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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비판

정기오 전 한국교원대 교수가 말하는 전교조

“대한민국 공교육은 밀려나고 그 자리를 전교조의 ‘참교육’이 차지”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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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5세 입학, 교육부의 국가책임 집착증에서 야기… 교육부가 민주당의 교육 정책 노선을 그대로 고집한 것”
⊙ “자유민주국가 중 공립학교 관리자인 교육감에게 사립학교 감독관할권을 주는 나라는 희귀”
⊙ “YS 정권은 전교조를 교원단체 형태로 인정하려 했으나, 전교조는 노조 지위 얻으려 해”
⊙ “YS가 사인한 ‘전교조 법률안’이 1년 반 동안 법제처 캐비닛에 있었다”
⊙ “‘민족민주인간화’ 교육론은 좌익운동권 이론”

정기오
1954년생. 경기고·서울대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학사·석사·박사 졸업, 美오하이오주립대 교육행정학·정치학 석사 / 교육부 국제교육협력과장, OECD교육노동사회국 자문관, 대통령교육비서실 행정관,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 교육인적자원부 인적자원정책국장, 홍익대학교교육경영관리대학원 초빙교수,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교육정책전문대학원장 및 대학원장, 정부업무평가위원 역임 / 《학교를 위한 협상론》 《시험성적과 민주주의》 등 저서 6권, 국내 해외 학술저널 논문 44편 저술
  ‘만 5세 입학’ 등 학제(學制) 개편안 졸속 추진 논란을 빚었던 박순애 전(前) 교육부 장관이 취임 34일 만에 퇴진했다. 정기오 전 한국교원대 교수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 인하는 전형적인 좌경화(左傾化) 교육 정책으로 가뜩이나 취약한 현(現) 정부의 지지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정책이었다”며 비판했다.
 
  “20년 넘게 추진해온 유아 교육의 공교육화 정책은 무위(無爲)로 돌아가고 공들여 구축해온 유치원 교육과정이 붕괴합니다. 초·중·고·대학들에 연쇄적 해일이 들이닥치는 정책이었고, 새 정부의 순항에 백해무익(百害無益)합니다. 즉시 철회해야 했습니다.”
 
  ━ 윤석열 정부가 좌경화된 교육 정책을 추진하려 했다는 겁니까.
 
  “업무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장관이 교육부가 그동안 추진했던 일을 처리하려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교육부는 ‘교육에서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차관이 단장이 돼 ‘국가책임교육강화추진단’을 구성한다고 했습니다. 교육의 국가책임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대선 공약이었습니다. 만 5세 입학도 교육부의 국가책임 집착증에서 야기됐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민주당의 교육 정책 노선을 그대로 고집한 겁니다. 민주당의 교육 정책을 현재의 교육부가 그대로 실행에 옮기려 한 것은 새 대통령의 리더십을 정면으로 흔드는 일입니다.”
 
  ━ 장관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부의 고질적 문제라는 겁니까.
 
  “교육부는 오랜 사회주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습니다. 옛 문교부를 이은 현재의 교육부는 정부 수립 초창기부터 삼균주의(三均主義·독립운동가 조소앙이 만든 사상으로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의미-편집자 주)에 깊이 물든 조직이었습니다. ‘전(全) 국민 평균 교육이수 수준이 초등학교 6학년’이 못 된다는 이유를 들어 1980년대 말까지도 교육부 내 대학국장직에 대학에 가보지도 못한 고졸 공무원을 임명하는 등 평균주의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런 사회주의 조직 풍토에서 ‘교육국가책임제’가 나온 겁니다.”
 
 
  “교육감은 어둠의 實勢 권력자”
 
  행정고시 22회 출신으로 1979년 교육부에 들어가 20년 이상 몸담은 정기오 교수의 질타가 시작됐다. 정 교수는 교육부 최초로 OECD 교육 분과에 소속돼 프랑스 파리로 3년 파견 근무 후 1995년에 복귀, 김영삼 정권 시절 청와대 교육비서실에서 근무하면서 당시 불법단체였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합법화 정책에 관여했다. 대학교수 정년 퇴임 이후 칩거했던 정 교수는 “잡지와의 인터뷰는 처음”이라면서도 거침이 없었다.
 
  ━ 두 달 전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전교조는 싫은데 조전혁과 박선영 중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교육감은 어둠의 실세(實勢) 권력자입니다. 교육감에게 재정권·인사권이 있기에 제아무리 국회의원이라도 교육감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또한 경기도에는 서울과 달리 군(軍)부대가 많습니다. 대령, 준장, 소장 등 군 부대장들도 자녀 교육 문제로 교육감에게 절절매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육감 직선제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제도”
 
  ━ 교육감 중 상당수가 전교조 출신, 혹은 친(親) 전교조 성향 아닙니까.
 
  “전교조는 일찌감치 교육감이 가진 제왕적 속성을 파악하고 전국의 교육감 자리를 노리고 정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부 보수주의 정치인들이 뒤늦게 그를 알고 너나 할 것 없이 교육감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보수 분열로 전교조 위력만 강화시켜줬습니다.”
 

  ━ 굳이 직선제로 교육감을 선출해야 합니까.
 
  “1987년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유일하게 역행(逆行)한 분야는 교육 분야였습니다. 1990년 이전까지 교육감은 선거로 선출되지 않고 대통령이 임명했습니다. 또 시·군·구 등 기초지방자치단체는 교육법상 광역지방자치단체인 시·도와 구별되는 교육자치권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중앙정부로부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직접 받아 학교를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자치법을 별도로 제정하면서 시·군·구는 교육자치권을 뺏기고, 교육감 직할령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시·군·구가 받았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교육감에게 모두 뺏겼습니다. 이때부터 ‘제왕적 교육감’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교육감 직선제는 애당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제도입니다.”
 
  ━ 기초지방자치단체가 교육자치권을 가졌어야 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교육은 원래 지역사회에 뿌리를 둔 시민사회 고유의 기능이며 활동입니다. 교육 자치를 하려면 시·군·구 단위 교육 자치가 우선입니다. 또한 종교단체가 설립한 사학(私學)이든 직업단체·기업·재력가가 설립한 사학이든 사립학교가 교육의 자주성과 시민사회적 기능의 필수적 구성 요소가 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립학교를 권장하고 진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원래 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가 공정 경쟁하면 공립학교가 백전백패(百戰百敗)합니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 경쟁력 없는 공립학교가 퇴출당하고 경쟁력 있는 사립학교가 살아남는 것이 정상입니다. 조선 시대 때에도 향교(鄕校)가 몰락하고 서원(書院)이 승리했습니다. 사립학교가 몰락하고 공립학교가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지금의 한국 교육은 단단히 잘못됐습니다. 교육감의 사립학교 관할감독권을 폐지하고, 시장·도지사들에게 사립학교와 학원의 관할권을 돌려줘야 교육이 정상화됩니다.”
 
 
  ‘교육 共産化’
 
  ━ 한국 교육이 무너진 데 현재의 제도가 한몫한다고 보십니까.
 
  “지금의 한국 교육은 사립학교가 몰락하고 독점에 무능하기 짝이 없는 공립학교 만능 세상입니다. 불공정 경쟁 때문인데, 교육감이 그런 불공정 경쟁의 선봉입니다. 교육감은 원래 ‘공립학교의 관리자’입니다. 우리나라는 공립학교의 관리자에게 사립학교 감독권을 쥐여주니 교육감이 그 권한을 경쟁자인 사립학교 탄압에만 사용합니다.”
 
  ━ 다른 나라는 어떻습니까.
 
  “자유민주국가 중 공립학교 관리자에게 사립학교 감독관할권을 주는 나라는 희귀합니다. 당연하지요. 보통 사립학교나 사설학원은 일반 행정관청인 시장, 도지사가 관할·감독합니다. 그래서 사립학교들이 공립학교와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습니다. 30년 이내에 학생 수의 반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공립학교의 대변자일 수밖에 없는 교육감 치하에선 공립학교들만 살아남고 사립학교를 고사시키면서 결국 교육 공산화(共産化)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정기오 교수의 설명으로는 교육에서 중앙, 지방의 역할 분담은 프랑스와 대륙 유럽 제도가 국제표준이다. 교육내용과 교사는 국가가 임명하는 교육감·교육장이 담당하고, 지방자치단체는 공립학교의 설치·유지·관리를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서구 근대 공교육은 프랑스의 국민교육(education nationale)에서 시작됐다. 프랑스혁명 직후 계몽 철학자 콩도르세가 국민의회에 제출한 공교육보고서에서 비롯된 근대 공교육체제는 나폴레옹 1세 때 시작됐으며 제도적 완성은 나폴레옹 3세 때 이뤄졌다.
 
  정기오 교수는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이후 초반 30년 동안 프랑스를 따르는 국민교육체제를 발전시켰는데, 1980년대 이후 민주화·민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국민교육을 ‘종족교육’으로 변질시켰다”며 “장관·교육감·교육장 중심의 장학 시스템과 국정교과서 중심의 교육내용 감독체제도 붕괴시켰다”고 말했다.
 
  ━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프랑스를 따랐군요.
 
  “프랑스의 교사들은 전원 국가 공무원입니다. 국민교육의 사명을 받아 섬·산골 등 국토 끝까지 학교를 지키고 국민 형성을 담당하는 신성한 사명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장학관·장학사들은 모든 프랑스 학교가 원리에 맞게 운영되는지를 모니터하고 지도하는 핵심 요원들입니다. 1980년대까지 한국의 교육은 프랑스를 본떴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진주사범, 수원사범, 목포사범 등 사범학교가 바로 프랑스 사범학교체제입니다. 또 프랑스처럼 교사는 모두 지방 공무원도 단순 고용직도 아닌 ‘국가 공무원’이었고, 장학관·장학사가 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교조 교사들이 이러한 국가 공무원의 지위를 그대로 누리면서 국민교육이라는 사명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교원노조 법제화의 아버지’ 리버먼
 
전교조는 학생들의 학력 증진을 위한 정책들을 반대하곤 했다. 사진=조선DB
  ━ 법률에 따라 지위와 보수 면에서 다른 공무원에 비해 특별히 우대받던 국가 공무원인 교사가 굳이 교사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교육의 전문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미국의 교육학자인 리버먼(Myron Lieberman) 교수는 1956년에 《전문직으로서의 교육(Education as a Profession)》이라는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교사가 의사·변호사처럼 전문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교사 개개인이 교육 관료제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며, 교사가 노동조합을 통해 단결하고 단체교섭권을 가져 교육의 국가 지배, 교육 관료와 대등하게 맞서서 교사의 전문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한글로도 일찍이 번역되어 국내 대학에 보급되었으며, 일본의 교원노조를 따라가려 하던 국내 교원노조운동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기오 교수에 의하면, 리버먼 교수는 비단 책을 쓰는 데 머물지 않고 시카고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나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미국 교원노조 법제화 운동을 했다. 그 결과 35개 주(州)에 교원노조가 만들어졌다. 그는 ‘미국 교원노조 법제화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리버먼 교수는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교원노조는 선거판과 단체교섭 테이블을 오가며 교육청을 상대로 꽃놀이패를 쥐고 백전백승했고, 그 결과 미국의 공교육은 스멀스멀 망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1979년 미국 교육계의 권위지인 《피 델타 카파(Phi Delta Kappa)》에 ‘내가 낳은 달걀(Eggs That I Had Laid)’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노동조합을 통해 교육의 전문성을 추구해온 자신의 과거 이론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논리라고 자인(自認)하고 미국 교육을 망친 그 잘못을 상세히 분석했다.
 
  ━ 한국 교육은 미국 교육을 망가뜨린 교원노조를 답습했고 리버먼 교수의 40여 년 전 지적이 현실이 됐군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우리나라 교육자치제도로 이어졌고 30년 동안 시행돼오는 동안 많은 문제점이 쌓인 겁니다. 전교조는 교육감 선거판에서 조직의 힘을 발휘해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게 당선된 교육감에게 노조의 요구를 들어 노사단체교섭 테이블 안팎에서 압박하고, 교육감이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해 교육감을 위협합니다. 여기에 굴복하지 않는 교육감이 없습니다. 그랬다간 다음 선거에서 필패(必敗)니까요. 이게 바로 전교조가 쥔 꽃놀이패인데, 전교조가 20년간 꽃놀이패를 쥔 결과 학교 현장을 전교조 활동가가 지배하게 된 겁니다.”
 
 
  문재인 정권은 학교 교실에서 탄생
 
정기오 교수는 2016년 박근혜 탄핵 시위에 나온 학생들은 전교조의 세례를 받은 세대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진=조선DB
  ━ 몇 년 전 ‘인헌고 사태’가 있었습니다.
 
  “전교조 선생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빙자해 ‘계기교육’을 하는 겁니다. 적당히 찬스를 잡아서 정치 선동을 수업이라며 버젓이 행합니다. 계기교육은 국가교육과정에 없습니다. 좌익에 물든 교사가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교실에서 반정부 선동을 하고 대통령을 쫓아내야 한다며 3년 동안 상징 조작을 하다 보니 그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세월호 광풍의 주역이 된 겁니다. 전교조와 세월호 관련 단체들이 나서서 《세월호 4·16 교과서》까지 만들고 학습지도요령과 교사용 자료까지 대량으로 배포했습니다. 전국의 학교에서 계기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을 체계적으로 세뇌하고 순식간에 상징조작에 성공했습니다.”
 
  ━ 계기교육을 교사 재량으로 해도 됩니까.
 
  “계기교육 허용조항을 〈국가교육과정총론〉에 넣어 합법화시킨 것이 노무현 정부의 교육부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교육부 장관의 장학지도권한을 아예 폐지했습니다. 이후 국가교육과정과 국가 수준 장학지도는 사라지고, 전교조 활동가들이 장학관·장학사를 대신해 젊은이들의 순수한 영혼을 마성으로 물들였습니다.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권 탄생의 발판은 전국의 학교 교실에서 마련된 겁니다.”
 
  ━ 아이들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얘기하지 않으면 부모로서는 알 도리가 없어 답답하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교육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교사가 교실 문을 닫고 교실 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 안의 모든 활동은 보통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공교육체제가 시작되면서 장학관·장학사로 구성된 장학조직이 출범해 학교와 교실을 들여다보고 모니터링해온 이유는 보이지 않는(invisible) 교육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문가 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근대행정 역사상 최초의 정책평가단이 바로 장학조직입니다.”
 
  ━ 과거에 ‘장학사가 떴다’고 하면 학교가 꽤 분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구미 선진국의 장학관·장학사들에게는 사무실이 없습니다. 1년 내내 장관이나 교육감의 눈과 귀가 되어 교육 현장을 돌아다니고 교사들과 대화하며 정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보고서를 써서 장관에게 제출하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사무실은 없지만,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는 이들 중 장학관은 교육부 국장급, 장학사는 과장급으로 지위가 매우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초기 원래 이러한 유럽의 장학제도를 도입했으나 지금의 한국 교육에서 장학관·장학사는 실질적으로 사라졌습니다. 모두 교육부·교육청의 사무실로 들어가 행정주사처럼 펜대 굴리고, 청사 내에서 결재판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그들의 일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학교 현장을 모르는 장님이 되어버리자 그 틈을 노린 전교조 활동가들이 이들 대신 학교 현장을 장악했습니다. 3000여 명의 전교조 활동가가 진짜 장학관·장학사처럼 1년 내내 돌아다니며 교사들과 대화하고 조언합니다. 대한민국 공교육은 학교 현장에서 밀려나고 그 자리를 전교조의 ‘참교육’이 차지했습니다.”
 
 
  전교조 ‘민족교육론’
 
1996년 5월 26일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전교조 결성 7주년 기념 전국교사대회’. 깃발에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이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사진=조선DB
  정기오 교수는 전교조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다. 전교조 태동의 씨앗이 된 책 집필자인 리버먼 교수가 그의 유학 시절 지도교수여서 1년 넘게 교원노조 문제를 함께 연구했다. 귀국 후 교육부 공무원으로 청와대에 파견 근무할 때에는 법외노조인 전교조 문제 풀이에 몰두했다.
 
  ━ 전교조의 문제는 뭡니까.
 
  “우리 교육법에 따른 교육이념은 ‘홍익인간-인격도야-생활능력-민주시민’입니다. 이를 위해 국가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이와 경쟁하려는 전교조의 교육이념은 ‘더불어 사는 인간-민족교육-민주교육-인간화 교육’이며, 이를 위해 그들은 소위 ‘참교육과정’을 내세웁니다. 이러한 전교조의 ‘민족민주인간화 교육론’은 1980년대 운동권 이론인 민족·민주·민중의 삼민주의론에 그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운동권 투쟁 전략을 약간 가공해 ‘참교육’이라고 이름을 짓고 국가교육과정을 대신하려 하고 있습니다.”
 
  ━ ‘더불어 사는 인간’은 뭐가 문제입니까.
 
  “우리나라 학교에는 교장실, 교실에 ‘더불어 사는 인간’ 구호가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물론 특정 개인이나 조직은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인간상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국가의 교육체제가 이를 추구한다면 이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교육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더불어 사는 세상’입니다. 전교조의 주장대로 ‘더불어 사는 인간’을 추구하면 내시 균형 모델을 만들어 노벨상을 받은 내시(John F. Nash) 같은 사람은 존재하면 안 됩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인 내시는 자폐증이 있었기에 세상과 ‘더불어 사는 인간’은 아니었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을 추구했고 그의 철학은 누구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 민족교육론도 전교조가 내세우죠.
 
  “원래 자유민주국가의 공교육은 국민 형성(nation building)을 기본 기능으로 합니다. 백성을 국민으로 고양시키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학교 교육은 민족을 ‘종족’으로 오해하는 편견으로 인해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것을 꺼리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그 실패의 산물입니다. 전교조는 ‘민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40년 넘게 김일성 주체사상을 퍼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민주교육론, 인간화 교육론은 어떻습니까.
 
  “교육에서의 민주주의는 생활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합니다. 미국 교육학자인 존 듀이(John Dewey)의 명저 《민주주의와 교육》에서 말한 민주주의의 세 가지 핵심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는 것, 불변의 진리를 거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잠정적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 투쟁과 승리가 아닌 교섭과 협상입니다.
 
  전교조의 민주교육론은 3개의 민주주의 생활 원리를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경청을 거부하고 의미 없는 말만 하고, 주체사상·자본론·헤게모니론과 같은 교조적 진리관에 빠져 있고, 협상할 줄 모르고 입으로만 평화를 외칩니다. 한편 전교조가 말하는 ‘인간화 교육’은 민중교육론을 재포장한 사기입니다.”
 
  ━ 왜 사기입니까.
 
  “민중교육론은 교육, 학습의 사회적 행태에 묻혀 특정한 세계관을 교육과 학습에 적용하려고 합니다. 만약 의사가 특정한 세계관을 갖고 환자를 치료하고 처방하려고 하면 말이 됩니까?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업과 교수학습활동에 특정한 세계관을 반영하는 교사는 자격 미달입니다. 사실 전교조의 조직 체계도 그들의 세계관을 반영해 공산당과 같은 형태라고 봅니다.”
 
 
  보수단체는 분권형 조직, 전교조는 중앙집권 계층제
 
  ━ 어떻게 같습니까.
 
  “공산당 정치조직원리의 핵심은 민주적 집중제입니다. 당 중앙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분권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전교조는 전국 단일조직 전교조가 먼저 있고 시도별로 지부를 두며 그 밑이 지역별·분야별 지회를 두는 민주적 집중제에 의한 중앙집권적 계층제입니다.
 
  교육계의 오랜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는 정반대입니다. 지역교원단체가 있고 그들이 모여 광역시도연합회를 결성하고 그들이 모여 전국총연합회를 만듭니다. 철저한 분권형(分權型) 연합조직입니다.”
 
  ━ 전교조와 같은 중앙집권체제는 중앙의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거죠.
 
  “전국의 전교조 네트워크가 철저히 중앙의 지시에 복종하는 중앙집권조직을 이루기에 그와 단체교섭,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교육감도 중앙집권화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순진한 교육전문가들이 ‘단위학교 자치’ ‘교육 자치’를 아무리 외쳐도 학교들이 제왕적 교육감의 지시에 복종하는 집권형 계층조직에 묻혀버리는 겁니다.”
 
 
  YS, 전교조 合法化 법률안에 사인
 
1997년 2월 24일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전교조 합법화 결의대회. 전교조는 합법화 과정에서 노조 지위를 요구했다. 사진=조선DB
  애초 전교조의 합법화는 YS 시절에 처리될 예정이었다. YS 정부는 전교조를 노조가 아니라 교총과 비슷한 교원단체로 인정할 예정이었다. 당시 정기오 교수는 청와대 대통령교육비서관실 행정관이어서 1996년 6월경에 일어난 이 문제를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
 
  “1996년 2차 교육개혁안을 마무리 짓고 난 뒤 청와대는 노사관계개혁에 관심을 쏟고 있었습니다. 전교조 합법화 문제가 나왔는데 박세일 대통령비서실 사회복지수석비서관을 비롯해 청와대는 ‘전교조 문제는 노동 문제가 아니라 교육 문제’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어젠다에서 전교조 문제를 뺐고 당시 안병영 교육부 장관에게 전교조 문제를 맡겼습니다.
 
  당시 유일한 교사 단체인 교총은 ‘교원지위향상법’에 따라 교육부와 단체교섭을 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전교조도 교총처럼 만들자. 교원단체 복수화(複數化)가 이뤄지면 교총에 가입하든, 전교조에 가입하든 선택하지 않겠느냐’고 봤습니다.
 
  교육부에서 법률안을 마련했고, 법률안을 국무회의에 올리기 전 주말에 저랑 안병영 장관 둘이서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윤문(潤文) 작업을 했습니다. 그 법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대통령 사인만 남아 있었습니다.”
 
  ━ 대통령 사인을 직접 받으러 갔습니까.
 
  “제가 법률안을 들고 직접 청와대 본관에 갔고 (흔히 문고리로 불리는) 본관비서관을 통해 1분 만에 대통령 사인을 받았습니다. 일사천리로 통과됐습니다. 청와대 총무과 문서계에 가서 발송도장을 받고 비서들이 근무하는 사무실 동(棟)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서류가 법제처 문서계를 거쳐 국회로 넘어가면 전교조는 교총과 같은 교원단체가 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결재 완료 경과를 수석께 보고하자 박세일 수석이 문서 발송을 ‘2~3일만 보류하자’고 하는 겁니다.”
 
 
  총리의 호통
 
  ━ 이유를 설명하던가요.
 
  “아뇨.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또 일주일이 지나고 석 달 가까이 지났습니다. 저야 매주 법률안 발송을 수석께 재촉하면서 이유를 캐묻기도 하고 했지만 정확한 이유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당연히 국회에 접수됐어야 할 대통령 재가 법률안이 국회에 도착하지 않으니까 청와대 공직기강팀에서 서류의 행방을 찾는다는 소리가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서 어느 날 단단히 결심하고 아무런 보고 없이 조용히 서류를 직접 휴대해 사무실을 나와 세종로 중앙청사로 가서 법제처 총무과에 서류를 접수했습니다. 법제처에서 다시 청와대 비서동으로 돌아오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리로 돌아오니 총리실서 저를 여러 번 찾는 전화가 왔다고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려 제가 받자마자 이수성 총리가 험한 욕을 퍼붓더군요. 박세일 수석을 뒤에서 압박하는 게 이수성 총리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냥 가만히 듣고 있다가 끊어버렸습니다.”
 
  ━ 이수성 총리가 왜요.
 
  “보내지 말라는 법률안을 왜 보냈느냐는 겁니다. 몇 분 뒤에는 법제처 총무과장이 전화를 걸어 ‘폭탄을 왜 여기에 떨어뜨리냐’고 하더군요. 제가 청와대를 떠날 때까지 그 과장하고는 가끔 통화를 했습니다.”
 
  몇 달 뒤인 1996년 12월에 노동계에 길이 기록될 민노총 총파업이 시작됐다. YS 정권이 정리해고 도입 등이 담긴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이에 반대해 조직된 총파업으로 40만 명 이상이 한 번 이상 총파업에 참여했을 정도로 대규모였다. 노동계의 반발에 YS 정부는 백기 투항했고, 결국 국회는 1997년에 근로기준법 등 법률을 폐지하고 재개정했다. 이후에 이어진 IMF 여파로 인해 김영삼 정부는 말 그대로 패닉에 휩싸였다.
 
 
  대통령을 속일 수 있는 대통령제
 
  ━ 대통령 사인이 있는 그 법률안은 어떻게 됐습니까.
 
  “YS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1년 반 이상을 법제처 총무과장 캐비닛에 들어 있었습니다. 국회에 송달만 됐다면 끝날 일이었는데요. YS 정부의 뒤를 이어 김대중 대통령이 선출됐고, 그다음 날 YS 참모진의 국무회의가 열렸습니다. 첫 얘기가 ‘교육부의 전교조 법률안이 국회에 가지 않은 것을 누가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이냐’였습니다. 결국 안병영 장관의 후임 장관으로 있었던 이명현 장관이 맡기로 했습니다. 이 장관이 실무자였던 저한테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대통령을 독대(獨對)하러 들어갔던 이 장관이 10분도 채 되지 않아 나왔습니다. 이 장관 말로는 보고를 받은 김영삼 대통령이 5분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김 대통령은 ‘그래, 그런 것이었어? 그런 것이었구먼’이라고 답했다더군요. 그렇게 중요한 법률안을 1년 반이나 법제처 캐비닛에 두고 대통령을 속일 수 있는 것이 대통령제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전교조가 교원단체가 아닌 노동조합이 되기 위해 이수성 총리를 움직였다고 보십니까.
 
  “법외(法外)노조였던 전교조의 목표는 합법화가 아니었습니다. 노동조합이라는 옷을 입어야만 민노총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노총은 노조인데, 전교조는 교원단체이면 각자 자기 길을 가야죠. 민노총과 함께 가려면 어떻게든 노조로 인정을 받아야 했으니, 선전과 선동에 강한 전교조가 ‘우리가 교원단체가 되는 것만은 막아달라’고 정치인들을 회유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음모, 모략에 강한 전교조와 그 세력에 영합한 사람들의 합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민노총과 전교조
 
  ━ 전교조가 노조가 된들, 민노총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요.
 
  “전교조 출신인 이수호씨가 몇 년 뒤에 민노총 위원장을 지낸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레닌은 공산주의 혁명에서 애초 인텔리겐차 노조의 역할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대중 선전에 나설 때 무식한 노동자보다는 지식계급이 선봉에 서야 더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전교조는 교사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선생은 똑똑하고 존경받는 위치입니다. 전교조는 이를 앞세워 민노총을 장악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그리고 전교조 위원장을 거친 이수호씨가 2004년 민노총 위원장이 되면서 민노총 내부에서는 주사파가 인민파에 완전히 우위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법외노조였던 전교조는 DJ 시절인 1999년에 ‘교원 노조법’이 통과되면서 합법 노조가 됐다. 그리고 20년을 훌쩍 넘긴 지금, 전교조는 어디보다 강력한 결집력을 갖는 노동단체가 됐다. 전교조는 여전히 ‘자사고·특목고 폐지’를 외치고 우파 후보로 교육감에 당선된 임태희 교육감의 움직임에 ‘삼청교육대 시절로 회귀하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정기오 교수의 얘기다.
 
  “전교조는 능력주의를 싫어하고 평등주의에 절어 있습니다. 재능·노력·업적이 보상받고 우대되는 능력주의를 부인하면 그를 대신하는 것은 ‘필요’밖에 없습니다. 필요에 따라 우대되고 보상받는 사회, 즉 공산주의·사회주의로 가는 겁니다. 우리나라 교육계가 사회주의 교육으로 편향되는 이유는 능력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부인하는 자들이 교육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학교의 모습은 똑같습니다. 교실 여러 개가 모여 학교 건물을 이루고, 그 교실마다 학생들이 학습 활동을 하고 그 중심에 교사가 있습니다. 외국으로 학교 시찰을 다녀본들 기본적인 모습만 무한(無限) 목격합니다. 공산주의 학교도 겉모습은 똑같기에 공산주의 교육이 우리와 다를 바 없고, 오히려 학급당 학생 수와 학교시설, 무상(無償)교육 면에서 공산주의 교육이 발전해 있다고 찬양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습니다.”
 
  ━ 겉모습만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씁쓸합니다.
 
  “과거 많은 교사와 교육학자들이 동유럽 학교체제에 환상을 가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동유럽 국가들이 무너지며 이 환상이 깨졌고 동유럽 공산주의 학교의 교사들은 민주화 이후 OECD의 권고에 따라 모두 해고됐습니다. 공산국가의 학교와 선진 민주국가의 학교는 그 바탕이 되는 ‘교육원리’가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첫째, 공산주의 교육은 노동시장이 존재하지 않고 국가가 개인 직업을 정해줘야 하기에 학교가 그 기능을 합니다. 철저히 학생을 선별해 구분 배치를 위한 목적 도구로 사용합니다.
 
  둘째, 공산국가의 학교에서 학생을 구분하는 기준은 당성(黨性)입니다. 즉 정치 이념이 교육적 가치의 정점에 있는 겁니다.
 
  셋째, 공산주의에서 교육은 국가의 핵심 기능이기에 학교는 국가기구, 정부조직의 핵심입니다. 공산국가가 무너질 때 교사들이 제일 먼저 전원 해고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민주국가의 교육은 민간, 시민 사회의 기능인데 이를 국가 기능으로 착각하는 겁니다.”
 
 
  “교육자치권, 기초자치구로 회복시켜야”
 
  ━ 어떻게 해야 조금이나마 우리나라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겠습니까.
 
  “교육자치권을 기초자치구(기초자치단체)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기초자치시마다 합의제 자치행정기관으로 ‘교육위원회’를 두고 시장·구청장이 의장이 돼 교육위원을 겸하고 그 러닝메이트 사무장 격의 교육장을 둬야 합니다. 교사를 포함한 학교 교직원은 자치시·자치구 소속 지방 공무원으로 전환하고, 교육감은 국가교육위원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가의 지방교육관청으로 그 지위를 전환해야 합니다. 기초자치시마다 교육비특별회계를 둬서 교육장 소관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대수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가의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완전히 무너질 겁니다.”
 
  정 교수의 증언처럼 YS 시절 전교조 합법화 문제가 다뤄졌다면 오늘날의 교육계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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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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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zee457    (2022-09-02) 찬성 : 0   반대 : 0
우리나라 교육이 정상화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리겠습니다. 물론 지난한 노력도 필요하구요.

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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