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鏞頊
⊙ 50세. 서울대 의대 졸업. 서울대 의대 석·박사. 동국대 의대 재활의학과 교수 역임.
現 AG클리닉 원장 겸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
⊙ 저서: 《나이가 두렵지 않은 웰빙건강법》 《20세의 몸으로 100세까지》
《99세까지 88하게 사는 법》 등.
⊙ 50세. 서울대 의대 졸업. 서울대 의대 석·박사. 동국대 의대 재활의학과 교수 역임.
現 AG클리닉 원장 겸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
⊙ 저서: 《나이가 두렵지 않은 웰빙건강법》 《20세의 몸으로 100세까지》
《99세까지 88하게 사는 법》 등.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되면서 외국의 값싼 수입 농산물이 밀려 들어오자, 우리 농산물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농협 등 농·수산 기관이 캠페인 용어로 사용하면서 유행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몸과 흙은 둘이 아니다’이다. 뜻을 풀이해 보면 ‘자신이 사는 땅에서 산출된 식품이 체질에 맞고 좋다’일 것이다. 지금은 농수산물뿐 아니라 모든 상품에서 국산품 애용 차원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신토불이라는 말이 듣기에는 그럴듯해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렇게 맞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다양한 식품을 섭취하는 이유는 식품을 통해 신체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영양소를 얻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만성질환의 원인이 되고 신체를 노화시키는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결국 몸에 좋은 식품이라는 것은 이런 영양소들이 골고루 균형 있게 들어 있으면 되는데, 우리 땅에서 나는 식품에만 그런 성분이 유독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땅보다 더 비옥한 땅에서 난 것이라면 좋은 성분이 더 많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땅에서 난 식품은 질이 떨어질 것이다. 결국 어느 땅에서 어떻게 재배했느냐가 중요하지 반드시 우리 땅에서 난 것만 고집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체질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신토불이를 무슨 신앙처럼 당연시 여긴다.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어서 우리 몸과 흙은 다르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땅에서 나는 식품을 먹는 것이 건강에 가장 좋다는 식(式)이다. 옛말에 ‘100리 밖 음식은 먹지 말라’는 말도 있다. 이것은 식품의 냉장법이나 보관법이 발달하기 전에 멀리서 온 음식은 상하기 쉽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신토불이와 연관지어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경상도에 살면서 그곳에서 나는 식품을 먹던 사람이 전라도에 가서 살면서 거기에서 나는 식품을 먹으면 어떨까? 같은 민족이고 같은 나라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주나 옌볜으로 이주한 한민족은 어떨까? 1960~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은 어떨까? 반대로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건강은 어떨까?
아직까지 이런 사람들이 병에 더 잘 걸린다거나, 건강이 더 좋지 않다거나, 수명이 짧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 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연구가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인에 대한 연구다. 일본인들은 우리와 유전자, 즉 체질이 거의 일치하므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연구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식품원료 생산지보다 식습관이 체질 바꿔
일본에서의 식습관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이민 1세대는 질병 발생 양상이 본토 사람들과 거의 같았으나, 미국의 식습관을 따른 2~3세대는 미국 사람들의 질병 패턴을 따른다는 것이다. 즉 1세대는 본토 사람들처럼 위암이 많고 대장암은 적은 반면, 2~3세대는 미국 사람들처럼 대장암이 많고 위암은 적게 나타났다. 심장병 발생률도 1세대는 본토 사람들 수준으로 낮았으나 2~3세대는 미국인 수준으로 높게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민 1세대는 환경이 바뀌고 먹는 식품의 생산지가 바뀌었어도 본토 사람들과 비교해서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즉 채식과 생선 위주의 ‘일본식 식습관’이냐, 육류와 유제품 중심의 ‘서구식 식습관’이냐가 중요하지 그 식품이 어디에서 생산되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식품의 맛과 영양성분을 혼동한다. 영양성분은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어떤 성분이 많다(또는 적다). 그렇기 때문에 우수하다(그렇지 못하다)’ 하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맛에는 과학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맛에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먹어서 익숙해진 맛, 어머니의 손맛, 좋은 사람과 좋은 자리에서 먹었던 맛은 쉽게 잊히지가 않는 법이다. 우리 땅에서 난 식품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추억과 경험이 녹아 있기에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땅에서 나는 식품이 내 입맛에 맞다거나 맛이 더 좋다는 말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건강에 더 좋다고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기분 좋게 맛있게 먹는 것이 건강에 더 좋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수입산, 나쁜 것이 아니라 들여오는 과정이 문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것은 무엇이고 외국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다.
우리가 즐겨 먹고 우리 음식의 상징처럼 여기는 고추는 원산지가 남미이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5~16세기 또는 임진왜란 이후로 추정하고 있다. 5000년 역사에서 불과 5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마저도 수입산보다는 우리 땅에서 재배한 것이 더 좋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겠지만, 고추의 주요 영양성분인 비타민 A와 C의 함량을 비교해 보면 우리 것이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고추 특유의 매운 맛을 내고 다이어트에 좋은 ‘캡사이신’의 경우는 멕시코산이나 태국산 고추에 더 많이 들어 있다고 하니, 우리 것이 좋다고 우기는 것은 무리다. 물론 필자 역시 멕시코나 태국 고추보다는 입맛에 익숙한 청양고추를 가장 좋아한다.
신토불이라는 용어는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한다. 지금까지 신토불이는 근거가 없다고 해 놓고 이게 무슨 소린가 하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신토불이, 즉 우리 몸에는 우리 농산물이 체질에 맞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보자.
먼저 우리 농산물이 우리 몸에 더 좋다는 근거는 없지만, 먼 나라에서 수입한 농산물은 몸에 좋지 않거나 덜 좋을 가능성이 높다.
모든 농산물은 신선함이 가장 중요하다. 신선함이 강조되는 야채와 과일은 물론이고 쌀이나 심지어는 커피 같은 곡물도 신선할 때 맛은 물론 영양이 최고다. 수확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식품이 가지고 있는 비타민 등 각종 항산화 성분이 변하고 줄어들기 때문이다. 열량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영양성분은 줄어든다는 말이다.
따라서 농산물을 먼 거리에서 가져오려면 신선도와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 각종 보존제와 방부제, 항생제 등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첨가제들이 우리 몸에 해롭다는 것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즉 농산물을 먼 거리에서 아무런 처리 없이 그대로 가져오면 맛과 신선도, 영양이 떨어지고, 맛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보존제나 방부제를 사용하면 몸에 해로운 성분을 섭취하게 된다. 결국 보존제 등으로 처리하지 않은 신선한 농산물을 먹으려면 가까운 거리에서 재배한 것을 먹어야 하므로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환경오염 방지 위해 우리 농산물 먹어야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환경오염 때문이다. 농산물을 먼 나라에서 수출입하려면 많은 양의 화석연료가 소비되고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데 이것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지구 환경오염의 한 원인이 된다.
농산물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가장 큰 이유가 현지 생산 농산물보다 가격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농가가 영세한 소규모라 외국의 거대 기업농들이 대량으로 생산하는 농산물들과 가격 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 싸게 수입 농산물을 먹는 대신 지구 환경오염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 피해가 당장 나에게 미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시기이며 우리의 수준도 그 정도는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하는 마지막 이유로는 식량주권과 농업과 농민 보호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010년 현재 26.7%로 매우 낮은 수준으로서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식량 수출국들이 수출을 제한하는 사태, 소위 말하는 식량의 무기화 사태가 일어날 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식량주권이 위협받게 된 데에는 잘못된 정부정책이 큰 이유가 되겠지만, 우리가 값싼 수입산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농산물을 애용하여야 하는 것이다. 식량주권에 대한 얘기는 《월간조선》 6월 호에 자세히 나와 있고 필자도 이 자료를 인용했으니 관심이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더 나아가 전 지구적 환경보호를 위해서든 이래저래 우리 농산물을 애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천 이전에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우리 농산물이 맛과 영양은 물론 깨끗하고 안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우리 농산물은 품질이 뛰어나고 안전한 먹거리라는 확실한 인식이 소비자들에게 심어져야 비싸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애용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우리 농민들이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을 최소화해서 친환경적으로 질 좋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확신이 설 때 값이 비싸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선택할 것이다.
반경 50km 이내 농산물 먹기 운동
요즘 로컬푸드 운동이 활발하다. 로컬푸드는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농산물을 말하는데 보통 반경 50km 이내의 농산물을 지칭한다.
건강을 끔찍이 생각하는 미국 뉴요커(New Yoker)들이 친환경, 유기농을 넘어서 신선도까지 고려하여 선택하는 것이 로컬푸드다. 개인적으로 로컬푸드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 지역단위에서 체계적으로 실행하고자 하는 것이 로컬푸드 운동이다. 지역의 소비자들은 인근에서 생산한 신선한 재료로 식단을 꾸미고, 인근의 소규모 농민들은 중간상인 없이 바로 소비자들을 만나 적정한 이윤을 챙기는 윈윈전략이다.
미국 뉴욕시에서는 이미 반경 200마일 이내의 농장, 목장, 어촌만이 참여할 수 있는 ‘그린마켓’이 인기라고 하며 이와 유사한 형태의 운동이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선진국에서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생산 지역소비’의 약자로 역시 그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로컬푸드 운동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완주군에서 처음 시작되어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로컬푸드 운동을 잘못 생각하면 국가적·지역적 배타주의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근의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해서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지역경제와 식량주권을 확보하자는 것이지 무조건 우리 농산물만 고집하자는 말은 아니다. 글로벌 경제 시대에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지역 생산 먹거리만 고집할 경우 먹거리의 다양성이 떨어져서 영양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다.
쌀과 과일, 야채같이 주로 많이 먹는 식품은 우리 농산물을 애용하고 가끔씩은 별미로 수입 열대과일이나 식품을 먹는다면 우리 건강과 농업을 함께 지키는 이상적인 로컬푸드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주위의 로컬푸드에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
그런데 이 신토불이라는 말이 듣기에는 그럴듯해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렇게 맞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다양한 식품을 섭취하는 이유는 식품을 통해 신체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영양소를 얻기 위해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만성질환의 원인이 되고 신체를 노화시키는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결국 몸에 좋은 식품이라는 것은 이런 영양소들이 골고루 균형 있게 들어 있으면 되는데, 우리 땅에서 나는 식품에만 그런 성분이 유독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땅보다 더 비옥한 땅에서 난 것이라면 좋은 성분이 더 많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땅에서 난 식품은 질이 떨어질 것이다. 결국 어느 땅에서 어떻게 재배했느냐가 중요하지 반드시 우리 땅에서 난 것만 고집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체질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신토불이를 무슨 신앙처럼 당연시 여긴다.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어서 우리 몸과 흙은 다르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땅에서 나는 식품을 먹는 것이 건강에 가장 좋다는 식(式)이다. 옛말에 ‘100리 밖 음식은 먹지 말라’는 말도 있다. 이것은 식품의 냉장법이나 보관법이 발달하기 전에 멀리서 온 음식은 상하기 쉽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신토불이와 연관지어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경상도에 살면서 그곳에서 나는 식품을 먹던 사람이 전라도에 가서 살면서 거기에서 나는 식품을 먹으면 어떨까? 같은 민족이고 같은 나라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주나 옌볜으로 이주한 한민족은 어떨까? 1960~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은 어떨까? 반대로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건강은 어떨까?
아직까지 이런 사람들이 병에 더 잘 걸린다거나, 건강이 더 좋지 않다거나, 수명이 짧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 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연구가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인에 대한 연구다. 일본인들은 우리와 유전자, 즉 체질이 거의 일치하므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연구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식품원료 생산지보다 식습관이 체질 바꿔
일본에서의 식습관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이민 1세대는 질병 발생 양상이 본토 사람들과 거의 같았으나, 미국의 식습관을 따른 2~3세대는 미국 사람들의 질병 패턴을 따른다는 것이다. 즉 1세대는 본토 사람들처럼 위암이 많고 대장암은 적은 반면, 2~3세대는 미국 사람들처럼 대장암이 많고 위암은 적게 나타났다. 심장병 발생률도 1세대는 본토 사람들 수준으로 낮았으나 2~3세대는 미국인 수준으로 높게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민 1세대는 환경이 바뀌고 먹는 식품의 생산지가 바뀌었어도 본토 사람들과 비교해서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즉 채식과 생선 위주의 ‘일본식 식습관’이냐, 육류와 유제품 중심의 ‘서구식 식습관’이냐가 중요하지 그 식품이 어디에서 생산되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식품의 맛과 영양성분을 혼동한다. 영양성분은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어떤 성분이 많다(또는 적다). 그렇기 때문에 우수하다(그렇지 못하다)’ 하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맛에는 과학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맛에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먹어서 익숙해진 맛, 어머니의 손맛, 좋은 사람과 좋은 자리에서 먹었던 맛은 쉽게 잊히지가 않는 법이다. 우리 땅에서 난 식품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추억과 경험이 녹아 있기에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땅에서 나는 식품이 내 입맛에 맞다거나 맛이 더 좋다는 말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건강에 더 좋다고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기분 좋게 맛있게 먹는 것이 건강에 더 좋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수입산, 나쁜 것이 아니라 들여오는 과정이 문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것은 무엇이고 외국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다.
우리가 즐겨 먹고 우리 음식의 상징처럼 여기는 고추는 원산지가 남미이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5~16세기 또는 임진왜란 이후로 추정하고 있다. 5000년 역사에서 불과 5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마저도 수입산보다는 우리 땅에서 재배한 것이 더 좋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겠지만, 고추의 주요 영양성분인 비타민 A와 C의 함량을 비교해 보면 우리 것이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없다.
고추 특유의 매운 맛을 내고 다이어트에 좋은 ‘캡사이신’의 경우는 멕시코산이나 태국산 고추에 더 많이 들어 있다고 하니, 우리 것이 좋다고 우기는 것은 무리다. 물론 필자 역시 멕시코나 태국 고추보다는 입맛에 익숙한 청양고추를 가장 좋아한다.
신토불이라는 용어는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한다. 지금까지 신토불이는 근거가 없다고 해 놓고 이게 무슨 소린가 하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신토불이, 즉 우리 몸에는 우리 농산물이 체질에 맞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보자.
먼저 우리 농산물이 우리 몸에 더 좋다는 근거는 없지만, 먼 나라에서 수입한 농산물은 몸에 좋지 않거나 덜 좋을 가능성이 높다.
모든 농산물은 신선함이 가장 중요하다. 신선함이 강조되는 야채와 과일은 물론이고 쌀이나 심지어는 커피 같은 곡물도 신선할 때 맛은 물론 영양이 최고다. 수확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식품이 가지고 있는 비타민 등 각종 항산화 성분이 변하고 줄어들기 때문이다. 열량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영양성분은 줄어든다는 말이다.
따라서 농산물을 먼 거리에서 가져오려면 신선도와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 각종 보존제와 방부제, 항생제 등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첨가제들이 우리 몸에 해롭다는 것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즉 농산물을 먼 거리에서 아무런 처리 없이 그대로 가져오면 맛과 신선도, 영양이 떨어지고, 맛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보존제나 방부제를 사용하면 몸에 해로운 성분을 섭취하게 된다. 결국 보존제 등으로 처리하지 않은 신선한 농산물을 먹으려면 가까운 거리에서 재배한 것을 먹어야 하므로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환경오염 방지 위해 우리 농산물 먹어야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환경오염 때문이다. 농산물을 먼 나라에서 수출입하려면 많은 양의 화석연료가 소비되고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데 이것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지구 환경오염의 한 원인이 된다.
농산물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가장 큰 이유가 현지 생산 농산물보다 가격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농가가 영세한 소규모라 외국의 거대 기업농들이 대량으로 생산하는 농산물들과 가격 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 싸게 수입 농산물을 먹는 대신 지구 환경오염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 피해가 당장 나에게 미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시기이며 우리의 수준도 그 정도는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하는 마지막 이유로는 식량주권과 농업과 농민 보호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010년 현재 26.7%로 매우 낮은 수준으로서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식량 수출국들이 수출을 제한하는 사태, 소위 말하는 식량의 무기화 사태가 일어날 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식량주권이 위협받게 된 데에는 잘못된 정부정책이 큰 이유가 되겠지만, 우리가 값싼 수입산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농산물을 애용하여야 하는 것이다. 식량주권에 대한 얘기는 《월간조선》 6월 호에 자세히 나와 있고 필자도 이 자료를 인용했으니 관심이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더 나아가 전 지구적 환경보호를 위해서든 이래저래 우리 농산물을 애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천 이전에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우리 농산물이 맛과 영양은 물론 깨끗하고 안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우리 농산물은 품질이 뛰어나고 안전한 먹거리라는 확실한 인식이 소비자들에게 심어져야 비싸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애용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우리 농민들이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을 최소화해서 친환경적으로 질 좋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확신이 설 때 값이 비싸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선택할 것이다.
반경 50km 이내 농산물 먹기 운동
요즘 로컬푸드 운동이 활발하다. 로컬푸드는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농산물을 말하는데 보통 반경 50km 이내의 농산물을 지칭한다.
건강을 끔찍이 생각하는 미국 뉴요커(New Yoker)들이 친환경, 유기농을 넘어서 신선도까지 고려하여 선택하는 것이 로컬푸드다. 개인적으로 로컬푸드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 지역단위에서 체계적으로 실행하고자 하는 것이 로컬푸드 운동이다. 지역의 소비자들은 인근에서 생산한 신선한 재료로 식단을 꾸미고, 인근의 소규모 농민들은 중간상인 없이 바로 소비자들을 만나 적정한 이윤을 챙기는 윈윈전략이다.
미국 뉴욕시에서는 이미 반경 200마일 이내의 농장, 목장, 어촌만이 참여할 수 있는 ‘그린마켓’이 인기라고 하며 이와 유사한 형태의 운동이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선진국에서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생산 지역소비’의 약자로 역시 그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로컬푸드 운동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완주군에서 처음 시작되어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로컬푸드 운동을 잘못 생각하면 국가적·지역적 배타주의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근의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해서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지역경제와 식량주권을 확보하자는 것이지 무조건 우리 농산물만 고집하자는 말은 아니다. 글로벌 경제 시대에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지역 생산 먹거리만 고집할 경우 먹거리의 다양성이 떨어져서 영양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다.
쌀과 과일, 야채같이 주로 많이 먹는 식품은 우리 농산물을 애용하고 가끔씩은 별미로 수입 열대과일이나 식품을 먹는다면 우리 건강과 농업을 함께 지키는 이상적인 로컬푸드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주위의 로컬푸드에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