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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풍수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글 : 김두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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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청된 북한의 황병서(인민군 총정치국장)의 8대조는 풍수에 밝았던 호남 실학자 황윤석
⊙ 북한, 풍수를 ‘미신’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김씨 일가의 우상화에 백두산주산론(主山論), 인걸지령론(人傑地靈論) 원용(援用)
⊙ “금수산(모란봉)의 생김이 풍수설에서 일등 진혈로 여기는 금거북이 늪에 들어가는 모양인 금구(金龜)머리 형국”(평양방송)
⊙ 대성산 혁명열사릉, 동창리 미사일기지, 영변 핵시설도 풍수 고려한 입지

김두규
1960년생.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독일 뮌스터대 독문학·중국학·사회학 박사 / 전라북도 도시계획심의위원,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역임. 현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 저서 《조선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우리 풍수 이야기》《풍수학사전》 《풍수강의》 《조선풍수, 일본을 논하다》 《국운풍수》 등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
북한은 ‘금거북이 늪에 들어가는 모양인 금구(金龜)머리 형국’의 명당이라고 주장한다. 사진=뉴시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렸을 때 북한 2인자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남북고위급회담’을 위해 한국에 왔다. 2017년 어느 날 그는 북한의 정치무대에서 사라졌다. 숙청을 당했다는 소문뿐이다.
 
  18세기 호남에 천재 실학자가 있었다. 황윤석이었다. 그는 풍수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많은 풍수인들과 교유하였고 그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런 정성 덕분으로 황윤석 집안은 고창 부근에 호승예불형(胡僧禮佛形·황윤석의 윗대 조상묘들), 정읍에 야자형(也字形·황윤석의 조부와 손자 묘), 순창에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황윤석의 증손자 묘), 화순에 장군대좌형(將軍對坐形·황윤석 묘) 등의 명당을 차지했다. 이 땅들은 풍수술사들의 교과서적인 답사지가 되고 있다.
 
  황병서는 황윤석의 8대손이다. 그가 북한의 2인자가 되었을 때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그것이 명당 덕이라고 했다. 황병서의 아버지 황필구는 고창 출신으로 해방 전 일본 유학 후 원산에서 검사로 근무하던 중 남북분단이 되자 북한에 남았다. 그는 1950년 전쟁 중 남으로 내려와 광주에서 고위간첩으로 암약하다 1959년 체포됐다.
 
전라북도 고창에 있는 황병서의 조상 황윤석의 생가.
  그때 북에 두고 온 아들(황병서)의 나이 10살이었다. 무기수(無期囚)로 수감돼 전향(轉向)을 거부하던 그는 1985년 자살했다. 그의 친형이 황필구의 시신을 수습해 고창 성내면 선영(先塋) 모퉁이에 안장했는데 지금도 찾는 이 없이 초라하게 전해진다. 비록 황병서는 북에서 출생해 북에서 활동하지만, 다른 일가들은 남한에서 잘살고 있다.
 
  황윤석 집안의 풍수관을 연구하여 전북대 사학과에서 학위를 취득한 유기상 박사(전 전북도청 기획관리실장)는 “황병서의 출세는 고창 선영의 명당 덕도 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데에서 알 수 있듯, 북한처럼 사람 목숨을 가벼이 하는 곳에서도 ‘명당발복(明堂發福)’이라는 ‘기제(機制)’가 작동하는지가 지금 유기상 박사가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풍수설은 미신의 한 종류” (북한 《력사사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의 ‘삼지연관현악단’이 강릉과 서울에서 연주를 한다. 악단 이름 ‘삼지연’의 유래가 궁금하다. 왜 ‘삼지연’일까?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풍수를 소개하기로 한다. 70년이 넘는 분단으로 남과 북은 너무 많이 달라졌다. 사람의 체형과 얼굴 모습까지 달라졌다. 역사적으로 풍수는 삼국시대 이후 조선왕조까지 작게는 한 집안에서 크게는 국가의 통치행위에 활용된 술수였다. 해방 이후 분단된 남북한에서 그 수용 모습은 달라졌다. ‘풍수를 통해서 그 국가(혹은 집안)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풍수로 보는 북한은 어떤 나라일까?
 
  북한은 풍수를 다음과 같이 부정한다.
 
  〈봉건시대 집자리와 그 밖의 건물, 무덤자리 등의 자연 지리적 조건을 인간생활의 행복과 운명에 련결시켜 꾸며낸 여러 가지 허황한 설. … 봉건시대에 풍수설은 국가적으로도 공인된 ‘학문’으로 되어 고려 때에 봉건국가는 이에 따라 수많은 절, 궁실 등을 여러 곳에 지었다. 관료지주들도 풍수설에 따라 집이나 무덤자리 등을 잡았다. 이와 관련해서 량반들 사이에서는 좋은 무덤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추악한 싸움이 벌어졌다. … 풍수설은 자연과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부족한 데서 나온 미신의 한 종류였다. 봉건통치배들은 잘살고 못사는 것, 신분적으로 높고 낮은 차이가 사회제도 자체의 모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집자리, 무덤자리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풍수설을 퍼뜨림으로써 하층민들의 계급의식과 투쟁정신을 마비시키려고 하였다.〉 (《력사사전》)
 
  북한의 풍수 비판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의한 풍수 비판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북한에서 편찬한 《조선통사》의 인용문이다.
 
  〈18세기 실학자들은 인식론에 있어서도 인식의 개관적 기초와 인식에서의 경험이 노는(하는) 역할을 강조하였으며 사람은 행동한 후에야 아는 것이 있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은 당시 봉건사회에 퍼지고 있던 풍수설, 무당, 불교 등을 부정하면서 일정하게 무신론적 견해들을 내놓았다.〉 (《조선통사》)
 
  북한에서 풍수는 완전히 사라졌는가? 아니다. 오히려 정권 유지에 더 잘 활용하고 있다.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백두산주산론’과 ‘백두혈통론’
 
  대표적인 것이 ‘백두산주산론(主山論)’에 근거한 ‘백두혈통론’이다. 백두산은 김정은의 출생지이다. 본래 백두산은 한반도와 만주 땅에 걸쳐 있는 민족의 영산(靈山)이자 만주족의 영산이기도 하다. 백두산 이북은 고조선·고구려·발해의 활동무대였고, 이남은 고려와 조선의 활동무대였다. 지금도 남북한 모두 백두산을 한민족의 주산이자 영산으로 상념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백두산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백두산은 혁명의 성산으로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더욱 소중히 간직되어 있다. … 우리 인민은 백두산을 생각할 때마다 …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와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에 대하여 먼저 생각하게 된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
 
  이러한 성산(聖山)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태어났다는 선전은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풍수적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남한 사람들에게조차 그럴듯하게 들린다. 한민족의 ‘백두산주산론’과 그들의 ‘백두혈통론’을 동일시하여 북한 통치에 활용하고 있다. 이번에 강릉과 서울에서 공연을 하는 ‘삼지연관현악단’에 등장하는 ‘삼지연’은 바로 백두산이 있는 군(郡) 명칭이자 북한의 혁명전적지와 김일성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 김정일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백두산을 얼마나 신성시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른바 인걸지령론(人傑地靈論)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한 전통은 김정은에게로도 이어진다. 김정은은 원산 인근에 있는 김정일의 별장 ‘602호 초대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까닭으로 마식령 스키장, 갈마비행장, 금강산-원산 일대 국제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성역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이 남북 팀으로 하여금 마식령스키장에서 공동훈련을 하게 한 것도 앞으로 김정은의 탄생지를 성역화(聖域化)하는 하나의 작업으로 여겨진다.
 
 
  금수산은 평양의 진산(鎭山)
 
  북한은 1990년대 후반부터 ‘대동강문화론’을 주장해 왔다. 대동강 유역, 특히 평양이 세계사적으로 4대(大)문명과 맞먹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동시에 고대 문화의 중심지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고조선·고구려·발해의 활동 중심지가 드넓은 만주 땅이 아니라 평양이 중심지가 된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평양은 우리 민족의 성지가 되며 우리 역사의 정통성은 남한이 아닌 북한에 있게 된다. 대동강문화론의 근거가 풍수설이다.
 
  “예로부터 위인은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태어나는 법이며 … 평양은 산수 수려하여 단군과 같은 성인이 태어날 수 있고 국가가 세워져 도읍할 수 있으며 민족이 기원할 수 있는 최상의 적지”여서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 문명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평양이 단군조선을 낳았듯이 김일성 왕조도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길지 평양에서도 그 핵심 명당에 김일성·김정일 묘가 자리한다고 선전한다.
 
  북한의 풍수 활용은 김일성과 김정일 무덤 입지를 통해 알 수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금수산 모란봉 기슭에 안장됐다. 《동국여지승람》은 금수산을 평양의 진산(鎭山)이라고 적고 있다. 모란봉은 금수산 제일봉으로 마치 모란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풍수상 금수산의 주맥(主脈)에 해당한다.
 
  이곳에 오르면 평양이 한눈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을밀대와 부벽루 등이 금수산 아래 흐르는 대동강과 더불어 천하의 명승을 이루고 있다. 명(明)나라 사신 주지번은 이곳 연광정(練光亭)에 그 기막힌 경치를 보고 ‘천하제일강산(天下第一江山)’이란 현판을 스스로 써서 달았다. 그 현판은 지금까지 전해 온다. 평양의 진산에 집무처를 정하고 사후(死後)에는 그곳에 안장되었다는 것은 평양을 수호하는 신이 되겠다는 의미이다.
 
 
  혁명열사릉이 있는 대성산도 명산
 
북한의 국립묘지 격인 혁명열사릉이 있는 대성산도 명산이다. 사진=조선DB
  생전에 김일성이 “평양의 명당 핵심 자리는 바로 인민대학습당터”라고 언급한 데서 알 수 있듯 풍수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또한 김일성 사후 그가 안장된 곳을 북한 평양방송은 “금수산(모란봉)의 생김이 풍수설에서 일등 진혈로 여기는 금거북이 늪에 들어가는 모양인 금구(金龜)머리 형국이다”(1999년 4월 6일)라고 하였다.
 
  왜 그들은 풍수상 길지(吉地)에 집착하는가? 중국 성리학의 대가 주자(朱子)와 정자(程子)는 풍수지리에도 깊은 조예가 있어 각각 《산릉의장(山陵議狀)》과 《장설(葬說)》을 남겼다. 조선 왕실뿐만 아니라 사대부들이 이를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터 잡기에 참고하던 글이다.
 
  이들 주장의 핵심 내용은 ‘좋은 땅에 조상을 안장하면 그 조상의 영혼이 편안할 것이며 그 자손이 번성할 것인데 이는 마치 나무의 뿌리를 북돋워 주면 줄기와 잎들이 무성해지는 이치와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길지를 찾는 이유는 ‘자손 번영의 구원지계(久遠之計)’였다. 과거 봉건왕조에서 풍수가 유행했던 이유이다. 김일성도 풍수를 통해 후손의 영원한 집권을 희망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비난했던 봉건왕조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북한이 ‘봉건도배들의 미신’인 묘지 풍수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음은 혁명열사릉(우리나라의 국립현충원에 해당)의 입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평양의 진산인 금수산에서 북으로 20리를 채 못 가 대성산(구룡산)이란 명산이 있다.
 
김일성이 터를 잡았다는 대성산 단군릉. 근처에 고려때 묘청이 천도하려 했던 대화궁 유적이 있다. 사진=조선DB
  이곳 대성산에는 혁명열사릉뿐 아니라 단군릉이 있다. 실제로는 단군릉이 아니다. 1993년 김일성 주석이 현지에 와서 직접 터를 잡아 조성한 것이다. 또 근처에는 대화궁(大花宮) 유적지가 있다. 대화궁은 ‘대화세(大花勢)’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대명당의 다른 이름이다. 고려 인종 때 풍수승(風水僧)이었던 묘청이 이곳이 대명당임을 주장하여 서경천도론을 주창하였던 곳이다. 역사학계의 태두(泰斗) 이병도 박사가 해방 전 이곳을 답사한 뒤 《고려시대의 연구》에서 “산수취합(山水聚合), 풍기포장(風氣包藏), 용호상등(龍虎相等), 주객(主客) 상대하여 풍수지리상 좋은 조건을 구비하였다”고 평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좋은 땅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이곳 대성산에는 고구려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도읍을 옮겨 처음 궁궐(안학궁)을 지은 곳이기도 하다(나중에 평양으로 옮긴다). 얼마나 북한이 풍수를 중시하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 기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기지가 있는 동창리는 조선시대에도 주목했던 요충지이다. 사진=뉴시스
  2017년 북한은 거듭되는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전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기지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 철산군 동창리이다.
 
  동창리가 속한 철산의 옛 지명을 보면 일관된 모습을 보여준다. 오래 편안하다는 뜻의 ‘장녕(長寧)’, 구리가 나온다는 뜻의 ‘동산(銅山)’, 철의 내 ‘철천(鐵川)’, 철의 고장 ‘철주(鐵州)’ 등을 거쳐 지금의 철산(鐵山)이 된다. 철산군 동창리는 갑자기 불거져 나온 이름이 아니다.
 
  《풍천유향》이란 책이 있다. 영·정조 때의 인물 송규빈이 쓴 국방강화론이다. 송규빈은 서북지역 방어에서 ‘철산극우동창의 길목(鐵山棘隅東搶之路)’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철산군 극우면 동창리 길’은 ‘남북의 관문이요 우리나라의 지극한 보배(南北之關鍵, 靑丘之至寶)’로 규정하고 이 가운데 한 곳을 지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청룡 백호가 감싸 있고, 명당과 국세(局勢)가 환하게 열려 있으니 참으로 제1의 풍수 길지이다. … 이것은 바로 태산이 그 북쪽에 버티고 있고, 큰 바다가 그 남쪽을 경유한다와 같은 요새지일 것이다.〉 (《풍천유향》)
 
  송규빈은 이곳으로 철산부를 옮겨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다면 10만 대군이 쳐들어와도 사면이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험한 성이 있으므로 공격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송규빈은 “험한 지형을 이용하여 방어하면 수비가 견고해지기 쉽고 방어를 이용하여 공격하면 전투에 반드시 승리한다”는 모범적 사례로 이곳을 활용할 것을 주장한다. 북한이 동창리에 미사일 발사 기지를 둔 것은 그러한 주장을 수용한 셈이다.
 
 
  ‘철옹성’에 자리 잡은 영변 핵시설
 
핵시설이 있는 영변은 풍수상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다. 사진=조선DB
  북한의 풍수설 활용은 핵시설의 중심지인 영변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국경(邊)을 편안하게 한다(寧)’는 뜻의 영변(寧邊)은 고구려 때부터 산성이 있어 외적을 방어하던 곳이다. 옛날부터 영변은 북방 요새지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1세기 초 거란의 공격을, 13세기와 14세기에는 몽고와 홍건적을 막아낸 곳이자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청(淸)나라 군대가 피해 간 곳이다.
 
  까닭에 사람들은 이곳 형국을 ‘철옹(鐵甕)’ ‘하늘이 만든 성’ ‘뭇 병사들이 모이는 곳’ 등으로 표현했다. 그 결과 영변읍성의 이름이 ‘철옹산성(鐵甕山城)’이란 이름으로 바뀐다. 철옹성이란 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하게 둘러쌓은 성을 뜻한다. 백두산에서 시작한 청북정맥의 중심 지맥이 서쪽으로 뻗어 가다가 매화령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 지맥은 청천강이 3면으로 감싸 막아 세우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춘다. 이와 같은 천혜의 요새지에 1683년(숙종 9년) 김석주의 건의로 이를 다시 수축하고 대포를 비치하였다. 이 성이 둘레 27리의 철옹산성이다.
 
  옛 지도들이 공통으로 보여주는 철옹산성(영변)은 북성, 본성, 신성 그리고 약산성 등 네 개의 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철옹산성은 전체적으로 산세가 높고 험한데 그 가운데서도 동쪽으로 ‘약산동대(藥山東臺)’라고 하는 큰 낭떠러지가 있고, 남쪽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이 가운데 약산성은 철옹성 중에서도 철옹성이다. 김소월 시인의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그 약산이다. 약산의 진달래가 유명한 것은 이 기암절벽에 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핵 재처리 시설물과 원자로가 위치한 곳은 바로 약산을 등지고 그 아래 펼쳐진 들판에 자리한다. 약산이 주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하 시설물은 당연히 웬만한 폭격에도 끄떡없을 약산 땅 밑이 될 것이다. 북한은 옛 소련의 도움을 받아 핵 연구를 시작하던 1960년대 초 이곳에 터를 잡았다.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영변 약산은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비룡승천(飛龍昇天)의 형국이다. 핵을 만들어 미사일에 실어 쏘아 올리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영변 핵시설 역시 북한이 의도적으로 풍수를 고려하여 터를 정한 것일까, 우연일까? 이상의 여러 정황을 보면 풍수를 참고한 것 같다.
 
 
  천시(天時)와 인화(人和)가 먼저다
 
  인민들에게는 ‘하층민들의 계급의식과 투쟁정신을 마비’시키는 봉건도배들의 미신이라고 교육하면서도 통치계급의 묏자리와 군사시설에는 철저히 풍수를 활용하는 것은 조선왕조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란 거창한 이름과 모순되게 조선왕조나 다를 바 없는 봉건왕조주의적인 풍수 수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가 성리학과 풍수를 통치도구로 활용하였다면, 북한은 주체사상과 풍수를 통치도구로 활용하였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이다.
 
  땅의 이점[地利]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게 풍수다. 이 점에서 북한은 통치수단으로 풍수지리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맹자는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같지 못하고, 지리가 인화(人和)만 같지 못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천시와 인화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 시대의 천시는 세계화다. 북한은 이와 달리 철저하게 폐쇄된 사회이다. 인화란 사람들 사이의 화합이다. 인화는 어디서 나오는가? 배가 불러야 한다. 맹자는 말했다. “먹고살 것이 없으면 떳떳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無恒産無恒心).” 최근 북한 경제가 좋아졌다고는 하나 남한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절대빈곤 국가이다. 또 인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사상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천시(시대정신)와 인화(인민들의 항산과 자유) 없는 폐쇄적 공동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철학자 안광복 박사의 남·북한 운명에 대한 해석이 풍수적 결론과 유사하다.
 
  “남한은 사실상의 섬나라다. 휴전선으로 북쪽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과 수출은 살기 위해 걸었던 승부수였다. 북한도 철저하게 섬으로 남았다. 옛 중국이 자신들을 가두었듯 북한도 우리 식대로 살자며 국경을 꽁꽁 가두었다.”
 
  1970년대까지 잘나가던 북한이 남한에 추월당한 이유가 바로 그들 자신을 철옹성에 가둔 탓이라는 얘기다. 땅의 이점을 제아무리 잘 활용해도 천시와 인화를 고려하지 않은 공동체의 운명은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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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수    (2018-06-14)     수정   삭제 찬성 : 3   반대 : 2
북한에서도 풍수를 활용하는지 몰랐는데 덕분에 알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민아    (2018-05-15)     수정   삭제 찬성 : 6   반대 : 0
더 좋은 지형을 갖고 있어도 풍수를 적용하지 못하면 그 지형을 잘 활용하지 못한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풍수가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황정심    (2018-04-30)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3
교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북한의 풍수에 대해서 새로이 알 수 있었습니다.
  김정재    (2018-04-20)     수정   삭제 찬성 : 3   반대 : 0
교수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은세계    (2018-03-23)     수정   삭제 찬성 : 16   반대 : 17
북한에서 풍수를 활용하는지 몰랐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알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온태인    (2018-03-22)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북한에 풍수에 대해서도 글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병현    (2018-03-06)     수정   삭제 찬성 : 4   반대 : 1
김교수 글을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상당히 대국적 관점에서 풍수를 서술함이 돋보입니다.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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