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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경의 컬처토크 ⑮ ‘엄마의 마음’으로 軍 문화에 조언한다

글 : 임도경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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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경
⊙ (사)지역문화소통연구원 원장,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객원교수.
지난 1월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하는 젊은이들. 군대에 아들을 보낸 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임 병장 사건에 이어 윤 일병 사건까지 지켜보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다. 나한테도 이들만 한 아들이 한 명 있다. 결혼과 함께 생긴 이 아들은 아직 살가운 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몸서리치면서, 어쨌든 궁금하면 언제든 안부를 알 수 있고, 어디에서든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 주는 이 아이가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내 아들은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 남편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할 때 태어난 이 아이는 미국 국적과 한국 국적을 가진 이중국적자로 성장했지만, 성인이 되면서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자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그래서 군대를 가지 않았다. 태어난 이후 한국에서 지낸 시간보다 미국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고, 지금도 미국의 유명 아이비리그에서 공부를 곧잘 하고 있으니 졸업 후 거기에 정착해서 살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미국 국적을 택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을 때 내심 섭섭한 마음도 적지 않았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면, 애써 배운 좋은 지식을 한국사회를 위해 쓰면 더 보람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한국 남자들의 세계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진한 동료애의 바탕이 되는 군대도 내심 가기를 원했다. 내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군대를 갔다 온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는 사회 적응력이 달랐다. 아들도 군(軍) 생활을 통해 이런 강인한 사회 적응력을 갖추길 바랐다.
 
  학교에서도 나의 군 복학생 사랑은 유명했다. 난 매 강의에 반장을 뽑는다. 사실 반장의 지도력이 그 강좌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어떤 강의에든 타과 학생들이나 유학생들이 섞여 들어오고, 또 학년 편차도 심하기 때문에 이런 이질적인 요소를 아우를 반장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학기 초가 되면 첫 수업에서는 늘 반장을 지명했다. 1차로는 지원자를 받고, 그중 제대 후 복학한 남학생이 있으면, 무조건 그 학생에게 한 학기의 살림을 맡겼다. 나의 복학생 편애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학 수업 8년 차이다 보니 여러 캐릭터의 반장들을 겪어 보게 됐는데, 어떤 경우에도 복학생만큼 책임감 있게 이 일을 잘해내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듬직한 복학생이 반장 자원을 해 오지 않을 경우, 얼마나 섭섭하던지….
 
  군대 경험에 대한 나의 철석같은 신뢰가 임 병장과 윤 일병 사건으로 사실 산산조각이 나는 느낌이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군에서 200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구타와 가혹행위로 영창에 수감된 병사는 육군에서만 2만7694명이라고 한다. 올 4월엔 가혹행위 가담자 3900여 명을 적발했다고 알려졌다. 또 군 자살자 수가 연간 70~8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강의마다 軍 제대한 복학생을 반장으로 뽑곤 했는데…
 
  이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내가 아꼈던 지난 시절의 복학생 반장들 중 혹시나 이들과 비슷한 군 생활 경험을 한 학생은 없었는지 한 명씩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이 차라리 미국 국적을 택해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이 다행일 수도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처음으로 해 봤다. 폭력적인 선임병 만나서 개죽음을 당하느니 그냥 미국에서 자유롭게 사는 게 효도하는 길이라는 위안도 들었다.
 
  자식을 군대에 안 보내기 위해 온갖 편법을 다 썼거나 쓰고 있는 부모들은 아마 이번 사건을 보면서 그들의 탈법적 행위에 대해 스스로 합리화하려 들 것 같다. ‘거 봐, 그런 곳이잖아. 내 자식 못 보내지.’ 그래도 국방의 도리라며 자식을 군대에 보내 준 윤 일병 부모님 같은 한국의 많은 부모님들에게 진심으로 머리가 숙여진다.
 
  윤 일병이 보낸 지옥 같은 한 달은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팀 로빈스)가 감옥에서 겪게 되는 고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앤디는 무차별한 폭력과 성추행을 이겨 낼 지혜와 동료애라도 있었지만, 주변에 도와줄 사람 한 명 없었던 어린 일병은 혼자 얼마나 외롭고 힘들게 죽어 갔을지 가슴이 먹먹하다. 그 영화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데, 어떤 영화도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을 이번 사건을 통해 실감했다.
 
  한국처럼 정보가 빠른 속도로 유통돼 일반 시민들이 세상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사회에도 군대는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4월에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윤 일병 이야기가 이제야 알려졌다니, 그간 망자는 죽어서도 편히 눈을 못 감았을 것이다.
 
  임 병장 사건 역시 군대 내 왕따가 부른 참극이었는데, 이런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걸 보면, 이제 군은 본질적으로 문화체질 개선작업에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데, 군은 그저 감출 수 있을 때까지 감추는 것만 상책으로 여길 뿐 본질적인 체질개선에는 관심도 없으니 신뢰를 잃는 것이다.
 
 
  폐쇄된 곳에서 누구든 악마로 변할 수 있다는 실험
 
짐바르도 교수(왼쪽)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보통사람들도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71년 예일대 심리학과 필립 짐바르도(Philip G. Zimbardo) 교수가 시행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이 미국 사람들을 경악시킨 적이 있다. 평범한 미국 학생 24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두 주간 폐쇄된 감옥에서 간수와 죄수 역할을 맡기는 실험이었다. 간수를 맡은 그룹은 점점 악마처럼 변해 가 죄수들에게 가혹행위를 일삼기 시작했다. 이 실험은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로 불리며, 나중에 별도의 책으로 나오기까지 했는데, 천사에서 악마로 변한 루시퍼처럼 누구라도 특정한 상황이 주어지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의미에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며,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공간인 군대는 ‘스탠퍼드 교도소’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 청년에게 군 입대는 일상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머리카락만 밀어 버리는 게 아니라, 익숙했던 역사와의 단절이 일어나는 시점이다. 20년간 배워 온 사회적 가치와는 완전히 다른 낯선 조직문화 속으로 들어서는 일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쇠사슬이 끊어지지 않고 맞물리며 사건 사고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커다란 변화를 맞이할 준비는 어떤가. 본격적인 군 생활을 시작하기 전 입대자들은 5주간의 신병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기초 군사훈련을 받게 돼 있다. 군에서 설명하고 있는 5주간 훈련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식훈련은 군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와 행동요령에 대한 교육이다. 여기서 경례와 걸음걸이, 총을 다루는 자세와 개인화기 사격훈련을 받는다. 둘째, 정신교육은 군인으로서 지녀야 할 역사인식과 대적관(對敵觀)을 갖게 하는 교육이다. 셋째, 화생방훈련은 방독면을 착용한 채로 화생방실에 들어가 적군의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 각종 교육을 받는 것이다. 넷째, 수류탄훈련은 화기를 다루는 바른 자세와 함께 실제 수류탄을 던지는 교육을 받는다. 다섯째, 구급법 교육은 전투 중 발생할 수 있는 위급한 환자 발생에 대처하기 위한 교육이다. 여섯째, 숙영 및 행군은 직접 텐트를 치고 야외에서 밤을 새우고 완전군장을 한 채 행군한다. 일곱째, 각개전투는 실제 전투상황을 맞았을 때 개인행동 요령을 익히는 훈련이다.
 
  이게 거의 전부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군대생활에 적응할 체력을 갖추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신적인 적응을 위한 교육내용은 충분치 못했다. 아무리 명령과 복종이 군 기강의 핵심이라고 해도 군 생활문화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또 어떤 것이 부당한 명령인지, 이런 명령을 한 사람은 어떻게 처벌되는지, 이런 부당성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가르쳐주는 교육은 턱없이 부족했다.
 
 
  신병훈련 때부터 군 생활규범 확실히 머리에 심어 놓아야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군대는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발생 시엔 지휘관이 책임을 지므로 어떻게 해서든 문제를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데만 급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직 변호사인 군 인권센터의 한 운영위원은, 병사들 갈등으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지휘관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곳에 모아 놓고 대충 사과하고 넘어가는 식으로 얼버무리려 하기 때문에 폭력의 대물림이 이뤄진다고 비판했다. 지휘관으로 올라갈수록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만 걱정할 뿐 사건으로 인해 희생되는 군인 한 명쯤은 그다지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군 조직의 생리라는 이야기다.
 
  지휘관들 자신의 목이 그렇게 소중하다면, 그들부터 앞장서서 군대 내 문화부터 바꿔 갈 것을 권하고 싶다. 그것이 자신의 명줄도 늘리고 새파란 부하들을 불합리한 학대로부터 보호하는 길이다.
 
  그 문화를 가르쳐 주는 곳이 바로 신병훈련 프로그램이어야 할 것이다. 왜? 그곳이 바로 군 생활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난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책을 군 주요 인사들이 한 번씩 읽어 보기를 권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평생 지켜야 할 도리들을 사실 우리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할아버지 손을 잡고 다니는 시절에 다 배운다는 사실을 되새겨주고 있다. 단지 우리는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할아버지 나이였던 저자가 유치원에서 배운 교훈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무엇이든 나눠 가져라.
  페어플레이를 하라.
  남을 때리지 마라.
  사용한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갖다 놓아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 스스로 치워라.
  자기 것이 아닌 물건에는 손대지 말라.
  남에게 상처를 줬으면 반드시 미안하다고 말하라.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어라.
  화장실을 쓴 다음에는 꼭 물을 내려라.
  세상 밖으로 나갈 때는 차 조심을 할 것이며, 서로 손을 잡고 의지해라.
  플라스틱 컵에 심은 작은 씨앗을 기억하라. 뿌리를 내리고 싹이 올라오지만, 아무도 그것이 어떻게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정말로 알지 못한다. 우리의 삶 또한 그런 것과 같은 것이다. 금붕어와 애완용 쥐와 흰쥐, 그리고 플라스틱 컵 안에 심은 작은 씨앗조차 모두가 죽는다. 우리 역시 언젠가는 죽는다.

 
  우리가 살면서 지켜야 할 모든 규칙들은 사실 세상에 첫걸음을 떼던 시절에 다 배운다. 그리고 그걸 그때 배웠다는 것조차 잊지만, 그래도 그 규범 내에서 우리는 생활을 해 오고 있다(물론 자주 어기지만).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해야 할 사람들에겐 첫걸음을 떼는 그 순간 앞으로 펼쳐질 세상에 대한 규범을 우선적으로 머릿속에 심어 놓는 것이 맞다.
 
  그런 의미에서 군대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신병훈련 프로그램부터 고쳐야 한다. 이 시기에 군 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한 모든 규범을 가르치고, 이것을 어길 경우,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확실하게 인식하게 만들어 놓아야 한다. 시간이 걸리고 좀 더디더라도 그것이 문화개선의 첫걸음이 돼야 할 것이다. 사후약방문성 전시행정은 더 이상 효과가 없다.
 
  상처를 덮어서 감추려 하지 말고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하는 심정으로 교육제도를 개선해 주길 바란다. 그래야 군대 안 보낸 내 아들에 대한 안도보다 사회적 미안함이 더 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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