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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선장 출신 해상법학자 김인현 고려대 교수

“돌파구 반드시 있고, 이를 따라가면 또 다른 항로가 펼쳐지는 것이 인생”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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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세 때 세계 최대 船社 산코기센의 최연소 선장… 1991년 좌초 사고 후 해상법 공부
⊙ 조선·해운업계 장기 불황 시작… 민간선주사 육성 돌파구 될 것
⊙ “보통 사람들은 플랜B까지 생각하지만, 선장들은 플랜C까지 짜 놓는다”
⊙ 해상법 전문가, 한국은 70여 명, 싱가포르는 200여 명
⊙ 후임 양성에 전력… 2025년 정년 후에는 크루즈선 선장 계획

金仁顯
1959년생. 한국해양대 항해학과, 고려대 법대 석·박사 / 前 산코하베스트(Sanko harvest) 선장, 김앤장 법률사무소 해사자문역, 국립목포해양대 교수, 부산대 법대 교수, 現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해상법연구센터장
  조선·해운업계에 먹구름이 잔뜩 꼈다. 불황의 초입이다. 길을 헤매는 모양새다. 한국은 삼면(三面)이 바다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물량 기준, 무려 95%가 해상 운송에 의존한다. 한데 생각만큼 해상법 전문가가 없다. ‘바닷길’을 물을 때는 하나같이 김인현(金仁顯·63)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찾는 이유다. 그는 선장 출신 해상법 교수다. 선장에게 길을 물어봤다.
 
 
  “불경기 시작의 신호”
 
지난 1월 7일 5109.6포인트였던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11월 8일 기준 1579.21포인트까지 떨어졌다. 지난 8월 부산 남구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사진=조선DB
  정부가 해운업계에 경영 지원을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3조원 규모다. 세계 경기 둔화와 선박 공급 증가로 최근 컨테이너 운임이 연초 고점(高點) 대비 70% 가까이 하락했고 내년 이후 당분간 해운업계가 불황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대응이다. 지난 11월 4일 해양수산부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위기에 강한 해운업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한 ‘시황(市況) 변동에 따른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 호황이던 해운업 분위기가 왜 반전된 겁니까.
 
  “제자리를 찾는 거라고 봐야죠. 코로나19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풀었던 돈을 다시 거둬들이고 있으니까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는 근로자들이 감염돼 일을 못 했을 거 아닙니까. 미국 등지의 트럭·철도 등 대륙 운송 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겠죠. 육지의 물류망이 마비가 되니 항구에 물건들이 쌓였겠죠. 미국 영토를 횡단하지 못하니까요. 수입품을 내리지 못한 선박이 항구에 묶여 있으니 선박이 부족해졌겠죠. 이때 운임이 10배가량 뛰어올랐는데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푸니, 물건 가격에 10배나 오른 운송비가 가산됐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인플레이션이 왔고, 이걸 잡아야 하잖아요. 긴축에 들어간 겁니다. 물동량이 급격히 줄고 수요 부족 현상이 나타나겠죠. 운송 수요가 줄어드니 자연히 선박 공급은 초과 현상을 띠는 것이고, 운임이 반 토막 난 거죠.”
 
  실제로 지난 1월 7일 5109.6포인트였던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11월 8일 기준 1579.21포인트까지 떨어졌다.
 
  “불경기 시작의 신호예요. SCFI는 오를 때는 천천히, 떨어질 때는 수직 낙하합니다. 단적인 예로 HMM의 몸값 10조원이 경영 혁신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언젠가는 제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죠. 낙관론자들도 있지만, 저는 한동안 해운업계에 먹구름이 끼어 있을 거라 봅니다. 무역 규모도 줄어들 거고요. 자구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죠. 우리 조선·정기선사들이 돈을 벌어놨기 때문에 한동안 버틸 수는 있겠지만 불경기는 한 번 오면 사이클이 10년입니다. 휴항해도 고정비가 나가요.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배를 운항해야 하는데, 낮은 운임을 받을 수밖에 없고 악순환인 거죠. 결국 배가 너무 많으면, 한진해운 사태가 또 벌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해운사, 종합물류기업으로 도약해야”
 
  그는 지난 2019년 한진해운 파산 원인·결과·개선방향에 대해 연구한 《한진해운 파산 백서》를 발간했다. 한국해운물류학회 한종길 성결대 교수와 함께다. 김 교수는 정부와 한진해운이 준비 없이 법정관리를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한진해운은 당시 법정관리 신청 직후 활동하고 있던 해운 얼라이언스(동맹)에서 퇴출(退出)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는데, 퇴출을 막는 방법이 있었다는 거다. 방법을 따랐다면 물류대란을 막을 수 있었고, 손해배상 규모도 줄여 파산에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흔히 우리나라 조선업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는데, 기술력에서는 일인자가 맞다”면서 “다만 법과 경영에 있어서는 약하다. 앞으로 더욱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대형 해운사들은 이미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항공·철도·화물을 결합한 종합물류 서비스를 내놓은 거다. 컨테이너선으로 옮긴 화물을 열차에 실어 주요 도시로 운송하거나, 일정이 촉박한 고객에게 항공화물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계 1위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는 지난 11월 3일 과일·채소 등 온도에 민감한 화물을 선박과 철도로 옮기는 운송 방안을 선보였다. 김 교수는 “머스크의 종합물류사 도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지난해 해상운임 급증으로 막대한 이익을 남긴 해운사들이 종합물류 기업으로 도약에 나선 겁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원양 정기선사들 또한 이런 종합물류사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습니다.”
 
 
  船主業 육성 필요
 
  김 교수는 ‘선주업(船主業)’ 육성 또한 불황 타개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 그게 뭡니까.
 
  “쉽게 말해 배를 임대해주는 겁니다. 선주사로는 크게 해양진흥공사가 진행하는 금융형 선주사와 일본과 그리스의 민간선주사와 같은 두 가지 유형이 있어요. 금융형은 리스 형태고, 민간선주사는 민간이 자발적으로 선박을 소유해 임대해주는 선주사를 만드는 거예요. 현재 우리 해운선사들의 현금 보유가 많은 상태란 말이에요. 민간 선주업 시작의 적기로 보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특히 HMM 등 해운사들이 자회사로 선주사를 만들고, 포스코와 같은 대량화주들도 선주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국내 해운산업 보호를 위해 선주사는 운송업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선주사 육성법’에 분명히 해 기존의 해운업과 구별하도록 해야겠죠. 일본 이마바리처럼 민간선주사 육성이 국내 선박금융 안정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어요.”
 
  국내 해운사는 국적취득 조건부 나용선(BBHCP)을 선가의 90%에 해당하는 대출을 받아 선박을 보유하는 과정에서 해마다 원리금과 이자를 갚아나간다. 경기가 불황이면 운임수입이 줄어들어 금융상환을 이행하지 못해 어려움에 직면한다. 하지만 선주사로부터 정기용선을 해 용선료를 내는 방식은 불경기에서 기업이 충격을 이길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체 운항선대의 3분의 1인 1100척을 선주사로부터 정기용선한 일본해운이 안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선주와 연결되는 일본은 불경기가 와도 내수가 50%이지만 우리는 겨우 10%입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미국에서 조립, 생산한 전기차에만 지원금을 주기로 했잖아요. 현대차는 물론 독일 3사(메르세데스 벤츠·BMW·아우디)도 미국 자동차 공장 설립을 추진하거나 진지하게 검토 중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도 내수 걱정을 해야죠.”
 
  ― 우리나라가 그간 선주업을 안 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처음부터 자본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욕심을 내서 그렇습니다. 배값이 1000억원인데 작년 같은 경우 가격이 뛰어 2000억원이 됐어요. 그때 팔면 엄청 돈을 버는 거잖아요. 그래서 다들 소유하려고 하는 거예요. 불경기 때 왕창 망하는 건 생각 안 하고 시세 차익만 보려고 하는 겁니다. 해운업 역사가 긴 일본은 이렇게 일확천금을 노리지 않습니다. 그게 노하우예요. 재작년부터 ‘우리도 선주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작년에 시작했다면, 지금 상황이 훨씬 나았을 거예요. 이제는 배값이 떨어질 일만 남았으니, 선주사가 배를 싸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적기라고 봅니다.”
 
 
  “우리도 제주 항로 막을 수 있어”
 
2017년 1월 남중국해에서 훈련하는 중국 해군. 남중국해가 막힐 경우 한국 상선은 3~4일을 돌아가는 다른 항로를 이용해야 한다. 사진=중국 해군 웨이보
  ― 남중국해 분쟁은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우리나라의 주요 해상 운송로인데요.
 
  “중동(中東)에서 원유(原油)를 싣고 오는 유조선 등 우리 상선들은 말래카 해협, 남중국해, 대만 수역, 제주도 남단을 거칩니다. 만일 남중국해의 긴장이 고조되면 이 항로를 사용할 수 없게 돼요. 그렇다면 대체 항로를 생각해야겠죠. 인도네시아 발리섬 옆의 롬복 해협, 필리핀 남동을 거쳐서 우리나라로 오는 항로가 있긴 합니다. 다만 전자(前者)보다 1300마일 더 긴 항해를 해야 해요. 3~4일이 더 걸립니다.”
 
  ― 대체 항로를 쓰며 물동량(物動量)을 유지하려면 배가 더 많이 필요하겠군요.
 
  “유휴 선박까지 투입해도 배가 모자라겠죠. 선박 건조에는 2년이 걸리니,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해 운임도 폭등하겠죠.”
 
  ― 긴장이 고조될 경우 묘안이 있을까요.
 
  “미연에 방지하는 게 최선이죠. 현실적으로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중국 선박 중에서도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게 있습니다. 적지 않은 중국 선박이 제주를 거쳐 일본 혼슈(本州) 본토하고 홋카이도(北海道) 사이 해협을 지나간단 말이에요. 중국이 만일 남중국해 항로를 막으면 우리도 중국 배에 조치를 가할 수 있는 거죠. 일본이나 우리 정부에서 중국과 협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해상 사고는 주로 어선 사고”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어선 사고를 중심으로 해난 사고는 늘어났다. 사진=뉴시스
  ― 최근 통계청 자료를 보니 해상 사고 건수도 꾸준히 늘고 있더군요. 왜 이런 겁니까.
 
  지난 11월 3일 통계청 ‘해상 조난 사고 현황’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해마다 700억~800억원의 예산을 해양 사고 예방을 위해 투입했지만, 2014년 대비 2020년 해상 조난 사고가 거의 2배로 증가했다. 2014년 해상 조난 사고는 선박 1418척, 인원 1만1180명 규모로 집계됐다. 이는 해마다 늘었다. 2020년엔 조난 선박이 3778척, 인원이 2만1507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에도 조난 선박 3882척, 인원 2만174명으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해상 사고는 주로 어선에 집중됩니다. 상선 교육이 비교적 체계적인 데 반해 어선과 관련한 안전의식과 운항 기법 등의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 어선 수는 약 5만 척에 달하는데, 어민들의 사망 수는 1년에 약 90명 가까이 됩니다. 현재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약 4~5일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각 지역 수산업협동조합을 통해 여름, 겨울철 두 차례에 나눠서 1개월씩 교육을 하면 나아질 거라 봅니다. 최근 이태원 참사도 그렇지만 정부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완벽하지 못하다 보니까 그 빈틈에서 사고가 나는 거거든요. 이런 교육 제도가 개선이 되면 사고 방지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배를 침몰시킨 선장’
 
2등 항해사 시절인 1984년 산코기센 소속 상선 위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는 자이로컴퍼스에 기대선 김 교수. 사진=김인현 제공
  김인현 교수는 1959년 경북 영덕군 축산면, 선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안 대대로 400년간 이곳에서 살았다. 영해고를 졸업한 뒤 1978년 한국해양대에 진학했다. 1982년 일본 산코기센(三光氣船)에 입사했다. 당시 세계 최대 선사였다. 서른하나. 최연소 선장이 됐으나, 1991년 좌초 사고를 겪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비료를 싣고 호주로 입항하던 중이었다. 해도(海圖)상 존재하지 않던 암초에 부딪쳤다. 사상자는 없었지만, 1000억원 상당의 배와 화물이 수몰(水沒)됐다.
 
  호주 시드니 법정에 서야 했다. 법정에 서봤더니, 어린 나이였지만 그래도 명색이 선장인데, 해상법을 너무 몰랐다.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삶의 항로가 바뀐 계기다. 35세 때인 1994년 늦깎이로 고려대 일반대학원에 진학했다.
 
  ― 좌초 이력이 있는 선장은 더 이상 승선하지 못합니까.
 
  “그런 건 아니에요. 사건 마무리 후 회사는 배를 계속 타라고 했는데, 법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색이 선장인데 너무 모르는 게 많다는 반성도 했고, 진정한 선장으로 거듭나려면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도 생각했어요. 한동안 죄인이 된 기분에 많이 힘들었죠. 배를 침몰시킨 선장. 너무 부끄럽더군요. 대학원에 다닐 때, 사람들이 종종 묻더군요. 선장이 왜 학교에 와 있느냐고. 배 사고가 났다는 걸 말해야 하는데, 하기 싫었어요. 그러다 ‘언제까지 이렇게 부끄러워하며 살 수는 없다’ ‘캡틴은 당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실패 사례를 만천하에 알리기로 결심했어요.”
 
  1994년 9월 《해양한국》에 ‘선장의 국제소송 체험기’라는 제목으로 좌초담을 기고했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이 김인현은 선장 때 사고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 떨어질 곳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렇게 바닥부터 다시 올라가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영국에서도 ‘한국 해상법 실무 최고 전문가’로 꼽혀
 
  고려대 법대 석·박사 과정을 밟던 중 채이식(사법연수원 1기) 고려대 교수의 조교를 자청해 연구실에 들어갔다. 석사를 마칠 무렵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왔다. 로펌에서 해사자문역으로 근무한 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9년 3월 목포해양대 조교수로 임용됐다. 본격적인 법학자의 길을 걸었다. 새벽 5시에 출근해, 자정까지 학교에 남았다. 2003년 안식년 때는 텍사스 오스틴(Texas Austin)대학에서 LL.M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부터는 영어 논문도 꾸준히 발표했다. 최상 등급인 SSCI 논문과 스코퍼스(SCOPUS) 등급 논문만 20편에 달한다. 김 교수는 “고대 법대 교수 중 내가 영어 논문을 가장 많이 썼을 것”이라며 웃었다.
 
  해상법 본고장인 영국에서도 “한국 해상법 실무 최고 전문가는 ‘Captain I.H. Kim’”이라고 평가했다. 2007년 부산대 부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좌초의 위기가 또 다른 항로를 개척하는 기회가 된 셈이다. 김 교수는 “적성에 참 잘 맞는 일을 찾았다”고 했다. 지금도 매년 7~8편의 논문을 쓴다. 저서만 10여 권이고 지금껏 160여 편의 논문을 펴냈다. 한국학술지인용색인(Korea Citation Index·KCI)에 따르면 김 교수의 논문은 해마다 법학연구 분야 피인용 횟수 순위에서 1~3위를 차지한다. 누군가 ‘뭘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으면 ‘초심’이라 답한다.
 
  ― 국내 해상법 전문가라고 할 만한 인사는 몇 명 정도입니까.
 
  “약 70명 정도입니다. 우선 서울시내 로스쿨에는 저 혼자고요, 부산 로스쿨에 한 분 계시고, 해양대에 다섯 분, 해상법 전문 변호사는 서울 40명, 부산 10명, 서울 내 사내 변호사 10명이죠. 교수로만 따지면 점차 줄어드는 추세예요. 후임을 뽑지 못해서죠.”
 
  ― 삼면이 바다인 데다 물량 기준 95% 정도 해상 운송에 의존하는 수출 중심 국가인데, 산업 규모에 비해 해상법 전문가가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문제죠. 제가 교수로 온 1999년 이래 국내 물동량은 7배가 늘었는데, 관련 인사는 그대로입니다. 우리와 물동량이 비슷한 싱가포르에는 해상법 교수만 200명입니다.”
 
  ― 해상 사건이 발생하면 극소수 인사들에게 수임이 몰리겠네요.
 
  “몰려서 소화가 가능하면 다행이지만, 소화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건이 홍콩, 싱가포르, 영국으로 빠져나갑니다. 해상(海商)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국제성이 있으니 꼭 한국에서 처리할 필요가 없거든요. 사건당 평균 10억원 이상이 변호사 비용으로 나가니, 해운 관련 법률 수지에서 계속 적자가 나는 거죠. 제가 고대 로스쿨에 해상법연구센터를 설립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난 10년간 이곳에서 해상법 전문 변호사를 15명 배출했어요. 모두 대형 로펌에 진출해 있고요. 한데 아직까지 서울 로스쿨 중에서는 고대가 해상법을 가르치는 유일한 학교다 보니, 변호사 시험에서 해상법 문제 출제 빈도가 낮습니다. 자연히 배우려는 수요가 늘지 않는 거죠.”
 
 
  수차례 해수부 장관 물망에 올라
 
  지난 2018년에는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장도 맡았다. 김영춘 전 해수부 장관의 제안이었다. 그는 “형식적인 자리라면 맡지 않으려고 했는데, 김 전 장관은 실질적 도움이 필요하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고, 실제로 매우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듬해 김인현 교수는 김 전 장관의 후임으로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해수부 장관 하마평에도 올랐다.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도 유력한 해수부 장관 후보로 거론됐다. 그는 “장관이 안 됐다고 낙담하거나 그런 건 일절 없었다”며 “오히려 더 값진 결실을 맺었다”고 했다.
 
  장관이 안 된 덕분에(?) 그는 2020년 9월 ‘바다, 저자와의 대화’라는 온라인 공부 모임을 만들 수 있었다. 매주 조선, 해운, 선박 금융, 수산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각 산업의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지난 11월 8일은 100번째 모임이었다. 안광헌 현대중공업 사장, 유창근 전 현대상선(현 HMM) 대표, 김종덕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원장, 정필수 전 KMI 부원장 등 120명이 참석했다. 열성 회원 중 한 명인 조승환 해수부 장관은 “세계 어디에도 이런 모임은 없다. 내가 전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배경”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좌초된 배의 선장이 로스쿨 교수가 됐듯, 어떤 일이든 안 된다고 해서 거기서 끝이 아니다”라면서 “돌파구는 반드시 있고, 이를 따라가면 또 다른 항로가 펼쳐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선장은 좋은 직업”
 
  선장이 되려면 한국해양대 등 특수목적학교를 졸업한 후 갑종선장(1급 항해사)이라는 국가공인면허를 따고 1등 항해사 경력을 4년 정도 채워야 한다.
 
  ― 현재 활동 중인 한국 국적의 선장은 몇 명이나 됩니까.
 
  “약 1300명 정도입니다. 국내 1200척의 원양상선에 더해 외국에 나가 있는 100명까지 더한 수치예요. 저처럼 선장 면허를 매 5년 꾸준히 갱신하며 육상에서 일하는 사람은 약 10명 정도 되고요. 진짜 ‘캡틴’으로 불리려면 이처럼 면허가 살아 있어야 하죠. 선장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선장 활동 시절 가장 긴 항해는 45일간이었다. 대만에서 노르웨이까지 가는 항로였다.
 

  ― 45일 동안 망망대해를 떠다니면 헛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바다 위에 있으면 다들 조금씩 이상해지긴 합니다. 안절부절못하고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 다툼도 일어나죠. 이런 걸 방지하는 것도 선장의 몫이에요. 금주령을 내리기도 하고, 윷놀이 대회를 열거나, 다 같이 영화를 보기도 하고요.”
 
  ― 추천할 만한 직업입니까. 오랫동안 집에도 못 가는데요.
 
  “좋은 직업이다마다요. 우선은 진취적이잖아요. 앞서처럼 ‘만일 남중국해가 막히면’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쳐요. 대안을 마련하려면 새 항로를 개척해야 하잖아요. 항상 길을 찾는 직업인 거죠.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사고(思考)가 폭넓어져요. 보통 사람들은 플랜B까지 생각하지만, 선장들은 플랜C까지 짜 놓습니다. 배 위에서는 선장의 말을 듣도록 해야 하니, 지도력도 습득하게 돼요. 물론 가정생활은 공백이 있겠지만, 젊었을 때 선장을 하고 결혼 후 실력이 있다면 해운회사 중역으로 가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소소하게는 외국 구경도 하고 돈도 많이 버니 좋죠.(선장은 일반 샐러리맨의 3배를 번다고 알려져 있다) 허허.”
 
  ― 배 위에서 먹은 회 중 뭐가 제일 맛있었습니까.
 
  “청어요. 하루만 지나도 못 먹는 생선이죠. 잔가시는 많지만 아주 부드러워서 살살 녹습니다. 꽁치회도 의외로 맛있고요.”
 
 
  “정년 후 크루즈 선장 할 생각”
 
  ― 역사 속, 혹은 문학 속 선장 중 누굴 최고로 칩니까.
 
  “단연 콜럼버스입니다. 1492년은 대서양 너머가 낭떠러지인 줄 알았던 때잖아요. 죽음을 무릅쓰고 나간 거예요. 그 도전으로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신대륙을 발견했고 산업혁명도 일어났지 않습니까. 상상을 초월한 진취성으로 세계사를 다시 쓴 거죠.”
 
  김 교수의 정년은 2025년이다. 앞으로 2년 남짓 남았다. 은퇴 후에는 다시 배(크루즈)로 돌아갈 생각이다.
 
  “크루즈선의 선장은 두 명입니다. 한 명은 배를 직접 조종하고, 나머지는 여객 담당이죠. 배에서 내린 지 오래된 저는 후자(後者)를 할 계획입니다. 크루즈 여객선장이 세계 49위 로스쿨(고려대 법학대학원)의 해상법 교수 출신이면 폼 날 것 같지 않나요? 그러기 전에 우선 제가 해온 일들을 후임에게 잘 물려줘야겠죠. 한국 해상법 100년사(史), 그 이상을 남길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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