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부터 대전방송 〈화첩기행〉 진행하며 전국 풍광을 초대형 붓으로 기록
⊙ ‘소리를 그리는’ 작가… ‘퍼해밍(perhaming)’으로 음악과 미술의 융합 추구
⊙ ‘루카스 박’ 이름으로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 300억원대 론칭
⊙ 일본에 있는 안견 〈몽유도원도〉 영구 반환 위해 노력
朴守福
1965년생. 체코 야나체크 예술아카데미(JAMU) 박사 / 이상벽·박수복 예술동행전 외 단체전 190여 차례, 개인전 20여 차례 / 충남도립미술관 건립추진위원, 한국미술국제교류협회 부이사장 등 역임. 現 안견기념사업회 이사장, 해인미술관 관장
⊙ ‘소리를 그리는’ 작가… ‘퍼해밍(perhaming)’으로 음악과 미술의 융합 추구
⊙ ‘루카스 박’ 이름으로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 300억원대 론칭
⊙ 일본에 있는 안견 〈몽유도원도〉 영구 반환 위해 노력
朴守福
1965년생. 체코 야나체크 예술아카데미(JAMU) 박사 / 이상벽·박수복 예술동행전 외 단체전 190여 차례, 개인전 20여 차례 / 충남도립미술관 건립추진위원, 한국미술국제교류협회 부이사장 등 역임. 現 안견기념사업회 이사장, 해인미술관 관장
- ‘퍼해밍 액션 퍼포먼스’ 화가 박수복. 회화와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독창적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동양의 직선·곡선과 서양의 형태적 면(面)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자신만의 회화 문법을 세운 화가가 있다. 일필휘지의 대담함으로 화면을 밀어붙이는 ‘루카스 박’ 박수복 화백이다. 그의 작업은 회화에 머물지 않는다. 몸·음악·감정·즉흥이 동시에 작동하는 퍼해밍 액션 퍼포먼스(perhaming action performance)로 회화 자체를 하나의 공연으로 확장한다. ‘퍼해밍’은 퍼포먼스(performance)와 해프닝(happening)을 융합해 그가 개척한 독자적인 예술 영역이다.
박 화백은 2012년부터 TJB대전방송 〈화첩기행〉을 진행하며 전국의 여러 풍광과 인물들을 초대형 붓으로 기록했다. 바람과 물소리, 현장의 호흡을 한번의 획으로 수렴하는 전대미문의 대형 붓 퍼포먼스는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2021년부터는 OBS W채널 〈박수복의 예술기행〉으로 외연을 넓혔다.
박 화백은 ‘루카스 박(Lucas Park)’이란 이름으로 글로벌 경매 사이트 이베이(eBay)에 작품을 등록한 국내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론칭 액수가 300억원이 넘는다.
지난 10월 13일부터 열흘간 박수복 화백의 런던 사치 갤러리 포커스 아트페어 초대전 ‘마더 어스(Mother Earth)’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는 깊은 철학적 메시지가 런던 미술계에 강렬한 울림을 줬다.
특히 퍼해밍 액션 퍼포먼스라는 독창적 장르와 전통 한지, 황칠 등 동양적 재료가 빚어낸 ‘동서양 융합’의 미학이 안목 높은 유럽 컬렉터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 8월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그를 만났다. 이후 여러 차례 문자, 통화, 이메일 등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심도 있는 대화를 이어 갔다.
“눈물로 그린 바람, 그 순간이 생생해”
― 긴 시간, 그러니까 15년간 〈화첩기행〉 프로를 진행하셨는데, 대형 붓 퍼포먼스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화첩기행〉은 제게 그림을 그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죠. 전국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며 그곳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붓으로 기록하는 과정이었어요.
〈화첩기행〉은 정적(靜的)인 풍경을 넘어 살아 있는 예술을 보여 주고 싶다는 제 철학이 담긴 프로그램입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은 그 어떤 물감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특별한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를 시청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대형 붓을 들고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펼쳤어요.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붓에 담아 한번의 획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저에게 큰 도전이자 즐거움이죠.”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음악의 호흡과 멜로디를 따라서, 붓을 움켜쥔 그의 손끝에서 폭발하듯 색이 터지는 장면을 영상으로 보았다. 몸은 하나의 붓이 되어 바닥을 휘저으며 호흡하고 있었다. 숨, 땀, 빛, 물감이 뒤섞여 거대한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순간, 그는 캔버스 위에서 ‘그린다’기보다 자신을 ‘살아 내고’ 사물을 ‘살려 내고’ 있었다. 예술이 곧 몸짓이요, 존재의 언어가 되는 장엄한 퍼포먼스였다.
― 여러 곳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소나 작품이 있나요?
“모든 곳이 소중하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찾아갔을 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낯설지만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화폭에 담아낼 때마다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 그림을 통해 많은 분들이 숨겨진 국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박수복 화백은 TJB 〈화첩기행〉에서 수백 곳이 넘는 지역을 다녔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가슴 깊이 남아 있는 한 장면이 있다고 말한다.
“충남의 외딴 바다 마을을 찾았는데, 해질 무렵 바람이 거세게 불었어요. 바람이 어찌나 사무치던지… 순간 어머니의 숨결 같았어요. 곧바로 붓 대신 손으로 먹을 찍어, 바람을 그대로 화폭에 옮겼습니다. 제작진도 할 말을 잊었죠.”
그날 그는 말 그대로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해풍(海風)의 숨결, 어촌의 적막, 늙은 어부의 얼굴까지도 물감이 아닌 감정으로 엑스레이를 찍듯 화폭에 그대로 투사했다. 작업을 마친 후 고요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건 그림이 아니라 삶의 한 조각이었어요. 방송이었지만 오롯이 나 자신으로 돌아간 시간, 평생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베이 300억 론칭의 의미
그의 작품들이 글로벌 플랫폼 이베이에 300억원 규모로 론칭됐다는 사실은 단순한 액수를 넘어 매우 상징적이고 의미 깊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베이는 단순한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아니다. 전 세계 수집가와 예술 애호가들이 주목하는 글로벌 마켓이다. 그런 경매시장에 작품이 오르고 그 규모가 300억원대로 책정되었다는 것은 국제미술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자, 그만의 작품 철학과 메시지가 보편적 감동으로 이어졌음을 가늠하게 하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서양 중심 경매 시스템에서 동양, 그중에서도 한국 작가의 작업이 정당한 가치로 소개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한국적 정서와 철학이 ‘세계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음을 확인한 사건이었습니다.”
박수복 화백은 창작활동 외에도 충남 서산 해인미술관 관장이자 (사)안견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을 수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충남 서산 출신인 안견(安堅· 1418~1450년 추정)은 조선 초기 궁중 화원(畵員)으로 활동했으며, 이상적 풍경화 양식인 ‘이념산수’의 조선적 틀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있다. 안견기념사업회는 44년 역사를 지닌 단체다. 박수복 화백은 안견문화제(대한민국안견미술대전·전국청소년미술공모전·학술제·추모제)를 기반으로 LA·베이징·나라(奈良) 등 해외 지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몽유도원도〉가 아직 일본 나라시의 덴리(天理)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만큼, 영구 반환을 위한 노력도 전개할 것입니다. 안견기념사업회가 단순히 과거의 예술가를 기리는 단체를 넘어,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살아 있는 예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K–팝 열풍처럼 안견 선생의 예술이 세계 속으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박수복 화백은 작업이 있는 날, 하루를 온전히 그림에 바치기 위해 일체의 외부 일정을 비워 둔다고 한다. 그에게 예술은 순간의 영감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와 몰입에서 비롯된다. 해가 뜨기 전 고요한 어둠 속에서 일어나 몸을 정갈히 하고 찻물을 올리는 것이 하루의 첫 의식이다. 선(禪) 수행과 마찬가지의 마음가짐이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신체와 정신의 균형을 작업의 기본이라 믿는다.
“화가는 빛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빛을 보려면 먼저 내면이 투명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의 매체로 삼아 자연의 리듬과 조응하며 작품에 몰입한다. 작업에 들어가는 순간, 시간은 멈춘다. 고요하게 집중하며, 붓끝의 기운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제야 첫 획을 긋는다. 이 순간의 몰입은 삼매(三昧)와 같아, 자아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오직 붓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 그의 하루는 조용하지만 강렬하다. 작업하는 날엔 음식을 줄이고 철저히 자신에게 빠져드는 완전한 몰입. 그 모든 과정이 모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이 탄생한다.
첫 붓질은 눈물에서 시작
소년 박수복은 여느 또래들과 조금 달랐다. 딱지나 구슬치기 같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혼자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고 상상하는 시간을 더 좋아했다. 아이들이란 으레 밖에서 뛰노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방 안 퉁수’라 부르곤 했다.
일곱 살 무렵 크게 혼난 적이 있다. 그림만 그린다고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고 무릎 꿇은 채 두 손을 들고 벌을 받던 그날,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다. 소년은 고인 눈물을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과 발가락에 찍어 방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조용히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손에 그림물감과 붓을 들고 돌아왔다. 그날이 아버지에게 ‘그림을 그리는 아이’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의미심장한 날이 되었다. 어머니의 통찰력과 판단력에 그는 지금도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다.
박 화백의 말이다.
“그날 어머니가 준 물감과 붓은 단순한 유년의 선물이 아니었어요. 한 아이를 예술의 길로 이끈 운명의 도구였어요. 그렇게 제 첫 붓질은 눈물에서 시작됐죠.”
제물포의 바다, 항구의 풍경
그의 유년 시절은 인천 앞바다와 함께했는데 고독한 겨울바다가 그렇게도 좋았단다. 정박한 배에 올라 다니며 사색하고 상상하는 그에게 바다는 예술을 일깨운 놀이터였다.
“끝도 없는 바다는 미지의 세계였고 어린 마음에 그 드넓음을 동경했죠. 그 망망한 바다를 떠다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배의 자유로움을 좋아했어요.”
항구 근처에서 열린 사생대회. 중고등학생 형 누나들, 그리고 모자와 멜빵바지 차림의 프로 작가들이 이젤을 펼쳐 놓고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작은 항구의 풍경이 되었고, 그의 마음속에 영원한 풍경화로 남았다.
“그때였던 것 같아요.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처음 느낀 게.”
소년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었다. 그리고 정확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인천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한 곳에서 열린 대규모 미술대회에 참가해 5~6학년 부문 최고상을 수상했고, 그의 작품은 교회 예배당 전시실에 오랫동안 걸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유년 시절부터 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운명적으로 화가로 살아야겠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성장의 역경과 어른이 된 이후의 다양한 경험들이 화가가 되는 운명에 짜맞춰져 정해진 수순을 밟는 기분이었어요. 물론 어머니의 오랜 응원이 화가의 길을 걷는 원동력이 됐죠.”
그러던 중 30대 후반, 청년 박수복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삶의 방향을 잃고 모든 걸 내려놓은 채 길을 떠났다. 목적지도 계획도 없었다. 그렇게 찾아든 곳이 ‘닻개’(충남 서산 지곡면 닻개포구)였다. 인적 없는 그곳에서 그는 10년 가까이 홀로 지냈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유일한 벗은 밤하늘의 별뿐이었다.
“별과 대화했고, 수없이 쏟아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달랬어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았어요. 별 속에 어머니가 계셨다는 걸요.”
서산 닻개에서 길을 찾다… 갯벌, 바람, 그리고 삶의 울림
닻개에서의 생활은 혹독했다. 절반은 춥고 배고픈 시간이었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유화 물감 하나 살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방구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3000원짜리 먹물 한 통이 그의 예술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양동이에 먹물을 풀어 한 달 동안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크나큰 기쁨이었다. 유화 물감조차 살 수 없었던 절망이 역설적이게도 그를 동양화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한 통의 먹물은 그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열어 가는 여정에서, 그의 예술 세계의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상징이자 실체적 도구였다.
그렇게 그는 충남 서산이라는 낯선 땅과 하나가 되었다. 서산의 자연은 그에게 배경이 아니라 생명의 서사였다. 갯벌의 작은 생명과 물고랑의 소리까지 화면 속 리듬으로 녹아들었다.
“갯벌은 삶 그 자체였어요. 인간의 애환이 스며 있는 땅이었죠.”
그에게 그림을 가르친 스승이나 멘토는 따로 없었다. 반 고흐, 세잔, 루벤스를 통해 그는 ‘화가의 눈과 마음’을 배웠다. 단순히 예쁜 그림이 아니라 화가의 눈으로 본 세상, 마음으로 느낀 색을 그려 낸 작품들이었다. 그런 그림들에서 위로받고 자극받았으며, 자신도 그렇게 그리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특히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Simon and Pero)〉(1630년)는 ‘모성(母性)’의 확장으로 읽혔다.
― 작품에 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는데, 어머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한학자셨고, 동양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셨죠. 조선시대 미술, 중국 회화, 그리고 박수근 화백에 대한 이야기까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한국 미술의 흐름을 접할 수 있었어요.”
박수근(朴壽根·1914~1965년) 화백은 그가 태어난 해인 1965년에 작고했지만, 어머니는 그를 종종 언급하며 박 화백에게 예술의 방향을 넌지시 일러 주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로테스크하게 변형된 이유
― 지난 4월 전시회 때 작품을 보면 어머니 모습이 그로테스크하던데, 이유가 있나요? 작품 속 어머니는 팔 없이 목이 굽고 다리가 꼬인 모습입니다.
“이른 봄에 동토(凍土)를 뚫고 나오는 고사리를 닮아 구불구불한 생명의 위대한 힘을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힘 있게 표현했어요. 마치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처럼요. 가이아가 가진 미학적 철학의 첫 번째는 사랑, 두 번째는 희생입니다.”
그에게 어머니는 ‘눈물 그림 사건’ 이후부터 줄곧 예술 작업의 바탕이자 영감의 샘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예술 장르의 영향이 녹아 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그의 감성을 예리하면서도 풍요롭게 자극하는 원천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 모든 감정을 토해 내고 싶어졌고, 5번 〈운명〉을 들을 때면 거대한 서사시가 그림으로 그려지는 듯한 강렬한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저를 ‘소리를 그리는’ 작가로 만들었고, 음악과 미술의 융합을 추구하게 만들었어요. 음악가들과 함께 〈화첩기행〉을 다니며, 즉석에서 연주되는 클래식 선율에 반응해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 예술을 시도할 수 있었죠. 이 감각이 결국 ‘퍼해밍 액션 퍼포먼스’라는 예술 세계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을 직접 찾아갔다. 단지 음악을 듣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이 음악을 어떤 철학으로 연주하는지, 그 삶의 태도와 예술적 세계관을 내 작업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라는 화두(話頭)들 들고 찾은 유럽에서의 경험은 그의 예술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17년 체코 브르노(Brno)의 야나체크 예술아카데미(JAMU)에서 예술경영 박사 학위를 받은 것도 융합을 향한 의지에서였다.
“음악과 미술의 융합, 즉 컬래버레이션(콜라보)에 대한 오랜 열망을 ‘퍼포먼스 예술’로 구현하고자 체코에서 학업을 택했죠. 화가로서의 작업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과 사회, 예술과 경영의 접점을 고민하며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려 도전했어요.”
― 어떤 화가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예술은 한정된 틀 속에 머무르지 않고, 내면 깊은 곳의 진실을 꺼내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끊임없이 실험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東西 조화를 엮은 하모니의 화가’
그는 또한 자신이 기억되고 싶은 화가로서의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저는 ‘동서(東西)의 조화를 엮은 하모니의 화가’로, 늘 새로운 주제에 도전한 화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자연과 인간의 감성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고, 한 주제의 작품을 50점 이상 그리지 않는 소신을 평생 지켜 왔기 때문입니다.”
박 화백은 자신의 예술철학이 후배들에게도 영감이 되길 바란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입니다. 후배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존중하며 응원하고 싶어요.”
그가 말하는 ‘색깔’이 내면과 외면의 소리, 음악의 멜로디와 리듬, 몸짓, 포효, 침묵, 시, 구도(求道)까지 다양한 요소를 포괄하는 함축적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의 그를 만든 ‘색깔’은 눈물로 그린 그림의 투명함으로부터, 먹물 한 통에서 체화된 모든 것을 품는 검은색으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박 화백은 2012년부터 TJB대전방송 〈화첩기행〉을 진행하며 전국의 여러 풍광과 인물들을 초대형 붓으로 기록했다. 바람과 물소리, 현장의 호흡을 한번의 획으로 수렴하는 전대미문의 대형 붓 퍼포먼스는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2021년부터는 OBS W채널 〈박수복의 예술기행〉으로 외연을 넓혔다.
박 화백은 ‘루카스 박(Lucas Park)’이란 이름으로 글로벌 경매 사이트 이베이(eBay)에 작품을 등록한 국내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론칭 액수가 300억원이 넘는다.
지난 10월 13일부터 열흘간 박수복 화백의 런던 사치 갤러리 포커스 아트페어 초대전 ‘마더 어스(Mother Earth)’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는 깊은 철학적 메시지가 런던 미술계에 강렬한 울림을 줬다.
특히 퍼해밍 액션 퍼포먼스라는 독창적 장르와 전통 한지, 황칠 등 동양적 재료가 빚어낸 ‘동서양 융합’의 미학이 안목 높은 유럽 컬렉터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 8월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그를 만났다. 이후 여러 차례 문자, 통화, 이메일 등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심도 있는 대화를 이어 갔다.
“눈물로 그린 바람, 그 순간이 생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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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방송 〈화첩기행〉 진행자인 박수복은 10여 년 동안 전국의 산천과 인물, 마을의 풍광을 찾아다니며 그 순간의 감흥을 화폭에 담아냈다. |
“〈화첩기행〉은 제게 그림을 그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죠. 전국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며 그곳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붓으로 기록하는 과정이었어요.
〈화첩기행〉은 정적(靜的)인 풍경을 넘어 살아 있는 예술을 보여 주고 싶다는 제 철학이 담긴 프로그램입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은 그 어떤 물감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특별한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를 시청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대형 붓을 들고 즉흥적인 퍼포먼스를 펼쳤어요.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붓에 담아 한번의 획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저에게 큰 도전이자 즐거움이죠.”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음악의 호흡과 멜로디를 따라서, 붓을 움켜쥔 그의 손끝에서 폭발하듯 색이 터지는 장면을 영상으로 보았다. 몸은 하나의 붓이 되어 바닥을 휘저으며 호흡하고 있었다. 숨, 땀, 빛, 물감이 뒤섞여 거대한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순간, 그는 캔버스 위에서 ‘그린다’기보다 자신을 ‘살아 내고’ 사물을 ‘살려 내고’ 있었다. 예술이 곧 몸짓이요, 존재의 언어가 되는 장엄한 퍼포먼스였다.
― 여러 곳을 다니며 그림을 그리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소나 작품이 있나요?
“모든 곳이 소중하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찾아갔을 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낯설지만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화폭에 담아낼 때마다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 그림을 통해 많은 분들이 숨겨진 국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박수복 화백은 TJB 〈화첩기행〉에서 수백 곳이 넘는 지역을 다녔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가슴 깊이 남아 있는 한 장면이 있다고 말한다.
“충남의 외딴 바다 마을을 찾았는데, 해질 무렵 바람이 거세게 불었어요. 바람이 어찌나 사무치던지… 순간 어머니의 숨결 같았어요. 곧바로 붓 대신 손으로 먹을 찍어, 바람을 그대로 화폭에 옮겼습니다. 제작진도 할 말을 잊었죠.”
그날 그는 말 그대로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해풍(海風)의 숨결, 어촌의 적막, 늙은 어부의 얼굴까지도 물감이 아닌 감정으로 엑스레이를 찍듯 화폭에 그대로 투사했다. 작업을 마친 후 고요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건 그림이 아니라 삶의 한 조각이었어요. 방송이었지만 오롯이 나 자신으로 돌아간 시간, 평생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베이 300억 론칭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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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인미술관 관장이자 (사)안견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수복 화백. 조선의 대화가 안견을 K-아트로 재해석해 세계에 알리겠다는 각오다. |
“서양 중심 경매 시스템에서 동양, 그중에서도 한국 작가의 작업이 정당한 가치로 소개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한국적 정서와 철학이 ‘세계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음을 확인한 사건이었습니다.”
박수복 화백은 창작활동 외에도 충남 서산 해인미술관 관장이자 (사)안견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을 수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충남 서산 출신인 안견(安堅· 1418~1450년 추정)은 조선 초기 궁중 화원(畵員)으로 활동했으며, 이상적 풍경화 양식인 ‘이념산수’의 조선적 틀을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있다. 안견기념사업회는 44년 역사를 지닌 단체다. 박수복 화백은 안견문화제(대한민국안견미술대전·전국청소년미술공모전·학술제·추모제)를 기반으로 LA·베이징·나라(奈良) 등 해외 지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몽유도원도〉가 아직 일본 나라시의 덴리(天理)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만큼, 영구 반환을 위한 노력도 전개할 것입니다. 안견기념사업회가 단순히 과거의 예술가를 기리는 단체를 넘어,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살아 있는 예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K–팝 열풍처럼 안견 선생의 예술이 세계 속으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박수복 화백은 작업이 있는 날, 하루를 온전히 그림에 바치기 위해 일체의 외부 일정을 비워 둔다고 한다. 그에게 예술은 순간의 영감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와 몰입에서 비롯된다. 해가 뜨기 전 고요한 어둠 속에서 일어나 몸을 정갈히 하고 찻물을 올리는 것이 하루의 첫 의식이다. 선(禪) 수행과 마찬가지의 마음가짐이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신체와 정신의 균형을 작업의 기본이라 믿는다.
“화가는 빛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빛을 보려면 먼저 내면이 투명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의 매체로 삼아 자연의 리듬과 조응하며 작품에 몰입한다. 작업에 들어가는 순간, 시간은 멈춘다. 고요하게 집중하며, 붓끝의 기운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제야 첫 획을 긋는다. 이 순간의 몰입은 삼매(三昧)와 같아, 자아와 대상의 경계가 사라지고 오직 붓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 그의 하루는 조용하지만 강렬하다. 작업하는 날엔 음식을 줄이고 철저히 자신에게 빠져드는 완전한 몰입. 그 모든 과정이 모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이 탄생한다.
첫 붓질은 눈물에서 시작
소년 박수복은 여느 또래들과 조금 달랐다. 딱지나 구슬치기 같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혼자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고 상상하는 시간을 더 좋아했다. 아이들이란 으레 밖에서 뛰노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방 안 퉁수’라 부르곤 했다.
일곱 살 무렵 크게 혼난 적이 있다. 그림만 그린다고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고 무릎 꿇은 채 두 손을 들고 벌을 받던 그날,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다. 소년은 고인 눈물을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과 발가락에 찍어 방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조용히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손에 그림물감과 붓을 들고 돌아왔다. 그날이 아버지에게 ‘그림을 그리는 아이’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의미심장한 날이 되었다. 어머니의 통찰력과 판단력에 그는 지금도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다.
박 화백의 말이다.
“그날 어머니가 준 물감과 붓은 단순한 유년의 선물이 아니었어요. 한 아이를 예술의 길로 이끈 운명의 도구였어요. 그렇게 제 첫 붓질은 눈물에서 시작됐죠.”
제물포의 바다, 항구의 풍경
그의 유년 시절은 인천 앞바다와 함께했는데 고독한 겨울바다가 그렇게도 좋았단다. 정박한 배에 올라 다니며 사색하고 상상하는 그에게 바다는 예술을 일깨운 놀이터였다.
“끝도 없는 바다는 미지의 세계였고 어린 마음에 그 드넓음을 동경했죠. 그 망망한 바다를 떠다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배의 자유로움을 좋아했어요.”
항구 근처에서 열린 사생대회. 중고등학생 형 누나들, 그리고 모자와 멜빵바지 차림의 프로 작가들이 이젤을 펼쳐 놓고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작은 항구의 풍경이 되었고, 그의 마음속에 영원한 풍경화로 남았다.
“그때였던 것 같아요.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처음 느낀 게.”
소년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었다. 그리고 정확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인천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한 곳에서 열린 대규모 미술대회에 참가해 5~6학년 부문 최고상을 수상했고, 그의 작품은 교회 예배당 전시실에 오랫동안 걸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유년 시절부터 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운명적으로 화가로 살아야겠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성장의 역경과 어른이 된 이후의 다양한 경험들이 화가가 되는 운명에 짜맞춰져 정해진 수순을 밟는 기분이었어요. 물론 어머니의 오랜 응원이 화가의 길을 걷는 원동력이 됐죠.”
그러던 중 30대 후반, 청년 박수복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삶의 방향을 잃고 모든 걸 내려놓은 채 길을 떠났다. 목적지도 계획도 없었다. 그렇게 찾아든 곳이 ‘닻개’(충남 서산 지곡면 닻개포구)였다. 인적 없는 그곳에서 그는 10년 가까이 홀로 지냈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유일한 벗은 밤하늘의 별뿐이었다.
“별과 대화했고, 수없이 쏟아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달랬어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았어요. 별 속에 어머니가 계셨다는 걸요.”
서산 닻개에서 길을 찾다… 갯벌, 바람, 그리고 삶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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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복은 충남 서산 지곡면 ‘닻개’에 홀로 머물며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자신만의 미학 세계를 일구었다. |
양동이에 먹물을 풀어 한 달 동안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크나큰 기쁨이었다. 유화 물감조차 살 수 없었던 절망이 역설적이게도 그를 동양화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한 통의 먹물은 그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열어 가는 여정에서, 그의 예술 세계의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상징이자 실체적 도구였다.
그렇게 그는 충남 서산이라는 낯선 땅과 하나가 되었다. 서산의 자연은 그에게 배경이 아니라 생명의 서사였다. 갯벌의 작은 생명과 물고랑의 소리까지 화면 속 리듬으로 녹아들었다.
“갯벌은 삶 그 자체였어요. 인간의 애환이 스며 있는 땅이었죠.”
그에게 그림을 가르친 스승이나 멘토는 따로 없었다. 반 고흐, 세잔, 루벤스를 통해 그는 ‘화가의 눈과 마음’을 배웠다. 단순히 예쁜 그림이 아니라 화가의 눈으로 본 세상, 마음으로 느낀 색을 그려 낸 작품들이었다. 그런 그림들에서 위로받고 자극받았으며, 자신도 그렇게 그리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특히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Simon and Pero)〉(1630년)는 ‘모성(母性)’의 확장으로 읽혔다.
― 작품에 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는데, 어머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한학자셨고, 동양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셨죠. 조선시대 미술, 중국 회화, 그리고 박수근 화백에 대한 이야기까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한국 미술의 흐름을 접할 수 있었어요.”
박수근(朴壽根·1914~1965년) 화백은 그가 태어난 해인 1965년에 작고했지만, 어머니는 그를 종종 언급하며 박 화백에게 예술의 방향을 넌지시 일러 주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로테스크하게 변형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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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복 화백의 작품 속 ‘어머니’ 상. 팔이 없고, 목이 굽고, 다리가 꼬인 모습으로 표현된 인물은 ‘고사리처럼 구불구불한 생명의 위대한 힘’을 상징한다. |
“이른 봄에 동토(凍土)를 뚫고 나오는 고사리를 닮아 구불구불한 생명의 위대한 힘을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힘 있게 표현했어요. 마치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처럼요. 가이아가 가진 미학적 철학의 첫 번째는 사랑, 두 번째는 희생입니다.”
그에게 어머니는 ‘눈물 그림 사건’ 이후부터 줄곧 예술 작업의 바탕이자 영감의 샘이었다.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예술 장르의 영향이 녹아 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그의 감성을 예리하면서도 풍요롭게 자극하는 원천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 모든 감정을 토해 내고 싶어졌고, 5번 〈운명〉을 들을 때면 거대한 서사시가 그림으로 그려지는 듯한 강렬한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저를 ‘소리를 그리는’ 작가로 만들었고, 음악과 미술의 융합을 추구하게 만들었어요. 음악가들과 함께 〈화첩기행〉을 다니며, 즉석에서 연주되는 클래식 선율에 반응해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 예술을 시도할 수 있었죠. 이 감각이 결국 ‘퍼해밍 액션 퍼포먼스’라는 예술 세계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을 직접 찾아갔다. 단지 음악을 듣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이 음악을 어떤 철학으로 연주하는지, 그 삶의 태도와 예술적 세계관을 내 작업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라는 화두(話頭)들 들고 찾은 유럽에서의 경험은 그의 예술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017년 체코 브르노(Brno)의 야나체크 예술아카데미(JAMU)에서 예술경영 박사 학위를 받은 것도 융합을 향한 의지에서였다.
“음악과 미술의 융합, 즉 컬래버레이션(콜라보)에 대한 오랜 열망을 ‘퍼포먼스 예술’로 구현하고자 체코에서 학업을 택했죠. 화가로서의 작업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과 사회, 예술과 경영의 접점을 고민하며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려 도전했어요.”
― 어떤 화가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예술은 한정된 틀 속에 머무르지 않고, 내면 깊은 곳의 진실을 꺼내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끊임없이 실험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東西 조화를 엮은 하모니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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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과 소리, 리듬으로 확장되는 박수복의 회화 세계는 단순한 시각의 영역을 넘어, 내면의 울림과 외면의 소리, 시와 구도(求道)의 정신까지 포괄한다. |
“저는 ‘동서(東西)의 조화를 엮은 하모니의 화가’로, 늘 새로운 주제에 도전한 화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자연과 인간의 감성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고, 한 주제의 작품을 50점 이상 그리지 않는 소신을 평생 지켜 왔기 때문입니다.”
박 화백은 자신의 예술철학이 후배들에게도 영감이 되길 바란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입니다. 후배들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존중하며 응원하고 싶어요.”
그가 말하는 ‘색깔’이 내면과 외면의 소리, 음악의 멜로디와 리듬, 몸짓, 포효, 침묵, 시, 구도(求道)까지 다양한 요소를 포괄하는 함축적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의 그를 만든 ‘색깔’은 눈물로 그린 그림의 투명함으로부터, 먹물 한 통에서 체화된 모든 것을 품는 검은색으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