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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상임대표 이대영 중앙대 예술대학원장

“한예종은 예술실기공유대학으로 업그레이드 전환해야”

글 :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ksd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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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가 필요한 학생이 있다면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에 진학하면 돼”

⊙ 대한민국 예술 교육의 大전환점에 서다
⊙ “과학·기술 교육만큼이나 예술·문화 교육도 중요해”
⊙ “한류를 선도한다는 한예종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
⊙ 건군 65주년 국군의날 행사, 제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 행사 감독 맡아
⊙ 韓美동맹 70주년 기념 워커 사령관 이야기 다룬 뮤지컬 〈Stand or Die〉 집필 중

이대영
1961년생.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 박사 / 1985년 신춘문예 당선, 제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 및 건군 65주년 국군의날 행사 총감독, 밀양연극촌 예술감독, 서울국제락스퍼인권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제2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제2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집행위원장,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문위원, 現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상임대표, 한국대학교수연대 공동대표

[편집자 註]
《월간조선》 5월호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김대진 총장 인터뷰가 실렸다. 인터뷰에서 김 총장은 한예종에도 석·박사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한예종은 현재, 고등교육법상 ‘각종학교’의 지위로 교육부 장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위탁, 운영되고 있다. 법률상 대학(교)의 명칭을 사용할 수 없으며 대학원은 대학교에서만 개설이 가능하기 때문에 법을 새로 제정해야만 석·박사 학위 과정을 둘 수 있다.
이에 대해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이대영 상임대표(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장)를 인터뷰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과학 및 공학의 인기가 거세다. 역사, 철학, 예술 등 인문학의 변신도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예술과 과학이 만나고, 예술과 철학과 과학이 융합하며 정신의 부활을 시도하기도 한다. 챗GPT의 등장은 지식사회의 대전환점, 즉 새로운 빅뱅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육도 지식 주입의 시대가 아닌 지혜와 창의(創意)의 시대, ‘위대한 질문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뜻한다. 융합적 사고, 통섭적 사고가 필요하다. 아르망 트루소(1801~1867)는 이렇게 말했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다.”
 
  과학과 예술은 결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주장을 오래도록 설파해온 이가 국내에도 있다. 예전에 이어령 전 장관이 그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이 사람이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이대영 원장이 그다.
 
  중앙대 후문으로 들어서니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건물이 눈에 띈다. 예술대학원이다. 이곳은 기자가 1980년대 대학생 시절 교련을 받던 허허벌판 속칭 ‘만주벌판’인데 지금은 건물로 빼곡하다. 약속한 시각이 되어 예술대학원장실로 들어서자 벽에 걸린 대형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회화인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사진이었다. 이 원장은 “과일을 까서 말려 물감으로 채색한 뒤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찍은 사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에서 보듯이 장르가 융합하는 시대입니다. 비단 예술만이 아니죠.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서 빅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상상력과 그 창조의 원리를 찾아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한류가 아닌 ‘한류문명’을 생각해야 할 때죠. 유네스코 등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과학, 문화, 교육, 학술, 창작, 융합 등 차세대 인류의 핵심가치와 그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비트 시대’를 추적하는 미래학자
 
장애인과 함께한 연극 〈해피브라더스〉 출연진과 함께. 사진 맨 왼쪽이 이 원장. 사진=이대영
  이렇게 말하는 이대영 원장은 문학, 연극, 방송, 게임 등 콘텐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다. 이 원장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2008), 제2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집행위원장(2010),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문화분과 전문위원(2012) 등 문화 정책 전문가로 일했다. 건군 65주년 국군의날 행사(2013), 제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2015) 행사, 국제기록학회 ICA(2016) 개막식 등 국가 행사를 감독했으며, 미투 사건으로 폐쇄된 밀양연극촌 예술감독(2018)으로 부임해 2년 만에 연극촌을 되살리기도 했다.
 
  그는 대학 재학 중 신춘문예에 당선한 극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희곡 〈만만한 인생〉 〈우리 집 식구들 나만 빼고 다 이상해〉는 한국명작희곡 100선에 선정되었다. 〈끝나지 않은 시간〉은 올해 5월 경북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6월 제주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제41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출품되어 공연을 앞두고 있다. 한편으로는 〈문명의 전환과 비트 시대〉 등 다수의 논문을 통해 앞으로 나타날 ‘비트 시대’를 추적하고 있는 미래학자이기도 하다. 2022년부터 (사)한국예술교육학회 수석부회장,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그가 오래도록 주창해온 한류문명이 무엇인지, 미래의 문화와 삶의 습속이 어떻게 달라질지 먼저 물었다.
 
 
  “아톰 시대에서 비트 시대로”
 
  ― 한반도선진화재단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것들》에 실린 논문을 잘 읽었다. 논문에서 ‘비트 시대’의 인류의 세 가지 삶의 패턴을 예측했다. 간단히 말하면, ‘비트 라이프(Bits Life)’ ‘비트닉스(Bitnix)’ ‘비티아(Bitia)’인데, 좀 어렵다. 알기 쉽게 요약해달라.
 
  “비트 시대는 아톰 시대와 대별되는 용어다. 우리는 지금 아톰(atoms), 즉 원자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원자는 만져지는 물질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만져지지 않는 정보, 즉 비트(bits)의 세계에서 살 것이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를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 ‘접촉(contact)’이 아닌 ‘연결(connect)’의 중요성을 배웠다. 향후에는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비트 시대는 세 가지의 키워드로 압축된다.
 

  첫째, ‘비트 라이프’다. 비트 라이프는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 속 공간과 같은 비트 공간에서의 삶을 말한다. 이 용어의 함의(含意)는 두 번의 삶이다. 첫째, 현실의 삶, 그리고 가상공간에서의 삶이 그것이다.
 
  둘째, ‘비트닉스 문명’이다. 개인의 비트 라이프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그 속에서 창출되는 문명을 의미한다. 비트닉스는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시대의 인간상을 의미한다. 이는 스마트폰으로 살아가는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를 넘어서는 것이다. 비트닉스는 트랜스휴먼과 포스트휴먼의 시대와도 상통한다. AI가 장착된 다양한 로봇이 등장할 경우, 인간과 기계는 혼합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로봇과 공생해야 할 것이다.
 
  셋째, 비트닉스 문명의 완결판으로 네트 속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 즉 네트 국가인 ‘비티아’에 대하여 말했다. 비티아는 가상공간에 세워지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이다. 현실과 가상이 중첩되는 네트 국가의 건설 가능성과 그 운용체계를 말한 것이다.”
 
 
  AI 시대의 예술
 
2대 원장을 지낸 문화예술교육진흥원 직원들과 함께한 홈커밍데이 행사. 사진 가운데가 이 원장. 사진=이대영
  이대영 원장의 말대로 가상화폐를 포함하여 AR과 VR 등 가상과 현실의 중첩은 이미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AI와 로봇의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기술혁명의 사춘기’라고 표현한다. 마치 인간이 사춘기 때 급성장하듯이 기술혁명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의미다. 18세기 산업혁명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몰고 왔듯이, 향후 세계 지형과 정치적 형세가 어떻게 재편될지 모른다.
 
  ― 요즘은 AI가 예술작품을 만든다. 심지어 논리가 아닌 창작의 영역에 도전하여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작곡과 연주도 한다. 인간의 창조적 영역이 도전받고 있다. 앞으로 예술과 예술 교육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궁금하다.
 
  “인간의 반응은 오감(五感)에서 온다. 제6의 감각, 즉 육감(六感)도 있다. 이러한 감각이 인간의 대응 능력과 창조 능력을 키웠다. AI는 감각이 없다. 우리는 신체 내부와 외부에서 느끼는 감각을 통해 마주친 상황을 해석하고 응용하고 해결한다. 그것이 고통이든 쾌락이든 말이다. 인간의 삶은 욕망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끊임없이 어떤 욕망을 발현하고 그것이 이뤄지면 쉽게 권태에 빠진다. 인생은 욕망과 갈등과 권태라는 삼각 뫼비우스의 띠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로봇은 욕망이 아닌 의무, 갈등이 아닌 논리, 권태가 아닌 데이터만을 인식할 뿐이다. 인간처럼 생명체가 느끼는 감각과 감정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은 AI와는 다른, 기존과는 전혀 다른 장르의 예술을 창안해낼 것이다. 예술은 언제나 과학기술과 함께했다. 과학은 예술을 이끌었고, 예술은 과학을 이끌었다. 새로운 과학기술에 걸맞은 새로운 예술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그는 저서 《스토리텔링의 역사》(2018)에서 스토리텔링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오토리(Otory)가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다. 그러나 ‘O’는 끝이 없다. 오토리텔링 방법론을 찾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을 논했다면, 그는 새로운 이야기 미학을 찾고 있다. 그가 20세기 말에 게임회사 ㈜커뮤니타스를 경영하면서 얻은 지혜라고 한다. 일종의 집단 창작인데 처음과 중간과 끝이 수시로 바뀌는 이야기 기법이다. 처음 시작한 이야기 앞에 또 다른 전사(前史)가 붙을 수 있고, 마지막에 또 다른 엔딩이 붙는 시스템이다.
 
 
  “기형도, ‘희곡 좋더라’”
 
뇌병변배우, 다운증후군 등의 장애인과 함께한 뮤지컬 〈배우수업〉 출연진과 함께. 사진=이대영
  ― 이 원장은 문학으로 출발해 연극, 영화, 방송, 게임까지 콘텐츠 창작 세계를 두루 경험했다. 대기업 홍보실에서도 근무했다. 그리고 지금은 후학을 기르는 교수가 되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가.
 
  “사실 나의 철학적 세계는 문학이 근본이다. 그중에서도 ‘극(劇)’, 즉 ‘드라마’ 장르이다. 연극, 영화, 방송, 게임 등 내가 거친 장르는 드라마로 연결된다. 대기업 홍보실에서 근무할 때에 언론 당직을 서는데, 하루하루가 드라마였다. 포항공장에서 사고가 나서 직원 몇 사람이 죽었다. 나는 노조와 언론의 인터뷰를 막아야 했다. 고통이었다. 이처럼 우리네 삶이 드라마다. 개개인은 저마다 삶의 무대 위의 주인공이다. 때론 누구를 위해 조연도 하고 엑스트라도 한다.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 이 자체가 한 편의 연극이다. 내가 희곡을 전공한 까닭이다. 나는 일종의 희곡과 연극을 나와 주변과 시대를 바꾸는 혁명의 도정(道程)이라고 생각했다.”
 
  ― 대학 시절 등단했다. 당시 신춘문예는 문청(文靑)의 로망이었다. 《중앙일보》로 알고 있다. 당시 문예창작과는 시와 소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이 원장은 입학 때부터 희곡과 연극에 몰두했다. 극작가가 되고 싶었던 까닭이 있는가.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에 문학회에 사용할 음악을 고르려고 방송반에 들렀다가 우연히 어떤 음악을 듣게 되었다. 그리그가 작곡한 페르 귄트 조곡이었는데, 낯설지 않았다. 특히 한 부분이 육영수 여사 장례식에 쓰인 음악이었다. 그 음악을 밤새워 들었다. 당시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에 사용된 연극용 음악이었다. 페르 귄트의 아내가 솔베이지다. 솔베이지 송, 유명하지 않은가. 희곡과 연극을 더욱 좋아하게 된 계기다. 신춘문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시인 기형도가 신춘문예 동기다. 《중앙일보》 수습기자였던 그가 ‘희곡 좋더라, 나는 《동아일보》에 당선되었다’고 내게 귓속말로 전했다. 이후 친하게 지냈는데 그만 그가 먼저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군에서 전역하고 《중앙일보》로 놀러 갔는데 얼굴이 많이 부어 있었다. 물으니 신장이 좋지 않다고 했다.”
 
 
  연극 〈에쿠우스〉의 남자 주인공으로 선발
 
소녀시대 수영, 배우 김수현, 고아라, 박신혜 등 이대영 교수의 제자들. 사진=이대영
  이대영 원장은 1984년 가을, 신춘에 당선되기 전에 극단 실험극장에서 공모한 〈에쿠우스〉의 남자 주인공 ‘앨런’ 오디션에도 응모하여 배우 최민식(당시 동국대 3학년)과 함께 선발되었다. 그만큼 연기에도 자질이 있었다. 이듬해 3월인가 최민식이 입대하고, 이 원장도 대학을 졸업하여 4월에 입대 영장을 받았다. 그들을 대신하여 최재성 배우가 강태기, 송승환에 이어 3대 앨런이 된다.
 
  ― 하마터면 배우가 될 뻔했다.
 
  “삶이 연극이다. 언제인가 죽음 연기를 할 것 아닌가.(웃음)”
 
  ― 대학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공연영상이면 스타들이 많을 것 같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는가.
 
  “문학, 연극, 영화, 방송, 게임계에 제자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소녀시대 최수영과 권유리, 뮤지컬배우 홍광호가 있다. 고아라와 박신혜, 김수현도 제자다.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 영화 〈미녀는 괴로워〉 〈걸프렌즈〉 〈남자사용설명서〉를 집필한 노혜영 작가도 있다. 이들과는 가끔 안부를 묻고 지낸다. 후배 연출가 고선웅은 연극계에서 톱이다. 아, 피에스타 린지는 학교 때 반장이라서 지금도 ‘임반장’이라고 부른다. 뮤지컬 〈영웅〉의 여주인공 설화를 맡았다. 얼마 전 공연을 보고 왔다.”
 
 
  “이해 안 되는 한예종 특별법”
 
  ― 우리나라의 예술 교육은 어떠한가. 취업률로 인해서 예술 관련 학과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사실 예술학과를 졸업하면 다 시인, 작가, 예술가가 아닌가. 이들에게 어떤 자격증을 발급할 수도 없고…. 아무래도 산업혁명의 시기이니 공대와 의대, 생명공학 등에 관심을 쏟고 있다. 예술은 상대적으로 소외를 당하는 것 같다.
 
  “맞다. 과학 교육과 달리 예술 교육은 사실상 천대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국내 총연구개발비는 약 93조원이다. 이 중 문화예술 분야는 8520억원으로 전체(33개 분야) 비중의 1%에 불과하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전기·전자의 23조3989억원과 큰 차이가 있다. 교육부의 ‘학술 연구지원사업’ ‘BK21+사업’ 등이 규모가 큰 편이나 예술 분야의 참여는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법제적으로도 ‘과학교육진흥법’은 있으나 ‘예술교육진흥법’은 없다. 전문대학을 포함하여 290여 개 예술대학이 있는데 이들을 위한 진흥책은 거의 없다. 교육부에서는 홀대하고 문화부는 현장 예술가 지원이 우선이므로 예술대학을 지원할 명분이 없다. 이런 와중에 문화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대학원 과정을 설치하겠다고 나섰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일반 예술대학들은 고통을 받고 있는데 정부 문화부 소속의 한예종을 위한 특별법을 만든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보도를 통해 알고 있다. 의원들이 한예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려고 하는 것에는 충분한 배경이 있다고 본다. 한예종이 한류를 선도하는 국립예술학교로서 뭔가 특별한 책임과 권한을 주려는 것 아닌가. 찾아보니 법안 제정의 배경이 그렇다.
 
  “전혀 그렇지 않다. 한예종이 배출한 인재는 피아노 등 몇몇 분야에 국한된다. 한류를 선도한다는 한예종의 주장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예컨대 우리 중앙대학교에서도 한류 스타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최근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김경훈 기자가 중앙대 사진학과 출신이다. 이 외에 문학, 국악, 연극, 영화 등 각 분야에서 한류 스타들을 배출했다. 비단 중앙대뿐만 아니라 전국의 예술대학에서도 훌륭한 인재를 배출했다. 요즘은 비전공 출신들도 문화예술계에서 큰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기악과 발레 등 어릴 때부터 훈련이 필요한 장르 이외에는 한예종 출신이 두각을 나타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어령의 한예종에 대한 생각은?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에서 이어령 장관이 조직위원장을, 이 원장이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사진 왼쪽이 이 원장. 사진=이대영
  ― 이어령 장관께서 한예종을 만들었다. 이후 30년이 지났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학원 과정을 두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현재 한예종이 국내 최고의 예술가를 양성하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다 석·박사 등 훌륭한 인재가 양성되면 국가적 차원에서 좋은 것 아닌가.
 
  “내가 아는 한 고인이 되신 이어령 장관님은 이러한 한예종의 변화에 대하여 반대하실 것이다. 한예종은 영재 예술가들을 양성하고자 만든 학교다. 설립 취지의 순수함을 유지하되 어떻게 더 실질적으로 예술 실기를 강화하여 국제적인 예술학교로 성장시킬지 고민하실 것이다. 학위가 아니다. 확신한다. 일반 예술대학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예술 영재 발굴과 실기 시스템 강화를 위해 만든 학교다.”
 
  ― 이어령 장관과 교분이 있는가? 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를 함께 지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는 4년마다 열리는 예술교육올림픽이다. 2010년에 서울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를 위해 2008년부터 이어령 장관님이 조직위원장을 내가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지구촌의 예술 교육 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당시 ‘서울 선언’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탄생한 것이 매년 5월 마지막 주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이다.
 
  전 세계가 함께 예술 교육 축제를 벌인다. 당시 나는 진흥원장이었는데 이어령 장관께서는 내가 문화행정가가 아니라 극작가라는 것을 더 좋아하셨다. 만나면 문학과 예술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관님의 말씀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말씀하시면서 어떤 어휘가 떠오르면 그것이 새로운 방향으로 논리가 전개되는 이야기꾼이었다. 나는 장관님의 창조적 발상과 그 어휘의 숭고함을 적어 나갔다. 소중한 추억이다. 유네스코 세계대회 당시 국내 최초의 4D 공연을 연출하셨다. 에피소드라면 무용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지 급하게 “완순~” 하고 불렀는데, 육완순 선생님이 “가요~” 하며 부리나케 달려오셨다. 두 분 모두 작고하셨다. 예술계의 어른들이 하늘의 별이 되셨다.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60대가 된 우리 세대가 님들의 뜻을 이어 한류문명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요즘 나의 숙제이다.”
 
 
  “한예종 특별법은 특혜”
 
  ―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예교련)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어떤 조직인가? 교수연합에서 한예종에 석·박사 과정을 두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교련은 대한민국 예술 교육의 위상을 확보하고자, 대외적인 교섭단체로서 2005년에 설립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예술 장르별 학회와 협회가 많다. 그 학회, 협회, 단체와 협력하여 예술대학 및 소속 교수들의 권익을 위해 싸우고 있다.
 
  ▲경쟁력 갖춘 문화예술 인력 양성 ▲국가의 예술 정책 및 교육 정책의 올바른 방향 제시 ▲다양한 융합 예술의 공조 및 활동 장려 ▲예술 교육 분야의 전문가 연결 및 네트워크 강화 ▲예술 현장 활성화를 위한 비전 제시가 우리의 역할이다. 선배들은 대개가 정년 퇴임했고, 당시 사무국장이던 내가 대표를 맡고 있다. 국민대학교 김인준 교수가 공동대표, 수원대 김석범 교수가 운영위원장, 동국대 조준희 교수가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운영위원은 백남영 중앙대 교수(연극학과 교수협의회장)를 포함하여 연극, 영화, 무용 등 각 장르의 학회 회장이 맡고 있다.”
 
  ― 전국의 예술 교육 관련 교수와 학회가 모인 연합 집단으로 보면 되는가.
 
  “그렇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1993년 설립 당시 기존의 일반 대학과는 달리 실기 능력 위주의 전문예술인을 양성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고등교육법상 ‘대학’의 형태가 아닌 ‘각종학교’의 형태로 설립되었다. 각종학교는 고등교육법상 ‘대학’이라는 명칭을 쓸 수 없다. 따라서 석·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게 불만이라면 고등교육법을 개정하여 각종학교도 대학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바꾸면 된다. 그러고 교육부 산하로 들어오면 된다.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있지 않나. 간단한 것이 정답이다. 그런데 한예종은 이러한 고등교육법을 회피하고 우회하고자 오래도록 특별법 제정을 추진해왔다. 그때마다 예술대학들은 학사 일정에 차질이 생길 만큼 골머리를 앓았다.
 
  1999년 ‘국립예술대학교 설치법안’은 서울대학교 등 전국의 국립대학이 반대하여 무산되었다. 그러자 2005년에 ‘국립예술대학’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한국예술학교 설치법안’으로 또 시도하였다. 법안 내용은 과거와 거의 동일했다. 전국의 예술대학 학생과 교수들이 한시적 휴강을 결정해 국회 여의도 광장 및 광화문에서 대규모 농성을 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자동 폐기되었다.
 
  그런데 지난 2021년 이채익 의원과 2022년에 박정 의원, 김윤덕 의원 등이 동일 내용의 법안을 또 발의한 것이다. 한예종에 특혜를 주려고. 전국의 사립대학 총장들이 만장일치로 반대하였다. 국회와 교육부, 문화부에 정식으로 의견서를 냈다.”
 
 
  “한예종, 등록금 일반 예술대학의 절반 수준”
 
  ― 특혜입법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한예종은 현재 등록금이 일반 예술대학의 절반 수준이다. 그들은 교육부의 통제를 받지 않아 선발 조건도 자유롭다. 수시전형이 대개 9월에 시작되는데, 한예종은 그 이전에 신입생을 선발하며 6개 대학 지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문화부 소속 기관이라서 공무원들이 순환 근무하며 정보 및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교수도 140명 정도로 여타 대학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국비로 운영되는 각종학교임에도 경찰대학이나 사관학교와 달리 복무 조건도 없다. 카이스트처럼 지방에 있는 것도 아니다. 특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석·박사 과정까지 두겠다는 것이다. 현행법으로는 안 되니, 특별법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인데, 국회라는 입법기관이 예술 교육계의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다행히 많은 대학에서 반대의견을 전달하여 현재는 의원들도 주춤하고, 법안을 발의한 아무개 의원은 지역주민의 항의를 받아 고심이 깊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국회 공청회에서도 똑같은 말을 했다. 의원들도 한예종에 대한 특혜입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문화예술법안소위에서 계류 중이다.”
 
 
  “한예종을 공유대학으로”
 
  ― 석·박사 학위를 준다고 해도 정원 규정에 따라 철저히 관리하고 소수로 운영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예술대학에 치명적이라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술가에게도 학위는 필요하지 않은가.
 
  “박사 학위가 필요한 학생이 있다면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에 진학하면 된다. 지금껏 그래왔다. 그리고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존중’과 ‘신뢰’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를 믿는 것이고 믿음이란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고 상대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인간은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었다.
 
  ‘한예종 사태’는 믿음의 상실에서 촉발된 것이다. 여태껏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들게 고생하며 예술 교육을 위해 노력해온 학생, 학부모, 교수가 있는데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어느 한 교육기관에 모든 독점적 권리와 금전적 지원을 해준다면 어느 누가 그것을 받아들이겠는가.
 
  한예종은 일부 대학의 몇몇 교수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국회를 방문하여 그러한 문서를 돌리고 있다.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특히 한예종은 수시로 말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예술 영재가 외국으로 유학을 나가지 않도록 국내에서 최고의 실기 교육을 한다는 취지로 설립했다. 그런데 영문명으로 KNUA(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를 사용했다. 법으로써 ‘대학’이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는데 버젓이 대학교라고 쓴 것이다. 더욱이 유학생들이 학위가 없어 다시 돌아간다며 법안 제정을 호소했다. 진실의 호도이다. 사실 ‘총장’의 직함도 다시 ‘교장’으로 돌려야 한다. 초대 이강숙 교장처럼 말이다. 나아가 완전한 공유대학으로 전환해야 한다.”
 

  ― 공유대학이란 무엇인가.
 
  “요즘 대학은 예전의 지식선도집단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존속할 수 없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공유대학이다. 대학이 뉴런처럼 서로 연결되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형태의 시스템을 말한다. 한예종은 각종 특혜를 받는 국립예술학교이다. 지역의 발전을 위해 희생할 각오로 그 특혜에 보답해야 한다. 그 차원에서 학교의 지방 이전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예컨대 영상원은 부산으로, 전통예술원은 전북 남원으로, 연극원은 경남 밀양으로 등등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한예종은 전문예술인 양성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공유대학으로서의 가치를 발현해야 한다. 나아가 일반 예술대학이 가질 수 없는 실기 시스템을 공유해야 한다.”
 
 
  소외 계층 위한 예술 활동
 
이대영 원장이 총감독을 맡은 건군 65주년 국군의날 행사(2013년) 모습. 국민 사열대 위에 이 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이대영
  ― 분위기를 바꾸어보자. 이 원장은 지금까지 소외 계층을 위한 예술 교육 활동을 많이 해온 것으로 안다. 장애인, 탈북인, 재소자들과 작품을 만들었다. 우리 《월간조선》에도 몇 차례 보도된 것으로 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장애인들과 작품을 만들고, 탈북 청년과 함께 연극을 했다. 예술을 통해 이들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도 법무부 교정개혁위원으로 활동한다. 이와 관련한 예술 교육의 효과성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학교 밖 청소년’들 멘토를 하고 있다.”
 
  ― 밀양연극촌은 계속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가.
 
  “밀양연극촌은 2년간 예술감독으로 있으며 완벽하게 재정비를 한 뒤에 후임에게 물려주었다. 사실 밀양시에서 1년 더 머물기를 원했지만, 매주 오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내가 건강을 걱정해 그만두기를 원했다. 그래도 매해 공연예술축제 때는 밀양으로 내려간다.”
 
  ― 건군 65주년 국군의날 행사 총감독을 했다. 한미동맹 70주년이기도 하다. 다시 총감독을 맡을 생각은 없는가.
 
  “요청이 오면 맡을 것이다. 10년 만에 열리는 행사이니 보여줄 것이 많다. 매우 중요한 행사다. 또한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워커 사령관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Stand or Die〉를 집필하고 있는데, 이것은 크게 다뤄주시기 바란다.
 
  6·25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필사즉생과 연관하여, 워커 사령관이 충무공의 유령을 만나면서 극이 시작된다. 〈레미제라블〉이나 〈미스사이공〉과 같은 뮤지컬처럼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국제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
 
 
  “‘한류 아카이브 센터’ 설립 시급”
 
  ― 마지막으로, 서두에서 한류문명을 말했는데, 관련된 정책이나 기획이나 방법론이 있다면 말해달라.
 
  “한류문명의 발화는 인문, 철학, 역사, 예술, 생활사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연구할 인재들을 양성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문예학, 사진·영상·미디어 등 기록 분야, 역사·언어·유전학 및 민속·인류학의 문헌 연구, 고전 한문학 등 어문 분야, 데이터 아카이빙 분야, 미디어콘텐츠 분야의 인재들을 육성하는 일이다.
 
  교육부와 연계하여 이들 분야에 관한 연구를 확대하고, 각급 대학에 관련 학과를 설치하거나, 석·박사 과정 및 박사 후 과정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여 한류의 원형을 찾는 일에 먼저 나서야 한다. 아울러 전국 각지에 산재하는 풀뿌리 문화를 채집하고, 이를 해외 한인 연구로까지 확대하는 문화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날로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과도 연계된 정책이다.
 
  문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및 한국 문명의 재발견 정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문학 및 서지학 연구자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한문으로 기록된 우리 전통의 인문, 역사, 과학 등의 서지 번역 작업에도 나서야 한다. ‘지방문화원진흥법’과 ‘지역문화진흥법’에 명시된 향토사학자를 의무 고용하여 향토문화의 발굴·수집·조사·연구 등 향토사 연구의 대중화를 도모해야 한다. 그 연구 자료들을 집적(集積)하고 인력과 자료의 허브 역할을 할 ‘한류 아카이브 센터’를 설립하는 것도 시급하다.
 
  우리의 전통과 현재와 미래 및 세계 속의 한류문명을 잇는 문화 교량의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 이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및 교육부 산하의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문화재단 등과 연계하고 유관기관 및 관련 협회와의 협의체를 통해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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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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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8) 찬성 : 0   반대 : 0
이어령 선생 생전에도 몇번이나 추진했던 건데 몇십년 전부터 지들만 죽도록 반대해와놓고 돌아가시니까 이어령 선생도 이걸 원했을 거라고? 고인 모욕이 따로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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