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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승만연구원’ 원장 양준모 연세대 교수

“한국 경제 성장 토대 만든 것은 이승만 대통령”

글 : 고기정  월간조선 기자  yamko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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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자 출신 첫 이승만연구원장
⊙ “학생들은 이승만에 대한 호불호 없어… 일부 사람이 문제”
⊙ “해방 정국에서 대한민국 건국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성과”

梁峻模
1965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UCLA 경제학 박사 / 한국지급결제학회 회장, 한국연금학회수석부회장, 산업에너지환경연구소 이사장 등 역임. 現 연세대 정경대학 경제학 교수
사진=고기정
  자하문터널을 나와 석파정(石坡亭) 옆 언덕길을 올라가면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팻말이 붙어 있는 돌담이 보인다. 45도 경사의 좁은 골목을 올라가다 보면 고풍스러운 양옥집이 나온다.
 
  이승만연구원은 1997년 일제(日帝) 시대 당시 이승만(李承晩)을 도왔던 독립투사 최기식씨의 딸 최송옥(崔松玉) 여사가 자신이 살던 건물을 기증하면서 설립됐다. 당시 대지를 합쳐 시가 50억원 규모였다. 건물이 확보된 이후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李仁秀) 박사가 이화장에 보관 중이던 자료를 모두 기증했다. 당시 이승만에 대해 싸늘했던 분위기 때문에 ‘현대한국학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연구를 시작했지만, 2011년 류석춘(柳錫春) 교수가 원장을 맡으면서 “왜 이승만 연구를 숨어서 해야 하느냐?”며 이승만연구원 현판을 내걸고, 이승만의 호를 딴 우남(雩南) 학술회의도 개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1일부터 제4대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양준모(梁峻模·59) 교수는 경제학자다. 이제까지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자가 이승만연구원장을 맡았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이승만연구원 최초 ‘경제학’ 전공 원장
 
  ― 경제학자 출신 이승만연구원장은 처음인데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경제학자 출신인 제가 원장이 되었으니, 경제 관련 연구를 더 강화하려 합니다.”
 
  ― 이승만 대통령이 경제와 관련해 애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성과 중에서 경제 부문과 관련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농지 개혁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농지 개혁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농민은행과 농협을 설립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죠. 전력과 석탄, 인천제철 등 여러 기관 산업의 기초를 다졌으며, 수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한국은행과 대한증권협회, 한국산업은행을 세우고 은행법을 만드는 등 금융 시스템도 갖추기 위해 노력했죠. 이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알릴 계획입니다.”
 

  ― 보통 사람들은 경제 발전이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당시에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토대를 잘 닦아두었죠. 사람들이 건물을 볼 때 겉면만 판단하지, 밑에 기초공사는 살펴보지 않잖아요. 대표적인 게 원자력 발전이에요. 우리나라가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1956년 미국의 시슬리 박사가 한국에 와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원자력에 관해 이야기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전력이 많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죠. 이승만 대통령이 ‘원자력을 언제부터 쓸 수 있냐’고 물었더니, 박사가 ‘20년 정도 걸린다’라고 했대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81세였는데, 시슬리 박사 얘기를 듣고 바로 투자를 시작했어요. 외국으로 원자력 공부를 하러 가는 학생들을 불러서 ‘열심히 공부하고 오라’ 격려했는데, 그 사람들이 거의 50년간 한국 원자력계를 이끌었죠. 오랜 시간이 걸릴 걸 알고 있었는데도 후대를 위해 투자하신 게 대단한 거예요. 저는 이 일화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 경제 발전 외에도 아직 안 알려진 업적이 있을까요.
 
  “종교, 그중에서도 불교 분야죠. 오늘의 불교 발전은 이승만 대통령이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농지 개혁을 할 때 사찰 소유 토지는 일정 부분 예외로 인정해주고, 각종 귀속재산 매각으로 재정적 기반을 마련해주었을 뿐 아니라 사하촌(寺下村) 개발과 주변 명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수입원을 확대해주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불교 존중은 어머니의 불심(佛心)에서 온 것으로, 파주 용암사에 시주하여 동자상을 만들기도 했지요.”
 
 
  “학생들은 ‘이승만’에 대해 긍정적… 일부 교직원이 문제”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연세대 이승만연구원
  ―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학생들도 많을 것 같아요.
 
  “학생들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호불호가 없어요. 역사적 사실을 가르쳐주고, 스스로 깨닫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 진실에 다가가는 자세들이 보이죠. 오히려 일부 교직원이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승만연구원장’ 명함만 봐도 안색이 달라지는 사람도 있어요.”
 
  ― 86 세대인데, 원장님은 과거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적은 없나요?
 
  “저는 배재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과거부터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그런 주장을 들을 때마다 증거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거나, 대립적 관계로 인해 의도적인 폄훼의 발언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저는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의 내용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이 많았는데, 성장하면서 교과서가 왜곡됐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어요.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정신》과 《일본 내막기》를 읽고 난 뒤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팬이 됐습니다.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요.”
 
 
  “해방 정국서 대한민국 건국한 것은 기적에 가까워”
 
  ―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로 건국한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공헌(貢獻)입니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여성 인권, 그리고 교육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한 분이죠. 혼란스러운 해방 정국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여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요.
 
  “경제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거예요. 이승만 대통령은 기업가 양성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셨죠. 이런 부문 연구가 등한시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경제 성장이 마치 국가 주도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갑자기 기적처럼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경제에는 기적이 없어요. 다 이승만 대통령이 씨를 뿌려두신 덕이죠.”
 

  ― ‘경제에는 기적이 없다’, 굉장히 좋은 말이네요.
 
  “이승만 대통령이 이뤄낸 기적이죠. 그래서 우리가 늘 그 뿌리가 어디인가를 생각하고 뿌리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교과서에 실려야 할 내용 같은데요, 왜 학교에서는 이런 내용을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요.
 
  “학교에서는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민주화 이후에 경제 발전이 됐다’ 이런 식의 이분법적이고 단절적인 사고방식을 강요하죠. 이런 교육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만 할 뿐이에요. 누가 어떤 계기로 경제 발전을 시작했고, 그게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육하원칙(六何原則)에 따른 역사관을 재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뿌리가 있었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경제 발전이 가능했거든요. 다만 박정희 대통령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승만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토대가 활용되지 못하고 허물어질 수도 있었겠죠.”
 
 
  “공산주의는 거짓을 바탕으로 한 사상”
 
  ― 지금 추진 중인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리가 어떤 건물을 지을 때 튼튼한 기반 위에 지어야 오래가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은 결국 사람과 지식이 반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역사관과 이승만 대통령을 흠모하는 정(情), 지식을 가진 많은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는 거죠.”
 
  ― 이승만 대통령의 과(過)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과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더 연구를 해보겠습니다.”
 
  ―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반대했나요?
 
  “공산주의가 왜 문제가 되는지는 너무 쉬운 질문이면서도, 긴 답변이 필요한 질문입니다. 흔히 공산주의는 ‘재산을 나눠 가져야 한다’ ‘자본가를 없애야 한다’ ‘지식 계급을 없애야 한다’ ‘종교 단체를 혁파하자’고 주장합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이승만 대통령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죠. 공산주의는 거짓을 바탕으로 경제·사회 발전의 원리를 반대로 해석하고 발전을 억제하는 논리이며, 새로운 계급사회의 부활을 야기하는 사상입니다.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야 계급은 사라지고 신분적 평등은 새로운 발전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 체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치 체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가 주장했듯이, 분업과 교환이 공동체의 발전을 만들어냅니다. 공산주의는 분업과 교환을 소외라는 개념으로 죄악시하고 이를 파괴하도록 하며 사회 발전을 중단시킵니다. 공산주의가 문제인 가장 큰 이유입니다.”
 
  ― 앞으로 이승만연구원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승만연구원은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국민 모두가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받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창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자유와 풍요를 만들어내는 데 이승만연구원도 일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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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    (2024-11-09) 찬성 : 9   반대 : 0
왜 이승만 대통령께서 해방 정국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립한 것이 기적이었는지 상세한 이유를 설명 해 주어야 국민들 특히 학생들이 아 그렇구나!라고 동의 하게 됩니다. 해방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은 조선 왕정에서 식민통치로 바로 전환되었기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조선조 시대의 노비, 상민들은 평등 세상으로 포장된 공산 사회주의를 동경하고 쉽게 좌경화되었는데 그 당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70%가 공산 사회주의를 선호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로당 세력이 급팽창했고 김일성은 그것을 믿고 남침을 감행 한 것이지요. 70%가 공산 사회주의를 선호 했는데 30%의 지지로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건립했다는 것이 큰 업적이요 기적인 것입니다.
고위급 탈북자에게 남북한이 왜 이렇게 확연하게 다른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냐고 물었는데 한 마디로 줄말못 섰지요 라고 했다. 공산사회주의 줄에 섰기에 오늘날 이렇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 시장경제의 줄에 선 것이 기적이요 축복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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