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마을 협력국 장관급 회의… 45개국에서 각료급 인사만 60여 명 참가
⊙ “해외의 새마을운동 지원은 단순한 경제 지원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노하우’를 수출하는 ‘문화·역사·경제 종합 수출 프로젝트’”
⊙ “새마을 교육을 통해 각국 새마을지도자·주민의 의식 개혁… 중앙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의지 필요”
⊙ “문 정부 시절 ‘새마을운동대전환계획’ 시도… 중앙회 운동장에 ‘스마트팜’ 시설 설치”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헐러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 “해외의 새마을운동 지원은 단순한 경제 지원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노하우’를 수출하는 ‘문화·역사·경제 종합 수출 프로젝트’”
⊙ “새마을 교육을 통해 각국 새마을지도자·주민의 의식 개혁… 중앙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의지 필요”
⊙ “문 정부 시절 ‘새마을운동대전환계획’ 시도… 중앙회 운동장에 ‘스마트팜’ 시설 설치”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과 학사, 런던대 로열헐러웨이 컬리지 박사(비교연극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MBC 라디오 앵커, 現 배나TV·(주)戰後70년 ‘생생현대사TV’ 대표 / 저서 《북한요지경;배나TV 장원재입니다》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 《논어를 축구로 풀다》 《장원재의 배우열전》
7월 5일부터 7일까지, 부산 BEXCO에서 새마을 협력국 장관급 회의가 열렸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태평양 등 5대양 6대주 45개국에서 각료급 인사만 60여 명이 참가한 성대한 행사였다. 새마을운동중앙회가 초청 의사를 전하자 2명 이상 참석 가능 여부를 묻는 나라도 많았다고 한다. 추가 인원의 자비 참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인기 폭발이었다. ‘새마을’이 대체 무엇이기에, 녹색 깃발 아래 이토록 많은 나라의 각료가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일까. 참석자들은 왜 한결같이 ‘새마을’에 자기 나라의 미래가 달렸다며 ‘한국은 우리가 닮고 싶은 모델’이라고 이구동성(異口同聲)인 것일까. 곽대훈(68·郭大勳)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을 만나 물어보았다.
해외 새마을운동의 전국적·지속적 확장
― 행사 치르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7월 부산 행사, 어떤 행사였습니까.
“공식 명칭이 ‘새마을운동 글로벌 협력국 장관회의’였습니다. 금년이 첫 회였지요. 현재 새마을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들이 전부 46개국입니다. 이 나라의 중앙정부 장관들을 불러서 앞으로 새마을운동을 어떻게 세계적으로 확산시켜 나갈지, 또 협력국 상호 간에 여러 가지 경험을 공유해서 새마을운동이 각국에 빨리 정착하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논의했습니다.”
― 그동안 새마을운동중앙회에서 각국의 새마을운동 지도자나 공무원을 불러 꾸준히 새마을 교육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각료들을 특별히 초청해야 할 필요가 있었나요.
“새마을운동 글로벌 리그를 구성한 시점은 2016년입니다. 그 전부터도 대한민국 정부가 지원해서 새마을운동 시범마을 사업을 해왔죠. 지역 주민과 지방정부의 참여 열기가 높은데, 아무래도 중앙정부의 관심이 좀 적으니까 문제가 있었습니다.”
― 어떤 문제였나요.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2009년부터 몇몇 나라에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으로 새마을운동을 전파했는데,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자생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실시하는 마을이 나왔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그 나라 중앙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이 없다면, 새마을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하거나 장기적으로 이어가는 데 애로가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는데 ‘그때뿐’으로 끝나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래서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장관회의를 개최한 겁니다.”
“중앙정부의 조직적 지원·관리 필요”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앞으로 이 행사를 정례화할 구상이다. 우리의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해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각국 중앙정부 차원의 관심을 끌어내는 일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과 온 중앙부처, 그리고 새마을지도자와 국민이 긴밀하게 소통하며 새마을운동을 전국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했다. 이것이 성공 요인 중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새마을 교육을 통해 각국 새마을지도자와 마을 주민의 의식을 개혁했지만, 그 나라 중앙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의지와 실천 의지가 없다면 새마을운동은 조기에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서서히 변할 수는 있겠지만, 단기간 내에 전(全)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변혁을 이룩하기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몇몇 나라의 경우 조금만 더 집중적으로 지원하면 분명히 큰 성과가 있을 텐데, 여러 문제로 중간에 멈춰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요. 그 점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 어떤 나라들입니까.
“동남아시아는 캄보디아, 라오스, 스리랑카 등이 새마을운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미얀마도 활동이 활발했는데 정치적 소요 사태 이후로 실적이 미미하죠. 이들 나라에선 마을 단위 성공 사례는 정말 많은데, 그것이 더 큰 단위로 퍼져나가지 못했습니다. 중앙정부의 조직적 지원과 관리가 있다면 이러한 성공 사례를 나라 전역으로 확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마을운동이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린 대표적인 나라가 있다. 우간다와 동티모르다. 두 나라는 마을 단위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중앙정부 주도로 농촌 개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동티모르는 국가 차원에서 펼치고 있는 지역개발 및 농촌개발 정책에 대해 발표했다. 법제화를 통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예산 배정도 했다고 한다. 이 사례를 동티모르 관계 장관이 직접 발표하니 참석자들의 몰입도가 높았다. 우간다의 성공 사례 발표도 비슷한 반응을 불렀다.
“새마을운동 당시 현장 사라져”
“우간다는 자기들끼리 먼저 새마을운동 시범마을을 만들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뒤에 우리에게 연락한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새마을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자기들의 현재 소득 수준, 기후, 풍토, 문화에 맞춰 개발한 지역밀착형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저희가 우간다에 교육센터를 만들어서 이 모델을 인접국인 부룬디나 잠비아에 전파하려고 합니다. 현지화한 새마을운동은 소득 증대로 가는 기간도 단축할 수 있고, 성공률도 높일 수 있습니다. 중남미에선 온두라스와 도미니카공화국이 성공 사례죠. 가장 모범적이고 현지화한 모델을 채택해서 도우면 우리가 직접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을 겁니다. 지구촌 새마을운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접근법입니다.”
왜 그런가. 새마을운동은 지배욕(支配慾)이 없는 인류애적 생활 개선 정신혁명이기 때문이다. 중국(中國)의 일대일로(一帶一路)와는 차원이 다르다. 1970년대의 한국 사례보다는 이웃 나라의 최근 성공 사례가 수용성(受容性)이 크다. 디테일한 실천 방안을 그대로 따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성남 새마을운동중앙본부로 세계 각국에서 연수생이 옵니다. 그런데 보여줄 만한 곳이 없어요. 무슨 말이냐. 우리나라의 1970년대 시절, 새마을운동을 막 시작할 당시와 흡사한 현장이 다 사라졌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보기에 대한민국은 매우 발전한 모습만 있는 나라죠. 실습이 어려운 겁니다. 물론 얼마 전에 잠비아, 부룬디 연수생들과 퇴비를 생산하는 현장에 다녀온 적은 있습니다. 퇴비는 지력(地力)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부룬디의 현재 국민소득은 1인당 240달러 내외입니다. 우리가 새마을운동 시작할 당시와 비슷하죠. 한데 당시 상황과 비슷한 현장을 지금 찾아서 보여줄 수 없으니까 사진 자료라든지 문서라든지 박물관 등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역전의 용사, 초창기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을 모셔 강연을 듣기도 한다. 새마을운동 성공의 이유와 당대의 분위기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문화적 타임머신이다. 이 역할을 지금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지도자가 수행한다면 교육 및 실천 효과가 배가하리라는 기대가 있다.
“우간다에 거점 새마을 교육센터 만들 계획”
“《월간조선》 5월호에 인터뷰한 우간다의 카용고 박사 같은 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새마을운동 전파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런 분이 예컨대 잠비아에 가서 ‘우리 우간다에서는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새마을운동을 했다’라고 소개하고 성공한 마을의 사례도 설명하는 겁니다. 우간다에 아예 거점 새마을 교육센터를 만들려는 계획도 있어요. 인근 나라의 지도자들을 불러 교육하는 기관입니다. 성공 사례를 만든 나라의 새마을지도자가 현지인과 이웃 나라 새마을지도자를 상대로 교육한다, 이런 프로그램을 잘 만들면 지구촌 새마을운동은 또 한 차원 진화할 겁니다. 완전히 달라질 것 같아요.”
그는 “새마을운동이 널리 퍼지면 퍼지는 만큼 전 세계에서 빈곤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새마을운동만큼 가난 퇴치 효과가 확실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당시 중앙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야기하고, 이번 행사에서 각국 정부의 자발적 협조를 구한 목적도 분명하다. 새마을운동이 더 빠르게, 효율적으로 퍼지고 정착하기를 바라서다. 실적에 관해서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바로 ‘새마을운동의 살아 있는 성공 모델’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새마을운동 스스로가 생명체처럼 지구 곳곳으로 뻗어나간 사례도 있다. ‘자생적 새마을운동 실시 국가’가 나온 것이다.
“가난은 反인권”
“피지 장관이 그러더군요. 같은 태평양 도서국인 파푸아뉴기니가 새마을운동을 통해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고. 경제 개발뿐 아니라 주민들의 의식 구조 또한 변하는 것이 놀라웠다고. 그래서 한국 정부에다가 ‘우리도 새마을운동을 하겠다’라고 연락했다는 겁니다. ‘지구촌 새마을운동’의 전파 사례죠. 놀랍지 않습니까?”
‘지구촌 새마을운동’이라는 표현이 계속 나왔다. 새마을운동을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새마을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큰 운동입니다. 가난을 퇴치해 삶의 질을 개선했으니까요. 가난은 반인권(反人權)입니다. 하루 세끼 밥을 못 먹는 곳에서 어떻게 문화가 꽃피고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겠습니까. 새마을운동이 글로벌하게 퍼져나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난이 낭만이라는 이야기는 몽땅 거짓말입니다. 가난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공염불(空念佛)에 불과해요. 새마을운동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원조받던 나라가 원조하는 나라로 바뀐 첫 번째 국가라는 사실도 자랑스럽지만, 우리는 가난으로부터 탈출하는 노하우 자체를 알려줄 수 있어요.”
K-팝, K-드라마, K-푸드, K-스포츠 등 한류(韓流)의 세계적 대유행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류의 유행은 대한민국이 전 세계로부터 ‘매력 있는 나라’의 이미지를 얻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매력의 원천은 아마도 경제성장이 아닐까? 잘사는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생활방식은 언제나 멋지게 보인다. 그렇다면 전 인류를 가난으로부터 탈출시켜 인간다운 세상으로 인도하는 새마을운동은 어쩌면 한류의 끝판왕일 수도 있을 터이다. 하늘이 우리 민족에게 부여한 숭고한 사명일지도 모른다. 3000년쯤 뒤 쓰일 ‘세계사’ 한국 관련 항목에 다른 것은 몰라도 ‘글로벌 새마을운동’만큼은 꼭 기록되고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붙인 브랜드가 K-붐이다. 그렇다. 새마을운동은 이처럼 전 세계가 적극 수입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다. 그런데 지난 시절, 이 브랜드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가 있었다. 고의인지 선의(善意)의 실패인지는 알 수 없다.
불법 스마트팜 시설 설치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에 가서 미얀마의 아웅산 수 치 여사를 만난 일이 있습니다. 아웅산 수 치 여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새마을운동이 미얀마에 들어와서 농촌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굉장히 감사드린다’라고 했답니다. 그 이후에 새마을운동의 정체성(正體性)을 흔드는 일이 다소 줄어들었다고 들었습니다.”
―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겁니까.
“새마을운동중앙회를 환경단체나 생명운동단체처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운동장에 ‘스마트팜’이라는 시설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철거했어요. 경내에 콩과 보리, 밀도 심고 곤충 사육장도 만들었죠. 아, 스마트 닭장도 있었습니다. 굉장히 이상적으로 접근한 겁니다. 지금은 그 흔적이 다 없어졌어요. 왜 그러냐? 실제로는 스마트 닭장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하니까 유지할 수가 없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린 스마트팜은 운동장에 두 동(棟)이나 세웠었는데 항공촬영을 통해 불법건축물로 적발되었습니다. 허가받지 않고 운영을 한 거죠.”
― 스마트팜에서는 뭘 했습니까.
“수경재배(水耕栽培)를 했다고 합니다. 야채를 키우고… 뭐 좋은 뜻으로 했겠지만, 새마을운동중앙회에 수경재배를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판로(販路)가 있는 것도 아닌데….”
확실한 준비 없이 시작한 일은 늘 예산과 인력의 낭비를 부른다. 희망 사항과 실제 실적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지도자의 활동은 이상주의로써 주변에 적지 않은 피해를 끼친다.
“식당 앞에 연수생과 직원들 휴게 장소를 마련했는데, 그곳에도 보리를 심었다고 들었습니다. 보리농사가 잘돼서 우리 식당에서 쓸 수 있을 정도가 됐더라면 지금도 보리농사를 계속하고 있었겠죠. 그런데 안되니까 최근에 이곳을 휴게 장소로 복원했습니다.”
― 환경운동이나 생명운동이 의미가 없는 운동은 아니지만, 그것이 새마을운동의 본질은 아니잖습니까.
“아니죠. 환경운동하면서 탄소 중립 실천도 하고, 이런 건 굉장히 좋은 활동이죠. 그런데 이것을 새마을에 접목하다 보니, 새마을 회원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 시기에 새마을운동의 역동성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침체되었습니다. 새마을 회원들이 새마을 회원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잃어버렸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文 정부, ‘새마을운동 대전환 계획’ 추진”
― 새마을운동의 정체성이라고 하면 어떤 걸까요.
“가장 중요한 건 근면, 자조, 협동 정신이 충만해서 스스로 자주·자립하는 능력을 기르는 겁니다. 그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거죠. 새마을 단체는 가장 자발적이며 가장 광범위하게 조직되어 있는 자원봉사 조직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생활운동의 기본 정체성이라는 거죠. 그걸 다 잃어버렸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새마을운동을 생명운동·환경운동화하려 한 건 의도적 행위였을까 아닐까? 새마을운동중앙회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보니, 개인적으로 새마을운동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을까 판단된다.
“새마을운동의 대전환 계획인가 뭐 그런 것이 있었고, 실제로 추진이 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우리의 ‘문화적·역사적·세계적 자산’을 허무는 시도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새마을운동 구성원은 놀라운 사람들이다. 새만금이라든가 국가적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새마을 회원들이 구름처럼 나타나서 위기 상황을 타파하는 자원봉사를 했다. 위기 상황을 해결한 뒤에는 다시 아무 말 없이 생업으로 복귀하곤 했다. 지난 몇 년간, 바로 이런 회원들이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뭐 드러내놓고 말씀은 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하죠.”
― 그분들의 자긍심·자부심을 어떻게 하면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그 부분이 제가 가장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분들이 지역사회나 이웃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수 있을지…. 새마을 회원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봉사하는 정신이 몸에 배어 있는 분들입니다.”
― 지역사회 조직이 살아 있나요.
“그럼요. 다 살아 있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 전체 회원이 많이 줄어들었죠. 현재 180만 정도인데, 4~5년 전까지만 해도 200만이 넘었었거든요. 고령화 이유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정치적 혼란을 겪으니까 새마을운동에 뛰어들고자 하는 사람도 좀 줄어들었습니다.”
― 젊은 인력 수급을 가로막는 부분이 있었군요.
“젊은 인력이라기보다, 생활 회원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좀 줄어들었죠.”
― 새마을운동중앙회장으로서 가장 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어떤 겁니까.
“우리 젊은이들을 위한 사업과 해외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싶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 중에 ODA 사업의 일환으로 새마을운동 시범마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제도상 5년까지만 지원할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 예산이 있다면 시범마을 프로젝트가 종료되더라도 한동안 우리가 현지 지도도 하고, 연수도 시키고 이런 것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곽 회장은 우간다나 파푸아뉴기니 이야기도 했다.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새마을운동을 확대하고 있는데, 현지 정부의 재정 여력이 부족해 의욕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예산이 없으니 지원하더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우리 새마을중앙회가 여력이 있다면 자생마을 지원도 확대하고, 종료된 마을도 새마을운동이 정착될 수 있도록 도울 텐데… 현지 주민들 또한 의욕이 있는데, 그걸 못 하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새마을운동을 화해와 치유의 국민운동으로”
곽대훈 회장은 국내적으로는 젊은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새마을운동중앙회는 지난 6월 68개 대학 동아리 2400여 회원을 모아 ‘청년 새마을 연대’를 조직했다. 국내외에서 적극적으로 자원봉사를 하자는 취지로 만든 단체다. ‘자조(自助)’ 정신을 바탕으로, 청년 창업을 지원할 계획도 있다. 기존의 새마을 회원들이 도와주면, 지역사회에 기반한 청년 기업의 창립, 봉사 단체의 확산, 그리고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국내 새마을운동을 청년들의 희망과 연계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현실은 지역 간, 세대 간 갈등이 매우 심합니다. 대한민국이 갈래갈래 찢어져 버렸어요. 이념이든, 빈부(貧富)격차든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새마을 단체가 할 수 있습니다. 새마을에는 ‘협동’ 정신 그리고 살아 있는 ‘조직’이 있으니까요.
아무리 정부가 촘촘하게 사회안전망을 짜도 놓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걸 새마을운동 회원들이 메울 수 있어요. 어떻게? 마을 단위부터 동 단위까지 새마을 회원이 한두 명은 다 있으니까요. 이분들은 무엇보다도 자기가 살고 계시는 동네를 잘 아시는 분들입니다. 봉사 DNA가 장착되어 있고요. 이런 분들이 청년 회원들과 힘을 합치면 지역의 어지간한 문제는 다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새마을운동의 영역을 넓혀서 적극적으로 뛰어들면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긍정적인 변화를 많이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얘기죠.”
그는 새마을운동이 화합과 치유의 국민운동으로 발전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나눔과 돌봄을 강화해야 우리 사회에 미래가 있다고 했다. 다만, 일부 사무실을 민간에 임대해 적자(赤字)를 겨우 메꾸는 현재의 재정 상태로는 실현 불가능한 구상이다. 지구 곳곳의 새마을지도자와 공무원을 초청해 시행하는 새마을 교육사업은 적자가 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사업은 아무리 적자가 나더라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새마을운동중앙회 본연의 임무다.
“나 자신이 새마을운동의 수혜자”
― 지구촌 교육사업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새마을운동 지도자라고 해도 간접적 접촉이 전부잖습니까. 여기 와서 9박 10일 동안 강의를 듣고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면 수강생들의 자세가 변합니다. 새마을운동을 몸으로 체득해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고 할까요? ‘대한민국’이라는 ‘현장’, 새마을운동의 본부에 직접 왔다는 감회가 그렇게 놀라운 효과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이 새마을운동의 전파에 열성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런 당연함이 작동하지 않은 시절도 분명히 있었지만 말이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새마을운동에 진심인 걸까?
“나 자신이 바로 새마을운동 수혜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1955년생인데 중학교 때 처음 집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수도는 그보다 한참 더 뒤에 들어왔고요. 하루 세끼 밥 챙겨 먹는 집이 많지 않았죠. 대도시인 대구 인근 달성군이었는데도 사정이 그랬습니다. 1970년대에 월드뱅크는 1일 1달러 수익을 절대 빈곤선으로 규정했는데, 우리가 그 선을 넘어선 해는 1974년입니다. 새마을운동은 우리 마을에도 큰 변화를 안겨줬죠. 집 앞 개천에 시멘트 다리가 놓이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다리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발전해 가는 것이 눈에 보였어요.”
― 전기가 들어온 후엔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생활 패턴이나 삶의 양상이 확 바뀌었나요.
“그럼요. 180도 바뀌었죠. 과장을 보태면, 중세 농경사회에서 바로 현대로 진입한 겁니다. 호롱불 쓰다가 전기 쓰고, 유선 라디오도 처음 들어봤어요. 나중에 마을에 TV도 들어왔죠. 요즘 생각하면 별것 아니지만, 문화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마을 밖 세상’과 늘 연결되게 됐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장래 희망의 스케일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새마을운동 이후 굶는 아이들 사라져”
― 수도는요.
“수도 들어오기 전에는 조그마한 우물이 있었는데 가물면 우물이 말라서 물을 못 썼죠. 장마가 와도 못 썼습니다. 우물이 오염되니까요. 그 불편함이나 고통이 상상이 되나요?”
― 새마을운동이 마을에 들어오고 나서 체감하기에 우리 마을의 이것이 제일 먼저 변했다 하는 점이 있다면, 뭐가 있습니까.
“마을 길이 변했죠. 길 폭이 넓어지고 다리도 놓고 시멘트 포장도 하니까 진창길이 사라졌습니다. 우마차도 다니게 되었고요. 마을 길 넓힐 때 어른들이 사랑방에 모여 회의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 그 전에는 사랑방 회의가 없었나요.
“사랑방 투전이 있었죠. 새마을운동 전의 농한기 풍경입니다. 물론 새끼도 꼬고 뭐 그러기도 했지만, 노름 말고 농한기에 할 일이 별로 없었어요. 단순히 재미 삼아 벌이는 일이 아니라, 살림 들어먹고 땅문서 잡히고, 심한 경우에는 칼부림도 나는 심각한 사회문제였습니다. 노름빚에 몰려서 야반도주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 새마을운동 이후에는 많이 사라졌습니까.
“거의 다 사라졌죠. 일거리도 생기고 ‘소득 증대’가 되면서 내 손에, 내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많아졌으니까요. ‘희망’이 눈에 보이니까 사람들이 달라진 겁니다.”
그는 새마을운동 전에는 ‘하루 세끼 먹을 때도 있고 못 먹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학교에 도시락을 못 싸간 날도 많았다고 했다. 밥이 없으면 굶거나 수돗물을 먹거나 덜 여문 벼를 쪄서 말린 ‘찐쌀’을 먹었다고 했다.
“찐쌀을 호주머니에 넣어 가서 먹기도 하고, 도시락 싸 온 친구들 밥을 선생님이 한 숟갈씩 덜어서 밥 못 먹는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그랬죠. 미제(美製) 구호물자로 만든 옥수수빵과 분유를 점심시간에 배급하기도 했습니다. 새마을운동 이후엔 굶는 아이들이 사라졌어요.”
곽대훈 회장은 끼니가 떨어진 날 바가지를 들고 옆집에 가서 곡식을 빌려오던 경험담을 말했다. 학교까지 맨발로 다니던 친구들 이야기도 했다.
“배고픈 서러움은 겪어본 사람만 압니다. 먹을 것이 있는데 안 먹는 것하고, 진짜로 먹을 것이 없어서 못 먹는 건 느낌이 전혀 달라요. 밥을 굶으면 사람이 비참해집니다. 제가 겪어봤기 때문에,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 그 아픔에서 빨리 벗어나는 길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입니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걸맞게 지원해야”
― 저도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의 꿈이 국경을 넘어 지구촌 곳곳으로 널리 퍼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외국인 새마을지도자를 만났는데,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까 말씀드린 우간다의 카용고 박사입니다. 정말 새마을 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을 굉장히 존경합니다. 박 대통령의 말씀, 여러 가지 국가를 바꾸는 철학에 관해서도 이해가 높아요. 그것을 자기 나라에서 실천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간다에 자생마을이 300개 정도 됩니다. 자기가 다니면서 지역마다 마을 대표나 주민을 설득하고 자발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시작한 겁니다. 근면, 자조, 협동 정신으로 주민들 의식을 바꾸는 거죠. 그런 지도자가 있으면 지역이 변하고 나라가 변합니다. 카용고 박사는 자기 조국에 대한 애정도 상당히 깊고, 또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이 했던 방식을 우간다에 효율적으로 도입할 수 있나, 어떻게 우간다의 마을과 사회를 변화시킬 것인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실천하는 인물입니다. 이런 인물이 세계적으로 다수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 청년 조직이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사업비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해외의 새마을 시범마을을 확대하고, 한 마을에 지원하는 액수와 기간을 늘렸으면 합니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걸맞게 지원해야죠. 이 일은 단순한 ‘경제 지원’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노하우’를 수출하는 ‘문화·역사·경제 종합 수출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빨리, 가장 많이 만들 수 있는 길이기도 하죠. 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잠비아 새마을지도자의 반응을 빠뜨렸네요.”
― 뭔가요.
“박정희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면 무엇을 여쭙고 싶냐고 했더니 잊을 수 없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 궁금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이 만들려고 노력하던 나라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며 언젠가는 우리도 이렇게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꿈을 꾸게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곽대훈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 누구인가? 곽대훈(郭大勳)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은 경북고,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78년 12월 행정고시(22회) 합격한 후 수습시절 받았던 새마을 교육 내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1985년 4월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경기국 운영과장, 제11·12·13대 대구 달서구청장(2006년 7월 1일~2015년 12월 4일)을 거쳐 제20대 국회의원(대구 달서 갑)으로 일했다. 작년 9월 29일 열린 ‘2022년도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전국 180만 회원 중 335명의 대의원 투표로 제26대 새마을운동중앙회장으로 선출됐다. |
해외 새마을운동의 전국적·지속적 확장
― 행사 치르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7월 부산 행사, 어떤 행사였습니까.
“공식 명칭이 ‘새마을운동 글로벌 협력국 장관회의’였습니다. 금년이 첫 회였지요. 현재 새마을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들이 전부 46개국입니다. 이 나라의 중앙정부 장관들을 불러서 앞으로 새마을운동을 어떻게 세계적으로 확산시켜 나갈지, 또 협력국 상호 간에 여러 가지 경험을 공유해서 새마을운동이 각국에 빨리 정착하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논의했습니다.”
― 그동안 새마을운동중앙회에서 각국의 새마을운동 지도자나 공무원을 불러 꾸준히 새마을 교육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각료들을 특별히 초청해야 할 필요가 있었나요.
“새마을운동 글로벌 리그를 구성한 시점은 2016년입니다. 그 전부터도 대한민국 정부가 지원해서 새마을운동 시범마을 사업을 해왔죠. 지역 주민과 지방정부의 참여 열기가 높은데, 아무래도 중앙정부의 관심이 좀 적으니까 문제가 있었습니다.”
― 어떤 문제였나요.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2009년부터 몇몇 나라에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으로 새마을운동을 전파했는데,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자생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실시하는 마을이 나왔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그 나라 중앙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이 없다면, 새마을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하거나 장기적으로 이어가는 데 애로가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는데 ‘그때뿐’으로 끝나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래서 이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장관회의를 개최한 겁니다.”
“중앙정부의 조직적 지원·관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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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유학생 새마을 교육. 각국에서 찾아와 새마을운동의 경험을 배워간다. |
“새마을 교육을 통해 각국 새마을지도자와 마을 주민의 의식을 개혁했지만, 그 나라 중앙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의지와 실천 의지가 없다면 새마을운동은 조기에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서서히 변할 수는 있겠지만, 단기간 내에 전(全)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변혁을 이룩하기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몇몇 나라의 경우 조금만 더 집중적으로 지원하면 분명히 큰 성과가 있을 텐데, 여러 문제로 중간에 멈춰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요. 그 점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 어떤 나라들입니까.
“동남아시아는 캄보디아, 라오스, 스리랑카 등이 새마을운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미얀마도 활동이 활발했는데 정치적 소요 사태 이후로 실적이 미미하죠. 이들 나라에선 마을 단위 성공 사례는 정말 많은데, 그것이 더 큰 단위로 퍼져나가지 못했습니다. 중앙정부의 조직적 지원과 관리가 있다면 이러한 성공 사례를 나라 전역으로 확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마을운동이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린 대표적인 나라가 있다. 우간다와 동티모르다. 두 나라는 마을 단위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중앙정부 주도로 농촌 개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동티모르는 국가 차원에서 펼치고 있는 지역개발 및 농촌개발 정책에 대해 발표했다. 법제화를 통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예산 배정도 했다고 한다. 이 사례를 동티모르 관계 장관이 직접 발표하니 참석자들의 몰입도가 높았다. 우간다의 성공 사례 발표도 비슷한 반응을 불렀다.
“새마을운동 당시 현장 사라져”
“우간다는 자기들끼리 먼저 새마을운동 시범마을을 만들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뒤에 우리에게 연락한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새마을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자기들의 현재 소득 수준, 기후, 풍토, 문화에 맞춰 개발한 지역밀착형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저희가 우간다에 교육센터를 만들어서 이 모델을 인접국인 부룬디나 잠비아에 전파하려고 합니다. 현지화한 새마을운동은 소득 증대로 가는 기간도 단축할 수 있고, 성공률도 높일 수 있습니다. 중남미에선 온두라스와 도미니카공화국이 성공 사례죠. 가장 모범적이고 현지화한 모델을 채택해서 도우면 우리가 직접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좋을 겁니다. 지구촌 새마을운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접근법입니다.”
왜 그런가. 새마을운동은 지배욕(支配慾)이 없는 인류애적 생활 개선 정신혁명이기 때문이다. 중국(中國)의 일대일로(一帶一路)와는 차원이 다르다. 1970년대의 한국 사례보다는 이웃 나라의 최근 성공 사례가 수용성(受容性)이 크다. 디테일한 실천 방안을 그대로 따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성남 새마을운동중앙본부로 세계 각국에서 연수생이 옵니다. 그런데 보여줄 만한 곳이 없어요. 무슨 말이냐. 우리나라의 1970년대 시절, 새마을운동을 막 시작할 당시와 흡사한 현장이 다 사라졌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보기에 대한민국은 매우 발전한 모습만 있는 나라죠. 실습이 어려운 겁니다. 물론 얼마 전에 잠비아, 부룬디 연수생들과 퇴비를 생산하는 현장에 다녀온 적은 있습니다. 퇴비는 지력(地力)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부룬디의 현재 국민소득은 1인당 240달러 내외입니다. 우리가 새마을운동 시작할 당시와 비슷하죠. 한데 당시 상황과 비슷한 현장을 지금 찾아서 보여줄 수 없으니까 사진 자료라든지 문서라든지 박물관 등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역전의 용사, 초창기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을 모셔 강연을 듣기도 한다. 새마을운동 성공의 이유와 당대의 분위기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문화적 타임머신이다. 이 역할을 지금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지도자가 수행한다면 교육 및 실천 효과가 배가하리라는 기대가 있다.
“《월간조선》 5월호에 인터뷰한 우간다의 카용고 박사 같은 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새마을운동 전파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런 분이 예컨대 잠비아에 가서 ‘우리 우간다에서는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새마을운동을 했다’라고 소개하고 성공한 마을의 사례도 설명하는 겁니다. 우간다에 아예 거점 새마을 교육센터를 만들려는 계획도 있어요. 인근 나라의 지도자들을 불러 교육하는 기관입니다. 성공 사례를 만든 나라의 새마을지도자가 현지인과 이웃 나라 새마을지도자를 상대로 교육한다, 이런 프로그램을 잘 만들면 지구촌 새마을운동은 또 한 차원 진화할 겁니다. 완전히 달라질 것 같아요.”
그는 “새마을운동이 널리 퍼지면 퍼지는 만큼 전 세계에서 빈곤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새마을운동만큼 가난 퇴치 효과가 확실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새마을운동을 시작할 당시 중앙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야기하고, 이번 행사에서 각국 정부의 자발적 협조를 구한 목적도 분명하다. 새마을운동이 더 빠르게, 효율적으로 퍼지고 정착하기를 바라서다. 실적에 관해서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바로 ‘새마을운동의 살아 있는 성공 모델’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새마을운동 스스로가 생명체처럼 지구 곳곳으로 뻗어나간 사례도 있다. ‘자생적 새마을운동 실시 국가’가 나온 것이다.
“가난은 反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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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7일 부산 벡스코에서 2023새마을운동 글로벌 협력국 장관회의가 열렸다. |
‘지구촌 새마을운동’이라는 표현이 계속 나왔다. 새마을운동을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새마을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큰 운동입니다. 가난을 퇴치해 삶의 질을 개선했으니까요. 가난은 반인권(反人權)입니다. 하루 세끼 밥을 못 먹는 곳에서 어떻게 문화가 꽃피고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겠습니까. 새마을운동이 글로벌하게 퍼져나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난이 낭만이라는 이야기는 몽땅 거짓말입니다. 가난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공염불(空念佛)에 불과해요. 새마을운동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원조받던 나라가 원조하는 나라로 바뀐 첫 번째 국가라는 사실도 자랑스럽지만, 우리는 가난으로부터 탈출하는 노하우 자체를 알려줄 수 있어요.”
K-팝, K-드라마, K-푸드, K-스포츠 등 한류(韓流)의 세계적 대유행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류의 유행은 대한민국이 전 세계로부터 ‘매력 있는 나라’의 이미지를 얻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매력의 원천은 아마도 경제성장이 아닐까? 잘사는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생활방식은 언제나 멋지게 보인다. 그렇다면 전 인류를 가난으로부터 탈출시켜 인간다운 세상으로 인도하는 새마을운동은 어쩌면 한류의 끝판왕일 수도 있을 터이다. 하늘이 우리 민족에게 부여한 숭고한 사명일지도 모른다. 3000년쯤 뒤 쓰일 ‘세계사’ 한국 관련 항목에 다른 것은 몰라도 ‘글로벌 새마을운동’만큼은 꼭 기록되고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붙인 브랜드가 K-붐이다. 그렇다. 새마을운동은 이처럼 전 세계가 적극 수입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다. 그런데 지난 시절, 이 브랜드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가 있었다. 고의인지 선의(善意)의 실패인지는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에 가서 미얀마의 아웅산 수 치 여사를 만난 일이 있습니다. 아웅산 수 치 여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새마을운동이 미얀마에 들어와서 농촌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굉장히 감사드린다’라고 했답니다. 그 이후에 새마을운동의 정체성(正體性)을 흔드는 일이 다소 줄어들었다고 들었습니다.”
―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겁니까.
“새마을운동중앙회를 환경단체나 생명운동단체처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운동장에 ‘스마트팜’이라는 시설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철거했어요. 경내에 콩과 보리, 밀도 심고 곤충 사육장도 만들었죠. 아, 스마트 닭장도 있었습니다. 굉장히 이상적으로 접근한 겁니다. 지금은 그 흔적이 다 없어졌어요. 왜 그러냐? 실제로는 스마트 닭장이 제대로 작동을 안 하니까 유지할 수가 없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린 스마트팜은 운동장에 두 동(棟)이나 세웠었는데 항공촬영을 통해 불법건축물로 적발되었습니다. 허가받지 않고 운영을 한 거죠.”
― 스마트팜에서는 뭘 했습니까.
“수경재배(水耕栽培)를 했다고 합니다. 야채를 키우고… 뭐 좋은 뜻으로 했겠지만, 새마을운동중앙회에 수경재배를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판로(販路)가 있는 것도 아닌데….”
확실한 준비 없이 시작한 일은 늘 예산과 인력의 낭비를 부른다. 희망 사항과 실제 실적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지도자의 활동은 이상주의로써 주변에 적지 않은 피해를 끼친다.
“식당 앞에 연수생과 직원들 휴게 장소를 마련했는데, 그곳에도 보리를 심었다고 들었습니다. 보리농사가 잘돼서 우리 식당에서 쓸 수 있을 정도가 됐더라면 지금도 보리농사를 계속하고 있었겠죠. 그런데 안되니까 최근에 이곳을 휴게 장소로 복원했습니다.”
― 환경운동이나 생명운동이 의미가 없는 운동은 아니지만, 그것이 새마을운동의 본질은 아니잖습니까.
“아니죠. 환경운동하면서 탄소 중립 실천도 하고, 이런 건 굉장히 좋은 활동이죠. 그런데 이것을 새마을에 접목하다 보니, 새마을 회원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 시기에 새마을운동의 역동성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침체되었습니다. 새마을 회원들이 새마을 회원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잃어버렸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文 정부, ‘새마을운동 대전환 계획’ 추진”
― 새마을운동의 정체성이라고 하면 어떤 걸까요.
“가장 중요한 건 근면, 자조, 협동 정신이 충만해서 스스로 자주·자립하는 능력을 기르는 겁니다. 그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거죠. 새마을 단체는 가장 자발적이며 가장 광범위하게 조직되어 있는 자원봉사 조직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생활운동의 기본 정체성이라는 거죠. 그걸 다 잃어버렸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새마을운동을 생명운동·환경운동화하려 한 건 의도적 행위였을까 아닐까? 새마을운동중앙회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보니, 개인적으로 새마을운동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을까 판단된다.
“새마을운동의 대전환 계획인가 뭐 그런 것이 있었고, 실제로 추진이 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우리의 ‘문화적·역사적·세계적 자산’을 허무는 시도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새마을운동 구성원은 놀라운 사람들이다. 새만금이라든가 국가적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새마을 회원들이 구름처럼 나타나서 위기 상황을 타파하는 자원봉사를 했다. 위기 상황을 해결한 뒤에는 다시 아무 말 없이 생업으로 복귀하곤 했다. 지난 몇 년간, 바로 이런 회원들이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뭐 드러내놓고 말씀은 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하죠.”
― 그분들의 자긍심·자부심을 어떻게 하면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그 부분이 제가 가장 고민하는 지점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분들이 지역사회나 이웃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수 있을지…. 새마을 회원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봉사하는 정신이 몸에 배어 있는 분들입니다.”
― 지역사회 조직이 살아 있나요.
“그럼요. 다 살아 있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 전체 회원이 많이 줄어들었죠. 현재 180만 정도인데, 4~5년 전까지만 해도 200만이 넘었었거든요. 고령화 이유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정치적 혼란을 겪으니까 새마을운동에 뛰어들고자 하는 사람도 좀 줄어들었습니다.”
― 젊은 인력 수급을 가로막는 부분이 있었군요.
“젊은 인력이라기보다, 생활 회원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좀 줄어들었죠.”
― 새마을운동중앙회장으로서 가장 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어떤 겁니까.
“우리 젊은이들을 위한 사업과 해외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싶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 중에 ODA 사업의 일환으로 새마을운동 시범마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제도상 5년까지만 지원할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 예산이 있다면 시범마을 프로젝트가 종료되더라도 한동안 우리가 현지 지도도 하고, 연수도 시키고 이런 것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곽 회장은 우간다나 파푸아뉴기니 이야기도 했다.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새마을운동을 확대하고 있는데, 현지 정부의 재정 여력이 부족해 의욕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예산이 없으니 지원하더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우리 새마을중앙회가 여력이 있다면 자생마을 지원도 확대하고, 종료된 마을도 새마을운동이 정착될 수 있도록 도울 텐데… 현지 주민들 또한 의욕이 있는데, 그걸 못 하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새마을운동을 화해와 치유의 국민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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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새마을운동 글로벌 협력국 장관회의에는 45개국에서 각료급 인사 60여 명이 참석했다. |
“국내 새마을운동을 청년들의 희망과 연계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현실은 지역 간, 세대 간 갈등이 매우 심합니다. 대한민국이 갈래갈래 찢어져 버렸어요. 이념이든, 빈부(貧富)격차든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새마을 단체가 할 수 있습니다. 새마을에는 ‘협동’ 정신 그리고 살아 있는 ‘조직’이 있으니까요.
아무리 정부가 촘촘하게 사회안전망을 짜도 놓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걸 새마을운동 회원들이 메울 수 있어요. 어떻게? 마을 단위부터 동 단위까지 새마을 회원이 한두 명은 다 있으니까요. 이분들은 무엇보다도 자기가 살고 계시는 동네를 잘 아시는 분들입니다. 봉사 DNA가 장착되어 있고요. 이런 분들이 청년 회원들과 힘을 합치면 지역의 어지간한 문제는 다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새마을운동의 영역을 넓혀서 적극적으로 뛰어들면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긍정적인 변화를 많이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얘기죠.”
그는 새마을운동이 화합과 치유의 국민운동으로 발전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나눔과 돌봄을 강화해야 우리 사회에 미래가 있다고 했다. 다만, 일부 사무실을 민간에 임대해 적자(赤字)를 겨우 메꾸는 현재의 재정 상태로는 실현 불가능한 구상이다. 지구 곳곳의 새마을지도자와 공무원을 초청해 시행하는 새마을 교육사업은 적자가 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사업은 아무리 적자가 나더라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새마을운동중앙회 본연의 임무다.
“나 자신이 새마을운동의 수혜자”
― 지구촌 교육사업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새마을운동 지도자라고 해도 간접적 접촉이 전부잖습니까. 여기 와서 9박 10일 동안 강의를 듣고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면 수강생들의 자세가 변합니다. 새마을운동을 몸으로 체득해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고 할까요? ‘대한민국’이라는 ‘현장’, 새마을운동의 본부에 직접 왔다는 감회가 그렇게 놀라운 효과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이 새마을운동의 전파에 열성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런 당연함이 작동하지 않은 시절도 분명히 있었지만 말이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새마을운동에 진심인 걸까?
“나 자신이 바로 새마을운동 수혜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1955년생인데 중학교 때 처음 집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수도는 그보다 한참 더 뒤에 들어왔고요. 하루 세끼 밥 챙겨 먹는 집이 많지 않았죠. 대도시인 대구 인근 달성군이었는데도 사정이 그랬습니다. 1970년대에 월드뱅크는 1일 1달러 수익을 절대 빈곤선으로 규정했는데, 우리가 그 선을 넘어선 해는 1974년입니다. 새마을운동은 우리 마을에도 큰 변화를 안겨줬죠. 집 앞 개천에 시멘트 다리가 놓이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다리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발전해 가는 것이 눈에 보였어요.”
― 전기가 들어온 후엔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생활 패턴이나 삶의 양상이 확 바뀌었나요.
“그럼요. 180도 바뀌었죠. 과장을 보태면, 중세 농경사회에서 바로 현대로 진입한 겁니다. 호롱불 쓰다가 전기 쓰고, 유선 라디오도 처음 들어봤어요. 나중에 마을에 TV도 들어왔죠. 요즘 생각하면 별것 아니지만, 문화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마을 밖 세상’과 늘 연결되게 됐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장래 희망의 스케일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새마을운동 이후 굶는 아이들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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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새마을운동 글로벌 협력국 장관회의에서 인사말을 하는 곽대훈 회장. |
“수도 들어오기 전에는 조그마한 우물이 있었는데 가물면 우물이 말라서 물을 못 썼죠. 장마가 와도 못 썼습니다. 우물이 오염되니까요. 그 불편함이나 고통이 상상이 되나요?”
― 새마을운동이 마을에 들어오고 나서 체감하기에 우리 마을의 이것이 제일 먼저 변했다 하는 점이 있다면, 뭐가 있습니까.
“마을 길이 변했죠. 길 폭이 넓어지고 다리도 놓고 시멘트 포장도 하니까 진창길이 사라졌습니다. 우마차도 다니게 되었고요. 마을 길 넓힐 때 어른들이 사랑방에 모여 회의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 그 전에는 사랑방 회의가 없었나요.
“사랑방 투전이 있었죠. 새마을운동 전의 농한기 풍경입니다. 물론 새끼도 꼬고 뭐 그러기도 했지만, 노름 말고 농한기에 할 일이 별로 없었어요. 단순히 재미 삼아 벌이는 일이 아니라, 살림 들어먹고 땅문서 잡히고, 심한 경우에는 칼부림도 나는 심각한 사회문제였습니다. 노름빚에 몰려서 야반도주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 새마을운동 이후에는 많이 사라졌습니까.
“거의 다 사라졌죠. 일거리도 생기고 ‘소득 증대’가 되면서 내 손에, 내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많아졌으니까요. ‘희망’이 눈에 보이니까 사람들이 달라진 겁니다.”
그는 새마을운동 전에는 ‘하루 세끼 먹을 때도 있고 못 먹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학교에 도시락을 못 싸간 날도 많았다고 했다. 밥이 없으면 굶거나 수돗물을 먹거나 덜 여문 벼를 쪄서 말린 ‘찐쌀’을 먹었다고 했다.
“찐쌀을 호주머니에 넣어 가서 먹기도 하고, 도시락 싸 온 친구들 밥을 선생님이 한 숟갈씩 덜어서 밥 못 먹는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그랬죠. 미제(美製) 구호물자로 만든 옥수수빵과 분유를 점심시간에 배급하기도 했습니다. 새마을운동 이후엔 굶는 아이들이 사라졌어요.”
곽대훈 회장은 끼니가 떨어진 날 바가지를 들고 옆집에 가서 곡식을 빌려오던 경험담을 말했다. 학교까지 맨발로 다니던 친구들 이야기도 했다.
“배고픈 서러움은 겪어본 사람만 압니다. 먹을 것이 있는데 안 먹는 것하고, 진짜로 먹을 것이 없어서 못 먹는 건 느낌이 전혀 달라요. 밥을 굶으면 사람이 비참해집니다. 제가 겪어봤기 때문에,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 그 아픔에서 빨리 벗어나는 길을 찾아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입니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걸맞게 지원해야”
― 저도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의 꿈이 국경을 넘어 지구촌 곳곳으로 널리 퍼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외국인 새마을지도자를 만났는데,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까 말씀드린 우간다의 카용고 박사입니다. 정말 새마을 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을 굉장히 존경합니다. 박 대통령의 말씀, 여러 가지 국가를 바꾸는 철학에 관해서도 이해가 높아요. 그것을 자기 나라에서 실천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간다에 자생마을이 300개 정도 됩니다. 자기가 다니면서 지역마다 마을 대표나 주민을 설득하고 자발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시작한 겁니다. 근면, 자조, 협동 정신으로 주민들 의식을 바꾸는 거죠. 그런 지도자가 있으면 지역이 변하고 나라가 변합니다. 카용고 박사는 자기 조국에 대한 애정도 상당히 깊고, 또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이 했던 방식을 우간다에 효율적으로 도입할 수 있나, 어떻게 우간다의 마을과 사회를 변화시킬 것인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실천하는 인물입니다. 이런 인물이 세계적으로 다수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 청년 조직이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사업비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해외의 새마을 시범마을을 확대하고, 한 마을에 지원하는 액수와 기간을 늘렸으면 합니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걸맞게 지원해야죠. 이 일은 단순한 ‘경제 지원’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노하우’를 수출하는 ‘문화·역사·경제 종합 수출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빨리, 가장 많이 만들 수 있는 길이기도 하죠. 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잠비아 새마을지도자의 반응을 빠뜨렸네요.”
― 뭔가요.
“박정희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면 무엇을 여쭙고 싶냐고 했더니 잊을 수 없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 궁금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이 만들려고 노력하던 나라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며 언젠가는 우리도 이렇게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꿈을 꾸게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