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치미술가 김수자의 개인전 ‘마음의 기하학’… 19m 원형 탁자가 추석 만월이 되다!
⊙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앨범 《모던 타임즈》… 붉은 매니큐어 바르고 연주했을까
[편집자 주]
현대예술은 색채의 미학이다. 작품마다 고유의 빛깔이 있다. 그림도, 설치 조형물도 저마다의 느낌, 색깔을 지닌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클래식이든, 재즈든, 로큰롤이든 연주의 색깔이 다르다. 전시(공연) 작품과 발매 앨범을 리뷰하며 저마다의 빛깔을 지닌 작가의 개성을 음미해 보자.
⊙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앨범 《모던 타임즈》… 붉은 매니큐어 바르고 연주했을까
[편집자 주]
현대예술은 색채의 미학이다. 작품마다 고유의 빛깔이 있다. 그림도, 설치 조형물도 저마다의 느낌, 색깔을 지닌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클래식이든, 재즈든, 로큰롤이든 연주의 색깔이 다르다. 전시(공연) 작품과 발매 앨범을 리뷰하며 저마다의 빛깔을 지닌 작가의 개성을 음미해 보자.
- 설치미술가 김수자. 관람객이 찰흙으로 ‘작은 달님’을 빚고 있다.
노랑
김수자의 설치미술 ‘마음의 기하학’
추석은 달님이다. 달님은 노란색. 휘영청 밝은 달과 매일 만날 수 있다면?
설치미술가 김수자(59)의 개인전 ‘마음의 기하학’전(展·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가 보았다.
지름 19m 타원형 원목탁자가 놓여 있고, 그 탁자에 관람객이 앉아 ‘찰흙 공(球)’을 빚고 있다. 원목 탁자는 거대한 만월(滿月), ‘수퍼 문’ 같다. 관람객이 빚은 찰흙 공은 누가 봐도 작은 달이다.
찰흙으로 빚은 수많은 ‘작은 달님’이 ‘큰 달님’ 앞섶에 올망졸망 매달린 것 같다. 혹은 ‘큰 달님’이 ‘작은 달님’을 새끼 친 것 같다. 수많은 ‘작은 달님’을 품고도 남을 넉넉한 수퍼 문이 그리운 추석이니까.
관람객이 두 손으로 찰흙을 비빈다. 찰흙이 점점 동글동글해지면서 표정이 점점 밝아진다. 모난 마음도 동글동글, 둥글둥글해질까. 19m 원형 테이블이 성황당 앞 달님이라도 되는 듯. 구복(求福)신앙처럼 무언가를 싹싹 비는 것 같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인 김수자는 “찰흙이라는 물질을 손이 감싸면서 비물질의 정신세계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손이 달님(찰흙 공)을 빚으면서 물질은 사라지고 정신세계에 의탁하는 간절한 구복만 남게 된다는 얘기다.
김수자의 작품을 보니, 백제가요 〈정읍사〉가 떠오른다. ‘달하 높이곰 돋으샤 어기야 멀리곰 비취오시라’로 시작되는 〈정읍사〉는 먼 길 떠난 남편을 생각하는 아내의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다. 국문학자 서울대 조동일 명예교수는 “달은 광명의 상징이자 안녕과 풍요의 수호신이다. 달밤에 강강수월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이 전시회는 내년 2월 15일까지 계속된다.
빨강
심플하고 강렬한 손열음의 앨범 《모던 타임즈》
피아니스트 손열음(30)이 올 초 앨범 《모던 타임즈》를 냈다. 2008년 발매한 《쇼팽 : 피아노와 현을 위한 녹턴》 이후 8년 만이다. 벌써 나이 서른. 지난 1997년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할 때가 엊그제 같다. 더는 ‘신동’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그녀만한 ‘신예’가 또 있나.
짙은 화장. 붉은 립스틱에 중절모를 비딱하게 쓴 앨범 재킷이 반항적이기보다 모던하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때도 새빨간 코트를 입었었다.
앨범 선곡을 봐도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거장의 곡이 없다. 알반 베르크,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모리스 라벨 같은, 심플하고 강렬한 20세기 현대 음악가들이다. 국내 연주회에서 거의 듣기 어려운, 손열음식 표현으로, ‘꽤나 드물게 연주되는’ 곡들이다.
단언컨대, 이 앨범에서 손열음이 가장 공을 들인 연주는 모리스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 전곡(6곡으로 구성) 연주다. 원래 피아노 솔로곡이지만 유럽에선 주로 관현악이나 목관 5중주로 연주된다. 웬만한 연주회에서 이런 난해한 곡은 듣기 어렵다. 생전 라벨은 ‘쿠프랭의 무덤’ 각 곡을 전쟁 중에 전사한 자신의 친구들에게 헌정했을 정도로 애착을 지녔었다.
손열음의 건반을 따라가 본다. 음계가 웅얼웅얼대는 듯 불협화음(?)이다. 모호함? 복잡한 감정의 기복? 즉흥연주처럼 종잡을 수 없다. 라벨 스스로도 “이 곡을 과연 외워 연주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무덤이란 이미지가 그렇듯 여러 감정이 겹쳐진 추상적인 색채다. 그러나 가만히 듣다 보면 색채에 열정이 묻어 있다. 굳이 규정한다면 빨강?
쿠프랭의 관 뚜껑 모서리를 건반으로 두드리는 손열음. 나른한 오후 속을 걷는 듯(1곡 푸렐류드)하고 저음의 젖은 음계(3곡 포를랑)가 청자(聽者)의 심장 한쪽을 지그시 누른다. 마지막(6곡) 토카타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16분 음표들이 종알종알 화려하게 반복된다. 마치 죽음이 이웃과 가족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종용하듯.
문득 손열음이 이 곡을 연주할 때, 붉은색 매니큐어를 바를 것만 같다.⊙
김수자의 설치미술 ‘마음의 기하학’
추석은 달님이다. 달님은 노란색. 휘영청 밝은 달과 매일 만날 수 있다면?
설치미술가 김수자(59)의 개인전 ‘마음의 기하학’전(展·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가 보았다.
지름 19m 타원형 원목탁자가 놓여 있고, 그 탁자에 관람객이 앉아 ‘찰흙 공(球)’을 빚고 있다. 원목 탁자는 거대한 만월(滿月), ‘수퍼 문’ 같다. 관람객이 빚은 찰흙 공은 누가 봐도 작은 달이다.
찰흙으로 빚은 수많은 ‘작은 달님’이 ‘큰 달님’ 앞섶에 올망졸망 매달린 것 같다. 혹은 ‘큰 달님’이 ‘작은 달님’을 새끼 친 것 같다. 수많은 ‘작은 달님’을 품고도 남을 넉넉한 수퍼 문이 그리운 추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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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m 원형 탁자 위에 관람객이 빚은 찰흙 공이 가득하다. |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인 김수자는 “찰흙이라는 물질을 손이 감싸면서 비물질의 정신세계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손이 달님(찰흙 공)을 빚으면서 물질은 사라지고 정신세계에 의탁하는 간절한 구복만 남게 된다는 얘기다.
김수자의 작품을 보니, 백제가요 〈정읍사〉가 떠오른다. ‘달하 높이곰 돋으샤 어기야 멀리곰 비취오시라’로 시작되는 〈정읍사〉는 먼 길 떠난 남편을 생각하는 아내의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다. 국문학자 서울대 조동일 명예교수는 “달은 광명의 상징이자 안녕과 풍요의 수호신이다. 달밤에 강강수월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이 전시회는 내년 2월 15일까지 계속된다.
빨강
심플하고 강렬한 손열음의 앨범 《모던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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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때 손열음은 새빨간 코트를 입었었다. |
짙은 화장. 붉은 립스틱에 중절모를 비딱하게 쓴 앨범 재킷이 반항적이기보다 모던하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때도 새빨간 코트를 입었었다.
앨범 선곡을 봐도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거장의 곡이 없다. 알반 베르크,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모리스 라벨 같은, 심플하고 강렬한 20세기 현대 음악가들이다. 국내 연주회에서 거의 듣기 어려운, 손열음식 표현으로, ‘꽤나 드물게 연주되는’ 곡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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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올 초 발매한 앨범 《모던 타임즈》. |
손열음의 건반을 따라가 본다. 음계가 웅얼웅얼대는 듯 불협화음(?)이다. 모호함? 복잡한 감정의 기복? 즉흥연주처럼 종잡을 수 없다. 라벨 스스로도 “이 곡을 과연 외워 연주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무덤이란 이미지가 그렇듯 여러 감정이 겹쳐진 추상적인 색채다. 그러나 가만히 듣다 보면 색채에 열정이 묻어 있다. 굳이 규정한다면 빨강?
쿠프랭의 관 뚜껑 모서리를 건반으로 두드리는 손열음. 나른한 오후 속을 걷는 듯(1곡 푸렐류드)하고 저음의 젖은 음계(3곡 포를랑)가 청자(聽者)의 심장 한쪽을 지그시 누른다. 마지막(6곡) 토카타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16분 음표들이 종알종알 화려하게 반복된다. 마치 죽음이 이웃과 가족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종용하듯.
문득 손열음이 이 곡을 연주할 때, 붉은색 매니큐어를 바를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