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키산맥에서 곰 사냥을 하던 휴 글래스가 겪은 생존투쟁과 자기를 버린 동료에 복수하는
이야기 그려
⊙ 실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자연광으로 촬영한 영화
朴興津
⊙ 72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이야기 그려
⊙ 실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자연광으로 촬영한 영화
朴興津
⊙ 72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가 감독한 〈레버넌트〉 포스터.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를 연출한 멕시칸 감독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52)와의 인터뷰가 지난해 11월 미국 LA 비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이 작품은 오는 2월 28일에 열리는 2016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과 감독 및 남우주연상(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총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희끗희끗한 턱수염에 자다 일어난 사람 같은 모습의 이냐리투는 악센트가 있는 바리톤 음성으로 질문에 자상하게 대답했다. 영화에 대한 정열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유머와 함께 상소리를 섞어가면서 연기하듯 요란한 제스처를 동원해 진지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호인풍이어서 친근감이 갔다. 그는 작년에 〈버드맨〉으로 오스카 감독상을 탔다.
〈레버넌트〉는 19세기 초 늦가을 미국의 로키산맥에서 모피 사냥을 하던 휴 글래스가 겪은 처절한 생존투쟁과 빈사상태에 빠진 자기를 버리고 간 동료에 대한 복수를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해 만들었다.
―어떻게 이 얘기에 끌렸으며 또 무엇을 말하고자 했습니까.
“모피사냥꾼인 휴 글래스가 곰에게 물려 빈사상태에서 동료에게 버림을 받은 뒤 살아나 추운 겨울에 복수를 위해 200마일의 눈길을 걷는다는 것은 매우 강력하고 원시적인 이야기입니다. 나는 인간의 생존 본능과 인내 그리고 환경에의 적응력을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이와 함께 당시 미국의 큰 수입원은 모피를 유럽에 팔아 번 돈이라는 점도 흥미가 있지요. 그리고 내가 공허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복수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도 묻고 싶었습니다. 또 영화에서 별로 다루지 않은 19세기 초 미국의 역사적 사실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도전이 있었을 텐데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요.
“모든 장면이 다 도전이었지요. 영화는 대부분 캐나다의 로키산맥에서 찍었는데 처음에 사냥꾼들이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습격을 받는 장면에 200명을 동원했습니다. 그 장면을 위해 예행연습만 몇 달을 했습니다. 가급적 영상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광을 이용해 촬영했기 때문에 하루에 촬영이 가능한 시간이 1시간 반 정도였지요. 모든 것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 해발 8000피트의 산꼭대기에서 촬영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모든 것이 악조건이었으나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얘기이기도 하지요.”
“이 영화는 박자가 잘 맞는 음악과도 같아”
―‘죽음에서 돌아온 자’라는 뜻의 〈레버넌트〉가 당신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내가 바로 레버넌트라고 느껴집니다. 난 이 영화가 날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기획하고 장소를 물색하는 데만 5년이 걸렸지요. 영화를 완성하고 지금 여러분 앞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나야말로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입니다.”
―리어나도가 곰의 습격을 받는 장면은 너무나 사실적인데 그것을 어떻게 찍었는지요.
“영화를 보는 재미를 망치고 싶지 않아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으나 나는 그 장면을 보는 관객이 직접 곰에게 습격받는 느낌이 들도록 가급적 사실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컴퓨터 특수효과를 사용하긴 했지만 우리는 그 장면을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 사진처럼 생생하게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리어나도는 칭찬받을 만합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습니다. 난 그 장면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어떻게 이런 힘든 영화를 만들고자 했으며 또 리어나도를 영화에 나오도록 설득했는지요.
“이런 영화를 만들겠다고 한 천치는 아마 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마치 밧줄 없이 바위산을 올라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중간까지 오르면 내려갈 수가 없고 계속 올라가야만 하지 않습니까. 캐나다 캘거리의 기후는 하루에도 일곱 번씩이나 변해 죽을 맛이었습니다. 눈이 쌓이는가 하면 2시간 후엔 다 녹아버려 푸른 초원이 되고 이어 3시간 후에는 비가 왔다가 다시 2시간 후에는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 맞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지요. 내가 리어나도를 부르고 또 그가 수락한 것은 그가 환경보호론자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온난화 문제와 자연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염려라는 그의 사명이 영화의 내용에 상관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는 인간이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영화의 내용과 연관이 되지요. 그리고 레오가 영화에 나오기로 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영화에서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는 공포와 고독과 분노와 추위, 그리고 희망 같은 모든 느낌을 자신의 몸과 눈으로만 표현하는데 이것은 배우인 그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40분간 말 한마디 없는 장면이 있지요.”
―영화가 매우 신비한 분위기를 띠는데 의도한 것인지요.
“영화의 골격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매우 간단한 것입니다. 나는 이 영화를 박자가 잘 맞는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의 무한한 공간과 침묵이 작품을 영적인 차원으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작품의 물리적인 면과는 또 다른 것이지요.”
“배우를 고를 때 눈을 본다”
―당신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자연과 그것의 요소를 다루기보다 수용했다고 말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영감을 받은 과거의 영화들이라도 있는지요.
“내가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고 존경하면서 그들과 같은 작품을 만들려고 목표를 설정한 감독들과 작품들이 있습니다. 감히 이루지는 못할 것 같지만 높은 곳을 겨냥하고는 있지요. 구로사와의 영화와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레프〉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삶과 우리가 그것의 한 부분인 자연을 정경과 감정 면에서 모두 대하서사적으로 그린 베르너 헤어초크의 〈피츠카랄도〉와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으로부터도 영감을 받았습니다. 둘 다 규모가 크면서도 내면의 이야기는 아주 깊지요. 그리고 나는 인간 대 자연 또 인간 대 인간의 대결을 대담하게 서술한 잭 런던과 조셉 콘래드의 글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에게 권하고픈 책은 이 영화의 바탕이 된 존 T. 콜맨의 《휴 글래스 여기에 눕다》입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얻기를 바랍니까.
“내게 지병을 앓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가 이 영화를 본 뒤 영화가 불굴의 정신을 그린 것이어서 위로를 받았다면서 울었습니다.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지요. 영화가 사람들에게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편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우리 존재의 부분인 자연입니다. 곰의 습격은 우리가 살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라고 보면 됩니다. 암일 수도 있고 이혼일 수도 있고 또 가까운 사람을 잃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삶은 투쟁하면서 진행되는 것이라는 점을 영화로부터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반성하고 또 찾도록 부추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대단히 장관인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리어나도 외의 배우들은 어떻게 뽑았습니까.
“나는 배우들을 고를 때 그들의 눈을 보고 고릅니다. 그 눈이 내면의 삶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배우들을 고릅니다. 재주는 있지만 눈에 내면의 삶이 안 비친다면 그는 경박한 사람이지요. 이와 함께 사람들을 잘 구별할 수 없는 자연 속에서 뚜렷이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을 지닌 배우들로 뽑았습니다.”
―사람들이 영화를 컴퓨터에 내려받아 보면서 영화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좋은 말입니다. 우선 요즘 영화가 처한 위기 중 하나는 TV에나 맞는 작품들이 극장에서 상영된다는 사실입니다. 영화에 있어 잘 만들어진 얘기나 배우들의 연기 외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여지껏 경험하지 못한 신비를 밝혀준다는 점입니다. 그 같은 영화적 계시의 순간은 극장에서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위대한 문학작품과 시와 그림을 읽고 보며 또 말러와 라벨의 음악을 들을 때처럼 어떤 순간적 계시와도 같은 경험을 준다면 사람들은 극장에 갈 것입니다. 그것은 이성적인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지요. 그런 계시와도 같은 경험은 당신으로 하여금 실제 삶에서 얻을 수가 없는 감정에 매달리게 만듭니다. 내가 이 영화에서 시도한 것도 바로 그런 경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같은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촬영이 가능한 하루에 달랑 1시간 반밖에 안 되는 그 시간을 기다린 것입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기다림이었습니다. 그런 아름다움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보기만 해도 되지요. 우리는 정말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인간 경험의 사실을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영화 초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사냥꾼들에 대한 습격이 몹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데 편견적인 묘사가 아닙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적이라고 여깁니다. 영화의 역사를 보건대 원주민을 묘사할 때면 늘 변태적으로 그려왔지요. 일종의 편견이 작용한 것인데 그들을 살육을 즐기는 나쁜 사람들로 묘사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성한 종족으로 그리곤 했습니다.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악마가 아니면 성인이라는 2분법으로 나눠 묘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난 영화에서 그들을 우리와 같은 사람들로 그리려고 애썼어요. 과거 영화 속의 원주민들은 우리가 가진 편견의 희생자들입니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또 다른 사냥꾼들에게 납치된 원주민 추장의 딸을 구출하기 위해 이 추장이 사냥꾼들을 공격한 것은 실제로 1823년에 있었던 사실입니다. 난 원주민들을 묘사하면서 그들의 인간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것은 그들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영화의 폭력은 어쩔 수 없는 것”
―너무 끔찍한 장면과 눈 뜨고 보기 힘든 폭력이 있는데 그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생각해 봤는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난 광활한 자연 속에서 인간이 육체적으로 겪는 고통을 크면서도 매우 근접하게 묘사하면서 관객들이 그것을 직접 경험하도록 시도했습니다.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모든 것이 사실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사실 난 이 영화가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난 폭력적인 사람도 아니며 또 그것에 흥미도 없습니다. 영화의 폭력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당시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난 가급적 진실하려고 애썼습니다. 내가 만들어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폭력으로 관객에게 말초신경적인 흥분감을 제공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폭력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기에 주저하지도 않았지만 동시에 과도하지도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우주의 진실에 충실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이 영화는 황무지에서의 생존 드라마인데 당신은 할리우드라는 정글에서 생존할 수 있는 묘책이라도 가지고 있는지요.
“그것에 관한 책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난 단지 내가 이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또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만이 내가 하고픈 일이며 또 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평할 일이 없습니다. 난 항상 좀 더 잘 만들 수 없을까 하고 나를 몰아붙이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게 있어 매우 힘든 일입니다. 항상 기준을 높이 세우기 때문에 그 기준에 맞춘다는 일은 고문이나 마찬가지로 힘듭니다. 그것은 내가 치러야 하는 대가지요. 난 내가 깊이 사랑하고 또 애착을 갖는 작품만 만들려고 합니다. 물론 돈 기백만 달러 받고 쉬엄쉬엄 느슨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나 자신이 그것을 허락하질 않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나의 유일한 생존지침이란 나 자신에 충실하고 진실하라는 것입니다.”⊙
희끗희끗한 턱수염에 자다 일어난 사람 같은 모습의 이냐리투는 악센트가 있는 바리톤 음성으로 질문에 자상하게 대답했다. 영화에 대한 정열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유머와 함께 상소리를 섞어가면서 연기하듯 요란한 제스처를 동원해 진지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호인풍이어서 친근감이 갔다. 그는 작년에 〈버드맨〉으로 오스카 감독상을 탔다.
〈레버넌트〉는 19세기 초 늦가을 미국의 로키산맥에서 모피 사냥을 하던 휴 글래스가 겪은 처절한 생존투쟁과 빈사상태에 빠진 자기를 버리고 간 동료에 대한 복수를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해 만들었다.
―어떻게 이 얘기에 끌렸으며 또 무엇을 말하고자 했습니까.
“모피사냥꾼인 휴 글래스가 곰에게 물려 빈사상태에서 동료에게 버림을 받은 뒤 살아나 추운 겨울에 복수를 위해 200마일의 눈길을 걷는다는 것은 매우 강력하고 원시적인 이야기입니다. 나는 인간의 생존 본능과 인내 그리고 환경에의 적응력을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이와 함께 당시 미국의 큰 수입원은 모피를 유럽에 팔아 번 돈이라는 점도 흥미가 있지요. 그리고 내가 공허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복수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도 묻고 싶었습니다. 또 영화에서 별로 다루지 않은 19세기 초 미국의 역사적 사실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도전이 있었을 텐데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요.
“모든 장면이 다 도전이었지요. 영화는 대부분 캐나다의 로키산맥에서 찍었는데 처음에 사냥꾼들이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습격을 받는 장면에 200명을 동원했습니다. 그 장면을 위해 예행연습만 몇 달을 했습니다. 가급적 영상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광을 이용해 촬영했기 때문에 하루에 촬영이 가능한 시간이 1시간 반 정도였지요. 모든 것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 해발 8000피트의 산꼭대기에서 촬영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모든 것이 악조건이었으나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얘기이기도 하지요.”
“이 영화는 박자가 잘 맞는 음악과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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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대부분을 캐나다의 로키산맥에서 찍었다. |
“내가 바로 레버넌트라고 느껴집니다. 난 이 영화가 날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기획하고 장소를 물색하는 데만 5년이 걸렸지요. 영화를 완성하고 지금 여러분 앞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나야말로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입니다.”
―리어나도가 곰의 습격을 받는 장면은 너무나 사실적인데 그것을 어떻게 찍었는지요.
“영화를 보는 재미를 망치고 싶지 않아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으나 나는 그 장면을 보는 관객이 직접 곰에게 습격받는 느낌이 들도록 가급적 사실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컴퓨터 특수효과를 사용하긴 했지만 우리는 그 장면을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 사진처럼 생생하게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리어나도는 칭찬받을 만합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습니다. 난 그 장면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어떻게 이런 힘든 영화를 만들고자 했으며 또 리어나도를 영화에 나오도록 설득했는지요.
“이런 영화를 만들겠다고 한 천치는 아마 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마치 밧줄 없이 바위산을 올라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중간까지 오르면 내려갈 수가 없고 계속 올라가야만 하지 않습니까. 캐나다 캘거리의 기후는 하루에도 일곱 번씩이나 변해 죽을 맛이었습니다. 눈이 쌓이는가 하면 2시간 후엔 다 녹아버려 푸른 초원이 되고 이어 3시간 후에는 비가 왔다가 다시 2시간 후에는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 맞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지요. 내가 리어나도를 부르고 또 그가 수락한 것은 그가 환경보호론자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온난화 문제와 자연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염려라는 그의 사명이 영화의 내용에 상관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는 인간이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영화의 내용과 연관이 되지요. 그리고 레오가 영화에 나오기로 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영화에서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는 공포와 고독과 분노와 추위, 그리고 희망 같은 모든 느낌을 자신의 몸과 눈으로만 표현하는데 이것은 배우인 그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40분간 말 한마디 없는 장면이 있지요.”
―영화가 매우 신비한 분위기를 띠는데 의도한 것인지요.
“영화의 골격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매우 간단한 것입니다. 나는 이 영화를 박자가 잘 맞는 음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의 무한한 공간과 침묵이 작품을 영적인 차원으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작품의 물리적인 면과는 또 다른 것이지요.”
“배우를 고를 때 눈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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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연출한 멕시칸 감독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오른쪽)와 필자. |
“내가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고 존경하면서 그들과 같은 작품을 만들려고 목표를 설정한 감독들과 작품들이 있습니다. 감히 이루지는 못할 것 같지만 높은 곳을 겨냥하고는 있지요. 구로사와의 영화와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레프〉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삶과 우리가 그것의 한 부분인 자연을 정경과 감정 면에서 모두 대하서사적으로 그린 베르너 헤어초크의 〈피츠카랄도〉와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으로부터도 영감을 받았습니다. 둘 다 규모가 크면서도 내면의 이야기는 아주 깊지요. 그리고 나는 인간 대 자연 또 인간 대 인간의 대결을 대담하게 서술한 잭 런던과 조셉 콘래드의 글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에게 권하고픈 책은 이 영화의 바탕이 된 존 T. 콜맨의 《휴 글래스 여기에 눕다》입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얻기를 바랍니까.
“내게 지병을 앓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가 이 영화를 본 뒤 영화가 불굴의 정신을 그린 것이어서 위로를 받았다면서 울었습니다.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지요. 영화가 사람들에게 삶의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편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우리 존재의 부분인 자연입니다. 곰의 습격은 우리가 살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라고 보면 됩니다. 암일 수도 있고 이혼일 수도 있고 또 가까운 사람을 잃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삶은 투쟁하면서 진행되는 것이라는 점을 영화로부터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반성하고 또 찾도록 부추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대단히 장관인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리어나도 외의 배우들은 어떻게 뽑았습니까.
“나는 배우들을 고를 때 그들의 눈을 보고 고릅니다. 그 눈이 내면의 삶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배우들을 고릅니다. 재주는 있지만 눈에 내면의 삶이 안 비친다면 그는 경박한 사람이지요. 이와 함께 사람들을 잘 구별할 수 없는 자연 속에서 뚜렷이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을 지닌 배우들로 뽑았습니다.”
―사람들이 영화를 컴퓨터에 내려받아 보면서 영화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좋은 말입니다. 우선 요즘 영화가 처한 위기 중 하나는 TV에나 맞는 작품들이 극장에서 상영된다는 사실입니다. 영화에 있어 잘 만들어진 얘기나 배우들의 연기 외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여지껏 경험하지 못한 신비를 밝혀준다는 점입니다. 그 같은 영화적 계시의 순간은 극장에서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위대한 문학작품과 시와 그림을 읽고 보며 또 말러와 라벨의 음악을 들을 때처럼 어떤 순간적 계시와도 같은 경험을 준다면 사람들은 극장에 갈 것입니다. 그것은 이성적인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지요. 그런 계시와도 같은 경험은 당신으로 하여금 실제 삶에서 얻을 수가 없는 감정에 매달리게 만듭니다. 내가 이 영화에서 시도한 것도 바로 그런 경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같은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촬영이 가능한 하루에 달랑 1시간 반밖에 안 되는 그 시간을 기다린 것입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기다림이었습니다. 그런 아름다움에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보기만 해도 되지요. 우리는 정말로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인간 경험의 사실을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영화 초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사냥꾼들에 대한 습격이 몹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데 편견적인 묘사가 아닙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적이라고 여깁니다. 영화의 역사를 보건대 원주민을 묘사할 때면 늘 변태적으로 그려왔지요. 일종의 편견이 작용한 것인데 그들을 살육을 즐기는 나쁜 사람들로 묘사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성한 종족으로 그리곤 했습니다.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악마가 아니면 성인이라는 2분법으로 나눠 묘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난 영화에서 그들을 우리와 같은 사람들로 그리려고 애썼어요. 과거 영화 속의 원주민들은 우리가 가진 편견의 희생자들입니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또 다른 사냥꾼들에게 납치된 원주민 추장의 딸을 구출하기 위해 이 추장이 사냥꾼들을 공격한 것은 실제로 1823년에 있었던 사실입니다. 난 원주민들을 묘사하면서 그들의 인간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것은 그들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영화의 폭력은 어쩔 수 없는 것”
―너무 끔찍한 장면과 눈 뜨고 보기 힘든 폭력이 있는데 그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생각해 봤는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난 광활한 자연 속에서 인간이 육체적으로 겪는 고통을 크면서도 매우 근접하게 묘사하면서 관객들이 그것을 직접 경험하도록 시도했습니다.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모든 것이 사실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사실 난 이 영화가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난 폭력적인 사람도 아니며 또 그것에 흥미도 없습니다. 영화의 폭력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당시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난 가급적 진실하려고 애썼습니다. 내가 만들어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폭력으로 관객에게 말초신경적인 흥분감을 제공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폭력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기에 주저하지도 않았지만 동시에 과도하지도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우주의 진실에 충실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이 영화는 황무지에서의 생존 드라마인데 당신은 할리우드라는 정글에서 생존할 수 있는 묘책이라도 가지고 있는지요.
“그것에 관한 책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난 단지 내가 이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또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만이 내가 하고픈 일이며 또 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평할 일이 없습니다. 난 항상 좀 더 잘 만들 수 없을까 하고 나를 몰아붙이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게 있어 매우 힘든 일입니다. 항상 기준을 높이 세우기 때문에 그 기준에 맞춘다는 일은 고문이나 마찬가지로 힘듭니다. 그것은 내가 치러야 하는 대가지요. 난 내가 깊이 사랑하고 또 애착을 갖는 작품만 만들려고 합니다. 물론 돈 기백만 달러 받고 쉬엄쉬엄 느슨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나 자신이 그것을 허락하질 않습니다. 따라서 이곳에서 나의 유일한 생존지침이란 나 자신에 충실하고 진실하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