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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산수화와 풍수

풍수로 복을 부르는 산수화 고르기

글 : 김두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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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희, “산수화를 보면 그 그림을 그린 후손들의 길흉화복까지 알아맞힐 수 있다”
⊙ 황공망, “그림에도 풍수가 있다”
⊙ 동기창, “북종화가들은 단명하였으나 남종화가들은 오래 살았다”

김두규
1960년생.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독일 뮌스터대 독문학·중국학·사회학 박사 / 전라북도
도시계획심의위원,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역임. 현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 저서 《조선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우리풍수 이야기》《풍수학사전》 《풍수강의》 《조선풍수, 일본을 논하다》 《국운풍수》 등
정선의 대표작 중 하나인 〈목멱조돈(木覓朝暾)〉.
남산이 실제보다 뾰족하게 그려져 있다.
  모든 장르의 그림에 적용할 수 없으나 산수화만큼은 그 본디 목적이 풍수와 같다. 산수화와 풍수의 출발점이 같기 때문이다. 좋은 땅이 있듯 산수화에도 좋은 산수화가 있다.
 
  1000원권 지폐 앞면에는 퇴계 이황의 초상화가 뒷면에는 산수화 한 폭이 담겨 있다.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시냇가 위에 조용히 사는 그림)〉이다. 2007년 새 지폐가 발행되면서 퇴계의 초상화와 〈계상정거도〉가 앞뒷면에 실렸다. 이때 말이 많았다. 〈계상정거도〉에 묘사된 것이 도산서당(훗날 도산서원)이 아니라는 주장과 겸재의 그림이 아닌 위작이라는 주장(이동천 박사 주장)이 일었으나 모두 근거 없는 주장으로 판명됐다. 이동천 박사는 지금도 “〈계상정거도〉엔 광기도 천재성도 없다”고 혹평한다. 그러나 후술하게 될 정기호(성균관대 조경학과) 교수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1000원짜리 지폐에 담긴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
  겸재가 이 그림에 ‘溪上靜居’라고 쓴 것은 자기 창작이 아니고 퇴계가 쓴 시 가운데 ‘계상시정거 임류일유성(溪上始定居, 臨流日有省·시냇가 위에 비로소 거처 정하고, 흐르는 물 바라보며 날로 반성하네)’이라는 문장에서 취한 것이다(현재 이 시는 퇴계종택 앞 시비에 새겨져 있다). 겸재는 진경산수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대상은 어디이며, 어디에서 그 실물을 확인할 수 있을까? 안동 도산서원에 들어서면 입구에 주차장이 있다. 그 오른쪽에 강으로 이어지는 작은 시멘트 포장길이 있다. 겨우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잠수교가 강을 가로지른다.
 
시사단에서 본 도산서원. 1000원권 지폐 속 〈계상정거도〉의 그림과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다.
  강 건너에는 ‘시사단’이 있다. 시사단은 조선 정조 때 지방별과를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과 비각이다. 시사단을 등지고 강 건너 도산서원을 바라보면 1000원권 지폐 속의 그림과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림 속에는 소나무들이 뚜렷하게 우뚝 솟아 있으나 지금은 잡목들과 혼재한 데다가 숲이 우거져 달라 보인다. 식생의 자연천이 때문이다. 그러나 산과 물의 흐름은 흡사하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똑같지는 않다. 특히 강물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수량이 풍부하게 그려져 있으며 실물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정기호 교수는 일종의 ‘포토숍’이며 “2개의 시점장(視點場)을 합성하여 그렸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천하의 길지도 완벽하게 아름답지 않다’
 
정선이 그린 〈동작진(銅雀津)〉 그림에는 관악산(뒤)이 뾰족하고 높게 나타난다.
  진경산수화라고 하면 실물과 똑같아야 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겸재는 실물을 바탕으로 하였으되 그 자신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에 변용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겸재가 그린 남산(목멱산)도 실물보다 더 뾰족하게 그려져 있다.”(정기호 성균관대 조경학과 교수)
 
  다른 대표작 〈동작진(銅雀津)〉도 마찬가지다. 동작대교 건너 이촌동 어느 지점에서 그렸을 〈동작진〉 그림에는 관악산이 뾰족하고 높다. 겸재가 시점(視點)을 취했을 동부이촌동에서 강 건너 관악산을 바라보면 그림처럼 뾰족하지 않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정 교수는 아직까지 의문을 품고 있다.
 
  그러나 풍수적 관점에서는 다르다. 겸재가 화폭에 담은 곳들은 명승지들이다. 풍수상 ‘살 만한 곳(可居地)’이나 ‘노닐 만한 곳(可遊地)’들이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 할지라도 완벽한 곳은 없다. “성인도 전능할 수 없듯 천하의 길지도 완벽하게 아름답지 않다(聖人無全能, 亦山無全美)”는 것이 풍수 격언이다.
 
  그러한 현실을 작품 속에서 완벽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작가의 몫이다. 창작의 자유이다. 불완전한 땅을 그림 속에서 완전하게 나타낸다. 비보(裨補)풍수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따라서 좋은 산수화에는 작가의 입장에서 완벽한 길지가 구현되고 있다.
 
 
  산수와 풍수는 출발이 같다
 
  왜 산수화를 그리는 것일까. 왜 산수화를 소장하며 이를 감상하는 것일까? 특히 풍수에서는 다른 장르의 그림보다 산수화를 중시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명나라의 화가 문진형(文震亨·1585~1645)은 그 이유와 좋은 산수화의 조건을 설명한다. “그림 가운데 산수화가 제일이고, 대·나무·난초·돌이 그다음, 인물·짐승이 또 그다음이다.… 산수와 임천(林泉)은 맑고 한가롭고 그윽하고 넓어야 하며, 가옥은 깊숙해야 하며, 사람이 건널 외다리가 있어야 한다.… 산세는 높고 냇물의 흐름은 시원스러워야 한다.”(《장물지(長物志)》)
 
  풍수에서 산수화를 이렇게 중시하는 데는 오랜 전통과 내력이 있다. 종병(宗炳·375~443)의 이른바 ‘와유론(臥遊論)’이다. ‘산천을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잘 그려진 산수화를 보면 눈이 감응하고 마음 역시 통하여 산수의 정신과 감응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사람이 응당 눈으로 보고 마음에 통하는 경지를 이(理)라고 하는데, 잘 그려진 산수화의 경우는 눈도 동시에 응하게 되고 마음도 동시에 감응하게 되어서 응하고 통함이 정신을 감동시키면 정신이 초탈하여 이(理)를 얻을 수 있다.”(《화산수서》) 풍수의 핵심이론인 동기감응, 즉 같은 기운이 서로 감응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종병에 이어 왕미(王微·415~443)는 산수를 그린다는 것은 “산수의 정신을 그리는 것(寫山水之神)”이며 이를 통해 “신명이 강림(明神降之)”하는 것으로 보았다(《서화(敍畵)》). 따라서 그림을 바라보면 그림 속의 정신이 사람에게 전해진다는 것이 그의 ‘와유론’이자 ‘전신론(傳神論)’이다.
 
  특히 왕미는 산수화뿐만 아니라 풍수에도 능하여 중국의 《송서(宋書)》 ‘왕미전(王微傳)’은 “서화에 능하고 음악·의술·음양술에 밝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음양술이란 풍수를 말하는데 그는 양택(주택) 풍수의 초기 고전인 《황제택경》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까닭에 《황제택경》을 《왕미택경》이라고도 한다(조셉 니담, 《중국과학기술사》).
 
  산수화와 풍수의 상관관계는 중국 송나라 때 더욱 구체화된다. 송대에 집필된 풍수고전 《명산론(明山論·산의 이치를 밝히는 책)》은 조선조 지리학 고시과목으로 채택되기도 하는데, 이 책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흙은 살이 되고, 돌은 뼈가 되고, 물은 피가 되고, 나무는 모발이 된다. 그러므로 혈을 이루는 곳에서는, 그곳의 흙은 풍성하고, 그곳의 돌은 이상한 것이 많고, 그곳의 물은 여러 곳에서 모여들고, 그곳의 나무는 무성하다.”(《명산론》)
 
 
  “살 만한 곳을 산수화로 표현해야 좋은 그림”
 
송(宋)나라 이성(李成)이 그린 〈청만소사도(晴巒蕭寺圖)〉.
  동시대의 산수화가 곽희(郭熙: 11세기 인물)는 화론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산과 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산은 큰 물체(大物)이다.… 물로써 혈맥을 삼고, 덮여 있는 초목으로 모발을 삼으며, 안개와 구름으로써 정신과 풍채를 삼는다. 그러므로 산은 물을 얻어야 활기가 있고, 초목을 얻어야 화려하게 되며, 안개와 구름을 얻어야 곱게 된다. … 바위란 천지의 뼈에 해당한다.”
 
  산수화의 기능은 무엇일까? 곽희는 말한다.
 
  “군자가 산수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 취지가 어디에 있는가? 산림과 정원에 거처하면서 자신의 천품을 수양하는 것은 누구든지 언제나 그렇게 거처하고자 하는 바이고 샘물과 바위에서 노래하며 자유로이 거니는 것은 누구든지 언제나 그처럼 즐기고 싶은 바일 것이다.… 실제로는 눈과 귀가 보고 듣고 싶은 것이 단절되어 있는 형편이므로 지금 훌륭한 솜씨를 가진 화가를 얻어 그 산수 자연을 왕성하게 그려낸다면 대청이나 방에 앉아서 샘물과 바위와 계곡의 풍광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이 어찌 남의 마음을 유쾌하게 하고 자신의 마음을 완전하게 사로잡는 것이 아니겠는가!”
 
  좋은 땅에 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들에게 산수화는 그 대체품으로 기능한다. 곽희는 산수화를 보면 그 그림을 그린 후손들의 길흉화복까지 알아맞힐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이 “살 만한 곳(可居者)”을 산수화로 표현해야 좋은 그림이 된다면서 모범 사례로 이성(李成·919~967)의 〈청만소사도(晴巒蕭寺圖)〉를 꼽는다.
 
 
  “그림에도 관상법이 있다”
 
  “그림에도 관상법이 있다. 예로 이성의 자손이 번성하고 잘되었는데 그가 그린 산기슭과 지면이 모두 혼후하고 넓고 크며 위로는 빼어나고 아래로는 풍만함이 후손이 번영하는 상(相)과 합치하였다.”(《임천고치》)
 
  풍수의 두 가지 핵심이 산과 물이듯 곽희의 산수화의 핵심도 산과 물이다. 곽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산은 큰 물체(大物)이다. 그 형상이 솟아 빼어난 듯, 거만한 듯, 조망이 널찍하여 툭 터져 있는 듯,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듯, 다리를 펴고 앉아 있는 듯, 둥그스름하게 큰 듯, 웅장하고 호방한 듯, 정신을 전일하게 한 듯, 엄중한 듯, 눈이 예쁘게 뒤돌아보는 듯, 조회에서 읍하고 있는 듯, 위에 덮개가 있는 듯, 아래에 무엇을 타고 있는 듯, 앞에 의거할 것이 있는 듯, 뒤에 기댈 것이 있는 듯해야 한다.… 물은 살아 있는 물체(活物)이다. 그 형상이 깊고 고요한 듯, 부드럽게 매끄러운 듯, 넓고 넓은 듯, 빙빙 돌아 흐르는 듯이 살찌고 기름진 듯, 용솟음치며 다가오는 듯, 격렬하게 쏘는 듯, 샘이 많은 듯, 끝없이 멀리 흘러가는 듯해야 한다.”(《임천고치》)
 
  주산은 높아야 하고 물은 넉넉하면서 힘차게 흘러가야 함이 그 핵심이다. 이를 근거로 10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겸재의 〈계상정거도〉와 〈동작진〉 그리고 이성의 〈청만소사도〉를 감상한다면 그 말하는 바가 쉽게 이해될 것이다.
 
 
  어떤 그림이 좋은 산수화인가
 

  중국의 산수화와 풍수와의 밀월관계는 계속된다. 원나라의 4대 화가 가운데 한 명이 황공망(黃公望)이다. 그는 “산언덕은 집을 앉힐 수 있는 지세여야 하며 물 가운데는 작은 배를 띄울 수 있을 정도의 수량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의 지세에서 생기(生氣)가 있다(山坡中可以置屋舍. 水中可置小艇. 從此有生氣)”고 하였다.
 
  따라서 “그림에도 풍수가 있다(畵亦有風水存焉)”라고 화론 《사산수결(寫山水訣)》에서 단언한다. 그의 그림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는 자신의 풍수관이 반영된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부춘산에 살고 있는 그림’, 즉 살 만한 땅이 그려진 것이다.
 
  황공망은 풍수가 반영되는 “산수화를 그리는 데 있어서 수구(水口) 그리기가 가장 어렵다(山水中惟水口最難畵)”고 하였다. 이 문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음 그림 한 점을 소개한다. 그림은 민화풍의 산수화이다. 산과 물이 있고 그 사이에 집이 한 채 들어섰다. 마당 좌우로 흐르는 두 물줄기(하얀 선)가 합쳐져 앞산 밖으로 감싸 돌아나간다. 두 물이 합쳐지는 지점이 수구이다. 황공망은 수구 그리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였는데 화가는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였을까? 바로 오리 두 마리를 그려 넣음으로써 이 그림에 생기가 돌게 하였다.
 
  황공망은 “산 아래에 연못이 있으면 이를 일러 뢰(瀨)라고 하는데, 이것을 그리면 생기가 있다(山下有水潭謂之瀨. 畵此甚存生意)”고 말한다. 홍성담 화가의 그림에서 두 물이 합쳐지는 수구가 바로 그 연못[水潭]이며, 수구 그리기의 어려움을 오리 두 마리로서 해결한 것이다.
 
 
  당인, 산수화 그릴 때 꺼릴 것 3가지
 
  겸재의 〈계상정거도〉 역시 황공망의 ‘부춘산에 사는 그림(부춘산거도)’과 비슷하게 ‘시냇가 위에 조용히 살고 있는 그림’이란 뜻이다. 〈계상정거도〉를 자세히 보면 좌우 산으로 감싸인 언덕에 작은 집이 하나 들어섰고, 그 아래 강 위에 작은 배 한 척이 떠 있다.
 
  또 수구는 어떻게 그렸을까? 집과 배 사이에 냇물(명당수)이 흐르고 있다. 그 사이에 작은 다리 하나가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다리를 통해 수구 처리를 하고 있다. 이성의 〈청만소사도〉 역시 다리를 가지고 수구 그리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겸재 정선은 그와 같은 곳이 생기가 있음을 알고 자신의 산수화를 통해 이를 살려낸 것이다.
 
  명나라 화가 당인(唐寅·1470~1524)은 산수화를 그릴 때 꺼려야 할 것 3가지, 즉 “기맥이 없는 산(山無氣脈)”과 “흐르는 물이 없는 것(水無源流)” 그리고 “출입할 길이 없는 것(路無出入)”을 꼽았다. ‘산은 인물을 주관하고 물은 재물을 주관한다(山主人水主財)’는 풍수 발복론에서 보면 당연히 피해야 할 땅이자 그림이다.
 
  1000원권 지폐에 실린 〈계상정거도〉를 보면 산의 기맥이 저 멀리서부터 연면히 이어져 내려옴을 볼 수 있다. 서당 앞을 흐르는 명당수가 객수(낙동강)와 합류하여 흘러감을 볼 수 있다. 산기슭을 따라 서당으로 이어지는 길 또한 볼 수가 있다. 당인이 요구하는 3가지 요건을 충족시킴을 알 수 있다.
 
 
  좋은 산수화와 인간의 수명
 
  산수화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수명과의 상관관계론이다. 명나라 화가 동기창(董其昌·1555~1636)의 주장이다. 동기창은 중국의 산수화를 북종화와 남종화로 구별 짓고 북종화가들은 단명하였으나 남종화가들은 오래 살았다고 주장한다.
 
  ‘북종화가들은 판에 새기듯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그림으로써(각화세근·刻畵細謹) 조물주의 부림을 받게 되어 수명이 단축되고 만다. 반면 남종화가들은 기화위락(寄畵爲樂)으로 인해 장수를 한다.’ 기화위락은 그림에 의지함을 즐거움으로 삼는다는 뜻인데,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감상하는 것 자체도 즐거움이 되어 심신에 유익함을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종화가들이 대개 60을 넘기지 못했으나 남종화가인 황공망(85세), 심주(沈周·82세), 문징명(文徵明·89세), 미우인(米友仁·80세) 등은 모두 80을 넘겼다. 동기창 자신도 80 넘게 살았다. 남종화를 즐기는 이들이 “정신이 온전하고 질병 없이 살다가 간 것은 그림 속에서 자연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동기창은 덧붙인다.
 
  겸재도 70세를 넘겨(1676~1759) 당시 기준으로 보면 장수를 한 셈이다. 그런데 남종화와 북종화로 나뉘는 것은 화풍이나 이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땅의 차이, 즉 산수의 차이 때문이다. 청나라 때의 화가 심종건(沈宗騫·1736~1820)의 주장이다.
 
  “천지의 기(氣)는 지방마다 다르고 사람 또한 그에 따른다. 남방의 산수는 넓고 조용하면서 물결이 굽이쳐 돈다. 사람이 그 사이에 태어나 바른 기를 획득하면 품성이 온화하고 윤택하며 화목하고 우아하게 된다.… 북방의 산수는 기이하고 뛰어나면서 웅장하고 두텁다. 사람이 그 사이에서 태어나 바른 기를 얻으면 강건하고 시원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고, 기가 편중되면 거칠고 굳으면 횡포한 사람이 된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다.”(《개주학화편(芥舟學畵編)》)
 
  산수의 차이에 따라 사람의 성정뿐만 아니라 수명에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황공망과 허련
 
허련이 낙향하여 살았던 운림산방.
  소치(小痴) 허련의 스승으로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를 언급한다. 이 둘이 진도의 한미한 허련을 조선의 위대한 화가로 키워낸 것은 분명하다. 정작 소치의 마음속 스승은 누구였을까? 황공망의 호가 대치(大痴)였다. 대치를 염두에 두고 허련은 소치란 호를 지었다.
 
  소치 스스로 “그림으로 삶을 의탁하고 그림으로 삶의 낙을 삼은 것은 황공망이 처음 개창한 것이다(以畵爲寄, 以畵爲樂, 黃公望始開此門庭耳)”고 자서전 《소치실록》에서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다. 소치가 낙향하여 터를 잡고 말년까지 작품 활동을 하였던 화실 이름이 ‘운림산방(雲林山房)’이었다. 운림(雲林)은 원나라 4대 화가 예찬(倪瓚·1306~1374)의 호였다. 또 그의 “예찬의 죽수계정도를 모방한 그림(倣倪雲林竹樹溪亭圖)”도 그가 중국의 산수화가들을 스승으로 삼았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소치는 중국의 남종화가들처럼 풍수를 진지하게 수용하였을까? 겸재의 산수화부터 이야기하고 소치의 산수화를 풍수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글머리에서 〈계상정거도〉를 소개하였다. 〈계상정거도〉의 실제 현장인 도산서당은 퇴계가 직접 터를 잡고 설계하였으며 현재의 ‘퇴계종택’ 역시 퇴계가 세 번의 이사 끝에 잡은 자리이다. 그의 무덤도 생전에 그가 잡은 자리다.
 
  풍수에서 터를 볼 때 ‘근삼원칠(近三遠七)’을 강조한다. 멀리서 보는 것이 7할, 가까이에서 보는 것을 3할로 하라는 말이다. 멀리서 바라볼 때 그 터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드러난다. 도산서원도 강 건너 시사단에서 봐야 하고 퇴계의 종택도 시내 건너에서 바라볼 때 터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모두 풍수상 아름다운 곳이다. 화가는 그 아름다운 곳을 그렸고 그림을 보는 이들은 그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는다.
 
 
  ‘노닐 만한 곳’과 ‘살 만한 곳’
 
퇴계가 직접 터를 고른 퇴계종택.
  겸재의 대표작 〈경교명승첩〉은 한양의 명승지를 그린 그림들을 모아놓은 화첩이다. 앞에서 언급한 곽희는 좋은 그림의 대상지에 대해 2가지를 꼽았다. “산수에는 한번 지나가 볼 만한 것(可行者), 멀리 바라볼 만한 것(可望者), 자유로이 노닐어볼 만한 것(可遊者), 그곳에서 살아볼 만한 것(可居者) 등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지금의 산천 지형을 보면 비록 수백 리를 걸칠지라도 자유로이 노닐어볼 만하고 그곳에서 살아볼 만 곳은 10군데 중에 서너 곳도 안 된다. 반드시 살아볼 만하고 자유로이 노닐어볼 만한 품격을 가진 곳을 취하는 것은 군자가 임천을 갈망하는 까닭이 바로 이러한 곳을 아름다운 곳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임천고치》)
 
  겸재의 〈경교명승첩〉에 수록된 그림들은 ‘노닐 만한 곳’과 ‘살 만한 곳’이 그려진 것이다. 그곳에 살면 더 좋은 일이나 그렇지 못할 때 그림을 통해서 그와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겸재는 〈경교명승첩〉을 “천금물전(千金勿傳)”, 즉 천금을 주어도 남에게 팔지 말라고 후손들에게 유언한다(아쉽게도 유언은 지켜지지 못한다).
 
  소치의 경우 어떠한가. 장소의 구체성이 떨어진다. “그의 스승 김정희가 황공망과 예찬의 화풍을 모범으로 하여 18세기 이후 조선 화단의 주요 흐름 중 하나였던 진경산수화풍을 비판”(김상엽, 《소치 허련》)함에서 겸재와의 화풍에 차이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김정희와 그 제자 소치가 모범으로 삼았던 중국의 남종화가들은 황공망의 〈부춘산거도〉의 예에서처럼 실경을 위주로 하였다. 반면에 소치는 중국 남종화가들을 모범으로 철저하게 도식화 및 관념화하였기에 실경이 아닌 경우가 많다.”(화가 홍성담)
 
  풍수적 관점에서는 관념화된 산수화가 아니라 실제 기운생동하는 장소들이 그려지는 것을 이상으로 한다. 왕미가 주장하는 “산수의 정신을 그리고(寫山水之神)” 이를 통해 “신명이 강림(明神降之)”해야 그 “그림 속의 정신이 전해질 수 있는 것(傳神)”이 가능해진다. 이 점에서 본다면 소치보다 겸재의 산수화가 풍수의 본래 목적에 더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산은 높되 단정해야 하며 저 멀리 높고 높은 산에서 연달아 이어져 내려와 집 뒤에서 좌정해야 한다. 장엄한 소나무들이 뭇 잡목을 거느려야 한다. 산기슭에 집이 있어야 하며, 그 집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어야 한다. 시냇물이 흐르고 그 시냇물을 건너는 다리가 있어야 한다. 강물이 산을 감싸 돌며 흘러가야 한다. 강에는 배가 떠 있어야 한다. 좋은 산수화가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들이다. 1000원권 지폐에 실린 〈계상정거도〉가 그 모범이 될 수 있다. 비싸다고 좋은 그림이 아니며, 유명화가의 작품이라고 복을 부르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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