고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대뜸 충고를 한 지인도 있었다. ‘자꾸 뭘 이기려 하지 마라.’ 생각해보면 얼마쯤은 맞는 말이었다. 기존 생활태도에 반하는 규칙을 정해 지킴으로써 내면의 뭔가를 이기려는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
 
  ‘당신 앞에선 치킨도 제대로 못 먹겠군요’ 하며 극단적인 반감을 표하는 이도 있었다.
 
 
  “공장형 축산이 있어야 대중도 고기 먹어”
 
서울 이화여대 앞에 있는 ‘위샐러듀’에서는 지중해 가정식 ‘마끌루바’를 채식 메뉴로 만날 수 있다.
  채식을 하면서 몸이 점점 가벼워지게 되니 사람 만날 때면 전도를 열심히 하게 됐다. 대체로 뜨악한 반응 속에서 조금이라도 귀기울여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채식 자랑을 늘어놨다.
 
  ‘동물권’에 대한 좀 다른 의견을 듣기도 했다. 동양철학자 임건순씨를 만나 예의 채식의 장점을 설파할 때였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공장형 축산이 있어야 대중도 고기를 먹을 수 있어요. 석공이던 제 아버지는 소주 한 잔과 돼지 비계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셨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도 덧붙였다.
 
  “예전에 노동운동할 때 하루 일을 마치고 슬레이트판에 구운 삼겹살과 소주를 마시곤 했습니다. 그걸 먹어야 피로를 이기고 잘 수 있었어요.”
 
  공장형 축산 제도 덕에 저렴한 가격에 육류가 공급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야기는 급기야 전(前) 정부의 담뱃값 인상으로까지 이어졌다. 담배야 그렇다 치고, 공장형 축산에 대한 이들의 시각엔 반박하기 힘들었다. 모든 종류의 공장형 축산 행태를 빠른 시일 내에 없애자는 주장보다는 단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식주의자라는 걸 공개한 연예인들이 있다. 가수 이효리가 대표적이다. 배우 이하늬는 채식주의자였다가 전향한 경우다. 이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효리가 방송에 출연해 짜장면을 먹은 적이 있다. ‘짜장면에 동물성 성분 들어간 거 아니냐’는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기자는 지인들과 함께 식사한 다음 날 전화를 받았다. 글쎄 이런 얘길 들었다.
 
  “어제 함께 먹은 파전에 달걀이 들어간 걸 아느냐?”
 
  채식주의자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그토록 공고하다는 걸 실감했다.
 
  ‘굴’의 철학적 위치를 재발견하기도 했다. 《실천윤리학》을 쓴 철학자 피터 싱어는 “고통을 느낀다면 그 존재는 도덕적으로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나 돼지는 명백히 고통을 느끼는 신경체계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싱어의 논리에 따르면 인간이 소와 돼지를 먹는 것은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나무의 경우 도끼로 가지를 베었을 때 고통을 느낀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 그러므로 안전하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이 굴이다. 싱어는 저서 《동물해방》에서 굴은 고통을 느낀다는 증거가 없다고 봤다. 새우는 고통을 느낀다고 판단했다. ‘새우와 굴 사이가 의식적 존재와 무의식적 존재를 가르는 경계선’이라고 주장한 이유다. 이런 이유로 비건 중엔 굴을 먹는 이들도 있다.
 
  채식 5주 차쯤 어느 저녁, 굴 파는 식당을 가게 됐다. ‘싱어적 세계관’에 근거해 굴을 먹겠다고 설명했다. 일행의 상당한 비웃음을 샀다. 이때다 싶었는지,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며 줄기가 잘려 괴로워하는 식물을 온몸으로 흉내내는 이도 있었다. 그 근거를 묻자, 예전에 TV 프로그램 〈호기심 천국〉에서 본 내용이라고 했다. 싱어적 세계관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 같다. 비난을 각오하고 하필 굴에 집착한 이유가 있긴 했다. 굴에는 단백질이 10.5%가량 들어 있다. 우유의 3배다. 게다가 흡수가 잘 되는 형태로 단백질이 들어 있다. ‘바다의 우유’라는 별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준비 없는 채식은 금물
 
채식 피자와 채식 파스타를 파는 카페 ‘모리나리’.
  채식 7주 차, 여전히 고기나 유제품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5주 차까지는 몸 상태가 상당히 좋았다면 6주 차부터는 서서히 변화를 느꼈다. 7주 차 즈음엔 하루 종일 피로감이 너무 심했다. 단백질 결핍도 의심됐다. 손톱이 평소보다 현저히 느리게 자라고 몸에 힘이 없는 것 같았다. 의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콩으로 만든 음식을 좀더 챙겨 먹으라는 답이 돌아왔다. 두유와 두부를 틈 나는 대로 챙겨 먹었지만 좀처럼 나아지는 게 체감되지 않았다.
 
  결국 8주 차에 채식을 일단 그만두기로 했다. 문제는 여전했다. 이제는 고기 먹기가 힘들어졌다. 8주 만에 체질이 이 정도로 변할 수 있다니.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같은 우스갯소리를 신봉했던 과거는 어디 가고, 억지로 고기 메뉴를 상대해야 할 지경이었다.
 
  운동강사인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소화가 잘 되게 부드럽게 조리한 메뉴를 고르라’는 조언에 따라 돼지고기 수육을 시도했다.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지만 억지로 몇 점을 먹었다. 냄새뿐 아니라 치아에 고기 닿는 느낌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결국 얼마 후 모두 게워냈다.
 
  이쯤 되니 이대로 고기를 못 먹는 인간이 될까 두려울 정도였다. 일주일 후 이번엔 닭고기를 시도했다. 다행히 먹는 동안에도 먹고 난 후에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이후 시간을 두고 차츰 오리고기, 소고기로 식단을 늘려갔다. 돼지고기는 채식을 끝내고 한 달이 지난 후 시도했다. 대한한돈협회엔 죄송하게도 여전히 먹기 힘들었다. 채식을 끝낸 지 5주가 지난 12월 중순 현재까지도 고기에 대한 흥미는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서서히 채식 시도해야
 
  두 달간의 비건 도전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충분한 공부 없이 채식에 도전한 점이 아쉬웠다. 만약 채식에 도전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어떤 음식을 통해 단백질과 철분을 보충할 수 있는지 사전에 알아보고, 천천히 식단에서 육류와 유제품을 빼는 식으로 비건에 도전하면 어떨까. 느닷없는 채식 결단은 몸에 무리를 줄 수 있다.
 
  기자는 육류를 완전히 끊는 비건은 힘들 것 같다. 영양 문제도 그렇지만, 식사 약속 자리가 아무래도 내내 걸림돌이었다. 사찰 음식점을 애용했지만, ‘정말 맛없다’는 한 취재원의 한숨 섞인 독백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채식 지향으로 살되, 상황에 따라 육류도 먹는 플렉시테리언으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치는 모든 동물과 식물에게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두 달간의 비건 여정(旅程)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3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